경신일 밤을 지새는 이야기[庚申守夜說]

 경신일 밤을 지새는 이야기[庚申守夜說]


趙克善

  나라 풍속에 연말이 될 때마다 경신일(庚申日) 밤에 모여 아침까지 자지 않도록 지켜주었다. 사람에게는 삼시충(三尸蟲)이 있어서 바야흐로 조는 틈을 타서 상제께 올라가 그 사람이 1년 동안 한 짓을 보고하여, 선하지 않은 자는 즉시 재앙을 내린다고 하였다. 그래서 만약 조금이라도 조는 자는 반드시 재앙을 받으니 다 함께 자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다.

  올해는 12월 24일이 실로 그날 밤인지라, 벗 이생과 이에 뜻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수십 명이 사찰에 모여 바둑, 술, 음식 등 모두 수마(睡魔)를 막기 위한 도구들을 빠짐없이 펼쳐놓고 계속해서 술잔을 들며 시끌벅적하게 장난치며 웃느라 저도 모르게 몸도 피곤해지고 정신도 이미 지쳐버렸다. 날이 밝아서야 그쳤는데, 모두 망연자실한 듯하였다. 내가 이에 속으로 깨닫고 입으로 말하였다. 

  “아, 재앙과 경사는 각기 부류마다 오는 법이다. 천지신명이 밝고 삼엄하게 임하시니, 보답해야 할 일에 어찌 삼시충을 기다리겠는가. 만약 스스로 선행을 하였다면 삼시충이 밤마다 올라가 아뢰게 한들 나를 어찌하겠는가. 만약 불선을 하였다면 한해가 끝나는 날까지 잠을 자지 않더라도 재앙에서 도망갈 곳이 없을 것이다. 어찌 하루 잠을 자지 않는다고 1년 동안 저지른 불선한 죄들을 면할 수 있단 말인가. 평소 선행을 못하고 한 때의 요행을 구한다면, 이는 죄가 있는 곳에 스스로 처신하여 군자가 되기를 스스로 기약하지 않는 것이니,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선행이 없는데 복을 비는 행위는, 가령 사람의 입장으로 사람의 말을 들어봐도 관용을 베풀 수 없는데, 하물며 편애가 없는 천도는 어떠하겠는가. 선하지 못한 짓을 하면서 날마다 부족하게 여겼던 자도 오히려 경신일 하룻밤에 겸연쩍게 불선했던 행동을 가릴 만하다. 굽어서는 스스로 그 마음을 속이고 우러러는 하늘을 속이려고 하니, 지혜롭지 않음을 많이 본다. 《대학전(大學傳)》에 이르기를, ‘열 개의 눈이 보는 바요, 열 개의 손이 가리키는 바이다.’라고 하였으니, 홀로 가만히 있을 때에도 남을 속일 수 없거늘, 하물며 하늘을 속일 수 있겠는가.

  돌아보면, 내가 관례(冠禮)를 지낸 지도 이제 6년이나 되었다. 처신에 허물이 많고 안으로 살펴서 꺼림칙한 점이 있으니, 복이 이르지 않음도 참으로 마땅한 바요, 재앙이 혹독하지 않음도 다행히 면하였다. 그래도 통렬하게 자신을 개혁하지 않고, 도리어 미적거리며 세속의 흐름을 따르고자 하였으니, 이는 실로 재앙을 즐거워하고 허물을 꾸며댄 셈이다. 《시경》에, ‘화락한 군자는 신명이 위로한다.[愷悌君子, 神明所勞.]’라고 하였다. 지나간 일은 간언할 수 없거니와 지금부터 새로워지더라도 선행을 하기 충분하니, 어찌 삼시충이 내게 복수할까 두려워하겠는가.” 하고 이를 통해 붓으로 기록하여 경계하는 바이다.

國俗每於歲窮, 會守庚申之夜, 達朝不寐. 言人有三尸, 乘其方睡, 輒以其人一歲之所爲, 上復于帝, 不善者, 卽降之禍焉. 苟少睡者, 必將受殃, 相率而守之. 今年十二月再旬後四日, 實惟其夕, 友人李生, 於是約同心輩十數人, 咸集于紺宇, 其博奕酒食. 凡所以禦睡魔之具, 莫不畢張, 擧斝相屬, 嬉笑驩譁, 不覺軆自疲而神已勞也, 旣曙而止, 皆惘然若有失也. 余於是, 悟於心而語於口曰: “噫, 殃慶之至, 各以其類. 天地神祗, 昭布森列, 當所報施, 詎有待於三尸乎? 苟自爲善, 雖使三尸每夜而訴之, 其如我何? 苟爲不善, 雖終歲不眠, 無所逃禍矣, 安有一夜不眠, 而可免一歲所行之不善之罪耶? 不能修善於平日, 而乃要僥倖於一時, 是自處其身於有罪之地, 而不以君子自期也. 惑之甚矣. 無善而祝福, 借使以人聽人, 不可回容, 矧伊天道無親乎? 爲不善曾日不足者, 猶足厭然掩之於一庚申之夜, 俯自欺其心, 仰欲欺乎天, 多見其不智也. 傳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幽獨之中, 尙不得以欺人, 况可得以欺天乎? 顧余自旣冠之年已六載于玆矣, 行己多尤, 內省有疚, 福之不臻, 誠所宜也, 殃之不酷, 幸而免也, 不爲之痛自改革, 反欲因循以從於流俗, 是實樂禍而文過也. 《詩》云: ‘愷悌君子, 神明所勞.’ 往者, 不可以諫, 自今新之, 亦足爲善, 何懼乎三尸之讐余乎?” 因筆以䂓焉.

  징글벨이 울리는 12월이다. 겨울이 되면 아이들은 기대감으로 가득찬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시적 착한 아이가 된다. 부모님들 훈육도 매우 쉬워진다. 사실 유럽에는 나쁜 아이를 잡아간다는 '크럼푸스' 전설도 있지만, 산타 문화가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이 무서운 존재는 생략되었다. 크리스마스 풍속과 비슷하게, 조선에서는 악행을 숨기기 위해 밤을 새는 풍속이 있었다. 그것이 경신수야(庚申守夜), 혹은 수경신(守庚申)이다. 

  이는 본디 도가의 술법 중 하나이다. 사람 몸에는 삼시충(三尸蟲)이라는 세 마리의 벌레가 있는데, 이들이 인간의 죄를 기록하여 옥황상제에게 고하고 이에 따라 수명이 깎이는데, 삼시충들이 사람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경신일(庚申日)에 밤을 새우면 삼시충이 올라가지 못하여 수명이 늘어난다고 여겼다. 한대(漢代) 음장생(陰長生)이란 이는 수경신을 해서 삼시충을 없애야 내단술을 익힐 수 있다고 하였고,*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는 수경신을 3번 하면 삼시충이 복종하고, 7번 하면 박멸된다** 고 하였다. 그래서 당대(唐代) 유종원(柳宗元)은 〈삼시충을 꾸짖는 글[罵尸蟲文]〉에서 “이 벌레가 정말로 그러한 짓을 한다면, 상제는 반드시 그들을 죽여 아래 세상에 던져 그 무리를 멸망시킨 후에야 상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상제마저 은근히 책망하였다.

*《金碧五相類參同契》 人要修養,先守庚申,除其三蟲,方可煆煉精津,合大藥。鉛汞相制,不飛而伏,龍虎相降,五臟眞氣成,下元生沖和之氣。

**七守庚申三尸滅,三守庚申三尸伏。

***《唐柳河東集》 吾意斯蟲若果爲是,則帝必將怒而戮之,投於下土,以殄其類,俾夫人鹹得安其性命,而苛慝不作,然後爲帝也。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려사》〈세가〉의 1265년(원종6)에 “태자가 밤새 잔치를 열고 풍악을 울렸는데, 당시 나라의 풍속에서는 도가(道家)의 말에 따라 이 날이 되면 반드시 모여 마시면서 밤을 새웠고, 이것을 수경신(守庚申)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최초이다. 조선시대 중종 28년(1533) 11월 22일 기사에는 태종 때부터 수경신(守庚申)을 했고, 성종까지도 지속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이 문화는 고려 때부터 지속되어 조선까지도 행해졌음이 추정 가능하다. 다만 《조선왕조실록》을 살펴보면 경신일에 밤을 새었다는 내용은 모두 11월과 12월에 몰려있다. 따라서 궁중에서는 두 달마다 돌아오는 모든 경신날이 아닌 동짓달과 섣달의 경신일에 밤을 샜던 것으로 파악된다. 후대로 갈수록 왕이 경신일을 지키며 잔치를 벌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상소가 자주 올라왔고, 결국 1759년(영조35)에 이르러서는 경신일에 촛불을 올리며 밤새는 풍속을 모두 그만두게 하였다. 이로 인해 궁중의 경신일 철야 모습은 섣달 제야에서만 볼 수 있게 되었다.**김유진(2017), 「조선의 밤(夜)문화와 철야풍속(徹夜風俗)」, 『서울민속학』4, 56-61쪽. 

  춥고 긴 겨울밤을 지새는 데는 술만 한 것이 없지만 술은 숙취를 안겨주어, 원래 취지와 완전 상반된다. 수양을 위해서라면 맑은 정신으로 밤을 새워야 하는데 반대로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밤을 새면 그것이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또한 하룻밤 밤샘으로 1년의 죄과가 사라지면 이것은 하늘을 속이는 짓이 아니겠는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몸 안의 벌레가 상제에게 고하는 죄가 아니라, 양심을 속이는 부끄러움이었다. 원래의 엄숙한 수행법이 면피성 술판으로 변질된 모습을 보고 조극선은 《대학》의 ‘신독(愼獨)’이야말로 진정한 수경신의 정신이라고 여겨, 이러한 점을 통렬하게 지적하였다. 

  산타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 부모님의 말을 잘 들어야 하고, 상제에게 좋은 결과를 받으려면 선행을 많이 해야 한다. 고작 하룻밤 밤샘이나 며칠 떼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산타가 선물을 주거나 삼시충이 나의 악행을 고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요행수일 뿐이다. 며칠 뒤면 크리스마스이다. 1년의 마지막을 음주가무로 낭비하기보다, 함께 지낸 이들과 기쁘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면서 한 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기운찬 병오년을 맞이하기를 기원한다.  

글쓴이 이도현
한국고전번역원 번역위원

경신일에 밤을 새우는 도교신앙. 경신수야 · 수경신.

내용 요약
음성 재생

경신신앙(庚申信仰)은 경신일에 밤을 새우는 도교 신앙이다. 수경신(守庚申), 수삼시(守三尸)라고도 한다. 경신일이 되면 사람 몸에 기생하는 삼시충(三尸蟲)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에게 사람의 죄과를 보고한다. 상제는 죄과에 따라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이에 경신일 밤에는 삼시충이 상제에게 죄를 고해바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신신앙은 섣달 그믐밤에 집안에 불을 환히 밝히고 밤새 잠을 자지 않는 수세(守歲) 풍습으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도교 풍습은 불교풍습에 흡수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내려온 것이 특징이다.

정의

경신일에 밤을 새우는 도교신앙. 경신수야 · 수경신.

내용

60일에 한번씩 돌아오는 경신일이 되면, 형체 없이 사람의 몸에 기생하고 있던 삼시(三尸) 또는 삼시충(三尸蟲)이 사람이 잠든 사이에 몸 밖으로 빠져나가 상제(上帝)에게 그 동안의 죄과를 낱낱이 고해바쳐 수명을 단축시킨다고 여기는 가운데, 이를 막아 천수(天壽)주1를 다하려는 도교적인 장생법의 하나이다. 도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 120년에 해당하는 2주갑(二周甲)의 수명을 부여받으나, 살면서 저지르는 악행의 정도에 따라 수명이 단축되어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고 본다. 삼시는 바로 사람이 저지른 죄상을 상제에게 보고하여 300일에서 3일까지의 수명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에, 경신일 밤에는 자지 않고 삼시가 상제에게 고해바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습을 사람들은 수경신(守庚申) 또는 수삼시(守三尸)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관습을 기록하고 있는 중국문헌으로는 4세기의 『포박자(抱朴子)』주2 및 도교 경전들이 있고, 『운급칠첨(雲笈七籤)』 · 『태평어람(太平御覽)』주3 등의 유서(類書)에도 다수 인용되어 있다. 경신신앙이 민간에 널리 퍼져서 수경신의 여러 가지 방법이 나타나고 축제적인 행사의 성격을 띠게 된 것은 송나라 때에 이르러서부터였다. 이 때에는 수경신의 행사가 불교와 습합(習合)되어 밤을 지새울 때에는 불경인 『원각경(圓覺經)』이 독송되었다고 한다.

우리 나라의 문헌으로는 『고려사』 · 「용비어천가」, 『조선왕조실록』 등에 이런 관습이 나타나 있다. 고려 원종 6년인 1265년 4월 경신일에 태자가 밤새워 연회를 베풀고 술 마시며 자지 않았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문헌에 나타난 가장 오랜 경신신앙의 기록이다. 당시 고려의 일반적 풍습이 경신일이 올 때마다 반드시 술 마시며 밤을 지새웠다고 하는 것을 보면, 고려의 상 · 하층을 막론하고 수경신하는 습속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궁중에서도 축제적인 경신수야주4의 행사가 계속 행해져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행사는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계승되었고 그 규모와 내용은 더욱 확대되어 국왕까지도 참석하기에 이르렀다. 태조 · 태종은 물론, 세종 · 세조도 이를 행하였으며 성종도 때때로 수경신을 행하였다.

『성종실록』에는 경신수야의 연회 규모가 커지면서 유신(儒臣)들의 반대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궁중에서 야밤중에 천기(賤妓)주5와 악공(樂工)주6 등의 남녀가 뒤섞여 풍기가 문란하고, 밤을 새우면 왕의 건강이 좋지 않게 된다는 것이며, 또한 액땜주7의 수단으로 행하는 수경신은 미신이며 삼시설(三尸說)은 황당무계하다는 것이다. 1486년(성종 17) 11월 사헌부의 이계남(李季男)이 간언하였고, 1491년(성종 21) 12월 대사헌 이계동(李季同)이 경신회의 폐지를 간하였는데, 성종은 전대부터 내려온 유풍이므로 폐지할 수는 없고, 다만 몇 가지 고칠 점이 있으면 알맞게 조정하라고 하였다.

연산군 때도 이 행사는 계속되어 1497년(연산군 3) 11월 친히 승정원에 술 · 안주 등의 각종 물품들을 하사하여 수경신을 권하였고, 1506년 12월 조정의 대신들을 모아 밤을 새우면서 시를 지어 바치도록 하였다. 이에 대신들은 계속 반대의 뜻을 표명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렇듯 경신신앙은 조선시대의 궁중에서 계속적으로 지켜져 내려왔으나, 1759년(영조 35)부터는 연회를 없애고 대신 등불을 밝히고 근신하면서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이런 관습은 궁중에서뿐만 아니라 일반 민간에서도 널리 행해졌는데, 연회를 하면서 밤을 새우는 것이 아니라 등촉을 대낮같이 밝혀서 철야하는 것이 궁중과 다른 점이었다.

한편, 이런 풍습과 유사한 형태로 조왕신앙(竈王信仰), 즉 부뚜막신에 대한 신앙이 있는데 『동국세시기』에는 이를 경신신앙의 유풍이라고 하였다. 조왕신앙은 조왕신이 제야(除夜)주8에 승천하여 상제에게 인간의 죄상을 보고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하여 섣달 그믐날 밤에 대낮같이 등불을 켜놓고 밤을 새워야 한다는 신앙이다. 조왕신앙은 경신신앙과 혼동되기도 한다. 『조왕경(竈王經)』주9의 간행으로 인하여 경신신앙은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또한, 섣달 그믐날 밤에 방 · 마루 · 부엌 · 다락 · 뒷간 · 외양간 등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밤새도록 자지 않는 풍습을 수세(守歲)라고 부르는데 경신신앙의 유풍으로 여겨지고 있다. 즉, 경신수야의 풍습이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지새우게 되어 수세로 바뀌어졌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아직까지도 이날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고 하여 윷놀이 · 음주 · 노름 등으로 애써 잠을 쫓으면서 새해를 맞이한다.

시왕신앙(十王信仰) · 산신신앙(山神信仰) · 칠성신앙(七星信仰) 등과 함께 도교적인 관습이면서도 우리 나라의 경신신앙은 불교의 신앙체계와 서로 습합되지 않은 채 고려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는 다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
『성종실록』
『연산군일기』
『한국도교사상연구』(차주환, 서울대학교한국문화연구소, 1978)
『한국민속대관』 4―세시풍속·전승놀이편―(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81)

주석

주1
타고난 수명. 우리말샘
주2

중국 진나라 건무(建武) 원년(317)에 갈홍이 지은 도가서(道家書). 총 70편으로, 내편(內篇)에는 도교 사상이 체계적으로 논술되어 있고, 외편(外篇)에는 유교적 정치론으로 정치나 행정에 관한 일의 이해득실ㆍ인사(人事)의 선악 따위가 논술되어 있다. 8권. 우리말샘

주3

중국 송나라 때에, 이방(李昉) 등이 황제의 명에 따라 지은 백과사전. 고금의 사실을 널리 옛날 책 따위에서 구하고 1,860종의 서적으로부터 발췌하여 형법(刑法), 예악(禮樂), 의식(儀式) 따위의 55개 부문으로 분류하여 기술하였다. 977~983년에 간행되었다. 1,000권. 우리말샘

주4

섣달 중의 경신에 해당하는 날 밤에 밤을 새우는 일. 도교에서 나온 풍습으로, 복을 얻는다 하여 행한다. 우리말샘

주5

천한 기생. 우리말샘
주6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 우리말샘
주7

앞으로 닥쳐올 액을 다른 가벼운 곤란으로 미리 겪음으로써 무사히 넘김. 우리말샘

관련 항목

삼시 도교 개념 인체 내에서 수명 · 질병 · 욕망 등을 좌우하는 세 가지 벌레를 가리키는 도교용어.

상제 유교 개념 초인간적인 지고무상의 지위를 가진 천신.

도교 도교 개념 신선사상을 기반으로 노장사상 · 유교 · 불교와 여러 신앙 요소들을 받아 들여 형성된 종교.

원각경 불교 문헌 우리나라 대승불교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

고려사 고려시대사 문헌 국가문화유산 조선 전기의 문신, 김종서 · 정인지 · 이선제 등이 왕명으로 고려시대 전반에 관한 내용을 정리하여 편찬한 역사서.

용비어천가 고전시가 작품 조선 세종 때 선조인 목조(穆祖)에서 태종(太宗)에 이르는 여섯 대의 행적을 노래한 서사시.

조선왕조실록 조선시대사 문헌 조선시대 제1대 왕 태조로부터 제25대 왕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

집필자
차주환(전 서울대학교, 중문학)

수경신(庚申守夜)

 도교의 장생법과 司過神의 신앙에서 출발된 행사 중에서 경신일에 행하는 일들이 있다. 그 가운데서 守庚申 또는 庚申守夜가 가장 널리 행해졌다. 경신일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하룻밤을 뜬 눈으로 지새는 수경신의 습속은, 도교에서 주장하는, 일종의 눈에 보이지 않는 벌레인 三尸의 활동을 약화 또는 절멸시켜야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설에 따라, 각 개인에 주어진 2周甲 120년의 수명이 단축되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막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삼시충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체가 없는 괴물로, 인체 내에 기생하면서 사람의 죄과를 빠짐없이 살펴서 60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경신일 밤에 宿主가 잠든 사이에 그 몸에서 빠져나가 천상의 상제에게 정례적인 보고를 하고 돌아온다는 것이다. 그 경신일 밤에 자지 않고 뜬눈으로 새우면 삼시충이 상제에게 죄과를 보고하지 못하고 만다는 생각에서 수경신의 습속이 시작되었고 그것이 결국은 축제적인 행사로 변모되기에 이르렀다. 수경신은 ‘守三尸’라고도 한다.

 수경신은 고려시대부터 민간과 궁중에 두루 유행하였고, 조선시대에 내려와서는 건국 초기부터 궁중에서 규모를 갖추어 행하여졌다.≪龍飛御天歌≫제78장 大注에 “경신일 밤에 태조가 판삼사사 鄭道傳 등 여러 훈신들을 불러 술을 차리고 풍악을 잡혔다”라는 기사가 있고, 小注에는 삼시와 경신수야에 관한 비교적 상세한 해설과 당시의 경신수야하는 나라 풍속에 대한 설명이 들어 있다. 조정에서 수경신이 논란된 기록은≪成宗實錄≫에 처음 보인다. 성종 때에는 경신일에 수야하는 행사의 규모가 커져서 임금과 신하 사이에 경신수야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던 것이라 여겨진다. 성종 17년(1486) 11월에 경신수야의 행사를 3일 앞두고 사헌부 장령이 임금에게 간했다.

사헌부 장령 李季南이 와서 아뢰기를, ‘신 등이 듣자옵기에는 19일 밤에 종친을 향연하고 수경신을 하시리라고 합니다. 한밤중에 종친들이 妓工의 무리와 궁금 엄밀한 곳에서 남녀가 뒤섞여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또 종친 등이 혹 술취함으로 해서 예를 어기는 자가 생길 것이고, 하물며 밤을 새우며 歡宴하고 성체가 피로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경신일 밤에 종친을 접견함은 오늘날만의 일은 아니다. 너희들은 이것을 가지고 流連荒妄하다고 하는 거냐’라고 했다. 계남이 이르기를, ‘신 등은 전하를 황망하시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엄한에 성체를 피로하게 할까 두려워서이고 또 남녀가 뒤섞여 논다는 것이 궁금의 엄밀한 체통을 자못 손상시키게 되기 때문에 아뢰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임금이 이르기를, ‘조종조에는 있던 일이니 다시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成宗實錄≫권 197, 성종 17년 11월 정사).

 그 다음날에도 대사헌 李瓊仝 등이 箚子를 올려 역시 2일 후에 있을 경신수야의 행사를 세조 때의 고사를 들어가며 중지할 것을 간했으나 임금은 여전히 들어주지 않았다. 성종은 경신일 밤에 종친과 조정 관원들에게 仁陽殿 內外庭에 妓樂을 곁들인 대규모의 주연을 베풀고, 양사의 반복되는 간쟁을 물리치면서 잔치를 치렀다. 양사의 合疏는 임금의 경신수야가 불가한 이유 7가지를 늘어놓고서, 이미 차려 놓고 시작한 연회의 중지를 간청하였는데, 거기에는 삼시에 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성종은, “불교가 근리한 데도 나는 그것조차 믿지 않는데 하물며 삼시를 겁내서 수야하겠는냐. 다만 종친을 친근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지 액을 피하고자 해서가 아니다”라고 대답하고, 대사헌 등에게 殿庭으로 들어가서 술을 마시라고 명했다. 이날 마침 천둥이 치고 비가 왔는데 성종과 간쟁하는 신하들 사이에 天變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기까지 하였다. 성종 22년(1491)에도 대사헌 이경동 등의 상서에서 경신수야의 행사를 포함한 각종 환락연회의 폐풍을 고치고 遊逸하지 말기를 간청하였으나, 성종은 경신일의 행사는 그 유래가 오래되었으므로 폐지할 수 없고 그 밖의 몇 가지는 조정할 데가 있으면 고치도록 하라고 응수하였다.

 성종의 뒤를 이은 연산군도 궁중에서의 경신수야 행사를 계속하였다. 연산군 3년(1497) 11월 경신일의 실록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주효, 호피, 녹피, 각궁 등의 물건을 승정원에 내리고 이르기를, ‘오늘은 경신일이니 함께 수야하고 장난삼아 노름들이나 하라’고 했다. 대사헌 李諿 등이 아뢰기를, ‘임금에게는 장난이란 없는 것입니다. 수경신하는 놀이는 閭巷의 豪俠兒들이 숭상하는 것입니다. 이제 승정원에서 그것을 본뜨게 하시다니, 금중은 놀이하는 곳이 아니옵고 측근의 신하들은 도박하는 부류들이 아닙니다. 그만두도록 명하십시오’라고 했으나 들어 주지 않았다(≪燕山君日記≫권 28, 연산군 3년 11월 경신).

 연산군 11년 12월 경신일에는 승정원 예문관, 병조의 都摠府 당상, 密威廳 당상에게 명해 빈청에 모여 수야하도록 하고 御製絶句와 율시를 내려 그것들에 和作하여 바치도록 하였다. 이렇듯 경신수야의 습속은 조선시대 궁중행락의 하나로 지켜져 내려왔다. 전해지기로는 영조 때에 내려와 비로소 궁중에서의 경신수야 행사가 폐지되었다.

‘하늘 문 열리는 날’ 밤샘 수련… 참뜻 깨닫는다

경신수련 ‘고수회’

우리 조상들은 경신(庚申)일을 소중한 날로 여겼다고 한다. 육십갑자를 따져 생긴 경신일은 일년에 여섯 번 찾아온다. 도가나 선도(仙道), 민속신앙에서는 경신일을 ‘하늘의 문이 열리는 날’로 여기고 밤새워 수련한다. 올해 세 번째 경신일인 4일 새벽 경기 포천의 호수전원마을 한 수련가옥에서 경신 수련을 하는 고수회(회장 이규임 선사)를 찾았다. 경신일 전날인 3일 밤 11시를 넘기자 삼삼오오 회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0명 정도인 회원은 5월 경신일에 이어 두 달 만에 수련장을 찾았다. 연령대는 주로 50∼60대, 직업은 대학교수, 시인, 주부 등으로 다양하다. 

촛불을 켜 놓고 어둠 속에 앉아 수련하는 모습.
◆경신수련이란

일반적으로 육경신(六庚申)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일 년에 여섯 번 찾아오는 경신일을 놓치지 않고 그 때마다 한숨도 자지 않고 수련한다는 뜻이다. 육경신은 경신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수경신(守庚申)으로도 불린다. 단 한순간도 눈을 붙이지 않고 영기 운동을 하면서 정신수양을 하는 것이다. 육경신을 한 번 지킬 때마다 새로이 깨침을 얻고 혜안이 열리고, 수련하면 할수록 초인이 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전해온다. 36년 수행하면 천상 상제를 접할 수 있고, 상제의 참뜻을 전달받고 조화의 능력을 얻어 초인간적인 진인(眞人)이 되며, 인류를 평화로 이끌어줄 신인(神人)이 된다고도 한다.

이규임 지도선사는 “경신일은 하늘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들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기 때문에 이날 만큼은 영계 체험을 하기 쉬운 날”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종교적인 설명을 하면 자칫 신비주의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과학에 근거해 우주의 기파가 쉽게 사람과 통할 수 있는 날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4일 오전 0시30분 “수련을 시작합니다”란 지도선사의 말과 함께 경신 수련이 시작됐다. 육경신에 대한 설명을 들은 회원들은 이어 구서(九誓·아홉가지 맹세)에 따라 절을 하고 내용을 따라 읽으며 수련으로 몰입해 갔다. 구서는 인간의 도리를 아홉가지로 요약한 맹세문이다. 구서에는 효(孝), 우(友), 신(信), 충(忠), 손(遜), 지(知), 용(勇), 렴(廉), 의(義)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 모두가 천서원(天誓願)을 읽고 선서를 했다.

“나는 경천숭조(敬天崇祖)하고 윤리와 도덕을 지켜 부모에 효도하고 가정에 충실하며 국가와 사회에 모범이 될 수 있는 인간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며 선도(仙道)를 성심수행하여 중생제도(衆生濟度)에 헌신할 것을 천서원하오니 강림(降臨)하시어 천도를 깨우쳐주옵소서.”

구서(九誓)를 읽은 뒤 큰절을 하는 수련자들.
◆건강을 위한 기수련에 초점

영적인 체험을 중시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의 경신 수련은 건강 증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방법도 간단하다. 본래는 결가부좌 상태에서 수련해야 하지만 반가부좌를 하거나 개인의 체력 조건에 따라 의자에 앉거나 누워서 수련하기도 한다. 두 손과 팔을 하늘과 땅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우주의 기운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반복한다.

24시간 동안 단 한순간이라도 졸면 무효가 되지만, 24시간 쉬지 않고 행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도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두 시간 팔을 움직여 하늘의 기운을 모으는 기수련을 마친 후 휴식을 취했다가 다시 수련하기를 반복했다. 이렇게 꼬박 24시간 수련과 휴식이 이어졌다. 휴식 시간에는 편한 자세에서 다과도 함께하며 담소해도 된다. 단, 잠을 자면 도로아미타불이다. 분심과 잡념, 욕심을 버리고 의식까지 버릴 수 있으면 영적인 체험도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선사는 “이 수련은 믿음의 세계가 아니라 과학의 세계에 있기 때문에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다“면서 “기파가 8∼12헤르츠(㎐) 사이의 명상뇌파를 유지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수련을 하면서 자기를 성찰하는 게 중요하고, 의식을 버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영험한 세계도 체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온 50대 후반의 한 여성은 “몇 년째 경신일을 지켜 밤샘 수련을 하다보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고 말했다. 가톨릭 신앙을 갖고 있으면서 수련에 참가한 조한석(59)씨도 “하루를 꼬박 지새웠지만 피곤하지 않다”면서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맑아졌다”고 소감을 전했다. 포천=신동주 기자 ranger@segye.com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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