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담낭암·담도암] 6개월 선고받고 24년 6개월을 살고 있습니다

[남성, 담낭암·담도암] 6개월 선고받고 24년 6개월을 살고 있습니다

그해 6월은 유난히도 뜨거웠다. 나는 담낭암 수술에 이어 3년 만에 또 두 번째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는 날 이기도 했다. 

"왜 내게 이런 시련의 고통을 두 번씩이나 겪게 하는 것인가"

뜨거운 날씨도, 어수선한 나라 상황도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임신 9개월의 만삭의 아내를 두고 죽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만삭의 아내를 뒤로하고 수술실로 끌려 들어가는 나의 두눈에 눈물이 흘렀다. 수술실에서 산소 호흡기에 가쁜 호흡을 의지하며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듯 희미한 의식 속에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아내와 뱃속의 아이가 걱정됐다.
또 다시 눈물이 흐르며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상황이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큰 형님께서는 고향으로 급히 내려와 가족 묘지를 통합해 조성했다는 후일담이 있었다.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고 판단하셨다고 했다.

그런 큰 형님께선 대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48회의 항암을 끝으로 당신께서 조성해 놓으신 가족묘지에 먼저 잠들에 계신다. 가슴이 먹먹해 온다.

찢어질 듯한 통증과 진통제와 복대 없인 한 발자욱도 걷지 못하는 서른셋의 예비 아빠의 절규. 날이 갈수록 몸무게는 빠지고 야위어만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담도암이란 외과적 수술이 방대 했다. 수술실로 들어간 뒤 12시간을 넘겨 수술을 했다. 위 2/3 절제, 십이지장 전 적출, 소장 2/3 적출, 췌장 머리 부분 절제, 담도 등 담낭은 3년 전에 적출. 의식을 마취시켜 난도질을 해댔으니 정상일 리가 없지 않는가.

아이가 태어났다. 퇴원후 보름만의 일이였다. 복대를 하고 진통제를 복용하고 힘없는 노인의 등굽은 허리를 하고서 아이를 봤다.

눈물이 또 났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핏덩이 아이를 두고 이대로 죽을수는 없었다. 산후조리도 하지 못한채 아내는 나를 데리고 서울 병원으로 진료를 보러 가야만 했다. 양가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아들은 병원에 맡기고 갔다. 꼭 살아서 진정 아빠가 되리라 다짐했다.

걸어야 했다. 30m, 50m부터 시작했다. 좋은 숲을 찾아 멀리 날설수는 없었다. 체력이 바닥을 치고있으니 말이다. 가까운 순천 죽도봉 공원을 찾았다. 어느 노부부 께서 손을잡고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젊은 엄마는 아이의 손을잡고 연신 웃으며 걷고 있다.

어느덧 9월도 중순을 넘기고 있었다. 뜨겁고 후텁지근한 무더위도 한풀 꺽이고 솔잎 매미 울음 소리가 요란히 귓전을 때렸다. 

예전엔 소음으로 들렸던 매미 울음소리가 아름다운 멜로디로 들렸다.
젊은 엄마와 아장아장 걷고있는 모습에서 일년 후의 나를 봤다.
내 아들도 곧 걸을 수 있을 테니까.

늙은 노부부의 맞잡고 걷는 다소 불편한 걸음 걸이에서 나의 미래를 봤다.
나도 반드시 암을 극복하고 저들이 지금 느끼고 있을 행복감을 맛보리라 다짐했다.

숨가쁘게 여름이가고 가을이 그리고 겨울이 지나니 또 봄이 왔다. 체력은 조금씩 좋아지는 듯 하나 가끔씩 오는 통증은 여전하다. 숨통을 막을 듯한 통증 앞에선 아내도 별 도리가 없었다. 그저 물 한 컵 들고 호흡이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물컵을 내게 건네고 가만히 등을 쓰다듬어 줄 뿐 육신의 아픔을 대신할 수 없음이 가족이 느끼는 미안함일수도 있겠다 싶다.

한두시간 운전대를 잡아도 될 정도의 체력이 돌아왔다. 나는 순천 조계산 편백숲과 광양의 백운산 휴양림을 오가며 매일매일 기본에 충실했다. 맨발로 걷고 호흡하고 숨이 차면 주저앉아 아들을 생각했다. 통증은 와도 나의 입가엔 미소 한가득.

다음 해, 9월 어느날
그날도 나는 1시간을 운전해 조계산 송광사를 찾았다. 어느 아주머니께서 나의 사정을 듣고 조계산 숲속에서 한봉 벌꿀을 치는 사장님을 소개했다. 숲에서 6개월 정도 한봉벌통을 관리하며 요양을 제안했다. 나는 흔쾌히 응했다. 하루종일 숲에서 지낼수가 있었다. 

이날부터 숲에서의 일상은 시작되었다. 숲에서 먹고 숲길을 걷고 숲에서 이야기 하고숲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숲에서 잠들고 숲에서 아침을 맞이한 시간이 어느덪 약속한 6개월이 지나 그해 추석날이 되었다. 

나의건강은 몰라보게 회복되었다. 암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봤다. 숲속 생활을 정리하고 아파트로 돌아왔다. 

지금 나는 6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넘어 24년을 훌쩍 넘겨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숲으로 소풍가서 행복 스토리를 만들고 그 행복 에너지로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간청한다.

감사합니다.

[남성, 담낭암·담도암] 6개월 선고받고 24년 6개월을 살고 있습니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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