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중착별(甕中捉鱉)에 대하여
1) 甕中捉鼈 옹중착별 독 안에서 자라 잡기라는 뜻으로, 틀림없이 파악(把握)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2) 독 속에 있는 자라를 잡는 것. 손이 가면 곧 잡는다는 말. 손쉽게 잡을 수 있다는 것.3) 甕中捉鼈 옹중착별 독 안에서 자라 잡기라는 뜻으로, 틀림없이 파악(把握)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옹중착별에 대한 사자성어에 대한 고문 자료를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누락되거나 완전한 사료가 없는 듯하다.
성루에는 한성(漢城)이란 푯말이 붙어있는데, 안내원은 아주 친절하게 성의 구조가 옹중착별(甕中捉鱉)이라고 설명한다.‘독 안에 든 자라잡기’란 뜻이다. 성루에 올라보니 과연 서쪽으로 난 성문 밖에는 흙으로 자그마한 옹성이 쳐져 있다. 적이 일단 저 옹성을 넘어 들어오면 꼼짝없이 옹벽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이다. 서쪽으로 쳐진 옹벽은 한족(漢族)이 유목민족으로부터 이곳 바리쿤 초원을 지키기 위해 만든 시설이라는 증거인 셈이다. 성문밖에는 누런 밀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이 득승문과 성벽은 중가리아(준갈)분지의 난을 평정하고 돌아올 때 사용한 전용문이란 해설도 붙어 있다. 중가리아분지란 알타이 산과 천산 사이의 커다란 분지로 외족과 한족 사이에 늘 전란이 많았던 지역이다. 전승의 깃발을 높이하고 기세도 등등하게 이 문을 들어설 때, 많은 백성과 병사들이 성벽에 올라 환호했을 성벽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흙덩이만이 남아있다. 성 밖 밀밭에서 풀을 뜯는 나귀만이 나그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서 말하는 현사로는 백이와 숙제가 있는데, 고죽의 임금자리를 사퇴하고는 수양산에서 굶어 죽었고, 그들의 시체는 아무도 장사를 지내 주지 않았다. 포초라는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꾸미고 세상을 비난하다가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신도적은 임금을 간하다가 들어주지 않자 돌을 지고 스스로 황하에 몸을 던져 물고기와 자라의 밥이 되었다. 개자추는 지극히 충성을 다해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문공에게 먹였으나, 뒤에 문공이 그를 배반하자, 그는 노하여 진나라를 떠나 살다 나무를 껴안은 채 타죽었다. 미생은 여자와 다리 밑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으나 여자가 오지 않자 물이 불어도 떠나지 않고 있다가 다리 기둥을 끌어안은 채 죽어야만 했다. 이 네 사람은 잡기 위해 매달아놓은 개나, 제물로 강물에 던져진 돼지나 표주박을 들고 구걸을 하러 다니는 자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모두가 자기의 명분에 얽매이어 죽음을 가벼이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 수명을 보양하려 하지 않은 자들이다.
세상에서 말하는 충신으로는 비간이나 오자서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나 오자서는 처형을 당해 시체가 강물에 던져졌고, 비간은 가슴을 찢기어 심장이 드러내어졌다. 이 두 사람은 천하에서 말하는 충신들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위에서부터 자서나 비간까지 모두 귀하다고 할 만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네가 나를 설득시키는 방법으로 내게 귀신이야기를 한다면 내가 알 수 없을지 모를 것이다. 그러나 네가 사람에 관한 일로써 이야기한다면 여기서 더 이상 벗어나지 못할 것이니, 그것들은 모두 내가 들어 알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옹독취보(甕櫝聚寶)
보물을 담아둔 항아리와 궤짝
甕 : 항아리 옹(瓦/13)
櫝 : 함 독(木/15)
聚 : 모을 취(耳/8)
寶 : 보배 보(宀/17)
명나라 오정한(吳廷翰)의 책상 옆에는 나무로 짠 궤 하나와 옹기 하나가 놓여 있었다. 책을 읽다가 의혹이 생기거나 생각이 떠오르면 얼른 적어 그 안에 담아 두었다.
역사책을 읽다가 일어난 의문은 항아리 속에 넣고, 경서를 읽다가 떠올린 생각은 궤에 담았다. 각각 상당한 분량이 되자 그는 이를 따로 엮어 책 한 권으로 묶었다. 옹기에 담긴 메모는 '옹기(甕記)'란 책이 되고, 궤에 든 쪽지는 '독기(櫝記)'란 책이 되었다.
중국 역사학자 이평심(李平心)은 오근독서법(五勤讀書法)을 강조했다. 독서에서 다섯 가지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가 꼽은 다섯 가지는 부지런히 읽고(근열독·勤閱讀), 부지런히 초록해 베껴 쓰며(근적록·勤摘錄), 부지런히 외우고(근기심득·勤記心得), 부지런히 분류해서(근분류·勤分類), 부지런히 편집해 정리해두는 것(근편사·勤編寫)이다.
그는 서재와 안방뿐 아니라 부엌과 화장실에까지 메모지가 담긴 작은 그릇을 놓아두었다.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나 활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내용과 만나면 즉시 적어 그릇에 담아 두었다.
그는 이 그릇에 취보합(聚寶盒)이란 이름을 붙였다. 보물을 모아둔 그릇이란 의미다. 일정한 기간마다 그는 이 메모들을 꺼내 분류하고 정리해서 연구 자료로 삼았다. 갑골문과 고대 역사에 관한 수많은 저서가 모두 취보합의 메모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옛사람은 농사를 짓다가도 문득 공부나 문사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면 감나무 잎을 따서 거기에 얼른 적은 뒤 밭두둑 가에 묻어둔 항아리 속에 담아두곤 했다.
이덕무와 박지원은 이 일을 본떠 자신들의 평소 메모를 묶은 비망록 제목을 '앙엽기(盎葉記)'로 달았다. 그 뜻은 동이(盎) 속 잎사귀에 적은 메모라는 뜻이다.
생각은 원래 책상맡보다 화장실이나 침상 위에서 더 활발해진다. 떠오를 때 즉시 잡아두지 않으면 안개처럼 흩어진다. 느닷없이 왔다가 섬광처럼 사라지는 생각을 붙들자면 손 닿는 곳에 메모지와 필기구가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기억보다 메모가 한결 든든하다.
▶️ 甕(독 옹)은 형성문자로 瓮(옹), 罋(옹)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기와 와(瓦; 기와, 질그룻)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雍(옹)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甕(옹)은 ①독(큰 오지그릇이나 질그릇) ②항아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을 통틀어 이르는 말을 옹기(甕器), 옹기와 석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옹석(甕石), 무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히 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매우 튼튼히 둘러싼 것이나 그러한 상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옹성(甕城), 옹기를 구워 내는 가마를 옹요(甕窯), 옹기를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옹장(甕匠), 옹기를 만드는 곳을 옹점(甕店), 옹기를 만드는 원료로 쓰이는 흙을 옹토(甕土), 살림살이에 쓰는 옹기 그릇을 옹산(甕産), 밑바닥을 없앤 독을 묻어서 만든 우물을 옹정(甕井), 실현 가능성이 없는 허황된 계산을 하거나 헛수고로 애만 씀을 이르는 말을 옹산(甕算), 사기로 만든 항아리를 자옹(磁甕), 장독으로 간장이나 된장이나 고추장 따위를 담아 두거나 담그는 독을 장옹(醬甕), 무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히 쌓은 산성이라는 뜻으로 매우 튼튼히 둘러싼 것이나 그러한 상태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철옹성(鐵甕城), 독 안에서 자라 잡기라는 뜻으로 틀림없이 파악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옹중착별(甕中捉鼈), 깨진 항아리의 주둥이로 창을 하고 새끼로 문을 단다는 뜻으로 가난한 집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옹유승추(甕牖繩樞), 독 안의 초파리라는 뜻으로 소견이 좁음을 이르는 말을 옹리혜계(甕裏醯雞), 독장수 셈과 그림의 떡이라는 뜻으로 헛된 생각일 뿐이고 실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옹산화병(甕算畫餠), 쇠로 만든 독처럼 튼튼한 산성이라는 뜻으로 어떤 강한 힘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게 방비나 단결이 강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철옹산성(鐵甕山城), 옹기를 깨뜨려서 친구를 구한다는 말을 파옹구우(破甕救友) 등에 쓰인다.
▶️ 櫝(함 독)은 형성문자로 椟은 간자, 匵은 동자이다. 뜻을 나타내는 나무 목(木: 나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賣(매→독)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櫝(독)은 ①함(나무로 짠 궤) ②신주를 넣어 두는 궤(櫃: 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 ③관(棺) ④음식(飮食)을 차리는 상 ⑤궤(櫃)에 넣어 간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신주를 넣은 독을 덮는 보를 독보(櫝褓), 제사 지낼 때에 주독을 여는 일을 개독(開櫝), 부부의 신주를 한 독 안에 넣음 또는 넣은 그 독을 합독(合櫝), 신주를 모시어 두는 궤를 주독(主櫝), 물건을 넣도록 나무로 네모나게 만든 그릇을 궤독(櫃櫝), 처음에는 곧게 살다가 나중에는 더럽게 된다를 일컫는 말을 선정후독(先貞後櫝) 등에 쓰인다.
▶️ 聚(모을 취)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귀 이(耳; 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取(취)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聚(취)는 ①모으다, 모이다 ②거두어 들이다 ③갖추어지다 ④저축하다, 쌓다 ⑤함께 하다 ⑥무리(모여서 뭉친 한 동아리) ⑦마을, 동네 ⑧저축(貯蓄) ⑨줌(한 주먹으로 쥘 만한 분량) ⑩함께, 다같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을 모(募), 모일 총(叢), 둥글 단(團), 모일 준(寯), 모을 촬(撮), 모일 주(湊), 모일 회(會), 社모일 사(社), 모을 췌(萃), 모을 수(蒐), 모을 축(蓄), 모을 찬(纂), 모을 종(綜), 모을 집(緝), 모을 집(輯), 모을 집(集),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흩을 산(散)이다. 용례로는 모여서 합침 또는 한데 모아 합침을 취합(聚合), 모여들거나 모아들임을 취집(聚集), 군사들을 불러 모아 점명함을 취점(聚點), 굶주리는 백성들을 한 곳에 불러 모아 구제함을 취제(聚濟), 한 가족의 뫼를 한 군데 산에 몰아서 장사하는 일을 취골(聚骨), 군사나 인부들을 불러서 모음을 취군(聚軍), 사람들의)모임과 흩어짐을 아울러 이르는 말을 취산(聚散), 머리를 맞대고 가까이 모여 앉음을 취수(聚首), 장가를 듦이나 아내를 얻음을 취실(聚室), 몰려드는 구름을 취운(聚雲), 두 가지 이상의 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결정형을 취형(聚形), 쌓여서 모임이나 쌓아 모음을 적취(積聚), 어떤 것을 구하여 일정한 곳에 모음을 구취(鳩聚), 한 집안 식구나 친한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한데 모임을 단취(團聚), 널리 구하여 모음을 모취(募聚), 군사를 징발하여 모음을 징취(徵聚), 군사를 훈련시키고 모아 들임을 훈취(訓聚), 생산하여 자재를 모아 저축함을 생취(生聚), 거두어 모음을 수취(收聚), 성곽을 완성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거주하게 하던 일을 완취(完聚), 친구와 헤어진 지가 어느덧 십 년이나 지나감을 일컫는 말을 취산십춘(聚散十春), 모기가 떼지어 나는 소리가 뇌성을 이룬다를 일컫는 말을 취문성뢰(聚蚊成雷), 정신을 가다듬어 한군데에 모음을 일컫는 말을 취정회신(聚情會神) 등에 쓰인다.
▶️ 寶(보배 보)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珤(보)와 동자(同字), 寳(보)의 본자(本字)이다. 寶(보)는 집안에(宀; 갓머리部) 구슬(玉, 王)과, 값비싼 도자기(缶)와 많은 재물(貝)을 두었다는 말에서 집안에 여러 가지 보물을 간직해 두다, 보배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寶자는 '보배'나 '보물'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寶자는 宀(집 면)자와 玉(옥 옥)자, 缶(장군 부)자, 貝(조개 패)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寶자의 갑골문을 보면 宀자와 玉자, 貝자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집안에 보석이나 돈이 많다는 뜻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항아리를 뜻하는 缶자가 더해지게 되었는데, 이는 항아리에 재물이 가득 담겨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寶자는 이렇게 집안에 재물이 가득한 모습으로 그려져 '보배'나 '보물', '진귀한'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寶(보)는 ①보배 ②보물(寶物) ③옥새(玉璽), 도장(圖章) ④돈, 전폐(錢幣) ⑤높임말 ⑥도(道) ⑦보(寶: 특정 목적의 기금 마련를 위한 재단) ⑧진귀(珍貴)한 ⑨보배로 여기다 ⑩귀중(貴重)하게 여기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썩 드물고 귀한 가치 있는 물건을 보물(寶物), 귀중한 물건을 간수하여 두는 곳을 보고(寶庫), 귀중한 재화를 보화(寶貨), 보배로운 칼을 보검(寶劍), 보배로운 책을 보서(寶書), 보배로운 구슬을 보주(寶珠), 흔히 몸치장 할 때 쓰는 몸이 매우 단단하고 광택이 곱고 그 나는 분량이 썩 적은 귀중한 광물이나 아름다운 보배의 옥돌을 보석(寶石), 본보기가 될 만한 일이나 물건이나 본보기가 될 만한 것들을 적은 귀중한 책을 보감(寶鑑), 보배롭고 귀중한 거울을 보경(寶鏡), 보배의 원말로 아주 귀하고 소중한 물건을 보패(寶貝), 인류의 죄를 구속하려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를 보혈(寶血), 훌륭하게 지은 누각을 보루(寶樓), 임금의 나이를 보산(寶算), 임금의 지위를 보위(寶位), 나라에서 나라의 보배로 지정한 물체를 국보(國寶), 임금의 도장인 옥새와 옥보를 어보(御寶), 귀중한 보물을 대보(大寶),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집안의 보물을 가보(家寶), 보배로운 재물을 재보(財寶), 이름난 보물을 명보(名寶), 진귀한 보배를 진보(珍寶), 온갖 보배를 백보(百寶), 네 가지의 보배라는 뜻으로 붓 먹 종이 벼루를 소중하게 이르는 말을 사보(四寶), 보배가 될 만한 좋은 글씨라는 뜻으로 남의 글씨를 높여 이르는 말을 묵보(墨寶), 값비싼 보물이 쉽게 팔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훌륭한 사람은 기량이 크므로 남에게 등용되기 어렵다는 말을 보화난수(寶貨難售), 객지에 있는 보배로운 보물이라는 뜻으로 편지 쓸 때에 객지에 있는 상대자를 높여 쓰는 말을 객중보체(客中寶體), 대대로 집안에 전해지는 보검의 뜻으로 전가는 조상때 부터 대대로 집안에 전해지다의 뜻이고 보도는 보배로운 칼을 일컫는 말을 전가보도(傳家寶刀),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보물을 일컫는 말을 무가지보(無價之寶), 손안에 있는 보옥으로 보배처럼 여기는 사랑하는 자식이나 매우 귀중한 물건을 일컫는 말을 장중보옥(掌中寶玉), 길을 헤매는 나루의 훌륭한 배라는 뜻으로 삶에 가르침을 주는 책을 이르는 말을 미진보벌(迷津寶筏), 한 집안에 대대로 전하여 내려오는 보물을 일컫는 말을 가전지보(家傳之寶),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보옥도 시간에 비하면 보배라고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척벽비보(尺璧非寶), 여러 가지 패물로 몸을 꾸밈 또는 그 단장을 이르는 말을 칠보단장(七寶丹粧) 등에 쓰인다.
관문착적(關門捉賊)
문을 닫아걸고 도적을 포획하라.
關 : 빗장 관(門/11)
門 : 문 문(門/0)
捉 : 잡을 착(扌/7)
賊 : 도둑 적(貝/6)
삼십육계(三十六計) 혼전계(混戰計)
제22계 관문착적(關門捉賊)
문을 닫아 걸고 도적을 잡다.
小敵困之, 剝, 不利有攸往.
세력이 약한 소규모의 적에 대해서는 포위하여 멸망시켜야 한다. 퇴각하게 놓아두면 섬멸하는 데 불리하다.
문을 모두 걸어 잠가 집 안으로 들어온 도적을 잡는 계책이다. 얼마 되지 않는 적을 포위해 잡을 때 사용한다. 적의 행동이 민첩하고 궤사에 능할 때 급히 추격하거나 멀리 쫓아가는 것은 불리하다.
이는 '적이 변화무쌍하게 변할 때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을 지닌 박괘(剝卦)의 '박(剝), 불리유유왕(不利有攸往)' 괘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박(剝)은 단사에 락(落)으로 되어 있다. 벗겨져 떨어져서 나갔다는 뜻이다.
괘상에서 음유가 점차 침식해 들어가 양강의 본질을 변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불리유유왕(不利有攸往)이 이를 말한다. 이는 소인의 세력이 한창 성장했음을 뜻한다. 성급한 행동의 자제를 주문한 것이다.
관문착적 계책은 일단 사정권 안에 적이 들어왔을 때 적의 행동이 민첩하고 궤사에 능할 경우 유연한 방법으로 포획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관문착적은 중국의 민간속어인 관문타구(關門打狗)에서 나왔다. 문을 걸어 잠그고 적을 때려잡는 것을 말한다. 초로정략(草蘆征略) 유병(游兵)에 이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오자병법(吳子兵法) 여사(勵士)의 다음 구절과 기본 취지를 같이한다. '죽을 죄를 짓고 달아난 도적 1명이 광야에 숨어 있을 경우 1,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그를 쫓을지라도 올빼미나 이리처럼 좌고우면하는 효시낭고(梟視狼顧)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가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도적이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해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1명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면 1,000명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다.'
악랄한 적을 만났을 때는 우선 그 퇴로를 차단해 물샐틈없이 포위한 후 일을 도모하라고 충고한 것이다. 병법 차원에서는 적을 깊이 유인해 마치 그물 안의 물고기처럼 만드는 계책이 이에 해당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당나라 말기 '황소(黃巢)의 난' 당시 장안성을 둘러싼 공방전을 들 수 있다.
당희종의 광명 원년(880) 황소의 난으로 인해 혼란에 빠져든 상황에서 당희종은 연일 활쏘기, 격검 놀이, 심지어 음주가무와 노름까지 했다. 특이한 것은 그가 일종의 수학에 해당하는 법산(法算)을 즐겼던 점이다. 물론 머리가 나쁜 그가 수식을 제대로 맞추었을 리 없다.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축국(蹴鞠)과 개싸움인 투계(鬪鷄), 오리경주인 도아(賭鵝) 등이었다. 가장 잘한 것은 격구(擊毬)로 거의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는 궁내 전속 배우 석야저(石野猪)에게 이같이 말한 바 있다., '만일 과거시험에 격구과가 있다면 짐이 능히 장원할 수 있을 것이다!'
석야저가 재치 있게 대답했다. '만일 성군 요순이 채점관인 예부시랑이 되었다면 폐하는 낙방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이해 6월, 신주(信州)에 주둔하고 있던 황소의 대군 내에 전염병이 나돌았다. 전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진해절도사 고변(高騈)의 휘하장수 장린(張璘)이 이를 틈타 진격해왔다.
황소가 사람을 시켜 장린에게 금은보화와 서신을 전하면서 절도사 자리 주선을 애걸했다. 고변이 황소를 유인할 생각으로 짐짓 이를 수락하는 답장을 보냈다.
당시 각 지역의 절도사 휘하 군사들이 회남에 집결해 있었다. 이들이 합세해 칠 경우 황소의 군사는 궤멸될 수밖에 없었다.
고변은 다른 사람이 토벌의 공을 나누어 가질까 우려해 곧 이같이 상주했다. '수고스럽게 다른 지역의 관군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청컨대 모두 철군하도록 조치해 주십시오.'
마침 고변을 천거했던 노휴(盧携)가 재상으로 있었다. 자기 사람인 고변이 대공을 세우면 자신이 그를 천거한 공이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곧 각지의 관군이 본거지로 철군했다.
이 소식을 들은 황소가 환호했다. 곧바로 고변에게 싸움을 청하는 전서(戰書)를 보냈다. 화가 난 고변이 휘하장수 장린에게 진공을 명했다.
이미 무수한 보물을 수중에 넣은 장린이 마지못해 군사를 이끌고 와 싸움에 임했다. 관군의 대패였다. 장린도 전사했다. 진귀한 보물은 모두 황소의 차지가 되었다.
이해 8월, 황소의 대군이 채석(采石)에서 장강을 건넌 뒤 지금의 안휘성 천장현(天長縣)과 강소성 육화현(六和縣)을 포위했다.
이때 고변이 총애하는 도사 여용지(呂用之)가 말했다. '장군은 전에 무수히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만 지금 황소 무리를 진압하지 못해 조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만일 이번마저 대공을 세울 경우 결국 주군을 두렵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되면 스스로 조용히 있고자 해도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지금 상황에서 가장 좋은 계책은 군사를 확고히 장악한 가운데 형세를 관망하며 적절히 대응해 복록을 유지하는 길입니다.'
고변이 이를 받아들여 제장들에게 오직 굳게 지킬 것을 명하면서 황소의 무리를 과대포장한 표문을 올렸다. 60만 명의 반란군이 천장현에 주둔해 있고, 관군과 불과 50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까닭에 함부로 출전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당희종이 그를 질책하는 조서를 보내자 고변은 거듭 '반신불수' 운운의 핑계를 대며 출전이 어렵다는 취지의 표문을 올렸다.
당시 황소는 겨우 15만 명을 자칭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수만 명에 불과하다고 봐야 한다. 설령 15만 명으로 간주할지라도 고변이 보고한 숫자는 무려 4배나 늘였던 셈이다.
당시 강서초토사 조전성(曹全晟)이 이끄는 관군은 6,000명에 불과했으나 장병 모두 죽기 살기로 분전한 까닭에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워낙 중과부적인 까닭에 이내 지금의 강소성 우이현인 사주(泗州)로 퇴각한 뒤 고변에게 지원을 청했다. 고변은 듣지 않았다. 결국 조전성이 이끄는 관군은 전멸하고 말았다.
훗날 왕부지는 '독통감론'에서 이같이 개탄했다. '나라를 위해 집안을 잊고 군주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충성이 없다면 결코 돈독한 믿음을 돼지와 물고기에까지 미치게 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소재(小才)라고 한다. 소재는 필부의 지용(智勇)에 불과하다. 예로부터 위난의 상황에서 소재에게 대임을 맡겨 패망하지 않은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당나라가 패망하게 된 데에는 고변의 책임이 크다.'
왕부지가 지적한 것처럼 황소의 대군은 고변이 팔짱을 낀 덕분에 낙양이 있는 하남 일대를 멋대로 유린할 수 있었다. 놀이에 빠져 있던 당희종도 이때에 이르러 비로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절감했다.
이때 당희종이 어렸을 때 글자와 산수를 가르쳤던 태감 전령자(田令孜)가 좌군마장군(左軍馬將軍) 장승범(張承范)과 우군마장군 왕사회(王師會), 좌군마사 조가(趙珂) 등 3명을 천거했다.
당희종이 곧바로 만나본 뒤 신책군(神策軍)을 이끌고 가 동관(潼關)을 지키게 했다. 이해 말, 마침내 황소의 군사가 낙양을 함락시켰다. 사서의 기록이다. '황소가 입성한 후 백성을 두루 안심시켰다. 거리는 편안했다.'
황소의 최종 목표는 장안성이었다. 먼저 낙양을 잘 다독일 필요가 있었다. 당시 장승범 등은 쇠뇌를 쏘는 신책군의 궁수를 이끌고 황급히 동관으로 달려가 굳게 지켰다.
원래 신책군은 장안의 부호 자제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름만 군적에 올려놓고 수시로 하사품만 챙겼다. 실제로 전투에 나선 적도 없었다. 막상 전장에 나가게 되자 이들의 부형들이 금백(金帛)으로 산 가난한 사람들을 대신 내보냈다.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장승범은 출진에 앞서 당희종에게 이같이 청했다. '신이 듣건대 수십만 명에 달하는 황소의 무리가 북을 치며 서진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 동관 밖에서 제극양(齊克讓)이 이끄는 1만 명의 병사가 굶주림을 무릅쓰고 사수하고 있는데 신은 겨우 2,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갈 뿐입니다. 아직 군량 지원이 제때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실로 한심하게 생각합니다. 청컨대 폐하는 속히 각 도에 조명을 내려 정예병의 증원을 서둘러 주십시오.'
당희종이 얼버무렸다. '경은 걱정하지 말고 먼저 떠나도록 하시오. 지원군이 곧 도착할 것이오.'
장승범은 동관에 도착하자마자 황야로 피난을 나온 촌민 100명을 불러들여 돌을 나르고 물을 긷는 일에 투입했다. 군사들은 겨우 사흘치 식량밖에 없었다. 제극양의 군사는 이미 식량이 끊어졌다. 병사의 사기가 크게 저하되었다.
이 사이 황소의 군사는 이미 동관 쪽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제극양이 군사를 독려해 출전시켰지만 중과부적이었다. 황소가 말을 타고 달려오자 반란군이 일제히 환호했다. 굶주림에 지친 이극양의 군사가 이내 영채를 불사르고 동관 안으로 도주했다.
동관은 극히 험한 까닭에 지키기는 쉽고 공격하기는 어려웠다. 비극은 동관의 관문 왼쪽에 좁은 샛길을 제공했다. 이곳은 평소 사람의 통행이 엄히 금지되었다. 오직 조정의 세무 관원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금갱(禁坑)으로 불린 이유다. 관군들은 경황이 없던 나머지 금갱을 봉쇄하는 일을 잊었다. 동관 안으로 후퇴하던 군졸들이 이 길을 알고 있었다. 비록 도중에 관목들이 무성히 나 있기는 했으나 이는 군사들이 내달리며 짓밟으면 일시에 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조정에 상표해 위급상황을 알리며 사력을 다해 관문을 막던 동승범 등은 문득 금갱을 봉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황급히 8명의 군사를 보내 이를 막게 했다.
이 사이 관문 앞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관군이 도달하기도 전에 황소의 군사들이 이미 금갱을 통해 동관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동관이 이내 황소 군사의 손에 들어갔다.
동관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접한 조정 대신들은 경악했다. 장승범 등을 천거한 태감 전령자는 자신에게 문책이 떨어질 것을 우려해 고변을 천거한 재상 노휴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웠다.
좌천의 명을 받은 노휴는 절망한 나머지 이내 음독해 자진했다. 장안성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전령자는 곧 금위군 500명과 함께 당희종을 모시고 금광문(金光門)을 통해 궁을 빠져나갔다. 총애를 받는 일부 비빈과 4명의 황자가 그 뒤를 따랐다.
관원들은 당희종이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당희종은 몸도 좋은데다 평소 기사(騎射)에 능했던 까닭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미친 듯이 말을 몰았다. 뒤따르는 사람들이 좇을 길이 없었다.
황제와 대관들이 놀란 토끼처럼 빠져나간 장안성은 늘 그랬듯이 군졸과 백성이 부고로 달려가 금은과 비단 등을 정신없이 약탈하는 무법천지가 되고 말았다.
이날 저녁 무렵 황소의 선봉부대가 장안에 입성했다. 당나라의 금오대장군 장직방(張直方)이 문무관원 수십 명을 이끌고 위수의 지류인 파상(灞上)으로 가 황소 일행을 영접했다. 장안의 백성들은 좁은 길에 모여 이들이 입성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황소의 최측근인 상양(尙讓)이 큰소리로 말했다. '황왕(黃王)이 거병한 이유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것이다. 이씨들이 그대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과는 사뭇 다르다. 염려하지 말고 이전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하라!'
황소의 군사는 약탈한 금은보화로 온몸을 치장했으나 거리에서 빈궁한 백성을 보면 다투어 보물을 나누어 주었다. 극도로 헐벗은 적이 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황소는 곧바로 입궁하지 않고 먼저 전령자의 저택으로 들어갔다. 휘하들이 궁을 깨끗이 치울 때까지 기다리고자 했던 것이다.
며칠 후 황소 군사의 약탈 본성이 드러났다. 황소도 황실 종친에 대한 대대적인 살육을 자행했다. 황소를 영접했던 금오대장군 장직방이 장안의 탈환을 꾀했다.
많은 대신을 자신의 집에 숨겨두었던 이유다. 그러나 도중에 발각되어 모두 살해되었다. 황소는 함원전에서 황제 자리에 올랐다. 국호는 대제(大齊), 연호는 금통(金統)이었다.
당시 그가 곧바로 당희종을 추격했다면 역사는 다르게 진행되었을 공산이 컸다. 그러나 대제의 황제 황소는 약탈과 향락에 여념이 없어 이를 소홀히 했다. 덕분에 당희종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얼마 후 황소가 향락과 교만에 빠져 방비를 소홀히 하는 틈을 타 봉상절도사 정전(鄭畋)이 용미(龍尾)에서 상양이 이끄는 대제의 군사 5만여 명을 격파했다. 2만여 명이 목숨을 잃어 시체가 수십 리에 걸쳐 쌓였다. 상양이 황급히 패잔병을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왔다.
상서성 건물 벽에 이들을 풍자하는 시가 씌어 있었다. 대로한 상양이 전군에 명해 시를 쓴 자를 찾아내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장안에 남아 있던 관원 등 3,000여 명이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글을 쓰는 자 대부분이 노역에 종사하게 되었다.
광명 2년(881) 5월, 당나라의 각 도 근왕병들이 장안성을 향해 몰려들었다. 봉상(鳳翔)의 일전에서 황소군이 관군의 매복계에 걸려 대패했다. 관군이 여세를 몰아 장안을 압박했다.
황소가 급히 장수들과 대책을 상의했다. 모든 장수가 중과부적의 형세이므로 무리하게 부딪쳐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었다. 황소는 즉시 전군을 동쪽으로 이동해서 장안을 빠져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당의 대군이 장안에 도착했으나 이상하게도 황소군의 응전이 없었다. 선봉 정종초(程宗楚)가 공격명령을 내려 기세등등하게 장안성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서야 황소군이 이미 모두 철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군은 아무런 저항도 없이 장안을 탈환했다. 장수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병사의 노략질을 방임했다. 장수들도 승리에 도취되어 종일 음주와 오락으로 승리를 만끽했다.
황소는 사람을 보내 성중의 상황을 파악했다. 적들이 이미 독 안에 들어온 셈이었다. 이날 밤 부대를 신속히 장안으로 돌렸다. 관군은 승리의 기쁨에 들떠 노략질을 일삼고 술을 마시다가 모두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때 황소군이 전광석화처럼 장안성 안으로 쳐들어갔다. 시체가 온 사방을 뒤덮었다. 정종초도 그 와중에 피살되고 말았다. 관문착적의 희생양이 되었던 셈이다.
관문착적(關門捉賊)
문을 잠그고 도적을 잡는다.
관(關)은 '잠그다'는 뜻이다. 착(捉)은 '잡는다'는 뜻이다. 관문착적의 뜻은 적이 도망 갈 수 있는 모든 문을 잠그고(關門), 적을 사로잡는다(捉賊)는 의미다.
이런 경우는 병법에서 특이한 상황에서만 사용하는 전술이다. 상대방에게 퇴로를 열어주어 상대방이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공격해 올 소지가 있는 경우라면 당연히 이 전술을 사용해야 한다.
자신의 힘이 당장 우세하다고 여유를 부리다가 거꾸로 당하는 수가 있다. 화근이 될 수 있는 것은 남겨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면 사방 문을 모두 걸어 잠그고 철저하게 섬멸해야 한다. 아군의 피해가 다소 예상이 되더라도 이런 경우라면 발본색원해야 후환이 없다는 것이다.
한 밤중에 도둑이 들었다. 도망갈 곳을 터놓고 소리를 질러 도둑이 스스로 도망가게 할 것인가? 아니면 도망 갈 곳을 모두 막아 놓고 도둑을 궁지에 몰아 잡을 것인가? 이런 상황에 대하여 다양한 병법의 충고가 있다.
1. 제갈량의 상방곡 작전
제갈공명의 6차북벌에서 사마의를 잡기위해 마대에게 상방곡(호로곡)에 지뢰 등을 설치케하고, 고상에게는 상방곡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는 목우.유마를 사마의군에게 빼앗기라는 명령을 내리고, 위연에게는 사마의를 상방곡으로 유인하라고 군령을 하달했다.
사마의에게 가로막혀 번번히 북벌이 좌절당한 제갈량은 사마의를 죽이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하여 상방곡(호로곡)에 영채를 치고 사마의를 유인했다. 사마의는 기산을 촉군의 본거지로 보고 그곳을 공격하는척 한후, 군사들이 나오면 상방곡의 군량을 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상방곡에는 위연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곳에 사마의가 오자 위연은 싸우다가 거짓으로 패한채하며 물러났다. 위연은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물러나 들어갔다.
사마의는 사람을 시켜 골짜기 안을 탐색해 보게 했다. '골짜기 안에는 복병이 하나도 없고, 산꼭대기마다 모두 초막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분명히 군량을 쌓아둔 것일게다.'
사마의는 즉시 군사를 이끌고 골짜기 안으로 들어왔다. 사마의가 얼핏 보니 초막 위에는 모두 마른 나무와 풀이고, 위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사마의는 문득 의심이 들었다. '만약 적군이 골짜기 어귀를 막는다면 어떻게 하느냐?'
미처 생각이 다 끝나기도 전에 함성이 울리며 산 위에서 불 다발이 떨어졌다. 이로 인해 골짜기 안은 온통 불바다가 되었다. 위군은 달아나려 해도 길이 없었다. 산 위에서는 불화살이 쏟아져 내리고 지뢰가 일제히 폭발했다.
초막 안 마른 나무에 모두 불이 붙어 불꽃은 무서운 소리를 내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사마의는 놀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말에서 내려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한참 울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미친 듯 불어 닥치며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골짜기의 불을 모두 꺼버렸다. 지뢰도 터지지 않고 화기도 힘을 잃었다. 사마의는 가까스로 살아나 도망쳤다.
이를 본 제갈량은, '일을 꾀하는 건 사람이되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억지로는 어찌할 수 없구나'고 말했다. 제갈량은 '포전인옥'으로 사마의가 군량을 노리게 하고, 함정에 빠뜨려 '관문착적'으로 섬멸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제갈량은 출구를 막아두고 또한 반격을 당할 우려조차 없는 상태로 만들어 사마의를 없애려고 하였으나 소나기가 내려 사마의를 또다시 놓치고. 결국엔 사마의에 가로막혀 북벌을 완수하지 못하고 천명을 다하게 된다.
퇴로를 완전히 차단하고 반격의 우려조차 없게 한 상황에서 완전한 섬멸전을 펼친 제갈량. 소나기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지만 않았다면 삼국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고 고시(古詩)는 전하고 있다.
2. 오자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 한 사람이 넓은 들판에 숨었다고 하자. 여기에 비록 천명이 쫓아간다 해도 조마조마한 쪽은 쫓는 쪽이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서 덮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죽음을 각오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는 천 명의 군사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3. 손자
손자병법에서는 절대로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포위된 적은 탈출구를 열어주어야 한다(圍師必闕).' 만약에 아무런 탈출구를 열어 놓지 않고 공격한다면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비록 포위된 적이라도 목숨을 걸고 덤비면 죽을힘을 다해 싸우기 때문에 오히려 포위한 아군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충고를 따른다면 기업에서 노사간의 협상도 서로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주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아무런 여지도 남겨놓지 않고 무조건 몰아 부친다면 결국 아무런 협의나 문제 해결 없이 팽팽한 대결로만 치달을 것은 분명하다.
궁지에 몰린 한 사람을 천 사람이 못 당한다는 말이 있다. 쥐도 도망갈 곳이 없으면 고양이에게 덤빈다고 한다. 상대방보다 내가 월등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도망갈 여지를 주며 압박하는 것은 승자의 여유다.
그러나 이와는 다르게 상대방을 도망가지 못하게 사방을 모두 잠그고 봉쇄하여 적을 잡아야 한다는 전술도 있다. 궁지에 몰린 적으로 하여금 어느 쪽으로도 출구가 막혀 있어 도저히 탈출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하여 스스로 무릎을 꿇고 항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전술을 설명하면서 자주 드는 예가 미친개의 예다. 미친개는 문을 걸어 잠그고 때려잡아야 한다. 도망갈 길을 터주면 결국 미친개는 또다시 미친 짓을 저지른다.
어떤 병법이든 원칙이 있으며 변칙이 있다. 원칙의 병법만 외워 사용하는 장군은 융통성이 없어 상황의 변화를 읽지 못한다. 독 안에 든 쥐를 때로는 도망갈 길을 터놓고 몰 때도 있고, 상황에 따라 사방을 막아놓고 완전히 잡아야 할 때도 있다.
어느 한 쪽의 원칙만 알고 상황의 변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유능한 장군이 될 수 없다. 조그만 인정주의 휩싸여 상대방을 봐주다가 결국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조직을 이끄는 리더는 개인이 아니다. 그의 목표는 자존심과 명망이 아니며 그의 꿈은 조직의 생존이며 번영이어야 한다는 것이 동양 병법서의 공통된 인식이다. 모든 판단과 행동의 기준은 오직 자신의 눈만 바라보면 목숨을 맡기고 있는 병사들의 생존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끄는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모든 문을 걸어 잠그고 철저하게 적을 분쇄하여 후환을 없애는 것은 리더의 바른 선택이라는 것이 관문착적(關門捉賊) 전술의 핵심이다.
▶️ 關(관계할 관, 당길 완)은 ❶형성문자로 関(관)의 본자(本字), 关(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문 문(門; 두 짝의 문, 문중, 일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관(북에 실을 꿰는 모양)으로 이루어졌다. 문을 닫아 거는 빗장의 뜻으로 나중에 관문(關門), 닫다 등의 뜻으로 쓰였다. ❷회의문자로 關자는 '관계하다'나 '닫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關자는 門(문 문)자와 絲(실 사)자, 丱(쌍상투 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丱자는 의미와는 관계없이 모양자 역할만을 하고 있다. 關자의 금문을 보면 門자에 긴 막대기 두 개가 걸려 있었다. 그런데 막대기 중간에 점이 찍혀있다. 이것은 문을 열쇠로 잠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關자의 본래 의미는 '닫다'나 '가두다'였다. 소전에서는 열쇠와 빗장이 絲자와 丱자로 표현되면서 지금의 關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關자는 후에 '관계하다'는 뜻을 파생시켰는데, 둘 이상의 친밀한 관계가 단단히 묶여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關(관, 완)은 국경(國境)이나 국내(國內) 요지의 통로에 두어서 외적을 경비하며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이나 화물 등을 조사하던 곳의 뜻으로 ①관계(關係)하다 ②닫다 ③끄다 ④가두다 ⑤감금(監禁)하다 ⑥주다, 받다 ⑦관문(關門) ⑧세관(稅關) ⑨기관(機關) ⑩빗장 ⑪난관(難關) 그리고 ⓐ(시위를)당기다(완)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일과 다른 일과의 사이에 인과적인 관계가 있음을 관련(關聯), 둘 이상이 서로 걸림을 관계(關係), 어떤 일이나 대상에 흥미를 가지고 마음을 쓰거나 알고 싶어하는 상태를 관심(關心), 어떤 일에 관계하여 참여하는 것을 관여(關與), 빗장과 자물쇠로 사물의 가장 중요한 곳을 관건(關鍵), 국가가 일정한 경계선을 넘는 화물에 대하여 매기는 조세를 관세(關稅), 뼈와 뼈를 결합하는 부분을 관절(關節), 국경이나 교통의 요로에서 통행인을 조사하는 곳을 관문(關門), 중요한 기로 또는 시기를 관두(關頭), 물건을 활동시키는 장치를 하여 놓은 기계를 기관(機關), 관계가 없음을 무관(無關), 관계가 있음을 유관(有關), 사물이 서로 어울려서 의존하고 계약하며 전체를 이루는 관계를 연관(聯關), 서로 관계 맺음 또는 그 관계를 상관(相關), 타향의 달리 일컫는 말을 타관(他關), 건물의 출입문이나 건물에 붙이어 따로 달아낸 어귀를 현관(玄關), 일을 해 나가기가 어려움을 난관(難關), 길이 울퉁불퉁하여 걷기 곤란한 상태를 간관(間關), 근거 없는 일을 자기에게 관계 지으려는 망상을 일컫는 말을 관계망상(關係妄想), 권세가에게 뇌물을 주어 청탁하는 폐단을 일컫는 말을 관절지폐(關節之弊),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오불관언(吾不關焉), 입이 관문과 같다는 뜻으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구자관야(口者關也), 죽고 사는 것이 달리어 있는 매우 위태한 고비를 일컫는 말을 사생관두(死生關頭), 큰 이익이 되는 바를 일컫는 말을 대리소관(大利所關),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을 일컫는 말을 불관지사(不關之事), 병이나 상처가 중하여 목숨에 관계됨을 일컫는 말을 명맥소관(命脈所關), 모든 일이 운수의 탓이라 하여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일컫는 말을 운수소관(運數所關), 도둑이 나가고 난 후에야 문을 잠근다는 뜻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적출관문(賊出關門) 등에 쓰인다.
▶️ 門(문 문)은 ❶상형문자로 门(문)은 간자(簡字), 閅(문)은 동자(同字)이다. 두 개의 문짝이 있는 문의 모양으로 문짝을 맞추어 닫는 출입구를 말한다. ❷상형문자로 門자는 '문'이나 '집안', '전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갑골문에 나온 門자를 보면 양쪽으로 여닫는 큰 대문이 그려져 있었다. 戶(지게 호)자가 방으로 들어가는 외닫이 문을 그린 것이라면 門자는 집으로 들어가기 위한 큰 대문을 그린 것이다. 門자는 대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문'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이외에도 '집안'이나 '문벌'과 같이 혈연적으로 나뉜 집안을 일컫기도 한다. 다만 門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문과 관련된 행위나 동작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그래서 門(문)은 (1)담이나 판장 따위로 둘린 안팎을 연결하기 위하여 드나들거나 통할 수 있도록 틔워 놓은 곳. 또는 그곳에 달아 놓고 여닫게 만든 구조물. 판자문, 골판문, 띠살문, 완자문, 정자살문, 빗살문 따위가 있음 (2)생물의 분류학(分類學) 상 단위의 한 가지. 강(綱)의 위 계(界)의 아래임. 동식물을 합하여 10여 개의 문으로 나뉨 (3)칠사(七祀)의 하나로 출입(出入)을 맡아 본다는 신 (4)성씨(姓氏)를 함께 하며 혈연적으로 나뉜 그 집안을 가리키는 말 (5)성(姓)의 하나 (6)포나 기관총 따위를 세는 단위 등의 뜻으로 ①문(門) ②집안 ③문벌(門閥) ④동문(同門) ⑤전문 ⑥방법(方法) ⑦방도(方道) ⑧가지 ⑨과목(科目) ⑩부문(部門) ⑪종류(種類) ⑫분류(分類) ⑬비결(祕訣) ⑭요령(要領: 가장 긴요하고 으뜸이 되는 골자나 줄거리)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문도(門徒), 집으로 드나드는 문을 문호(門戶),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중(門中),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집안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를 문벌(門閥), 문의 안이나 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을 문내(門內), 문 앞이나 대문 앞을 문전(門前), 문하에서 배우는 제자를 문인(門人), 문객이 드나드는 권세가 있는 집이나 가르침을 받는 스승의 아래를 문하(門下), 문을 여닫을 때 나는 소리를 문성(門聲), 대문 또는 중문이 있는 곳을 문간(門間), 세력이 있는 대가의 식객 또는 덕을 보려고 날마다 정성껏 문안을 드리며 드나드는 손님을 문객(門客), 문지기를 문사(門士), 한 집안의 가족들의 일반적 품성을 문품(門品), 문벌이 좋은 집안이나 이름 있는 학교 또는 훌륭한 학교를 명문(名門), 갈라 놓은 분류를 부문(部門), 한 가지의 학문이나 사업에만 전적으로 전심함을 전문(專門), 공기나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벽에 만들어 놓은 작은 문을 창문(窓門), 집안과 문중 대대로 내려오는 그 집안의 신분을 가문(家門), 큰 문이나 집의 정문을 대문(大門), 정면의 문이나 본문을 정문(正門),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어떤 일에 바로 관계가 없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외한(門外漢), 대문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으로 세도가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으로 저자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문전성시(門前成市),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빌어 먹음을 일컫는 말을 문전걸식(門前乞食), 문 앞이 시장과 같다는 뜻으로 대문 앞에 시장이 선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다는 말을 문전약시(門前若市), 집에 사람이 많이 찾아 온다는 말을 문정여시(門庭如市), 문 밖에 새 그물을 쳐놓을 만큼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짐을 뜻하는 말로 권세가 약해지면 방문객들이 끊어진다는 말을 문전작라(門前雀羅), 집 앞 가까이에 있는 좋은 논이라는 뜻으로 곧 많은 재산을 일컫는 말을 문전옥답(門前沃畓), 마음대로 드나들게 터놓음 또는 제 나라의 영토를 열어서 외국 사람에게 무역이나 여행 따위 행동의 편의를 줌을 일컫는 말을 문호개방(門戶開放), 문벌이 서로 어슷비슷함 또는 결혼 조건이 갖추어진 상대를 일컫는 말을 문당호대(門當戶對), 인정 없이 몹시 모질게 대함을 일컫는 말을 문전박대(門前薄待),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문을 닫고 나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집에만 틀어박혀 사회의 일이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두문불출(杜門不出), 정수리에 침 하나를 꽂는다는 뜻으로 상대방의 급소를 찌르는 따끔한 충고나 교훈을 이르는 말을 정문일침(頂門一鍼), 문을 열고 도둑을 맞아 들인다는 뜻으로 스스로 화를 불러들임을 이르는 말을 개문납적(開門納賊), 북문에서 한탄함이라는 뜻으로 벼슬자리에 나가기는 했으나 뜻대로 성공하지 못한 것을 한탄함을 이르는 말을 북문지탄(北門之歎),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하라고 경계하는 말을 구화지문(口禍之門) 등에 쓰인다.
▶️ 捉(잡을 착)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재방변(扌=手;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연결되다(連結--)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足(족, 착)으로 이루어졌다. 손을 뻗히고 따라 붙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捉자는 '잡다'나 '체포하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捉자는 手(손 수)자와 足(발 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足자는 성(城)을 향해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발'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捉자는 이렇게 진격하는 모습을 그린 足자에 手자를 결합한 것으로 도망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捉자에 쓰인 足자는 쫓아간다는 뜻이고 手자는 손으로 붙잡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捉(착)은 ①잡다, 쥐다 ②체포하다(逮捕--), 사로잡다 ③지키다 ④부리다, 지탱하다(支撐--)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잡을 집(執), 잡을 액(扼), 잡을 파(把), 잡을 구(拘), 잡을 포(捕), 잡을 조(操), 잡을 나(拏), 잡을 나(拿), 잡을 지(摯), 잡을 체(逮), 잡을 병(秉) 등이다. 용례로는 잡아서 보냄을 착송(捉送), 사람을 붙잡아 감을 착거(捉去), 사람을 잡아옴을 착래(捉來), 죄인을 잡아 가둠을 착수(捉囚), 죄인을 잡아다 칼을 씌움을 착가(捉枷), 죄인을 잡아 관아에 알림을 착고(捉告), 죄인을 잡아서 넘겨 줌을 착급(捉給), 사람을 잡아다 죽임을 착살(捉殺), 물고기를 잡음을 착어(捉魚), 죄인을 잡아 들임을 착입(捉入), 죄인이 잡히어 몸이 드러남을 착현(捉現), 요점이나 요령을 얻음 또는 어떤 기회나 정세를 알아차림을 포착(捕捉), 사로 잡음을 활착(活捉)이나 금착(擒捉), 마음을 단단히 가다듬어서 다잡고 늦추지 않음을 파착(把捉), 사람을 잘못 알고 잡음을 오착(誤捉), 송두리째 모두 잡음을 몰착(沒捉), 도망한 죄인을 추적하여 잡음을 근착(根捉), 범죄 행위를 하는 그 자리에서 죄인을 붙잡음을 현착(現捉), 죄 없는 사람을 위협하여 붙잡아 감을 협착(脅捉), 죄인을 붙잡음을 집착(執捉), 죄인을 들춰서 붙잡아 옴을 추착(推捉), 죄를 짓고 잡힘을 취착(就捉), 염탐해서 붙잡아 옴을 형착(詗捉), 죄인을 찾아 쫓아가서 체포함을 근착(跟捉), 게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준다는 뜻으로 수고만 하고 소득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착해방수(捉蟹放水), 남 잡이가 제 잡이라는 뜻으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일컫는 말을 착타착아(捉他捉我), 대가리를 잡다가 겨우 꽁지를 잡았다는 뜻으로 큰 것을 바라다가 도리어 작은 것을 얻게 되었다는 뜻의 속담을 일컫는 말을 착두근착미(捉頭僅捉尾), 멧돝 잡으러 갔다가 집돝 잃었다는 뜻으로 너무 욕심을 부리면 이미 가진 것조차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뜻의 속담을 일컫는 말을 착산저실가저(捉山猪失家猪), 전대와 그물로 호랑이를 잡는다는 뜻으로 변변치 못한 방법이나 허술한 계획으로 우연하게 일을 이루었음 이르는 말을 탁망착호(橐網捉虎), 남을 대신하여 일을 함을 이르는 말을 대인착도(代人捉刀), 그물을 쓰고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그물을 물에 던져야 고기가 걸리는 법인데 그물을 머리에 쓰고서도 고기가 잡힌다는 것이니 요행히 운이 좋았음을 이르는 말을 몽망착어(蒙網捉魚), 독 안에서 자라 잡기라는 뜻으로 틀림없이 파악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옹중착별(甕中捉鼈), 썩은 새끼로 범 잡기라는 속담의 한역으로 어리석은 계책과 보잘것없는 것으로써 뜻밖의 큰일을 성취함을 이르는 말을 고망착호(藁網捉虎), 이백이 술에 취하여 채석강에서 물 속의 달을 잡으려다 죽은 일을 이르는 말을 태백착월(太白捉月), 죄를 저지른 그때 그 자리에서 곧 잡음을 일컫는 말을 등시포착(登時捕捉), 죄 없는 사람을 잘못 잡음을 일컫는 말을 양민오착(良民誤捉), 그 자리에서 곧 잡아옴을 일컫는 말을 입즉착래(立卽捉來), 그 자리에서 즉각 잡아옴을 일컫는 말을 입각착래(立刻捉來),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붙든다는 뜻으로 허망한 언행을 이르는 말을 포풍착영(捕風捉影) 등에 쓰인다.
▶️ 賊(도둑 적)은 ❶회의문자로 贼(적)은 간자(簡字), 戝(적)은 동자(同字)이다. 무기(武器)(戎)를 들고 재물(貝)을 훔치는 무리라는 데서 도둑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賊자는 '도둑'이나 '역적'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賊자는 貝(조개 패)자와 戎(병기 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戎자는 갑옷과 창을 함께 그린 것으로 모든 병기를 망라하는 글자이다. 그러나 금문에 나온 賊자를 보면 貝자와 戈(창 과)자, 人(사람 인)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재물 앞에 창을 들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으로 무력으로 재물을 강탈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賊자는 무기로 위협하며 재물을 강탈하는 '도둑'이나 '역적'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賊(적)은 ①도둑 ②도둑질 ③역적(逆賊) ④벌레의 이름(마디를 갉아먹는 해충) ⑤사악(邪惡)한 ⑥나쁜 ⑦도둑질하다 ⑧해(害)치다 ⑨학대(虐待)하다 ⑩그르치다 ⑪죽이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도적 구(寇), 도둑 도(盜)이다. 용례로는 해치려는 마음 또는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마음을 적심(賊心), 도적을 경계함 또는 도적이 일어날 기미가 보임을 적경(賊警), 도둑에게 재난을 당함을 적난(賊難), 도둑을 벌하는 법률을 적률(賊律), 도둑에게 당하는 변을 적변(賊變), 도둑의 괴수를 적수(賊首), 도둑질하는 버릇을 적습(賊習), 임금이나 부모에게 거역하는 불충이나 불효한 사람을 적자(賊子), 도적이 떼를 지어 모여 있는 곳을 적둔(賊屯), 도둑으로 생기는 근심을 적환(賊患), 도둑에게서 받은 피해를 적해(賊害), 바다를 다니며 배를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는 도둑을 해적(海賊), 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둑을 마적(馬賊), 산 속에 살며 지나가는 사람의 재물을 빼앗는 도적을 산적(山賊), 남의 재물을 마구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 다니는 무리를 화적(火賊), 밖으로부터 자기를 해롭게 하는 도적을 외적(外賊), 무장을 하고 떼를 지어 다니면서 살인과 약탈을 일삼는 도둑을 비적(匪賊), 강한 도적을 강적(强賊), 흉악한 도둑을 흉적(凶賊), 큰 도둑을 거적(巨賊), 과거에 급제하려고 옳지 못한 짓을 꾀하던 사람을 과적(科賊), 주로 집권자에게 반대하여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도둑을 난적(亂賊), 어떤 나라나 사회 안에 있는 도둑이나 역적을 내적(內賊), 자질구레한 물건을 훔치는 도둑을 서적(鼠賊),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 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적반하장(賊反荷杖), 도둑이 나가고 난 후에야 문을 잠근다는 뜻으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을 적출관문(賊出關門), 역적은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살 수 없다는 말을 적무백수(賊無白首),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간사한 신하와 불효한 자식을 일컫는 말을 간신적자(奸臣賊子), 문을 열고 도둑을 맞아들인다는 뜻으로 스스로 화를 불러들임을 이르는 말을 개문납적(開門納賊), 남의 시문을 표절하여 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슬갑도적(膝甲盜賊), 남의 글이나 저술을 베껴 마치 제가 지은 것처럼 써먹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문필도적(文筆盜賊), 남의 재물을 마구 빼앗으며 행패를 부리고 돌아 다니는 무리를 일컫는 말을 명화도적(明火盜賊)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