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vs 리커창 포스트 후진타오 대격돌

 시진핑 vs 리커창 포스트 후진타오 대격돌

후진타오(오른쪽 둘째) 전 국가주석이 2022년 10월 22일 당 대회에서 자신의 앞에 놓인 붉은 서류철을 들춰보려 하자 옆에 있던 리잔수(맨 오른쪽)가 서류철을 가져가 당 관계자에게 넘기고 있다. 당 관계자는 후진타오의 겨드랑이에 팔을 넣어 데리고 나갔다. /로이터 뉴스1


글■후지타 히로키(藤田洋毅) 저널리스트 번역■이용락
일본 Global eye 당대회 후 더 격렬한 中國 권력투쟁
“각각 태자당·공청단 간판스타로 급부상… 서열 역전 위해 성장률 8% 필수”

▶리커창 상무부총리(맨 윗줄 오른쪽)와 시진핑 국가부주석(맨 아랫줄 왼쪽)은 중국 정계의 차세대 주자다.

격심한 소득 양극화를 겪는 중국. 후진타오 지도부는 이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 중심에 공산당 내 권력 승계 문제가 걸려 있다는데…. 본사 특약 <포어사이트(Foresight)>가 중국정치의 현재와 미래를 짚었다.

중국 발전의 선두를 달려온 광둥(廣東)성의 경제특구 선전(深)을 상징하는 초고층 빌딩 ‘디왕다샤(地王大厦)’. 지난 2월, 이곳 69층 전망대의 유료 엘리베이터 매표소 앞에는 ‘풍설중적온정(風雪中的溫情·천재지변 속 온정)’이라고 쓰여 있었다. ‘춘절(중국의 설) 기간에 외래공(外來工·외지 유입 근로자)은 요금이 절반’이라는 의미였다. 

지난 1월 초부터 남녘을 덮친 건국 이래 최악의 한파·강우·강설 등으로 인해 중국의 철도 운행은 대혼란에 빠졌다. 열차는 계속 운행정지 상황. 보통 1년에 한 번, 즉 춘절 때마다 고향으로 가는 귀성객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결국 농민공(農民工·농촌 출신 노동자)의 대다수는 외지에 머물러야 했다. 

중국공산당 중앙국무원은 해안에 위치한 지방정부에 긴급 지령을 내렸다. 중국 전역에서 7,000만 명 노숙해… “춘절기간에 사회 안정 유지에 전력을 다하라.” “영화관·유원지·관광명소 등은 농민공을 적극 수용하라.” 덕분에 디왕다샤 전망대의 창가 쪽 테이블은 한눈에도 농민공임을 알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의 독차지가 됐다. 이곳 직원들에 따르면 그들 대부분은 아침 일찍부터 전망대에 올라 폐관 때까지 버틴다고 한다. 기분 좋은 난방 덕분인지 많은 사람이 테이블에 눌러앉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었다. 한 직원은 “예전에는 퇴장을 재촉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심하게 다루지 말라는 엄명이 내려와서…” 라고 말했다. 

반액이라고는 해도 전망대 입장료 30위안(약 4,180원)은 월급 1,000위안(약 14만 원)이 안 되는, 그것도 대부분 고향집으로 송금하는 농민공에게는 분명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수 있는 ‘레저’일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66) 지도부의 위기감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중국 공안부의 추정에 따르면 춘절 전 광둥성 광저우(廣州)역 주변에서 50만 명(80만 명이라는 설도 있음)이, 전국적으로는 ‘총 7,000만 명이 노상에서 밤을 지새웠다’고 한다. 선전시는 1억 위안(약 140억 원)을 투입해 무료 장거리 전화와 식사를 제공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 등을 수배해야 했다. 

한파는 천재(天災)다. 그럼에도 이처럼 많은 농민공이 역에서 체류한 이유는 무엇일까? 귀성대란이 일단락된 지난 2월17일, 광저우시 정치협상회의의 궈시링(郭錫齡) 부주석은 철도부를 향해 분노를 드러냈다. “이번 사태에 대한 철도부의 실책은 매우 크다. 현재 복구 중이라며 계속 표를 팔았다. 운행정지(運休)라고 했으면 포기하고 숙사로 돌아갔을 농민공을 계속 역 앞에 세워둔 것이다. 철도부는 모두 사직해야 한다!” 이튿날 광저우시 주샤오단(朱小丹) 서기도 불만을 토로했다. “공공 안전이 전에 없던 위기에 직면했다. 역 주변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오로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말 현지 시찰한 원자바오(溫家寶·66) 총리가 즉시 지시한) 군대 투입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다.”

▶후진타오 주석(왼쪽)과 장쩌민 전 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바로 다음날인 2월19일, 철도부는 왕융핑(王勇平) 대변인을 통해 즉각 반론을 제기했다. “송전선 불통으로 전차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에 디젤 기관차를 보내도록 연락했다. 하지만 디젤 기관차 운전사가 이미 은퇴한 후여서 소집에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디젤 기관차용 기름 조달에도 시간이 걸려 돌아오기까지 7~10일이 걸린 것이다.” 이 말에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다. 신장에서 광저우까지는 거의 6,000㎞, 10일이 걸린다고 하면 평균시속 25km다. “우리나라의 디젤 열차는 자전거를 이어 놓은 것인가?” 천재에 인재(人災)까지 겹쳐 피해를 증폭시킨 것이 틀림없다. 

당 중앙의 한 젊은 간부는 특히 송전망이 각 지역에서 끊어져 “최소한 수십만 명이 일시적으로 물과 전기조차 없는 석기시대 생활로 되돌아가버린” 것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칭녠바오(北京靑年報)>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전신주가 1만주 이상이나 파손된 구이저우(貴州)성 카이리(凱里) 지구의 경우 1950~60년대에 건설한 낡은 송전탑은 끄떡없었다. 그런데 최근 수년 사이에 가설한 전주는 90%가 꺾여 넘어져버렸다.” 실제로 규정보다 얇은 철근을 사용했거나, 심지어 철근이 들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지난 1월29일 긴급정치국회의를 열고, 그 전후로 9인의 정치국 상무위원 전원이 지방시찰을 위해 떠난 것만 봐도 중앙지도부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잘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원자바오 총리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당 중앙의 초조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쉬지 않고 45시간 달린 인민 총리 긴급회의 4일 전인 1월25일, 원 총리는 고속도로와 베이징서(北京西)역을 시찰한 뒤 줄곧 남쪽지방의 이상 기상에 대해 언급했다. “남녘을 덮친 비와 눈은 상상 이상으로 광범위한 피해를 가져왔다. 전기·석탄 공급, 춘절에 쓸 고기·야채 등 필수품 수송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어 1월27일에는 국무원 영상회의를 열어 피해지역에 대한 관련부문의 대책을 지시했다. 

이후 곧장 현장으로 달려간 그는 진두지휘에 나섰다. 특히 1월28일 후난(湖南)성을 찾은 경위는 주목할 만하다. “오후 6시40분, 국무원 변공청(辯公廳·내각사무국)의 한 동지로부터 중앙정부의 지도자가 지방 시찰에 나설 것이니 바로 동행기자를 파견하라는 전화가 왔다”로 시작하는 <중궈신원서(中國新聞社)>의 ‘인민총리의 45시간’이라는 제호의 기사는 절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했다. “기자는 어디로 가는지, 언제 이륙하는지조차 모른 채 비행장으로 달려 나왔다.” 짐작 가는 곳은 당 중앙 군사위원회가 관리하는 베이징 서북부의 요인 전용 시자오(西郊) 비행장. 20시10분, 원 총리는 총리 전용기에 탑승했다. 하지만 후난성의 창사(長沙)공항은 폐쇄된 상태였다. 근처에서 착륙 가능한 곳은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공항이나 장시(江西)성 난창(南昌)공항 뿐이었다. 

동행한 류즈(劉志) 군철도상은 휴대전화로 착륙 후의 열차를 수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난창공항에서 “지금 막 (공항을) 폐쇄했다”는 연락이 왔다. 20시20분, 이렇게 해서 총리 전용기가 목적지를 정하지 못한 채 이륙한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22시40분이 돼서야 전용기는 우한의 톈허(天河)비행장에 착륙할 수 있었다. 원 총리는 열차로 갈아탄 뒤 다음날 아침 겨우 창사(長沙)에 도착했다. 창사에서 분주한 14시간을 보낸 그는 1월29일 22시10분, 광둥성 광저우의 바이윈(白雲)비행장에 내렸고, 다음날 7시40분에는 광저우역 앞에 섰다.

▶지난 2월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 기간 중 폭설과 한파가 남부 지방을 강타했다.

그는 역 주변의 군중과 비좁은 열차에 가득 찬 승객들에게 말을 건넸다. 원 총리가 베이징으로 돌아온 것은 1월30일 14시였다. 원자바오 총리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월1일 오전에는 국무원 상무회의를 열고 재해대책에 박차를 가했다. 같은 날 14시에는 또 다시 후난성을 찾았다. 2월3일 베이징으로 돌아온 그는 2월5일 오전 당·국무원 주최 춘절기념회에서 연설했다. 이어 오후에는 구이저우성으로 날아갔다.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인 2월6일에는 장시성에 모습을 나타냈고, 밤에는 장시재경(江西財經)대학 기숙사에서 귀성길에 오르지 못한 160여 명의 학생과 송년 식사를 함께했다고 한다. 국무원의 한 중견 간부는 한숨을 쉰다. “중국대국론·위협론 따위는 모두 거짓말이다. 우리나라의 내부 사정은 이처럼 취약하다. 이번 천재지변은 우연히 찾아온 불행이 아니다. 종래의 발전 스타일에 대한 하늘의 통렬한 경고였다고 후진타오 지도부는 인민에게 하소연하고 있다. 

때문에 원 총리가 (3월5일 개막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앞둔 가장 바쁜 시기임에도 각 지역을 뛰어 돌아다닌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노선을 전환한 지 올해로 꼭 30년째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성과를 올린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에 직면했다는 사실도 분명해졌다.” 이와 관련해 그 간부는 여러 문제점을 늘어놓았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경제 건설에 유리하게 작용했던 국제 경제환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해외자본은 인권과 빈부격차 문제 등을 무시한 채 유입됐고, 중국 당국은 이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모든 자원을 집중했다. 그러나 더 이상 이제까지와 같은 투자 유입은 “기대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의 경기 동향이 즉시 중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한계를 넘어섰다”. 똑같이 ‘신흥 발전국’으로 불리지만, 인도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무역액의 비율이 38%인 데 반해 중국은 66%나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지구촌이 더 이상 중국의 방약무인한 발전을 수용하지 못하게 됐다는 점이다. 

중국의 무분별한 자원 사재기로 인해 전 세계 원자재가격이 급상승했고, 이는 중국 스스로에게도 커다란 부담을 강요한다. 여기에 끝을 알 수 없는 환경파괴와 국토의 사막화 등 문제는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전 인류의 과제를 말하기 전에 중국 인민이 먼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셈이다. 지니계수 ‘만성폭동’ 수준까지 근접해… 세 번째 문제점은 전통적인 ‘이민위천(以食爲天·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의 개념이 크게 변했다는 점이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시대에 ‘온포수평(溫飽水平·인민의 최소 기본생활 충족)’에서 ‘소강수평(小康水平·인민의 생활 수준을 중류 이상으로 향상시킴)’으로 방향을 틀었다. 

물론 그 동안 양적 확대는 확실히 달성했다. 하지만 지금도 중국에는 하루 소득이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빈곤층이 2억 명 가까이 있다. 또 빈부격차는 더욱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계층화는 세대를 넘어 점차 고착화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국무원의 간부는 ‘질적으로 어느 정도 개선됐는지’에 대해서는 초조한 듯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구도 확신하지 못한다.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관계없다. 어떤 나라도 이 정도의 빈부격차는 감당해낼 수 없다.” <신화(新華)통신>이 발행하는 주간지 <랴오왕(遼望)>이 뒤늦게나마 이런 ‘양극화 확산’에 메스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올 초 ‘수입 격차 신관찰(2008년 제2기)’이라는 특집기사를 실었고, 이어 ‘분배에서의 효율과 공평을 바로잡자’(2008년 제6·7기 합본호)는 기사도 내보냈다. 

이 기사는 양극화를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개혁·개방 이전에는 0.16이던 것이 이제는 0.47에 달한다는 점 등을 근거로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중궈신원서>는 이것을 받아 ‘수입격차가 이미 합리적 한도를 넘었다’는 제목을 붙여 보도했다. 이런 보도가 나온 배경은 지난해 가을, 제17차 당대회에서 후진타오 지도부가 양극화 축소에 노력할 것임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내부적으로만 다뤄졌던 문서와 수치들이 “양극화 현상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하고, 그 축소에 도움이 된다면”이라는 전제 아래 마침내 공표된 것. 실제로 당 중앙은 유고슬라비아를 해체로 이끈 지니계수 0.47을 경계치로 설정해 둔 바 있는데, 이를 넘어 이제 ‘만성적으로 폭동이 빈발한다’는 수치 0.5가 눈앞에 다가와 있을 정도로 중국의 상황은 심각하다. 

관영 유력 매체가 “합리적 한도를 넘었다”고 쓴 것도 뒤집어 생각해보면 후진타오 지도부가 “지금의 현상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인 셈이다. 인민은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외치는 ‘친민(親民)’ 정책에는 거짓이 없음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우한역에서 원 총리가 핸드마이크를 잡고 “반드시 춘절을 고향에서 보낼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음에도 이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원로 대변하는 ‘태자당’이 최대 걸림돌 

▶지난 2월2일 과둥성 광저우 버스터미널에서 귀성객으로 보이는 한 20대 여성이 우울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인민은 묻는다. “인민 총리는 언제부터, 왜 이렇게 무기력해졌는가?” “최고지도부가 먼저 움직이고 나서야 겨우 지방 지도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나중에 군이 출동했다. 순서가 뒤바뀐 것 아닌가?” 이렇듯 중앙지도부의 정책이 말단까지 침투하지 못한 이유는 있다. 각 지역, 각 부문을 좌우하는 기득권 이익집단이 너무 커져 중앙의 지시를 받고도 그 핵심을 빠뜨린 채 인민의 이익과 권리를 짓밟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 고급 간부의 자제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저는 시(習) 위원을 환영합니다.” 이는 지난해 가을, 당대회에서 서열 6위로 약진했고 포스트 후진타오 그룹 중에서도 최측근이 된 시진핑(習近平·54) 정치국 상무위원(현 국가부주석)에 대한 기대다. 이 자제는 “시 위원이 당대회 직후 ‘후진타오 동지를 총서기로 하는 당 중앙’이라고 밝힌 이후로는 거의 그런 말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라면서 ‘샤오후(小胡·후진타오의 애칭)의 한계’에 대해 설명했다. 포인트는 시 위원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용한 ‘노 동지(老同志·원로)’라는 말에 있다. 새로운 중국을 건설하고, 발전을 이끌어 왔다고 자부하는 원로들. 그들은 지금도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후진타오는 이들을 존경한다. 하지만 원로를 대변하고 기득권을 쥐고 있는 것은 고급 간부의 자제들(태자당·太子黨)이다. 그리고 이 태자당이 ‘친민’의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후 주석은 고심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2006년 가을 상하이(上海)를 독립왕국화했던 천량위(陳良宇·61) 상하이 당서기를 해임했다. 또 이듬해에는 천 전 서기를 체포했고, 부패와 연루돼 해외로 도피한 그의 장남 천웨이리(陳維力) 역시 말레이시아까지 쫓아가 체포한 뒤 소추했다. 지난해 초에는 태자당의 필두 쩡칭훙(曾慶紅·69) 전 정치국 상무위원의 아들 쩡웨이(曾偉)가 연루된 사건에 대한 폭로도 있었다. 이 사건의 내용은 산둥(山東)성의 독점 전력회사인 루넝(魯能)을 무대로 한 엄청난 규모의 국가자산 유출이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원로들의 최대 관심사는 일족과 관련한 추문이 발생할 만한 사태를 어떻게든 막는 것. 때문에 이들은 몸을 웅크리고 소리 없이 다가오는 반부패 포위망의 작은 발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원로들이 기댄 곳은 다름 아닌 장쩌민(江澤民·82) 전 주석이다. 후진타오는 우선 원로들로부터 장 전 주석을 격리하는 전략으로 장 전 주석의 영향력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고급간부의 자제의 평에 따르면 후 주석은 기득권의 정점을 이루었던 장 전 주석 일파에게 “취약한 부분을 공격받고 있다”고 한다. 1992년, 덩샤오핑의 강력한 말 한마디에 50세도 되기 전에 최고지도부에 입성한 후진타오. 그러나 간부의 자제는 “(후진타오가) 그 유리한 조건을 충분히 활용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총서기에 취임한 2002년 전후로 줄곧 중심축을 ‘퇀파이(團派·공산주의청년단 출신 그룹)’에 두고 “(원로들을 위한) 비호의 날개를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보호받지 못했다고 생각한 원로들은 후진타오에게 붙지 않았다. 또 장 전 주석 그룹의 공격에 대한 방파제 역할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후 주석은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가장 심각한 사례는 후진타오의 직계이자 퇀파이의 희망인 리커창(李克强·53)이 정치국 상무위원(현 상무부총리)은 되었지만 서열 7위에 머물러 6위인 시진핑의 뒤를 쫓아가는 형국이다. 시 위원은 혁명원로인 고(故) 시중쉰(習仲勳) 정치국 위원의 막내아들로, 태자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1979년 칭화(淸華)대를 졸업한 그는 허베이(河北)·푸젠(福建)·저장(浙江)성 등지에서 경력을 쌓으며 한 단계씩 올라갔다. 이어 상하이(上海)시 서기를 역임한 뒤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중요한 것은 그의 아버지인 시중쉰이 후진타오 주석의 정치적 사부인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를 마지막까지 옹호한 개혁파라는 점이다. 즉 후 주석과 시 위원은 사적 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관계다. ‘퇀파이’ 리커창, ‘태자당’ 시진핑에 서열 밀려… 시진핑은 1997년 열린 제15차 당대회 투표에서 중앙위원에 낙선한 뒤 중앙위원 후보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후진타오가 조직부문을 주관하던 2002년의 제16차 당대회 때는 상황이 달랐다. 

국무원 간부들의 전언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직접 시진핑을 “차기 지도자 집단의 후보 중 한 명으로 강력하게 추천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당대회를 앞두고 인사 조정을 매듭지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장쩌민·쩡칭훙 두 사람이 시진핑의 이름을 돌연 추천 리스트에 올린 시점에서 승부는 났다. 후진타오는 이전에 자신이 강하게 추천했던 시진핑을 거절할 수 없었다.” 시 위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거의 일치한다. 그는 “재미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꾸준하며 실수 없이 일상 업무를 수행하는 태자당”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시 위원은 혹 비즈니스에 손을 대고 있지는 않을까? 물론 그 자신은 비즈니스에 손을 대고 있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베이징·상하이·다롄(大連) 등지를 기반으로 토지개발, 아파트 건설 등을 가속화하는 ‘바이위(白羽)’라는 부동산회사가 그와 관련 있다는 것은 ‘업계의 상식’으로 통한다. ‘바이위’라는 회사명도 그의 성인 ‘시(習)’ 자를 파자해 거꾸로 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실제로 이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도 그의 친형인 시위안핑(習遠平)이라고 한다. 시위안핑은 인민해방군 외국어학원 출신으로 군 관련자에서 사업가로 전향한 인물이다. 중국에서는 아랫사람이 항상 윗사람의 얼굴을 살피며 움직인다. 일단 기득권을 가진 쪽에 순풍이 불면 그 기세는 멈추지 않는다. 시 위원과 마찬가지로 태자당의 유력 멤버인 위정성(兪正聲) 상하이시 서기는 최근 상하이시의 고급간부를 대상으로 한 내부 강의에서 노골적으로 “시진핑 동지를 배우자”라고 주장했다.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 쩡칭훙의 아들 쩡웨이는 오스트리아 이민비자를 취득해 한때 “실질적 망명”이라고 전해졌다. 하지만 여러 간부들은 실제로는 “관심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뿐, 언젠가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했다. 

태자당은 지금도 팽창을 계속하는 셈이다. 앞서 말한 국무원의 한 중견 간부는 “제 아버지는 지극히 평범한 중급 공무원입니다”라고 새삼스럽게 강조한 뒤 심각한 표정으로 “이미 불꽃이 튀고 있어요”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당대회가 끝난 직후 중난하이(中南海·중국 지도부의 집단 거주지)에서는 이미 다음 당대회, 즉 2012년의 제18차 당대회를 대비한 “권력투쟁이 격화하고 있다”는 것. 다음 당대회에서는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9인 멤버 중 시진핑과 리커창을 제외한 7명이 연령규정에 따라 은퇴한다. 

지금은 시진핑이 리커창에 비해 우위에 있어 차기 총서기의 자리에 가장 가까이 있다. 하지만 리커창에게도 ‘역전의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원자바오 총리가 2년 후 이맘때쯤 은퇴를 신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남쪽지방의 이상기상 사태 때 원 총리가 각지를 돌며 맹활약을 보인 것은, 자신이 베이징에 없어도 총리 업무를 대행할 수 있는 리커창이 있다는 것에 대한 어필이기도 하다.” 만일 원자바오 총리가 사임하면 규정에 따라 현재 수석부총리라고 할 수 있는 리커창이 총리로 승격한다. “총리는 서열 3위의 직책이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리커창은 시진핑보다 서열이 높아진다. 그러고 나서 당대회까지 약 2년 반 동안 리커창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강화할 수 있다.” 

중난하이에서는 이것이 리커창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원 총리의 결사 전법’이라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이에 대해 앞서 언급한 고급간부의 자제는 “그 가능성이 제로인 것은 아니다”라면서 “어쨌든 연 8% 이상의 성장률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 이상의 성장 달성’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이는 단순히 실업자 축소, 신규취업인구에 대한 일자리 보장, 재정수입 확대 등의 경제적 의미만 지니는 것이 아니다. 연간 8% 이상 성장 달성이 관건 기득권 계층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농민세 폐지, 의무교육 무료화, 의료보험 도입 등과 같은 친민정책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서는, 또 그 연장선에서 ‘태자당 대 퇀파이’ ‘중앙 대 지방’ ‘간부 대 인민’ 등 거의 모든 갈등과 모순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성장률인 것이다. 

당 중앙의 요직을 역임한 한 고참 간부는 이 결사 전법의 진의를 이렇게 해설했다. “지금처럼 외발자전거식 조업이 계속될 리 없다고 후 주석과 원 총리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옳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모든 톱니바퀴의 움직임이 어긋나게 될 것이다. 그때야말로 진짜 권력투쟁이 시작된다.” 이어 그는 부연했다. “원 총리는 온몸으로 변화를 느끼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 한층 더 큰 위기에 직면하면 원 총리는 온몸을 바쳐 열심히 뛸 것이다. 또 문제 해결에 대한 전망이 보이면 깨끗하게 리커창에게 바통을 넘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위기 때는 도움이 안 되는, 평화시의 제왕인 시진핑과 리커창의 대비도 명백해진다. 물론 서열을 역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리커창이 강력한 총리가 되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대략 그런 계획 아니겠는가?” 그에게 “중국 인민은 퇀파이와 태자당 중 어느 쪽 인물을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위기라는 것은 기득권의 이익까지 무너뜨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퇀파이에게도 기득권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태자당 정도까지는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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