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의 실권방식은 화국봉보다 점진적이고 은밀하다.

 시진핑의 실권방식은 화국봉보다 점진적이고 은밀하다.

시진핑 실각설 힘빠졌지만…"어떤 권력도 마지막 날 있다" | 중앙일보

글: 진가량자(陳家梁子)

예상했던 것처럼, 시진핑은 4중전회에서 여하한 직위도 잃지 않았다. 필자는 이미 중공고위층간에 이미 타협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었고, 시진핑은 21대때 절차에 따라 체면을 유지하면서 사임하게 될 것이다. 다만 그는 이미 군권을 완전히 상실했고, 큰 정도로 당무정무와 외교상의 중대의사결정권을 잃었다. 21대를 개최하기 전에, 그는 기본적으로 배우역할을 하지, 감독역할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량을 비교해보면, 반시진핑진영이 크게 우세하고, 시진핑을 압박하여 하야시키는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반시진핑진영은 당내와 군내의 현임과 이임고위관료 혹은 고위장성이다. 아마도 시진핑의 일부 심복들, 주로 경제관료들까지 그를 지지하지 않거나 혹은 그를 반대하고 있는 것같다. 다만, 대국을 고려하여, 시진핑에게 여전히 명목상의 직위를 유지시키는 것이 중공통치의 안정과 연장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시진핑도 중도에 하야하는 당수가 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고분고분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기운을 내서 전력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다. 쌍방은 그리하여 타협을 이룰 수 있었다.

9명 상장(上將)에 대한 처리는 9월말의 정치국회의에서 통과되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군부의 압박이 아니라. 쌍방은 이 문제에 이미 의견이 일치했다. 원래 9월말의 정치국회의공보에서 발표되었어야 했다. 작년 7월말 3중전회전의 정치국회의때 리샹푸(李尙福)의 당적을 박탈하는 것을 공표한 것처럼. 그 중 8명은 4중전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드시 4중전회전에 정치국에서 공표하여야 한다. 즉 당중앙의 처리결정이 나와야 한다. 최대한 이 사건의 영향을 줄이기 위하여, 먼저 4중전회 1업무일전에 공표하기로 한 것이다. 근 20일을 늦추어서, 이 사건의 영향이 미치는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기 위하여. 한 마디로 말해서, 선전을 조용히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국방부에서 발표하고 신화사에서 발표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시진핑의 정책은 당내와 군내의 보편적인 불만을 샀다. 이는 권력을 잃게 된 기본원인이다. 이런 불만은 그의 정책을 진정으로 관철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계속하여 좌절당했을 뿐아니라, 그로 하여금 장기간 심리적, 생리적인 압박을 받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신체건강의 악화가 가속화되었다. 그리하여 정력을 충분히 투입해야하는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국가주석의 직무만이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국가주석의 직무를 사임한 후에는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얼굴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 첫째는 그의 신체상황이 그렇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고, 둘째는 실권을 장악하지 못하면, 국가주석으로서 외교상의 업무를 결정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국가주석은 잠시 돌아오는 것은 그저 의례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시진핑은 화국봉과 마찬가지로 권력을 점차 빼앗기는 과정에 놓여 있다. 다만 화국봉이 권력을 잃었을 때보다 더욱 장기적이고 더욱 은밀하다. 이는 투쟁쌍방의 우세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시진핑은 화국봉보다 더욱 강하다. 시진핑사상은 당장에 들어갔다. 만일 중공이 시진핑을 과오로 사직하게 만들려면, 반시진핑세력은 더욱 격렬할 수단을 써서 하야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장을 수정해야 한다. 이건 큰 일이다. 다른 한편으로, 반시진핑세력도 천하를 빼앗은 1세대선배들만큼 명망이 높지 않다. 이임한 정치국상위들도 시진핑과 마찬가지로 권력의 계승자들이다. 시진핑과 위신을 따지면 비슷비슷하다. 창업세대들은 자리에서 떠나도 인심이 식지 않았다(人走茶不凉). 그러나, 현재 이임한 고위관료들은 기본적으로 자리에서 떠나면 인심도 식는다(人走茶凉). 다만 영향력이 완전히 상실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반시진핑세력도 과격한 수단으로 국면이 통제불능하게 되는 것을 꺼린다. 그리하여, 선전에서 시진핑의 이미지를 보호해줄 필요가 있다. 공개적으로 그를 비판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단지 암중으로 나타낼 뿐이다. 선전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필요할 때면 목소리높여 그를 선전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면 조용히 지낸다. 외부에서 중공내부에 금이 갔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사회안정을 도모한다.

그렇다면, 이임한 정치노인들은 어떻게 영향력을 발휘할까? 필자의 생각에 비공식적 영향력이다. 소위 정치노인들이 중앙결책의사기구를 통하여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말은 믿지 않는다. 이건 아주 분명하다. 중앙결책의사기구는 중앙재경위원회등의 총칭이지, 새로 성립한 기구가 아니다. 가능성이 큰 것은 반시진핑세력은 주로 인사조정을 통하여 시진핑의 권력을 약화시킨다. 당정계통에서, 스타이펑이 리깐제를 대체하여 중앙조직부장이 되었다. 군대내에서는 장셩민을 승진시켜 먀오화를 대체했다. 장셩민은 대단하다. 한손으로 사람을 체포하고, 다른 한손으로 사람을 기용하고 추천한다. 아마도 이 원인으로 인하여 그를 정치국에 진입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시진핑과 장여우샤는 모두 그런 상황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즉, 스타이펑과 장셩민은 시진핑의 말을 듣지 않는다. 반시진핑진영에 속하고, 반시진핑의 재임중이거나 이임한 고위관료의 의견을 듣고 그들의 의견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의 권력이 여전히 공고하다는 일부 견해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이다. 천하를 빼앗은 혁명지도자들 예를 들어 모택동, 스탈린의 고위간부에 대한 숙청을 시진핑의 심복에 대한 숙청을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시진핑은 아무런 공로도 없다. 당내와 당외에 군중기초도 없다. 자신의 심복을 숙청한다는 것은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격이고, 자살행위이다. 과거의 황제와 시진핑을 비교하는 것은 더욱 말이 되지 않는다. 가천하(家天下)의 정치운용규칙은 당천하(黨天下)와 큰 차이가 있다. 황제의 합법성은 혈통에서 온다. 황제의 적친이 아니면 황제에 오를 수가 없다. 황제가 숙청을 한다고 하더라도 역작용은 크지 않다. 그러나 당의 지도자의 합법성은 정확한 정치노선에서 나온다. 당을 생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시진핑은 당을 구하고자 하지만, 그 반대가 되어 버렸고, 객관적으로 당을 구렁텅이에 몰아넣었다. 당은 반드시 적당한 때에 그를 버려야 한다. 그래야 멸망을 피할 수 있고, 안정을 되찾고 권력을 연장할 수 있다. 일단 당수의 노선이 당에 의헤 버려지게 되면, 새로운 당수를 올려 대체시켜야 한다. 황제는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죄기조(罪己詔)"를 내릴 수 있지만, 하야하지는 않는다. 당의 영수는 노선이 일단 공개적으로 비판받게 되면, 하야해야 한다.

군내, 당내에서 시진핑의 심복들이 숙청당했다. 이는 절대로 시진핑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분명히 반시진핑세력이 기획하고 추진한 것이다. 가능한 상황은 반시진핑세력이 먀오화, 허웨이둥등의 부패증거를 확실히 잡아서, 시진핑과 다른 정치국상위에 제공하였고, 시진핑은 부득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시진핑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이들 심복들까지 지킬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는 그들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그들의 무능력에 오히려 화가 났다. 내심은 원한으로 충만하다. 누가 너희에게 부패하라고 했느냐. 그리하여 상대방에게 약점을 잡히게 되었단 말인가. 당해도 싸다!

저명한 시사평론가인 야이타 아키오(矢板明夫)도 시진핑의 권력이 매우 공고하다고 본다. 그는 이렇게 본다. 먀오화와 허웨이둥은 시진핑의 이름을 내세워 자신의 소그룹을 만들었고, 그로 인하여 시진핑의 분노를 샀다. 시진핑은 그들과 일당을 제거했는데 이는 옹정제가 연갱요를 제거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건 말이 되지 않는다. 연갱요는 망자존대(妄自尊大)하고, 옹정제에게 무례를 저질러 옹정제가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먀오화와 허웨이둥은 시진핑에게 매우 공손했고, 전혀 거스르지 않았다. 그러니 둘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후계자문제. 4중전회에서 후계자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내년 5중전회에서도 명확히 하지 않을 것같다. 혹은 중공은 앞으로 사전에 후계자를 명확히 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전에 후계자를 명확히 정하는 것은 미래의 당수로 하여금 일찌감치 업무에 익숙해지도록 하여, 승계받은 후 국면을 장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마도 시진핑이후, 중공은 더 이상 당수에게 지나치케 큰 최종결정권을 부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사전에 후계자를 명확히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당수의 이름이나 사상을 당장에 넣지도 않을 것이다. 시진핑 및 그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부정하지는 않지만, 약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모택동사상과 등소평이론을 강조할 것이다.

중공의 미래 정책방향은 어떻게 될 것인가? 필자의 생각에 시진핑의 대외강경노선은 약간 시정될 것이다. 만일 등소평의 도광양회는 최대한 미국의 요구를 만족시키면서 경제발전을 꾀한 것이라면, 시진핑의 대외노선은 경제발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강경함을 드러낸 것이고, 말에서나 행동에서 모두 그러했다. 미래 중공의 정책은 양자의 사이가 될 것이고, 대외적으로 강경함을 드러내지만, 경제발전에 손해되지 않는 범위내에서 그렇게 할 것이다.

시진핑의 실권방식은 화국봉보다 점진적이고 은밀하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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