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와 나, 은빛 귀이개로 이어진 시간들

 언니와 나, 은빛 귀이개로 이어진 시간들

 조정미 기자

30년 전에 썼던 시들을 하나씩 꺼내어 다시 읽어보는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시를 통해서 20대의 추억들을 돌이켜보면, 50대 중반의 나는 그곳으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와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사람은 6개월에 한번씩 온 몸의 세포가 갱신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보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단 하나의 세포도 동일한 것이 없겠지요. 나의 동일성을 인증해주는 것은 기억일 뿐입니다. 기억을 되짚어주는 "시" 한 편 한 편에 기대어,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삽화로 형상화 해보는 작업도 함께 합니다.

귀를 후비던 시절, 우리 가족의 온도

본래 우리 식구들은 자주 서로의 귀를 후벼줬다. 아마도 엄마의 취미였을 것이다. 엄마는 매일 저녁 무릎에 우리를 눕혀놓고는 귀를 후벼줬다. 우리도 철이 들면서 엄마 귀를 후벼줬다. 서로를 쓰다듬어주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가까움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곤 했다.  

언니가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게 되면서 나도 같이 서울로 유학을 왔는데, 그때부터 나는 혼자 귀후비기에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언니는 항상 나에게 귀를 후벼달라고 요청했다. 다소 귀찮기도 했지만, 우리 언니 귓구멍 깊은 곳에 있는 덩어리를 사냥하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긴 했다. 서로의 협력을 통해 큰 덩어리를 포획하게 되면 성취감을 공유하기도 했고, 가끔은 아프다고 참으라고 실갱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가족간에 서로의 귀를 후벼주는 풍경은 내 일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어른이 되면서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일이 적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친구들, 동료들과 저녁시간을 보내고 밤늦게 집으로 들어오는 일이 빈번했으니 말이다. 

또다시 세월이 흘러 가정을 이루게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남편은 귀후비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신혼 초에 귀를 파주겠다고 이야기했더니 펄쩍 뛰며 도망간 이후로 다시는 기회가 없었다. 남편은 면봉으로 귀를 소제할 뿐 스스로도 귀이개를 사용하지 않는 걸 보니 영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면봉으로는 닿지 않는 자리, 가족이라는 귓구멍

오늘 방청소를 하다가 귀이개를 우연히 발견하고는 혼자서 한참을 귀를 후볐다. 면봉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 어떤 영역이 있다. 그 영역은 귀이개가 아니고는 해결되지 않는다. 몰입 상태로 귀를 후비면서 오래전 추억에 사로잡혔다. 돌아가신 엄마 무릎에 누워 귀를 후비던 그 시간들. 언니와 서로의 귀를 후벼주던 그 순간들... 

그리고 궁금해졌다. 우리 언니는 요즘도 형부 귀를 후벼주고 있을까? 형부는 언니 귀를 후벼주고 있을까?

언니는 딸냄이 키우면서 귀를 후벼줬을까? 우리 조카 은수는 자기 엄마 귀를 후벼주며 성장했을까?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다음에 만나면 물어봐야겠다.

우리 자매가 엄마 아빠 없는 서울의 하늘 아래, 공덕동의 자취방에서 서로의 귀를 후벼주던 그 시절.  나는 항상 독립적이고 싶어했지만, 우리 언니의 품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 채 55세가 되었다. 남은 인생도 언니와 함께 보낼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30년 전쯤에 언니와 나의 귀후비기를 소재로 쓴 시를 다시 꺼내 읽는다. 그림은 제미나이랑 여러 차례 상의하면서 나노 바나나 프로로 그렸다. 

귀후비기

그녀는 반짝이는 은빛 귀이개를 들고 나를 찾는다 혼자 귀후비기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귀찮다고 말한다. 그러나 결국 그것을 넘겨받게 된다. 어김이 없다. 늘 그렇다. 금속성의 그것은 나의 체온을 채 띠우기도 전에 그녀의 귓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입구 근처를 살살 긁어 주면 그녀에겐 쾌감이다. 그러면 나 역시 귀찮다는 생각 따윈 다 잊어버리고 흥이 나서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다. 큰 덩어리 하나가 포착된다. -- 큰 덩어리도 포착되지 않는 귓구멍은 금세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 귀이개 그것의 가늘고 긴 키를 돋우어, 내 손끝의 섬세함이 가슴 떨림(요게 늘 문제다)을 입고 그것에로 다가가면, 그녀에겐 그것이 곧 고통이 된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짜증스럽다 더 이상 집도할 수 없음을 통보한다. 그녀는 좀더 천천히 조심스럽게 후벼 달라고 하지만 나의 귀후비기는 이미 끝났다 끝나 버렸다

나를 향해 열렸던 귓구멍이 닫히고 있다. 늘 조급함과 자기 도취가 문제였다

(1995, echang)


추신 : 《굴비사촌》은 1997년에 도서출판 토마토에서 출간했던 저의 첫번째 시집입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썼던  시들을 묶었습니다. 도서출판 토마토는 통신문학을 지향했던 "버전업"이라는 문예지를 출간했던 출판사입니다. 30년 전에 썼던 시들을 하나씩 꺼내어 다시 읽어보는 연재를 하려고 합니다. 인공지능에게 삽화를 부탁해서 그 시절을 그림으로 소환해 보려고 합니다. l 조정미 기자(시인,
상명대학교 연구교수)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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