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출판계를 주름잡은 『카프시인집』… 그 비결은 무엇이었나?

 1930년대 출판계를 주름잡은 『카프시인집』… 그 비결은 무엇이었나?

 조정미 기자 (echang@naver.com)

1930년대 우리 출판계의 베스트셀러로는 카프(KAPF) 작가들이 펴낸 사회주의 시집 『카프시인집』이 손꼽힌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전희선은 자신의 논문에서 임화의 세련된 감정과 권환의 약자 공감이 독자를 사로잡았다고 분석한다. 이념을 넘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인 문학의 힘을 논문과 함께 살펴본다.

1930년대, 자본주의가 팽창하던 식민지 조선의 서점가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제의 탄압으로 이미 해산된 사회주의 예술 단체 ‘카프(KAPF)’의 시집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카프는 1931년 11월 24일에  『카프시인집』을  출간하였는데 불과 4달도 되지 않아서 재판을 출간하게 된다. 이때 조선일보에 『집단』의 계급적출판을 지지하라!! "는 카피와 함께 신문광고를  내며 『카프시인집』의 재판 출판과 『카프7인작가집』을 출간하였다는 사실을 알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캅프시인집』 재판을 내면서 초판 15전이던 책값을 10전으로 내렸다는 사실이다. 15전도 당시 출판물 가격으로는 매우 저렴한 것인데, 여기에서 더 가격을 대폭 내린 것이다. 그들의 출판활동이 영리에 있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며, 대중의 호응을 크게 받으면서 고무된 카프(KAPF)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된다. 

왼쪽은 『캅프시인집』의 영인본 표지, 오른쪽은 조선일보 1932년 3월 24일자에 실린 광고.

그 결과 카프는 일제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았고 1935년 해산에 이르게 되지만, 이들이 출간한 책의 명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카프 해산 이후인 1935년에 대중잡지 『삼천리』가 주요 서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카프시인집』(1931)은 당대 최고의 인기 작가였던 이광수의 장편소설에 이어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당히 이름을 올랐기 때문이다. 이미 조직은 무너졌지만, 그들이 남긴 시집은 전국 독자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며 살아남은 것이다. 대중들은 왜 다소 과격할 수 있는 이념을 담은 이 시집에 그토록 열광했을까?

전희선의 논문 「베스트셀러로서의 『카프시인집』 의미 연구」을 통해 그 원인을 살펴볼 수 있다. 연구자는 이 현상을 단순히 ‘시대의 유행’으로만 보지 않는다. 논문은 이 시집이 사랑받은 비결을 ‘감정 자본(Emotional Capital)’과 ‘약자에 대한 공감’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내며, 시대를 뛰어넘는 문학의 힘을 조명한다.

이념을 넘어선 ‘세련된 슬픔’, 임화의 낭만성

연구자는 『카프시인집』이 성공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으로, 수록된 작품들이 보여준 ‘감정의 힘’에 주목한다. 당시 카프는 조직 노선을 더욱 강경한 투쟁 중심으로 전환하던 시기였기에, 대부분의 시들은 직설적인 선전과 선동의 언어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인 작품은 임화의 <우리 오빠와 화로>였다. 이 시는 오빠가 노동운동을 하다 검거된 비극적 상황을 다루면서도, 격한 분노 대신 누이동생의 차분하고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내세웠다.

사랑하는 우리 오빠 어저께 그만 그렇게 위하시던 오빠의 거북무늬 화로가 깨어졌어요.

(...) 저뿐이 사랑하는 오빠를 잃고 영남이뿐이 굳센 형님을 보낸 것이겠습니까

- 임화, <우리 오빠와 화로> 중

연구자는 이에 대해 “화자가 자신이 처한 위기 상황을 차분한 어조로 체계적으로 표현함으로써 현실적 고통을 낭만적 이상으로 끌어올렸다”고 분석했다. 당시 지식인과 학생 독자들은 문학을 ‘감정의 분출’이자 ‘낭만’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임화의 시가 보여준 세련된 감정 표현은 이들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했다는 것이다. 즉, 거친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에 감정을 세련되게 다루는 능력이 독자들을 설득하는 강력한 자본이 된 셈이다.

1931년 당시 수형자 카드에 기록된 임화(1908~1953)의 사진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가장 낮은 곳의 목소리, 여성 노동자를 호명하다

두 번째 비결은 ‘말하는 주체의 발견’이다. 논문은 권환의 시 <우리를 가난한 집 여자라고>에 주목한다. 이 시는 당시 사회의 최약자였던 ‘여성 프롤레타리아(노동자)’를 화자로 내세웠다.

우리들을 여자라고
 가난한 집 헐벗은 여자라고
놈들 마음대로 해도 될 줄 아느냐
(...) 죽을 때까지 항쟁하리라 싸우리라
- 권환, <우리를 가난한 집 여자라고> 중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 노동자는 가난과 성차별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목소리가 소거된 존재였다. 연구자는 자크 랑시에르의 이론을 빌려, 이 시가 “소외된 여성 노동자를 ‘말하는 주체’로 세움으로써 기존 사회 질서에 균열을 냈다”고 평가했다.

특히 작가인 권환이 교토제국대학 독문과 출신의 엘리트 지식인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식인이 자신의 언어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여성 노동자의 고통과 투쟁 의지를 대변해낸 것이다. 이는 당시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지식인 독자들에게 ‘우리가 누구와 연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1943년 4월 3일 『캅프작가7인집』 출판기념회로 모인 카프회원들. 조선일보에서는 이 사진의 소개글로 "카프시인출판기념회"라고 달았다가, 다음날 "카프작가7인집"의 출판기념회였다는 정정보도를 내기도 하였다. 그만큼 『캅프시인집』이  출간된지 4달도 되지 않아서 재판을 냈다는 것은 당시의 조선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출처: 조선일보 1932.04.07)

100년 전 베스트셀러가 던지는 질문

결국 1930년대 『카프시인집』의 성공은 단순한 이념의 승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의 힘’과,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는 ‘지식인의 성찰’이 결합된 결과였다.

이 논문은 “베스트셀러로서의 『카프시인집』은 독자들에게 흥미와 지식,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감성을 제공했다”며 “이는 당시 독자들이 독서물을 통해 요구했던 바에 부응했음을 보여준다”고 결론지었다.

이념의 시대, 가장 정치적인 시집이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이 역설적인 현상은, 오늘날 문학이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전희선의 논문 "베스트셀러로서의 『카프시인집』 의미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논문 제목 : 베스트셀러로서의 『카프시인집』 의미 연구
저자 정보 : 전희선
게재 정보 : 한중인문학연구  2018. 제61집, pp.29-52
e아티클 : http://www.earticle.net.ssl.proxy.uhs.ac.kr:8010/Article/A343722

#감정 자본(Emotional Capital)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자본 개념을 확장한 것으로,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가 구체화했다. 자신의 감정을 파악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며, 상황에 맞게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사회적·경제적 자산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논문에서는 임화의 시가 보여준 세련된 감정 표현이 독자의 공감을 얻는 자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말하는 주체 세우기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 철학 개념과 연결된다. 사회적 역할이 고정되어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존재(예: 여성 노동자)가 자신의 목소리로 고통과 권리를 이야기할 때, 기존의 질서(치안)에 균열이 생기고 진정한 정치가 시작된다는 의미다. l 조정미 기자 echang@naver.com 

※ 이 기사는 2024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습니다.(NRF-2024S1A5B5A16026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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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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