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나타난 공자(孔子)의 세계관 [황준연]

  『논어』에 나타난 공자(孔子)의 세계관 [황준연]

석담 김한희

『논어』에 나타난 공자(孔子)의 세계관*1)

The World View of Confucius
in the Book of the Analects of Confucius

황 준 연: 전북대학교

◈ 목 차 ◈

Ⅰ. 머리말
Ⅱ. 공자(孔子), 천하를 주유(周游)하다
Ⅲ.『논어』에서 공자(孔子)가 그리는 세계는 무엇인가?
1. 공자(孔子)의 세계관
1) 인문주의 ― ‘인’(仁)의 실현
2) 자연주의 ― ‘영귀’(詠歸)의 꿈
2. 공자(孔子) 세계관의 특질과 의의
- 군자(君子)와 ‘인’(仁)의 공공성(公共性)을 중심으로
Ⅳ.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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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공자(孔子)의 시대는 어지러운 난세(亂世)였다. 이러한 시기에, 공자는 ‘仁’을 주장함으로써 폭력을 잠재우고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공자가 주장한 ‘仁’은 일종의 감화력(感化力)이다. ‘인’의 개념은 공자(孔子)의 세계관을 표현하는 대표적인개념이고, 그 뜻은 자비로운 마음, 어짐, 인간 애(愛), 상호간의 사랑, 고결함, 남에 대한 배려(care) 등으로 풀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는 『논어』 전편을 통하여 모두 109次 등장한다.

문자적인 측면에서 ‘仁’자를 고찰하면,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지만, 필자는‘사람 인’(人)자와 ‘두 이’(二)자의 결합설을 취한다. 공자의 ‘仁’은 사람 ‘사이’[間]를매개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사적(私的)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공공성(公共性)을 내포하고 있다. ‘인’이 실현되는 사회는 인문주의가 꽃을 피우고,자연주의와 조화(調和)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야 말로 공자가 그리던[畵] 사회, 국가, 세계이다. ‘인문주의’는 공동체에 仁․義․智․禮의 도덕적 규범이 구속력을 갖는 질서를 말한다. ‘자연주의’는 도덕적 규범 밖의 자유로운 세계이다.

『논어』에 보이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군자’(君子)이다. 군자는 ‘仁’을 구하는 자이다.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는 공공성(公共性)의 개념이 들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公共)이란 ‘사’(私)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사적으로 편당 짓지 않는 공공의 ‘의’(義)를 담고 있다. 군자는 사적(私的)인 세계를 아주 도외시하거나 혹은 무시하는 자는 아니다. 만일 ‘私’의 세계를 전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도외시 한다면, 이는 참된 군자가 아니다.

군자는 사적(私的)인 욕심보다는 공공(公共)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선비[君子儒]이다. 도덕의 이름아래 ‘멸사’(滅私)에 이르는 극한의 수단을 취해서는안 되겠지만, ‘공공을 위하는 마음’[奉公]만은 버려서는 안 된다. 군자는 자신의 이익에 아주 무관한 자는 아니지만, 대체로 공공(公共)의 이익에 관심을 갖는 자이다. 그와 같은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경세’(經世)를 실천하는 자이다.

이와 같이 공자의 철학은 한 마디로 ‘인’에 집중되어 있다. ‘인’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야 말로 공자의 이상이다.『논어』는 이와 같은 공자의 이상(理想)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는 동시에 인류의 고전으로서 작용할 수 있다.

주제어: 공자(孔子), 인(仁), 공공성(公共性), 세계관, 인문주의, 자연주의

* 이 논문은 2010년도 전북대학교 연구기반 조성비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1)

Ⅰ. 머리말

우리들은 모두 지구별(planet earth) 여행자이다. 지리적 측면에서 여행자들은언제나 자신이 어디에 머물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하여 점검하면서 살아간다.현대 문명은 인간의 지리적 위치 측정을 위하여 필요한 기구(氣球; 인공위성)를발명하였고, 실시간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 누구나 위성 위치 확인 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을 이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그러므로 지금은 사막을 헤매다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탐험가가 있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1) 또한 자동차의 발명으로 인하여 낙타(駱駝)는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문화적 측면에서 우리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역사상 중국, 일본, 한국, 비에트남 등 동아시아 인민들은 유교 문명(Confucian Civilization)의 그늘 속에서 살아왔다. 오늘날 동아시아에 있어서 외면상 유교 문명의 상당 부분이 해체(解體)되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사고(思考)와 행동에는 유교적 세계관 내지 가치관이 많이 남아있다. 그 점에 있어서 동아시아 사람들은, ‘유교’라는 동아시아의 문화적 GPS를 들여다보아야 한다. 우리의 삶이 문화의 기반(基盤; matrix)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한, 동아시아 인민은 현존하는 유교 문화의 영향을 벗어날수 없다.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은 ‘나’ 개인의 주체적 결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유교 문화 영역 속에서 전승되어온 어떤 체계(system)의 결과이다.2)오늘날 한국은 모범적인 그리스도교 국가가 되었다. 한국인들이 그리스도교『성서The Bible』를 팔에 끼고 일요일마다 교회를 향하여 행군하는 모습을 보면그와 같은 생각을 버릴 수 없다.3) 만일 남한(南韓) 땅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수도 서울의 밤거리를 걸어보길 권장한다. 불야성(不夜城)을 이룬 서울의 밤거리는 생동하는 한국인의 매력인데, 곳곳에 솟아있는 교회 십자가의 불빛을 본다면 대단히 놀랄 것이다.4)

1) 네비게이터의 발명으로 인하여 스벤 헤딘(Sven Hedin; 1865∼1952)처럼 사막에서 길을 잃고 생사(生死)의 경계를 헤매는 탐험가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2) 미국 미시간대학교 심리학과 리쳐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 교수는 문화 형태에 따라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하였다. cf. 리쳐드 니스벳(Richard E. Nisbett),『생각의 지도』(The Geography of Thought), 최인철 옮김(김영사, 2009), p. 17.

3) 필자가 말하는 그리스도교란 카톨릭[舊敎]과 프로테스탄트[新敎]를 포함한다. 신도의 숫자는 정확하지 않다. 교단마다 주장하는 인원이 다르다. 남한의 그리스도교 신도는 대략 1,000만 명을 넘는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남한 인구 5,000만 명의 1/5에 해당한다. 쥴리아 칭(Julia Ching; 秦家懿;1934∼2001) 교수는 1992년 당시 남한 인구의 1/4이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보았다. cf. JuliaChing, Chinese Religions (The MacMillan Press Ltd., 1993), p. 199.

4) 한국(남한)의 그리스도교 전래(傳來)는 천주교(Catholicism)로부터 시작하였다. 연대상으로는1783년∼1840년의 일이고, ‘사옥’(邪獄) 혹은 ‘박해’(迫害)의 역사이다. 필자의 논문이 있다. cf. 황준연(黃俊淵), “조선후기 신유학과 서학의 세계관에 대한 차이점”, 『汎韓哲學』, 제42호 (汎韓哲學會, 2006).

반면 조용한 산사(山寺)를 찾는 사람은 또다시 놀랄 것이다. 한국의 산 속에는불교적 유산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다.5) 이와 같은 분위기에도 한국에서 그리스도교 신도와 불교 신자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 볼 수는 없다.― 약간의 갈등이 없는 바는 아니다. 2010년 10월 서울 ‘봉은사(奉恩寺) 땅밟기’의경우 ― 한국에서 종교 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공존(共存)하는 이유는 어디에있을까?6)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처럼 표피적(表皮的)인 외모의 모습 뒤에 다른 모습이 있다. 한국의 전국 방방곡곡에 산재(散在)한 무덤들을 보면 알 수 있다.7) 오늘날 한국인들은 명절 때 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동반하고, 조상(祖上)의 묘소를 찾는다. 여기에는 그리스도교 신도, 불교신자들의 구별이 없다. 조상의 묘소는 아직까지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신성(神聖)한 공간이며, 그곳을 찾는 일은 유교 문화의뿌리가 남아서 숨을 쉬고 있음을 증명해준다.8) ― 조상 숭배 사상은 유교 문화의대표적인 잔재(殘滓)이다. 그러나 묘소를 찾는 관습은 젊은 세대에서 점점 엷어져가고 있고, 미래에 사람들이 묘소를 찾는 일이 점점 드물게 될 것이다. 아주 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 이와 같은 현상을 놓고 볼 때, 문화 및 종교의측면에서 한국은 싱크레티즘(syncretism)9)의 전형적인 국가라고 말할 수 있다.

5) 불교가 한국에 전래된 일은 매우 역사가 깊다. 고구려 제17대 임금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A.D.372년)의 일이다. cf. 김영태(金煐泰), 『韓國佛敎史』(經書院, 2004).

6) 한국에서 불교도와 그리스도교가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공존하는 이유를 유교가 사회 일반의 차원에서 완충(緩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 있다. (Julia Ching의 견해라고 함)

7) 무덤의 존재가 바람직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는 현실적인 존재의 모습이다. 필자는 향후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뛰어난 지도자가 출현하여, 산간에 흩어진 묘소들을 정비하고, 산지(山地)의질서를 잡아줄 것을 소망한다.

8) 유교의 수입은 고구려 소수림왕(小獸林王) 2년(A.D. 372년)에 태학(太學)을 세워 귀족의 자제를교육하였다. 유학(儒學) 교육의 체계적인 시작은 A.D. 640년 신라(新羅) 선덕여왕 9년의 일이다.신유학(新儒學; 朱子學)의 수입은 고려(高麗) 시대 후기의 일이다. cf. 현상윤(玄相允), 『조선유학사』 (현음사, 2003).

9) 이는 서로 다른 종교의 복합적 출현을 의미한다. 대개는 이 용어(用語)가 부정적인(negative) 뜻을 내포하고 쓰이지만, 여기서는 다수 종교의 일시적 혼재(混在)를 의미하는 정도로 사용하였다.cf. Larousse, Dictionary of Beliefs and Religions (Larousse, 1994), p. 509.

Ⅱ. 공자(孔子), 천하를 주유(周游)하다

공자(孔子)의 생평(生平)에 대하여는 아주 잘 알려져 있으므로, 새삼스럽게 그의 생애 전반을 서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의 생애는 대체로 현재의 산동성곡부(曲阜) 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그가 산동성에 속하였던 노(魯)나라를 떠나서 천하를 주유(周游)한 사실은 필자의 관심을 끈다.10)

우리는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공자의 여행 행적(行蹟)을 볼수 있다. 그는 50대 이후 14년 동안, 열국(列國)을 주유(周游)하였다.11) 이 여행의과정을 추적하면 우리는 공동체(사회, 국가, 세계)에 대한 공자의 관념을 읽을 수있다. 공자의 열국(列國) 순례는 일반적으로 출사(出仕)를 구한 것으로 이해되고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보다 더욱 큰 그림[畵]이 있었다고 믿는다.

공자가 채(蔡)나라에 머문 지 3년 되던 해, 오(吳)나라가 진(陳)나라를 공격하는사건이 발생한다. 이웃의 초(楚)나라가 공자를 초빙하려하자, 진(陳)과 채(蔡)는 함께 이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 바람에 공자 일행은 들판에서 발이 묶여 식량이 떨어지고 제자들 가운데 병(病)에 걸린 사람이 발생한다.12) 이 때 공자는 자로(子路), 자공(子貢), 안회(顔回) 등을 차례차례 불러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詩』에 외뿔소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닌데, 저 광야를 헤매고 다니네.” 라는구절이 있다. 나의 도(道)는 잘못된 것인가? 어찌 이 지경에 처하였을까?13)

이 구절은 세 차례 거듭 나오는 데, 필자가 관심을 갖는 말은 “나의 도(道)는잘못된 것인가?”(吾道非邪)하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로(子路), 자공(子貢), 안회(顔回)의 반응이다. 

대체 공자가 열국(列國)을 돌면서 실현하고자 하는 도(道)는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부(富)의 추구도 아니고,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도 아니었을것이다. 공자가 추구하였던 세계는 ‘仁’의 실현이라고 보아야 한다. 비록 전체적인시스템이 갖추어지지 못하여 그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소망은 천하의평화를 확보함에 있었다. 그러므로 한갓 서생(書生)의 신분으로서14) 쓰라린 고통과, 위험을 무릅쓰고 수레바퀴를 굴려서 각 지역을 떠돌아 다녔던 것이다.15)

10) 공자의 생평(生平)에 대하여 H. G. 크릴(Creel) 교수는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cf.『공자: 인간과신화』, 이성규 역(지식산업사, 1994). 이 책의 원서 이름은 Confucius; The Man the Myth이다.

11) 공자는 B. C. 497년(55세)∼B. C. 484년(68세)까지 14년간 천하를 여행하였다. 그가 여행한 나라들을 추적하면, 갈 때는 노(魯) → 위(衛) → 조(曹) → 송(宋) → 정(鄭) → 진(陳) → 채(蔡) →초(楚)의 순서이고; 돌아올 때는 초(楚) → 진(陳) → 위(衛) → 노(魯)의 순서이다. cf. 낙승열(駱承烈) 편저, 『孔子歷史地圖集』(中國地圖出版社, 2003), p. 70.

12)『논어』위영공(衛靈公)편에 보이는 “君子固窮, 小人斯濫矣.”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13) 원문은 “詩云, 匪兕匪虎, 率彼曠野. 吾道非邪? 吾何爲於此?”이다. cf.『史記』 권47, 孔子世家.

 14) 孔子를 軍事 전략가로 묘사한 중국 영화가 있다. 그는 제갈량(諸葛亮)을 능가하는 전략(戰略)을구사하는 인물로 선을 보였다. 과연 공자는 그토록 유능한 ‘군사 전략가’였을까?

15) 용어의 측면에 있어서, ‘주유’(周游) 혹은 ‘순례’(巡禮)는 고급스럽고,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B.C. 500년대의 중국 대륙의 여행은 목숨을 건 모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Ⅲ. 『논어』에서 공자(孔子)가 그리는 세계는 무엇인가?
1. 공자(孔子)의 세계관

공자의 시대는 어지러운 난세(亂世)였다. 난세란 외부 환경의 악화(惡化)로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와 안정(安定)을 취할 수 없고, 몸이 괴로운 시대를 말한다. 물리적 힘이 난무(亂舞)하는 폭력의 시대에, 공자는 ‘仁’을 주장함으로써 폭력을 잠재우고 평화를 회복하고자 하였다.

공자가 주장한 ‘仁’은 일종의 감화력(感化力)이다. ‘인’은 자비로운 마음, 어짐,인간 애(愛), 상호간의 사랑, 고결함, 남에 대한 배려(care) 등으로 풀이할 수 있는개념이다. 이는 『논어』 전편을 통하여 모두 109次 등장한다.16). 많은 연구자들이지적한 바와 같이, 공자가 소망한 세계는 이러한 ‘인’의 가치가 실현되는 사회이다.문자적인 측면에서 ‘仁’자를 고찰하면,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로『설문해자』에 의하면, ‘仁’자의 구성은 ‘사람 인’(人)과 ‘두 이’(二)의 결합이며, 그뜻은 ‘친하다’[親也]이다.17) 둘째로 갑골문에 의한 조자(造字)이다. ‘仁’자 오른 편의글자 ‘二’자는 갑골문에 의하면, 높다[高]는 뜻이다. 즉 ‘二’자는 고문에 있어서 ‘上’자의 뜻으로 쓰였다.18)

갑골문이 사용되는 시기에 ‘仁’자가 품고 있는 도덕성의 확립에는 다소 의문이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에서 ‘仁’자를 첫째번의 의미, 즉 두 사람(二人; twopersons)의 뜻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이 점을 놓고 본다면, 공자의 ‘仁’은 글자가말하듯이 사람 ‘사이’[間]를 매개하는 개념이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사적(私的)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성(公共性)을 내포하고 있다.(후술)

16) 양백준(楊伯峻), 『논어역주』 (중화서국, 1980), p. 221.

17) 『說文解字』의 원문은 “仁, 親也. 从人, 从二.”이다.

18) 진제(陳濟) 편저,『갑골문자형자전甲骨文字形字典』(長江出版社, 2004), p. 3.  

‘인’이 실현되는 사회는 인문주의가 꽃을 피우고, 자연주의와 조화(調和)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야 말로 공자가 그리던[畵] 사회, 국가, 세계일 것이다. ‘인문주의’는 공동체에 仁․義 ․智․禮의 도덕적 규범이 구속력을 갖는 질서를 말한다. ‘자연주의’는 도덕적 규범 밖의 자유로운 세계이다. 그러나 노장(老莊)에서 말하는 초월적 자유는 아니다.19)

1) 인문주의 ― ‘인’(仁)의 실현

『주역周易』 분괘(賁卦) <단사彖辭>에 “천문을 관찰하여 사시(四時)의 변화를살피며; 인문을 관찰하여 온 세상을 교화(敎化)한다.”20)라고 있다. 정이(程頤; 伊川)는 이에 대하여 “인문은 인리(人理; 人道)의 차례이다. 인문을 관찰하여 천하를교화해서, 천하가 예속(禮俗)을 이룸은 바로 성인이 <분賁>괘를 쓰는 도(道)이다.”21)라고 하였다. 필자가 이해하는 ‘人文’이란 이와 같은 의미이며, 공자(孔子)의 생평(生平)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22)

“천지간 만물 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다.”23)라고 말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적 측면에서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들 사이에는 이러한 합의점이 있었다고 본다. 공자 철학사상의 대표적 개념인 ‘인’(仁)字는 ‘두 이’(二)와 ‘사람 인’(人)의 결합으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19) 필자가 말하는 ‘초월적 자유’란 老 ⁃ 莊에서 그리는 자연 상태의 자연을 의미한다. 이는 국가와사회의 인위적 구성을 거부하고, 자연의 질서 속에 인간의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공자는 ‘인’이실현되는 사회를 소망하였고, 이는 인문주의와 자연주의가 조화(調和)하는 사회이다. 이 경우의자연주의는 사회내의 것이다.

20) 원문은 “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이다.

21) 원문은 “人文, 人理之倫序. 觀人文, 以敎化天下, 天下成其禮俗, 乃聖人用<賁>之道야.”이다.

22) 상기 정이(程頤)의 원문 중, ‘聖人’은 공자(孔子)라고 해석할 수 있다.

23) “惟天地万物之母,惟人万物之靈.” cf.『상서尚书』 <태서泰誓> 上.

여기서‘인문주의’란 사람과 사람의 관계, 즉 공동체(community)의 문제를 의미한다. 『논어』 <리인里仁>편 수장(首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里仁爲美, 擇不處仁, 焉得知?

(마을에 ‘仁’의 마음이 퍼지면 아름답다. ‘인’의 마음이 있는 곳에 살지 않으면, 어찌 지혜롭다고 하겠는가?)

이 장(章)의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里’자를 동사(to live)로 새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24) 이 경우 해석은 “‘仁’(i.e. 內面世界의 추상성)에 居함이 아름답다.”라고된다. 그러나 ‘里’자를 명사(village)로 새겨도 무리는 없다.25) 후자의 경우, “공동체[里; community]에 인(仁)의 마음이 퍼지면 아름답다”라고 된다.26)

여기서 공동체란 정치, 경제 혹은 문화의 단위로 파악할 수 있다. ― 중요한 개념은 ‘仁’에 대한 해석이다. 필자는 여기서의 ‘仁’이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27)으로새긴다. 공동체의 삶이란 이해(利害) 관계가 충돌하기 쉬운 사회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에 ‘남을 배려하는 마음’[仁]이 퍼지면 아름다운 것이다. ― 만일 이와 같은 해석이 공자의 생각과 근접한 것이라면, 공자는 마을 혹은 촌락 공동체의 평화 내지안정을 소망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상태가 아름답지 않겠는가?

상당히 많은 연구자들이 공자를 ‘보수주의자’ 내지 ‘전통주의자’로 보는 듯하다.

그가 주대(周代) 문명을 그리워하였다고 하는 점에서 일리(一理)가 없는 것은 아니다.28) 그러나 공자는 의외로 전통의 인습(因習)을 거절한 측면이 있었다.

중국 고대에 순장(殉葬)의 풍습이 만연하였음은 여러 자료를 통하여 증명된다.29) 비록 『논어』에 직접적인 예증(例證)이 언급되지 않았더라도, 공자가 인간희생(犧牲)을 반대하였음은 명백한 일이다.30) 어떤 서양학자는 공자의 제자들이 인간 희생을 반대함으로써 당대에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증언하고 있다.31) 

24) 荻生徂徠, 諸橋轍次, 錢穆, 楊伯峻, Simon Leys 등은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25) 朱熹, 退溪, 栗谷, 金泰昌, 宮崎市定, James Legge, 서지문 등은 그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26) 孔子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 수 없으므로, ‘里仁爲美’가 내면세계[仁]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인지,아니면 실제세계의 동네[共同體] 상황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27) “己所不欲, 勿施於人”(顔淵篇 / 衛靈公)과,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雍也篇) 구절은 ‘仁’의개념을 설명하는 전형적인 내용인데, 필자는 이를 남에 대한 배려(care)라고 본다.

28) 공자가 주대(周代) 문명을 그리워 한 점은 그 하나의 例가 될 수 있다. “甚矣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述而篇)

29)『春秋左傳』, 『墨子』, 『史記』 등에 사례(事例)가 남아 있다.

30)『孟子』 梁惠王 上에 보이는 “仲尼曰; 始作俑者, 其無後乎!”라는 구절은 그 증거의 하나이다.『禮記』 檀弓 下에 보이는 공자의 제자 진자항(陳子亢)의 이야기도 같은 事例이다.

31) H. G. Creel(1994).

이와 같은 점에서 공자의 인문주의는 신권주의(神權主義)와 대립한다. <옹야雍也>편에,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라고 있다. 이는 귀신을 존경하여 숭상하라는 말이아니다.32)

공자의 인문주의33) 세계관은 예(禮)의 질서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질서 지향적이고, 동시에 자아(自我) 구속적이다. <안연顔淵>편 제1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극기복례가 仁이다.”라는 말이 있다. 하루라도 ‘극기복례’하면, 온 세상 사람들이‘仁’을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이 구절은 안연(顔淵)이 ‘仁’에 대하여 물은 것이므로, 공자가 이전의 전해오는이야기를 강조하여 ‘仁’의 본질을 말한 것이다.34) ― 조목(條目)은 다음 구절에 이어서 나온다. 즉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勿視], 듣지 말고[勿聽], 말하지 말고[勿言], 움직이지 말라[勿動]”라는 것이 그것이다. ― 문제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네 글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자기의 사욕(私慾)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간다.”라고 해석되고 있다.

공자에 의하면 예(禮)의 구속에 의하여 확보되는 어떤 질서가 ‘仁’이다. ‘克己’는내심(內心)의 자기 구속이다. 상당한 결심이 아니면 그 실천이 쉽지 않다. 공자는‘극기’해야 하는 정당성(正當性)에 대하여는 설명하지 않았다.35) 그러나 ‘극기’가 완성되면 ‘복례’는 비교적 쉽고, 그래야 세상 사람들[天下]이 ‘인’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 필자는 이 상태의 확장이 『예기』 <예운편>에 보이는 ‘大同’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

공자의 인문주의적 세계관은 사회적 평화와 안정을 확보함에 목적이 있고, 그내용은 ‘인’을 실현함이다. 문제는 ‘인’의 개념이 너무 두루뭉술하므로, 숙제로 남는다는 점이다.(앞에서 필자가 ‘仁’이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라고 하였는데, 이와같은 해석이 『논어』 전편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다. 지면紙面 관계상 자세한 이야기는 생략한다.)

32) 朱熹의 『論語集註』에도, “專用力於人道之所宜, 而不惑於鬼神之不可知, 知者之事也.”(오로지 人道의 마땅한 바에 힘을 쏟아, 알지 못할 鬼神에게 미혹되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자의 일이다.)라고하였다.

33) 『周易』 비괘(賁卦) <단사彖辭>에 “觀乎天文하여 以察時變며, 觀乎人文하여 以化成天下하나니라.”라고 있다.

34) 『左傳』 소공(昭公) 12년 조에 “古也有志, 克己復禮爲仁.”이라고 있다. 따라서 <안연>편의 구절은 孔子가 그전의 이야기를 인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35) 공자는 일반적인 원칙보다는 구체적인 상황을 논함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관철하고자 하였고, 그리스(Greece) 철학자들이 사용한 ‘삼단논법’과 같은 논리적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2) 자연주의 ― ‘영귀’(詠歸)의 꿈

공자에 있어서 자연주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공자는 인간이 사회적 공동체를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지만, 인간성이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마멸(磨滅)되는 것을원하지 않았다.36) <선진先進>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子路、曾皙、冉有、公西華侍坐。子曰:“以吾一日長乎爾,毋吾以也。居則曰:不吾知也! 如或知爾,則何以哉?” 子路率爾而對曰:“千乘之國,攝乎大國之間,加之以師旅,因之以饑饉;由也為之,比及三年,可使有勇,且知方也。” 夫子哂之。“求!爾何如?” 對 曰:“方六七十,如五六十,求也為之,比及三年,可使足民。如其禮樂,以俟君子。” “赤! 爾何如?” 對曰:“非曰能之,願學焉。宗廟之事,如會同,端章甫,願為小相焉。” “點!爾何如?” 鼓瑟希,鏗爾,舍瑟而作。對曰:“異乎三子者之撰。”子曰:“何傷乎?亦各言其志也。”曰:“莫春者,春服既成。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夫子喟然歎曰:“吾與點也!”

(자로,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았다. 공자가 말하였다: “내가 그대들보다는 나이가 조금 많지만, 그렇다고 나를 어렵게 대하지는 말아라. 그대들이 평소에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라고 하던데, 만약 누군가 그대들을 알아준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點아 그대는 어떻게 하겠느냐?”..... “늦은 봄날봄옷이 만들어지면, 冠을 쓴 성인 5∼6명과 童子 6∼7명과 함께 沂水에서 목욕하고舞雩에서 바람을 쐬고, 詩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 공자는 감탄하며 말하기를,“나는 點과 같이 하겠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전문(全文) 314字로, 『논어』전편을 통하여 가장 길고 아름다운(longest and the most beautiful) 구절에 속한다.37) 

36) 오늘날 산업자본주의, 정보사회에서는 인간성이 공동체의 질서 속에서 마멸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개성을 소유한 인간은 부담스러운 국외자(局外者)가 되고, 대부분의 평균 인간은 조직체의 부속물(附屬物)로 전락(轉落)된 상태에서 근무한다.

 37) E. Bruce Brooks and A. Takeo Brooks, The Original Analects (論語辨)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8), p. 151.

그런데 이 구절은 왕충(王充)의 해석에 참고할 만한 사항이 있다.38) 그러나 왕충의 해석에 관계없이 이는 공자의 자연주의적 이상(理想)을 보여준다. 엄밀하게 분석하면, 이 구절은 (Brooks씨의주장대로 아름다울 수는 있으나) 논리적 결함이 존재한다. 애당초 공자가 물은 것은 “만일 누군가 그대들을 알아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如或知爾,則何以哉)이다. 이 구절의 ‘如或知爾’는 교사가 출석부를 놓고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는 정도가아니라, 포부를 펼치기 위하여 등용[出仕] 되었을 경우에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가정하고 있는 말이다.

자로(子路), 염유(冉有; 求), 공서화(公西華; 赤) 3인은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대답하였다. 그러나 증석(曾皙; 點)은 논리에서 빗나갔다. 그는 출사(出仕)할 때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질문을 비켜서, (출사와 전혀 관계가 없는)일종의 한유(閒遊) 내지 풍류(風流)의 세계로 들어갔다.39) 이는 논리적 회피이므로, 스승 공자는 증점을 꾸짖었어야 마땅하다. 허지만 그는 엉뚱하게, “吾與點也”라고 말하였다.

여기에서 필자는 공자의 자연주의적 성향 내지 동경(憧憬)을 엿볼 수 있다. 그것은 은둔주의(隱遁主義)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에서 한 발작 물러서서 개인의 안심(安心) 내지 ‘락’(樂)을 찾고 있는 점이 보인다.40) 도덕적 규범이란 사실상 너무힘겹고 무겁지 않은가? 공자는 피가 통하지 않는 냉혈한(冷血漢)이 아니다. 그에게중요한 것은 삼단논법(三段論法)이 아니라, 가치 내지 윤리적 실현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41) 이와 같은 자연친화적인 경향은 비록 인문주의 보다는 비중이 가볍지만, 공자의 자연주의적 세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38) 왕충(王充)의 『論衡』에 의하면, ‘詠而歸’에 있어서 ‘歸’는 ‘饋’와 통하는 글자로, 기수(沂水)에서거행되는 ‘희생의 향연’을 말한다. 이 경우의 해석은 “기수(沂水)의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는 제단에서 詩를 읊고, 희생(犧牲)의 향연에 참석하고 싶습니다.”라고 된다. 서양학자 마르셀 그라네(Marcel Granet) 또한 왕충의 견해를 받아들여 이 구절을 노(魯) 나라에서 비를 기원하는 춘제(春祭)라고 해석한다. cf. 마르셀 그라네, 『중국의 고대 축제와 가요』, 신하령·김태완 옮김 (살림, 2005), p. 197.

39) 주희(朱熹)는 이 세계를 높이 평가하여, “인욕(人欲)이 다한 곳에 천리(天理)가 유행하니, 가는 곳마다 충만(充滿)하여 결함[欠闕]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論語集註』)

40) 필자는 “孔子 사상에 나타난 ‘락’(樂)의 정신”에 대하여 글을 쓴 일이 있다. cf. 황준연,『신편 중국철학사』(심산, 2009).

41) 삼단논법(三段論法)의 논리적 추론을 기피한 점에 있어서, 공자 사상의 철학성(哲學性)이 떨어진다. 중국철학에 있어서 진정한 ‘철학성’은 주희(朱熹)이후로 돌려야 할 것이다.

2. 공자(孔子) 세계관의 특질과 의의

- 군자(君子)와 ‘인’(仁)의 공공성(公共性)을 중심으로

『논어』를 중심으로 보면,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은 ‘군자’(君子)로 그려지고 있다. 우리는 ‘군자’ 개념을 통하여 공자의 세계관에 대한 특질과 의의를 천착해 볼수 있다. ‘군자’란 몇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그는 ‘仁’을구하는 자이다. <위정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군자는 두루 통하고 편당 짓지 아니하며, 소인은 편당 짓고 두루 통하지 못한다.)

이 구절 ‘周而不比’에는 일종 공공성(公共性)의 개념이 들어 있다. 주희(朱熹)는이를 놓고 “周, 普遍也. 比, 偏黨也. 皆與人親厚之意. 但周公而比私耳.”라고 주(注)를 달았다.42) 이는 주희의 해석이지만, ‘仁’을 구하고 실천하려는 군자의 인간상을잘 말해주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공’(公共)이란 ‘사’(私)에 대비되는 개념이다.그것은 사적으로 편당 짓지 않는 공공의 ‘의’(義)를 담고 있다고 보인다.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仁者, 義之本也, 順之體也, 得之者尊.”이라고 있다. 이 구절은 『설문해자』의 ‘上’자의 해설에 보이는 ‘二’자를 숭배[崇也] 혹은 존경[尊也]의내용과 서로 통한다. 다시 말하여 ‘仁’은 의로움(일종의 公共的 개념)의 근본이고,이를 얻은 자는 존경을 받는다는 뜻이다.

군자는 지위(status)만 높은 인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도덕적으로 존경을받아 마땅한 인간이다. 그는 사적(私的)인 세계를 도외시 혹은 무시하는 자는 아니다. 만일 ‘私’의 세계를 전혀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도외시 한다면, 이는 참된군자가 아니다. ― ‘멸사봉공’(滅私奉公)이라는 개념이 있다. 전통사회에 있어서 이를 매우 높이 산 덕분에 많은 경우에 위선(僞善)이 발생하였다.

42) 서울 종루구 명륜동 성균관대학 정문 옆에 석비(石碑)가 하나 서있다. 조선 英祖 18년(1742) 壬戌에 세워진 이 비석에는 “周而弗比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寔小人之私心.”이라고 적혀 있다. 주희(朱熹)의 해석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진정한 군자는 ‘멸사봉공’하는 것이 아니고, ‘활사개공’(活私開公)43)할 수 있는 인간이다.

공자는 문인 자하(子夏)에게 말한다:

子謂子夏曰: 女爲君子儒, 無爲小人儒.44)

(그대는 군자유가 되어야 한다. 소인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대체 ‘군자유'는 무엇이며, 또 ‘소인유’는 무엇인가? 이를 “‘고상한 학자’가 되어야지, ‘비굴한 학자’는 되지 말라”45)라는 해석은 불충분하다. 또한 이를 “고대의 전승(傳承)된 기록에 능통한 전문 지식인이 될 것이지, 기도 혹은 상례(喪禮) 절차나처리하는 무당(巫堂)과 같은 학자는 되지 말라”46)라는 해석은 지나치게 현학적이다. 동시에 이를 “군자의 학자는 자신의 수양을 위하여[爲己] 공부하는 것이요, 소인의 학자는 남에게 명예를 얻기 위하여[爲人] 공부하는 것이다.”47)라는 번역은 너무 도덕적이다.

필자는 위의 구절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그대는 공공公共을 위하는 군자의 선비가 되어야지,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는 소인의 선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정(二程)의 제자 중에 사량좌(謝良佐; 1050∼1100)가 있다. 상채(上蔡) 사람인그는 『논어해』라는 저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군자와 소인의 구분은 의리[義]와 이익[利]의 사이일 뿐이다. 그런데 이익이란 어찌 반드시 재화를 늘리는 것만을 말하겠는가? 사욕(私慾)으로 공공(公共)을 없애고,자신에게만 알맞게 하여 무릇 하늘의 ‘리’[天理]를 해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익이다.48)

43) ‘활사개공’(活私開公)이란 “私를 살리고 동시에 公을 열어간다.”라는 의미로, 일본 교토 포럼 공공철학연구소 김태창(金泰昌) 소장의 용어이다. cf. 김태창, 『상생과 화해의 공공철학』, 조성환 번역 (동방의 빛, 2010), p. 39.

44)『논어』 <옹야편>.

45) 미야자키 이치사다(宮崎市定), 『논어』, 박영철 옮김(이산, 2001), p. 94.

46) 가지 노부유키(加地伸行), 『유교란 무엇인가』, 김태준 번역(지영사, 1990), p. 64.

47)『논어집주』 정이(程頤)의 이야기.

48) “君子小人之分, 義與利之間而已. 然所謂利者, 豈必殖貨財之謂? 以私滅公, 適己自便, 凡可以害天理者, 皆理也.” cf. 『논어집주』 주희(朱熹) 注.

사량좌의 이 글도 도덕적 냄새가 진하다. 그러나 “사욕으로 공공을 없앤다.”[以私滅公]라는 부분에서 군자가 지향하는 공공성(公共性)을 엿볼 수 있다. 무릇 군자는 사적(私的)인 욕심보다는 공공(公共)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참된 선비[君子儒]이다. 도덕의 이름아래 ‘멸사’(滅私)에 이르는 극한의 수단을 취해서는 안 되겠지만, ‘공공을 위하는 마음’[奉公]만은 버려서는 안 된다.49)

앞에서 말한 것처럼 ‘仁’은 공공성을 지닌다. 공자가 소망한 세계는 공공성을내포한 ‘인’의 실천이라고 본다. 군자는 다름아닌 이와 같은 공공성을 실천하는 자이다. 공자는 말한다:

仁者安人 知者利仁.50)

(인한 자는 仁을 편안하게 여기고, 지혜로운 인을 이롭게 한다.)

‘인’이 편안할 수 있는 것은 사적(私的) 관계가 아니고, 공공의 관계에서 그렇다. 또한 지혜로운 자가 ‘인’을 이롭게 한다고 함은 사적인 이익이 아니고, 공적인이익을 말한다고 본다. 윗 구절에 곧 이어서 “군자는 의리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밝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51)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두 구절을 연결하여 본다면, 인자(仁者)이면서 동시에 지자(知者)가 곧 군자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자신의 이익에 아주 무관한 자는 아니지만, 대체로 공공(公共)의 이익에 ― 공공의 이익이 의리[義]에 합당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는 새삼스럽게강조할 필요가 없는 내용이다. ― 관심을 갖는 자이다. 그와 같은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경세’(經世)를 실천하는 자이다.52)

공자의 철학은 한 마디로 ‘인’에 집중되어 있다. ‘인’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사회야 말로 그의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 경우의 ‘인’은 사적인 관계의 자비, 애정, 혹은 배려를 넘어서서 공공(公共) 관계에 있어서 자비, 애정, 사랑 혹은 배려의 뜻을 담고 있다. 이를 실천하는 인물이 곧 군자이다. 공자는 이처럼 공공성(公共性)이 확보되는 군자(君子)의 사회를 그렸음에 틀림없다. 그와 같은 점에서 공자의 세계관은 골동품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고, 현재적 의미를 내포한다.

49) 이 문제는 상황(case) 윤리의 문제라고 본다. ‘멸사봉공’이란 私를 0으로, 公을 100으로 취하는 것으로 실천이 취약하고 지나치다. 할 수만 있다면(또 그렇게 해야 하겠지만) 私를 30쯤 취하고,公을 70쯤 취하는 방법이 좋을 듯하다.

50) 『논어』 <리인편>.

51) 『논어』 <리인편>.

52)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말한 진정한 목민관(牧民官)은 곧 ‘仁者’이면서 동시에 ‘知者’라고 판단한다. 그가 경세가로서 공공(公共)을 실천하는 자임은 물론이다.

Ⅳ. 맺는말

『논어』가 그리는 세계는 결국 인간 공자가 그리는 세계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공자가 주장한 ‘仁’은 공공성(公共性)을 지닌 일종의 감화력(感化力)이다. ‘인’이자비로운 마음, 혹은 인간 상호간의 사랑[愛], 혹은 남에 대한 배려(care)라면 이것을 배척하고 마다할 문명은 없다. 그리스도교에 기반을 둔 서구 문명도 이와 같은점을 놓고 배치(背馳)하여 다툴 이유가 없다. 그러므로 전통시대의 동아시아 독서인의 필수 독서물이었던 『논어』는 현대인에게도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53)

앞에서 보았듯이 공자는 당시의 세계를 주유(周游)하였다. 그의 여행은 현대인이 느끼는 관광(tourism) 차원의 여행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공자의 여행 목적을벼슬을 구하여 그를 통한 도(道)의 실현에 있는 것으로 본다. 말하자면 벼슬은 방편이고, 도(道)의 실현이 목표이다. 그가 추구한 도(道)란 무엇인가? 그것은 천하에‘인’(仁)을 실현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것은 사적(私的)인 질서가 아니라, 공공성(公共性)이 확보되는 질서이다.54)

필자는 공자의 주유(周游)를 국경을 넘는 질서의 추구로 해석한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분열을 넘어서는 사상적 통합을 시도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자잘한 정체(政體) 속의 자잘한 권력(혹은 지위)이 아니고, ‘仁․義․禮․智’를 통한 생활 공동체의 확립이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곧 공공성(公共性)의 관념을 담고 있다. 공공(公共)을 통하여 형성되는 질서는 ‘국’(國) 보다는 ‘천하’(天下; 현대 용어로 ‘세계’이다)의 확보이며, 이는 좁은 의미의 ‘국민국가’ 혹은 ‘민족국가’보다는 넓은 개념이라고 이해한다.

만일 공자의 이상(理想)이 이와 같은 ‘천하 사상’을 통한 공공성(公共性)의 실현에 있었다면, 그의 철학(세계관)에는 동아시아의 질서를 넘어서 전 지구적 차원까지 확대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이는 결코 서구의 질서에 대항하는 개념이 아니다. 공자가 그리던 ‘인문주의’는 궁극적으로 서구적 질서까지도 수용할 수 있는 사상이다. ‘仁․義․禮․智’(크게 보면 ‘仁’字 하나로 정리된다)의 세계적 질서란 공공성(公共性)을 바탕으로 동서 문명의 ‘윈-윈’(win-win) 게임을 말하는 것이다. 이상적(理想的)인 의미에 있어서 이는 ‘유교 문명’의 세계화를 말한다.

53) 동아시아는 전통 문화의 차원에서 유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므로, ‘유교적 인간상’(Confucianpersonality)이라 부를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한국의 경우만을 놓고 말하면, 현대 한국인은 ‘그리스도교적 인간상’(Christian personality)을 이상으로 여길 수 있다. 이 두 종류의 인간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를 꾀하기 위하여 『논어』와 『바이블』을 동시적으로 이해할필요가 있다.

54)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논어』 <위정편>에 “君子周而不比.”라고 하였다. 주희(朱熹)는 注에서“周는 公[公共; public]이며, 比는 私[private]이다.”라고 하였다.

□ 논문 접수 : 2011년 2월 27일 / 수정본 접수 3월 21일 / 게재 승인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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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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