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근하신년과 연하장의 역사

 2026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근하신년과 연하장의 역사

 조정미 기자 (echang@naver.com)

옛날 사람들도 새해가 되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좋은 말을 건네며 한 해의 시작을 맞이했다. 이 논문은 조선시대의 새해 인사부터 연하장이 등장한 근대까지,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을 전해왔는지를 차분히 따라간다. 새해 인사는 설명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함께 나누며 이어져 온 마음의 약속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여전히 인사를 건넨다. "Happy New Year"가 "근하신년"보다 더 익숙하게 느껴지고, 종이 연하장은 어느덧 디지털 화면으로 바뀌었으며 짤막한 이모티콘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새해를 축원한다”는 마음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새해 인사"를 나누는 전통은 언제부터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새해 아침을 열면서, 근하신년과 연하장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김유진의 논문은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쓰고 있는 ‘연하장’과 ‘근하신년’이라는 말이 언제,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묻는다. 더욱이 새해 인사는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시대가 사람과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었음을 이 연구는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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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에게 올린 새해 인사, 조선의 ‘연하장’

김유진의 「조선·근대시기 연하장의 종류와 설날 인사 풍속 연구」는 새해 인사를 ‘연하장’이라는 하나의 개념으로 묶되, 그 기원을 조선시대 궁중의 하례 문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논문에 따르면 조선시대 설날은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국가 질서가 재확인되는 시간이었다. 왕에게 올리는 하전(賀箋)은 새해 인사의 핵심적인 형식이었고, 자연과 계절을 언급하는 도입부, 임금의 덕을 찬양하는 본문, 그리고 송축으로 마무리되는 엄격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이 하전은 오늘날의 연하장처럼 개인적 감정을 표현하기보다는, 신분과 위계가 분명한 사회 질서 속에서 수행되는 공적 언어였다. 새해 인사는 곧 통치 질서의 언어였고, 문장을 다룰 수 있는 소수 관료층만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였다.

명함을 두고 가는 새해, 세함과 문안비

그러나 새해 인사가 늘 궁중과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던 것은 아니다. 논문은 조선후기 세시기록을 통해 보다 일상적인 새해 인사 방식도 함께 복원한다. 대표적인 것이 ‘세함(歲銜)’이다. 이는 하급 관리나 아랫사람이 설날에 윗사람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이름을 적은 명함을 두고 오는 풍속으로, 직접 만나지 못할 때 안부와 존경을 전하는 일종의 ‘방명록형 연하장’이었다.

또 하나 주목되는 풍속은 ‘문안비(問安婢)’이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은 곱게 차린 어린 여종을 인편으로 보내 새해 인사를 대신했다. 논문은 문안비의 옷차림과 이동 경로, 시문 속 묘사를 통해 여성들이 새해 인사를 조직하고 전달하는 또 다른 주체였음을 드러낸다. 이는 연하장이 단지 종이 문서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한 사회적 장치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 엘리자베스 키스의 판화 '색동저고리를 입은 어린이들'.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세배를 하러 다녔을 터이고, 어른들은 어른들의 방식으로 새해 인사를 하는 것이 전통이었다.(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우편제도가 바꾼 새해 인사의 풍경

근대에 들어서며 새해 인사의 방식은 급격히 달라진다. 우편제도의 도입과 함께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연하장’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논문에 따르면 1900년대 초부터 연하장은 공식적인 우편물로 취급되었고, 1920~30년대에 이르면 설날은 ‘우편배달부의 가장 바쁜 날’로 불릴 만큼 연하장이 대중화된다.

이 시기 연하장은 더 이상 특정 신분의 의례 문서가 아니라, 누구나 보낼 수 있는 사회적 인사로 자리 잡는다. 특히 척독서와 보감류 같은 대중 출판물은 새해 인사말의 ‘모범 문장’을 제공하며, 문서 생활을 여성과 일반 대중까지 확장시켰다. 새해 인사는 이제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본 예절이 된다.

▲ 1939년에 작성된 최충근의 연하장 발송명단으로 일본인을 포함 총 123명의 명단과 주소가 기록되어 있다.(출처: 독립기념관)

‘근하신년’은 언제부터 쓰였을까

오늘날까지도 가장 흔히 쓰이는 새해 인사말 ‘근하신년’ 역시 근대의 산물이다. 논문은 이 표현이 일본의 연하장 문화에서 유입된 것임을 밝힌다. 메이지 시기 일본에서 엽서 문화가 확산되며 사용되던 짧은 축하 문구가 조선에 들어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연하장의 대표 문구로 정착했다.

신문 광고, 상업 홍보물, 실제 연하장 자료를 통해 확인되는 ‘근하신년’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새해 축원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근대적 언어였다. 이 표현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의 새해 인사 역시 근대의 유산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 안영찬이 안창호에게 보낸 엽서(1911.12.14.)(출처: 독립기념관). 이 연하장에도 근하라는 표현이 보인다. 

새해 인사는 관계의 기술이다

이 논문이 흥미로운 이유는 연하장을 단순한 풍속이나 문헌 자료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김유진은 새해 인사를 통해 한 사회가 관계를 맺고, 위계를 조정하며, 새로운 시간을 시작하는 방식을 읽어낸다. 조선의 하전, 세함, 문안비, 그리고 근대의 연하장은 모두 다른 형식을 띠지만, 공통적으로 ‘관계를 끊지 않기 위한 장치’였다.

2026년 새해를 맞는 지금, 우리는 메시지 하나로 수십 명에게 동시에 인사를 보낸다. 형식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새해 인사는 관계를 확인하고 사회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행위다. 이 논문은 우리가 보내는 짧은 인사말 뒤에, 얼마나 긴 역사와 많은 사람들이 쌓여 있는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논문 제목 : 조선・근대시기 연하장의 종류와 설날 인사 풍속연구
저자 정보 : 김유진(한국학중앙연구원)
게재 정보 : 민족문화논총 2023, vol., no.85, pp. 365-407 
스콜라(유료) : http://scholar.kyobobook.co.kr.ssl.proxy.uhs.ac.kr:8010/article/detail/4010068622766

조정미 기자 echang@naver.com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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