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공자 ‘天’개념에 대한 일고찰 [임헌규]

  『논어』의 공자 ‘天’개념에 대한 일고찰 [임헌규]

석담 김한희

『논어』의 공자 ‘天’개념에 대한 일고찰
­ 古⋅新注와 대비한 茶山 丁若鏞의 주석의 특징 ­
임 헌 규(강남대학교 교수)

Ⅰ. 서 론
Ⅱ. 공자 이전의 天개념
Ⅲ. 공자의 천과 그 주석
Ⅳ. 결 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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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요약>

이 글은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궁극자(天)에 대한 다산 정약용의 주석을 고주(『논어주소』) 및 신주(『논어집주』)와 연관하여 대비적으로 고찰함으로써 그 특징을 제시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우선공자 이전(夏-殷-周시대)의 天과 上帝개념의 변형양상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여기서는 원래 소박한 자연주의로 시작한 고대의 天개념은 은대에 정복민족의 祖上神인 上帝개념으로 대치되었으며, 그 후상제개념은 周代의 天命사상과 함께 보편적인 天개념으로 전변해 갔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우리는 『논어』에서 공자의 天개념이 진술된 모든 구절에 대한 고주, 주자주, 그리고 다산의 주석을 순서적으로 제시하면서 상호 대비⋅해설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제시와 대비를 통해 각 주석이 제시한天개념의 특징을 요약⋅정리하면서 그 특징을 요약하였다. 그 결과 고주는 공자의 天개념을 주로 運命天, 主宰-載行天 그리고 義理天 등의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주자는 공자의 天개념이 제시된 거의 모든구절을 성리학적인 理개념으로 치환하여 해석(天卽理)하고 있음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다산은 천을 상제라고 말하면서(天謂上帝), 주자의 天卽理를 비판하고 있는 맥락과 이유를 살폈다.

주요어: 天, 上帝, 天命, 朱子, 茶山.
Ⅰ. 서 론

무엇을 의식하는 對自存在로서 인간은 감관으로 지각되는 실재뿐만아니라 이념적 대상(수, 기호 등), 그리고 심지어 허구적 상상물에 대하여 다양한 의미와 관념을 부여⋅창출한다는 점에서 제한적인 의미에서‘우주의 창조자’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간은 의미부여와 관념창출을 통해 학문과 예술을 위시한 다양한 인간적인 중요한 활동을 수행하기도하지만, 그 자신이 만든 바로 그 허구적 관념에 사로 잡여 심지어 숭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종교와 철학의 第一義인 신, 상제, 천, 도, 귀신 등과 같이 ‘궁극존재’와 결부된 다양한 명칭과 관념들은 진리를 자각한 인간의 상징체계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인간들이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여창출한 허구적 관념들의 집합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孔子의 언행을 기록해 놓은 『논어』에는 궁극존재와 연관하여 天(帝)에관한 대해 수차례의 언명이 나타나있다. 공자의 天에 대한 언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시』와 『서』에서의 용례에 대한 이해, 『논어』에서 사용한 맥락과 용례, 그리고 후대의 주석과 평가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었고, 또한 많은 성과가 있었다.1) 이 글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면서, 공자 이전에 天개념이 제기된 맥락과 전개과정을 정치사회적인 치원에서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II장). 그리고 『논어』에 공자의 天개념이 진술된 구절들에 대한주요 주석(古注와 朱子의 新注)을 제시하고, 이와 대비되는 茶山 丁若鏞의 주석을 살펴볼 것이다(III). 마지막으로 다산의 공자 天개념에 대한 주석을 고주 및 신주와 연관하여 대비적으로 살펴보고, 그 맥락과 다산의의도에 대해 평가해 보고자 한다.

1) 이와 연관된 연구로는 뒤의 참고문언 참조.
Ⅱ. 공자 이전의 天개념

‘天’자는 본래 갑골문에서 머리가 돌출(一)한 사람(人)의 형상으로 ‘偉大한 사람’이란 뜻에서 출발하여, 그 사람이 사후에 거주하는 장소인 하늘(大+一=天), 그리고 그 하늘에 거주하는 神을 상징했다.2) 돌출한 머리를 형상했다는 점에서 天은 高遠⋅廣大를, 나아가 尊敬⋅畏敬의 대상으로 그 의미가 점차 확장되었다.3) 그래서 설문注에서는 “天은 정수리(顚:꼭대기, 이마, 산정, 고개)로서 지극히 높고 필적할 만한 것이 없다(至高無對). ‘一’과 ‘大’자의 결합으로 사람이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장소(人所戴)”라 했으며,  『석명』에서는 “天이란 坦然하고 高遠한 것이다.”고하였다.4) 학자들은 다양한 문헌에 나타난 天관념을 物質天, 自然天, 主宰天, 運命天, 義理天, 造生天, 載行天, 啓示天, 審判天 등으로 세분한다.5) 그런데 ‘天’자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자인 甲骨文부터 등장하지만,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진 개념으로 등장하는 것은 B. C11~2세기인 殷末周初였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주지하듯이 자연과의 분화를 아직 명확하게 자각하지 못했던 원시단계에서 인간은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精靈信仰(Animism :Edward B. Tylor, Primitive culture, 1871)’으로 일컬어지는 원시적 종교의식을 행했다. 이 때 원시인들은 夢幻⋅假死 등의 체험을 통해 가변적인 육체는 유한하여 사멸하지만, 영혼만은 불변⋅영속한다고 생각하고 精靈(死靈)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즉 인간은 사후 精靈이 되어 승천하거나 우주공간을 떠다니며, 특히 혈연관계의 사람과 부족 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 것이다. 業⋅輪廻 등의 개념이 도입된 것은 바로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

2) 벤자민 슈월츠(나성 역), 『중국고대사상의 세계』, 살림, 1996, 49~95쪽 참조.
3) 최영찬 외, 『동양철학과 문자학』 아카넷, 2003, 196쪽.
4) 段玉裁, 『說文解字注』. “天 顚也. 至高無二, 從一大, 人所戴也.” 釋名. “天 坦然高遠也.”
5) 馮友蘭(박성규 역), 『중국철학사』 까치, 1999, 61쪽 참조.

 나아가 원시인들은 자연계의 다양한 존재자들(天地, 日月, 星辰, 風雨, 山川, 草木 등)에도 精靈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그 神을 숭배하였으며(범신론적 다신론), 그 신들 또한 인간처럼 好惡의감정을 갖고 인간의 禍福을 결정한다(擬人論)고 생각했다.6)

중국역사의 출발기인 夏시대의 종교 역시 원시 정령신앙으로, 擬人的多神論의 성격을 지니고 출발하였다. ‘소박한 자연주의’적 경향을 지녔던이 시대의 天은은 비록 자연 현상 중 가장 크고 뚜렷한 모습으로 파악되긴했지만, 地⋅水⋅火⋅風⋅山⋅澤⋅雷 등과 같은 여러 자연물들 중의 하나로, 아직 우주의 주재자나 의리의 원천 등과 같은 특별한 의미를 지진 존재로 부각되지는 못했다. 공자는 이 시대의 문화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하나라의 도는 命을 존중하여, 귀신을 섬겨 공경하되 멀리하고, 사람을 가까이 하되 충직했다. 봉록을 우선시하고 위압을 뒤로 했으며, 친애하되 차별하지않았다. 하나라 백성의 폐단은 어리석고 거칠고 질박하여 문채가 나지 않았다.7)

그런데 부족 간의 전쟁과 정복을 통해 거대한 통일권력이 형성되고사회구조 또한 혈족에 의한 계급적 신분사회로 정착되자, 다신론적 종교 관념에서도 위계적 서열과 역할분담 그리고 마침내 最高神聖 관념이도입된다. 특히 商이 土方⋅馬方⋅羊方⋅林方 등을 정복하고, 마침내 夏마자도 무너뜨리고 통일국가를 이루자 그 씨족신인 帝8)는 최고신이 되었다. 황하의 여러 유역을 총괄하는 최고신으로서 帝는 吉凶, 禍福, 氣候, 狩獵, 祭祀, 戰爭 등과 같은 자연 및 인간계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에 대해 계시를 내리는 존재로 인식되고, 祈福의 대상이 되었다.9) 

6) 『철학사전』, 중원문화, 2009, 「애니미즘Animism」 항목 참조.

7) 『禮記』 「表記」 子曰, “夏道尊命, 事鬼敬神而遠之, 近人而忠焉. 先祿而後威, 先賞而後罰, 親而不尊. 其民之敝, 憃而愚, 喬而野, 朴而不文.”

8) 帝에 대해서는 1)꽃꼭지(花帝)의 帝, 2)祭天儀式에 사용되던 땔나무를 쌓던 틀(積薪置架), 3)부락연맹의 軍事首長⋅天帝 혹은 人王의 뜻을 가진 바빌론의米자, 4)태양광선이 사방을 비추는 형상, 5)새가 하늘로 날라 오르는 형상에서 引伸된 글자 등으로 설명된다. 최영찬 외, 『동양철학과 문자학』 「帝」항목.장영백, 「古代中國의 ‘天’思想初探(一)」, 중국어문학논집4, 1992 참조.

9) 『詩經』 「商頌, 長發」. “帝立子生商... 帝命不違 至于湯齊 湯降不遲 聖敬日躋昭假遲遲 上帝是祗 帝命式于九圍.” 『禮記』 「表記」. 殷人尊神, 率民以事神, 先鬼而後禮, 先罰而後賞, 尊而不親. 其民之敝, 蕩而不靜, 勝而無恥.

즉 帝는 인간-자연신-조상신-상제로 연결되는 관념체계에서 조상신(嚳)들 중의 하나이지만 최고 지위와 역할을 지닌 인격적 존재로 숭배되었는데,1)天上의 신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를 지닌다는 점에서 上帝(地上을다스리는 帝와 구별됨)라고 칭해졌으며, 2)비⋅천둥⋅바람과 같은 자연현상과 운행을 총괄적으로 주재하여 농업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간의경제적 豊凶을 좌우하고, 3)왕권을 성립시키고 형벌을 내리는 권능의 존재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절대적 主宰神格으로서 帝가 인간사에 개입하여 그 길흉화복을 결정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은 재앙을 피하고복을 얻기 위해 祭祀를 올리면서 占(龜)卜을 통해 上帝의 뜻을 묻어 그뜻에 의거하여 중대사에 대해 최후의 결정을 내렸다. 이러한 은의 시대에 대해 공자는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은나라 사람들은 신을 존중하여 백성들을 귀신을 섬기도록 이끌어 귀신을우선시하고 예를 뒤로 하고, 벌을 우선시하여 상을 뒤로 하였으며, 차별하되 친애하지 않았다. 은나라 백성들의 폐단은 방탕하여 맑지 않고, 이기려 하면서 부끄러워함이 없었다.10)

그런데 帝의 後裔로 選民임을 자부하고 그 지배력을 神權化했던 殷왕조가 周에 의해 몰락하자, 최고신성으로서 帝의 권능은 점차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새로운 통일 왕조로 등극한 周는 처음에는 국가의 안정화를 위해 은의 종교적 권위에 일단 의탁했지만,11) 모든 화복의 근원이었던 上帝의 권능과 역할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다. 周初까지는 帝는주로 祭祀에서 최고신의 인간에 대한 지배 작용을 강조할 때에 사용되고,12) 天은 주로 인간 활동과 연관하여 지칭되어 인문주의적 의미를 지니고 사용되며, 상호 혼용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最高神의 명칭은 天으로 정착된다. 

10) 『禮記』 「表記」 子曰, “殷人尊神, 率民以事神, 先鬼而後禮, 先罰而後賞, 尊而不親. 其民之敝, 蕩而不靜, 勝而無恥. ”
11) 특히 『書經』 「周書, 多士」편 참조.
12) 『詩經』 「大雅, 大明」. “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그런데 周시대에 궁극자의 명칭이 上帝에서 天으로 대치되었다는 것은 어느 씨족을 선택하여 특별한 祝福을 내리는 祖上神(民族神)에서, 특정한 부족의 이익을 초월한 보편적 주재자로 절대자의 관념이변했음을 의미한다. 보편적 궁극자로서 天은 이제 혈연관계의 血孫에게만 신권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유덕자에게 천자의 지위를 부여하여덕치를 시행토록 명령하고, 그 덕을 잃을 때는 천명을 거둬들인다. 周왕조는 이러한 천명사상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역성혁명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그 후예들에게 경계를 주었다. 즉 商나라 역시 천명을 받아 건국되어13) 멸망의 순간까지도 天命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하였지만,14) 德을 잃어 천명을 어겼기 때문에 그 命이 옮겨갔다는 것이다.

너희 여러 방백들에게 고한다. 하늘이 夏를 버린 것이 아니며, 하늘이 殷을버린 것도 아니다. 오직 너희의 인군과 나라들이 천명을 크게 어겨 많을 죄를지었기 때문이다.15)

天命은 항상적이지 않아서... 명령이 하늘로부터 있었는데, 이 문왕에게 명을내렸다.16)

요컨대 “하늘이 인군을 세운 것은 백성을 이롭게 하고” “백성들의 양육을 맡겨 본성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17) 유덕자에게 天命을 내렸다.18) 

13) 『詩經』「商頌, 玄鳥」. “天命玄鳥 降而生商.”

14) 『史記』 「殷本紀」 참조. 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문왕(西伯)이 부근의 小國을정벌했다는 소식을 듣고, 殷의 朝伊가 두려워 떨면서 殷王 紂에게 보고하자,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천명이 있지 않은가? 西伯이 무엇을 할 수있겠는가?(不有天命乎 是何能爲).”

15) 『書經』 「周書, 多方」 “誥告爾多方, 非天庸釋有夏, 非天庸釋有殷. 乃惟爾辟, 以爾多方, 大淫圖天之命, 屑有辭.”
16) 『詩經』「大雅, 文王之什」 “天命靡常... 有命自天 命此文王
 17) 『春秋左傳』 「文公13年」 “天生民而樹之君 以利之也.” 「襄公14年」 “天生民而立之君 使司牧之 勿使失性:
18) 『書經』「周書, 蔡仲之命」 “皇天無親 有德是輔.” 「虞書, 皐陶謨」. “天命有德.”

그러나 인군이 덕을 잃어 백성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여 그 怨聲이하늘에 상달되면19) 하늘은 그 命을 거둬들여 다른 유덕자에게 옮겨 내린다. 이러한 천명사상은 1)夏殷처럼 귀신은 잘 섬겼지만 멸망한 이유(王의不德)를 설명하고, 2)멸망한 殷의 遺民들에게 덕을 지녀 정당하게 천명을새로 받은 周朝를 배반하지 않도록 훈계하며,20) 나아가 3)자손들로 하여금 修德을 통해 天命을 잃지 않도록 勉勵21)하는 효과를 가져왔다.22)그런데 ‘天命靡常(不于常)’의 관념은 우주의 궁극 존재와 연관한 인간의 지위 및 태도변화를 함축한다. 궁극 존재는 이제 더 이상 혈연관계에의해 어떤 한 부족을 선택하거나(祖上神), 단순히 好惡의 감정에 의해 禍福을 내리면서(人格神) 숭배를 강요하거나, 그 뜻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절대자가 아니다. 인간은 이제 龜卜을 통해 절대자의 신성한 뜻을 일반적으로 통보받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덕을 삼가 조심하여(敬⋅修⋅明德) 천명에 부합할 수 있는(配天), 어느 정도의 주체적 존재가 되었다. 요컨대 궁극 존재와 인간은 德을 매개로 상호 교류한다. 유교의 天人合一사상의 단초는 바로 이렇게 해서 마련되었다.

 주초의 천명사상에서 우리는 비록 행위의 근원이 아직 인간 자신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재적인 天命에 있기는 하지만, 그 행위를 스스로 감찰⋅인수하려 했다는점에서 인문정신의 출현을 볼 수 있다.23) 공자의 천사상은 바로 여기에뿌리를 두고 있다. 공자는 이러한 주문화에 대해 “주나라 사람들은 예를존중하고 베푸는 것을 숭상하고, 귀신을 섬기고 공경하되 멀리하고, 사람을 가까이 하되 충직했다. 그 상벌을 작열에 따라 썼으며, 친애하되차별하지 않았다.”24)라고 평가했다.

19) 『書經』「周書, 酒誥」. “오직 덕으로 지내는 그윽한 제사의 향기가 하늘에 상달되지 않고, 단지 백성들의 원망만 크게 들어났다(弗惟德馨香祀, 登聞于天, 誕惟民怨)”

20) 『書經』에서 ‘天命’이란 용어는 武王을 계승한 成王이 德이 모자라서 殷의 遺民들이 반란이 일어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연설한 「周書, 大誥」(“其有能格知天命, ...天命不僭.)”에 처음 나타난다. 이기동 역해, 서경강설, 성대출판부, 2014, 440쪽 참조.

21) 『書經』「周書, 大誥」. “내가 하는 일은 하늘의 일이라, 매 몸에 큰 일을 남겨주고 어려운 일을 던져주시니, 모자라는 나로서는 혼자서 염려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予造天役 遺大投艱于朕身 越予沖人 不卬自恤).” 「周書, 君奭」. “우리 周가 天命을 받은 것은 무궁한 吉祥일 뿐만 아니라 또한 큰 간난이다(我受命無疆惟休 亦大惟艱)” 「周書, 小誥」. “왕이 천명을 받은 것은 무궁한 경사이지만, 한편으로는 우환이다. 아! 어찌 경신하지 않겠는가(惟王受命 無疆惟休 亦無疆惟恤 嗚呼 曷其奈何不敬)”.

22) 장영백, 「古代中國의 ‘天’思想初探(一)」, 111~3쪽 참조.

23) 서복관은 이러한 천명에 부합하고자 하는 召命意志를 ‘憂患意識’이라고 불렀다. 우환의식은 인간의 도덕정신(책임감)의 자각을 의미한다. 서복관이 말한우환의식은 곧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서양철학의 시작으로서 驚異感(Taumazein)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고 생각된다. 徐復觀, 中國人性論史, 商務印書館, 민국76年, 29-5面 참조.

24) 『예기』  「表記」 子曰, “周人尊禮尙施, 事鬼敬神而遠之, 近人而忠焉. 其賞罰用爵列, 親而不尊.” 

Ⅲ. 공자의 천과 그 주석

『논어』에서 ‘天’자는 (天命⋅天道는 포함하되, ‘天下⋅天子’를 제외하면) 도합 22회 출현하며, 이 가운데 공자의 말로 기록된 것은 10문장(16회)에 불과하다. 공자의 직접적인 언명과 그에 대한 논급이 있는 구절을고주(『주소』), 朱子의 신주(『집주』), 그리고 다산주(『고금주』)의 대비를통해 살펴보도록 하겠다.25)

1) 먼저 2:4(五十而知天命)의 주석을 살펴보자. 고주에서 공안국은 “天命의 終始를 안 것이다.”라고 하였고, 형병은 “命이란 하늘에서 받은 운명”으로 “窮困⋅顯達의 天分(窮達之分)을 말하는데, 窮困⋅顯達에는 때가 있으니, 때를 기다려 움직여야 한다.”26)고 부연하고 있다. 요컨대 고주는 (天命의) 命을 운명으로 해석하면서, 그 운명을 부여하는 주재자를天이라고 주석하였다. 이에 대해 朱子는 “천명이란 天道가 유행하여 사물에 부여된 것(性)으로 곧 사물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까닭이다.”27)라고 주석하고, 程子의 “知天命은 窮理⋅盡性이다.”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나아가 그는 “불혹은 일의 측면에서 아는 것이고, 지천명은 이치의 측면에서 아는 것이고, 이순은 일과 이치에 모두 통하여 귀로 들으면 순하지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28)라고 해설하고 있다.

25) 『논어』에서 ‘天’자가 나오는 구절을 살펴보면, 먼저 공자의 언명으로 나오는것은 다음과 같다. 2:4(子曰 ...五十而知天命), 3:13(子曰 不然 獲罪於天 無所禱也), 6:26(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7:22(子曰 天生德於予 桓魋其如何), 8:19(子曰 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唯天 爲大 唯堯則之), 9:5(子畏於匡曰文王 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 其如予何), 11:8(顔淵死 子曰噫 天喪予 天喪予), 14:37(子曰 莫我知也夫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16:8(孔子曰 君子 有三畏 畏天命...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17:19(子曰 予欲無言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등이다. 그리고 공자의 직접적인 언명이 아닌것은 3:24(儀封人 請見曰 ...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 5:12(子貢曰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9:6(子貢曰 固天縱之將聖), 12:5(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19:25(子貢曰 夫子之不可及也 猶天之不可階而升也), 20:1(堯曰 ...天之曆數) 등이다. 이 가운데 5:12는자공의 말이지만 공자의 말에 대한 논급이며, 12:5는 공자의 언명이라는 해석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연구대상에서 다룬다. 이 밖에 天子(3:2), 天下(3:11,3:24, 4:10, 8:1, 8:13, 8:18, 8:19, 8:20, 12:1, 12:22, 16:2, 17:21, 18:6, 19:20 등)라는 말이 나오지만, 여기서 다루지는 않겠다.

26) 『논어주소』는 다음의 역주본을 참조하였다. 정태현⋅이성민 공역, 『역주논어주소』, 전통문화연구회, 2014. 각 구절에 제시된 편장절의 표시로 이 책의 인용(『주소』로 표기)으로 표기한다.

27) 『논어집주』 2:3에 대한 주자주. “天命은 卽天道之流行而賦於物者니 乃事物所以當然之故也라. ⋯ 程子曰 知天命 窮理盡性也.” 『논어집주』(이하 『집주』)의인용은 편장절로 표시한다.

28) 『논어집주대전』 2:3에 대한 주자세주. 『논어집주대전』은 다음 책을 참조하였다. 김동인⋅지정민⋅여영기 역, 『세주완역논어집주대전』1-4, 한울아카데미,2009. 이 책 또한 편장절이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인용 쪽수를 제시하지 않고, 편장절로 표시한다.

 다른 한편, 주자의 理氣論에 반대한 茶山 丁若鏞은 다음과 같이 주석했다.

‘知天命’은 상제의 법칙에 순응하여 궁함과 통함에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맹자가 말했다. ‘요절과 장수에 흔들리지 않고, 몸을 닦아 기다리는 것이 명을 세우는 방법이다(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진심상」) ...知天命이란 天德에 통달한 경지이다.29)

이렇게 다산에 따르면, 天이란 운명의 법칙을 제정하는 상제를 말하면, 天命이란 인간 운명(窮通과 夭壽 등)을 제정하여 부여하는 상제의 법칙이며, 나아가 知天命이란 이러한 운명의 법칙에 흔들리지 않고 수신을 통해 천덕에 통달하는 것이다.

요컨대, 고주와 다산은 ‘知天命’의 天을 인간운명의 주재자로 파악하고 있다면, 주자는 인간에게 본성을 부여하는 천도의 본체로서의 이치(所以然之故)로 파악하고 있다. 나아가 ‘지천명’에 대해서는 고주는 하늘이 부여한 운명을 알아 때에 알맞게 처신하는 것으로, 주자는 하늘이 부여한 인간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본성의 법칙(이치)을 알아 실천하는것으로, 그리고 다산은 인간에게 모순적으로 보이는 운명이 상제가 부여한 법칙이라는 것을 요해하여 흔들리지 않고 修身으로 天德에 도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2) 3:13(王孫賈問曰:“與其媚於奧, 寧媚於竈, 何謂也?”子曰:“不然。獲罪於天, 無所禱也。”)의 주석을 살펴보자. 고주의 공안국은 “奧는 안이니近臣을 비유한 것이고, 竈는 執政을 비유한 것이다. 天은 임금을 비유한것이다.”라고 주석하였고, 형병은 “나의 道의 실행여부는 당시의 君主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衆臣에게 구하여도 이룰 수 없는 것은, 마치 天에죄를 얻으면 衆神에게 빌어서 면할 수 없는 것과 같다(『주소』)”라고 疏를 내었다. 이에 대해 주자는 “천이란 곧 이치이니(天卽理也), 그 존귀함은 상대가 될 것이 없으니 아랫목 귀신(인군)이나 부엌귀신(권신)에 비할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치를 거스르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니, 어찌아랫목 귀신이나 부엌귀신에 아부하면서 빌어서 면할 수 있겠는가? 다만 마땅히 이치를 따를 뿐이다(『집주』)”고 주석하였다.

29) 『논어고금주』는 다음의 책을 참조하였다. 정약용(이지형 역주), 『논어고금주』1-5., 사암, 2010. 이 책의 인용할 때(이하 『고금주』)도 또한 편장절로 본문에제시한다.

그런데 다산은 “奧는 방 서남쪽 모퉁이로 主婦 혹은 老婦를, 竈는 爨突로 밥하는 여인爨女을 말한다. 천은 상제를 말한다(天謂上帝). 도를 굽혀아첨하면 天에게 죄를 얻게 된다. 하늘을 진노케 하면, 衆神들의 복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할 곳도 없다.(『고금주』)”라고 주석하고 있다.다산의 비평대로 “奧가 존귀한 자가 거처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近臣이 아니라 인군을 비유한다는 점에서, 고주의 비유는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주자의 해석대로, 아랫목 귀신이란 항상 존귀함은 지니고 있지만제사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당시 실권이 없는 인군을 말한다. 부뚜막 귀신은 비록 비천하지만 권력을 행사하는 존재이니, 당시의 실권을 지닌권신을 비유한다. 그런데 공자는 당시 인군에게는 충성을 다하면서 권신들의 전횡을 비판했기 때문에, 왕손가가 이런 질문을 하여 공자를 넌지시 떠본 것이다. 그러자 공자께서 비록 아무런 말이 없지만(無言), 사시를운행하여 만물을 화성하여 만물의 존재근거가 되는 하늘에게서 궁극적인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요컨대 주자는 오직 至尊無對의천명의 이치만을 따르면 모든 행동이 정당화된다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주자와 비교할 때 다산의 해석은 훨씬 현실적이다. 그는 奧와 竈를 각각主婦와 爨女로 비유하여 ‘밥 얻어먹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글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지만, 天개념의 주석에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성리학의 집대성자로서 주자는 천이란 단 하나의이치(天卽理)이기 그 존귀함에서 그 어느 것도 상대가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오직 이치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주자가 말했다. 공자께서 “그렇지 않다(不然)”고 하신 것은 아랫목에 아부하는 것이나, 부엌에 아부하는 것이나 다 잘못이라는 말씀이다. 천하에는 다만 하나의 정당한 도리가 있을 뿐이니, 이치에 따라서 행하면 그것이 곧 하늘이다.만약 조금이라도 이치를 어기면 그것이 곧 하늘에 죄를 얻는 것이니, 기도해도그 죄를 면할 수는 없다.30)

즉, 주자가 天은 그 존귀함에서 상대가 없는 一理이기 때문에, 오직理에 따라 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비해 다산은 天을 古經의용대로 上帝로 해석하면서, ‘하늘을 진노케 하면’이라고 표현함으로써至上神으로 인격적인 天(=上帝)의 법칙을 따르지(順帝之則) 않으면, 天의 주재를 받는 衆神들로부터 복을 받을 수 없다고 해석하였다.

3) 다음으로 공자의 언명에 대한 자공의 언급인 5:12(子貢曰:“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를 살펴보자. 먼저夫子之‘文章’에 관한 주석을 보면, 고주는 “공자의 述作⋅威儀⋅禮法의 文彩⋅形質이 드러난 것(章=明)이다.(『주소』)”고 했고, 주자는 “공자의 덕이밖으로 드러난 것이니, 威儀⋅文辭이다.(『집주』)”고 하였다. 그리고 다산은 “공자께서 평소 하신 말씀은 『시』⋅『서』, 그리고 예를 집행하는 것이었다.(「술이」)”는 말을 근거로 여기서의 “文章이란 『시』⋅『서』⋅예⋅악의 학설을 말한다.(『고금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주요 쟁점이 되는 性과 天道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자. 고주는 “性이란 사람이(하늘로부터) 부여 받아 태어난 것(人之所受以生也)이고, 天道는 元氣가두루 미쳐 만물이 나날이 새로워지는 도(元亨日新之道)이니, 그 이치가심오⋅정미하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말이다.(『주소』)”라고 주석하였다. 그런데 주자는 2) “性은 사람이 부여받은 천리(人之所受之天理)이고 天道는 天理⋅自然의 本體이니, 기실은 一理이다.”라고 주석하여, 여기서도 理의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다산은 『중용』의 구절(天命之謂性)로 性⋅命을 주석했다. 다산은 성기호설(性嗜好說)의 입장에서 性과天道를 一理라고 주석한 주자를 비판한다. 요컨대 고주는 氣철학의 관점에서 성(人之所受以生也)과 천도(元亨日新之道)를 해석하였으며, 주자는 理철학의 관점에서 性(人之所受之天理)과 天道(天理⋅自然의 本體)를一理라 하였으며, 그리고 다산은 성기호설의 입장에서 이기철학을 해체하고 『중용』을 직접 인용하면서 주석했다.

30) 『세주완역논어집주대전』 3:13에 대한 주자세주.

4) 이제 6:27(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의 ‘天’에 대한 해석을 살펴보자. 고주는 “이것은 맹서하신 말씀이다. 予는 我이고, 否는 不이고 厭은 버림(棄也)이다. 내가 남자를 만난것이 만약 治道를 행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기를 원한다는 말이다.(『주소』)”라고 주석하면서, “이 장은 공자께서 자기를 굽혀 치도를 행하시기를 구하신 것(屈己求行治道)이다”라고 하였다.이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否는 예에 맞지 않고(不合於禮), 그 도로 말미암지 않은 것(不由其道)을 말한다. 厭은 버리고 끊음(棄絶)이다. 성인의 도는 크고 덕은 완전하여, 반드시 해야하는 것과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없다(無可不可). 성인께서 악인을 만나신 것은 진실로 ‘나로서는 만날 수 있는 예법이 있다면, 저쪽의 善하지 않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라고 하신 것이다.(『집주』)

이에 대해 다산은 ‘否’라는 한 글자에는 ‘不合於禮 不由其道’라는 여덟글자의 뜻을 내포할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否는 만나지 않는 것(不見)을 말하고, 厭은 싫어함(惡)과 같다. 공자가 南子를만난 것은 필시 골육의 은혜를 온전히 하고, 그 사직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내가 만일 만나지 않는다면, ‘하늘이 반드시 싫어하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집주』)

고주는 “공자께서 자기를 굽히고 治道를 행하고자 남자를 만났다.”고해석했고, 주자는 “聖之時者로서 공자가 남자를 만난 것은 可⋅不可의구애됨이 없이, 禮에 합당하게 正道(=理)를 행한 것이다.”고 하였다. 이와 대비되게 다산은 “골육의 은혜를 온전히 하고, 그 사직을 이롭게 하기 위해 남자를 만났다.(『고금주』)”라는 實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그리고 天에 대한 해석에서 고주와 주자는 버리고 끊는 주체로 보았지만, 다산은 好惡의 주체로 주석하여 인격적인 의미를 부가했다. 결국 주자는 天卽理의 입장에서 공자가 理에 합당한 정도를 행하였다고 해석하고 있다면, 다산은 인격천의 입장에서 公益의 실천에 힘썼다는 의미로해석하고 있다.

5) 하늘이 덕의 원천이라고 말하고 있는 7:22(子曰:“天生德於予, 桓魋其如予何?”)를 살펴보자. 고주는 “하늘이 나에게 성인의 성품을 내려주어(授我以聖性), 德이 天地와 합치하여 吉하여 이롭게 하지 않음이 없기때문에 ‘장차 나를 어찌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주소』)”라고 주석하였다. 이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공자께서 ‘하늘이 이미 나에게 이와 같은 덕을 품부하였으니(天旣賦我以如是之德), 환퇴가 나를 어찌하겠느냐.’고 말씀하신 것이다. 필시 하늘(=이치)을 위반하고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이다(不能違天害己)라는 말씀이다.(『집주』)

고주는 “나에게 聖性을 내려주어 그 德이 天地와 합일하여”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주석하였지만, 주자는 공자가 聖人 혹은 仁人이라는 명칭을 사양했다31)는 점에서 聖性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와 같은 덕(如是之德)’이라는 애매한(선천적? 후천적?) 표현을 써서 주석하고 있다. 그런데 다산은 이 구절을 주석하면서 고주의 원문에 대한 형병의 설명과주석(이 장은 공자께서 근심도 두려워함도 없었음無憂懼을 말한 것이다)을 인용만 하고, 자신의 주석을 하지 않았다. 고주는 “하늘로부터 聖性을 내려 받은 공자의 덕이 천지와 합일하여 吉하여 이롭게 하지 않음이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해를 입지 않으며, 따라서 두려움이 없다.”고 해석하고 있다면, 주자는 “하늘로부터 품부된 공자의 덕이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기 때문에 해를 당하지 않는다.”고 주석했다. 여기서도주자는 이치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있다.

31) 『논어』 7:33. “子曰 若聖與仁 則吾豈敢.”

6) 8:19(子曰:“大哉! 堯之爲君也。巍巍乎! 惟天爲大, 唯堯則之。蕩蕩乎!民無能名焉。巍巍乎! 其有成功也。煥乎! 其有文章。”)의 ‘天’에 대한 주석을살펴보자. 고주의 형병은 다음과 같이 疏를 내었다.

則은 法(본받음)이다. ⋯ 높고 큰 형상을 지닌 것 중에 오직 하늘만이 가장커서 만물이 이에 의지해 비로소 태어나고 사시四時가 운행하는데, 오직 요임금만이 이 하늘의 도를 본받아 교화를 행하였다는 말이다. ..요임금이 베푼 덕이 광원하여 백성들이 그 덕을 표현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주소』)

이에 대해 주자는 “則은 準(비견, 준함, 비등함, 나란함)과 같다. 蕩蕩은 넓고 먼 것을 지칭(廣遠之稱)한다. 만물 가운데 높고 큼에서 하늘을넘어서는 것이 없지만, 오직 요임금의 덕만이 그에 비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덕이 넓고 원대함 또한 마치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하늘과 같다(如天)는 말이다.(『집주』)”라고 주석하고 있다. 그런데 다산은 이 구절의 주석에서 고주의 공안국의 “則은 法(본받음)이다.”는 해석을 받아들이면서도, ‘民無能名焉’에 대해서는 고주를 비판하고, 韓愈가 “요임금의 仁이 하늘과 같아(如天), 명명⋅형용할 수 없다는 것이지, 그 이름을 알 수없다는 것이 아니다.”는 설을 옹호하고 있다. 고주는 “唯天爲大, 唯堯則之”의 ‘則’을 法(본받다)로 해석했지만, 주자는 準으로 바꾸었는데, 주자의 해석을 옹호하는 쌍봉 요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이 높다는 것은 형체로 말한 것이다. 요임금이 그것을 則했다는 것은 덕으로 말한 것이다. 則은 곧 準則(비등함)이니, 法則(모범으로 본받음)이 아니다.準은 예를 들면 역은 천지에 준한다(如易與天地準:「계사상전」)는 것과 같이, 천지와 平等하다는 말이다 하늘이 이처럼 크고, 요임금의 덕 또한 이처럼 커서 그것과 평등하다는 말이다. 만일 하늘을 본받는다고 말한다면(若言法天) (聖君이아닌) 현군의 일(賢君之事)일 뿐이다.(『논어집주대전』)

만일 이러한 쌍용 요씨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則을 法의 뜻이라고 하면서, 그 해석에서는 “요임금의 仁이 하늘과 같아(如天)”라고 말한 다산의 해석은 일관성을 잃고 있다고 하겠다.

7) 이제 9:5(子畏於匡。曰:“文王旣沒, 文不在玆乎?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를 살펴보자. 고주(『주소』)에는 ‘文’에 대해 해석하고 있지만, 皇侃(義疏)은 “文王의 文章이다.”라고 하였다. 고주에 따르면, “비록 文王은 이미 죽었으나, 그 文이 나(공자)에게 있으니, 이는 하늘이 이 文을 없애려 하지 않고, 나를통해 전하려고 한 것이니, 匡人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고서 나를 해치지못할 것이다.”는 뜻이다. 朱子는 고주의 마융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있다. 다만 그는 “도가 발현된 것을 일러 문이라 하니(道之顯者謂之文),대개 禮樂制度를 말한다. 道라고 말하지 않고 文이라 말한 것 역시 겸사이다.(『집주』)”라고 주석하였다. 그런데 다산 또한 “공안국⋅마융의 주는순수하여 아무런 하자가 없지만, 오직 이 文이 무슨 책인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문왕이 지은 책 가운데 공자의 힘을 입어후세에 전해진 것은 오직 「彖」⋅「象」뿐이다. 이른바 이 문(斯文)이란 곧「단」⋅「상」이 아닌가?”라고 말하여, 고주를 보완하고 있다. 또한 다산은「질의」를 통해 주자의 文에 대한 해석을 공박(“道를 文으로 바꾸어 말한다고 하여도, 반드시 겸손이 되지는 않는다.”)하면서, “斯文이란 문왕의유문이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文王의 文’이란 오직 역易일 뿐이니, 말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만일道를 文이라 하였다면, 위로는 요순이 있고 아래로는 주공이 있는데, 하필이면문왕을 거명했겠는가? 성인께서는 일생동안 오직 天命만을 들으셨기 때문에 주역 한 部가 그 몸에서 떠나지 않았으니, 광 땅을 지나갈 때 환난이 있어 주역을 지칭하여 말하셨을 뿐이다.(『고금주』)

공자가 말한 文王之‘文’에 대해 고주는 단지 ‘文章’이라고 부연했다. 사전적으로 文章이란 한 나라의 문명을 이룬 예악⋅제도 또는 그것을 적어 놓은 글, 그리고 생각이나 감정을 말과 글로 표현한 것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文章이란 五色이 교차하여 文을 이루고, 黑白이 합해 章을이루니, 文이란 粲然히 文彩가 있는 것이고, 章이란 아름답게 무늬가 있는 것(서사 진씨)” 혹은 “공자께서 평소에 몸소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드러난 문장(夫子之文章)은 威儀文辭라 하고, 천하를 다스린 요임금의문장은 예악법도로 해석한다(신안 진씨: 『논어집주대전』)”32)는 주석도 있다. 주자는 이 文을 道가 발현된 것으로 대개 禮樂制度를 말한다고 주석함으로써 사전적인 의미를 따랐다. 그런데 다산은 그의 중형 정약전의 언명을 인용하면서, 文王之‘文’이란 “문왕이 남긴 글(遺文)인 역의 「단」⋅「상」을 말하며, ‘玆’란 공자 자신이 아니라, 공자가 지닌 ‘簡編’을말한다고 주체적으로 설명이다. 그리고 당시 공자의 흉중에는 이미 「十翼」이 갖추어져 있었고, 공자 자신에게는 과거를 계승하여 미래를 개척하는 자(繼往開來者)로 하늘이 부여한 소명이 있었기 때문에 광 땅의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고금주』)”는 것이다.다산의 해석은 현재 고증학적인 전거를 통해 볼 때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실제적인 설명을 시도했던 그의 경학태도를 엿볼 수 있다. 어쨌든공자는 意志를 지닌 天에서 유래한 文(선왕의 문장 혹은 선왕의 도)을전해 받고, 그것을 전할 문화의 수호자로서 역사적 책무를 분명히 의식하고 있었음을 이 구절에 나타나 있다.

8) 11-8(顏淵死。子曰:“噫! 天喪予! 天喪予!”)의 구절의 天에 대한 해석을살펴보자. 고주는 ‘天喪予’를 “孔子께서 顔淵의 죽음에 마음이 아프고 애처로워 하늘이 나를 죽인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주소』)라고 주석하고 있다. 그런데 주자는 道統論의 입장에서 “도가 전해지지 않음이 마치 하늘이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여기시고 애도하신 것이다.”(『집주』)라고 주석하였다. 다산 또한 「案」을 내어 “안연이 죽었을 때 공자의 연세가 이미 70이였으니, 어찌 다시 왕도를 일으킬 뜻이 계셨겠는가? 하늘이 나를 버리셨다는 것은 도가 전해지지 않음을 애도한 것이다. 漢儒들은 매번 왕도를 일으킬 보좌역이 없어진 것을 애도한 것처럼 말하나, 매우 그릇되었다.”(『고금주』)라고 말하여, 주자와 비슷하게 주석했다.

32) 『논어집주대전』 9:5의 세주.

9) 이제 공자의 天개념의 일단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14:36(子曰:“莫我知也夫!” 子貢曰:“何爲其莫知子也?” 子曰:“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知我者, 其天乎!”)을 살펴보자. 고주는 “孔子께서는 세상에 등용되지 못하여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으며, ⋯ 아래로 人事를 배워 위로 天命을안다. 聖人은 天地와 그 德이 合致한다. 그러므로 오직 하늘만이 나를 안다.”(『주소』)는 뜻이라고 주석했다. 그런데 주자는 정자의 “배우는 자는모름지기 하학상달의 말씀을 지켜나가야 하니, 곧 배움의 요체이다. 대개무릇 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우는 것이 곧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는것이다.”(『집주』)는 말을 인용하면서,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배우는 것은 사람의 일을 배우는 것이니 형이하의 것이지만, 그 일의 이치는본디 하늘의 이치이니 형이상의 것이다. 이 일을 배워 그 이치에 통하는 것은형이하의 것에 근거해 형이상의 것을 깨닫는 것이니, 하늘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집주대전』)

그런데 다산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보완하여 말한다. 하학은 도를 배우는 것(學道)을 말하는 데, 사람의 일에서부터 시작한다(곧 孝弟仁義이다). 上達은 공덕을 쌓음(積功)인데, 天德에 이르러서 그친다(곧 말한바, 事親에서 시작하여 事天에서 마친다). 下學은 남이 아는것이다(行事에 나타나는 것이다). 上達은 남이 아는 것이 아니다. ○살핀다. 여기에서 저기에 이르는 것을 達이라 한다. 공안국의 주석은 ‘達’을 ‘知’라고 하였으니, 그릇된 것이다(공안국의 뜻은 위로 천명과 통하는 것을 말한다). 군자의도는 事天에서 마치니, 이를 ‘達’이라 한다.(『고금주』)

여기서 다산은 고주만 비판하고, 주자의 해석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주자는 “下學이란 형이하의 人事를 배우는 것이며, 上達은 형이상의 이치를 통달하는 것으로, 곧 인사를 배워이치에 통달하는 것이다.”라고 해석했다. 그런데 다산은 여기서 學은 道를 배우는 것이고, 達이란 여기서 저기에 이르는 것을 말하는데, 우선人事(孝悌仁義)의 도리를 배우는 것에서 시작하여 배움을 쌓아 올라 事天(上天 혹은 上帝상제를 섬김)에 도달하는 것이라 해석했다. 여기서도다산은 주자의 이치에 의한 해석을 비판하고, 행사 및 덕의 관점에서 주석하고 있다. 즉 下學而上達을 주자는 형이상의 인사를 배우는 데에서시작하여 형이상의 天理를 통달하는 데에 이르는 것이라고 주석한데 대하여, 다산은 효제인의를 실천하는 데에서 시작하여 덕을 쌓아 하늘(상천, 상제)을 섬기는 데에 나아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주석하였다. 여기서도 다산은 上達을 事天으로 해석함으로써, 天을 인격적으로 해석할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있다.

10) 16:8(孔子曰:“君子有三畏。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小人不知天命而不畏也, 狎大人, 侮聖人之言。”)을 살펴보자. 고주는 “마음으로 열복하는 것(心服)을 ‘畏’라 한다. 순종하면 吉하고 거스르면 凶하여, 보답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천명을 두려워해야 한다. 또한 天道는 廣闊⋅遙遠하기 때문에 小人은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라고 말하고, 천을 응과응보 혹은 길흉화복의 주재자로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주자는 여기서도“天卽理”의 입장에서 주석하고 이다.

天命이란 하늘이 부여한 바른 이치이다(天所賦之正理也). 천명이 두려워할 만한 것임을 알면 경계하고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을 저절로 그칠 수 없어, 부여받은 중한 책무를 잃지 않을 수 있다(畏=嚴憚之意). 천명을 모르기 때문에, 의리를 알지 못해 이처럼 기탄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집주』).

다산은 “순종하면 吉하고, 거스르면 흉한 것이 천명이다.”고 말하여고주를 수용한 다음, 주자의 天卽理에 반론을 제기한다.

주자는 性을 理라고 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天命을 理라고 했다. 비록 그렇다고 할지라도 心性에 부여되어 사람에게 선으로 향하고 악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진실로 天命이고, 나날이 굽어 살펴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나쁜 자에게는화를 내리는 것도 天命이다. 『시경』, 『서경』에서 말한 천명을 어찌 이를 개괄하여 본심의 바른 이치(正理)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 畏란 恐瞿한다는 뜻이니, 아마도 단순히 嚴憚之意가 아닌 듯하다.

군자의 ‘畏’에 대해 고주는 心服, 주자는 嚴憚之意, 그리고 다산은 중용의 언명33)에 근거를 두고 恐懼라고 해석했다. 다산에 따르면 군자가恐懼하는 까닭은 상제가 굽어 살펴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산에 따르면, 군자가 천명을 畏하는 것은 곧 상제를 섬기는 방법(事上帝)이 된다. 여기서의 쟁점은 역시 天命이란 하늘이 부여한 인간 심성의 바른 이치(性卽理)인가, 아니면 따르면 길하고 어기면 흉하게 하며(順吉逆凶) 선하면 복을 주고 음탕하면 화를 주는(福善禍淫) 호오의 감정을 지닌 인격적 주재자인가 하는 점이다.

33) 『중용』 1:2.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

11) 공자 天개념의 대체가 가장 잘 드러난 17:19(子曰:“予欲無言。” 子貢曰:“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天何言哉?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를 살펴보자.

여기서 고주는 “이것은 孔子께서 하늘이 말을 하지 않아도 令가 행해진다는 것을 들어서 비유하신 것이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한 적이 있었더냐? 그런데도 四時의 令이 번갈아 갈마들고 만물이 모두 철에 따라 生長한다. 하늘이 어떤 말이나 敎命을 내린 적이 있던가? 라는 말씀으로, 사람도 말이 없고 단지 행동만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을 비유한것이다.”(『주소』)라고 주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주자는 天을 天理로 해석하고 있다.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하는 모든 것이 天理가 발현하고 유행하는실상이니, 말씀을 기다리지 않고도 볼 수 있다. 성인의 모든 행동거지는 오묘한도와 정밀한 의리의 발현으로 또한 天일 따름이니, 말을 기다려 드러나는 것이겠는가?(『집주』)

이에 대해 다산은 “行事로써 드러내고자 하신 것이다.” 혹은 “하늘은운행만 있고 말이 없다”는 표현으로 고주를 적극 인용하고, 「질의」를 통해 주자의 해석을 적극 비판한다.

백성을 교화하는 데에 있어 언어는 말단에 해당한다. 가르치고 깨우침에 입술이 수고롭고 혀가 닳도록 말해도 오히려 따르지 않는 백성이 있다. 묵묵히 몸소 행하고 행사에서 보이기만 해도 오히려 감동하는 백성이 있다. 단지 天道로써 증험하면, 일월성신이 운행하여 사계절이 어긋나지 않고, 風雷와 雨露가 베풀어져 온갖 만물이 번성해가는 것 또한 묵묵히 스스로 주재할 따름이다. 단지이치의 발현으로 말한다면, 이치는 지각이 없으니, 비록 말하고자 하여도 말할수 있겠는가?(『고금주』)

여기서도 다산은 天을 一理일 따름이다(天卽理也)고 주장한 주자의 주석을 비판하면서, 理(玉理, 脈理)란 知覺이 없는 虛蕩한 것이기 때문에사시를 운행하고 만물을 화생하는 주재자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다산에 따르면, 우주의 사계를 운행하고 만물의 생장을 주재하는 天은 인격적 존재로서 知覺능력을 지니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主宰者라야 한다는 것이다.

12) 이제 비록 명시적이진 않지만, 공자의 언명으로 간주되기도 하는12:5(司馬牛憂曰:“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商聞之矣, ‘死生有命,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皆兄弟也。君子何患乎無兄弟也?”)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자.

고주는 “이 장은 사람은 運命에 맡기고 賢者를 벗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라고 주석하면서, “사람의 死生과 (壽命의) 長短은 각각 품부된 命이 있고, 財富와 位貴는 하늘이 부여한 바에 달렸으니, 君子는 단지 敬愼하여 過失이 없고, 사람들과 사귀되 공손하고 삼가 예가 있어야 할 뿐이다.”(『주소』)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주자는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아마도 공자께 들었을 것이다. 命은 처음 태어날 때 품부된 것이니, 지금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天은 작위하지 않아도 자연히 이루니(天莫之爲而爲)내가 기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순응하여 받아 들여야 할 뿐이다. 이미命을 편안히 받아들였으면, 또한 마땅히 자신에게 있는 것을 닦아야 한다. (...그러면) 천하의 사람이 모두 형제처럼 사랑하고 공경할 것이라고 또한 말한 것이다. 대개 자하는 사마우의 우려를 누그러뜨려 주고자, 이렇게 부득이한 말을 하였으니, 읽는 자는 말로써 뜻을 해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집주)

여기서 주자가 “말로써 뜻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주석한 의도는다음 언명에 잘 해설해 준다.

「서명」에서도 또한 ‘백성은 나의 동포이다’고 하고, ‘모두 내 형제이다’고 했다. 다만 이것은 하늘을 아버지로 하고, 땅을 어머니로 한다는 점에서 말한 것이니, 구구절절 ‘이치는 하나이지만 품부되어 나타남은 다르다(理一而分殊)’는것을 설명한 것이다. 자하가 말한 “사해가 모두 형제이다.”는 것은 이치가 하나임을 말한 것에 가까운 듯하지만, 어찌 형제가 없는 것을 걱정하겠는가라는 말에 이르러서는 품부되면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이것이 『집주』에서 읽는 자는 말로써 뜻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이다.34)

요컨대 주자는 여기서도 성리학의 절대명제인 ‘이치는 하나이지면 그것이 실현되어 나타남은 다양하다(理一而分殊)’는 원리를 통해 설명하고있다. 다산은 “자하가 인용한 것은 아마도 옛말일 것이다.”라고 말하여주자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여기서 “중요한 말은 死生有命이란 구절에 있다(부귀재천이란 말은 연결된 말이기 때문에 단지 암송한 것이다.”라고 말하여 고주에 따르고 있다. 나아가 그는 자하의 말이 지닌 폐단은“사마우가 아파한 것은 형제에게 있는데, 광활한 말(사해가 모두 형제이다)을 만들어 위로했다는 것”이지, 그 말이 성리학적인 ‘分殊之理’의 논리를 위반한 것에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34) 『논어집주대전』 12:5에 대한 운봉 호씨의 세주.
Ⅳ. 결 론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天에 대한 고주, 주자 그리고 다산의 주석을정리해 보자.

1) 2:4(知天命)의 天에 대해 고주는 운명천(궁달지분의 부여자)으로, 주자는 所以然之故(知天命=窮理盡性)로서 이치, 그리고 다산은 상제의 법칙(=운명, 知天命=通天德)으로 보았다.

2) 3:13(獲罪於天)의 天에 대해 고주는 주재천(인군의 비유)으로, 주자는 至尊無對의 이치로, 그리고 다산은 인격적 상제(天謂上帝)로서 衆神의 통솔자라 하였다.

3) 5:12(性與天道)에 대해 고주는 氣철학의 입장에서 性(人之所受以生也)과 天道(元亨日新之道)를 해석했고(造生載行天), 주자는 性(所受之天理)과 天道(天理의 本體)는 一理라고 했다. 그리고 다산은 고주를 수용하면서 성기호설의 입장에서 주자의 理를 비판하였다.

4) 6:27(天厭之)에 대해, 고주는 주재천(버리는 주체)으로, 주자는 禮에합당하게 正道(=理)를 행한 것으로, 그리고 다산은 好惡의 주체로 봄으로써 인격적인 주재천으로 해석하였다.

5) 7:22(天生德)에 대해 聖性을 내려준 주체(義理天)로, 주자는 “하늘로부터 품부된 공자의 덕이 天理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말함으로써 이치의 관점(義理天)으로 해석하였다. 다산은 고주(義理天)를 인용만 하고주석하지 않았다.

6) 8:19(惟天爲大)에 대해 고주는 造生-載行天(만물이 의지하여 태어나고 四時를 운행)으로, 주자는 德의 크기를 말하는 廣遠之稱(義理天)으로,그리고 다산은 고주를 인용(造生-載行天)만 하였다.

7) 9:5(文不在玆乎?天之將喪斯文也)에서 文(文章, 道之顯者, 遺文)에대해서는 견해를 달리 하지만, 天에 대해서는 공히 “文을 없애려 하지않고, 나를 통해 전하려고 하는 자(주재천)”라 하였다.

8) 11:8(天喪予)에 대해 고주는 애처로움의 표현으로, 그리고 주자와다산은 “도가 전해지지 않음을 애도하신 것”이라 하였는데, 주재천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9) 14:36(不怨天 ...下學而上達 ...其天乎!”)에서 고주는 “위로 天命을 안다”고 말한 점에서 주재-운명천, 그리고 ‘聖人은 天地와 그 德이 合致한다’고 말한 점에서는 의리천으로 해석했다. 주자는 여기서도 이치의 관점(인사를 배워 그 이치에 통한다)에서 주석했다. 다산은 事親(孝弟仁義)에서 시작하여 공덕을 쌓아 事天(上天, 上帝)에 도달한다고 말하여, 天이란 공덕을 쌓아 섬기는 대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10) 16:8(畏天命)에 대해 고주는 운명천(운명에 열복)으로, 주자는 이치로(天命이란 하늘이 부여한 바른 이치), 그리고 다산은 고주를 수용하면서도 畏란 上帝가 굽어 살피고 있기 때문에 恐瞿하는 것으로 해석(啓示天?)하였다.

11) 17:19(天何言哉?四時行焉, 百物生焉)에서 고주는 主宰-載行天(하늘이 말을 하지 않아도 令이 행해진다)으로, 주자는 天理(모든 것은 天理가 발현하고 유행하는 실상)로, 그리고 다산은 고주를 인용하면서, 주자의 이치에 의한 해석을 비판(理는 지각이 없으니, 주재할 수 없다)했다.

12) 12:5(死生有命, 富貴在天)에 대해 고주는 운명천(사람은 運命에 맡기고)으로, 주자는 맹자의 말을 인용(天莫之爲而爲)하면서도 理一分殊의관점에서 주석했다. 다산은 고주에 따르면서 성리학적인 ‘分殊之理’에의한 해석을 비판(광활한 말일 뿐이다)했다.

요약하면, 고주는 天을 궁달지분(운명)의 부여자, 인군의 비유(주재자),元亨日新之道, 버리는 주체, 聖性을 내려주며 만물이 의지하여 태어나고四時를 운행, 文의 근원, 聖人의 德과 合致, 운명에 열복 등의 표현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고주는 공자의 天을 운명의 주재자이자 도덕의 근원이며, 나아가 만물이 의지하여 태어나게 하고 사시를 운행하는 존재라주석하였다.

주자는 天을 所以然之故 혹은 至尊無對의 이치, 性(所受之天理)과 天道(天理의 本體)는 一理, 禮에 합당한 正道(=理), 공자의 덕이 天理에부합, 廣遠之稱(義理天), 道(=文) 혹은 道統의 근원, 형이상의 이치, 天命이란 하늘이 부여한 바른 이치(天所賦之正理也), 모든 것은 天理의발현이자 유행의 실상, 理一分殊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렇게 주자는 공자가 天을 말한 거의 모든 구절을 理개념으로 주석하였다. 그가 말하는 理란 만물의 존재근거(所以然之故)이자 당위법칙(所當然之則)이다.하늘은 곧 이치이고(天卽理), 인간이 부여받은 본성 또한 이치(性卽理)일 따름이다(一理).

다산은 상제의 법칙(=운명), 天德에 통달, 진노하는 상제(天謂上帝),성기호설, 好惡의 감정을 지니고 버리는 주체, 도의 전수자, 공덕을 쌓아事天에 도달, 上帝가 굽어 살피고 있기 때문에 恐瞿 등의 표현으로 天개념을 주석하였다. 그런데 『논어』의 공자 天개념 주석에서, 다산은 전체12구절 가운데 최소 8구절에서 고주에 동의하고, 주자의 주석에 대해서는 단지 1구절(11:8: 도의 전수의 측면)만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다산은주자의 理에 의한 해석에 대해 단1번도 동의하지 않았으며, 최소한 5번(5:12, 9:5, 16:8, 17:19, 12:5)에 걸쳐 명시적으로 비판했다. 다산 주석의특징은 天을 上帝로 규정하고, 行事 및 德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에 있다. 『논어』에서 ‘上帝’라는 말은 공자 및 그 제자들은 단1차례도 사용하지 않았고, 후대 편입되었다고 추정되는 「요왈」편에 나타날 뿐이다. 그런데 다산은 2:4(상제의 법칙), 3:13(天謂上帝), 14-36(事天: 天은 上天 혹은 上帝), 16:8(畏=恐瞿), 17:19(지각할 수 없으면 주재할 수 없다) 등에서명시적으로 이 표현을 사용하였다. 다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자는 性을 理라고 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天命을 理라고 한 것이다. 비록그렇다고 할지라도 心性에 부여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선으로 향하고 악에서 떠나게 하는 것은 진실로 天命이고, 나날이 굽어 살펴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나쁜 자에게는 화를 내리는 것도 天命이다. 『시경』, 『서경』에서 말한 천명을 어찌 이를 개괄하여 본심의 바른 이치(正理)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시경』에 ‘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보존해 나가다(畏天之威 于 時保之, 「주송周頌,아장我將」)라고 한 것을 만약에 “마음의 이치를 두려워하여 이에 보존해 나간다(畏心之理 于時保之)’라고 한다면 어찌 통할 수 있겠는가? 『서경』「강고康誥」에 ‘오직 천명은 일정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惟命不于常)’라 하고, 『시경』에‘천명은 일정하지 않다(天命靡常)’(「대아大雅」, 문왕文王」)고 하였는데, 마음의 바른 이치가 어찌 無常이겠는가? 또 畏란 恐瞿한다는 뜻이니, 아마도 단순히 嚴憚之意가 아닌 듯하다(『고금주』16:8).

다산은 『시』과 『서』에 나타난 ‘天命’이란 말을 본심의 바른 이치(本心之正理)로 치환한다면 그 구절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 주자의 해석은 잘못되었다고 반론하고 있다. 이는 주자의 성리학과 다산학이 결별하는 결정적인 지점이다. 물론 다산의 이러한 지적들은 상당일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적 개념이란 역사가진행됨에 따라 확장, 심화, 변용된다. 시대 문화의 정화로서 철학은 개념으로 파악된 그 시대 혹은 시대의 아들이다. 『시』과 『서』의 천명개념은주로 군주 1인과 교섭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공자가 쉰에 천명을 알았다고 말하고, 命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선언하고, 나아가 『중용』에서 천명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규정한 이래 天命은 이제 運命의 개념이외에, 인간의 주체에 내재하는 본성의 의미(使命)를 지니게되었다는 점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것이 아닐까?

35) 『여유당전서』II-6, 36. 「맹자요의」. 理者本是玉石之脈理... 靜究字義 皆脈理治理法理之假借爲文者. 이 저서의 번역본으로는 다음을 참조하였다. 정약용(이지형 역), 역주맹자요의, 현대실학사, 1994.

그렇다면 다산은 왜 이렇게 주자의 ‘天卽理’에 대해 적극 비판하면서,‘天謂上帝’라 하였는가? 앞서 고찰했듯이, 은주시대를 거치면서 궁극자의개념은 특별한 민족의 조상신인 상제로부터 보편적인 주재자이자 도덕의 근원인 天개념으로 대치되었다. 그렇다면 다산이 천을 상제로 해석한 것은 보편적인 천으로부터 조상신인 상제에로 후퇴가 아닌가? 그런데 다산은 天의 最高性, 靈明性, 그리고 臨在性을 표현하기 위해 ‘天謂上帝’라는 말하고, 주자의 天卽理의 입장을 비판하였다. 그래서 그는 “理란본래 옥돌의 脈理이다. ⋯ 가만히 자의를 탐구해보면 맥리, 치리, 법리를假借한 것”35)이라는 사실을 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천하에 靈性이 없는 물건은 主宰者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집안의 ...한 고을의 우두머리가 어둡고 어리석어 지혜롭지 못하면 한 고을의 모든 일이 다스려지지 않게 된다. 하물며 텅 비고 허탕한 太虛의 一理가 천지만물의 주재자가 된다면 천지간의 일이 다스려지겠는가?36)

대저 理는 어떤 것인가? 理는 애증도 없고 희로도 없고, 텅 비고 막막하여 이름도 없고 형체도 없는데, ‘우리들이 理에서 품부된 性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道가 되기 어렵다.37)

요컨대 다산에 따르면, 천을 상제라 하는 것은 나라님(國君)을 나라(國)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38) 바로 이런 이유에서 다산은 주자의 理철학과연관하여 “지금 사람들이 聖人을 희구하나 될 수 없는 세 단서가 있다. 하나는 天을 理로 인식하는 것, 인을 理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庸을 平常으로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통해 그는 堯舜-周公-孔子之道로 이어지는 본원유학(昭事上帝之學)의 회복을 목표로 한다. 그에따르면 본원유학은 上帝(天)를 올바르게 통찰하고, 愼獨으로 上帝를 섬기고, 恕에 힘써 仁을 구하기를 끊임없이 하여 성인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한다.39) 바로 이것이 다산이 천을 상제로 해석한 이유라 하겠다.

36) 『여유당전서』 II-6, 38, 「맹자요의」. “凡天下無靈之物 不能爲主宰 故一家之長昏愚不慧 則家中萬事不理 一縣之長 昏愚不慧 則縣中萬事不理 況以空蕩蕩之太虛一理 爲天地萬物主宰根本 天地間事 其有濟乎.”
37) 『여유당전서』 II-6. 37, 「맹자요의」. “夫理者何物 理無愛憎 理無喜怒 空空漠漠無名無體 而謂吾人稟於此而受性 亦難乎其爲道矣.”
38) 『여유당전서』 II-6, 38, 「맹자요의」, “鏞案天之主宰爲上帝 其謂之天者 猶國君之稱國 不敢斥言之意也 彼蒼蒼有形之天 在吾人不過爲屋宇帡幪 其品級不過與土地水火 平爲一等 豈吾人性道之本乎.”
39) 『여유당전서』 II-2. 40, 심경밀험, “今人欲聖而不能者 厥有三端 一認天爲理一認爲生物之理 一認庸爲平常 若愼獨以事天 強恕以求仁 又能恒久而不息 斯聖人矣.

◇ 논문접수일: 18.11.30 / 심사완료일: 18.12.04 / 게재확정일: 18.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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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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