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11>
중국 문자의 특성을 몇 개의 요점으로 귀납(歸納)해서 하나 하나 살펴 보고자 한다.
-중국문자의 완정성(完整性)
순 형체상으로 관찰할 때, 중국 문자는 그 각기 완형(完形, 독일어로 게슈탈트(Gestalt))를 지니고 있다. 주선경(周先庚)은 이런 중국 문자의 특성을 발견하여 『미인판단한자위치지분석(美人判斷漢字位置之分析)』이라는 글에서 중국 문자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매 글자는 매 글자 고유 특성이 있다. 매 글자의 구조와 조직은 모두 일개의 너무 작은 것을 본뜬 건축물이다:균형이 있고, 대칭이 있으며, 조화가 있다. 따라서 글자와 글자의 분별은 매우 표준에 가까우므로 특별히 모호해지기 쉽지 않다. 비교해보면 서양 문자는 매 글자 여러 개의 대동소이한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한 일렬로 평행한 선을 이루며 가로로 늘어져있다; 글자와 글자 사이의 고유한 특성ㆍ완정성 혹은 ‘격식도(格式道)’는 훨씬 적다.”
[每字有每字箇性;每字的結構組織, 都像一個小小的 建築物:有平衡, 有對稱, 有和諧. 字與字的辨識, 因此就非常有標準, 特別不容易模糊. 比較西洋文字, 每字是多個大同小異的字每所組成, 而又橫列成一平線; 字與字間的箇性ㆍ完整性ㆍ或‘格式道’, 就少得多.]
이 말을 분석하기에 앞서 우선 무엇이 ‘격식도(格式道)’인가를 알아야 한다. 격식도란 게슈탈트(Gestalt)의 음역(音譯)으로, 그 뜻은 즉 완형(完形)이다. 독일의 심리학자들 중의 한 학파는 여러 차례의 실험에 의하여 인류의 사물에 대한 인식은 먼저 사물 바깥의 완정한 형상을 알고 나서 그 사물 내부의 구성 성분을 변별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므로, 인류는 우선 전체를 학습하고 그다음 부분을 학습한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먼저 종합하고 나서 분석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였다. 이는 바로 학습 심리학에서 유명한 완형 심보학파(心報學派)의 주요 이론인 것이다.
우리는 독체(獨體), 합체(合體)의 두 종류에 지나지 않는 중국 문자를 한번 분석해 보도록 하자. 독체의 ‘문(文)’은 그 완형성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합체의 ‘자(字)’는 대부분이 두 개의 초문(初文)으로 된 것이고, 소수가 세 개의 초문으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세 개 이상의 초문으로 구성된 자(字)는 극히 드물다. 또 초문이 합쳐져서 하나의 자(字)를 구성하는 방식으로는 혹은 좌ㆍ우의 배열로 ‘리(理)’ 자, ‘논(論)’ 자 등이 있고, 혹은 상하의 배열로 ‘간(簡)’ 자, ‘번(繁)’ 자등이 있으며, 혹은 내외의 배열로 ‘고(固)’ 자, ‘국(國)’ 자들이 있는데 모두가 완정된 네모꼴로 생겼고, 한 성음(聲音), 하나의 본의(本義)를 대표하며 또한 완형의 특성을 충분하게 표현해 주는 것이다. 중국의 독체인 초문과 두세 개의 초문으로 구성된 자(字)를 학습하는 것은 당연히 평균 7~8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서방(西方)의 문자보다는 편리할 것이다. 그리하여 고문자학(古文字學)을 연구한 동작빈(董作賓)은 중국 문자를 논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문자는 지금 비록 그림에서 매우 거리가 멀지만, 각각의 글자가 하나의 독립된 단위가 되어 구체적으로 하나의 언어ㆍ인상ㆍ사물을 대표한다. 처음 글을 배우는 어린 아이들에게 시험해 보았을 때 오히려 비교적 표음 문자가 쉽게 기억되었음을 교육 심리학자가 몇 차례 시험했으니 자료로 삼아 증명할 수 있다.”(동작빈, 『중국문화논집(中國文化論集)』 제1책)
-중국문자의 통각성(統覺性)
통각(統覺, Apperception)은 역시 학습 심리학에서 사용하던 하나의 명사로, 혹은 류화(類化)라고도 번역하는데 학습에 있어서 구관념(舊觀念)을 이용하여 신관념(新觀念)을 조성하는 과정을 뜻한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중국의 모든 문자는 500여개의 초문(初文)으로 구성되었다. 초문 하나 하나는 모두가 하나의 관념의 단위로, 즉 사(詞)를 말하는데, 우리는 이를 원시적단음사(原始的單音詞)라고 부른다. 그리고 초문의 합체(合體)로 구성된 자(字) 또한 하나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관념 단위로 역시 하나의 사(詞)이며 우리는 이를 후기적단음사(後起的單音詞)라고 부른다. 또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자(字)로 구성되어 하나의 관념을 표시하는 것 역시 하나의 사(詞)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는 이를 복음사(複音詞)라고 일컫는다. 우리가 복음사를 배울 때에는 단음사를 기초로 할 수 있다. 게다가 복음사를 구성하고 있는 각 단자(單字)의 의미까지도 연대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후기적단음사를 배울 때 원시적단음사를 기초로 삼을 수 있으며 잇달아서 자(字)를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초문의 의미 또한 알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문자는 이런 통각적인 특성을 갖고 있으므로 학습하는데 있어 무척 편리하다.
예를 들면, ‘논(論)’ 자를 알았을 때, 그것의 의미는 ‘언어에는 조리와 순서가 있다’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덧붙여서 ‘논(論)’ 자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개의 초문, 언(言)과 윤(侖)의 음의(音義)를 알게 되는 것이다. 언(言)은 언어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부수가 언(言)에 속하는 자(字)들을 연상해낼 수 있는데, 담(談)ㆍ위(謂)ㆍ과(誇)ㆍ눌(訥)ㆍ산(訕)ㆍ풍(諷)ㆍ송(誦)ㆍ독(讀)······등등 모두 다 언어와 관련이 있다. 윤(侖)은 ‘’을 대표하는 소리로 역시 ‘조리와 순서’의 의미를 갖고있어 성부(聲符)가 윤(侖)인 자(字)들을 연상해 낼 수 있는데, 윤(倫)ㆍ륜(掄)ㆍ윤(淪)ㆍ륜(棆)ㆍ륜(綸)ㆍ륜(輪)······등등은 독음(讀音)이 반드시 ‘’에 가까울 것이고, ‘조리와 순서’의 의미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이 ‘논(論)’ 자를 기초로 하여 많은 복사(複詞)를 짐작하여 생각해 낼 수 있으니, 예를 들면 ‘논가(論價)’ㆍ‘논해(論解)’ㆍ‘논학(論學)’ㆍ‘논거(論據)’ㆍ‘논결(論決)’ㆍ‘논쟁(論爭)’ㆍ‘논차(論次)’ㆍ‘논술(論述)’ㆍ‘논증(論證)’······및 ‘언론(言論)’ㆍ‘고론(高論)’ㆍ‘유론(謬論)’ㆍ‘의론(議論)’ㆍ‘이론(理論)’ㆍ‘변론(辯論)’······등등으로 이런 통각성은 세계 어떤 종류의 문자도 중국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12>
-중국문자의 온정성(穏定性)
표음문자는 자형으로 음을 표시하는 것이며, 중국의 네모꼴의 글자는 자형으로 뜻을 표시하는 것인데 그 중에 대부분은 뜻을 표시하는 것 이외에 또 음을 표시하는 것을 겸한다. 이 두 가지 방식의 장점과 단점은 어떠한가? 장태염(章太炎)은 호이로(胡以魯)의 『국어학초창서(國語學草創序)』에서 일찍이 말하기를
“만약 형태와 음이 존재하면 땅(공간)은 10번이나 넘어가고, 시간은 10대가 지났으니 공통된 의미를 알기 어렵다. 만약 형태와 의미가 존재하면 오히려 땅(공간)이 호월(胡越, 중국에서 먼 북방과 남방을 뜻함)과 멀리 떨어져있고, 시간은 옛날과 지금이 다르니 그 문자를 읽을 수 있다.[即形而存音者, 地逾十度, 時越十世, 共意難知也. 即形而存義者, 雖地隔胡越, 時異古今, 其文可誦也.]”
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두 마디로 그 사이의 우열(優劣)을 판가름 해 놓았다.
인도의 영토는 우리 나라(중국)보다 적지만, 전국의 방언은 백 수십종을 내려가지 않으며, 문자는 범문(梵文) 위주인데 각지에서 방언의 발음에 따라 만들어 낸 문자 또한 서른 몇 가지가 되는 것이다. 인도는 한 문명 고국(古國)으로 후에는, 오랜 세월 동안에 걸쳐 다른 민족의 통치를 받아 단결하여 저항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독립 후인 지금까지도 내부가 불안한 상태이다. 그러한 원인은 물론 많겠지만, 인도는 공통 문자로써 민족 감정을 한 곳에 붙잡아 맬 수 없었음이 그 원인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이는 표음 문자가 공간 거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나타낼 수 밖에 없었떤 분기(分歧) 현상이다. 게다가 표음문자는 어음(語音)의 부호 이외에 본래의 모습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언어는 세월에 따라 점점 변하는 것이므로 표음 문자 또한 언어의 변화에 따라 변하게 되는 것이다. 영문(英文)으로 예를 들자면, 17세기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의 많은 문자가 이미 오늘날의 영문과는 다르다.
영문자가 영어에 따라 변하고 있다 해도 ‘간자독음(看字讀音)’의 경지에는 도달할 수가 없다. 같은 a가 father, all, late, Asia, hat 등에서의 독음은 모두가 다르다. 동일한 c가 city, careful, official 등에서의 독음도 또한 서로 다르다. 일본 문자 중에 일부 ‘가명(假名,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은 역시 표음(標音) 문자로 오직 한 차례의 제2차 세계 대전을 사이로 해서 엄청난 변화가 발생하였다. 이런 현상은 곧 표음문자가 시간이 변함에 따라 반드시 발생할 수 있는 분기(分岐) 현상인 것이다. 다시 중국을 볼 때, 비록 언어 방면에는 표준어와 방언의 차이가 있어도 종이 위에 쓰게 되면 동서남북의 분별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만약에 창힐이 서계(書契)를 정리할 때에 표음 문자의 예를 늘어 놓았다면 각지에서는 할 수 없이 방언의 음으로 문자를 만들었겠고, 그랬다면 유럽처럼 언어 문자의 다름으로 인해 여러 나라로 분열되지 않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중국은 즉, 표의문자를 사용했기에 수 천년의 문화가 일맥으로 서로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여러 종류의 방언도 문자로써 통일시켰으므로 7억 인구의 위대한 민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화의 지구력, 민족의 응집력은 바로 중국 문자 특유의 온정성의 성과인 것이다.
-중국문자의 예술성(藝術性)
여기서 말하는 예술은 포괄적으로 공간 예술·시간 예술 그리고 일종의 종합 예술을 포괄하는, 즉 생활의 예술을 말하는 것이다.
형체(形體)상, 중국 문자는 의류상형(衣類相形)에 형성상익(形聲相益)으로 진화된, 회화(繪畫)의 바른 계통에 의한 발전이다. 그러므로 글자마다 그림과 같아 미술상의 의미가 풍부하다. 특히 고문과 전서(篆書), 이런 회화식의 자체는 더욱 예술성이 풍부하다. 그래서 중국의 문자는 다만 입화(入畫)하여 화면(畫面)에 써서 그 미관을 증가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 또한 단조(單條) 혹은 대련(對聯)으로 독립된 예술품이 되어 공간 예술의 일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성음상, 중국 문자는 일자일음(一字一音)으로, 또한 평측(平仄)의 다름이 있다. 그러므로 배비대장(排比對仗)할 것 같으면 일자(一字) 대 일자(一字), 일평일측(一平一仄)으로 무척 가지런하게 대구(對句)할 수가 있다. 중국의 변문(駢文)은 거의 구구대칭(句句對稱)이고, 두 글자마다 하나의 절주(節奏)를 이루며, 평측체용(平仄遞用, 속칭 마제운(馬蹄韻))으로, 곧 이런 문자의 특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근체시(近體詩)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오언(五言) 혹은 칠언(七言)으로, 평측(平仄)ㆍ대장(對仗)ㆍ용운(用韻) 등에 있어 모두 엄격한 규칙이 있었으니, 이런 문자의 특성이 없이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설령 보통 산문(散文)일지라도 작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약간의 변어(駢語)를 삽입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 모든 예는 다 중국 문자가 음악적 고저완급(高低緩急)과 박자를 갖추었음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하나의 시간 예술임을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의의(意義)상, 중국 문자는 일종의 고심(高深)한 철학을 지니고 있다. 인언위신(人言爲信), 지과위무(止戈爲武) 등의 형형상익(形形相益)한 글자에서 우리는 일종의 언행일치의 요구와 평화를 강구하는 대국민의 풍격을 느낄 수 있다. 많은 형성상익의 글자 중에서도 마찬가지로 유사한 오묘한 계발이 있었으니, 종심노성(從心奴聲)의 ‘노(怒)’ 자의 예처럼 어떤 한 사람이 이성과 지혜를 잃었기에 화를 낼 수 있으며, 이때 그는 이미 마음 속 감정의 노예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美國)의 유명한 작가 마뉴엘 코모로프(Manuel Komroff)는 그의 자술(自述)에서 “나는 한자(漢字) 한 자씩을 배울 때마다 일종의 위대한 철학적 지식을 더해감을 스스로 느낀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중국의 문자는 글자마다 거의 모두가 오래된 민족의 지혜를 대표하여 하나의 위대한 예술──인생예술을 표현한 것이다.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