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1>
'문자(文字)'라는 이 두 글자는 합쳐서 보면 마치 하나의 명사인 것처럼 보이며, 그 뜻은 언어를 기록하여, 의사를 표현 전달하는 도형부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나누어보면 문(文)은 문(文), 자(字)는 자(字)로 각각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을 가진다. 동한 때 허신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보면 문(文)은 "교차된 획이다. 교차된 무늬를 본뜬 것이다.[錯畵也 象交文]"라고 해석하였고, 또 자(字)는 "젖먹이는 것이다. 지붕 아래에 있는 아이로 구성되어있다.[乳也. 從子在宀下]"라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설문해자서(說文解字叙)』에서는 더욱 뚜렷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
"倉頡之初作書(창힐지초작서) 蓋依類象形(개의류상형) 故謂之文(고위지문) 其後形聲相益(기후형성상익) 即謂之字(즉위지자)"
"창힐이 처음 글을 만들었는데, 대개 종류에 의거해 형상을 본뜬 것이므로, 문(文)이라고 말한다. 그후 형태와 소리가 서로 더해져, 곧 자(字)라고 말한다."
이와 같은 허신의 말을 따르자면 모든 의류상형(依類象形)은 문(文)이라 부르게 된다. ''(文) 자 자제 또한 두 가지 무늬가 교착(交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의류상형(依類象形)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하나는 구체적인 형태를 본뜬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추상적인 사실을 형상으로 나타낸 것이다. 예를 들면, 는 해(日)의 모양을 본뜬 것이고, 은 달(月)의 모양을, 은 물(水)을, 는 불(火)의 모양을 본뜬 것이며,, ,, 등도 각각 새(鳥), 물고기(魚), 쥐(鼠), 거북(龜) 등의 실재의 모양을 비추어 본뜬 것으로, 이들 모두는 실체를 그릴 수 있는 것이므로 '구체적 상형(象形)'이라고 한다.
또 은 하나의 부호인데, 이를 하나의 물건, 사랑, 일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또한 하나의 부호로써 아래 위가 서로 연결됨, 또는 아래 위가 관통함을 표시한다. 도 하나의 부호로써 어떤 물건이 다른 어떤물건의 위에 있다는 표시이고, 도 하나의 부호로써 어떤 물건이 다른 어떤 물건의 아래에 있다는 표시이다. 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비스듬히 구부러진 것을 나타내는 부호이고, 은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구부러진 것을 나타내는 부호이다. 口은 둘러쌈을 뜻하고, 은 서로 갈라짐을 나타낸다. 이와 같이 실체를 그릴 수 없어 추상적인 부호로써 표시하는 것을 '추상적 상형'이라고 한다.
이 모든 의류상형의 문(文)은 구체적 형상, 혹은 추상적 형상을 막론하고, 이를 더 이상 분석해 낼 수 없는 독체(獨體)이며, 이는 또한 중국 문자 구조의 근본인 것이다. 그리하여, 송나라 정초(鄭樵)는 『통지(通志)』「문자략(文字略」에서 '독체위문(獨體爲文)'이라 하였다. 독체의 문이라 함은 곧 초문(初文)을 말하는 것이다.
그 후로, 인류와 사물이 진화하여 수많은 글자들이 생겨나 다시는 의류상형의 방법으로 나타내기가 어렵게 되자, 마침내 형성상익(形聲相益)의 방법을 생각해내게 되었다. 모든 형성상익된 것은 모두 자(字)라 불리어진다. '' (字) 자 자체는 곧 ''(宀)와 ''(子)가 서로 배합되어 된 것으로, 사람이 아이를 낳아 자손이 번창한다는 뜻으로 표시하고 있다.
형성상익의 방법에도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형(形, 모양)'과 형(形)의 상익(相益)이고, 다른 하나는 형(形)과 성(聲, 소리)의 상익이다.
예를들면, 한 사람이 말을 할 때는 마땅히 믿음이 있어야 하므로 ''(人)에 ''(言)자를 더한 것이 ''(信) 자 이다. 천하의 병과(兵戈)를 막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위엄과 무력(武力)이기 때문에 ''(止)에 ''(戈) 자를 더한 것이 ''(武) 자가 된다. 그리고 손을 눈 위에 얹는 것이 본다는 습관성 동작이므로 ''(手) 아래 ''(目) 자를 더해 ''(看-볼 간) 자가 되었고, 얼굴을 다른 사람과 마주 하고 있으면 곧 얼굴로 사람을 본다는 의미를 가지므로 ''(面)자 곁에 '' 자를 붙여서 ''(靦-부끄러울 면) 자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형과 형이 서로 배합되어 있으며, 그 배합된 것으로 그 뜻을 짐작할 수가 있다.
또 ''(木) 자는 상형자(象形字)인데, 나무 종류는 매우 많을 뿐만 아니라, 나무와 관련된 물건 또한 매우 많다. '柏(측백나무 백)·楓(단풍나무 풍)·檀(박달나무 단)·桃(복숭아나무 도)·柚(유자나무 유)·梅(매화나무 매)·桂(계수나무 계)·榆(느릅나무 유)'자 등은 모두가 나무의 종류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檢(검사할 검)·橋(다리 교)·榜(노저을 방)·機(베틀 기)·枹(북채 부)·桎(차꼬 질)·棺(널 관)·檻(난간 함)·楣(문미 미)'자 등은 모두 나무와 관련이 있는 글자들이다.
만약 이 모든 글자 한 자 한 자를 상형으로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 뜻이 명백하게 구별되지 않을 뿐더러 사실상 전혀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 쪽에는 형태를 나타내는 부호 '木(나무)'으로써 그 종류를 표시해 주어, 사람들이 보면 곧 이것은 수목이거나 수목과 관련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고, 또 다른 한쪽에는 성부(聲符)인 白·風·僉·喬 등으로 그 성음(聲音)을 표시하여, 사람들이 읽어보면 곧 무슨 음인가를 알 수 있게 하였다. 형태를 나타내는 부호로써 그것이 속한 종류를 알고, 성부로는 읽어야 할 발음을 알 수 있는데, 이로써 형과 성이 서로 배합되어 그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든 형성상익(形聲相益)의 자(字)는 '형여형상익(形與形相益)'이건 '형여성상익(形與聲相益)'이건 간에 모두가 다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초문(初文)으로 배합되므로 정초(鄭樵)는 '합체위자(合體爲字)'라 하였다. 이러한 합체의 방법이 있은 후로 글자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는 무척이나 쉬워지고, 또 글자의 수도 날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상에서 말한 바로 우리는 이제 '문(文)은 의류상형(依類象形)'이고 '자(字)는 형성상익(形聲相益)'임을 알 수 있다.
- 문자(文字)의 정리
1)문(文)
①초문(初文, 문자를 쓰는 가장 초기의 방식), 독체(獨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것)
②의류상형(依類象形) - 구체적 상형, 추상적 상형
2)자(字)
①합체(合體, 두개 혹은 두 개 이상의 초문으로 배합된 것)
②형성상익(形聲相益) - 형여형상익(形與形相益), 형여성상익(形與聲相益)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2>
문(文)은 맨 처음 구조인 '초문(初文)'이고, 자(字)는 '초문'이 서로 배합되어 이루어진 '자유자(孳乳字, 파생된 글자)'이다. 그러므로 문(文)은 '독체(獨體, 더 이상 분석할 수 없는 것)'이고 자(字)는 '합체(合體, 두개 혹은 두 개 이상의 초문으로 배합된 것)'라 하겠다. 중국 문자 중에는 초문이 많지 않은데, 『설문해자』에 수록된 것은 단지 489개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초문은 유한적이다. 그러나 초문이 배합하여 불어난 글자의 수는 무한적이고, 실제의 수요에 따라 한없이 증가할 수 있다. 『설문해자』에 수록된 9,353개의 문자 중에 8,864자는 합체자인 것인다. 우리가 만약 유한한 초문을 알고, 배합하여 글자를 만드는 원리를 터득하게 된다면, 곧 만들어진 글자 수가 몇 만 몇 십만이 되더라도 무척 편리하게 그것들을 전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설문해자서』에 계속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있다.
"문(文)은 만물을 본뜬 근본이고, 자(字)는 (文에서) 파생되고 점차 많아지는 것을 말한다.[文者物象之本 字者言孳乳而浸多也]"
인용문의 내용은 '문(文)'과 '자(字)'의 다름을 매우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문자의 그밖에 명칭에 대하여 알아 보도록 하겠다.
중국 문자는 결코 처음부터 문자(文字)라 부르지는 않았다. 진시황 28년(서기전 219)에 낭야(瑯琊)에서 돌을 새기어, '황제지공(皇帝之功)'을 차례에 따라서 설명을 하는데, 동서문자(同書文字)라는 기록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문자를 합쳐서 부르게 된 시초인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서(書)'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혹은 '명(名)', '문(文)', '자(字)'라고도 하였다. 각각을 더 자세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중국의 문자는 초창기에는 '서(書)'라 불리어 졌는데, 『설문해자서』의 "창힐이 처음 글을 만들었는데[倉頡之初作書]"와 "대나무와 비단에 저술하는 것을 '서(書)'라고 말한다.[著之竹帛謂之書]"는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서(書)를 또한 '서계(書契)'라고도 하였는데, 당나라 육덕명(陸德明)의 『경전역문(經典譯文)』에서 『상서(尙書)』서(序)에 나오는 "서계를 지었다[造書契]"란 말을 해석할 때 서계(書契)를 곧 문자라고 여겼다.
명(名)이라 부르는 형태는 더욱 보편적이다. 『주례(周禮)』「외사(外史)」에서 "서명을 전달하는 일을 맡는다.[掌達書名]"라 한 것에 정현(鄭玄)은 주석에 "옛날에 명(名)이고, 지금은 자(字)이다.[古曰名 今曰字]"라 했고, 『의례빙례기(儀禮聘禮記)』에서 "백명이상이면 책(策)에 쓰고, 백명이 미치지 못하면 방(方)에 쓴다.[百名以上書於策 不及百名書於方]"고 한 것에 정현은 주석에 "명은 서문(書文)인데, 지금은 자(字)라고 말한다.[名 書文也 今謂之字]"라 했으며, 『예기제법(禮記祭法)』에 "황제가 여러 물건의 명칭을 바로잡았다.[黃帝正名百物]"이라는 말이 있고,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도 "반드시 명칭을 바로잡겠다.[必也正名乎]"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 두 구절에 있는 정명(正名)의 명(名)은 동한의 유학자 정현의 해석에 의하면 모두 자(字)인 것이다.
가장 많이 통행되고 불리어지는 이름은 역시 문(文)이라 할 수 있다.
고염무(顧炎武, 명말청초의 사상가)의 『일지록(日知錄)』에 보면 무척 명료하게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춘추 이전 문(文)을 말하고 자(字)를 말하지 않는다. 『좌전』에서 "문(文)에 지(止) 자와 과(戈) 자가 합쳐 무(武) 자가 되고", "문(文)에 정(正) 자를 (좌우로) 뒤집어 핍(乏) 자가 되고," "문(文)에 명(皿) 자 위에 충(蟲) 자가 놓여 고(蠱)자가 된다. 더불어『논어』 「사궐문(史闕文)」, 『중용(中庸)』 '서동문(書同文)'의 종류에서 모두 자(字)라고 말하지 않는다.[春秋以上言文不言字 如左傳 於文止戈為武 故文反正為乏 於文皿蟲為蠱 及論語史闕文 中庸書同文之類 並不言字]"
그러면 언제부터 자(字)의 명칭이 생겨났을까? 강영(江永)의 『군경보의(群經補義)』에서
"서(書), 명(名)이라는 호칭은 자(字)가 되었는데 대개 진(秦)나라의 여불위(呂不韋)가 『여씨춘추』를 지어 함양 시장에 걸어놓고 말하기를 ‘(『여씨춘추』 내용을) 한 글자라도 보태거나 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천금(千金)을 주겠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자(字)를 칭한 시초이다. 이전에는 문(文)이 자(字)로 됨이 있지 않았다.[其稱書名為字 蓋始於秦呂不韋著呂氏春秋 懸之咸陽市 曰有能増損一字者 予千金 此稱字之始 前此未有以文為字者也]"
라는 기록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가장 많이 타당성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말이다. 즉 서(書), 명(名)이라 부르던 것을 자(字)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진의 여불위가 『여씨춘추』를 지어 함양 시장에 걸어 놓고 한 글자라도 증손(増損, 더하거나 뺌)할 사람이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고 현상금을 걸었던 때로부터 처음 자(字)가 문자의 뜻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따는 내용이다. 그리고 자림이란 서명으로부터 자는 문자가 따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합쳐져 부르게 된 명칭이 되었다.
『설문』에서 "서(書)는 저(著, 나타냄)이다."라 하였는데, 대게 비단에 쓰이거나, 혹은 목판이나 죽편(竹片)에 새겨진 것을 모두 '서(書)'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서(書)는 문자의 '서사(書寫, 글씨를 베낌)' 방면에 치중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설문』에서 또 "명(名)은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 구(口) 자와 석(夕)자로 구성되어있다. 석(夕)은 날이 저무는 것이다. 날이 저물어서 서로 보이지 않으므로 입으로 자신을 알리는 것이다.[名, 自命也. 從口從夕. 夕者, 冥也. 冥不相見, 故以口自名.]"이라 하였다. 명(名)은 본래 사람과 사람이 밤에 서로 만났을 때에 적이나 야수로 잘못 인식됨을 피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는 뜻으로써 문자의 성음(聲音) 방면에 치중한 것이다. 문(文)이 "착화(錯畵, 교차된 획)"로서 문자의 '형체(形體)' 방면에 치중한다면 자(字)는 "파생되고 점차 많아지는 것[孳乳而浸多]"으로 문자의 발전 방면을 가리킨다. 지금은 문자를 합쳐 부르며 서(書), 명(名)이란 용어는 오래전부터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문(文), 자(字)의 구별에 있어서는 역시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였다. 우리들은 지금 이미 중국 문자를 연구하는 마당이니, 이런 명칭이나 그 구별에 관해서는 마땅히 철저하게 이해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중국에서 문자의 어원 정리
1)중국에서 문자를 문(文)과 자(字) 그 밖에 서(書), 명(名)으로도 불렀음
2)춘추 이전에 문자를 문(文)으로, 춘추 이후에 문자를 보편적으로 서(書), 명(名)으로 사용하다가 동한 때 자(字)로 대체해서 사용
3)문(文)은 형태 방면에 치중한 것.
4)자(字)는 문(文)에서 "파생되고 점차 많아지는 것"으로 문자의 발전 방면을 가르킴
5)서(書)는 대개 비단에 쓰이거나, 혹은 목판이나 죽편(竹片)에 새겨진 것으로 문자의 '서사(書寫, 글씨를 베낌)' 방면에 치중된 것
6)명(名)은 자신의 이름을 알린다[自命]는 뜻으로써 문자의 성음(聲音) 방면에 치중한 것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