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자학개설]중국문자학의 정의1~2

 [중국문자학개설]중국문자학의 정의1


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13>

국민(중화민국) 이전에는 문자학을 '소학(小學)'이라고 하였는데, 소학이란 명칭은 이미 서한(西漢)시대(서기전 202년~서기 8년)에 이루어졌다. 동한(東漢)시대 학자 반고(班固)는 서한 유흠(劉歆)의 『칠략(七略)』을 근거로 지은 『한서(漢書)』「예문지(藝文志)」중 '육서략(六書略)' 끝에 '소학'류의 작품 45편을 덧붙여 실었는데, 모두가 문자에 관해서 해석한 것이다. 이 뒷부분에 있는 '서(序)'에

"옛 사람은 8세에 소학에 들어갔다. 그러므로 『주례(周禮)』에서 보씨(保氏)는 고위층 자제들을 양성하는 일을 관장하였고, 육서를 가르쳤다.[古者年八歲入小學, 故周官保氏 掌養國子, 敎之六書.]"

라 하였고, 그리하여 『설문해자서』에서도

"『주례(周禮)』에서 말하길 '8세에 소학에 들어갔고, 보씨는 육서로 먼저 고위층 자제들을 가르쳤다.[周禮:八歲入小學, 保氏敎國子先以六書.]"

라는 기록이 있으니, 본디 고대인들은 어린이가 학교에 가면 먼저 글자를 배워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글자를 배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문자의 구조와 문자의 운용을 알아야 되는 까닭으로 소학 안의 보씨(保氏)는 먼저 그들에게 육서를 알도록 하였다. 그들이 아주 간단한 원리로부터 무궁무진한 글자를 터득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글자를 익히는 가장 과학적인 교법(敎法)인 것이다. 소학의 본래 뜻이 학교(學校)임에도 불구하고 보씨가 소학에서 육서를 먼저 가르쳤기 때문에 과거에는 문자학을 '소학'이라고 불렀다.

명칭상으로 '소학'은 '대학(大學)'과 상대적인 것으로, 『대대례(大戴禮)』「보부(保傅)」에

"옛날에는 (태자가) 여덟 살이 되면 (왕궁을) 나와 바깥의 숙사에서 머물면서, 초급 단계의 기예[소예小藝]를 배우고 초급 단계의 예절[소절小節]을 이수했다. (열다섯이 되면) 머리를 묶고 대학(大學)에 가서 고급 단계의 기예[대예大藝]를 배우고 고급 단계의 예절[대절大節]을 이수했다. [古者八歲而出就外舍, 學小藝焉, 履小節焉;束髮而就大學, 學大藝焉, 履大節焉]"

이라는 기록이 있고, 주희(朱熹)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에도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王公)으로부터 서인(庶人)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들어가는데 쇄소(灑掃), 응대(應對), 진퇴(進退)의 예절과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의 문(文)을 배운다. 그리고 15세가 되면 즉 천자(天子)의 원자(元子), 중자(衆子)로부터 공경(公卿) 대부(大夫) 원사(元士)의 적자(適子), 백성 가운데 (선발된) 준수(俊秀)한 자까지 모두 대학에 들어가는데 궁리(窮理), 정심(正心), 수기(修己), 치인(治人)의 도(道)를 배운다."

그런데 '소학'의 과정은 『주례』(곧『주관』) 「보씨」의 기록에 의하면 '육서(六書)'와 '육의(六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육예는 오례()ㆍ육악()ㆍ오사()ㆍ오복()ㆍ육서()ㆍ구수()를 포괄해서 말하고, 육의는 제사지용(祭祀之容)ㆍ빈객지용(賓客之容)ㆍ조정지용(朝廷之容)ㆍ상기지용(喪紀之容)ㆍ군려지용(軍旅之容)ㆍ군마지용(軍馬之容)을 포괄한 것이다. 이것들은 대체로 주희가 말한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의 문(文), 쇄소(灑掃), 응대(應對), 진퇴(進退)의 절(節)"과 가깝다. 이렇게 볼 때 '육서'는 다만 '보씨'가 소학에서 가르친 12과정 중의 하나이므로 육서의 학(學)을 소학이라 칭한 것은 합당치 못하다.

당대(唐代) 안사고(顔師古)는 『한서』를 주해(注解)했는데 「두업전(杜鄴傳)」의 "소학에서 더욱 뛰어났다.[우장소학尤長小學]" 아래에 주석하여 말하기를 "소학은 문자의 학문을 말한다.[小學謂文字之學也.]"라고 하였으니 그는 이미 '소학'을 '문자지학(文字之學)'으로 파악한 것이다. 송대(宋代) 조공무(晁公武)의 『군제독서지(郡齋牘書志)』에서도 '문자지학(文字之學)'이라는 명칭을 말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문자의 학(學)에는 무릇 세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체제(體製)인데, 점화(點畫)에 종횡(縱橫)과 곡직(曲直)의 차이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고, 둘째는 훈고(訓詁)이니 명칭 고금(古今)과 아속(雅俗, 고상한 것과 속된 것)의 다름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세째는 음운(音韻)이니 호흡에 청탁(淸濁)과 고하(高下)의 다름이 있음을 말한다."

나아가서 문자학의 내용은 마땅히 체제(體製)ㆍ훈고(訓詁)ㆍ음운(音韻)의 세가지 방면을 포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면서도 『군제독서지』「경부(經部)」 제10류(類)의 유명(類名)은 오히려 구태의연하게 '소학'이라는 두 글자를 사용하고 있으니 그 역시 '문자학'이라는 바른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소학'이라는 명사(名詞)는 줄곧 청대(淸代)의 유학자에 이르기까지 시종 정정(訂正)되지 않은 채 계속 그대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던 것이 국민(중화민국)에 와서 장태염(章太炎)은 '소학'에 대하여 큰 공헌을 하였다. 『주례』에서 "8세에 소학에 들어갔고, 보씨는 육서로 먼저 고위층 자제들을 가르쳤다."는 기록에 의거하여 그는 소학을 전적으로 문자학이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육서는 물론 소학의 기본이기는 하지만 『주례』에서 말한 소학에는 사실상 예(禮)ㆍ악(樂)ㆍ사(射)ㆍ어(御)ㆍ서(書)ㆍ수(數)와 '육용(六容)'이 있었다. 육서를 제외하고도 오예와 육용이 더 있었으니, 고로 소학은 육서를 포괄할 수 있지만 육서는 소학의 전부를 차지할 수 없다. 일부의 사물을 가지고 전체의 명칭으로 삼는다는 것은 부적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그 이름을 고쳐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장태염은 『국수학보(國粹學報)』에 발표한 『논어언문자지학(論語言文字之學)』의 일문(一文)에서 "언어문자의 학문은 본래 어린 아이의 가벼운 성과만으로는 능히 다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소학(小學)이라 이름하는 것은 곧 옛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가리키는 것을) 설명하 편하도록 한 것이니 그 실상은 마땅히 언어문자의 학문으로 명명해야한다.[語言文字之學, 此固非兒童佔曅所能盡者, 然名爲小學, 則以襲用古稱, 便於指示, 其實當名語言文字之學]"고 하였다. 그 뒤에 장태염의 제자였던 전현동(錢玄同)과 주종래(朱宗萊)은 장씨의 의견에 따라 전현동이 전담하여 집필한 『음편(音篇)』 과 주종래가 담당하여 집필한 『형편(形篇)』과 『의편(義篇)』을 합본하여 문자학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문자학이란 명칭은 이때부터 정식명칭으로 쓰이기 시작하였다.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중국문자학개설]중국문자학의 정의2

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15>

문자학의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한서』「예문지(藝文志)」에 수록된 '소학'편의 각각의 책의 내용을 한 번 분석하여 보자. 그 가운데 『사주(史籀)』ㆍ『창힐(蒼頡)』ㆍ『범장(凡將)』ㆍ『급취(急就)』ㆍ『원상(元尙)』ㆍ『훈찬(訓纂)』등의 편은 당시 주국에서 통용되던 문자로서 운구(운구)를 편성하여 기억과 암송에 편리하도록 만든 것이다. 문자는 될 수 있는 대로 중복을 피하였는데, 『범장』과 『훈찬』은 전편에 한 글자도 중복된 것이 없었다. 『창힐전(蒼頡傳)』ㆍ『창힐훈찬(蒼頡訓纂)』ㆍ『창힐고(蒼頡故)』에는 문자형(文字形)을 열거한 외에도 간단한 해석을 덧붙였다. 『팔체육기(八體六技)』는 각 글자의 다른 서법을 한 곳에 편집한 것이고, 『별자(別字)』는 잘못된 글자를 편집한 것이다. 이렇게 미루어 보면, 서한의 '소학'책의 내용은 문자의 '형체' 방면에 치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형체 위주인 소학은 시대가 옮아감에 따라 그 내용도 점차 확대되었다. 『수서(隋書)』「경적지(經籍志)」'소학류' 후서(後序)에

"위나라 때 훈고(訓詁)ㆍ『설문(說文)』ㆍ『자림(字林)』ㆍ음의(音義)ㆍ성운(聲韻)ㆍ체세(體勢) 등 여러 글이 있었다.[魏世又有訓詁ㆍ『說文』ㆍ『字林』ㆍ音義ㆍ聲韻ㆍ體勢等諸書.]"

라 하였다. '훈고'는 오로지 자의(字義)를 논하고, '성음'은 자음(字音)을, '체세'는 자형(字形)을 전문적으로 논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문자의 의(義)ㆍ음(音)ㆍ형(形)을 분리해서 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음의(音義)'는 무엇인가? 먼저 자형을 열거하고 자음ㆍ자의를 설명하였으며 형(形)ㆍ음(音)ㆍ의(義)에 대한 서로간의 이해를 중시하였는데, 이는 문자의 총론이라 할 수 있다. 『說文』ㆍ『字林』은 소학을 연구하는데 더욱 더 중요한 두 권의 책이므로, '서(序)'에 특별히 제시한 것이다. 송대(宋代)에 이르러 왕응린(王應麟)은 『옥해(玉海)』에서 소학을 체제, 훈고, 음운으로 나누었는데, 조공무(晁公武)도 역시 똑같은 모양의 분류법을 쓰고 있다. 청대(淸代)의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소학류를 나누되 『이아(爾雅)』 이하를 '훈고'에 속한 것으로, 『설문(說文)』이하를 '자서(字書)'에 속한 것으로, 『광운(廣韻)』이하를 '성운'에 속한 것으로 나누었는데, 모두 '소학'의 내용은 마땅히 자형(字形)ㆍ자의(字義)ㆍ자음(字音) 등 세 방면의 연구를 포괄해야 함을 표명하였다.

위 두 단락의 설명에서 서한 시대와 서한 이후의 소학 내용에 협광(狹廣, 협소함과 넓음)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서한 시대의 소학은 '형체'의 변식(辨識)을 중요시 여겼고, 서한 이후의 소학은 곧 형(形)ㆍ음(音)ㆍ의(義)의 연구를 포괄하였다. 국민(중화민국) 이후로 당란(唐蘭)은, 문자학은 마땅히 성운(聲韻)ㆍ훈고(訓詁)를 제외하고 오직 형체만을 설명하면 된다고 주장한 바가 있다. 이 말과 같이 자형의 구조와 변천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것은 협의(狹義)의 문자학이라 하는데, 이는 서한 시대의 '소학'내용과 서로 부합된다. 전현동(錢玄同)ㆍ주종래(朱宗萊) 두 선생이 공저한 문자학은 음편(音篇)ㆍ형편(形篇)ㆍ의편(義篇)을 포괄하고 있는데, 이런 광의(廣義)의 문자학은 바로 서한 이후로 발전, 성숙한 소학의 형태이다.

문자의 3요소를 이야기할 때, 무릇 하나의 문(文)이건 혹은 자(字)이건 반드시 형(形)ㆍ음(音)ㆍ의(義) 3요소를 갖추어야 작용할 수 있음을 이미 말하였다. 황계강(黃季剛)은 『성운략설(聲韻略說)』에서 "형(形)ㆍ음(音)ㆍ의(義) 세 가지는 비록 나누어지나, 실상은 동의일체(同衣一體)이다. 즉 눈으로 보고 관찰할 수 있는 것이 형(形)이고, 귀로 듣고 알 수 있는 것이 성(聲)이며, 생각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의(義)이다. 그 하나가 있으면 반드시 그 둘이 있다."라고 잘 이야기하였는데, 이 말은 문자의 연구는 마땅히 형(形)ㆍ음(音)ㆍ의(義)를 합하여 일체로 삼고 3요소를 꿰뚫어야 한다는 뜻이다. 겨우 문자의 '기원', '구조', '변천'만을 안다거나, 혹은 문자의 '형체', '성음', '음의'를 따로 떼어 내어 별도로만 연구하고 문자의 형(形)ㆍ음(音)ㆍ의(義) 상호간의 관계를 추구하지 않는다면 중국 문자의 전모(全貌)를 인식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대학의 중문과에 문자학(文字學)ㆍ성운학(聲韻學)ㆍ훈고학(訓詁學)이 있는데, 훈고학은 자의(字義)의 연구이고, 성운학은 자음(字音)의 연구이며, 나머지 문자학은 당연히 자형(字形)을 연구하는 협의의 문자학이다. 학술 분류상, 이는 역사적 근원이 있는 구분이고, 학습 과정상 이런 종류의 구분은 사실적인 수요에 의한 구분이다. 그러나 반드시 주의해야 할 것은, 자형을 연구할 때 그것의 음(音)ㆍ의(義)의 소재를 이해해야 하며, 자음을 연구할 때는 자형과 자의와의 배합을 해야하며, 그리고 자의를 연구할 때에는 더우기 형훈(形訓)과 음훈(音訓)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 이렇게 하면 중국의 문자에 대해서 분명히 꿰뚫을 수 있으며, 이 세 가지를 종합한 것이 바로 광의의 중국 문자학의 모든 내용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중국 문자학은 중국 문자의 과학을 연구하는 것으로, 그 임무는 중국 문자의 발생ㆍ진화ㆍ특성 등을 밝히며, 중국 문자 구조의 법칙과 운용의 조리(條理)를 탐구함과 동시에 중국 문자의 형체, 성음, 의의 상의 특수 관계를 이해하여 중국 문자의 과거와 이후의 중국 문자학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다.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