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자학개설]중국문자의 근원1~2

 [중국문자학개설]중국문자의 근원1


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3>

문자는 인류가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백만 년 전 지질사상(地質史上) 제3기 때에 이미 원인(原人)이 나타났지만 문자의 제작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몇 천년의 역사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에 인류는 어떠한 방법으로 뜻을 전달하여 기억을 도와 왔을까?

대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러한 도구에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자세, 둘째 언어, 셋째, 결승(結繩, 노끈으로 매듭을 맺어서 서로 뜻을 통하던 것)이다. 이 세 가지는 모두가 문자가 아니며 오히려 문자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언어 문자를 발명하기 전에 원시인들은 자세로써 의사를 표시했는데, 소식(蘇軾)의 『괴석공(怪石供)』에 하나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해외에는 형어(形語)하는 나라가 있는데, 입으로는 말을 못하고 서로 몸체로써 표현을 하는데 그 형어의 속도는 입보다 더 빠르더라.”

소동파(蘇東坡)는 일찍이 해남도(海南島)로 귀향을 간 적이 있으므로 그가 말한 해외(海外)란 아마도 지금의 남양(南洋) 일대를 가리킬 것이다. 그리고 형어라 한 것은 즉, 자세로써 의사를 표시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미개 민족 자세(posture)로써 언어를 대신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어린 아이가 말을 배우기 전에 종종 손가락으로 필요한 것을 가리키며, 어른들도 곧잘 손을 흔들거나 머리를 가로젓거나 가슴을 치거나 발을 구르거나 하여 어떤 심정을 나타내는데, 이것들이 바로 자세로 의사를 표시하던 잔재인 것이다.

현대 문명 사회에서도 자세로써 언어의 보조 역할을 삼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데, 예를 들면 길을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때 그냥 손짓으로 방향만 가리키고 말은 하지 않는 경우나, 또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부득불 자세로써 의사를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농아(聾啞)인 사람들끼리는 오직 수어(手語)로 서로의 의사를 교환하여 소씨(蘇氏)가 말한 형어를 매우 잘 연출해 내고 있음은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아는 바이다. 현대인의 이러한 언어 보조도구가 원시 인류 사회에서는 바로 제일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중요한 의사 표시의 도구였던 것이다.

우리들은 인류의 사상은 비교적 복잡하고 정밀하나 그에 비해 인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세는 무척 간단하고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때문에 간단하고도 한계가 있는 자세로써 복잡하고도 세밀한 의사를 나타내는 데는 곧 ‘자불달의(姿不達意, 자세가 뜻을 전달하지 못함)’의 결점을 이겨내기 어렵다. 게다가 자세로써 의사를 표시하는 데는 환경의 제한을 많이 받게 되어 쌍방의 시선이 장애를 받을 경우나 밤에는 사용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자연적으로 소리를 이용해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원시인이 낼 수 있었던 소리는 갓난 아이와 같이 극히 간단했다. 처음에는 그저 생리상 자연적으로 나오는 소리, 즉 ‘빠[ㄅㄚ]’, ‘마[ㄇㄚ]’와 같은 종류에 불과했으며 별다른 특별한 의미가 없었는데, 갓난 아이가 이런 가장 원시적인 소리를 낼 때마다 그들의 아빠, 엄마가 급히 달려와서 돌보아 주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빠[ㄅㄚ]', ‘마[ㄇㄚ]’하는 소리와 파(爸), 마(媽)의 형상(形像) 사이에 ‘제약반응(制約反應)’의 결과로 인하여 견고한 ‘감응결(感應結)’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의 자연적 발음에는 ‘의의(意義)’가 생기게 되고, 또 언어가 된 것이다.

수량이 많은 것에 대해서 원시인들은 습관적으로 ‘펑[]’하는 소리를 내었는데 그들은 새떼들이 무리를 지어 날아오는 것을 보고 ‘봉’조(鳳鳥), 큰 무더기의 풀을 보고  ‘봉’초(菶草), 많은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을 보고 ‘붕’우(朋友)라고 하였다. 거대한 형상을 한 물건에 대해서는 ‘홍[ㄏㄨㄥ]’이라고 하였는데, 큰 새는 ‘홍(鴻)’, 큰 물은 ‘홍(洪)’, 대단히 큰 집은 ‘굉(宏)’, 큰 소리로 싸우면 ‘공(訌)’이라고 하였다. ‘펑[]’과 ‘홍[ㄏㄨㄥ]’은 사람들이 놀랐을 때 본능적으로 내는 소리로 오늘날 우리는 입을 크게 벌린 모습에서 원시인들의 그 놀란 표정들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소리와 발성할 때의 모습들이 서로 합쳐져서 일정한 의미를 함유한 언어가 된 것이다.

점차적으로 원시인들은 생리상 본능적으로 주어져 발음되는 소리의 의미 이외에 더 발전을 거듭하여 외계의 소리를 모방하게 되어 인류의 언어를 더욱 풍요하게 만들었다.

원시인들은 ‘착착(錯錯)’하고 우는 까치의 소리를 모방하여 그것을 ‘작(鵲)’(까치)이라 이름지었고, ‘아아(呀呀)’하고 우는 까마귀의 소리를 모방해서 ‘아(鴉)’(까마귀)라 이름지었으며 ‘묘묘(苗苗)’하고 우는 고양이 소리를 모방해서 ‘묘(猫)’(고양이)라 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명사이다. 또한 ‘비(飛)’ 자의 독음(讀音)은 새가 나는 소리를, 그리고 ‘사(射)’ 자는 활을 쏠 때의 소리를 본뜬 것으로 이는 원시인들이 일부러 모방한 결과이며, 이들은 모두 동사이다. 또 양(羊)은 평온한 동물로 원시인들이 잡아서 그 젖을 마시고, 고기를 먹고, 가죽을 입을 수 있었기에 그것은 참으로 상서로움의 극치였다. 그래서 양의 독음 또한 길상(吉祥)을 대표하게 되었고, 호(虎)는 흉악한 짐승이라고 여겨오던 원시인들이 호랑이를 만나면 그야말로 큰 화를 입게 되므로 호(虎)의 독음은 또한 재화(災禍)를 대표하는 것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형용사이다.

우리 조상의 언어는 이렇게 점차 늘어 가고 점차 충실해졌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어떤 의사이든 거의 모두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인류가 조용히 사색을 할 때에 머릿속에서 활동하는 것은 바로 발성되지 않은 언어인 것이다. 언어가 이렇듯 사상과 밀접하게 결부될 수 있으므로 과연 행위파 심리학자들의 “사상은 소리없는 언어요, 언어는 소리있는 사상이다”라는 명언이 생겨나게 되었다.

- 문자의 근원 : 자세, 언어, 결승

1)자세는 주로 수어(手語), 형어(形語)를 말하는데 제일 보편적인 언어
2)언어는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원시적인 소리를 말함.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중국문자학개설]중국문자의 근원2

박종민 기자
중국문자학개설 <4>

문자가 생겨나기 이전에 인류는 세가지 도구를 이용해 의사를 표현하였다. 첫째는 자세, 둘째는 언어, 셋째는 결승(結繩, 노끈으로 매듭을 맺어서 서로 뜻을 통하던 것)이다. 이 세가지 도구는 모두 문자가 아니고 문자 이전에 있던 문자의 근원으로 볼 수 있다.

자세는 주로 몸체를 사용해 의사 표시는 형어(形語), 수어(手語)를 말하고, 언어는 생리상 자연적으로 나오는 소리를 말한다. 그러나 자세와 언어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것들로 거리가 멀면 들리지 않고, 시간의 간격이 멀어져도 또한 작용하지 않게 된다. 이전의 일들을 원시인들은 어떻게 그 요점을 기억했을까? 또한,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그들의 의사를 전달했을까? 이러한 문제들은 바로 결승(結繩)과 회화(繪畵)에 의지해야만 했다.

『설문해자서』에 "신농씨(神農氏)에 이르러 결승(結繩)으로 다스리고[及神農氏結繩爲治]"란 말이 있고, 『주역계사(周易繫辭)』에도 "상고(上古) 시대에 노끈을 묶어서 다스렸다.[上古結繩而治]"란 기록이 있으므로 중국의 상고시대에 결승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청나라 엄여육(嚴如煜)의 『묘강풍토고(苗疆風土考)』와 림승방(林勝邦)의 『섭사여록(涉史餘錄)』 등의 기록에 의거하면 묘족(苗族, 중국 귀주, 호남, 운남 등지에 사는 토족), 류구(琉球, 현 오키나와) 등의 동족들도 비슷한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에서도 토인(土人)들이 결승으로 일을 기록한 사실들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세계 각지의 민족들에게 글자가 생겨나기 이전에 결승으로써 그들의 기억을 돕던 단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결승의 방법으로 그들의 의사를 전달했을까? 당나라의 공영달(孔穎達)은 『주역정의(周易正義)』에 동한(東漢)의 정현(鄭玄)의 말을 인용하여 "큰 일에는 끈을 크게 묶고, 작은 일에는 끈을 작게 묶는다.[事大, 大結其繩; 事小, 小結其繩]"고 하였는데, 이는 비교적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 당나라의 이정조(李鼎祚)의 『주역집해(周易集解)』에서는 『구가역(九家易)』 설을 인용하여

"옛날에 문자가 없었을 때 서약의 일이 있으면, 사물이 크면 끈을 크게 매듭지었고, 사물이 작으면 끈을 작게 매듭지었다. 매듭이 많고 적은 것은 물건의 수효가 많고 적음을 따른 것이다. 각각 그것을 가지고 서로 검토하였고, 서로 다스리기에 족하였다.[古者無文字,其有約誓之事,事大大結其繩,事小小結其繩. 結之多少,隨物衆寡;各執以相考,亦足以相治也.]"

라 하였는데, 여기에는 비교적 상세한 설명이 나타나 있다. 이런 상당한 이치에 가까운 추측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啓示)를 준다.

1. 결승의 목적

문자를 대신하여 서약의 기록으로 삼는다.

2. 결승의 방법

(1) 큰 사물은 큰매듭을 짓는다.
(2) 작은 사물은 작은 매듭을 짓는다.
(3) 매듭 수의 다소(多少)는 사물의 다소를 나타낸다.

3. 결승의 판단

(1) 각 관련있는 사람들은 같은 매듭의 끈을 나누어 갖는다.
(2) 때가 되면 공동으로 결승이 대표한 사물을 기억해낸다.
(3) 결승한 의미를 확정한다.

4. 결승의 효용

사람이 서약한 바를 매듭이 증거가 되어 싸움을 감소시킨다.

림승방의 『섭사여록』에 기록된 바 류구(현 오키나와)에서 쓰인 결승은 지시(指示)와 회의(會意) 두가지로 나눈다. 즉 "무릇 물품을 교환하고 조세를 납부하면 숫자를 기록하여 (결승을) 사용하는데 이는 곧 지시류이다. 인부를 부려서 논과 밭을 방호하면 뜻을 보여주어 (결승을) 사용하는데 이는 곧 회의류이다.[凡物品交換, 租稅賦納, 用以記數者, 則爲指示類; 使役人夫, 防護田園, 用以示意者, 則爲會意類.]"로 그들의 결승의 재료로는 대부분 등나무 줄기, 풀 줄기, 혹은 나무잎을 사용했다고 한다. 장선국(蔣善國)의 『중국문자지원시급기구조(中國文字之原始及其構造)』중에는 비노(秘魯, 페루)인 들이 '결자(結子)'를 이용하여 사건을 기록한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인민의 통계(統計)부터 토지의 경계(境界), 각 종족 및 병졸의 표시, 명령의 선포, 형법의 제정, 사자의 묘지(墓誌)에 이르기까지 안쓰이는 곳이 없다. 심지어는 먼 성(省)에서 온 사람이 관광왔든, 진공(進貢)하러 왔든, 선전(宣戰)하러 왔든을 막론하고 반드시 끈을 가지고 통고(通告, 널리 통지하는 것)의 부신(符信, 신표)으로 삼아야만 하였다. 그 방법은 근간(根幹)이 되는 한개의 끈에다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여러 가지 색깔의 끈을 매고, 각각의 작은 끈에는 일의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매듭을 하며, 또한 각종 색으로 여러 가지 사항을 대표하는데, 홍색은 군사나 병졸을 대표하고, 황색은 황금을 가리키며, 백색은 은이나 화목(和睦)을 표시하고, 녹색은 곡식 등을 상징한다. 또 매듭으로 수를 나타낼 경우에 홑 매듭은 10, 쌍 매듭은 20, 한번 겹친 매듭은 100, 두번 겹친 배듭은 200을 표시하며, 나머지는 유추해서 알 수 있다. 옛날 페루(Peru)의 각 성(城)에는 전문적으로 매듭을 풀이하는 관리가 있었는데, 이를 '결자관(結子官)'이라 불렀다. 이런 관리들은 끈을 해석하는 재주가 아주 뛰어나 그저 구어(口語)의 도움만 있으면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다. 지금도 페루 남방의 인디안(Indian) 중에는 고대로부터 보존되어 온 결자를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자료들은 모두 우리로 하여금 결승에 대한 이해를 더욱 더 상세하게 해준다.

결승을 이용하여 의사를 표현하고 기억을 돕는다는 것은 하나의 미련한 방법으로, 인류의 지혜는 당연히 그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결승에서 더 발전한 서계(書契)가 생겨났으니 이것이 곧 중국 최초의 '문자(文字)'이기도 한 것이다.

1(一)부터 1만(万) 단위까지 숫자를 나타낸 결승
- 결승에 대한 정리

1) 문자가 생기기 전 세가지 의사표현 도구는 자세, 언어, 결승으로, 자세와 언어는 원시적인 의사표현 도구로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았음.
2) 자세와 언어라는 의사표현 도구를 대체하는 결승이 나타남.
3) 결승의 목적은 노끈으로 매듭을 지어서 그 요점을 기억하는 것으로 문자를 대신하여 주로 서약으로 사용.
4) 결승의 크기는 사물의 크기에 따라 결정되며, 결승의 많고 적음은 물건의 수효가 많고 적음을 나타내었음.
5) 결승은 물물교환, 세금부과에 사용되는데 이를 지시류(指示類)라고 하고, 결승이 의미를 보여주는 곳에 사용되면 회의류(會意類)라고 말함.
6) 이외에도 인민의 통계, 토지의 경계, 종족 및 병졸의 표시, 명령의 선포, 형법의 제정, 죽은 자의 묘지 등에 사용.

<참고 문헌>

지은이 임윤, 옮긴이 권택용,『중국문자학개설』, 형설출판사, 2002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