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의 예(禮)의 절제 미학(節制美學)에 대하여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는 '예(禮)'와 관계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화(和)'라고 했다. 여기에 '예'와 '화' 두 가지 개념(槪念)이 있다. '예'는 예의(禮儀)와 의례(儀禮), 의식(儀式) 등을 가리킨다. 국가의 통일은 '예'를 통해 실현되고 그 목적은 바로 '화' 즉 조화(調和)와 적절함, 화합(和合)을 이루는 것이다.”
1. 예(禮)란 무엇인가?
예(禮)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함축(含蓄)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먼저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유자가 말하기를: “예의 시행은 조화로움을 귀함으로 삼는다. 선왕의 도는, 이(調和)를 좋은 일로 여기니, 작고 큰 것이 그(조화)로 말미암는다. (하지만) 행하지 않아야 할 바가 있으니, 조화로움만 알아서 조화롭고, 예로 그것(조화로움)을 절제하지 않으면, 역시 행해서는 안 된다.” [論語(논어)] <學而(학이)>
이는 예(禮)라는 것이 和(화: 조화로움)를 중시하지만, 節(절: 절제)이 내포된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먼저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드러나지 않은 것, 그것을 중이라고 일컫고, 드러나지만 모두 절도에 맞은 것, 그것을 화라고 한다. 중이라는 것은, 세상의 큰 근본(根本)이고, 화라고 하는 것은, 세상이 도에 닿은 것이다. 중과 화에 이르면, 천지가 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란다. [禮記(예기)] <中庸(중용)>
상술한 내용(內容)을 정리하자면, 감정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고 객관적으로 처신하는 태도는 바탕이 되고, 이러한 감정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것이 궁극의 도에 도달하는 것이 된다. 사람에게 있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은 본능적인 감정이다. 이러한 감정들을 아무 때나 쉬이 드러내지 않고 신중함을 보이는 것이 바로 “중(中)”이고, 또 이러한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표출(表出)시키는 것이 “화(和)”인데, 이 화(和)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다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절도에 맞게 표현하는 것이니, 예(禮)의 중요한 목표가 바로 감정을 인위적으로 절제하고 통제하는데 있다는 뜻이 된다. 즉 예(禮)라는 것은 “도에 도달하기 위해서 和(화: 조화로움)를 통제하는 요소가 되는 것”, 다시 말해서 “조화로움을 위한 절제와 통제”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감정의 절제는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예를 들어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슬픔을 극진히 하는 것이 도리이지만, 그 슬픔이 너무 커서 심지어 본인의 건강(健康)에 해를 끼치게 되면 이는 예(禮)에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아래에 소개하는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관련된 일련의 내용들을 이해한다면, 예(禮)의 참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공이 묻기를: “사(자장)와 상(자하) 중에, 누가 더 현명합니까?” 공자가 이르시기를: “사는, 지나치고; 상은, 모자란다.” (자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사가 더 낫습니까?” 공자가 이르시기를: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 [論語(논어)] <先進(선진)>
여기서는 불급(不及) 즉 모자람과 과(過) 즉 지나침의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미 위에서 언급했듯이 중(中)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이고도 공정한 태도이고, 화(和)는 중(中)을 바탕으로 나아가 양쪽의 모순을 없애고 어우러지게 하는 것이다. 즉 먼저 중(中)을 갖추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화(和)를 이뤄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여기서 중(中)과 화(和)라는 것이 예(禮)로 절제 및 통제해야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제 상술한 개념을 바탕으로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자하가 이미 상을 치루고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그와 함께 거문고를 탔는데, 화답하기는 했지만 합치지 못했으니, 연주를 하기는 했지만 소리를 이루지는 못했다. (자하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슬픔을 아직 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왕께서 예를 제정하신 것이라서 감히 지나치지 못합니다.” 자장이 이미 상을 치루고 (공자를) 뵈었다. (공자가) 그와 함께 거문고를 탔는데, 화답하여 합쳐졌으니, 연주를 하여 소리를 이뤘다. (자장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선왕께서 예를 제정하신 것이라서 감히 지나치지 못합니다.” [禮記(예기)] <檀弓上(단궁상)>
자하는 슬픔을 누르지 못해서 선왕의 예(禮)를 다하지 못했으니 부족한 것이고, 반면에 자장은 슬픔이 모자라서 선왕의 예(禮)를 다했으니 지나친 것이다. 즉 공자에게 있어서 불급(不及: 모자람)과 과(過: 지나침)의 기준은 다름 아닌 예(禮)라서, 예(禮)가 지나치거나 예(禮)가 모자라면 둘 다 중(中)과 화(和)에 이르지 못하니, 결국에는 같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예(禮)를 통해서 이성과 감성을 조율하는 중(中: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객관성과 공정함)과 화(和: 양쪽을 모두 아우르는 조화로움)를 강조하고 있는데, 바로 여기서 자공이 자장과 자하의 우열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은 현(賢: 현명함)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드러나니, 다름 아닌 “예(禮)로 이성과 감성을 조율하여 중(中)과 화(和)로 이르게 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말하고 있는 예(禮)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앵무새는 말할 수 있지만, 조류를 떠나지 못하고; 성성이(오랑우탄)는 말할 수 있지만, 동물을 떠나지 못한다. 이제 사람에게 예가 없으면, 비록 말할 수 있어도, 역시 동물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무릇 동물은 예가 없기 때문에, 따라서 아비와 아들이 암컷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성인이 일어나, 예를 만듦으로써 사람을 가르치고, 사람으로 하여금 예가 있도록 함으로써, 스스로가 동물에 다름을 알게 한 것이다. [禮記(예기)] <曲禮上(곡례상)>
즉 위에서 공자가 말하는 공경함은 다름 아닌 예(禮)를 지칭하는 것으로,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바로 공경함의 예(禮)의 유무에 달려있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2. 예(禮)와 정치의 관계
그런데 공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예라는 것은, 선왕께서 하늘의 도를 받드는 것으로 여기시고, 사람의 본성을 다스리는 것으로 여기셨다. 따라서 그것(예)을 잃는 이는 죽고, 그것(예)을 얻는 이는 산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이러한 까닭에 예라는 것은, 임금의 큰 근본이다. 따라서 혼동하기 쉬운 것을 구분하고 어렴풋한 것을 밝히며, 귀신을 접대하고 제도를 살핀다. 어질음과 의로움을 구분하기에, 따라서 정치가 다스려지고 임금을 편안하게 한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공자가 이르시기를: “예와 겸손으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다면, 어떤 것(어려움)이 있겠는가? 예와 겸손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예를 어찌하겠는가?(어디에다 쓰겠는가?)” [論語(논어)] <里仁(이인)>
공자에게 있어서, 예(禮)와 겸손은 도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따라서 위 [논어]의 기록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도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지도자를 신뢰하고 지지할 터인데, 정치에 어떤 어려움이 있을 것인가? 또한 예(禮)의 궁극목표가 도의 실천에 있는데, 도로서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그러한 예(禮)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공자가 말하는 예(禮)는 사람간의 예의나 예절을 가리키는 것뿐만 아니라, 나아가 정치과 직결된 “국가 예악제도(禮樂制度)에 있어서의 예(禮)” 즉 오늘날의 의전(儀典)이나 의식(儀式) 혹은 전례(典禮)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으니, 공자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정공이 묻기를: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것은, 어찌해야 합니까?” 공자가 이르시기를: “임금이 신하 부리기를 예로 하고, 신하가 임금 섬기기를 정성스러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예(禮)는 조화로움을 위한 절제와 통제를 뜻하므로, 정공의 물음에 대한 공자의 대답은 “임금은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인 신하에게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조화로움으로 절제하여 대해야 합니다. 또한 신하는 아랫사람으로서 정성을 다해서 윗사람인 임금을 섬기고 따라야 합니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말하는 예(禮)를 종합해보면 다름 아닌 관혼상제(冠婚喪祭)의 예(禮)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즉 詩(시) 書(서) 禮(예) 樂(악) 易(역) 春秋(춘추) 六經(육경)의 하나인 [예경(禮經)]인 것이다.
나아가 공자는 예(禮)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빗대어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예의 사람에 의지함은, 술의 누룩이 있음과도 같다. 군자는 그럼으로써 (예에) 후하고, 소인은 그럼으로써 (예에) 박하다. [禮記(예기)] <禮運(예운)>
술에 누룩이 없으면 술이 될 수 없으니, 결국 禮(예)의 유무는 사람과 동물의 근본적인 구별기준이 된다는 위의 말과도 상통하게 되는 것이다.
3. 예(禮)와 검(儉), 예(禮)와 충(忠)의 관계
그런데 공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임방이 예의 근본을 물었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크구나, 물음이여! 예는, 사치하느니, 차라리 검소한 것이다. 상을 치름은 마음을 편안히 하느니,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임방은 노나라의 大夫(대부)이자 공자의 제자였다는 설이 있으나, 필자가 섭렵한 자료에서는 이를 증명할 수 없다. 따라서 추후 좀 더 면밀한 고증이 필요해 보인다. 아무튼 본문의 상은 부모의 상을 뜻한다. 따라서 이는 공자가 예(禮)의 한 가지인 상례(喪禮)로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禮)는 “조화로움을 위한 절제와 통제”인데, 여기서 공자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예(禮)는 화려하기보다는 검소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는 또 다음과 같이 역설하고 있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선조들이 예악에 힘씀은, 야인이다.(꾸미지 않고 질박하다.) 후대가 예악에 힘씀은, 군자이다.(화려하게 치장한다.) 만약 그것(예악)을 시행한다면, 곧 나는 선조들의 힘씀을 따르겠다.” [論語(논어)] <先進(선진)>
본문의 야인은 벼슬을 하지 않는 평민을 가리키고, 군자는 도를 배우고 부단히 노력하여 실천하는 올바른 지도자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군자는 [논어]의 다른 구절과 달리 소인(小人)이 아닌 야인의 반대말로 쓰였으므로, “벼슬이 높은 사람”으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야인은 꾸미지 않고 질박함을 나타내는 표현임에 반해, 군자는 화려하게 치장함을 나타내는 표현인 것이다. 즉 공자는 여기서 만약 자신이 예악(禮樂)을 시행한다면, 화려하게 치장하는 형식보다 정성을 다하는 내용에 더 힘쓸 것이라고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서 임방의 질문에 공자는 또 진심을 다해서 정성껏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는데, 공자의 이렇듯 禮(예)에 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다음의 기록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공자는 상복을 입은 이, 면류관을 쓰고 의상(관복)을 입은 이, 장님을 돕는(부축하는) 이를 만나면, 그들을 만남에 비록 (그들이) 젊더라도 반드시 일어났고, 그들을 지나침에 반드시 추창하셨다. [論語(논어)] <子罕(자한)>
예(禮)는 도에 있어서 형식이 되지만, 이 역시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따라서 공자는 상복을 입은 이를 만나면 진심으로 애도하고, 관복을 입은 사람을 보면 그가 왕의 명령으로 정사를 맡으므로 진심으로 공경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장님을 부축하는 이를 만나면 진심으로 동정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일어나 예(禮)를 표하고 또 예법에 맞게 허리를 굽히고 빨리 걸어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기로 하자.
제사를 지냄에 계신 듯이 하셨으니, 신령께 제사를 지냄에 신령이 계시는 듯이 하셨다. 공자가 이르시기를: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이는 예(禮)의 하나인 제례(祭禮)에 대해서 언급한 부분인데, 공자는 이를 통해서 예(禮)라는 것이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대단히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예(禮)는 비록 형식이지만 이러한 형식도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으니, 이러한 공자의 가치관은 바로 다음의 기록에서도 여실히 깨달을 수 있다.
공자는 상제 노릇을 함이 있는 이(상주)의 곁에서 먹으면, 일찍이 배불리 먹은 적이 없으셨다. 공자는 이 날(상갓집에 다녀온 날)에 곡을 하면(슬퍼하여 울면), 곧 노래를 부르지 않으셨다. [論語(논어)] <述而(술이)>
이처럼 공자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충(忠) 즉 정성을 다하는 태도를 몸소 실천한 것이니, 또 다음의 기록을 살펴보자.
종묘의 제사는, 어질음의 지극함이다. 상례는, 충후함의 지극함이다. [禮記(예기)] <禮器(예기)>
선조를 잊지 않고 제사지냄으로써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은 인(仁) 즉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어질음이 지극해지는 것이고, 또한 부모상을 치름으로써 그의 뜻에 순응하는 것은 충(忠) 즉 정성스러움이 지극해지는 것이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해보면, 상례와 제례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인(仁)을 실천하는 것이지만,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충(忠) 즉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공자는 오해를 받기는 했지만, 역시 정성을 다하는 자세로 일관하였다.
공자께서는 종묘에 들어가, 매사에 대해서 물으셨다. 어떤 이가 말하기를: “누가 추 지역 사람의 아들(공자)이 예를 안다고 하였는가? 종묘에 들어가서는, 매사에 대해서 묻는다.” 공자가 들으시고 이르시기를: “이것이 예이다.” [論語(논어)] <八佾(팔일)>
공자는 아는 것도 다시 한 번 물음으로써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예(禮)라고 말하고 있다. 예(禮)는 형식이기는 하지만, 형식적으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말은 “제례는 진심으로 섬기고 따르는 인(仁)을 드러내는 형식이지만 반드시 정성을 다해야 한다. 따라서 아는 것이라도 다시 한 번 물음으로써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아울러서 아는 것이라도 다시 한 번 물어서 확인하는 태도는 다름 아닌 호문(好問: 묻기를 좋아함)의 자세를 일컫는 것으로,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만하지 않는 愼(신: 신중함)을 갖춰야 함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 이 저술의 저작권은 도서출판 아포리아에 있습니다. copyrights@aporia.co.kr ([고전 다시읽기] Aporia Review of Books, Vol.2, No.7, 2014년 7월, 안성재, 인천대 교수)
공자(孔子)가 언급한 예(禮)의 의미에 관한 연구
− 『논어(論語)』를 중심으로 −
서 근 식(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전공 초빙교수)
Ⅰ. 머리말
Ⅱ. 예(禮)의 본질은 무엇인가?
Ⅲ. ‘회사후소(繪事後素)’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의미
Ⅳ. 정명론(正名論)과 관련된 예(禮)
Ⅴ. 귀신(鬼神)과 관련된 예(禮)
Ⅵ. 음악[樂]과 관련된 예(禮)
Ⅶ. 예치(禮治)의 실현
Ⅷ. 맺음말
본 논문에서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예(禮)’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공자(孔子)는 예(禮)의 본질을 형이상학적으로 규정짓지 않고 사람이면 누구나가 실천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원시유학(元始儒學)이 실천중심의 유학이라는 점과도 맞아 떨어진다.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의 문제는 정치론과도 관련되지만 ‘명칭[名]’과 ‘실질적 모습[實]’이 합치된다는 의미에서 예(禮)와도 관련된다. 그리고 『주례(周禮)』에 나오듯이 예(禮)라는 의미는 본래 땅귀신과 관련된 글자로 땅귀신에게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이다. 예(禮)와 음악[樂]은 항상 붙어 다니는 의미이다. 그러나 예(禮)와 음악[樂]이 분리되어 사용될 때에는 예(禮)가 어떠한 의미인가에 대해서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특히 예(禮)를 공부하면 ‘설 수 있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예(禮)의 의미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분별해 나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오늘날 공자가 예치(禮治)를 통해 이룩하려고 했던 선(善)한 사회는 이름이 바뀌고 보다 세밀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우리는 공자가 예치(禮治)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선(善)한 사회를 아직 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예(禮)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주제어: 공자(孔子), 『논어』(『論語』), 예(禮), 정명(正名), 극기복례(克己復禮), 귀신(鬼神), 예치(禮治).
Ⅰ. 머리말
공자(孔子, B.C.551∼B.C.479)1)의 『논어(論語)』2)는 공자의 사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그러므로 『논어』에 대한 많은 번역서들과 연구서들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렇게 『논어』에 대한 연구서들과 번역서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그것을 통해 공자의 사상을 보다 잘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번역서나 연구서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러한 것에 대해서는 다른 연구를참고하고, 본 논문에서는 『논어』 자체에서 언급한 예(禮)를 중심으로 고찰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본 논문에서는 공자가 말한 예(禮)에 대한 고찰이므로 많이 인용되고 있는 회암(晦庵) 주희(朱熹, 1130∼1200)의 『논어집주(論語集註)』에 대해서는 참고하지 않겠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대부분의 사람들이 인(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공자는 인(仁)에대해 규정짓지 않았으므로 인(仁)에 대하여 파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3)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인(仁)의 외재적 조건인 예(禮)를 통해서 인(仁)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예(禮)에 대해서는 다른 경전(經典)에서도 언급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논어』에서 사용된 예(禮)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기존에도 공자와 『논어』의 예(禮)에 관한 글이 다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논문을 쓰려는 이유는 기존의 글들은 『논어』이외에 『예기(禮記)』, 『공자가어(孔子家語)』, 『시경(詩經)』, 『서경(書經)』등과 관련된 예(禮)에 관해서 논하고 있기 때문에 『논어』에서 말하는 예(禮)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논어』 이외의 다른 경전들은 참고하지 않고 『논어』에 나타난 예(禮)에 대해서만 고찰하고자 하겠다. 그리고 본 논문은 『논어』에 등장하는 예(禮)에 관하여 고찰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이므로, 『논어』에서 나오는 천인관계론(天人關係論), 정치론, 경제론, 교육론 등에 관해서는 언급을 자제하도록 하겠다.
기존에도 공자의 예(禮)에 관해 언급한 글들은 많이 있었다. 그러나 『논어』에 등장하는 예(禮)에 관하여 논한 글은 다른 개념에 비해 그리 많지않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글이 차이런호우(蔡仁厚)의 『공맹순철학(孔孟旬哲學)』(臺灣 學生書局, 1984), 허버트 핑가렛(Herbert Fingarette)의 『공자의 철학 : 서양에서 바라본 예(禮)에 대한 새로운 이해』(Confucius : TheSecular as Sacred, Waveland Press, 1988), 도민재의 「『논어』의 예악(禮樂)사상」 『논어의 종합적 고찰』(심산, 2003), 임헌규, 「『논어』에서 공자의 ‘예(禮)’개념에 관한 일고찰 - 『시』·『서』와 연관하여 - 」(『율곡학연구』 제40집, (사)율곡연구원, 2019.12) 등이다. 이 가운데 임헌규의 논문은 가장 최근에 나온 논문이기는 하지만 『논어』에 나오는 예(禮)만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시경』과 『서경』까지 언급하고 있으므로 본 논문의 주제와는 맞지 않는다. 그러나 뒷부분에서 『논어』의 예(禮)에 대해서 논한부분이 있으므로 대표적인 논문으로 참고하였다. 『논어』의 예(禮)개념에관한 글들이 있었지만 집중적으로 논한 글은 허버트 핑가렛의 글뿐이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논어』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禮)에 대하여 논의를 전개하도록 하겠다.
본 논문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예(禮)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회사후소(繪事後素)’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의미를 살펴보겠고 이어서 정명론(正名論)을 살펴보겠다. 그리고 귀신과의 관련성에 대해 살펴보고, 음악[樂]과의 관련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마지막으로 공자는 예치(禮治)사회를 희망했는데, 그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다. 그럼 『논어』에 나오는 예(禮)의 본질은 무엇인가부터 살펴보자.
1) 周의 魯나라(현재 山東省 曲阜)에서 출생했으며, 이름은 丘이고 字는 仲尼이다. 儒學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2) 본 논문에서 사용하게 될 『論語』에 대한 章구분은 楊伯峻의 『論語譯註』(中國, 中華書局, 1996)를 따랐다. 흔히 朱熹의 『論語集註』의 판본을 사용하고 있는데, 본 논문에서 『論語譯註』를 따르는 이유는 이 판본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판본이기 때문이다. 『論語譯註』의 판본은 『論語集註』의 판본과는 달리章의 구분에 있어서 동일한 부분은 하나만 살리고 있으며, 章의 구분도 다르게 하고 있다.
3) 공자의 ‘仁’에 대한 것은 서근식, 「『論語』 ‘仁’에 관한 解釋學的 硏究」 『東洋古典硏究』 제36집, 東洋古典學會, 2009.09를 참조.
Ⅱ. 예(禮)의 본질은 무엇인가?
먼저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논어』에서 예(禮)에 관하여 몇 번이나언급되고 있는가이다. 양보쥔(楊伯俊)의 논어역주(論語譯注)에는 예(禮)에 대하여 총 74차례 사용하고 있다고 하고 이를 4부분으로 말하고 있다.4) 양보쥔이 분류한 4부분은 하나하나가 매우 커다란 부분으로 여겨질 만한 것들이다. 양보쥔이 분류한 4가지에서 공자는 예(禮)의 본질을무엇이라고 생각하였을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임방(林放)이 예(禮)의 근본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질문이여! 예(禮)는 사치하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喪禮)는 형식적으로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하는 것이 낫다.”5)
인용문을 통하여 공자가 말한 부분은 상당히 유명하여 대부분의 책들에서도 인용하고 있다. 그 의미를 살펴보면, 예(禮)의 근본에 대한 질문에 공자는 먼저 “질문이 훌륭하다.”라고 하였다. 어째서 공자는 질문이훌륭하다고 말한 것일까? 다른 질문들은 모두 어떤 것이 예(禮)인가라는질문들이었는데, 임방의 질문만 예(禮)의 근본에 대해서 물었기 때문에이렇게 답변한 것이다. 여기에서 공자는 예(禮)를 예(禮)와 상례로 나누어 보고 있는데, 결국에는 같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 나누어 언급한 것은 당시 상례가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공자에게 있어서 예(禮)는 사치하는 것보다는 검소한 것이 낫고, 상례는형식적인 것보다는 슬퍼하는 것이 낫다고 대답하였다.6) 공자에게 있어서 예(禮)와 상례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저 검소하고 슬퍼하면 되는것이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지킬 수 없었던 이유는 예(禮)가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치스러움은 예(禮)에걸맞지 않고, 형식에 맞추어 상례를 지내는 것은 너무 형식적이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예(禮)를 고차원적으로 규정짓는 것은 후에 송나라 때의 일이지 공자는 그러한 방식으로 예(禮)를규정짓지 않았다.
4) 楊伯峻은 『論語譯注』의 p.311에서 禮가 총 74번 사용되었다고 하면서 禮의의미를 4가지로 분류하였다. 첫째가 禮意, 둘째가 禮儀, 셋째가 禮制, 넷째가禮法 즉 禮之用으로 구분하고 있다.
5) 『論語』 「八佾」 4장. “林放 問禮之本. 子曰 大哉 問.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
6) 楊伯峻의 『論語譯注』 분류에 따르면 여기서 禮의 의미는 禮意로서의 의미가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공자가 말한 예(禮)와 상례의 의미에 대해 알 수 있다.공자는 예(禮)에 맞게 행동하는 것을 검소한 것으로 규정짓고 있고, 상례란 형식에는 맞지 않더라도 슬퍼하는 것이 오히려 예(禮)에 맞는다고 하였다. 공자 당시에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예(禮)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상례를 형식에 맞게 행하는 것이 예(禮)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자는 예(禮)와 상례는 그런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란 무엇인가? 바로 인(仁)7)이다. 인(仁)에서 우러나는 마음가짐은 사람들에게 화려하거나 형식에 맞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仁)에서 우러나는 것은 누구나가 현실에 맞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는 화려한 것 대신 검소한 것을 형식에 맞는 것보다는 슬퍼하는 것을 예(禮)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예(禮)의 본질에 대해서 허버트 핑가렛은 예(禮)를 ‘거룩한 예식(holyritual)’ 혹은 ‘신성한 의식(sacred ceremony)’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인간사회의 참된 전통과 합당한 관습이라고 설명하고 있다.8) 이렇게 ‘거룩한예식(holy ritual)’ 혹은 ‘신성한 의식(sacred ceremony)’이라고 예(禮)를 규정짓는 것은 예(禮)가 ‘신성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공자는 예(禮)를 ‘거룩하다(holy)’거나 ‘신성하다(sacred)’고는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 핑카렛의규정한 예(禮)의 의미는 예(禮)에 신성하다는 의미를 덧붙인 것이 아닌가생각된다. 공자는 예(禮)의 본질을 사람이면 누구나가 쉽게 행할 수 있는것으로 규정하였다. 이렇게 생각하여야만 예(禮)의 본질에 대해 언급할수 있는 것이지, ‘거룩하다(holy)’거나 ‘신성하다(sacred)’라고 규정짓는다면 예(禮)의 본질은 ‘거룩하다(holy)’거나 ‘신성하다(sacred)’ 것 이외에 어떤것도 될 수 없고 고차원적 설명방식이 되기 때문이다.
7) 楊伯峻은 『論語譯注』의 p.221에서 仁은 총109번 사용되었다고 하였다. 仁의의미에 대해서는 3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道德標準의 의미, 仁人의 의미, 人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道德標準의 의미로는 105번, 仁人의 의미로는3번, 人과 같은 의미로는 1번 사용되었다고 분석하였다.
8) 허버트 핑가렛, 『공자의 철학 : 서양에서 바라본 예(禮)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서광사, 1993, p.28을 참조.
9) 『詩經』 「衛風」 <碩人>. “手如柔荑 膚如凝脂 領如蝤蠐 齒如瓠犀 螓首蛾眉 巧笑倩兮 美目盼兮.”
Ⅲ. ‘회사후소(繪事後素)’와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의미
공자에게 있어서 예(禮)는 인(仁)을 바탕으로 하여 실천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점을 어디에서 알 수 있는가?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하(子夏)가 물었다. 『시경(詩經)』에 ‘예쁜 웃음에 보조개가 예쁘며, 아름다운눈에 눈동자가 선명함이여! 흰 비단으로 채색을 한다.’9)라고 하였으니, 이 시(詩)는 무엇을 말한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마련한 뒤에 한다[繪事後素]는 뜻이다.” 자하가 “예(禮)가 그 뒤이겠군요.”라고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으키는 사람은 자하로구나! 이제 함께 시에 대해서 논할 만하구나.”10)
인용문은 공자와 자하의 대화로서 유명한 ‘회사후소(繪事後素)’에 관한것이다. 여기서 공자가 답변한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비단을 마련한 뒤에 한다.[繪事後素]’의 의미는 인(仁)과 예(禮)의 관련성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뒤의 문장을 보면 ‘그림 그리는 일’이란 예(禮)11)에관련된 일이라고 점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흰 비단 마련하는 일’은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흰 비단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예(禮)에 해당되는 일이라고 한다면 ‘흰 비단 마련하는 일’은 예(禮)가 어느 것으로부터 나오는가라는 물음이다. 여기서 좀 더 정확하게 질문하면 예(禮)는무엇에 근거하는가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인(仁)이라고 밖에 답변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예(禮)가 외재적인 것이라면 인(仁)은 내재적인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禮)는 인(仁)의 외재적 표현이 된다. 또한 예(禮)는 인(仁)의 외재적 표현이기 때문에 인(仁)이 밖으로 표현될 때에는예(禮)가 되는 것이다. 즉, 인(仁)과 예(禮)의 관계에 있어서는 예(禮)보다는 인(仁)이 중요한 일이 된다. 그러므로 공자도 예(禮)보다는 인(仁)을확보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10) 『論語』 「八佾」 8장. “子夏問曰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禮後乎. 子曰 起予者 商也 始可與言詩已矣.”
11) 楊伯峻의 『論語譯注』 분류에 따르면 여기서 禮의 의미는 禮意로서의 의미가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예(禮)가 인(仁)의 외재적 표현이라는 점이 잘 드러나는 『논어』의 또다른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스승에게 인(仁)에 대해서 물은 것이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사욕(私欲)을이겨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仁)을 행함이니, 하루라도 사욕(私欲)을 이겨 예(禮)로 돌아가면,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그 인(仁)에 귀의할 것이다. 인(仁)을 행하는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겠는가?” 안연이“그 실천할 수 있는 조목(條目)을 묻습니다.”라고 말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며[非禮勿視], 예(禮)가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聽],예(禮)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非禮勿言], 예(禮)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아야 한다[非禮勿動].” 안연이 말하였다. “제가 비록 불민(不敏)하나, 이 말씀을 따라 실천하겠습니다.”12)
인용문은 너무나도 유명한 문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미쳐보지 못한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안회는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인가를 물었는데,공자는 예(禮)로써 답변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공자와 안회 두 사람가운데 1명이 질문이나 답변을 잘못하였다고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질문한 사람은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인 안회이고 답변한 사람은 공자이다. 누구하나 잘못했다고 치부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두 사람 사이의 질문과 답변에 대해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것이다. 왜냐하면 질문한 사람도 정확하게 질문하였고 답변하는 사람도정확하게 답변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잘못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바로 인(仁)과 예(禮)에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여기서 우리가 예(禮)를 인(仁)의 외재적 표현이라고 하는 점만 알면 쉽게 해결되는 문제이다. 즉, 안회가 인(仁)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는 인(仁)의 외재적 표현인 예(禮)로 답변하였다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예(禮)는 인(仁)의 외재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점은 인(仁)이 예(禮)보다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인(仁)이 올바로 표현되기 위해서는 예(禮)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중요한 인(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다면 인(仁)이제대로 발현되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仁) 못지않게 예(禮)도 중요한 것이다. 양보쥔(楊伯俊)이 논어역주에서 예(禮)의 의미를4가지로 나눈 것도 인(仁)을 올바르게 표현하기 위해서 예(禮)가 사용된의미를 사용용도에 따라 나눈 것일 뿐이다.
핑가렛은 예(禮)를 “공자에게서 예(禮)는 사회적 교재, 즉 인간의 삶이라는 거대한 예식을 명백하고 세세하게 나타내 주는 패턴이다. … 심지어 우리는 예(禮)를 특정한 도로체계, 다시 말해 길이 그려진 지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것이다.”13)라고 하였다.
이러한 핑가렛의 주장은 공자가 사용한 예(禮)를 너무 확대해서 해석하거나 신성시 여긴 측면도 있지만 인(仁)에 대한 예(禮)의 표현으로서는 적당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특히 예(禮)를 ‘도로체계’로 표현하고 있는 점은 예(禮)의 의미를 고정하여 바꿀 수 없다는 의미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인(仁)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된다.
12) 『論語』 「顏淵」 1장.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非禮勿動.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13) 허버트 핑가렛, 『공자의 철학 : 서양에서 바라본 예(禮)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서광사, 1993, pp.45∼46.
Ⅳ. 정명론(正名論)과 관련된 예(禮)
정명론은 보통 ‘정치론’ 부분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정명론을 예(禮)로써 다루고 있는 예도 찾아볼 수 있다.14) 차이런호우는 공자의정명(正名)사상을 예(禮)에서 파생된 것으로 여겼다.15) 차이런호우가 정명론을 예(禮)에서 파생되었다고 여긴 것은 공자가 천하의 대세를 논한것은 바로 주(周)나라의 예악(禮樂)·문물제도를 중건해야 한다는 정치적문제에서였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도나타난다.
계강자(季康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였다. “정치는 바르게 한다[正]는 의미이니, 당신이 바름으로써 통솔한다면, 누가 감히바르게 하지 않겠습니까?”16)
인용문에서 정치를 정명의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보통 정명론을 정치적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대부분의 글들이 정명론을 정치론으로 해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여기서 정치적 문제라고 규정지으면 정치론에서 언급되겠지만 차이런호우는 이를 정치적 문제로 보기 보다는 ‘명칭[名]’에 따른 ‘실질적 모습[實]’의 관계로 보았기 때문에 정명론이 예(禮)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한 것이다.17) 그렇다면 어떻게 보아야‘명칭[名]’과 ‘실질적 모습[實]’이 같아질 수 있는가?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14) 正名論과 관련된 禮에 관한 입장은 楊伯峻의 『論語譯注』 분류에 따르면 禮制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15) 蔡仁厚, 『孔孟旬哲學』, 臺灣, 學生書局, 1984, p.56.
16) 『論語』 「顏淵」 17장.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17) 蔡仁厚, 『孔孟旬哲學』, 臺灣, 學生書局, 1984, pp.56∼57 참조.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하여 묻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였다. “임금은 임금답고[君君], 신하는 신하답고[臣臣], 부모는 부모답고[父父],자식은 자식다운 것[子子]입니다.” 경공이 말하였다. “좋은 말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君不君],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臣不臣],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고[父不父],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子不子]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18)
자로(子路)가 말하였다. “위(衛)나라 임금이 선생님을 기다려 정치를 한다면선생님께서는 장차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반드시명분을 바로잡겠다.” 자로가 말하였다. “이렇다니까요. 선생님께서는 세상 실정을 너무 모르십니다.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촌스럽구나! 유(由 : 자로의 이름)여! 군자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제쳐놓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명칭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고, 말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며, 일이 이루어지지않으면 예악(禮樂)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면 형벌(刑罰)이 알맞지 못하게 되고, 형벌이 알맞지 못하면 백성들이 손발을 둘 곳이 없게된다. 그러므로 군자가 그것에 명칭을 붙이면 반드시 말할 수 있으며, 말할 수있으면 반드시 행할 수 있으니, 군자는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 구차하게 행함이없을 뿐이다.”19)
첫 번째 인용문에서 공자는 ‘명칭[名]’과 ‘실질적 모습[實]’이 같아질수 있는 이유로 “군주[名]는 군주[實]답고 신하[名]는 신하[實]답고 부모[名]는 부모[實]답고 자식[名]은 자식[實]답다.”는 것을 제시하였다.공자는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군주가 군주답게 행동하고, 신하는 신하답게 행동하고, 부모는 부모답게 행동하고,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한다면 세상은 평화로워 질 것이다. 그러나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고, 부모가 부모답지 못하고,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다면 그런 세상에서는 살아 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공자가 제시한 정명론이다. 공자는 지키기 어려운 것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가 지킬 수 있는 것을 제시한 것이다.그것도 힘써 노력하여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욕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된다면 사람들이 평화롭게 세상을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사상이 훗날 실천중심의 유학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두 번째 인용문에서는 자로가 공자가 제시한 정명론이 너무 우활(迂闊)하다고 말하자 공자가 이에 대해 설명해 준 것이다. 인용문의 내용을 보면 우활한 것 같지만 이러한 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 말이 순조롭지 못하게 되며 예악이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형벌이 알맞게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활한것 같지만 정명론에서 제시한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답다.”는 것을 잘 지키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이루어 질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즉, 공자는 우리가 우활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기본이 되는 것이므로 기본적인 것만 잘 지키면 평화로운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상이 훗날 실천중심의 유학사상의 기초가 되었다.
18) 『論語』 「顏淵」 11장. “齊景公 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 公曰善哉 信如君不君 臣不臣 父不父 子不子 雖有粟 吾得而食諸.”
19) 『論語』 「子路」 3장. “子路曰 衛君待子而爲政 子將奚先. 子曰 必也正名乎. 子路曰 有是哉. 子之迂也 奚其正. 子曰 野哉 由也 君子於其所不知 蓋闕如也. 名不正 則言不順 言不順 則事不成 事不成 則禮樂不興 禮樂不興 則刑罰不中 刑罰不中 則民無所措手足. 故君子名之 必可言也 言之 必可行也 君子於其言 無所苟而已矣.”
Ⅴ. 귀신(鬼神)과 관련된 예(禮)
예(禮)가 귀신과 관련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왜냐하면 귀신과 예(禮)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례(周禮)』 「대종백(大宗伯)」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늘에는 천신(天神)이 있고, 땅에는 지기(地示)가 있으며, 인간에게는 귀신(鬼神)이 있다.20)
인용문에서는 하늘과 땅과 인간에게 있어서 귀신을 부르는 명칭이 서로 다르므로 다르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하늘과 땅과 인간에게는 부르는 귀신이 다르다고만 나왔지 귀신이 예(禮)와 관련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예(禮)라는 글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기(示)+곡(曲)+두(豆)’로 된다. 여기서 ‘두(豆)’의 의미는 제사에 쓰이는 제기(祭器)의 모양이고, ‘곡(曲)’의 의미는 음식이 풍성하게 담겨 있는 모양이고, ‘기(示)’의 의미는 땅귀신이다. 우리는 ‘기(示)’라는 글자를 보통 ‘보이다’라는 의미의 ‘시’라고 발음한다. 그러나 이 글자는 ‘시’라고 발음되기 보다는 ‘기’라고 발음해야지만 올바른 뜻이 된다. 즉, ‘기(示)’라는 글자는 ‘기(祇)’자와 같은 의미이다. 그러므로 ‘기(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는 ‘기도(祈禱)’, ‘기원(祈願)’, ‘제사(祭祀)’ 등 모두 땅귀신과관련된 글자들이다. 따라서 ‘예(禮)’라는 글자는 본래 땅귀신에게 풍년을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글자이다. 그러므로 예(禮)가 귀신과 관련된다고 해도 무방한 것이다.
『논어』에도 귀신과 관련된 구절들이 많이 보인다.21)
20) 『周禮』 「大宗伯」. “天神 地示 人鬼.”
21) 楊伯峻의 『論語譯注』 분류에 따르면 여기서 禮의 의미는 禮法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몇몇 예를 들어 설명하겠지만 구체적으로는 살펴보지 않겠다. 증자(曾子)는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증자가 말하였다. “윗사람이 상사(喪事)를 신중히 치르고, 돌아가신 지 오래된 조상을 추모하면[愼終追遠] 백성의 덕(德)이 후하게 될 것이다.”22)
맹의자(孟懿子)가 효(孝)에 대해 묻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어김이 없는것입니다.” 번지(樊遲)가 수레를 몰고 가고 있었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맹손씨(孟孫氏)가 나에게 효에 대해 묻기에 내가 ‘어김이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였네.” 번지가 여쭈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께서살아 계실 때는 예(禮)로 섬기고, 돌아가시면 예(禮)로 장사(葬事) 지내고, 예(禮)로 제사 지내는 것이네.”23)
공자께서는 선조(先祖)에게 제사를 지내실 때에는 조상이 계신 듯이하셨으며, 선조 이외의 신(神)을 제사지낼 때에는 신(神)이 계신 듯이 하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24)
번지가 지(智)에 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힘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하면 지(智)라 말할 수 있다.” 번지가 인(仁)에대하여 묻자, 공자께서 또 말씀하셨다. “인자(仁者)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하고 얻는 것을 뒤에 하니, 이렇게 한다면 인(仁)이라고 말할 수 있다.”25)
공자께서는 괴이(怪異)한 일과 용력(勇力)을 쓰는 일과 어지러운 일과 귀신에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26)
계로(季路)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살아 있는 사람을 잘 섬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귀신을 섬기겠는가?” 계로가 “감히 죽음에 대해서 묻습니다.”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삶을 모른다면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알겠는가?”27)
많은 인용문들에서 공자의 귀신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22) 『論語』 「學而」 9장. “曾子曰 愼終追遠 民德 歸厚矣.”
23) 『論語』 「爲政」 5장. “孟懿子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我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24) 『論語』 「八佾」 12장. “祭如在 祭神如神在. 子曰 吾不與祭 如不祭.”
25) 『論語』 「雍也」 22장. “樊遲問知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曰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26) 『論語』 「述而」 21장. “子不語怪力亂神.”
27) 『論語』 「先進」 12장. “季路問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未知生 焉知死.”
『논어』에서 귀신의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제사가 보본(報本)의식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보본의식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까닭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게 된 이유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논어』에서의 귀신은 보본의식과 관련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한다.”라는 「옹야(雍也)」 22장과 “괴이한 일과 용력(勇力)을 쓰는 일과 어지러운 일과 귀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술이(述而)」 21장 글이 대표적인 공자의귀신에 관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논어』의 다른 장들을 보면 모두 귀신을 인정하고 있는 듯하다. 이와 같이서로 어긋난 서술 때문에 후에 주희가 조상과 관련된 귀신과 일반적인귀신을 구분하려고 하기도 하였다.28) 또한 자사(子思)가 지은 『중용(中庸)』 16장에서처럼 귀신을 완전히 긍정하기도 하여 『논어』의 귀신관과대비되기도 한다.29) 보본의식과 관련된다는 말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것과 관련된다는 의미이다. 공자가 귀신에 대해 한 말들은 대부분 사람이면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중용』 16장처럼 구체적인의미는 없다. 다만 『논어』에서는 예(禮)가 귀신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만을 지적하고 나머지 부분은 『중용』을 다룰 때에 언급되어야만 한다. 또,『중용』에서와는 달리 귀신에 관한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귀신을공경하되 멀리 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공자 스스로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멀리하고 싶어 했으므로 더 이상의 논의를 진전시킬수는 없다.
28)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박성규, 『주자철학의 귀신론』, 한국학술정보, 2005를 참조할 것.
29)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서근식, 「『中庸』 16章 「鬼神章」에 대한 比較硏究 -朱子, 王夫之, 伊藤仁齋, 丁若鏞을 中心으로-」 中庸儒敎文化硏究』 제8집,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2004.08과 신정근, 「『중용』과 귀신의관계, ‘中庸’의 정식화의 연구」 『유교사상연구』 제41집, 한국유교학회,2010.09와 안영탁, 「『中庸中庸章句』에 나타난 주자의 귀신론에 관한 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2권 제1호, 부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04와 이택용,「『중용』의 세계관 : ‘天·鬼神·命’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유교사상문화연구』 제51집, 한국유교학회, 2013.03 등의 논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Ⅵ. 음악[樂]과 관련된 예(禮)
예(禮)가 음악[樂]과 관련된다는 사실은 『논어』의 여러 곳에서 보인다.30) 예악(禮樂)이라고 사용되기도 하며, 예(禮)와 악(樂)을 분리하여 설명하기도 한다.31) 예(禮)와 음악[樂]의 관계가 어떤가에 대해 『논어』에서는공자의 제자 유자(有子)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자(有子)가 말하였다. “예(禮)가 행해지는 것은 조화로움이 중요하니, 선왕(先王)의 도(道)도 이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그러므로 작은 일과 큰 일 모두 이것을 따랐다. 행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조화로움만을 알아서 조화로움만을이루고 예(禮)로써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해질 수 없다.”32)
유자는 예(禮)는 분별하는 것이므로 분별이 너무 지나치게 되면 곤란함으로 이를 해결하지 위해서는 조화로움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여기서 조화로움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음악[樂]이다. 그러나 조화로움에만 치우치다 보면 너무 방탕하게 됨으로 분별이 필요하다. 분별을 담당하는것이 바로 예(禮)이다. 즉, 예(禮)만을 강조해도 안 되고 음악[樂]만을 강조해도 안 된다.
30) 楊伯峻의 『論語譯注』 분류에 따르면 여기서 禮의 의미는 禮意로서의 의미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31) 『論語』의 禮樂思想에 관해서는 도민재, 「『論語』의 禮樂思想」 『논어의 종합적고찰』, 심산, 2003을 참조.
32) 『論語』 「學而」 12장.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 有所不行 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
이렇게 보면 예(禮)와 음악[樂]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관계에 있다. 예(禮)에 관한 기록과 해설을 정리한 『예기(禮記)』에서도 「악기(樂記)」라는 편이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또, 공자는 예(禮)와 음악[樂]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詩)에서 흥기(興起)하고 예(禮)에서 서며, 음악[樂]에서 이룬다.”33)
인용문에서는 시(詩)를 통하여 마음을 흥기시키서 예(禮)로써 서고 음악[樂]을 통하여 완성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시를 통해서 흥기시킨다는부분도 알겠고 음악[樂]을 통해서 완성한다는 부분도 이해가 가지만 예(禮)를 통해서 설 수 있다는 부분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한 공자는제자 진항(陳亢)이 자신의 아들 공리(孔鯉)에게 물었던 것에서도 예(禮)를통해서 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진항(陳亢)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伯魚)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에게서 특별한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었는가?” 백어가 대답하였다. “없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홀로 서 계실 때에 내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시(詩)를 배웠느냐?’라고 물으시기에,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더니, ‘시(詩)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말을 할 수가 없다.’라고 하시므로, 내가 물러나시(詩)를 배웠다. 다른 날 또 홀로 서 계실 때에 내가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는데, ‘예(禮)를 배웠느냐?’라고 물으시기에, ‘아직 배우지 못하였습니다.’하고 대답하였더니,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설 수가 없다.’라고 하시므로,내가 물러나 예(禮)를 배웠다. ‘시(詩)’와 ‘예(禮)’ 이 두 가지를 들었다.” 진항이물러나와 기뻐하면서 말하였다. “하나를 물어서 세 가지를 얻었으니, 시(詩)에대하여 들었고 예(禮)에 대하여 들었고 또 군자는 자신의 아들이라 하여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34)
33) 『論語』 「太伯」 8장.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34) 『論語』 「季氏」 13장.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學詩乎. 對曰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 又獨立 鯉趨而過庭 曰學禮乎. 對曰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 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인용문에서는 진항이 공자의 아들에게 물어본 내용과 진항이 깨닫게된 것이 중요함으로 그것에 대해 자세하게 고찰해야 하겠지만, 본 논문은 예(禮)에 관한 논문이므로 예(禮)에 관한 부분만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공자는 예(禮)에 대해서 “예(禮)를 배우지 않으면 남과 더불어 설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도 ‘설 수 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렇다면 공자는 왜 ‘설 수 있다.’라고 말한 것일까? 그리고 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인용문에 나와 있듯이 예(禮)에 대해서 배우기만 하면 설 수 있게 되는 것인가? 다음의 문장에서 공자는 ‘설 수 있다.’는 의미를 제시하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열다섯 살에 학문(學問)에 뜻을 두었고[志于學],서른 살에 확고하게 섰으며[而立], 마흔 살에 사리에 의혹되지 않았고[不惑],쉰 살에 천명(天命)을 알았고[知天命], 예순 살에 귀로 들으면 그대로 이해되었고[耳順], 일흔 살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從心所欲不踰矩].”35)
인용문에서 공자는 자신이 걸어 온 길을 회상하고 있다. 여기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志于學]고 하였고, 30세에 확고하게 설 수 있었다[而立]고 하였다. 여기에서 ‘설 수 있다.’는 표현이 나온다. 즉, 스스로가 확고하게 설 수 있어야만 자신의 공부해야 할 분야에 대해서 신념을가지고 공부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확고하게 신념을 갖는 것이 예(禮)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예(禮)는 분별함을 주로 한다고 하였다. 계속 분별하여 이것과 저것을 분별해 나가다 보면 어떤 것이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인가에 대해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된다.
35) 『論語』 「爲政」 4장.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그러므로 공자가 아들인 백어[孔鯉]에게 예(禮)에 대해서 배우지 않으면 설 수 없다고 말한것이다. 이렇게 설 수 있은 다음에 음악[樂]을 통해서 삶을 조화롭게 만들어 가면 인간으로서 완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예(禮)에서 서며, 음악[樂]에서 완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백어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가 예(禮)에 대해서배우지 않는다면 설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공자의 또 다른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학문(學文)을 널리 배우고 예(禮)로써 요약한다면 도(道)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36)
인용문은 공자가 학문(學問)하는 방법에 대해서 언급한 것이다. 여기서 공자는 학문(學文)하는 방법은 널리 배워야 한다고 하고 있다. 널리배우지 않고 좁게 배우면 사람이 편협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예(禮)로써 요약하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공자는 예(禮)가 분별함을 주로 하고 있다는 측면을 강조하여 그렇게 말한 것이다. 널리 배우기만 하는 것으로 끝난다면 학문(學文)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가 없다. 자신의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배운 것을 요약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 요약해야 하는가? 공자는 예(禮)를 통해서 요약하라고 하고 있다.예(禮)는 분별함을 주로 함으로 서로 다른 측면에서 배웠던 것을 구분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것이 무엇인가를 면밀하게 고찰하여 이것과 저것이 다른 이유를 살펴나가는 것이다. 이로부터 널리 배웠던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측면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통해서 잘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禮)로써 요약해 나가야만 학문이 보다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36) 『論語』 「顏淵」 15장. “子曰 君子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Ⅶ. 예치(禮治)의 실현
공자는 예(禮)로써 다스려지는 예치(禮治)의 시대를 염원했다.37) 이는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을 법령으로 인도(引導)하고 형벌(刑罰)로 다스리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려고만 하고 부끄러워함이 없다. 백성을 덕(德)으로 인도하고 예(禮)로 규제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할 줄도 알고 자연히 선(善)에 이를 것이다.”38)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德)으로 하는 정치는 비유하자면 북극성(北極星)이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뭇 별들이 그곳으로 향해 도는 것과 같다.”39)
인용문에서 보듯이 공자는 법령과 형벌이 아니라 예(禮)와 덕(德)으로써 다스려지는 세상을 희망하였다. 공자 당시에는 법령과 형벌로써 다스리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공자는 당시 법령과 형벌로써 다스려지는 세상과는 다른 예(禮)와 덕(德)으로써 다스리는 사회를 이룩하기위해서 주유열국(周遊列國)까지 마다하지 않은 것이다. 법령과 형벌로써만 다스리면 사람들이 법령과 형벌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그것을 피하려고만 한다. 이렇게 한다면 법령과 형벌로서만 지키는 세상이 되지 공자가 희망했던 선(善)한 사회는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공자는 법령과 형벌이 아닌 예(禮)와 덕(德)으로써 다스려지기를 희망한 것이다. 예(禮)와 덕(德)으로써 다스린다면 사람들이 법령과 형벌을 무서워하듯이나쁘게 행동하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며 이것과 함께 선(善)도 지키게 될 것[有恥且格]이라고 희망했다.
37) 楊伯峻의 『論語譯注』 분류에 따르면 여기서 禮의 의미는 禮制로서의 의미가강하다고 할 수 있다.
38) 『論語』 「爲政」 3장. “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有恥且格.”
39) 『論語』 「爲政」 1장. “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그렇다면 공자는 어떻게 하면 이러한 시대가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을까? 공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러한 시대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주나라는 하(夏)·은(殷) 이대(二代)의 예(禮)를 보아 본보기로 삼았으니, 찬란하다. 그 문채(文彩)여!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다.”40)
자장(子張)이 여쭈었다. “10세대 뒤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 공자께서말씀하셨다.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禮)를 인습(因襲)하였으니 무엇을 가감(加減)했는지 알 수 있으며,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인습하였으니 무엇을 가감했는지 알 수 있네. 혹시라도 주나라를 계승하는 자가 있다면 비록 100세대 뒤의 일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네.”41)
첫 번째 인용문에서 공자는 주나라가 하나라와 은나라의 예제(禮制)를뒤이었으므로 만약 주나라의 예(禮)를 인습해 나간다면 충분히 이러한시대가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두 번째 인용문에서“100세대 뒤의 일이라고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희망했던 세상은 공자가 죽을 때까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계속이루어지지 않았다.
100세대라면 3,000년 정도인데 요즘은 공자가 죽은 지 2,500년 정도되었으므로 어느 정도 3,000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자의 꿈은 이루어졌는가? 이에 대해 허버트 핑가렛은 “우리는 일찍이 공자가 겪지 못했던 하나의 문제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공자의기본 전제는 하나의 예(禮)가 있고, 그것은 보다 위대한 천도(天道)와근원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오늘날에는 독특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다수의 문화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잘알고 있다. 이 문화적 다원성이란 점을 고려할 때 공자의 서로 관련된 이런 기본 가정들에 대한 신중한 재검토가 요청된다.”42)라고 현대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공자가 말한 예(禮)가 과연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하는 점에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40) 『論語』 「八佾」 14장. “子曰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41) 『論語』 「爲政」 23장. “子張問 十世可知也. 子曰 殷因於夏禮 所損益可知也. 周因於殷禮 所損益可知也. 其或繼周者 雖百世可知也.”
42) 허버트 핑가렛, 『공자의 철학 : 서양에서 바라본 예(禮)에 대한 새로운 이해』,서광사, 1993, pp.95∼96.
즉, 현대는 공자가 살았던 봉건시대와는 달리 세계가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다원화된사회에서 공자가 말한 예(禮)라는 것이 얼마나 자기 역할을 할 수 있을까를 핑가렛은 의문으로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공자가 생각했던 예(禮)는 오늘날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되어 예의(禮儀) 혹은 에티켓 정도로 밖에 사용되지 않는데 말이다. 이렇게 의문을 제기하고서 허버트 핑가렛은 “이제 우리가 공자의 비전이 지닌 진리를 깊이 통찰해 볼 필요가 있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 시대에는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이요, 또한 우리가 그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그 참뜻에 무지한 것은 너무나 먼 시대적인이질감 때문이다.”43)라고 다원화된 사회의 답변이라고 마지막 부분에서말하고 있다.
우리는 현대의 눈으로 2,500년 전의 공자를 바라보면서 공자의 시대를 재단(裁斷)하려 하고 있다. 다원화된 시대를 가지고 봉건시대를 재단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인간은 겉으로 편해졌다고 하더라도 속으로는 여전히 같은 인간이다. 2,500년 전의 인간이나 요즘의 인간이나 같다는 말이다. 또한 예전의 인간이라고 해서 예(禮)가 없는 것이 아니고,오늘날의 인간이라고 해서 예(禮)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공자가 선(善)한사회를 꿈꿨듯이 오늘날의 많은 사상가들도 선(善)한 사회가 이룩되기를 희망한다. 그렇다면 공자가 희망했던 목표나 오늘날 사상가들이 희망하고 있는 목표가 같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공자가 희망했던 예치(禮治)시대는 말만 바뀌고 좀 더 세밀해졌을 뿐이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43) 허버트 핑가렛, 『공자의 철학 : 서양에서 바라본 예(禮)에 대한 새로운 이해』,서광사, 1993, p.111.
Ⅷ. 맺음말
지금까지 『논어』에 나오는 예(禮)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예(禮)는 공자시대에는 쓰임이 무척 다양했다. 따라서 양보쥔의 『논어역주』에서는 예(禮)의 의미를 4가지로 요약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예(禮)의의미가 많이 축소되어 예의(禮儀)나 에티켓 정도로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공자가 예(禮)를 통해 희망했던 선(善)한 사회는 이름을 바꾸고 세밀해지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아래는 본논문에서 살펴본 부분의 요약이다.
공자는 예(禮)의 본질을 형이상학적으로 규정짓지 않고 사람이면 누구나가 실천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원시유학이 실천중심의 유학이라는 점과도 맞아 떨어진다.
공자는 ‘회사후소’와 ‘극기복례’에서 인(仁)과 예(禮)의 관련성에 대하여언급하였다. 여기서 인(仁)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인(仁)이 올바르게 표현되기 위해서는 예(禮)도 또한 중요한 부분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자의 정명론의 문제는 정치론과도 관련되지만 ‘명칭[名]’과 ‘실질적모습[實]’이 합치된다는 의미에서 예(禮)와도 관련된다. 그리고 공자가제시한 ‘명칭[名]’과 ‘실질적 모습[實]’의 합치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생각은 실천중심의 유학사상에 걸맞은 것이다.
주례에 나오듯이 ‘예(禮)’의 의미는 본래 땅귀신과 관련된 글자이다.『논어』에도 귀신과 관련하여 많은 언급들이 나온다. 그러나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 한다.”라는 말처럼 공자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귀신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禮)와 음악[樂]은 항상 붙어 다니는 의미이다. 그러나 예(禮)와 음악[樂]이 분리되어 사용될 때에는 예(禮)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관해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예(禮)를 공부하면 ‘설 수 있다.’는 측면에대해서는 해석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예(禮)를 공부하면 ‘설 수 있다.’는 의미는 서로 분별해 나가서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충실히 해 나간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공자는 당시 법령이나 형벌로써 이루어진 사회에서 과감하게 예치(禮治)가 이루어지기를 꿈꿨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는 공자가 죽을 때까지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공자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가? 오늘날에도 공자의 예치(禮治)는 말만 바뀌고 보다 세밀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우리는 공자가 예치(禮治)를 통해 이루려고 했던 선(善)한 사회를 아직이루지는 못하였다. 그렇지만 핑가렛의 말처럼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예(禮)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참고문헌>
唐 華, 『孔子哲學思想源流』, 臺灣, 正中書局, 1977.
蔡仁厚, 『孔孟旬哲學』, 臺灣 學生書局, 1984.
錢 穆, 『孔子與論語』, 臺灣, 聯經事業公司, 1988.
白川靜, 『孔子傳』, 日本, 中央公論社, 1989.
楊伯峻, 『論語譯註』, 中國, 中華書局, 1996.
十三經注疏定理委員會, 『周禮正義』(全2冊), 中國, 北京大學出版社, 2001.
十三經注疏定理委員會, 『毛詩正義』(全3冊), 中國, 北京大學出版社, 2001.
송영배 옮김, 『공자의 철학 : 서양에서 바라본 예(禮)에 대한 새로운 이해』, 서광사, 1993.)
柳肅, 『禮的精神 : 禮樂文化與中國政治』, 中國, 吉林敎育出版社, 1990.(류수지음 / 홍희 옮김, 『예(禮)의 정신 : 예악(禮樂)문화와 정치』, 동문선, 1994.)
김영호 외 지음, 『논어의 종합적 고찰』, 심산, 2003.
박성규, 『주자철학의 귀신론』, 한국학술정보, 2005.
小島 毅, 『東アジアの儒敎と禮, 日本, 山川出版社, 2004.(고지마 쓰요시 지음 / 김용천 옮김, 『유교와 예(禮)』, 동과서』 2007.)
박종천, 『예, 3천년 동양을 지배하다 : 몸짓의 예술인가 억압의 기제인가』,글항아리, 2011.
조원일 『공자의 철학사상 : 동아시아 인문주의의 원형이 된 고대 중국의사상가』, 전남대출판부, 2013.
김상래, 『동양윤리사상연구』, 한국학술정보, 2018.
남상호, 「공자와 예(禮)」 『공자학』 제8호, 한국공자학회, 2001.09.
서근식, 「『중용』 16장 「귀신장」에 대한 비교연구 - 주자, 왕부지, 이토 진사이(伊藤仁齋), 정약용을 중심으로-」 『유교문화연구』 제8집,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유교문화연구소, 2004.08.
이경무, 「‘예(禮)’와 공자 인학(仁學)」 『동서철학연구』 제45집, 동서철학회,2007.09.
서근식, 「『논어』 ‘인(仁)’에 관한 해석학적 연구」 『동양고전연구』제36집, 동양고전학회, 2009.09.
신정근, 「『중용』과 귀신의 관계, ‘중용(中庸)’의 정식화의 연구」 『유교사상연구』 제41집, 한국유교학회, 2010.09.
안영탁, 「『중용장구』에 나타난 주자의 귀신론에 관한 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제12권 제1호, 부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04.
이택용, 「『중용』의 세계관 : ‘천(天)·귀신(鬼神)·명(命)’에 대한 관점을 중심으로」 『유교사상문화연구』 제51집, 한국유교학회, 2013.03.
임헌규, 「『논어』에서 공자의 ‘예(禮)’개념에 관한 일고찰 - 『시』·『서』와 연관하여 - 」 『율곡학연구』 제40집, (사)율곡연구원, 2019.12.
공자의 미학사상- 박광철
1) 공자의 미학은 ‘예로 서는 것(立於禮)’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를 살았던 유가의 대표적 인물이다. 전국시대가 시작하기 바로 직전으로 중국의 고대국가인 하, 은, 주시대가 끝난 시점이다. 공자의 미학사상은 정치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 고대 노예제가 끝나고 봉건제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 은, 주, 서주(西周)의 정치사회제도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보고 그 당시의 ‘예악’이 붕괴되어 소멸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공자는 미학 문제를 전문적으로 논하지도 않았고 체계적이지도 않지만 [논어]에 기록된 언급 중에서 그의 미학의 정의와 이해를 엿볼 수 있다. 물론 논어 자체가 공자의 언급인지 아니면 후대 제자들의 편집인지, 또 다른 이들의 공동 작품인지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일단 공자의 언급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고대 그리스시대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대한 분류가 고대 중국에도 존재하는데 논어의 술이편에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닌다.’는 구절이 나오며 예를 구체적으로 6예(藝)라 하여 예, 악, 사, 서, 어, 수로 나누었다. 시, 서, 예, 악 등 지금의 예술 분류와 유사한 부분 이외에도 ‘사, 어, 수’등의 자연과학적 기술과 지식도 포함하고 있다. 공자에게 이러한 시나 악 그리고 문학 등은 모두 예(禮)에 복무해야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는 즉 복례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서주시대 이전의 이상적 국가모델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서주시대 이전의 예술적 가치와 형식이 기준이라는 자신의 미학을 설명함을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시대 말기 플로티누스는 다섯 가지로 예술을 분류하였는데 1)건축과 같이 물리적 사물들을 만들어내는 예술 2)의술 및 농업과 같이 자연을 도와주는 예술 3)회화와 같이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 4)수사법 및 정치와 같이 인간의 행동을 개선하고나 장식하는 예술 5)기하학처럼 순수하게 지적인 예술이 그 것이다. 이러한 분류의 원칙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이지만 질료적인 건축에서 순수하게 정신적인 기하학으로 끝나는 하나의 등급을 보여준다. 공자에게도 이러한 원칙이 보이는데 미학평가를 내릴 때 견지하던 윈칙과 방법은 ‘선(善)’을 앞세우고 ‘미’를 뒤로 하며 ‘질(質)’을 앞세우고 ‘문(文)’을 뒤로 하며, ‘덕’을 앞세우고 ‘언(言)’을 뒤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가 우선이 되고 ‘악’은 그 다음으로 예에 종속된다. 이러한 분류는 정치사상과 분리하여 예술 혹은 미를 보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관점에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공자의 미학 사상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논어]를 중심으로 왜 그의 미학이 ‘예’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정치 도덕과 분리된 순수 예술에 대한 공자의 부정적 인식과 다른 주장을 하고자 한다.
2) 공자의 '미'와 '선'의 개념
[논어]에 나오는 ‘미’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도덕적 범주와 미학 범주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논어 리인(里仁)] 공자가 말하기를 마음이 어진 것이 아름다움이 된다. 혹은 [논어 안연] 군자는 다른 사람의 아름다운 것은 이루어 주고 다른 사람의 악한 것은 이루어 주지 않는다. 소인은 그 반대다(君子成人之美, 不成人之惡. 小人反是)는 언급과 같은 도덕적 범주가 하나다. 다른 하나는 [논어 술이(述而)] 공자가 제나라에서 ‘소(韶)’라는 음악을 듣고 3개월간 고기맛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음악이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를 줄은 몰랐다.‘는 언급과 같이 미학 범주가 있다. 공자는 일반적으로 ’미‘와 ’선‘을 혼합하여 쓰고 있다. 공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선진제자(先秦諸子)의 언급에 흔한 일이다. 이는 미와 선이 객관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필요성 또한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선의 개념은 보다 도덕 범주 혹은 실용 공리적 범주로 쓰이는 반면 미는 미학 범주 혹은 심미 대상으로 구별할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이를 모방하는 예술에 대한 개념과 비슷하게 선이라는 개념과 미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 선은 사물의 형식을 고려하지 않고 사물의 내용만을 고려하는 것이 가능한 반면, 미는 엄격하게 말해서 사물의 내용과 형식의 통일 혹은 반영이 알맞은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위의 안연편 음악에 대한 공자의 말에서 ’소‘와 같은 3개월간 고기맛을 잊게 할 정도의 예술작품은 미와 선의 고도의 통일이라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정현(鄭玄)의 논어 해설을 보면 “’소(韶)‘는 순(舜)임금의 음악이다. 아름답다는 것은 순이 스스로 요(堯)임금에게서 선양받은 것을 말하고, 참으로 선하다는 것은 태평을 말한 것이다.”고 되어 있는데 도덕적 우월성이 아름다운 미학적 형식을 가지고 있음에 대해 공자가 평가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논어 팔일(八佾)]편에 ’회사후소(繪事後素)‘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그림을 그린 후에 흰 색을 칠한다는 뜻이다. 정현은 이에 주를 달아 말하기를 “회는 그림이다. 그림을 그릴 때는 먼저 여러 색깔을 칠한 후에 흰 색을 그사이에 칠하여 그림을 환성한다. 미녀가 고운 보조개와 아름다운 자질이 있더라도 예(禮)를 닦아서 그것을 이룬다는 비유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로 미루어보면 공자는 사람의 아름다움이 예를 닦아서 이룬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예에 부합되어야 선한 것이고, 예에 부합하는 선한 자질이 있어야 사람을 아름다운 사람이라 할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렇게 공자는 사람에 대한 미학적 평가에 있어 ‘선’을 앞세우고 ‘미’를 뒤로하는 절대적 원칙을 보여주고 있다. 공자의 자연미에 대한 관점도 이러한 원칙에 서있다. 공자는 자연물이 사람들에게 아름답다고 감상되는 까닭은 자연물 자체의 형상적 표현이 사람의 미덕과 서로 유사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설명이 가능한 이론으로 ’비덕(比德)‘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진 사람은 산과 덕이 비슷하기 때문에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관점은 공자의 주관적 판단이 아니고 선진시대 사람들의 자연미 감상에 있어 보편적 이론으로 보인다. 이러한 심미적 사실은 시경(詩經)에 많이 보이고 있다. 공자는 이러한 원칙 속에서 선왕 즉 요, 순, 문, 무, 주공의 도는 아름다워서 크고 작은 것들이 모두 이것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였다. 선왕시대의 예악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모든 것은 그것을 모범으로 삼고 준칙으로 삼아야 한다고 보았다. ‘예로 단속하는 것(約之以禮)’은 공자의 정치, 도덕사상의 중심내용이며 미학 사상의 중심 내용이라 볼 수 있다.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며 예, 문덕, 선은 모두 바로 이 ‘인’의 구체적 체현이고, 따라서 아름다움도 또한 인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논어 팔일]에서 사람으로서 어질지 않으면 악(樂)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말한다. [공자가어(孔子家語) 유행해(儒行解)]에서는 사람이 만일 인하지 않으면 ‘악’의 활동에 종사 할 수 없고 악의 아름다움, 즉 예술미를 창조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인이나 덕은 모두 하늘이 준 것이고 다시 성인과 군자에게 준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답고 착한 예와 악은 하늘이 낳은 인과 덕을 갖춘 성인과 군자가 창조한 것이다. 따라서 공자의 미학사상은 선험된 미학관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플라톤의 [이온(Ion)]에서 시의 본질적 요소로서 신적인 영감을 언급하는 대목 '시인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신 자신이다. ... 저 훌륭한 시들은 인간의 작품이 아니라 신들의 작품이며, 시인들은 단지 신들의 통역자에 불과하다.(Plato Ion 533 E - 534 E)'와 비슷한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3) 공자가 논한 '문'과 '질'
[논어 술이]에서 공자는 네 가지 측면에서 가르쳤는데 그것은 문(文), 행(行), 충(忠), 신(信) 이었다. 이 때 문(文)이란 무엇인지 살펴보면 [논어]에서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첫째, [논어 팔일]에서는 ‘주나라는 하, 은 두 왕조를 거울삼았으니 빛나는 도다. 그 문(文)이여 나는 주를 따르리라’는 언급으로 보아 서주의 문화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주의 모든 문물, 법률, 제도를 포함하여 ‘시, 서, 예, 악’등의 종류가 바로 그것이다. 둘째, [논어 공야장]에서 자공이 공문자는 왜 시호를 문이라고 하였습니까? 라는 물음에 대해 공자가 답하기를 ‘민첩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文)이라고 한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문(文)은 인간들이 요구하는 지식과 학문이라는 지금의 보편적 상식과 유사하다. 셋째, ‘질(質)이 문(文)을 이기면 투박하고 문(文)이 질(質)을 이기면 호화로우니, 문(文)과 질(質)이 잘 어울린 이후에야 군자이다.’라는 [논어 옹야]편의 문장에서 문은 사물의 ‘질’을 표현하는 양식으로 보인다. 즉 문은 사물의 형식이고 질은 사물의 내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리고 문과 질이 어울린다는 표현은 형식과 내용이 화해로 융합되어 도달한 것이 가장 이상적이며 그렇지 않으면 비루하고 거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종합하자면 공자의 ‘문’은 구체적으로 서주 문화(시, 서, 예, 악 등)를 지칭하고 일반적으로는 모든 지식, 학문을 의미하고 사물의 표현양식으로 보기도 하는데 모든 문화 예술을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공자는 추상적인 문과 질, 형식과 내용의 관계를 논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주장의 핵심은 서주사회의 정치, 법률, 제도와 도덕을 회복하는 복례(復禮)의 관점에서 문과 질이 어울리는 상태의 지향을 의미하고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공자는 복례를 실현하는 원칙과 방법으로 ‘질’을 앞으로 하고 ‘문’을 뒤로 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해 ‘선’을 앞으로 하고 ‘미’를 뒤로 하는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4)공자가 논한 ‘시’ ‘예’ ‘악’
공자의 시대에 악(樂)이라는 개념은 예술의 유형으로서 음악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시, 노래, 춤 등을 모두 총칭하는 것이다.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시’ 삼백 편을 공자께서 모두 거문고로 연주해보고 노래해 보며 ‘소’, ‘무’, ‘아’, ‘송’ 의 음에 맞도록 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다. ‘음악’이라는 말은 [여씨춘추]에서 가장 먼저 나타는데, [중하기(仲夏紀)]에 ‘음악의 유래는 매우 멀다. 도량형에서 생겨났고 태일(太一)에 근본하고 있다.’고 하였다. [논어]에는 음악이라는 말이 없고 ‘악’이라는 개념만 있다. 하지만 ‘시에 흥하고 예에 서고 악에서 이룬다.[논어 태백]에서 보듯이 시와 악을 구별하고 있다. 이 때 시로 흥한다는 흥은 일어난다는 것으로 몸을 닦는 데는 반드시 시를 배우는 것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아가 [논어정의]에서 ’시를 배운 이후에 예를 배우고 이어서 악을 배운다. 시는 악장인데 악은 예에 따라 행하는 것이니, 예가 선 이후에 악을 쓸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 것으로 보아 공자가 사람에게 정치사상 교육을 하는 관점에서 시와 악을 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시에 공자의 교육사상 가운데는 ‘시’, ‘예’, ‘악’이 삼위일체가 되어 있지만, ‘예’가 중심이 되고 우선이 되기 때문에 ‘시’와‘악’은 거기에 종속되고 그 다음이 되는 것이다. ‘예’에 합치하지 않는 ‘악’은 들으면 안 되기 때문에 악은 예에 종속되고, 예에 합하지 않는 시는 말하면 안 되기 때문에 시도 예에 종속된다고 볼 수 있다. [논어 양화]에서 공자 말하기를 ‘시는 그것을 가지고 흥기할 수 있고, 살필 수 있고, 무리를 지을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다. 가까이는 아버지를 섬기고 멀리는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을 많이 알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자는 먼저 시의 정치 사회 교육적 의의를 설명하고, 다른 한편으로 시 자체의 예술적 특성과 결과를 이야기 하고 있다. ‘시로 살핀다’는 뜻은 자신이나 가족, 이웃의 삶과 생활을 지켜보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거나 자연에 비유하는 것이고 ‘시로 원망 한다’는 뜻은 윗사람의 정치를 원망하고 비방한다는 뜻으로 좋지 못한 정치를 비판하는 풍자의 역할을 한다는 뜻이 있다. 원망은 일종의 감정이나 정서이고 시가 이러한 감정과 정서를 전달하는 예술의 한 분야임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는 ‘예’에 종속되어 있고 정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논어 자로]에서 ‘시 삼백편을 암송하면서 그것을 정치에 적용하여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가서 홀로 대응하지 못하면 비록 많이 외우더라도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공자에게 시를 배운다는 것은 정치에 잘 응용하는 것인데 그렇지 못하다면 의미가 없다고 본 것이다.
5) 결론
공자의 미학사상은 ‘예로 단속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으로 시, 악, 문학 등의 예술은 모두 ‘예’에 종속되고 ‘예’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다. 공자는 미와 선, 문과 질, 덕과 악이 반드시 융화되고 통일되어야 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미학의 평가에 있어서는 ‘선’을 기준으로 하고 ‘미’를 그 뒤로 하며, ‘질’을 앞세우고 ‘문’을 뒤로 하여 ‘예’가 우선이 되고 ‘악’은 그 다음으로 예에 종속된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사회와 분리된 순수한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공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사상이다. 인간 그리고 사회와 분리된 사물 자체의 미를 개념화 하고 분석하는 미학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자의 사상은 분석대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다만 공자의 미학관점이 복례에 집중된 점은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일정한 편향을 가지는 오류에 빠질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시 삼백수를 연주하고 노래하는 등의 예를 세우는 악의 실천 활동에 대해 전쟁과 혼란의 시대 한가운데에서 묵자의 ‘노예지배계층의 향락’이라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공자에게 피지배계층의 시와 음악 그리고 춤 등은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공자의 미학사상은 정확한 시대적 판단인지 아닌지는 불문하고 서주시대 이전의 지배계층의 정치사회제도로의 복귀를 통한 당시의 혼란을 극복하고자 했던 정치사상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 미학사상으로 한계 지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자의 이러한 미와 선, 문과 질, 예와 악 그리고 시 등의 미학 개념과 범주에 대한 언급은 중국의 미학사상, 유가의 미학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미학사 - 먼로C.비어슬리, 이론과실천, 1987
중국의 미학사상 - 시창동(중국 복단대학 교수), 연암출판사, 1994
미학의 기본 개념사 - 타타르키비츠, 미술문화, 1999
先秦儒家의 美學思想 硏究(선진유가의 미학사상 연구) - 심현섭, 2006
시경 - 조두현, 혜원출판사, 1988
군자(君子)의 의미
《논어》에서 군자는 단순한 귀족이나 지배층을 뜻하지 않습니다. 공자가 말한 군자는 도덕적 이상인 인간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도덕적 수양: 군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 성인(聖人)에 가까워지려는 존재
인(仁)과 의(義): 군자는 인(仁)을 떠나지 않고, 의(義)를 기준으로 행동함
예(禮)와 조화: 군자는 예를 지키며, 화합하되 무분별하게 동조하지 않음(화이부동, 和而不同)
소인(小人)과 대비: 군자는 덕을 추구하지만, 소인은 이익만을 추구함
포괄적 인격: 군자는 특정 기능만 가진 ‘그릇(器)’이 아니라,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춘 인격체
不及亂(불급란)의 해석
不(아니 불): 하지 않는다, 금지.
及(미칠 급): ~에 이르다, 도달하다.
亂(어지러울 란): 질서가 무너진 상태, 이성을 잃은 혼란. 따라서 不及亂은 “혼란에까지는 이르지 않는다”라는 뜻으로, 술을 마시더라도 예의와 절제를 지켜 이성을 잃지 말라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논어 속 위치
이 구절은 논어》 향당편(鄕黨篇)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향당편은 공자의 생활 태도와 예절을 다룬 부분으로, 공자가 술을 대하는 태도 역시 절제와 예의의 맥락에서 설명됩니다.
서론: 성인의 음주관
춘추시대 노나라의 성인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명이다. 그의 사상이 집약된 《논어(論語)》는 동아시아 문명의 근간을 이루는 경전으로, 2500여 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지침이 되어왔다. 흥미롭게도 이 위대한 성인은 술을 완전히 금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술은 마시되 취하지 말라(飮酒不及亂)"는 명제를 통해 절제와 예의의 음주문화를 제시했다.
공자의 음주관은 단순한 개인적 취향을 넘어서 유교적 세계관의 핵심인 '예(禮)'와 '중용(中庸)'의 철학을 담고 있다. 그에게 술은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예의를 실천하는 매개체였지만, 동시에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을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이기도 했다. 이러한 이중성에 대한 공자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를 제공한다.
중국 고대의 술과 사회적 맥락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중국 역사상 정치적으로는 혼란했지만 문화적으로는 매우 풍성했던 시기였다. 이 시대의 술은 주로 곡물을 발효시켜 만든 탁주 형태였으며, 제례와 연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주례(酒禮)'라는 독특한 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는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례적 성격을 띠었음을 의미한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었다. 조상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술은 필수적인 공물이었고, 손님을 맞이하는 예의에서도 술은 빠질 수 없는 요소였다. 또한 정치적 회합이나 외교적 만남에서도 술은 관계를 원활하게 하는 윤활유 역할을 했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에서 공자의 음주관을 이해해야 한다.
시경(詩經)》에는 "술로써 손님을 대접하고, 술로써 어른을 공경한다"는 구절이 있듯이, 술은 사회적 예의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도 존재했다. 《서경(書經)》에는 은나라가 멸망한 원인 중 하나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향락을 지적하고 있어, 술의 양면성에 대한 인식이 이미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주지(酒池): 술이 가득한 연못
육림(肉林): 고기가 가득한 숲
이 표현은 사치스럽고 방탕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즉, 술과 고기가 넘쳐나는 풍경을 통해 쾌락과 향락에 빠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생활은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논어》속 음주 관련 기록들
《논어》에서 술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구절은 향당편(鄕黨篇)의 "飮酒不及亂(음주불급란)"이다. 이는 "술은 마시되 취해서 어지러워지는 정도에까지는 이르지 말라"는 의미로, 공자의 음주철학을 가장 간명하게 표현한 문장이다. 여기서 '란(亂)'은 단순히 취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잃고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같은 편에서 공자는 "沽酒市脯不食(고 주시포불식)"이라 하여, "시장에서 사 온 술과 포(脯)는 먹지 않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공자가 술의 품질과 출처를 중시했음을 보여준다. 당시에는 술의 제조 과정에서 위생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었고, 공자는 이를 경계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주(沽酒): 술을 사는 것
시포(市脯): 육포를 파는 것
불식(不食): 먹지 않다
이 표현은 술을 사고 육포를 사지만, 실제로는 먹지 않는다는 의미로, 주로 소비의 허무함이나 의미 없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나타냅니다. 즉, 어떤 것을 사거나 소비하는 행위가 실질적인 만족이나 가치가 없음을 강조합니다.
팔일편(八佾篇)에서는 제사에서의 술 사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祭如在(제여재)"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는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이 실제로 그 자리에 계신 것처럼 정성을 다해야 한다고 보았고, 이때 술은 신성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했다.
유교적 음주 예절의 핵심 원리
공자의 음주관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절제(節制)'이다. 이는 유교 사상의 핵심인 중용(中庸) 사상과 직결된다. 중용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절한 상태를 의미하며, 음주에 있어서도 이 원리가 적용된다.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것도, 과도하게 마시는 것도 모두 중용에서 벗어난 것으로 본 것이다.
두 번째 원리는 '예의(禮儀)'이다. 공자에게 술은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하고 예의를 실천하는 도구였다. 손님을 맞이할 때, 어른을 공경할 때, 동료와 교류할 때 술은 마음을 표현하는 매개체였다. 하지만 이러한 술자리에서도 반드시 예의를 지켜야 했다. 술에 취해 무례한 행동을 하거나 말실수를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었다.
세 번째 원리는 '시의적절함(時宜適切)'이다. 공자는 모든 행동에는 적절한 때와 장소가 있다고 보았다. 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사나 연회 같은 적절한 상황에서는 술을 마시는 것이 오히려 예의에 맞았지만, 업무 중이나 학문을 논할 때는 술을 삼가야 했다.
네 번째 원리는 '자기 수양(自己修養)'이다. 공자는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술은 이러한 수양에 방해가 될 수도, 도움이 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적절히 마시면 긴장을 풀고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과도하게 마시면 이성을 잃고 수양에 해가 된다.
"술은 마시되 취하지 말라"의 현대적 의미
공자의 "음주불급란(飮酒不及亂)"은 단순한 음주 지침을 넘어서 인생의 지혜를 담고 있다. 여기서 '란(亂)'은 질서의 파괴, 이성의 상실, 도덕적 타락을 의미한다. 즉, 술을 마시더라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며, 도덕적 기준을 유지하라는 뜻이다.
저는 '란(亂)'을 술에 취해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몸은 좌충우돌하는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현대 사회에서 이 원리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알코올 중독, 음주운전, 폭력 등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이 심각한 상황에서, 공자의 절제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 해답을 제시한다. 술을 완전히 금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선을 지키며 마시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이다.
또한 현대의 직장 문화에서도 이 원리는 중요하다. 회식이나 접대 문화에서 술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과도한 음주 강요나 술자리에서의 무례한 행동은 점점 용납되지 않고 있다. 공자의 예의 중심적 음주관은 건전한 음주 문화를 만드는 데 좋은 지침이 될 수 있다.
동아시아 음주 문화에 미친 영향
공자의 음주관은 중국을 넘어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체의 음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전통적인 술자리 예절인 '잔 돌리기', '두 손으로 받기', '어른께 등을 돌리고 마시기' 등은 모두 유교적 예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의 사케 문화에서도 공자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전통적인 술자리에서는 자신의 잔에 직접 술을 따르지 않고 서로 따라주는 문화가 있는데, 이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예의를 중시하는 유교적 가치관의 반영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공자의 음주관이 더욱 체계화되고 정교해졌다. 《주례(酒禮)》나 《사례편람(四禮便覽)》 같은 예서들에는 술과 관련된 세밀한 예법들이 기록되어 있으며, 이는 모두 공자의 기본 원리에서 출발한 것이다.
결론: 예의 술, 영원한 지혜
공자의 음주관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지혜를 제공한다. 그의 "술은 마시되 취하지 말라"는 원칙은 단순한 음주 지침이 아니라, 절제와 예의, 중용과 조화를 추구하는 인생철학의 구현이다.
현대 사회에서 술로 인한 문제들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공자의 예의 중심적 음주관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술을 무조건 금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절제와 예의를 통해 술의 긍정적 기능을 살리면서도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이다.
공자가 제시한 유교적 음주 예절은 개인의 수양뿐만 아니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서로를 배려하고 예의를 지키는 술자리 문화는 건전한 사회관계의 형성에 도움이 된다. 이는 공자가 추구했던 '예치(禮治)' 사회, 즉 예의와 도덕으로 다스려지는 사회의 이상과도 맞닿아 있다.
결국 공자의 예의 술은 단순히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 이어져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의 지혜를 통해 우리는 술과 인간, 개인과 사회, 절제와 자유 사이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1. 서론
공자의 사상과 그의 가르침은 시공을 달리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여전히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 글은 공자사상에서 어떠한 요소가 시간의 흐름을 자신의 역사로 간직하도록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전통을 형성하는 사상들을 인간의 삶 가운데에서 본질적인 요소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핵심에 밀접하게 다가가 있으며, 또한 그것을 일상적 삶의 한 가운데에로 적용시킬 수 있는 실천의 영역을 포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이론의 영역을 넘어서 사상이 지닌 실제적 의미를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공자의 사상에서 우리는 어떠한 측면을 삶의 본질에 다가가 인간의 다양한 요소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것으로서 생각할 수 있을까?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공자 사상에서 비중을 두는 요소는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할 것이지만, 필자는 인간들 사이의 삶에서 핵심적인 요소가 도덕적 감수성을 통해 가능한 윤리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공자의 사상을 도덕적 감수성으로 해석할 수 있는 측면을 <<논어>>에 등장하는 禮와 樂의 개념을 중심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한편, 공자의 예악관은 仁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기에 예와 악 그리고 인의 개념을 중심으로 도덕적 감수성의 측면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생각하기에 도덕적 감수성은 인간에 속한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을 벗어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도덕성을 지니지만, 이와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에서 도덕성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의 영역을 지니기 때문이다.
예와 악은 인간의 문화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들로, 인간의 문명은 이를 바탕으로 성립한다.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서의 활동을 기반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그러한 지점에서 출발해보고자 한다. 따라서 2장에서는 문화의 영역을 구성하는 것으로서, 우선 인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는 예악에 대해 논의할 것이다. 그런 다음 예 그리고 악의 개념에 대해서 생각해볼 것이다. 3장에서는 세속적인 혹은 인간의 삶에 결부되어 있는 문화의 영역과 대비되는 것으로서의 초월의 영역을 性, 道의 개념을 통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선은 악 그리고 성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에 대해서 논의를 이끌어낸 후, 도가 인과 연결되어 인간에 속한 것이 되는 영역에 초점을 둘 것이다. 인간에 속한, 그러나 인간을 벗어난 인의 차원은 도덕적 감수성의 가능성을 밝혀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간들 사이에서 인을 실현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예 와 악의 의미는 문화의 영역과 초월의 영역을 가로지르며 오늘날 우리 앞에 새로이 놓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논의하게 될 인, 예, 악, 성, 도의 개념은 공자의 사상에서 중요한 여러 요소 중 일부를 필자가 선택적으로 택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글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을 실현하는 가능성을 도덕적 감수성의 함양을 통한 인간관계의 실천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이 지니는 의의이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 가능한, 보편적 의미를 지니는 가치관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생각해 볼 기회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문화의 영역
2.1. 仁 그리고 禮樂
중국 고대시대에 예와 악은 토템가무와 주술의식이라는 종교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후 계급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예와 악이 지니는 의미는 지배계급의 통치수단으로 변화해갔다. 이것은 지배계급이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에서 도덕적 교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예와 악을 간주했기 때문이다. 유가의 예와 악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도덕적 교화의 효과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예악은 사회적 관습으로서의 문화를 구성하게 된다. 종교성을 탈각하고 사회 안에서의 질서를 위해 존립하게 된 예악은 이제 인간들 사이에서의 수직적 질서와 규범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문화 안에서 상징체계를 이루어 의미를 형성한다. 한편 예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때로 형식화되어 단순히 외재적 실천으로서 기능하는 것으로 반복되기도 한다.
주의 전례가 인문화의 길로 들어서 시간이 흐르면서 나타나는 현상은 종교성의 후퇴, 즉 세속화의 경향이다. 공자는 더 이상 종교적 영역 혹은 초월에 속한 영역을 더 이상 예악이 지니는 의미로 이해하지는 않는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예악의 종교적 그리고 제도적 성격에 ‘인간성의 구체적 실현 방법’으로서의 인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유가의 예악관에서 도드라지는 부분이다.
子曰, “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예는 해서 무엇하며,
사람이면서 인하지 않으면 악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인간성, 즉 ‘인’에 바탕 하지 않는 예와 악은 무의미하며, ‘인’은 예와 악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문물제도를 총칭하는 일차적인 의미로서의 예악이 도덕적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예악은 사회적 구속력을 지닐 수 있는 형식적 규범으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이 인간에 속한 세속의 영역에서 문화로서 사람들을 규제하고 위치시키는 사고방식의 체계이다.
인간성의 실현을 외재적 형식으로서의 의례 실천을 통해 이루어내는 예악의 영역은 이제 ‘인’에 기반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 여기에서 인이 지니는 의미는 인간다움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문화 활동을 통해 가능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예악을 통한 사회적 관습의 실천 속에서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예악을 통한 인간성의 구현이라는 인의 정신은 예 그리고 악의 개념을 따로 생각했을 때에는 어떠한 의미로 나타나게 되는지 살펴보자.
2.2 禮 그리고 樂
‘예’는 사회 질서 속에서 발휘되는 것으로 문화의 형식적인 절차의 일부로 간주할 수 있다. 따라서 질서와 계급적 차등의 원리를 이루는 것으로 예가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악은 문화에서 보다 내용적 측면을 담당하고 있다고 구분지어 볼 수 있다. 예는 문화에서 실천의 영역에 가깝지만 악은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표현하여 담아내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악은 사람의 모든 심정이 요구하는 것으로, 그것의 직접적인 감응력은 인간의 감수성의 측면에 맞닿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예 그리고 악을 분절지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문화체계가 엮어내고 있는 외재적인 차원의 형식성, 그리고 내재적 측면의 내용적 요소를 분리시켜 생각해본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의할 것은 후자의 경우, 악이 담아내고 있는 심리적 그리고 정신적 차원의 의욕들을 단순히 일회적이고 개인적인 의미의 정감적 차원으로 축소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악은 인의 정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은, 예악을 통하여 인간이 도덕적이고 심미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악’을 독립적으로 바라보는 지점에 있어서, 인격성에 기반 하는 음악이 지닐 수 있는 정신적인 측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子曰,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먼저 시를 배우고, 예로써 입신하고, 음악에서 완성할 것이다.”
위의 언급은 도덕을 순조롭게 실천하기 위해서 공자가 제시하고 있는 학문의 순서에 대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악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예의 귀결은 화를 얻는데 있고, 그 화로써 자신의 덕성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음악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학문의 완성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덕성을 닦는 것으로 이어지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성정의 중화를 실현하려는 의지에서 예악을 수단으로 삼는다는 것의 의미는 악을 통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음악에서 배움이 완성되어 총체적 인격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이다.
예 그리고 악에서는, 악의 개념에 보다 주의를 기울여 볼 때 문화의 외재적 차원에서 악이 인간의 정서에 감응할 수 있는 심리적 영역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인의 정신에 기반 하여 인격성을 구현하기 위한 악의 배움은 인간이 지닌 性에 감화를 준다. 이러한 의미 뿐 아니라, 위의 구절을 악을 특수한 영역으로 간주하기보다 보편적 영역에서 이해하려는 의지에서 생각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악을 예술의 특수한 장르로서 음악에 국한시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언급하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악을 통해 가능한 확장된 인식의 차원과 결부시켜 의미를 재해석해보고자 한다.
3. 초월의 영역
3.1. 樂 그리고 性
우리는 일상적 삶의 영역에서는 음악이라는 것은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일상적 의식의 차원과는 다른 심리적 상태로서 음악 속에 있는 경험의 차원을 묘사하는 것이다. 공자에게 음악은 인간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며, 화합을 존중하는 것이므로 두 가지 사물을 합하는 힘이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악을 통해서 성정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상태로 이완되어 자아를 벗어나 조화를 이루는 원리로서 기능하게 된다. 그리고 자아를 벗어난다는 것을 자신을 초월하는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음악을 통해 가능한 감수성의 영역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공자는 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음악을 통해 연결되어 화합할 수 있는 성에 대해 공자는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사람의 본성은 서로 가까운 것이지만, 습성이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공자의 사상에서 최상위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성이나 도는 ‘하나의 공통된 세계’이거나 ‘객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위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공자는 성은 습성과 근접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관념적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 필자는 이것을 확장시켜 다음과 같이 해석해보고자 한다. 즉, 성은 고정된 특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며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망들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연결망들은 인간에 속한 것이지만, 인간을 벗어나 있는 것이다. 본성이 서로 가깝다는 것은 악을 통해 누그러진 마음의 상태에서는 서로 합할 수 있는 성의 본질의 상태로 나아가 보다 근접한 위치에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통한 의식의 상태에서, 인간의 성은 일상적 인간의 상태를 벗어나 초월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초월은 인간의 의식 이면으로 침잠한다는 의미에서의 초월이다. 그리고 악을 통해 사람들의 본성은 서로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며, 이 지점에서 자아를 넘어서는 감수성의 영역이 가능하다. 그러나 본성들이 가까이 있는 상태 자체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인에 기반 하는 악을 통해 가까워진 상태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본성 자체가 가까이 있는 성정의 상태에서는 도덕성을 향할 수도, 혹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인성이 서로 비슷하다.’라고 해석하면 그것은 개인 그리고 개인의 인성의 근본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힌다. 하지만 ‘본성이 서로 가깝다.’라고 해석하는 것은 타자에 대한 인식 지점을 남겨둔다. 그리고 필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인간들 사이에 관한 도덕적 감수성이다. 인간들의 본성이 서로 가까운 상태에서 도덕성을 향할 수 있는 성정 상태가 가능하려면, 인간화된 의미에서의 道를 요청하게 된다.
3.2. 道 그리고 仁
공자의 사상에서 보이는 도에 대한 관념은 일차적으로는 만물의 근원으로서 인간을 초탈하는 근본적인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만물은 도에 의지하여 존재하고 궁극적으로는 도에 귀속되는 것으로 도의 궁극적인 측면을 해석하게 된다. 그러나 이 글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도는 인간 중심적으로 사유되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를 통해 종교적인 차원으로 다시 나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한계 안에서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인간들이 지닌 가능성을 인과의 관계에서 모색해보고자 한다.
子曰, "人能弘道 非道弘人."
"사람이 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도가 인간의 사고나 행위로부터 분리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한 인위적인 것에 크게 의지해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인위적인 것이란 인간에 속한 것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관련되는 의미에서 도를 해석한다는 것은, 후천적인 요소를 통해 인간과 도의 관계를 상정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독해되는 도의 의미는 주관적 원리로서의 도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내적 도덕성의 실천을 통해서 그 실현이 가능하다 고 생각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악을 배움으로써 도달 할 수 있는 내적 도덕성을 통해, 성정이 근접해진 상태에서 도덕적 감수성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필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초월의 상태이다. 그리고 도에 있어서 후천적인 습성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인에 기반 하는 학문이 지니는 중요성을 다시금 이야기하는 것이다. 배움을 통해 도덕성에 대한 의식이 가능하며, 학문을 통해 도덕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시, 예 그리고 악을 차례대로 배우는 것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공자의 이상이었던 인이란 인간의 덕성 그대로가 발현되는 것으로서 마음의 덕성을 함양하여 천지의 중화에 이르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예 그리고 악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것과 같이, 예악을 배운다는 것은 심정적인 토대에 기반 하여 도덕적 주체성의 영역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와 악이 기반하고 있는 토대는 언제나 仁이다.
4. 윤리의 영역
4.1. 仁 그리고 도덕적 감수성
앞서서 인을 설명하면서, 인은 인간다움 또는 인격성의 원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언급했었다. 그렇다면, 보다 심정적인 근거에서 인이 의미하는 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이 중요한 까닭은, 인의 정신을 기반으로 한 악의 배움이 도덕적 감수성을 가능하게 한다는 측면에 있다. 악을 통해 인간들 사이가 화합을 이루어 성정이 보다 연결된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악에 깃들어 있는 인의 정신이 인간들이 함양하게 되는 도덕적 감수성과 잇닿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번지가 인에 대하여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로하시 데츠지는 공자에게 인은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는 것인데, 이것을 동정심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것을 공감할 수 있는 심의능력으로서 도덕적 감수성이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정서적인 상태에서 심정의 한 측면으로 인이 해석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그리고 심미적 감수성의 영역을 포괄하는 성정의 차원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앞서 예악이 인간의 순화된 감정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언급했었다. 그리고 인간의 순화된 감정은 도덕적 감수성 그리고 예술적 감수성이 덕성의 습득과 실천을 위해 존재하게 되는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자사상의 특징을 순수정감에다 윤리적 바탕을 둔 데에서 찾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인의 정신을 기반으로 하는 도덕적 감수성은 온전한 덕성으로 나아가 선의 영역, 윤리의 영역을 구현하도록 한다. 허버트 핑가레트는 공자가 이상화한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의 행위가 자연의 맥락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동시에 성스러움과도 조화될 수 있는 그러한 삶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데, 이러한 이상적 가치는 예의 행위 속에서 조화를 이루게 되는 삶의 모습들 속에서 현실화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글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인에 기반 하는 인간들 사이의 도덕적 감수성이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또한 ‘초월적’ 의미의 도의 차원에서 예 그리고 악을 통해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로 연결시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4.2. 仁 그리고 禮樂
이와 같이 예악을 이해한다면, 일차적으로 예악이 표방하였던 세속에서의 문화적 영역은 인간을 초월하는 영역에서 다시 인간에 속한 윤리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것은 도덕적 감수성에 대한 자각을 통해 도덕적 주체로서의 우리들에게 관계에서의 근접의 정도를 책임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인으로 매개되는 관계에서의 가까움이란 삶 속에서 정신적, 심리적 그리고 영적인 차원의 인식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나서는 실천의 망들을 감수성을 통한 공감으로 엮어 나간다. 사람들을 사랑한다는 인의 의미는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가치의 영역을 의욕의 상태로, 인간 내재적 차원에서 받아들일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인하게 되는 것이 자기에게 달려 있지, 남에게 달려 있겠는가?"
인은 인간의 내면적 세계로서 하나의 가능적 양태일 뿐 현실태는 아니다. 가능적 양태인 인이 현실 속에 표현될 때에는 가장 이상적인 절도와 꾸밈새를 그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것을 예악과의 관련성 속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예악은 앞서 일차적으로는 외재적 의미의 문화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내재적 차원에서 해석되는 예와 악은 도덕적 감수성의 영역에서 내면화 된 초월의 영역이 되었다. 세속의 영역을 구성하는 예에 대해 공자가 강제적 규정에서 자각적 생활이념으로 끌어올려 일종의 종교적, 신비적인 것을 인륜의 일상적인 것으로 변화시킴으로써, 윤리규범과 심리욕구를 일체화시켰다. 그리고 의례에 속한 것이라는 의미에서 종교적이었던 예는, 인간들 사이에서 초월적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克己復禮란 예악사상이 지닌 절제와 조화의 원리에 입각하여 자신이 도덕성을 지닌 존재임을 확인하여 도덕 주체를 확립하고 나아가 이를 타인에게로 확산시켜나가는 인의 실천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회복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면의 원리로서 삼는 것은 인위적인 의지의 과정으로는 성립하기 힘들다. 그것은 樂을 통해 다가가는 심미적 그리고 도덕적 감수성을 통해 실천의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예의 규범적 차원은 인간의 영적 차원과의 연결성 속에서 익자삼요의 첫 번째 즐거움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글은 유교 사상의 지속적인 영향력을 윤리의 가치관을 현실적인 차원에서 仁으로서 제시하는 것에서 생각해보고자 했다. 도덕질서 속에서 인간관계가 어떻게 화해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예의 세계와 악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 만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삶 속에서 본질적이고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측면에서 공자의 사상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仁이 구성하는 의미 속에서 엮어 나가도록 하는 세계관을 제시한다. 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시공 겹겹이 축적해가면서 말이다.
5. 결론
이 글은 공자의 사상이 지금까지 의미를 지닐 수 있는 근본이 되는 측면을 인을 기반으로 하는 윤리의 영역으로 생각해 보았다. 인간들의 이야기에서 현실의 삶과 유리되어 있는 사상은 역사에서 이내 배제된다. 그러나 공자의 사상은 그것의 힘과 영향력을 역사를 통하여 축적하고 전수해왔다. 필자는 공자의 사상적 가치를 인을 통해 가능한 도덕적 감수성의 영역에서 예악 개념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았다.
禮樂은 인간 사회를 이루는 외재적 측면에서의 문화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공자의 예악론에서는 예 그리고 악이 기반하고 있는 원리로서 仁이 지니는 중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인은 악의 배움을 통해 인간의 性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이것은 인본주의적 의미의 道를 실현하는 것으로 연결되어, 인간에게서의 심미적 〮도덕적 감수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을 초월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일상적 인식을 벗어나서 개별자로서의 인간을 초월하여 인간들 사이에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리고 도덕적 감수성을 지니는 도덕적 주체는 윤리적 책임을 심적 능력 안에서 인식한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인의 정신에 기반 하여 구성되는 윤리의 세계 혹은 도덕의 영역에서 예악은 내면화 되어야 한다. 仁하게 되는 것, 그리고 내재적 원칙으로서의 禮를 정서적으로 회복하기를 촉구하는 것은 유교의 영향력을 시공을 엮어 내는 문화권으로 연결 지어 간다.
참고문헌
.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