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書漢字源 ㅣ 김기덕 감독(金基悳監督)

 六書漢字源 ㅣ 김기덕 감독(金基悳監督)

글자풀이: 성 김() 터 기() 덕 덕() 볼 감() 살필 독(). 뜻풀이: 영화감독(映畵監督)은 영화(映畫)나 연극(演劇), 운동 경기(運動競技) 따위에서 일의 전체를 지휘(指揮)하며 실질적으로 책임(責任)을 맡은 사람. 출처: 네이버사전.

사진/ 네이버이미지

성 김()은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과 녹인 쇳덩이(와 두 개의 점()를 상형(象形)하였다. 본래는 주물(鑄物)하기 쉬운 청동(靑銅)을 의미(意味)하였지만 때에 따라 황금(黃金을 뜻한다. ()에 대해 "설문(說文)"에서는 “'()'은 다섯 가지 색()의 쇠()를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황금(黃金)을 으뜸으로 여긴다. ()은 땅속에 오래 묻어두어도 녹()이 생기지 않고, 백 번을 제련(製鍊)해도 감소(減少)하지 않으며 모양(模樣)을 바꾸어도 안 변()한다. 서쪽을 나타내는 오행(五行)이다. ()에서 생()겨나므로 토()로 구성(構成)되었으며 거푸집의 좌우(左右)에서 붓을 때 쇠()가 흙속에 있는 모양(模樣)을 본떴다. ()은 소리요소가 된다.”고 하였다. ()은 갑골문(甲骨文)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金文)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과 녹인 쇳덩이(와 두 개의 점()를 상형(象形)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大部分) 소리요소(聲要素)인 금()의 생략형(省略形)에다 흙()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形成字)로 보는 경향(傾向)이 많은데 금문(金文)을 고려(考慮)하지 않은 탓이다. ()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時期)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先秦時代) 청동기문화(靑銅器文化)가 활발(活潑)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黃金)’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金屬)의 대표명사(代表名詞)가 된다.

터 기()의 구성(構成)은 그 기()와 흙 토()로 짜여 있다. ()는 벼나 알곡을 까부르는 키와 그것을 잡고 있는 두 손()을 본떠 만든 자형(字形)으로써 본래는 를 뜻하였으나 그것과 같은 지시대명사(指示代名詞)로 차용(借用)되자 별도로 키를 만드는 재료인 대 죽()을 더해 키 기()를 제작(制作)하였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意味)는 밥을 지을 때마다 키질()을 하는 곳이 바로 사람이 사는 터전()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덕 덕()의 구성(構成)은 마음 심()과 곧을 직()으로 이루어진 회의자(會意字)이다. 덕이란 곧은() 마음(), , 의지(意志)대로 행동(行動)할 수 있는 인격적 능력(人格的能力)이란 뜻이 된다. 원래의 글자는 마음()이 곧다()는 뜻의 덕 덕()이었으나, 곧은 마음을 따라 간다는 뜻으로 간다()가 추가(追加) 된다, 여기서 덕()은 크다, 은혜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다. 이 글자는 갈 행()의 왼쪽 부분과 크다는 뜻의 덕()이 합해 이루어져 있다. 또 덕()을 자세히 보면 곧을 직()아래에 마음 심()이 있다. 곧 곧은 마음이 덕()이다. 정직한 마음이 덕()입니다. 여기에 행할 행()이 붙으니 덕()은 곧은 마음을 행하다 라는 뜻이 된다. 자기의 마음속에 지니고 있는 정직한 마음을 밝혀 행하는 것이 덕()이라는 것ㅇ;. 사람의 마음속에는 등불과 같은 밝은 양심(良心)이 있다. 이를 행하는 것이 덕이라는 말이다. 도덕(道德)은 개인적인 문제로 각 사람의 인격 형성(人格形成)과 관련이 깊다. 자연적(自然的)으로 사회 환경의 영향(影響)을 받게 마련이다. 그 사회 구성원(構成員)의 수준이 도덕을 세우는 기준(基準)이 될 수도 있다.

볼 감()자는 사람()이 눈()으로 그릇() 속의 물을 거울처럼 비추어 보는 모습(模襲)에서 '거울'이라는 뜻으로 만든 글자다. 글자에 들어 있는 한 일()자는 거울에 비친 그림자를 표현(表現)하는 것으로 추측(推測)된다. 이후, '거울, 보다, 살피다(백성을 살펴보는), 관청(官廳)'이란 뜻이 생(), 원래(原來)의 뜻을 살리기 위해 쇠 금()자가 추가(追加)되어 거울 감()자가 되었다. 옛날에는 금속면(金屬面)을 매끈하게 갈아서 거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감()은 신하 신()과 사람 인(), 그리고 한 일()과 그릇 명()으로 구성(構成)되었다고 한다. ()에 대해 허신(許愼)"설문(說文)"에서 ()은 끌고 간다는 뜻이다. 군왕(君王)을 섬기는 사람으로 몸을 굽혀 복종(服從)하는 모습(模襲)을 본떴다.”라고 한다. 그러나 갑골문(甲骨文) 등에서는 부릅뜬 눈을 본뜬 글자로 그려진다. 즉 노예(奴隸)로 붙잡혀 온 사람의 툭 튀어나온 눈을 그렸다. 따라서 고대(古代)에는 왕()의 노예(奴隸)가 주로 수발(伺候)을 들었으니 후에는 신하(臣下)로까지 그 의미(意味)가 발전(發展)한 것으로 본다. ()은 서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것이며, 여기서 일()은 물을 담은 그릇에 어리비치는 모양(模樣)을 나타낸다. ()은 음식이나 뭔가를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이다. 그래서 감()의 의미(意味)는 사람()이 물을 담은 대야()와 같은 용기()에 어리비치()는 자신(自身)의 얼굴을 굽어본다()는 뜻이 담겨 보다’ ‘살피다’ ‘거울등의 의미(意味)로 쓰인다.

살필 독()의 구성(構成)은 눈 목()과 아재지 숙()으로 이루어졌다. 즉 눈으로 이 곳 저곳을 살피는 동작을 표현(表現)한 글자이다. 눈 목()은 눈 속에 눈동자가 있는 형상(形象)90도 회전(回轉)한 모습이다. 하지만 90도 회전하지 않는 그물 망()자가 눈 목()자의 변형자로 사용(使用)된다. 덕 덕(), 꿈 몽(), 둥근 옥 환(), 엿볼 역(), 해바라기 벌레 촉() 자 등에 쓰인 망()은 그물과는 상관없고, 모두 눈 목()자를 90도 돌려놓은 글자이다. 감독(監督), 독려(督勵), 독촉(督促)과 같은 어휘에서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의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나 함대(艦隊)의 총사령관(總司令官)을 의미하는 제독(提督)’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요약: 김기덕(金基悳) 영화(映畵)가 불편(不便)한 진짜 이유(理由), 그 사람이 정말 황금사자상(黃金獅子賞)을 받을 만한 감독(監督)이에요 ?

낭보: 베네치아(威尼斯)에서 들려온 낭보(朗報)에 대한 주변 지인들의 반응(反應)이다. 처음엔 문화부에 오래 근무(勤務)했고 영화 담당 기자도 해 봤으니 뭘 좀 알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던지는 질문(質問)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순진하게 답했다.

그럼요, 김기덕(金基悳) 감독이야말로 세계 3대 영화제 대상을 수상할 가장 유력한 한국 감독이었어요. 3대 영화제에서 외국 영화기자들에게 한국 영화감독 중 누구의 영화를 좋아하느냐 물으면 십중팔구는 김기덕(金基悳)이에요.

그러면 수긍(首肯)할까. 천만의 말씀. “그래요?”글쎄요하고 말끝을 흐리면 다행이다. 정색하고 그게 아니라 정말 김기덕(金基悳) 영화가 그렇게 작품성(作品性)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이들도 있다.

이쯤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애당초 그들은 정답을 요구한 게 아니었음을. 그들의 질문은 베니스의 선택을 무조건(無條件) 반길 수만도 없고 그렇다고 대놓고 불편(不便)함을 표현할 수도 없는 복잡한 심경(心境)의 표출(表出)이란 것을.

그에 대한 외교적 응대는 그 사람 영화가 좀 세긴 하죠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김기덕(金基悳) 영화 하면 떠오르는 날것의 이미지를 혐오(嫌惡)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던가. 타인의 취향(趣向)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국영화: 하지만 한국영화(韓國映畵) 최초의 세계 3대 영화제 대상 수상을 취향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될까. 어떤 이들은 이런 딜레마(进退两难)수상작(受賞作)피에타가 과거 영화에 비해 원숙해지고 대중적으로 바뀌었다라는 식으로 돌파하려 한다. 구차한 핑계다. 원숙함으로 치자면 미국에서 개봉한 한국영화 중 디 워이전까지 최고의 흥행성적(興行性的)을 올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있다. 대중친화성(大衆親和性) 면에선 빈집과 그가 각본(脚本)을 쓰고 제작한 영화는 영화다가 있다.

피에타(皮耶塔)는 오히려 전형적인 김기덕(金基悳) 영화다(흥미롭게도 피에타는 그의 ‘18째 영화다). 벌거벗은 폭력(暴力)과 근친상간(近親相姦)의 경계를 넘나드는 성의 묘사(描寫)엔 여전히 비린내가 진동한다. 자신이 직접 출연한 전작 아리랑(阿里郎)’에서 김기덕(金基悳)내 영화의 본질은 가학과 피학 그리고 자학의 삼각관계(三角關係)에 있다라고 말했다.

피에타: 피에타는 이를 명징(明徵)하게 구현한다. 채무자(債務者)들에게 끔찍한 폭력을 휘두르는 강도(이정진)가 가학(加虐)의 왕자라면 복수(復讎)를 위해 엄청난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감내(堪耐)하는 엄마’(조민수)는 피학(被虐)의 여왕이다. 두 사람의 핏빛 왈츠는 자학(自虐)을 통한 구원으로 귀결(歸結)된다.

영화예술(映畵藝術)은 본질적으로 훔쳐보기의 욕망에 기초한다. 비가시적(非可視的)인 것을 어떻게든 가시화하려 한다는 소리다. 그래서 금기(禁忌)의 영역인 에로스()와 타나토스(죽음)의 세계를 탐미적(耽美的)으로 시각화하려 한다. 하지만 이를 적나라(赤裸裸)하게 노출하면 관객이 거부감(拒否感)을 일으키기 때문에 유려한 영상이니 절제(節制)된 연출이니 하는 당의(糖衣)를 입힌다.

김기덕(金基悳) 영화의 진가(眞假)는 그런 위장(僞裝), 포장(包裝), 화장(化粧)을 거부하고 날것그대로의 영화미학(映畫美學)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데 있다.

그를 통해 거꾸로 이 세계가 가학적(加虐的)인 성과 폭력에 얼마나 물들어 있는지, 우리가 그것들에 얼마나 무감각(無感覺)한지를 폭로한다. 또한 그로 인해 초래(招來)되는 비극을 치유(治癒)하고 용서하는 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드러낸다.

김기덕(金基悳) 영화의 불편함은 여기서 발원한다. 그것은 취향(趣向)이나 스타일(样范)의 문제가 아니다. 영화미학 본질(本質)의 문제다. 또한 그의 영화가 영화를 통해 위락(慰樂)을 얻으려는 대중과 그의 영화가 불화(不和)할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다.

사진/ 바이두이미지

평언: 벌거벗은 폭력(暴力)과 근친상간(近親相姦)의 경계(境界)를 넘나드는 의 묘사(描寫)엔 여전(如前)히 비린내가 진동(振動)한다. 영화(映畵)의 진가(眞假) 그런 위장(僞裝), 포장(包裝), 화장(化粧)을 거부(拒否)하고 날것그대로의 영화미학(映畵美學)을 극한(極限)까지 밀어붙이는 데 있다. /참고: 여시아문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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