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書漢字源 ㅣ 교훈(敎訓)과 교훈(校訓)의 의미

 六書漢字源 ㅣ 교훈(敎訓)과 교훈(校訓)의 의미

글자풀이: 가르칠 교() 가르칠 훈() 학교 교() 가르칠 훈(). 뜻풀이: 교훈(敎訓)은 앞으로의 행동(行動)이나 생활(生活)에 지침(指針)이 될 만한 것을 가르침()이고, 교훈(校訓)은 학교(學校)의 이념(理念)이나 목표(目標)를 간명(簡明)하게 나타낸 표어(標語). 출처: 네이버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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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칠 교()의 구성은 효 ()와 아들 자() 그리고 칠 복()으로 짜여 있다. ()자는 갑골에 새겨진 자형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해오고 있는 글자중의 하나이다. 먼저 살펴볼 ()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는 교차한다는 뜻이다. () 六爻(육효)의 앞머리가 교차하는 것을 본떴다.”고 하였다. 고문의 그림에서는 점을 치거나 숫자를 셀 때 썼던 산가지가 흩어져 있는 모양이다. 따라서 자형에 (효가) 첨가되면 배울 학()이나 깨달을 각()에서처럼 가르침을 주는 교재의 뜻을 지니게 된다. 옛날에는 귀족 아이들을 중심으로 육예(六藝), (: 도덕), (: 음악), (: 활쏘기), (: 말타기), (: 서예), (: 산수)를 주요과목으로 가르쳤다. ()는 두 팔을 벌린 어린아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의 간략형으로 손()에 회초리나 몽둥이()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 글월 ()’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인다. 따라서 ()의 전체적인 의미는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서 아이()에게 효도를 시작으로 세상의 이치()를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가르칠 훈()의 구성(構成)은 말씀 언()과 내 천()으로 짜여 있다. ()에 대해 허신(許愼)설문(說文)에서 직접 말하는 것을 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討論)하는 것을 어()라고 한다. ()로 구성(構成)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의 하부에서 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을 통해 마음속을 꼭 찌르듯이()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描寫)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樣式)을 나타내게 된다. ()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적인 하천(河川)을 말한다. 즉 자형의 가운데 ()’이 물줄기를 뜻하고 좌우는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제방(堤防)을 의미한다. 고대의 정책(政策)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곧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였듯이 제방을 쌓아 물이 범람(氾濫)하지 않도록 했음이 ()자에 담겨 있다. 따라서 훈()의 전체적인 의미는 냇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이치(理致)를 좇아 다정다감(多情多感)한 말()로써 가르치고, 타이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학교 교()의 구성은 나무 목()과 사귈 교()로 이루어졌다. ()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하늘과 땅의 기운을 소통시키는 매개체로서 나무를 신성이 여겼다. 이러한 숭배의식이 우리 문화 속에서는 당산나무로 남아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단군의 박달나무’, 공자의 은행나무, 부처의 보리수등을 들 수 있다. ()는 사람이 팔다리를 비비꼬며 춤추는 모양을 그려낸 상형글자다. 허신은 說文에서 는 다리를 교차한 모양이다. ()로 구성되었으며 다리를 교차한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역시 다리를 교차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며 소전도 역시 같다. 즉 머리()와 양 팔()을 흔들고 다리()를 꼬며 춤추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에 따라 서로 춤을 추며 사귀다’ ‘벗하다의 뜻이 생겨났다. 따라서 ()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성하게 여기는 나무()아래서 성인의 가르침을 받으며 또래의 벗들과 사귀는() 곳이라는 데서 학교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가르칠 훈()의 구성(構成)은 말씀 언()과 내 천()으로 짜여 있다. ()에 대해 허신(許愼)설문(說文)에서 직접 말하는 것을 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討論)하는 것을 어()라고 한다. ()로 구성(構成)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의 하부에서 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을 통해 마음속을 꼭 찌르듯이()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描寫)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樣式)을 나타내게 된다. ()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적인 하천(河川)을 말한다. 즉 자형의 가운데 ()’이 물줄기를 뜻하고 좌우는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제방(堤防)을 의미한다. 고대의 정책(政策)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곧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였듯이 제방을 쌓아 물이 범람(氾濫)하지 않도록 했음이 ()자에 담겨 있다. 따라서 훈()의 전체적인 의미는 냇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억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이치(理致)를 좇아 다정다감(多情多感)한 말()로써 가르치고, 타이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요약: 옛 어른들께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전해주신 뼈아픈 교훈(敎訓).

유민가외: 관직(官職)이나 큰일을 시작할 사람들에게 써 주신 글들 중에는 파사현정(破邪顯正)-불경(佛經))-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냄이 있다. 특히 관직(官職)에 오르는 사람에게 주는 당부의 말은 며칠 전 한양대 정민 교수(鄭珉敎授)가 신문에 쓰신 세설신어(世說新語)유민가외(唯民可畏)-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存在)는 백성이다.”가 제격이다. 그것에 다다르지 못한다면 과유불급(過猶不及)-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고, 물탄개과(勿憚改過)- 잘못을 고치기에 우물쭈물 대지 말고, 무위이치(無爲而治)-나서지 않아도 잘 다스리게 하라”-이상 논어(論語) 중에서. -는 어떨까?

천자문공부: 60여전 코흘리개 시절 우리 할아버님은 한살 아래인 재종(再從) 동생과 함께 천자문 공부(千字文工夫)하라고 한자 외우면 문갑(文匣)에서 박하사탕을 하나씩 꺼내서 주셨다. 사실 주전부리가 귀했던 시절이니 그 유혹(誘惑)을 쉽게 떨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죄스럽게도 사탕 맛으로 배운 것이니 별 기억(記憶)은 없지만 그중에도 아직도 내 머리 속에 각인(刻印)된 것은 무슨 글자인지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으나 획수(劃數)에 따라 한자를 쓰시면서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 짓을 해야지 사람이지” (6-7획수?) 하신 말씀 밖에 없다. 또 가장 욕된 말 본데(根本)없는 놈이란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모진욕설: 이 세상에 모진 욕()이 많지만(빌어먹을, 망할 것, 벼락 맞을 등등) 왜 하필이면 본 데 없는을 찍어 말씀 하셨을까? 살아가다 보니 그 말씀이 왜 가장 욕된 말인지 크게 다가온다.

요즘 소위 그들만의 리그(league)“ 에 빠져 허우적대는 일부
원칙(原則) 없는 정치(政治) (Politics Without Principles)
노동(勞動) 없는 부() (Wealth Without Work)
양심(良心) 없는 쾌락(快樂) (Pleasure Without Conscience)
인격(人格) 없는 교육(敎育) (Knowledge Without Character)
도덕(道德) 없는 상업(商業) (Commerce Without Morality)
인간성(人間性) 없는 과학(科學) (Science Without Humanity)
희생(犧牲)없는 종교(宗敎) (Worship Without Sacrifice)
(“7가지 사회악”(1925)- 간디)

간디옹절규: 민망(憫惘)함을 넘어 분노(憤怒)를 불러일으키는 작태(作態)와 폐해(弊害)를 보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우리 역사는 적어도 간디 옹(甘地翁)께서 절규(絶叫)했던 1세기 전보다도 퇴보(退步)하고 있나? 뼈아픈 지적을 고스란히 재현(再現)하고 있나? 안타깝지만 지금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대통령(大統領)부터도 소위 본데(根本)가 그것 밖에 안 되나 싶다. 구중심처(九重深處)에서 백성의 삶의 벌거벗은 모습(나상(裸像)을 보신 적이 없으니 공()과 사() 구분이 안 되는 것일까. 교류(交流)가 제한된 환경에서 성장했으니 인사 난맥(人事亂脈)을 보여 주었나 등 별 생각이 나면서, 위에 써 놓은 한자성어(漢字成語) 어느 하나에도 해당사항이 없나보다. 자괴감(自愧感)이 이처럼 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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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언: 대통령(大統領)뿐만 아니다. 정치(政治), 노동(勞動), 사회(社會), 교육(敎育), 경제(經濟), 과학(科學), 종교(宗敎)에 이르기까지 성한 곳이라고는 없이, 너무나 본데가 없는 사람이 많나 보다. 가슴이 없는 머리가 무슨 의미(意味)가 있으며 그 폐해(弊害)가 너무 심각(深刻)하다. 최근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의 범죄(犯罪)를 보면 본데가 없고, 가슴이 없으니 무엇이 잘 못인지조차도 인지(認知)하지 못하는 언행(言行)을 태연(泰然)히 저지르는 것 같다. 열심(熱心)히 살아가고 있는 정직(正直)한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자신부터도 부끄럽지 않은지 자꾸 되돌아본다. 참고: 조선닷컴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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