六書漢字源 ㅣ 서민(庶民)과 인민(人民)의 뜻 차이
◑글자풀이: 여러 서(庶) 백성 민(民) 사람 인(人) 백성 민(民). ◑뜻풀이: 서민(庶民)은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身分的) 특권(特權)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또는 경제적(經濟的)으로 중류(中流)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生活)을 하는 사람이고, 인민(人民)은 국가(國家)나 사회(社會)를 구성(構成)하고 있는 사람들. 대체로 지배자(支配者)에 대한 피지배자(被支配者)를 이르는 말. ◐출처: 네이버사전.
무리 서(庶)의 구성(構成)은 집 엄(广)과 스물 입(卄) 그리고 불 화(灬)로 짜여 있다. 엄(广)은 한쪽 벽면이 트인 우마차를 보관(保管)하는 창고(庫)나 관공서(廳)와 같은 건물(建物)을 뜻한다. 입(卄)은 열 십(十) 두 개가 겹친 것으로 스물을 뜻한다. 화(灬)는 불 화(火)와 같은 뜻으로 주로 자형의 하부에 놓이며 모닥불이란 뜻을 지닌다. 여러 서(庶)자는 정확한 의미(意味)를 알 수 없는 글자다. 상형문자(象形文字)를 보면 언덕(广) 아래에 솥(口)이 있고, 솥 아래에 불(灬)이 있는 모습으로, 음식물(飮食物)을 삶고 있는 모습으로 추측(推測)한다. 또 다른 해석(解釋)은 돌 석(石=厂+口)자 아래에 불 화(灬)자가 있는 모습으로 보고, 돌로 굽는 요리법(料理法)으로 추측한다. 어쨌든 음식이나 요리(料理)와 관련(關聯)되는 글로 추측된다. 이후, '(음식을 먹어) 살찌다, 넉넉하다, 많다, 무리, 여러' 등의 뜻이 생겼다. 서민(庶民)은 '여러(庶) 백성(民)'이란 뜻으로, 보통(普通)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그 의미(意味)는 한쪽 벽면이 트인 건물(广) 안에 따뜻한 모닥불(灬)을 피우고 많은 사람(卄)들이 불을 쬐고 있는 모습(模襲)을 본떠 ‘무리’나 ‘여러 사람’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백성 민(民)은 상형글자(象形字)로 갑골문(甲骨文)을 살펴보면 뾰족한 바늘과 같은 꼬챙이로 한쪽 눈을 찔린 사람을 뜻하는데, 고대(古代)에는 주로 죄수(罪囚)나 포로(捕虜)를 지칭(指稱)하는 글자다. 즉 지배계층(支配階層)이 아닌 노예(奴隸)와 같은 하층의 사람을 뜻한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반적인 사람 모두, 즉 평민(平民)을 뜻하게 된다. 민(民)은 금문(金文)에서 예리한 침 같은 것에 한쪽 눈이 찔린 사람의 모습(模襲)이다. 옛날 전쟁(戰爭)에서 포로를 잡을 경우, 남자이면 한쪽 눈을 찔러 노동력(勞動力)은 보존(保存)하되 반항능력(反抗能力)은 줄여 노예로 삼는다. 이러한 모습은 착할 장(臧)이나 아이 동(童)에서도 그 흔적(痕迹)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민(民)의 원래 뜻은 노예(奴隸)이며, 이후 지배자(支配者)의 통치(統治)를 받는 계층(階層)이라는 의미에서 ‘백성(百姓)’이라는 뜻이 나왔고, 다시 ‘사람(人)’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확장(擴張)된다.
사람 인(人)은 사람이 서 있는 꼴을 본뜬 상형자(象形字)로 '사람(人)'이라는 뜻의 글자(字)이다. 사람은 육체(肉體)와 정신(精神)으로 구분(區分)한다면 사람 인(人) 부수(部首)에 속(屬)하는 글자들은 주(主)로 사람의 육체적(肉體的)인 면(面)을 나타내고, 사람의 정신적(精神的)인 면(面)은 마음 심(心) 부수(部首)에 속(屬)하는 글자(字)들에 나타나 있다. 인(人)자는 때에 따라 '亻·匕·大·' 등의 꼴로 바뀌어 나타난다. 즉 부수(部首)로 쓰일 적에는 대부분(大部分) '亻' 꼴로 나타나고, 낮게 임하느라 다리를 굽어야 할 적에는 볼 견(見)자처럼 어진 사람(儿)이라는 부수(部首)로, 넘어질 듯이 허리가 굽은 늙을 노(老)자에서는 '匕' 꼴로, 팔을 벌린 큰 모습(模襲)일 적에는 큰 대(大)자로, 그리고 성교(性交)하느라 엉겨 붙어 얼굴빛이 변하는 빛 색(色)자에서 '巴' 꼴 따위로 바뀌어 묘사(描寫)된다. 다시 정리(整理)하면 '亻'자 꼴은 사람을 옆에서 볼 때 짧은 손과 긴 다리를 연상(聯想)시키는 보통(普通)의 사람이다. 그리고 '亻'자는 가부좌(跏趺座) 또는 꿇어앉은 사람의 옆모습(側模襲)으로 어진 사람 인(儿)이다. 그리고 '匕'자는 숟가락이나 발이 날카롭고 짧은 칼인 '비수(匕)'를 뜻하는 부수(部首)이나 될 화(化), 견줄 비(比), 북녘 북(北)자 내의 '匕' 따위의 자형(字形)은 사람을 의미(意味)한다. 이뿐만 아니라 몸 기(己), 주검 시(尸), 큰 대(大)자들도 자형(字形)으로 쓰여 사람을 나타낸다. 즉 사람(人)이 팔(臂)을 앞으로 비스듬히 내밀고 서있는 모습(模襲)을 그린 전형적(典形的) 상형문자(象形字)이다. 그러나 극소수(極少數)를 제외(除外)하고는 이제 금(今), 낄 개(介), 낱 개(個), 기울 측(仄), 꾀할 기(企) 등 글자의 미관(美觀)을 고려(考慮)해 '인(人)'으로 바뀐다. 또 어질 인(仁), 원수 구(仇), 섬길 사(仕), 다를 타(他), 맡길 임(任) 등, 이런 경향(傾向)은 서예(書藝)라는 독특(獨特)한 분야(分野)를 탄생(誕生)시킨다.
백성 민(民)은 상형글자(象形字)로 갑골문(甲骨文)을 살펴보면 뾰족한 바늘과 같은 꼬챙이로 한쪽 눈을 찔린 사람을 뜻하는데, 고대(古代)에는 주로 죄수(罪囚)나 포로(捕虜)를 지칭(指稱)하는 글자다. 즉 지배계층(支配階層)이 아닌 노예(奴隸)와 같은 하층의 사람을 뜻한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반적인 사람 모두, 즉 평민(平民)을 뜻하게 된다. 민(民)은 금문(金文)에서 예리한 침 같은 것에 한쪽 눈이 찔린 사람의 모습(模襲)이다. 옛날 전쟁(戰爭)에서 포로를 잡을 경우, 남자이면 한쪽 눈을 찔러 노동력(勞動力)은 보존(保存)하되 반항능력(反抗能力)은 줄여 노예로 삼는다. 이러한 모습은 착할 장(臧)이나 아이 동(童)에서도 그 흔적(痕迹)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민(民)의 원래 뜻은 노예(奴隸)이며, 이후 지배자(支配者)의 통치(統治)를 받는 계층(階層)이라는 의미에서 ‘백성(百姓)’이라는 뜻이 나왔고, 다시 ‘사람(人)’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확장(擴張)된다.
◑요약: 현재 한국(韓國)에서 99%를 공식적(公式的)으로 서민(庶民)이라 부른다.
국어사전(國語辭典)에 의하면 서민(庶民)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뜻으로 해석(解釋)하고 있다. 첫째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特權)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비슷한 말로 서인(庶人)ㆍ인서(人庶)ㆍ하민(下民)등이 있다. 둘째 경제적(經濟的)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 비슷한 말로 범민(凡民)이 있다.
그런데 서민(庶民)이란 어휘의 글자 뜻과 그 유래(由來)를 살펴보면 폄하(貶下)의 의미가 다분(多分)하다.
◐서민: 서민이란 ‘庶’는 적서(嫡庶)관계에서 첩(妾)의 자식을 뜻하는 글이고 ‘民’도 역시 폄하(貶下)의 뜻이 짙은 글자이다. 그 유래는 중국 주나라 때부터 신분(身分)을 나타내는 5계급, 즉 천자(天子), 제후(諸侯), 대부(大夫), 사인(士人), 서민(庶民) 중 가장 낮은 계급이다.
계급사회에서 서민은 천대받는 천민(賤民)이었다. 조선시대를 말하자면 신분을 크게 양민(양반, 중인, 상인)과 천민으로 나눴는데 천민이 바로 서민(庶民)이었다.
◐신분: 역사적으로 서민은 역사무대(歷史舞臺)에 주인으로 등장한 적이 없다. 농민봉기(農民蜂起)로 황제가 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같은 인물은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무대에 오를 수 있었지 계속 서민신분(庶民身分)을 유지한 사람이 주인이 되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사마천은『사기』를 제왕의 연대기인 본기(本紀) 12편, 제후 왕을 중심으로 한 세가(世家) 30편, 역대 제도 문물(文物)의 연혁에 관한 서(書) 8편, 연표인 표(表) 10편, 시대를 상징(象徵)하는 뛰어난 개인의 활동을 다룬 전기 열전(列傳) 70편, 총 130편으로 나눠 구성하여 지었다. 여기서 제도 문물의 연혁(沿革)에 관한 서 8편과 연표(年表)를 집대성한 표 10편을 제외하고 본기(本紀), 세가(勢家), 열전(列傳)은 모두 인물을 다뤘는데 본기는 천자(제왕), 세가는 제후 왕, 열전은 무왕의 은주(殷紂) 토벌을 반대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자 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먹다 죽은 이념과 원칙에 순사(殉死)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齐)를 시작하여 마지막에 이(利)를 좇는 상인의 열전 화식열전(貨殖列傳)까지 위대한 성현뿐 아니라 시정잡배(市井雜輩)가 도덕적 당위의 실천과 탐욕적(貪慾的) 본능 사이에서 방황(彷徨)하고 고뇌하는 생생한 모습을 제시하였는데 그 중 다수의 인물은 바로 대부와 사인(士人)이었다. 말단 계급인 서민은 ‘명함(名銜)’이 없었다. 『사기(史記)』뿐만 아니라 모든 사서(史書)가 다 그러하다.
◐계급: 유교의 이념(理念)인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에도 서민이 설 자리는 아예 없었다. 즉 사인은 수신(修身)하고 대부는 제가하며 제후는 치국하고 천자는 평천하(平天下)의 의무가 각각 주어졌던 것이다. 이것을 수학공식(修學公式)처럼 나열(羅列)하면 다음과 같다. 수양을 쌓아 수신이 잘되면 제가(諸家)가 따라서 잘 되고, 제가가 잘 되면 따라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나라가 잘 다스려지면 천하가 자연스레 태평(太平)해진다. 물론 이것은 절대적 계급분할(階級分轄)이 아니었다. 사인이 공부를 통해 출세(出世)하여 권력을 잡으면 사대부가 되는 것이고, 대부가 경제적으로 부를 축적하여 실력이 향상되면 제후의 자리를 빼앗고 제환공(齊桓公)처럼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號令)하기도 하였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들어 새로운 신흥지주계급(新興地主階級)이 탄생되어 사회신분판도(社會身分版圖)를 바꿔놓기도 하였다. 어찌되었든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들어 제후국들의 공왕(共王)이었던 천자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지다가 결국 진 영정에 의해 역사무대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인: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서민은 전쟁에 참전(參戰)할 자격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 누가 군대를 하나? 사인(士人)이 했다. 병사란 사(士)가 사인의 사(士)인 것이 바로 이렇게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사인이 병사로 충당(充當)되었기 때문에 춘추시대 전쟁은 진짜 ‘문명(文明)’했다. 왜냐? 병사인 사인들은 모두 배운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우선 적진(敵陣)에서 온 사자를 절대 죽이는 법이 없었다. 다음 상대가 전열(戰列)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攻擊)하지 않는다. 그다음 거듭 상해(傷害)를 입히지 않는다. 다친 사람을 더 가격(加擊)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네 번째는 머리가 흰 사람은 포로(捕虜)로 삼지 않는다. 다섯 번째 오십 보 후퇴(後退)하는 자를 쫓지 않는다. 오십 보만 후퇴하면 되는데 굳이 백 보 도망갈 이유가 없었다. 맹자(孟子)의 '오십 보 백 보' 이야기가 여기서 유래(由來)되었다.
어떻게 그토록 재미나는 전쟁이 가능했을까? 전쟁목적(戰爭目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시 전쟁목적은 ‘겸병(兼竝:상대국을 멸망시켜 삼킨다는 뜻)’이 아니라 ‘쟁패(爭覇)’였기 때문이다. ‘쟁패’는 천자(天子)의 이름을 빌어 천하를 정치적으로 제패(制霸)하는 것이지 영토(領土) 뺏기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다. ‘춘추오패(春秋五霸)’는 기타 제후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는 패주(霸主)가 되었을 뿐 군사적, 경제적으로 지배(支配)하지 않았다.
◐겸병: ‘겸병(兼竝)’전쟁은 전국시기(戰國時期)부터 시작되었다. ‘겸병’의 수요에 따라 오기(吳起), 손빈(孫臏) 등 군사가가 생겨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류(人類)의 전쟁은 냉정(冷靜)하고 야비(野鄙_하고 야만(野蠻)스러웠고 참혹(慘酷)했다.
춘추시기(春秋時期) 일선에서 싸움하는 자가 ‘사’였고 서민은 기껏해야 후방지원군(後方支援軍) 노릇을 하였다면 전국시기(戰國時期)부터 서민이 싸움의 주력(主力)이었다. 그렇지만 서민출신군인을 ‘전민(戰民)’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춘추시기 관습(慣習)에 의해 그냥 ‘전사’라고 불렀고 현대사회도 여전히 이 호칭(呼稱)이 이어져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중국역사(中國歷史)를 돌이켜보면 23개 왕조(王朝)가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에 있어서 개국황제(開國皇帝)들은 하나 같이 서민을 병사로 이용해서 승리하여 옥좌(玉座)에 오르면 바로 돌아서서 서민을 착취(搾取)하고 압박하는 사례가 반복(反復)되었던 것이다.
◐중국: 1949년 10월 1일 모택동(毛澤東)의 새 중국이 창립(創立)됨에 따라 서민(庶民), 신민(臣民), 백성(百姓), 평민(平民) 등등의 호칭 대신 인민(人民)이란 어휘를 주로 사용해왔다. 북한(北韓)도 중국처럼 인민이란 어휘(語彙)를 사용(使用)하고 있다.
인민이란 호칭은 어떻게 유래되었는가?
먼저 ‘民’이란 글자에 대해 살펴보자. 민(民)은 본래 좋은 어휘가 아니었다. 적어도 존칭(尊稱)은 아니었다. 옛날에 이 글자는 보통 어둡다는 뜻의 ‘명(冥)’과 ‘명(暝)’ 그리고 맹인(盲人)을 뜻하는 ‘맹(盲)’과 서민을 뜻하는 ‘맹(氓)’으로 해석(解釋)되었다. 아마도 최초의 민은 모두 전쟁포로(戰爭捕虜)와 노예(奴隸)였기 때문에 눈을 찔러 장님이 된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여민(黎民)은 전쟁에서 패한 구려족(九黎族)이었고, 축민(畜民)은 상인이 다스리던 늙은 노예들이었으며 완민(頑民)은 주나라 인에게 패하고도 완전히 굴복(屈伏)하지 않았던 은상(殷商)의 귀족이었다. 이미 전쟁(戰爭)에서 패했기 때문에 자연히 민이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노예는 평민(平民)으로 변했지만 역시 피통치자(被統治者)였다. 이른바 의민(蟻民), 초민(草民), 소민(小民), 천민(賤民), 조민(刁民), 비민(屁民), 순민(順民), 신민(臣民)과 마찬가지로 모두 명확하게 경멸(輕蔑)과 차별(差別)의 뜻을 띄고 있었다.
◐신민: 신민(臣民)이란 전통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던 어휘로서 서양(西洋)에서 말하는 시민에 비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臣’이란 본래 노예(奴隸)였다. 전쟁포로와 죄수도 포함(包含)되었다. 전쟁포로가 최초에는 살해(殺害)되었고 나중에는 남자는 노예, 여자는 첩(妾)이 되었다. 그들은 목에 밧줄이 걸려 주인에게 가죽처럼 끌려 다녔다. 개별적(個別的)으로 재주가 있으면 조금 대우(待遇)를 해주기도 했다. 춤을 추는 무신(舞臣)처럼, 또 드물게나마 간수나 중간 보스 격으로 주인을 도와 다른 노예들을 관리하기도 했다. 농업 노예들을 관리하던 적신(籍臣), 목축 노예들을 관리하던 목신(牧臣) 등이 그것이다.
시민(市民)은 최초 그리스(希腊)에서 생겨난 것이고 공자(孔子)가 말한 소인에 해당(該當)될 것이며 주나라의 국인(國人)과 흡사(恰似)한 개념(槪念)이다. 국인(國人)은 도성(都城)의 주민(住民)이란 뜻에서 유래(由來)되었다.
고대 그리스 시민(希腊市民)은 여자와 외국인은 제외(除外)되어 있었고 그리스적 성인((希腊的成人) 남자에게만 주어진 권리(權利)였으며 그들의 권리는 투표권(投票權)이 있었고 자유를 의미(意味)하였다.
한편 ‘人’은 승리자(勝利者)와 통치자(統治者)를 뜻했다. 상고시대(上古時代)에 ‘인’과 ‘민’은 평등(平等)하지 않았다. 가장 높은 등급(等級)의 사람은 대인(大人), 그 다음은 소인(小人), 가장 낮은 등급(等級)의 사람은 만민(萬民)이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인’과 ‘민’을 합쳐 인민(人民)이라 부르는 것은 서민(庶民)이라 부르는 호칭(呼稱)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폄하(貶下)의 뜻이 없다는 것이다.
◐평언: 인민(人民)이란 호칭(呼稱)은 폄하(貶下)의 뜻이 없는 일반 개념(槪念)이지만 한국(韓國)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고 폄하의 뜻이 다분한 서민(庶民)이란 호칭을 지금도 유지(維持)하고 있는 것은 이북(以北)에서 인민이란 호칭을 쓰고 있어 매우 꺼려하기 때문이다. 한국(韓國)은 자유민주주의 국가(自由民主主義國家)라고 하지만 99%를 폄하의 뜻이 다분한 서민이란 호칭을 쓰는 한 평등(平等)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見解)이다. <글: 김정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