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 - 한문의 바다 ㅣ 古詩感賞 . 태공조어도(太公釣魚圖)
古詩感賞 . 태공조어도(太公釣魚圖)
朝鮮. 鄭氏
-조선 연산군때의 관리 정인인(鄭麟仁)의 모친.
鶴髮投竿客(학발투간객) 낚시 던지는 백발 나그네.
超然不世翁(초연불세옹) 초연함이 이 세상 노인이 아니로다..
若非西伯獵(약비서백렵) 만일 주 문왕이 찾아내지 않았다면.
長伴往來鴻(장반왕래홍) 오 가는 기러기와 벗하며 지냈겠지.
강태공이 낙싯줄 드리우고 낙시 하는 모습의 그림을보고 읊은시로서, 문왕은 은(銀)의 포악한 주왕(紂王)을 쳐서 주(周)나라를 세운 서백으로, 어느날 사냥을 나갔다가 강태공을 만났는데 첫눈에 강태공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높이 등용하였다.
그 당시 강태공의 나이 팔십 세였다. 강태공은 문왕과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창건하는데 큰 공을 세워 무왕은 중국의 천자가 되고, 강태공은 주나라 창건 후 산동 반도 지방을 봉지로 받아 제(齊)나라의 시조가 되었다.
정인인은 조선 초기 문신으로 1498년 종부시주부로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홍문관 전한을 거쳐 1503년 당상관이 되면서 제주목사(濟州牧使)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이유로 사직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때 앞서 홍문관·사헌부 재직 시 왕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한 것과 제주목사의 부임을 기피한 것이 원인이 되어 참수되었다./
01 대략 지금의 강소(江蘇), 산동(山東) 바닷가 일대를 말한다.
02 예시 21절, 예시 22절.
03『사기』「제태공세가」에서는 강태공의 나이가 72세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위의 글은 여러 설 중 하나이기 때문에 시기가 정확하지 않음을 밝혀둔다.
생애 강상은 염제(炎帝) 신농(神農)의 51세손이다. 주나라 문왕, 무왕, 성왕(成王), 강왕(康王) 4대에 걸쳐 태사(太師)를 지냈으며, 춘추전국 시기의 제(齊)나라의 창시자요, 딸은 주 무왕의 왕후이다. 때는 기원전 1046년 2월 겨울, 상나라 주왕의 흉폭한 정치가 계속되어 천하가 비탄에 젖어 있을 시 홀연히 나타나 주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문왕 사후 문왕의 둘째 아들인 무왕을 보필하여 4만 5천의 군사로 72만의 상군을 대파하는 기적적인 전쟁을 일구어낸 동이지사(東夷之士)이며 기인(奇人)이다. 이 전쟁을 목야 전쟁(牧野戰爭)이라 하며, 목야 전쟁이 주는 의의는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섬멸한 기적의 전쟁이요,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정의(正義)는 반드시 필승(必勝)한다는 정법을 확립시킨 정의필승의 전쟁이기도 하다. 이후 제나라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제나라는 32대 근 800여 년을 존속하였다. 강태공은 주나라 문왕, 무왕의 스승이자 장인이며 천하의 스승국의 위치로 군림하여 제나라의 임금(제 태공)이 되었다. 제나라 2대 군주의 지위를 큰아들 강급(姜及)에게 물려주었고, 강급은 제 정공(齊 丁公)이라고 불렸다. 강태공을 이어 제나라가 가장 흥한 시기는 제나라 15대 임금인 제 환공 강소백(姜小白) 시기로 강소백은 춘추시대 첫번째 패왕(覇王)이 되어 강태공의 얼을 이었다. 제나라 최전성기에는 사방 5000리를 이룩한 대국으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강태공이 남긴 유명한 명언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수불반분”(한 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이다. 강태공의 전 부인 마씨(馬氏)는 강태공이 주문왕을 만나기 전 생활고에 견디다 못해 강태공 곁을 떠났는데, 이후 강태공이 제나라 왕이 되었을 때 다시 돌아와서 아내로 맞아주길 요청했다. 이에 강태공은 하인더러 물을 떠오라고 한 후 그 물을 땅에 엎었다. 그리고 돌아온 아내에게 지금 바닥의 그 물을 다시 항아리에 담는다면 아내로 맞이 해주겠다고 했다. 즉, 한 번 떠난 마음은 두 번 다시 되돌리기 어렵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긴 것이다. 강태공은 기원전 1072년에 신선계에 들었으며, 그때 연세는 139세였다. 의관을 서주(西周) 호경(鎬京)에다 안장하였다. 제나라 사람들은 강태공의 덕을 생각하여 제나라에다 강태공 의관총(衣冠塚)을 세웠다. 강태공은 주역의 확립자이며, 강태공이 저술한 육도삼략(六韜三略)이 현재에도 전해져 오고 있다. 육도삼략은 고대 병서의 최고봉인 무경칠서(武經七書) 중의 둘을 차지한다. 후대인 손무의 손자병법도 강태공의 육도삼략에 기초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후일 대륙을 정복한 청나라 황실에서조차 강태공을 무성왕(武成王)으로 칭하여 천하통일을 이룬 군주로 인정하였다.
봉신연의 중국 소설 《봉신연의》에서는 본명은 강자아이며, 곤륜산의 도사가 되어 신선들의 살겁을 깨기 위한 봉신을 주도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천하를 얻은 강태공의 지혜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린 강태공
낚시에 숨겨진 심오한 이치
뛰어난 모략을 가진 강태공과 인재를 등용한 문왕
주周나라 문왕(기원전 1152~1056년)은 성이 희姬요, 이름은 창昌이다. 둘째 아들 희발姬發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주나라를 세운 군주가 되고 난 뒤, 아버지를 문왕文王으로 추숭하였다.* (추숭追崇 : 왕이 되지 못하고 죽은 왕족이나 왕의 조상에게 사후에 왕의 지위를 주는 것. 나라를 새로 세운 경우, 왕은 위로 4대를 왕으로 추존하는 것이 일반적인 예법이었다.)
일명 ‘서백창西伯昌’이라고도 불리는 문왕은 중국 역사상 첫 번째 명군明君으로 평가받는다. 공자는 춘추시대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주대周代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공자가 말한 ‘주대’가 바로 ‘주 문왕의 시대’이다. 주 문왕은 노인과 어린아이를 중히 여겼고 현자賢者를 정중히 대접하는 등 어진 정치를 펼쳤다. 그러다 보니 인재들이 많이 모여들었으며, 이웃 제후들 간에 분쟁이 생기면 그에게 와서 판결을 구하곤 했다.
세월을 낚으며 때를 기다린 강태공
‘서백창’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바로 주나라 건국의 기초를 만든 강태공이다. 서백창과 강태공이 처음 만날 당시, 은의 마지막 임금 주紂는 애첩에게 빠져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간신의 말만 들으며 폭정을 일삼고 있었다.
어느 날 서백창이 사냥을 나가려고 하자, 사관이 귀갑龜甲으로 점을 쳐보았다.
“점괘가 어떻게 나왔는가?”
사관이 대답했다.
“저의 조상인 사관 주가 우임금을 위하여 점을 쳐서 명재상인 고요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점괘는 그에 견줄 만합니다. 이번 사냥에서 얻게 될 것은 용도 곰도 호랑이도 아닌, 패왕霸王(춘추전국 시대에 황제라는 뜻으로 쓰인 호칭)을 보필할 신하입니다. 장차 임금에 버금가는 위치에 오르거나 제후가 될 그런 인재이지요. 이는 하늘에서 폐하께 스승을 보내시어 국사를 보좌토록 하신 것이니, 이 나라를 3대에 걸쳐 돕게 될 것입니다.”
훌륭한 인재를 얻게 될 것이라는 사관의 말에 서백창은 내심 기뻤다. 그는 사흘 동안 목욕재계를 한 뒤 사냥용 수레와 말을 타고 위수의 북쪽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날따라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발길을 돌리려던 차에, 나이 일흔이 넘은 한 노인이 오고가는 사람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강가에 앉아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노인을 발견한 순간, 서백창은 첫눈에 그가 비범한 사람인 것을 직감했다. 이 노인이 바로 강태공이었는데, 그는 서백창을 만나기까지 10년 동안 위수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주나라의 기초를 닦은 명군으로, 후세 유가로부터 성천자聖天子로 숭앙 받은 문왕.(사진 위키피디아)
하지만 강태공은 낚시를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낚시 바늘은 굽은 것이 아니라 일자였다고 한다.
서백창이 가까이 가서 물었다.
“낚시를 즐기시는가 보군요.”
노인이 대답했다.
“예, 나는 물고기를 낚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월을 낚고 있습니다. 먹이로 물고기를 낚는 것은 녹봉을 주어 인재를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군자는 자신의 이상이 실현됨을 즐거워하고, 소인은 눈앞의 일이 이루어짐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제가 낚시질하는 것은 그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와 비슷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근원이 깊어야 강물이 흐르고, 물이 흘러야 물고기가 생기지요. 뿌리가 깊어야 나무가 잘 자라며, 나무가 우거져야 열매가 잘 열리지요. 낚싯줄이 가늘고 먹이가 작으면 잔고기가 이를 먹고, 낚싯 줄이 약간 굵고 먹이가 향기로우면 중치의 고기가 이를 먹으며, 낚싯줄이 굵고 먹이가 풍성하면 큰 고기가 이를 먹습니다. 좋은 먹이를 주면 크고 살찐 고기가 잡히는 것과 같이, 녹봉祿俸으로 천하의 훌륭한 인재들을 불러 모아 임금에게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동양의 수많은 화가들이 그린 강태공의 이미지는 주로 긴 낚시대를 드리운 노옹 老翁의 모습이다.(사진 대한은퇴자협회)
낚시에는 세 가지의 심오한 이치가 숨어 있습니다. 첫째는 미끼로 고기를 낚는 것인데, 이는 녹祿을 주어 필요한 인재를 취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두 번째는 좋은 미끼가 큰 고기를 낚듯이, 인재에게 녹을 많이 줘서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충성스런 신하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는 크기와 종류에 따라 요리법이 다른데, 이는 인재의 성품과 됨됨이에 따라 벼슬을 달리 맡기는 이치가 담겨 있습니다.
겉이 아무리 번지르르해도 군주가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반드시 모였다가도 흩어지게 마련입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군주가 덕이 있으면 반드시 멀리까지 비칠 것입니다. 성인聖人의 덕이란 보통 사람은 가늠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깊고 그윽한 것이라서 사람들의 마음을 저절로 모여들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여든 인재를 소홀히 대하면 곧 떠나버릴 겁니다.”
“어떻게 하면 천하 만백성의 민심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천하는 군주 한 사람의 천하가 아니라 천하 만민의 천하입니다. 천하의 이익을 백성들과 함께 나누려는 마음을 가진 군주는 천하를 얻을 수 있고, 이와 반대로 천하의 이익을 독점하려는 자는 반드시 천하를 잃게 됩니다. 하늘에는 춘하추동 네 계절이 있어 음과 양이 순환하고, 그로 말미암아 대지에는 생산이 이루어져 재물과 보화가 있게 됩니다. 이 하늘의 시時와 땅의 재財를 백성들과 함께 누리는 것을 인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인仁이 있는 곳에 모이게 마련인지라 어진 사람이 정치를 하면 그 덕이 저절로 나타나 어렵지 않게 천하의 민심도 얻을 것입니다.
죽을 처지에 놓인 사람을 건져주고, 재난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며, 위급한 사람을 구제해주는 것은 덕德입니다. 천하 인심은 덕이 있는 곳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뭇사람들과 시름을 같이 하고, 뭇 백성들과 즐거움을 같이 하며,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함께 꺼리면 이것은 의義입니다. 천하의 인심은 의가 있는 곳으로 쏠리게 됩니다. 본래 사람은 죽는 것을 싫어하고 살기를 좋아하며, 덕을 좋아하고 이득을 따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며 그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데 힘쓰는 것을 도道라고 합니다. 천하의 인심은 도가 있는 곳으로 귀의하는 것입니다.”
노인의 말을 다 듣고 난 서백창은 기뻐하며 두 번 절하고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조부께서 ‘한 성인聖人이 나타나 주나라를 융성하게 이끌어 갈 것이다. 주나라는 이로 인해 흥할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실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인 것 같습니다. 노인이야말로 그 성인임에 틀림없습니다. 제가 어찌 하늘이 내리신 명령을 받들지 않겠습니까? 삼가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라고 하며 노인을 수레에 태워 궁으로 돌아와 스승으로 모셨다.위대한 인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들고 문왕 서백창이 위수에서 만난 이 노인은 문왕의 조부인 태공이 꿈에서 기다리던 인물이라 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했으며, 그의 성이 강씨였기에 후세에 ‘강태공’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때부터 강태공은 문왕의 스승이 되었고, 정승을 겸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된다. 강태공은 탁월한 지혜로 문왕에게 뛰어난 모략과 부국강병책을 제시하여 은나라 제후들이 주나라를 따르게 하고, 기원전 11세기 주나라 건국에 절대적 공을 세운다. 그러나 문왕이 그 뜻을 펴보지 못한 채 전쟁 중에 죽자 둘째 아들 희발이 왕위를 계승하여 무왕에 올랐고, 강태공을 역시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강태공은 정치를 개선하고 풍속을 존중하며 예법을 간소화하는 등 백성을 위하여 올바른 정치를 펴나 갔으며 어업 외에 제염업 등 상공업을 진작하고 수산을 장려함으로써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또한 강태공은 병법과 군사의 시조로 볼 만하다. 역대 황제들은 강태공을 무성武聖으로 봉하였고, 당나라 때에는 무성왕武聖王으로, 송나라 때에는 조열무성왕照烈 武聖王에 봉했다. 그는 부국강병을 도모할 방법을 알았다. 그것이 바로《육도삼략六韜三略》이라는 책에 집약돼 있다. 이 책은 최초의 병서兵書로서 후대의 전략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후대의 손자, 오자 등 중국의 제가諸家가 만든 병법도《육도삼략》을 기초로 한다. 위대한 인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든다는 변치 않는 사실을 강태공의 행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강태공과 문왕 생전에 강태공은 아래와 같은 말을 남겼다. “해와 달이 아무리 밝더라도 엎어 놓은 항아리의 밑은 비추지 못하고, 칼날이 아무리 날카롭다 해도 죄 없는 사람은 베지 못하며, 뜻밖의 재앙도 조심하는 집 문안에는 들어오지 못한다.” “현명한 지도자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눈은 밝아야 하고, 귀는 총명해야 하며, 마음은 지혜로워야 한다. 지혜가 보통 사람과 같으면 국사國師가 아니다. 장수가 지혜롭지 못하면 군대 전체가 의심한다.” “물고기는 물속에 있으면 살고, 물을 벗어나면 죽고 만다. 그러므로 성인과 군자는 언제나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자연의 도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그의 말에 비추어 오늘날의 정치인들을 보면 철학도 소신도 없고, 민생이나 나라의 장래를 깊이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얄팍한 처세술과 공명심에 빠져 나라꼴이 어찌 되든 개의치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안타깝다. 이 어지러운 시대에 강태공처럼 남다른 통찰력과 혜안을 가진 인재가 나타날 수 있을까? 또한 그 뛰어난 인재를 낚아 백성들을 평안하고 행복하게 해 줄 성인이 나타날 것인가? 강태공도 지혜와 덕이 뛰어났지만, 강태공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었던 문왕의 겸손과 도량, 그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은 무왕의 마인드는 이 시대 지도자들과 경영자들이 본받아야 할 마음가짐이다.
글쓴이 이한규 어릴 때 선생님을 통해 교사의 꿈을 갖게 된 그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었다. 교사의 길을 걸어온 자신을 일컬어 ‘마음 밭에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라고 한다. 국어교사와 여러 대안학교 교장을 역임했고, 전국대안학교총연합회 서울시 지부장을 맡았다. 현재 여러 매체에 인문학과 교육철학에 관한 글을 계속 기고하고 있다. 국내외 여러 교육기관에서 특강을 하고, 교육 관계자 및 학부모, 학생들과 상담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