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발견] 인연

 [일기의 발견] 인연

스토리뷰 l [일기의 발견] 인연

기자명 더뷰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가. 돌아보면 가끔 그런 것 같다. 나를 중앙일보로 당겨놓고는 떠난 그가, 왠지 우연 같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는 취재기자로 나가려는 뜻을 접었고, 편집에 청춘을 유감없이 내던지며 살았다.

중앙일보가 내게 해준 것이 많았고 나도 중앙일보에 해준 것이 많았다고 생각하기에 서로 윈윈했다고 생각한다. jm이 초대한 인생은 괜찮은 선물이었다.

 더뷰스 기록의 힘 : 중앙일보 시절 jm을 기억함


오래된 일기 속에서 발견한 이름

오래전 일기를 읽다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 기억에서 꺼내지 않았던 이름 하나를 발견한다. jm. 

1.일기들

나의 역성 들려다, 직격탄 맞은 jm

그런 얘기가 나오게 된 건, k국장이 술자리에서. 새로 들어온 나에 대한 칭찬같은 걸 늘어놓으면서 'n차장을 훨씬 능가하는 편집'이란 표현을 써서 그의 신경을 건드릴 말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편집부에서 n차장은 신문사 편집을 리드하는 대표주자로 손 꼽혔다.

k국장의 말씀에 나는, '왜 괜히, 선배한테 미움받으라고 이러시는지...'라고, 머쓱한 토를 달았다. 그런데 곁에 있던 jm이 장단을 맞추면서, '그러게? 견제 들어오게...'라며 좀 튀는 말투와 함께 껄껄 웃었다.

n차장은 취기 어린 눈으로, 내가 아닌 jm을 노려보면서 '너나 똑바로 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1992년 4월9일)

꼭 취재부서로 가야 되나?

어제 이화여대 한켠에서 jm과 술을 마시면서 나눴던 진로에 관한 단상들.

그는 물었다. "취재로 안보내주면 어쩔 생각인가?"

나는 대답했다. "어떤 대안을 생각해봐야지."

물었다. "나가겠다는 얘긴가?"

대답. "글쎄, 아직은 뚜렷한 방향이 선 건 아니지만, 1년간의 기간을 두고 결정키로 했으니 일단 조치를 기다려본 뒤 행동을 고려해봐야지."

그의 충고. "근데 가만 있으면 안될 것 같애. 제3자를 통해 그런 언질을 자꾸 전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애." "......"

이대 교정엔 목련과 개나리 등속의 꽃들로 온통 화원이었다. 취재, 글을 쓴다는 것. jm도 나의 생각에 어떤 동기를 포착한듯 그런 얘기를 내비췄다.

"편집은 너무 따분해. 아무래도 글을 써야지."

글을 쓴다? 무슨 글? 기사.

"그러나." 지하철을 내려가면서 얘기했다 나는.

"의지...생각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있는 쪽으로 길은 열려있다고 생각하는데."

영감이라도 얻은 듯 나는 낙관론을 뱉는다. 그러나 그의 제동.

"그러나 아무래도 실력이 있어야지. 그리고, 운도.... 그러려면 끊임없이 준비하는 수 밖에 없지." (1992.4.12)

jm에게 대놓고 면박

차장이 jm 있는데서 "너무 일을 무심히 한다"고 면박을 줬다. 취중이긴 했지만 jm에게는 매우 가슴을 후비는 말이었을 것이다.

일을 잘한다는 것, 정확하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한계도 모호하고.(1992.4.20)


사경을 헤매는 jm

사경을 헤매는 jm과 주변에 있던 사람과 사람들. 비린내와 신음으로 뒤엉킨 중환자실에 남아야 하는 고독. 발치 바로 밑은 파도가 치고 있다. 연포 그 쓸쓸한 여숙처럼 죽음은 바로 발치 밑에서 밀려왔다가 밀겨갔다 하는 파도처럼.(1992.9.20)

이대병원 영안실

곁에 늘 모닝커피처럼 있던 친구가 떨어져 나갔다. 그건 영이별이다.

jm의 죽음과 그 뒤에 황망히 온 것들. 그의 아내가 비통해하는 표정과 가족들의 모습. 확대된 채 향불 위로 전시돼있던 그의 흑백사진. 김상가호상소라고 씌어진 화선지 위로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비내리는 영안실. 이대병원, 그 축축한 영안실서 내다본 음습한 하늘을 가르며 솟은 교회 십자가는 마치 죽음에 익숙해있는 교수대처럼 보였다.

섬뜩하게도 그와 비슷한 말씨를 쓰는 그의 형님이 바삐 왔다갔다 하는 모습과 휘갈겨쓴 방명록 글씨들. 냉동된 그의 주검에서 풍기는 비릿한 내음을 마치 어떤 대화처럼 느끼며 쓸쓸한 한 구석의 마음을 보냈다. 그건 정말 황망한 죽음이었다.

기억과 인식이 정리되기도 전에 그의 사거(死去)는 모든 절차가 끝났다. 이제 참으로 긴 정적이 오겠지. jm아. 너의 영혼이 어딘가에 있다면 편안한 잠을 청하기를 빈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너의 짧은 생애가 아로새겨질, 모든 사람들의 길고 짧은 기억 속. 순례를 끝내고 이윽고 먼 고독 속으로 길고 어두운 잠을 청하는 시간에.

사람이 가고 옴이란 이리 덧없는 것인데도 삶 속에 최면 걸린 일상이란 어쩌면 그런 사건들조차도 진실로 체험할 수 없는 채로 곧잘 버릇대로 눈과 귀를 지나 흘러보내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꽃잎 하나, 바람도 없는데 흔들림이여.(1992.10.5)

영이별이란 무엇인가

문득문득 jm 얼굴이 떠오른다. 그 목소리와 함께. 영이별이란 무엇인가. 존재란 무엇이며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내게 그에 대한 기억이 살아있듯 어딘가에 나에 대한 그의 기억도 살아있을까.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부재의 자리.(1992. 12.7)


2.중앙일보 스카웃을 연결해준, 대학친구

인연

jm은 대학시절 친하지 않았지만 학과 동기로 익숙한 얼굴과 이름이었다. 어느날 문득 그의 전화를 받았다.

조선일보에서 내가 몹시 힘겹던 시절이었다.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를 경찰이 때려죽인 사건이 발생했고, 그것에 대한 이 신문의 왜곡보도를 견디기 어려웠다. 대학생의 연쇄 분신으로 나날의 민심이 흉흉하던 때였다.

젊은 혈기와 의기가 유폐되어 있는 듯한 신문사 편집국에서 자주 대학생들처럼 코리아나 호텔 창문에 달린 커튼에 목을 감고 격문을 외치며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그 무렵 낯선 동기동창 jm의 목소리는 어쩐지 내게 어떤 구원의 힘을 담고 있는 듯 했다.

"너 혹시 중앙일보로 올래? 여기도 괜찮아. 조선일보는 너랑 좀 안맞지 않냐?"

편집 하다가 취재로 나가려 해

나의 심경을 알았는지 아니면 대강 짐작으로 던진 말인지 모르겠지만, 묘하게 마음을 끌어당겼다. 보통 때같았으면 단호히 아니라고 했을지도 모를 상황이었는데, "좀 생각해보마."라고 말했다. 생각해보는 시간이 길어지자, 다시 전화가 왔다. 아마도 jm이 내가 옮길 마음이 있는 것 같다고 자기네 부장께 이미 보고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당시 업계 정서로 봐서, 하향(下向)하는 기분이 있는 이동이 내키지 않았고, 거기인들 뭐가 다르랴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때 불쑥 말했다. "1년 정도 편집하다가 취재로 보내줄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줘."

중앙일보 데스크가, '취재 이동' 오케이

나는 매일경제에서도 취재(정치부)를 했었기에, 차라리 취재로 나가는 것이, 남의 왜곡 기사를 성질 죽여가며 편집하고 앉은 것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시간 뒤 jm의 연락이 왔다. "그래. 우리 데스크가 오케이라고 얘기하네."

일기에 등장하는 취재행 얘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아웃사이더

중앙일보로 들어와보니, jm은 뜻밖에 편집부에서 아웃사이더로 도는 편이었다. 그는 당시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는데, 이걸 끝없는 향학열(向學熱)로 보는 게 아니라, 본업은 제대로 않고 자기 잇속만 챙긴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동료가 여럿이었던 것 같다.

이름처럼 성격이 순하고 과묵해서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편이었고 부서 분위기에 다소 위축되어 있었다. 나는 그가 나를 이곳으로 연결해준 '구세주'였기에 단짝으로 지내게 됐다. 그 또한 내게 자기의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힘겹다는 얘기도 했다.

중앙일보에 91년 10월에 왔으니 딱 1년을 넘긴 어느 날, 부서 집들이를 다녀오던 편집부 일행이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했다. 두명은 거의 즉사를 했고, 한 명은 빈사 상태였다. 그 한명이 jm이었다.

참변

병원에 달려가자 그 건장한 몸이 잔인한 운명의 가격(加擊)에 쓰러진듯 누워있었다. 충격과 분노로 심장을 벌떡이는 듯 했다. 핼쓱한 그의 아내가 인사를 했다. 전에도 본 일이 있기에 조근조근 내게 상황을 이야기해줬다.

결국 그는 신장 쪽의 치명상으로 눈을 감았다. 상가에 누나가 쓰러져 울며 "아이고, 아까운 것"이라고 외치던 기억이 난다. 집안의 보물이 날아가는 날이었을 것이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가. 돌아보면 가끔 그런 것 같다. 나를 중앙일보로 당겨놓고는 떠난 그가, 왠지 우연 같지 않은 것이다. 결국 나는 취재기자로 나가려는 뜻을 접었고, 편집에 청춘을 유감없이 내던지며 살았다.


나를 초대하고 돌아간

중앙일보가 내게 해준 것이 많았고 나도 중앙일보에 해준 것이 많았다고 생각하기에 서로 윈윈했다고 생각한다. jm이 초대한 인생은 괜찮은 선물이었다. 잘 지내는가. 모닝커피 같은 친구.

더뷰스 기록의힘 isomis@naver.com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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