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객(論客)과 세객(說客), 그리고 변설가(辯舌家)
논객이란 무엇인가?
논객(論客)은 말이나 글로 자기주장을 잘하는 사람이고, 세객(說客)은 능란한 말솜씨로 유세(遊說)하며 다니는 사람이고 변설(辯舌)은 말을 잘하는 재주를 일컫는 말입니다.
논객(論客)은 옳고 그름을 잘 논하는 사람, 또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논객은 정치, 사회, 문화, 철학 전반(全般)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 현상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改進)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논객은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 사고, 현상, 인물에 대해 평가를 내리고, 해당 사안을 비판(批判)하거나, 다른 논객의 비판으로부터 방어(防禦)하기도 합니다.
논객으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깊은 지식을 갖추고, 이슈를 심도 깊게 분석하고, 결론을 도출(導出)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말(言)이 생명인 직업이기 때문에 뛰어난 언변과 자질(資質)을 갖추는 것이 필수입니다. 지식인으로서의 소양(素養)과 깊은 통찰력, 언변, 능력을 모두 갖춘 논객들은 연예인 수준의 유명세(有名稅)를 얻고 높은 수익을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논객 그 자체를 시작부터 본업으로 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일단 논객으로서 명성(名聲)을 얻고, 상당한 수익을 얻게 된다면 전업 논객이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러한 논객들도 유명세를 얻기 이전에는 다른 본업(本業)이 있던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탄탄한 본업(本業) 없이, 어설픈 아는 척과 나대다가 운이 좋아 성공할 경우 떼돈과 많은 기회를 얻겠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사회적인 매장(埋葬)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고정적인 수입원도 없고 전공분야(專功分野)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 똑똑한 논객이라 할지라도, 모든 방면을 전문가 수준으로 깊이 있게 파악(把握)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논객의 특성상 여러 면에서 의견을 개진(改進)하다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부분에서 헛소리를 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용감(勇敢)하게 말하는 부작용 사례도 많습니다.
분명 이슈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 대한 관심의 원동력(原動力)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는 사회적인 기여(寄與)가 있다고 할 만하나,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아는 척 해야 함은 물론 그때그때 신속하게 반응(反應)해야 하는 만큼 지식이나 사유가 부족할 수 있는 발언(發言)이나 텍스트를 생산하는 경우가 아주 많으므로 논객들의 말은 항상 걸러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객들은 시민들로 하여금 다양한 입장의 의견(意見)을 접하고, 자신의 입장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을 주는, 민주주의(民主主義) 사회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이슈를 두고 찬반양론(贊反兩論)이 있을 때, 찬성 측 논객과 반대 측 논객이 맞붙는 것을 보고 시민들은 어느 쪽이 더 합리적(合理的)인지 가늠하고 자신의 입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수준 높은 논객들은 그만큼 민주주의의 수준(水尊)을 높이는 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세계가 공인하는 최고의 논객(論客)보단 각 시대와 활동 영역별로 유명했던 인물들은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은 논객이라는 표현(表現)보다 문장가, 변론가, 사상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한 시대를 주름잡는 논리적인 논거와 언변으로 사회를 바로잡는 일대 변혁(變革)을 일으킨 장본인들입니다.
서양권(西洋圈)은 그리스 시대 변론가는 리시아스, 이소크라테스, 데모스테네스 등이 있고, 사상가는 소크라테스, 플라톤(소크라테스 제자),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의 제자)기 있고, 로마 시대 변론가인 키케로, 줄리어스 시저가 있고, 사상가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네카(네로의 스승),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있고, 중세 시대 변론가인 아벨라르가 있습니다. 그외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한 번에 열거해 보자면 베이컨, 데카르트, 칸트, 루소, 버트런트 러셀, 마키아벨리, 마르크스, 엥겔스, 에밀졸라 등등이 있답니다.
동양권(東洋圈)은 문장가들이 한 시대를 풍미(風味)한 논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유명한 문장가들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썼던 최치원, 이태백, 소동파 등등과 유명한 철학자들인 공자, 장자, 맹자, 주자 등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라의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자신의 모든 심혈을 다 바친 공로자들입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활동했던 정치 사상가들 역시도 논객으로 기억할 만 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는 법가의 한비자 같은 인물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인물들을 그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知性)적 논객이라고 높이 평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세객이란 무엇인가?
촉(蜀)나라 사신 등지(鄧芝)는 오(吳)나라의 손권(孫權)을 설득하여 촉을 침략하지 않게 했습니다. 위나라가 다섯 방면에 걸쳐 촉나라를 공격하고자 하는 상황에서, 오나라와 촉나라가 다시 손을 잡게 만든 큰 공을 세운 것입니다.
등지를 맞이한 손권은 가마솥에 기름을 부어 끓이고 무사 천 명을 세워 놓아 등지의 기를 꺾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등지는 눈도 꿈적하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협상(協商)에 임합니다. 손권은 등지의 조리(條理) 있는 말솜씨와 당당한 태도에 감명을 받은 나머지, 촉나라에는 등지 같은 인물이 있어 그 주인을 욕되게 하지 않는다고 칭찬했습니다.
등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세객이라고 합니다. 세객의 세(說)는 말한다는 뜻입니다. 세객은 훌륭한 말솜씨를 지닌 사람을 뜻한다. 이런 세객은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여러 제후국(諸侯國)들이 세력을 다투던 전국 시대에, 나름의 국가 경영 방법을 군주들에게 설명하면서 국가 경영의 임무를 맡고자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군주를 만나 왕도 정치를 펼 것을 주장한 맹자도 세객들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세객은 유세객(遊說客)이라고도 하며, 군주의 모사 혹은 책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음으로 글자 그대로의 세객(說客), 즉 훌륭한 말솜씨로 오늘날의 외교관(外交官) 역할을 하는 세객이 있습니다. 등지(鄧芝)가 바로 그런 세객이며,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세객으로 전국 시대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있습니다. 제, 조, 위, 한, 연, 초, 진, 이렇게 일곱 나라가 패권을 다투던 전국 시대에, 소진은 여섯 나라가 연합하여 강력한 진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책(合從策)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장의는 여섯 나라가 진나라와 화평을 유지해야 한다는 연횡책(連衡策)을 주장했습니다.
연횡책(連衡策)이란?
연횡책(連衡策) 또는 연횡설(連衡說)은 중국 전국 시대에, 위(魏)의 장의(張儀)가 주장한 외교 정책입니다.
연(燕) · 위(魏) · 제(齊) · 조(趙) · 초(楚) · 한(韓)의 여섯 나라가 종(縱)으로 동맹을 맺어 진(秦)에 대항하자는 합종설에 맞서서, 진(秦)이 이들 여섯 나라와 횡(橫)으로 각각 동맹을 맺어 화친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장의의 연횡설은 기원전 328년 위(魏)가 진(秦)에 항복하고, 동맹을 맺음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311년 장의에 의해 연(燕)이 진(秦)에 동맹을 맺음으로서 완성되었습니다.
소진은 여섯 나라를 모두 설득(說得)하여 합종책을 택하게 하고 자신은 한꺼번에 여섯 나라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장의의 연횡책에 의해 합종책이 깨어지고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군주를 설득해야 하는 세객은 말솜씨도 중요하지만 담력(膽力)이 무척 세야 했습니다. 한나라의 첫 황제 유방(劉邦)이 황제가 되기 전에, 한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한신(韓信)은 제나라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이에 제나라 왕 전횡은 유방(劉邦)이 보낸 세객 역이기를 분풀이로 삶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손권(孫權)은 바로 이 옛 일을 흉내내어 등지를 위협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세객은 이렇듯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할 때가 많았습니다.
오늘날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들이 유권자(有權者)를 상대로 자신의 포부와 공약(公約)을 설명하는 일을 유세라고 합니다. 유세의 유(遊)는 돌아다닌다는 뜻이며 세는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요컨대 돌아다니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유세객(遊說客)들의 유세와는 다른 뜻이지만, 돌아다니며 말을 한다는 점, 군주(君主)를 상대로 한 것은 아니지만 유권자를 상대로 자신의 포부를 말한다는 점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설가란 무엇인가?
중국 전국시대 말기의 사상가. 한(韓)의 왕족으로, 젊어서 진(秦)의 이사(李斯)와 함께 순자(荀子)에게 배워 뒷날 법가(法家)의 사상을 대성하였습니다. 이사가 간지(奸智)에 뛰어난 변설가(辯說家)인 반면, 한비는 타고난 말더듬이였으나 두뇌가 매우 명석하여, 학자로서는 이사가 도저히 미칠 바 못 되었습니다. 진의 시황제는 한비의 고분(孤憤)·오두(五)의 논문을 보고 “이 사람과 교유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고까지 감탄하였다 합니다.
한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염려하여 누누히 왕에게 간언(諫言)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진의 공격을 받자 화평의 사신으로서 진나라로 갔습니다. 시황제는 한비를 보자 크게 기뻐하여 그를 아주 진에 머물게 하려 하였으나, 이사는 내심 이를 못마땅히 여겨 시황에게 참언(讖言)하여 한비를 옥에 가두게 한 후, 독약(毒藥)을 주어 자살하게 하였습니다. 유저에 “한비자(韓非子)”가 있습니다.
한비자(韓非子)의 신상필벌론
그(한비자)는 현명한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수단은 두 가지밖에 없는데, 하나는 ‘형(刑’ 이요, 다른 하나는 ‘덕(德)’이라고 하였습니다, ‘형’의 의미는 과오를 범한 자를 처형하는 것이고, ‘덕’은 공로 있는 자에게 포상(褒賞)을 하는 일입니다.
사실 인간은 누구나가 형벌을 두려워하고 상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도자나 군 통솔자(統率者)가 그 권한을 행사하되 확실한 증거나 자료에 의해서 상벌권(賞罰權)을 행사하면 장병이며 백성은 아무런 불평과 원망 없이 목숨을 바쳐 싸움할 것이며 협력하는 데 인색(吝嗇)하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지배자나 군 통솔자를 보좌하는 참모(參謀)가 상벌권 행사에 간섭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국 지배자(支配者)의 상벌권이 감소되는 결과도 되지만 그보다는 그 권한을 위임받은 자가 그 권한을 악용하여 자기가 미워하는 자를 이유 없이 처벌하고, 자기 마음에 흡족한 인물에게는 공이 없는데도 상을 주려고 하게 됩니다. 만일 상벌권이 아래에 있는 참모의 의사대로 내갈겨 버리면 휘하 장병(將兵)들은 참모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며, 오히려 통솔 책임자를 경시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명령계통이 확립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벌을 행할 때에는 보좌하는 참모들의 감정적인 의견을 참작(參酌)해서는 안 되고,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를 확인한 다음에 스스로 상벌의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한비자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합니다. 호랑이가 개보다 강한 이유는 호랑이에게 강력한 발톱과 이빨이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 발톱과 이빨을 없애고 그것을 개에게 주게 되면 개는 그 호랑이보다 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통솔 책임자의 상벌권을 참모나 보좌관(補佐官)에게 주게 되면 호랑이가 발톱이나 이빨을 빼앗기는 결과가 되어 그를 두려워하거나 명령이 철저히 실시되지 않고 다만 전체 책임만을 져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