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俠客) 청말10대 무술고수(10) 허세우

 협객(俠客) 청말10대 무술고수(10) 허세우

허세우(許世友. 19005~1985)


호북성(湖北省) 마성현(麻城縣) 승마강구(乘馬岡區) 출신이다.(현재의 河南省 新陽市)

가난한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허사우(許仕友)이다. 모택동이 사우(仕友)는 벼슬아치(仕. 공산당이 타도할 적인 지배계층을 의미)의 친구(友)이니 차라리 세상사람(世)들의 친구(友)가 되라는 의미로 세우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정통 소림무술의 고수이자 중국공산당의 유명한 3성(星) 장군이기도 하다.

 

8세에 소림사에 들어가 중이되어 16세에 하산 하니 8년간 소림사에 머물먼서 소림의 18반 무예를 배우게 된다. 영상(永祥)이라는 법명을 받고 승려생활을 할때 정작 그가 맡은 일은 무술과는 거리가 먼 절의 각종 잡일을 하는 어린 초보 승려일 뿐이었다. 동자승 정도의 나이로 법회나 예불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어 틈이 날때면 몰래 무술을 수련하는 선배승려들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혼자 연습을 하곤하였다. 당시 소림의 규율상 방장스님의 허가 없이는 함부로 무술을 배울수가 없었기에 허세우도 혼자 지만 무술수련을 하는 것이 들통나 징벌을 받게 된다. 그러나 무술을 가르치는 집사무승(執寺武僧)인 정서(貞緖)가 무술을 배우고자 하는 어린 영상의 정성에 놀라 결국 무술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그러나 다른 무술 처럼 소림의 무술도 배우기가 그리 녹녹한 것은 아니었다. 입문에서부터 힘든 수련과정이 시작되는데 통상 삼년은 첩벽(貼壁) 하고 삼년은 조비(吊譬) 한다고 했다. 첩벽이란 방의 벽과 벽 사이에 긴 직사각형의 들보를 끼워넣고 그 위에서 잠을 자는 것을 말한다. 당연히 그 폭이 한뼘 정도에 불과하니 똑바로 누워서 자는 것은 불가하고 옆으로 누워서만 잠을 청할수 있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바닦으로 떨어지니 어찌 잠인들 제대로 잘수가 있었겠는가. 낯에는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늘 찬채로 맡은 일을 해야하며 함부로 이를 떼어낼수 없었다. 이러한 수련은 경공(輕功)을 익히기 위함인데 실제로 후일 허세우는 높은 담을 뛰어넘거나 벽을 타고 뛰어가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조비는 밤에 문설주나 대들보 등 높은 곳을 찾아 거기에 양 팔을 낀채로 매달려 밤을 보내는 것이다. 물론 발이 떨어지면 않되는 것이다. 이것은 팔의 힘을 기르기 위한 것으로 실질적으로 무기나 권법을 사용하는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 외가권인 소림무술의 특성상 강력한 권력(拳力)의 원천인 팔뚝의 근력을 키우기 위한 수련법이다. 이처럼 밤이면 조비나 첩벽을 하고 해가 뜨면 모래주머니를 차고 하루 일과를 반복하며 꼬박 6년을 수련하는 것이다.

무협소설에도 자주 나오는 철사장(鐵沙掌)은 대개 3년의 수련기간을 거친다. 처음 1년은 큰통에 콩을 가득넣고 손가락을 편채로 통의 바닦까지 손가락 끝이 닿도록 연습을 한다.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면 그 다음 1년은 콩 대신 밀가루로 하고 그 다음 해는 모래를 넣어 수련을 하니 이렇게 완성된 철사장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상대방을 독수리가 먹이감을 낚아채듯 하여 단번에 손가락으로 구멍을 낼수가 있다니 말이다.

 

<▲ 부하들 앞에서 무술시범을 보이는 허세우>

 

허세우가 다시 환속하게 되는 이유는 대략 3가지 중요한 사건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1년 허세우는 스승에게 휴가를 얻어 가족들을 만나보기 위해 고향으로 간다. 거기에서 이웃의 소를 방목하는 것을 도우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소 중 한마리가 남의 밭에 들어가 심어놓은 채소를 먹어 치운다. 화가난 밭주인이 허세우를 붙잡고 갖은 욕설과 폭력을 행사하니 가뜩이나 몸이 근질거리던 허세우는 정확히 2번의 발길질과 주먹질 3번으로 상대를 황천으로 보내고 그날밤 소림사로 줄행랑을 친다. 후일 스승인 정서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노하며 허세우를 야단쳐 쫒아버린다. 절에서 쫒겨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유랑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아는 지인이 하는 여관겸 술집에 기숙하며 숨어지내게 된다. 이 여관은 밤이면 도박장을 열어 영업을 했는데 손님이 제법 많아서 재미가 쏠쏠하였다, 그러나 허세우는 도박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방에 틀어박혀 무술연습을 하거나 잠을 자는 것으로 소일했다. 그러던 어느날 밤 "사람살려" 라는 비명을 듣고 허세우는 잠자리에서 깨어나 아랫층의 홀에서 벌어지는 일을 쳐다보았다. 칼을 든 도둑 서너명이 도박장을 습격한 것이었다. 평소 남의 물건 훔치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던 허세우 인지라 참지못하고 몽둥이를 하나 찾아들고 도둑의 우두머리와 대면한다. 그가 칼질을 해데나 날랜 허세우를 어찌 베일수 있겠는가 날아오는 칼 날을 슬쩍피하던 허세우가 들고있던 몽둥이로 두목의 목을 치니 두목은 한번의 비명을 지르고 땅바딱에 쓰러져 버린다. 허세우가 도둑의 두목과 혼전을 벌이는 틈을 타 그 부하중 하나가 허세우의 뒷편을 급습한다. 막 두목을 자빠트린 허세우는 뒷목이 수상하자 곧장 몸을 돌려 뛰어오르며 그자의 뒷덜미를 날라차니 그자도 소리없이 바닦에 고꾸라진다. 도둑을 맞은 사람들이나 아직 살아있는 도둑들이나 순식간에 두명의 도둑이 허세우의 몸놀림에 비명횡사하니 크게놀라 뿔뿔이 도망치고 허세우 혼자만 만게 된다. 허나 지인에게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허세우는 곧 짐을 싸서 그날 밤 다시 기약없는 발길을 돌리게 된다.

하지만 당장 그에게는 살기위해 먹는 문제가 시급했다. 아무리 궁리해봐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군인이 되는 것이 최상책이라 판단하고 낙양으로 가서 군벌 오패부(吳佩孚) 휘하의 군대에 들어간다. 오패부는 무협을 매우 좋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고수중 하나인 천진의 이분이 죽자 그를 위해 100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유리 영붕(시신을 안치해둔 것을 가리는 병풍)을 기증하며 부하들에게 그 시신의 운구에 참여케 한다. 어째거나 이 부대에서 허세우는 오랫만에 만족스러운 생활을 보낸다. 우선 의식주가 해결되니 원초적인 민생고의 고민이 사라졌으며 훈련시간에 무술연습을 하니 이또한 그가 바라던 바라 비록 나이는 어린 신참이지만 비교적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허세우가 당직을 서던 날 사건이 터진다. 평소 깐깐하기로 소문난 고참이 허세우가 해놓은 내무반의 청소상태가 불결하다며 트집을 잡는 것이었다. 사실 청소가 다 거기서 거기라 허세우가 몇마디 말대꾸를 하였더니 고참은 욕설을 내뱉으며 빰을 서너대 갈긴다. 가뜩이나 생트집에 속이 끓던 그는 참지못하고 발길질을 한번하는데 그것이 급소에 적중해 고참은 즉사하고 만다. 그러나 지난번의 두 차례의 도망은 이번에는 불가능하였다. 현장에서 잡혀 7일을 구금되어 있으면서 처벌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즉사한 고참이 오패부와 먼 친척벌이라 판결은 불리할수 밖에 없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군법회의서 사형이 언도된다. 다행히 집행을 기다리는 그에게 구원의 손길이 전해지니 그의 외삼촌이 오패부를 찾아온 것이다. 외삼촌이 오패부와 애기를 나눈 후 오패부가 허세우를 부른다. "듣자니 네가 무술을 좀 한다지? 어디 구경좀 하자" 생뚱맞은 오패부의 요구에 멍해있는 허세우에게 외삼촌이 소리친다. "대장께서 너의 무예솜씨를 보고 싶어하시니 너의 절기를 보여드려야!" 그 소릴를 듣고 이내 눈치를 챈 허세우는 힘을 주며 외마디 소리를 지르자 수갑이 절단나고 만다. 깜짝놀란 오패부는 허세우의 무공을 아껴 석방을 시킨다. 살아난 허세우는 군공을 쌓아 소대장까지 승진하게 된다.

1926년 10월 10일 혁명군인 북벌군이 무창(武昌)을 공격하자 본래 적대편에 속했던 허세우가 몸담었던 북양군벌(北洋軍閥)은 재빨리 변신하여 국민당의 혁명군에 합류한다. 허세우는 이 시기에 고향 사람이자 공산주의자인 부맹현(傅孟賢)과 호덕괴(胡德魁)를 만나게 된다. 이들로부터 공산당을 접한 그는 상당한 호감을 느낀다. 그 와중에 장개석이 412 반혁명사변을 일으키자 허세우는 국민당을 떠나 험난한 전도뿐인 공산당에 가입하여 고향 부근의 대별산(大別山)으로 향하여 농민혁명운동에 투신한다. 

 

허세우의 고향(하남성 신양현)은 예로부터 중원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요지라 전쟁의 여파가 늘 미쳤을 뿐아니라 도적떼와 다름없는 군사들의 침탈에 이곳 백성들의 고초는 말이 아니었다. 이런 영향으로 이고장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간단한 무술을 익히고 있었다. 허세우는 이곳에서 농민자위대를 조직하여 대장겸 포병대 대장을 하며 군사이자 농민인 이들에게 소림의 18반무예를 가르치며 조련시킨다. 당시 이 지역에는 지주들이 후원하는 '홍창회(紅槍會)' 라는 비밀결사가 있었다. 본래는 민간의 자발적 조직이었으나 토호들이 이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부리고 있는 것 이다. 따라서 이들 지주들에게 땅을 붙여먹고사는 소작농들이나 하층민이 중심이되 만든 공산당자위대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일 수 밖에 없었다. 

어느날 지주들의 사주를 받은 마성(麻城) 복전하(福田河)의 홍창회가 800여명을 소집하여 이웃해 있는 허세우의 고향 승마강(乘馬岡)으로 쳐들어 온다. 소식을 접한 허세우는 복전하와 승마강의 중간 지점인 조사전(祖師殿)에서 일전을 벌일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을 조사전에 먼저 파견하여 그곳을 지키며 적의 동정을 살필것을 지시한다. 조사전은 해발 400미터 높이의 산으로 그위에 조사전이라는 사당이 있어 당지 사람은 흔히들 조사전이라 부르곤 하였다. 복전하의 홍창회가 쳐들어 올려면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는데 산세가 험해 적은 무리로도 쉽게 적을 물리칠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는 곳이다. 조사전에서 적의 침공을 알리는 3발의 대포 소리가 울리자 허세우는 본진의 무리를 이끌고 조사전으로 간다. 선발대가 구축해 놓은 진지에서 쳐들어 오는 홍창회를 보니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붉은기를 앞세운 기수대 뒤로 옷이며 전신을 온통 붉은 주사로 칠한 자들이 붉은 창을 꼬나잡은 채 행진을 하고 있는 꼴이 볼만하였던 것이다. 이들을 선도하는 자의 형용은 더더욱 괴이하여 머리는 산발한 채 한손에는 팔괘도가 그려진 깃발을 쥐고 다른 손엔 귀두도(鬼頭刀)를 쥔채 흡사 술주정뱅이 처럼 흐느적 거리며 한마리의 양을 끌며 홍창회의 무리들을 이끌고 오는 것이었다. 입으로 주문을 외우는데 "곤륜산이여 관세음이여 금강같이 굳은 몸을 주시사 적의 총포가 우리를 해치지않게 하시고 그들의 예리한 칼날도 우리 몸을 범하지 않게 하소서---"라는 내용을 주저리며 끌고 오던 양의 목을 쳐 그 피를 무리에게 뿌리니 홍창회 무리는 삽시간에 광란의 도가니로 빠지며 이내 큰 함성을 지르며 산위의 농민자위대를 향해 돌진하는 것이었다. 위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허세우는 곧장 칼을 잡고 적진을 선도하던 귀신 못습의 주술사에게 돌격해 "이 어르신 칼이 어디 너의 신령한 몸을 뚫는지 시험해 보자꾸나!" 라며 큰소리고 일갈하며 내리치니 곧장 머리와 몸뚱이가 따로노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목도한 홍창회의 진영이 술렁이자 허세우는 자신의 농민자위대를 독려하먀 자신을 따라 돌격할것을 명하니 그 거센 기세에 홍창회진영은 무너지고 도망치니 허세우가 이끄는 농민자위대는 무인지경을 가듯 거침없이 홍창회의 진영을 유린하며 초토화 시킨다.

승기를 탄 허세우는 내쳐 홍창회의 본진인 무장산(武裝山) 새응봉(塞鷹峰)으로 천여명의 농민군을 이끌고 쳐들어 간다. 홍창회는 산중 가장 험한 두 개의 봉우리를 점령하고 그 주위를 돌로 쌓아 성을 구축해 놓았는데 여간 견고한 것이 아니었다. 포를 쏘며 진격하는 농민군의 위세에 놀란 한개의 적진(봉우리)은 쉽게 점령을 하였지만 나머지 적진은 그 저항이 격력하였다. 나머지 적진의 점령을 위해서 허세우 자신도 목에 큰 부상을 당하는 격전을 치른 후에 겨우 점령을 하여 지역내 토비(土匪)인 홍창회를 섬멸하게 된다.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 간의 치열한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공산당 정권이 대륙을 점령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그가 이 기간에 얻은 직책은 대충 이렇다. 홍4군군장(紅4軍軍長), 8로군 129사 386여단 부여단장, 산동종대(山東縱隊) 제3여단 여단장, 산동종대 참모장, 산동군구(山東軍區) 사령관, 남경군구(南京軍區) 사령관, 국방부 부부장(차관)겸 남경군구 사령관, 중앙군사위원회상임위원(중국의 최고군사결정기구), 1955년 상장(上將) 진급. 등등

 

1985년 3월 상해화동의원(上海華東醫院)에서 간암 판정을 받는다. 평생을 마셔온 독주가 문제인 것이다. 주변의 사람들이 북경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을 권하나 허세우는 거절하고 1985년 9월 초 자신이 사령관으로 근무했던 남경군구에 마련된 특별입원실인 중산능(中山陵) 8호에 입원한다. 9월 30일 허세우의 병세가 위급하다는 보고를 받고 10월 초 북경에서 등소평 당시 주석, 양상곤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 남경으로 온다. 10월 22일 병상을 지키던 간호사가 등소평과 양상곤이 왔음을 큰소리로 알리나 두 눈을 감은 허세우는 반응이 없다. 잠시 후 허세우의 입술이 떨리며 외마디 소리를 내며 숨을 거둔다. "나, 끝났어" 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는 숨을 거두니 1985년 10월 22일 16시 57분이며 향년 81세이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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