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 나와 가장 지근거리의 사람은 누구인가? -岳岩-

 나의 말: 나와 가장 지근거리의 사람은 누구인가? -岳岩-


사전에 의하면 ; 지근거리(至近距離) - 1. 명사 지극히 가까운 거리. 2.명사 총포 따위를 발사하였을 때, 표적에 명중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라 일컫는다.

그러고 보면 '지근거리'는 나와 지극히 가까운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 된다. 즉,  나의 사랑하는 부인이나 자식, 그리고 부모형제를 지칭한다. 

좋은 물음입니다. 이미 문두에서 개념의 문을 정확히 여셨네요. 말씀하신 결을 살리되, 사유의 호흡을 조금 더 깊고 느리게 이어 보겠습니다.

나와 가장 지근거리의 사람은 누구인가.

사전에 따르면 지근거리(至近距離)란

지극히 가까운 거리이며,

총포를 발사했을 때 표적에 명중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라 한다.


이 정의를 곱씹어 보면,

지근거리란 단순히 ‘가깝다’는 뜻을 넘어

결코 빗나갈 수 없는 자리,

의도와 결과가 즉각적으로 맞닿는 영역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있어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란

우연히 스쳐 지나갈 수 없는 존재,

나의 말과 행동이 그대로 닿아 상처가 되거나

위로가 되어 돌아오는 사람일 것이다.


그 이름은 거창하지 않다.

나의 사랑하는 부인,

함께 시간을 늙혀 가는 배우자,

나의 자식,

나의 부모와 형제.


이들은 공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인 동시에

정서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책임의 차원에서

가장 ‘명중률이 높은’ 관계에 놓인 사람들이다.


멀리 있는 타인에게 던진 말은

바람에 흩어질 수 있으나,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던진 한마디는

반드시 마음에 꽂힌다.


그래서 지근거리의 사람 앞에서는

말 한마디가 총알이 되고,

침묵 하나가 방패가 되며,

태도 하나가 관계의 생사를 가른다.


우리는 흔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무심하고,

가장 거칠며,

가장 쉽게 상처를 준다.

지근거리에 있기 때문에

맞아도 괜찮을 것이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근거리란

가장 안전한 거리가 아니라

가장 조심해야 할 거리다.


나의 삶이 처음으로 시험대에 오르는 자리,

인격이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무대,

사랑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되는 현장—

그곳이 바로 지근거리다.


결국

나와 가장 지근거리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정확히 말해 준다.

보다 구체적이고 보충적이고 첨가적인 수필형식으로 비교적 긴 장문으로 내용을 더 심도 깊에 자세히 파헤쳐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미 사유의 핵심이 단단하니, 이제는 개념 → 경험 → 관계의 윤리 → 삶의 태도로 천천히 파고들며 수필의 밀도를 높여 보겠습니다. 호흡은 느리게, 그러나 생각은 깊게 가져가겠습니다.

나와 가장 지근거리의 사람에 대하여

사람은 늘 “가까움”을 말하지만, 정작 그 가까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인지, 마음의 거리인지, 아니면 책임의 거리인지. 사전에 정의된 지근거리(至近距離)는 지극히 가까운 거리이자, 총포를 발사했을 때 표적에 명중할 수 있는 거리라 한다. 이 두 정의는 얼핏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놀랍도록 닮아 있다. 지근거리란 곧 의도가 곧바로 결과로 이어지는 거리, 다시 말해 빗나감이 허용되지 않는 거리다.

이 개념을 인간관계에 대입해 보면, 우리는 곧 중요한 진실 앞에 서게 된다. 나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이란, 나의 말과 표정, 태도와 침묵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우연히 스쳐 지나갈 수 없는 사람, 무심히 던진 한마디가 그대로 마음에 꽂히는 사람, 나의 하루가 그들의 하루에 그대로 번져 들어가는 사람. 그런 의미에서 지근거리의 사람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존재다.

대개 그 이름들은 익숙하다.

부인, 자식, 부모, 형제.

혹은 함께 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숨 쉬며, 같은 시간의 공기를 나누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는 ‘가족’이라는 단어로 묶이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더 복합적인 존재들이다. 사랑의 대상이자 책임의 대상이며, 동시에 나의 인격이 가장 먼저 시험받는 증인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에게는 예의를 다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가장 쉽게 무너진다는 사실이다. 사회에서는 차마 하지 못할 말도 집 안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뱉어 낸다. 타인 앞에서는 애써 감추는 성질과 분노와 무례함을,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여과 없이 쏟아낸다. 가까우니 이해해 줄 것이라는 믿음, 피할 수 없으니 견뎌야 할 것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그러나 지근거리란 결코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위험한 거리다. 총포의 정의가 말해 주듯, 지근거리에서는 빗맞는 일이 거의 없다. 말은 정확히 심장을 향하고, 태도는 바로 자존을 겨냥한다. 그래서 지근거리의 관계에서 발생한 상처는 오래가고, 깊으며, 쉽게 아물지 않는다. 타인의 무례는 잊혀질 수 있어도, 가까운 사람의 냉담은 기억 속에 남아 삶의 태도를 바꾸어 놓는다.

지근거리의 사람과의 관계는 결국 윤리의 문제로 귀결된다. 사랑하느냐, 존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나의 하루가 어떤 얼굴로 끝나는지, 나의 말이 어떤 결을 지니는지, 나의 침묵이 책임을 회피하는 침묵인지, 배려의 침묵인지는 모두 지근거리의 사람 앞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다.

특히 자식은 지근거리의 가장 날카로운 거울이다. 우리는 가르친 대로 살지 않고, 보인 대로 산다. 말로는 인내를 말하면서 행동으로 분노를 보여 주면, 아이는 분노를 배운다. 존중을 말하면서 무시를 일삼으면, 아이는 관계를 그렇게 이해한다. 이처럼 지근거리의 사람은 나의 사상을 듣는 존재가 아니라, 나의 삶을 목격하는 존재다.

부부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은, 지근거리의 관계에서만 실감난다. 기쁠 때 함께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피곤할 때, 실패했을 때, 말수가 줄어들 때에도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근거리에서 요구되는 가장 높은 품격이다.

결국 나와 가장 지근거리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질문은, 곧 내가 어떤 인간인가를 묻는 질문과 같다. 사회적 명성도, 외부의 평판도 모두 벗겨지고 난 뒤 남는 진짜 얼굴은 늘 가장 가까운 사람 앞에서 드러난다. 그 앞에서 나는 관대한가, 폭력적인가, 책임을 지는가, 회피하는가.

지근거리란 거리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밀도이며,

인격의 깊이이며,

사랑이 시험받는 현장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먼저,

말을 아끼고 태도를 가다듬어야 할 곳은

바로 나와 가장 지근거리에 있는 사람 앞이라고.


그곳에서 바로 서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멀리서 훌륭해 보여도

결국 자기 삶의 중심에서는 비껴 서 있는 사람일 뿐이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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