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계글 ;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

 불교관계글 ;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

나란타 대학 유적

불교 발상지는 인도이다. 그러나 현재 인도 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이고, 불교는 겨우 0.9%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인도에는 불교유적만 있고 불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겠으나 지금까지는 이슬람의 침입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불교 쇠퇴가 단순히 이슬람의 침공만이 아니라 그 외에 적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즉, 7~8세기에 불교는 이미 대중적 지지 기반을 상실했고, 불교의 생명력이 병든 상태였다. 그리하여 불교가 이슬람이 침공하기 이전에 이미 지지기반을 상실했기 때문에 쇠망할 수밖에 없었다. 

무신론적 철학체계를 가지고 시작한 불교가 「초기불교 ― 부파불교 ― 대승 중관론 - 대승유식론 ― 밀교」로 변하면서 유아론(有我論)과 수많은 신(神)의 개념이 등장하고, 차츰 힌두화의 길을 걸으면서 힌두교의 그것과 차이가 없어지고, 불교는 자신의 독자성을 잃어갔다. 즉, 불교 쇠망에는 불교 자신의 자연사 현상이 한 몫을 했다는 말이다.

당초 상인들과 재가신도, 그리고 정치세력의 지원을 받았던 불교는 승가에 필요로 하는 모든 물자와 사원조성에 필요한 재정적 지원까지 풍부하게 시주 받아, AD 1세기경부터 불교교단은 장원제도(莊園制度)의 바탕 위에서 경제적 기반을 다져 엄청난 토지를 지니게 됐다. 

이렇게 부를 축적하게 되니, 게을러진 비구들이 탁발을 하려하지 않고 사원에 들어앉게 돼, 근검하는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점차 잃어갔다.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된 것도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법에 대한 철학적 연구에만 정신이 팔려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본분을 저버린 것에 상당한 원인이 있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인도인들이 차츰 불교를 등지게 됐다. 

그렇다면 왜 인도의 불교는 병들게 됐을까? 

가장 큰 원인으로 힌두교 의식을 받아들이면서 불교 본래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7~8세기경 불교교단이 힌두교 의례의식을 받아들이고, 힌두교 정신을 받아들이면서 9~10세기경부터 불교는 힌두교와 구분할 수 없게 됐다. 따라서 대중적인 지지도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방대한 불교경전을 요약본으로 만들고, 그 요약본을 다시 다라니(陀羅尼, dharani)로, 다라니를 만트라(眞言, mantra)로 줄였는데, 일반인들은 만트라만으로는 불교를 이해할 수 없었던 점도 불교가 지지기반을 상실한 이유였다. 

그러다가 보니, 차츰 시주가 줄고 재가자의 발길이 멀어져가면서, 가난해진 승려들은 재가자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 여러 보살들을 내세웠다. 

“힌두 신들이 부처님께 귀의해 보살이 됐기 때문에, 힌두 신전에 갈 필요가 없다. 여기로 오면 각종 보살이 너희들의 소원을 이루어 줄 테니, 여기 와서 빌고 시주하도록 하라…” 이런 궁색한 자구책이 오히려 불교의 힌두화를 재촉했다. 

그러한 상황에 이슬람 세력이 쳐들어와서 1203년 불교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비크라마실라(Vikramaśīla) 사원을 파괴함으로써 인도에서 불교는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상을 정리해보면, 인도역사에서 불교가 멸망한 원인은 크게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첫째, 내부적 요인으로 불교 자체가 병들고, 힌두화 돼가서 점차 불교 나름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런 내부적 요인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불교의 학문화이다. 

초기불교가 차츰 분열을 해서 부파불교가 되면서 소위 아비달마불교라는 이론중심의 불교가 번성하고, 승려들은 대중을 위한 노력보다 붓다가 거부했던 형이상학적 논의에 치중하기 시작했다. 

즉, 부파불교는 일반인을 위한 대중적 노력보다 형이상학적인 논의에 치중하는 불교이론의 전문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신도들이 사원을 찾아가면, 연기, 팔정도, 사성제, 육바라밀 할 때까지는 좋았는데, 차츰 공(空), 색(色)이 등장하면서, 알아듣기 어려워진 것이다. 힌두교는 그냥 믿으면 되는데, 까다로운 이론을 우선시하는 불교는 점차 대중들의 호응에서 멀어지게 됐다. 

신도들이 사원을 찾아갈 때마다 무슨 이론을 가르치려고 하니 짜증이 나는 것이다. 배우기 너무 어려운 것이 민중으로부터 외면 받게 된 이유이다. 불교가 어려운 이론으로 무장하고 대승화되면서, 단순하게 힌두교 신들에게 제사지내며 살던 단순 무식한 대중에게 거부감이 나타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론보다는 가까이에서 항상 눈에 보이는 신상을 믿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5세기 전반 찬드라굽타 2세의 아들 쿠마라굽타 1세에 의해 나란다대학이 창건됐다. 그리하여 나란다대학으로 대표되는 불교는 토론과 공부를 통해 ‘학문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초 석가모니불이 불교를 창시했을 당시에도 엘리트 중심의 불교였다. 그러던 것이 대승불교의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이념 아래 민중들에 지지기반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 도로 학문중심 내지는 힌두교적 불교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학문불교는 대중적 지지가 없는, 대중의 생활에 지침이나 도움을 주는데 인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승원에서 학문연구에 몰두하고, 자기들끼리의 지적 유희에 빠져있는 사이 대중들은 불교에 등을 돌리고 힌두교로 빠져들고 있었다. 

“학문연구를 핵으로 하는 이러한 불교는, 학문을 뒷받침하는 광장으로서의 사원과 인재를 잃을 때, 존재의 실체를 상실하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 야스아키(일본) 

다시 말해 불교가 출세간의 종교가 됨으로써 사회와 단절된 교단조직을 갖게 됐다는 점이 불교 쇠퇴의 주요 요인이라는 것이다. 

이슬람이 인도에 들어왔을 때 불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힌두교도 있었고, 자이나교도 있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힌두교는 물론 자이나교도 살아있고, 심지어 조로아스타교조차도 살아있다. 그런데 유독 불교만 사라지게 된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결국 불교는 참선, 고행을 강조하고 이론불교에 몰입돼 있으면서 민초들의 삶 구석구석에 세심한 눈길을 주지 못했다. 밑바닥 사람들은 굿을 하든지 푸닥거리를 해야 사는 재미가 날 텐데 싱겁게 벽만 쳐다보라거나 이해할 수도 없는 어려운 문자로 설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악순환만 거듭돼 신도와 승려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토속신앙을 접수한 힌두교를 당해내기 어려웠다. 이러한 점은 오늘날의 불교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 

승려는 대중을 위한 노력보다 형이상학적 논의에 치중하고, 힌두화한 불교라 할 밀교(密敎)가 성행하면서, 지각 있는 승려들은 달마(達磨)처럼 동쪽(중국, 티베트)으로 떠나가게 된 것이다. 

때문에 인도에서 소멸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원인은 부파불교가 소승의 딱지를 받게 되고, 부족함이 없는 사원에서 법(法)에 대한 철학적 연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본분을 상실해 민중의 외면을 받은 것에 있다. 

불교는 카스트제도의 부정이라는 멋진 교의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려들은 자기 학문에만 몰입하고, 부파간의 경쟁에만 몰두한 나머지 대중들을 의식화하는데 소홀했다. 대중은 이미 힌두교에 의해 세뇌된 나머지 카스트제도의 불편함에 길들여 있었으므로 불교의 평등정신에 큰 매력을 못 느끼고, 불교교의 우수성이 힘을 잃고 있었다. 

이 외에도 불교 멸망의 내적 요인이 많겠으나 확실한 것은, 대중에 유리된 출가자 중심의 승원불교는 대중으로부터 버림받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승원 중심의 불교는 불교의 저변확대에 대한 실패를 의미했다. 이에 따라 출가교단을 적극적으로 외호(外護)해야 할 재가세력이 줄어들어 승가는 그대로 방치돼 소멸하게 된 것이다. 

2) 불교의 힌두화이다.

인도불교의 쇠퇴를 이야기 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의 하나가 ‘불교의 힌두화’이다. 불교가 힌두화함으로써 불교적 정체성을 상실한 것이 불교 쇠퇴의 가장 큰 원인이다. 

대승의 보살과 신들은, 재가자에게 필요해 보이는 힌두교의 신들을 이름만 달리해 불교로 편입시킨 것이다. 이러다가 보니, 서민들은 다를 것 없는 자기 집 근처의 힌두 신전에 있는 신을 찾아가면서, 불교는 더욱 쇠잔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나는 지금 인도의 뿌네대학(University of PUNE)에 다니면서 힌두교를 굳게 믿는 교수들 밑에서 수업을 듣고 있다. 그들은 서슴없이 불교와 힌두교는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왜 불교가 힌두교와 같은가라고 물으면 그들이 답하는 것은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여래장, 불성)이 같다는 것이다. 우리(불교인)가 아무리 그들과 같지 않다고 말해도 그들은 여전히 불교와 힌두교는 같다고 말할 것이다. 이제 방편이라는 이름으로 오해를 받을만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계속 변명하기보다는 차라리 오해받지 않을 붓다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 허정 스님

둘째 외부적 요인이다. 

외부적 요인으로 힌두교의 융성과 경쟁 종교인 불교에 대한 집요한 박해, 그리고 이슬람교(회교)의 침입에 따른 무자비한 파괴로 1500년 전통의 인도 불교는 1203년 막을 내리게 된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의 투르크계 가즈니(Ghazni) 왕조는 이슬람교도로서 986년부터 인도 정복을 시작했다. 이들은 북인도 원정에서 이민족의 이슬람교로의 개종, 노예와 물자의 약탈이 주된 목적이었으므로 점령지를 오랫동안 지배하지 않았지만 불교나 힌두교의 사원과 성지를 파괴하고 보물을 약탈했으며 승려를 살해하는 역사상 유래가 없는 참극을 자행했다. 

그리고 그 후 구르(Ghur) 왕조에 이르러서, 1203년 당시 불교(밀교)의 교단 근거지라 할 비크라마쉴라(Vikramaśīla) 사원이 파괴되면서 불교는 인도 본토로부터 그 모습을 감추어 버리게 됐다. 

결국 불교의 고향 인도에서 불교가 쇠망한 원인은 다양한 신들로 이루어진 힌두교에 동화돼 정법을 지키지 못한 데 근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불교운동이라 할 대승불교가 나왔으나 대승불교 역시 초기 대승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힌두화에 앞장섰다. 힌두화 된 불교는 부처님이 그토록 비판했던 주술주의 의례주의를 불교 안에 도입했고, 불교는 서서히 힌두교에 동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7세기에 현장 스님이 인도의 곳곳을 탐방하며 기록한 내용 중에, “신드(Sindh) 지역의 수행승이 처자식과 함께 살면서 가축도 기르고 살생을 일삼는다.”는 대목이 있다. 이렇게 출가자들의 타락과 부패, 교단의 무능함, 신도 양성의 부재 상황, 거기에 이슬람의 침공이 결정적으로 불교를 멸망시킨 것이다.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해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을 살해하고, 드디어 1203년 불교는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이처럼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원인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 

인도에서 불교가 힌두화 되고 이슬람의 침략으로 망했다는 사실이 현재 한국불교가 처해 있는 상황과 너무 유사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즉, 이슬람교가 불교에 대체했듯이 기독교가 불교세력을 대체하려고 하고 있으며, 불교가 힌두화 했듯이 우리나라에선 49재나 천도재, 우란분재와 같이 방편불교가 성행하고, 제불보살을 신격화하는 기도의식, 기복불교가 성행해서 기복으로 충당하려는 사찰재정 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관세음보살로 대표 되는 ‘관음신앙’, 아미타불로 대표 되는 ‘정토신앙’, 지장보살로 대표 되는 ‘지장신앙’과 같이 타력신앙은 유일신교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어서 불교의 특징이 점차 희박해지고 있다. 바로 이런 현상이 인도에서 대승불교가 힌두교와 유일신교인 이슬람에 흡수 된 현상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과 소통하기엔 너무 큰 간격을 지니고 있는 어려운 한문경전, 그리고 한문경전을 해석함에 있어서도 정법 대신 현학적으로 설명하려는 불명확한 학문적 태도, 이러한 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나 하는 것이 한국불교 미래에 내려진 과제라 하겠다. 지금처럼 대학을 졸업하고도 불교경전을 들여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불교가 대중화되기엔 요원하다고 하겠다. 

하루속히 쉬운 불교, ― 기독교 성경처럼 누구나 읽어도 알 수 있는 쉬운 경전이 나와야 하고, 현대화라는 세련됨을 도입해야 시대흐름에 밝은 젊은이들의 호응을 받을 것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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