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진실, 들어가는 이야기

 동양철학의  진실, 들어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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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철학(東洋哲學)은 인도, 이슬람,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의 철학이다. 동양이란 범주 자체가 하나의 범주 안에 묶기는 너무 다양한, 즉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이 강하다고 현대에 와서 비판받고 있기 때문에(중동과 동북아시아를 한 범주로 묶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범주로 나눠야 할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동양철학 이란 말은 대체로 중국과 인도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유학, 노장철학, 불교 등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약 BC 5세기 전후로부터 여러 학파를 통해 계승되어 왔다. 주로 다루게 되는 주제로는 윤리학, 우주론, 인식론 등이 있다.

동양철학(東洋哲學)의 진실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공간, 이 세상을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정신을 단련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동양철학의 자기 비하나 맹목적 서구지향의 사고에서 탈피하고 보편적 삶의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동양철학의 진실 - 대문

동양철학은 삶의 가치에 바른 위상을 정립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상(思想)의 황금기라고 하는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 중에서 동양 사상의 큰 줄기를 형성하면서 두 축의 역할을 해온 사상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를 꼽을 수 있다. 춘추(春秋)와 전국(戰國)이라는 당시의 상황은 극도의 혼란한 사회 정세가 지속되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연스럽게 사상과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맹(孔孟)에게서 완성된 자기완성을 통한 후에 사회로 베풀어져 나가야 한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유가(儒家)와 노장(老莊)에게서 이룩된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행위를 버리고 저절로 그러한 상태의 자연을 따르라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道家) 사상은 2000년 이상을 동양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 인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 사상적 기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특히 두 사상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마지막 항목인 각 사상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유가적 입장에서 사고한다면 그 오해는 영장 중의 영장이 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일류 지향, 출세 지향의 모순점에 빠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현대 사회까지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무조건 출세해서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이러한 유가적 입장의 폐해가 아닌가 한다.

  물론 도가적 입장에서도 그 오해나 오류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인위적 표현을 허상으로 여긴다면 더 이상 현실에서 살아갈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 비현실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은 그 사상적 조화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적응하는 것이 진정한 동양 사상의 조화로운 발전이 아닌가 한다.

동양철학의 진실

R. 뿔리간드라(Puligandla)라는 인도 출신 미국 철학자가 쓴 『인도철학』이라는 책 속에 샹캬학파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샹캬의 견해가 모든 사물을 끊임없는 운동과 변형상태에 있는 분자, 원자, 전자 따위의 복합체라고 하는 현대 물리학의 발견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흥미있다"고 했다. 이에 대한 주석에서는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카플란(Joseph Kaplan)은 "서양 철학자의 사유 과정은 물리학자들의 그 것과 상충하고 있지만, 샹캬철학자는 그에 공감한다. 서양 철학자들이 얼마간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고전적 뉴튼 물리학에 있어서 뿐이다"고 말했다고 적었다.

서양철학이 공감하는 것은 뉴튼의 고전물리학에 머물러 있지만 사물을 역동적 에너지의 복합체로 보는 인도철학(샹캬)의 이론은 현대의 물리학과 완전히 조화된다는 설명이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에서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한다. 동양의 사유가 그저 허황된 상상 속의 생각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다. 서양철학이 사유에 대한 표리만을 대상으로 유희하고 있었다면 동양철학은 심층을 꿰뚫고 근본을 파헤치고 있다는 얘기이다. 현대물리학의 상대성 이론이나 양자론을 직관적으로 해부해 보면 그들의 사유가 이천년을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서양 기독교 문화가 생각해낸 역사의 기간이 고작해야 몇 천 년에 머무르는데 반해 무량수의 영겁을 넘나들었던 동양사상이 환타지가 아닌 진실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면, 너무 깊고 넓은 지식이 문명의 현실적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양(量)에 치여 질(質)에 소홀하고, '시간'에 천착하다 '지금'은 간과해 버린 그들의 시선이 너무 앞서 멀리 간 때문이라 여겨진다. 

1. 동양철학과 마음의 문제 소개

 동양철학에서는 마음을 대단히 중요한 키워드로 삼고 여러 철학적 논쟁들을 해결해왔다. 도가, 유가, 불가, 심지어는 법가까지 통틀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죠. 일단 여러분들이 동양철학의 여러 분파가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를 이해하기 전에, 성리학자들이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 정리하고 해결하려 했는지를 제대로 알아야 나머지 분파의 논쟁들도 이해하기 수월할 것이다. 사실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동양철학의 주류는 엄밀히 성리학이었기 때문에 성리학자들을 중심? 타겟?으로 다양한 논쟁들이 펼쳐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도가, 불가, 법가 사상들과 벌인 다양한 논쟁들을 알아보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마음을 둘러싼 분파들 간의 여러 논쟁들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동양철학사를 이해하기 전에 동양철학자들이 해결하고자 한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알 필요가 있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회의주의에 맞서기 위한 긴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당시 그리스 사회를 휩쓸던 회의주의에 맞서기 위해 이데아론을 제창하며 철학을 해왔다. 다시 말해 지성적인 측면에서의 회의주의가 서양철학의 앙숙이었다.

 사실 동양철학도 서양철학과 목표는 비슷하다. 회의주의에 맞서는 것이다. 하지만 동양철학이 맞서고자 했던 회의주의의 내용은 서양철학과는 맥락이 살짝 다르다. 서양철학의 회의주의는 주로 소피스트 같은 느낌의 회의주의이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은 진리, 진실을 분명히 밝혀 인간의 지성을 밝히려는 투쟁을 벌여왔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동양철학의 회의주의는 욕망이 소용돌이 쳐서 천하에 메드맥스의 시대를 초대할 수 있는 회의주의다. 다시 말해 동양철학은 메드맥스 시대가 도래하지 않도록 천하에 질서를 가져오도록 노력해온 여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성리학자, 도가 학자, 불교 학자, 법가 학자 모두 마찬가지다.

 정리하자면 동양철학자들은 천하의 혼란을 일으키는 잡설들을 회의주의로 설정하고, 이러한 회의주의에 맞서고자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이다. 수많은 동양철학자들이 이러한 회의주의를 극복하고자 백화쟁방, 즉 수백개의 꽃으로 피어나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했다. 춘추전국 시대부터 말이다. 그리고 마음에 대한 논의도 대단히 핵심적인 키워드로 등장하게 된다. 일단 마음을 둘러싼 다양한 논쟁을 살펴보기 전에 성리학자들의 리기론을 간단하게라도 정리해보고 넘어가자. 그래야 동양철학에서 바라보는 마음의 대략적 그림을 알 수 있게 된다.

2. 리기론 개괄

 리기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태극 -> 이, 기로의 분화 -> 이것이 세상을 움직이는 메커니즘 순으로 파악하는 게 쉬워 보인다. 최소한 주희 이래로 이어진 성리학자들은 세상을 움직이는 보편적인 법칙이 있어야만 회의주의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보편적인 법칙은 서양철학이나 과학에서 말하는 법칙보다 외연이 넓다. 가령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등은 주로 자연의 영역에서만 적용된다. 그래놓고 자연법칙을 보편적인 법칙이라고 수용하고 사용한다.

 하지만 동양철학에서는 이러한 법칙이 보편적인 법칙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자연 영역까지 포함한 설명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인간의 도덕이나 예술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이러한 자연법칙은 당위나 가치판단의 영역과는 아예 다른 영역에 놓여있다. 따라서 성리학자들은 자연법칙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양철학자들이 보편적이라고 생각한 법칙은 무엇일까? 바로 태극이다. 태극은 법칙의 이름이다. 가치, 당위, 자연 등 우주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영역을 포함해서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기 때문에 서양의 자연과학 법칙과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성리학자들은 태극이 없다면 인간의 지식, 나아가 우주의 질서에 커다란 회의주의가 도래해서 메드맥스의 시대가 도래하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태극이 원초적이고 초월적인 법칙의 영역에서 개별적인 대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한 단계 내려오게 되면 리가 된다. 즉 태극과 리의 설명력은 동일하지만, 리는 그저 개별적인 대상들, 다시 말해 기를 설명하는 개념이라는 사소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개별적인 대상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태극과 리라는 “완벽하게 보편적인 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운동하는 대상은 바로 “기”이다. 다시 말해 동양철학은 법칙과 그 대상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우주의 원리를 설명하고자 했다고 할 수 있다. 서양철학은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가지로 우주를 설명하려 했다. 가령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라는 정신적 세계와 현실 세계라는 물질적 세계를 구분했다. 하지만 동양철학에서는 이러한 구분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성리학자들은 이데아도 기로 분류했을 ㄱ다. 대신 이데아를 움직이는 법칙이자 이치, 즉 리는 이데아와 구분되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태극과 리, 기를 설명해봤다. 이제 기가 무엇인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겠다. 기는 삼국지 시대로 유명한 위진남북조 시대 철학자들을 괴롭히던 주된 개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는 에너지다. 의아하다. 왜 갑자기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게 물질이 아니라 에너지가 된걸까?

 간단한 논증을 소개하겠다. 물론 수많은 철학자들이 물질이 기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렇게 해버리면 인간의 마음, 정신, 나아가 국가, 가족, 인의예지 같은 가치개념들, 당위진술을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 없어진다. 다시 말해 기는 물질에만 묶여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기는 물질, 비물질적 개념을 모두 포함하는 무언가여야만 한다. 그래서 기는 물질도 아니고, 당위진술이나 관습, 예절, 국가같은 비물질적 대상도 아닌 “에너지”로 정리된다. 다시 말해 에너지인 기가 자연법인 리에 의해 요동치면서 우주만물을 만들게 된다는 사고구조가 완성된다.

 기가 세상만물을 창조하는 과정은 사실 이해하기 쉽다. 기가 작용하거나 합치거나 분해되거나 움직이는 패턴, 강도에 따라 어떤 기는 물질이 되기도 하고, 비물질이 되기도 하고, 그 물질도 여러 다른 세부적인 물질이 될 뿐이다. 쉽게 말해 정신, 가치, 당위, 물질을 포함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대상들은 결국 에너지가 움직이는 패턴들이 만들어낸 “산출물”일 뿐이며, 기는 영원히 요동칠 것이기 때문에 산출물들도 엄청나게 다양해질 수밖에 없어진다. 그리고 기가 이렇게 작용하는 원리는 당연히 “리”이다. 나아가 이러한 사고방식을 송나라에 이르러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송나라 철학자 주희이다. 

3. 리기론과 마음, 성과 정

 이제 리기론으로 마음을 분석해보겠다. 성리학자들은 당연히 위 리기론을 가지고 우주의 모든 것을 분석하려 했으니, 마음도 똑같이 분석했을것이다, 그쵸? 그렇다면 마음도 기의 측면과 리의 측면을 가지고 있을것이다. 마음의 기의 측면이 정이고, 마음의 리의 측면이 성이다. 각각 정은 감정, 역정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정이고 성은 본성, 성질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성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몸체의 역할을 하는 기는 정이다. 따라서 정은 기, 즉 에너지이기 때문에 무한히 요동치고 움직인다. 이러한 무한한 움직임이 인간의 수많은 감정을 만들어 낸다. 마음의 기, 즉 정이 과도하게 요동치거나 치우치게 되면 분노, 증오, 미움, 탐욕, 정욕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마음도 리라는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대상에 불과하다. 마음의 법칙은, 당연히 법칙이기 때문에 모든 대상들에게 똑같이 갖추어져 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기를 움직이는 리는 당연히 인간의 마음을 대상으로는 보편적으로 작용할 것이고, 동물의 마음이라는 기를 움직히는 리는 동물의 마음들 속에서는 보편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성리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의 기, 즉 정을 잘 통제하지 못한다면 치우치거나 불안정해져 동물의 마음이나 다를 바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리, 즉 성을 파악해서 인간마음의 기, 즉 정을 통제해서 인간본”성”을 회복해야지만 마음이 안정화되고 인간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퇴계 이황이 정립해둔 마음의 구도이다.

 정리하자면 퇴계 이황은 인간의 마음이 리의 측면인 성, 기의 측면인 정으로 나뉘고 인간은 리의 측면인 성을 파악하고 기의 측면인 정을 통제하고 가다듬어 안정화시켜야 인간 다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율곡 이이는 퇴계 이황의 정리에서 한발짝 더 나아간다. 율곡의 비판은 이렇다. 만약 인간의 마음을 성과 정으로만 나눠버린다면, 마음은 자연에 의해 불가항력적으로 주어진 것에 불과해 인간이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고 통제할 수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는 인간의 의지도 포함을 시켜야만 한다. 따라서 율곡은 마음(심)을 성, 정, 념으로 구분하고 념(의지)를 발휘해 정을 성의 방향으로 유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체계를 도입한다. 주희 때부터 시작한 성리학자들의 마음에 대한 논쟁이 거의 99퍼센트는 종결된 셈이다. 이런 어마무시한 프로젝트가 우리가 등교하며 볼 수 있는 성균관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4. 마음을 둘러싼 동양철학자들의 다양한 논의 정리

(1) 관자

 관자는 동양철학의 탈레스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기록상으로 등장한 최초의 철학자라고 한다(요순임금 급의 전설에 가까운 사람들 빼고요!). 관자는 또한 세계 최초로 마음이라는 개념을 철학적 개념으로 사용한 사람이기도 하다. 관자의 메인 아이디어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 똑같다는 발상이었다. 다시 말해 왕, 대부, 선비, 백성, 노비의 마음은 그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똑같고, 그 누가 고통을 느끼든, 행복을 느끼든 동일한 마음에 불과하다는 당시로서는 대단히 혁명적인 주장을 하게 된다. 이는 서양의 공리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천하가 춘추전국시대의 난세로 향하고 있던 당시, 관자는 군주들이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백성들을 마음대로 이용하고 학살하는 모습을 비판하고자 위 같은 주장을 했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그리고 관자가 사실상 최초로 마음(心)을 철학적 논의로 도입한 덕분에, 이후 수천년간 마음은 동양철학의 메인 아이디어가 될 수 있었다.

(2) 부처

 부처는 인간의 마음이 세상의 수많은 이미지, 허상에 현혹되는 나약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만물은 그 자체로 인간의 마음속에 각인되지는 않는다. 마음이 스펀지처럼 받아들여야지만 인간이 지식도 얻고 편견도 얻고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부처는 인간이 생각하는 수많은 생각들의 출처가 인간들 스스로라고 생각했다. 가령 세상에 인간이 없었더라면 미움, 행복, 당위도 없었을 것이다. 심지어 부처는 사물에 대한 판단, 즉 돌에 대한 판단도 인간이 마음에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돌을 보고 그냥 돌맹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조각작품을 만들기 위한 귀중한 재료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즉 인간의 사고를 지배하는 거의 절대다수의 생각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것들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동일한 대상을 봐도 마음속에서 다른 것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반대로 말한다면 인간이 고통에 빠지는 여러 원인들도 사실은 인간의 마음이 스스로 만들어낸 산물에 불과할 수 있다. 증오, 고통, 편견, 사물에 대한 판단 모두 인간들이 마음속에서 만들도 짜맞춘 것이다. 만약 인간이 이러한 마음의 속박에서 초탈해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 순간 인간은 진정한 의미의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3) 노자

 노자 이후에 등장한 도가 학파 사람들은 고대의 히피라고도 할 수 있어 보인다. 실제로 송나라 도가 학자들은 인류 최초로 대마초를 재배해서 담배처럼 피웠다고 한다(팩트입니다).... 당시에는 대마초가 아니라 삼이라고 했지만. 아마 남송지역이 베트남과 가까워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무튼 다시 노자로 돌아와보면, 노자는 무를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을 일으킨다. 노자 이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철학자들은 유(존재, 있음)을 바탕으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노자는 유 조차도 초월한 보편적인 법칙에 기초한 철학적 사유를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물론 춘추전국시대의 난세를 극복하기 위함이다. 인류가 유에 집착하면 온갖 혼란이 일어나 세상이 메드맥스의 시대를 겪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관적으로 생각해봅시다. 유를 초월한게 무엇일까? 우리가 유를 초월한 모종의 개념을 떠올린다면 다시 한번 유에 기초한 사고를 하는 모순을 범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유를 초월한 무언가를 떠올리기 위해서는 유가 아닌 것, 즉 무를 도입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노자는 무에서 모든 유의 기초를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노자 역시 회의주의를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모든 지식, 윤리의 기초를 무에서 찾아버리면 인간이 앎을 얻을 수 있는 토대가 사라질테니 말이다. 따라서 무에 모든 지식의 기초를 두지 않고, 유는 무에서 기원하고, 다시 무는 유에 기초한다는 상호작용의 개념, 즉 태극 비슷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하나 유의할건 태극이라는 개념은 노자가 만든게 아니라는 점이다. 태극이라는 단어는 아마 송나라 시대 철학자 주돈이가 체계화해서 전파했다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아무튼 노자는 1) 인간이 자신의 마음과 진리의 근거를 유에서 벗어나 찾고 2) 그를 통해 집착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얻는 방법을 찾음과 동시에 3) 회의주의도 벗어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유를 초월한 무에서 근거를 찾지만, 유와 무의 무한한 상호작용을 제시해서 회의주의와는 결이 다른 사고를 제안했다는 지점에 초점을 두시면 될 것 같다.

(4) 공자

 공자는 우리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공자는 그야말로 적극적으로 진취적인 혁명가였다고 할 수 있다. 공자의 사회혁명은 한자의 의미를 본인의 생각에 맞춰 바꿔버리는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방향성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한번 생각해보자. 여러분이 논어를 읽어보면 한번쯤 들었을 생각이다. 도대체 왜 제자들이 공자에게 “도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본 걸까? 도라는 글자 내지 언어는 아무튼 당시 사람들이 당연히 아는 상태에서 사용된 단어였을텐데 말이다. 다시 말해, 왜 다 아는 단어의 의미를 굳이 물어본 걸까? 이는 바로 공자가 당시 사회를 살아가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것과 살짝 핀트가 엇나간 방향으로 한자,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공자의 제자들이 보기에, 스승님이 뭔가 이야기를 하시는데 혼자서 핀트가 엇나간 방향으로 언어를 사용하시고, 또 그러한 언어에 맞게 생활을 하고 계시니 공자에게 그가 생각하고 있던 단어, 언어의 의미를 계속해서 물어본 것이다. 그렇게 공자가 아예 뜻을 바꿔버린 단어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군자”와 “소인”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군자의 의미는 군주, 왕의 의미였고 소인의 의미는 백성 내지 노비의 의미였다. 다시 말해 둘은 거의 100퍼센트 신분계급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단어였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군자 같은 사람”을 이야기할 때 왕 같은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군자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품이 좋거나 인자한 사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다. 소인도 마찬가지다. “이런 소인배 녀석!”이라는 말은 속 좁거나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을 지칭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이 사용하던 군자와 소인배의 의미는 누구에 의해서 변화한걸까? 바로 공자이다.

 공자는 당시 중국사회를 지배하던 “한자”의 주술적인 능력을 믿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언어의 의미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시대를 바꿀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을 종결시키고 도덕적인 인간들을 많이 만들기 위해 당시까지 지배층이 사용하던 한자의 의미를 도덕적 인간상으로 바꿔서 사용, 실천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죽을 때 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공자가 죽을 때 까지 수행한 도덕적인 언어 창조 내지 개조 프로젝트는 그 제자들이 이어받아 한나라 시대에 크게 융성하게 된다. 그래서 공자는 군자로 대표되는 지배층을 “혈연과 신분 기초한 왕족 내지 귀족”이라는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으로 바꿔버리고, 소인으로 대표되는 피지배계층을 “혈연과 신분에 기초한 노비 내지 백성”이라는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열등하고 이기적이고 성격도 나쁜 사람”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고 공자가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시도한 “단어 의미 바꾸기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핵폭탄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공자는 지배계급의 의미 자체를 신분에서 인성으로 바꿔버렸고, 이렇게 지배계급, 선한 인간 본성, 심지어 우주의 질서와 하늘의 법칙에 대해 달리 생각하기 시작한 동아시아 인들은 맹자, 순자, 심지어 주자와 율곡 이이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논쟁으로 이어진다. 공자는 그야말로 정치, 도덕, 학문, 인간의 생활양식, 심지어 언어의 의미 변화에까지 영향을 미치치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곳에 영향을 미쳐버린다.

(5)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의 철학은 동앙철학 전체에서 대단히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한번쯤 생각해봤을 아이디어를 정확히 짚어서 체계적인 철학을 정립했다는 업적이 있다. 다산 정약용의 성리학은 그야말로 “상제론”이라고 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의 문제의식을 정리해보자면, 공자와 맹자는 태극을 말한 적도 없고 리와 기를 언급한 적도 없는데 주희가 혼자서 뇌피셜로 끄적여 성인의 말씀을 곡해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논어와 대학, 중용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하늘(天)의 개념을 재해석해서 태극을 전제하지 않은 성리학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한문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동양인들이 하늘의 의미를 자연적인 하늘의 의미 보다는 유일신 내지 인격인이라는 의미로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따라서 정약용은 하늘의 인격신적인 측면을 재해석해서 상제(上帝)의 개념을 도출하고, 태극의 자리에 상제를 앉힌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법칙은 상제 내지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그가 창조한 모든 기, 피조물들이 하나님이라는 절대적인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구성되는 그림이 탄생한다.

 언뜻 대단히 크리스트교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리학과 대단히 잘 융합되는 것으로도 보인다. 다산 정약용의 철학은 동양철학사에서 뜬금없이 혼종처럼 불쑥 튀어나왔기에 대단히 흥미롭다. 사실 거의 반세기나 지속됐던 성리학사에 등장한 수많은 성리학자들 중에서 이러한 생각을 한 사람이 아예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약용이 당시 조선이 왔던 카톨릭 신자들로부터 유일신 사상에 감명받아 상제론을 제창했다는 학설이 대단히 설득력있게 퍼져 있다고 한다.

 정약용에 따르면 마음 성, 정은 하나님의 마음인 성, 인간의 마음인 정으로 구성된다. 따라서인간은 자신의 육신에 의해 유발되는 정을 극복해서 하나님 – 상제가 부여한 성을 회복해야지만 도덕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

<감상문>왜 동양철학인가’를 읽고 인문과학계열 차성현

‘유학과 수양’ 과목을 수강하면서 참고문헌 중 한권을 택해서 감상문을 제출해야 했는데, 처음부터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책을 고르고 있는데, 그 중에서 ‘왜 동양철학인가’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책 제목에서부터 ‘왜’라는 강한 의문문의 형식을 띄면서 저자는 동양철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동양철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쓴 책이라는 것을 느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심오한 특성이 있지만 그래도 과제인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동양철학 책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만큼 정독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동양철학이라고 하면 과거에 지나간 옛 이야기 같고 급속히 변해가는 현대사회에 여전히 유효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이러한 우려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말끔히 씻었고 이 책이 바로 해결해 주었다. 필자는 인간의 조건과 전반적인 상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인간은 여전히 자신에 대해 무지한 부분이 많고, 실존의 벽은 여전히 완강하게 버티고 서 있다는 것을 제시해주었다.

이 책의 내용을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면 먼저 불교에 대해서 말한다. 필자는 불교의 모든 교설은 어디까지나 도구적이고, 상대적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단이란 개념도 없다고 했다. 필자는 불교의 교리가 절대적인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고 하나의 방편일 뿐이며 상대성을 인정하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받아들이는 개방적 태도를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과연 영원한 진리가 있을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급변하고 있고, 그에 따른 여러 이론들이 바뀌고 새로 생겨나고, 없어지고, 그 주체인 인간들마저도 변하고 있는데, 이런 복잡한 상황에서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며 고집을 부리는 이기적인 태도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행위와 같다는 것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반드시 갖춰야 할 자세다. 일부 종교계에서 우리가 진짜니, 저 쪽은 이단이니 하면서 많은 분쟁이 있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교리가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교리는 이단이라고 하며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런 종교가 과연 믿을 수 있는 종교일까?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하는 관용정신조차 없는 종교라면 어떤 종교일지 짐작이 간다. 그 종교는 자신들의 교리만이 진리이며, 다른 종교가 말하는 교리는 자기들의 종교의 교리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를 갖고 있는 종교는 결국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필자는 ‘우리는 대체로 진리를 특정한 정보로 인식한다.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책을 통해 배우거나 남이 전해주거나 혹은 자신의 이성을 통해 획득되는 어떤 것으로 생각한다. 선은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모은 생각은 판단이고 이미지이다. 그런데 판단이나 이미지를 통해서는 결코 진실의 옷자락을 만질 수 없다.’ 고 말한다. 우리는 주로 학교에 다니면서 지식을 습득하고 교양을 배우고 독서를 하고, 여러 매체를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고 가치관을 획득한다. 선생님의 가르침이나 글, 언어를 통하는 것이 지식을 얻는 주된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런 지식은 오래 기억되지 않고 마음속에 와 닿지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 학습방법이 주로 선생님의 설명하는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주입식 교육 방식이었다. 신문, TV등 여러 매체에서 이런 주입식 교육방법은 좋지 않다고 발표한 적이 많다. 나도 학교 다닐 때 그랬듯이 이런 수업방식으로 배웠고, 시험을 보고 나면 익혔던 지식이 다시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무작정 외우기도 했었다. 하나를 알더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체험하면서, 생활 속에서 자신이 능동적으로 깨닫고 마음에 와 닿는 지식, 그리고 이러한 지식 중에 가치 있는 것은 실천하고 수양하기 위해 익히는 지식이야 말로 자신의 진정한 지식일 것이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이런 불교의 가르침 방식을 교육에 적용한다면 훌륭한 교육방식이 될 것이다. 이러한 불교의 교육방식을 깨닫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이런 방식으로 얻는 지식이 더 뿌듯하고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법가적 실용성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지만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정의롭고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 하루 빨리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할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나라에는 유교의 영향으로 혈연, 학연, 지연 등 정서적인 부분에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에 비판적인 태도를 갖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치우치게 되고, 인정에 매달리게 된다.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은 그런 끈을 연결시키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하려 노력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 끈을 따라가게 된다. 그 예로 국회의원 선거 등의 지도자 선출 투표에서 아직도 지역에 따른 몰표가 나오고, 회사의 인사과정에서 같은 학교 출신, 같은 고향 출신에 더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하고, 교통법규에 걸렸을 때 한번만 봐달라며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아직 우리나라가 정정당당함, 정의로운 이미지를 쌓아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이라는 것이 있어서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정의로운 발전을 위해서는 차가워 보일 정도로 냉정하게 판단하고 벌과 상으로 다스리는 법가적 실용성이 꼭 필요하다. 이러한 법가적 실용성은 우리 사회가 어떠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유부단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냉철한 판단력으로 유연하게 문제를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법가적 실용성은 다양한 기준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현대사회에서 일관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교파트를 지나가면 도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도가의 대표자인 장자는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강한 호기심을 보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있을 것이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 어느 누구도 알지 못 하기 때문에 인간의 상상 속에서 죽음은 공포로 생각되고 있다. 나는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현실에 너무 집착하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현재 갖고 있는 돈, 명예, 권력, 가족, 친구 들을 남겨두고 가야만 한다는 것이 두려운 것은 아닐까.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수도 있을 것 같다. 장자의 가치관과 태도를 보면서 죽음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데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언젠가 죽게 될 것 인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에 집착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산다면 우리의 삶은 좀 더 여유롭고 편안할 것 같다. 또, 죽음에 대한 호기심은 현실을 도피하고 싶은 심정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삶이 고단하기 때문에 죽게 되면 고단한 삶에서 일단은 벗어 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든다. 나도 요즘 과제와 시험 등 여러 난관이 있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죽음으로써 이것들을 벗어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아직은 내가 삶에 집착하고 있거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죽음으로 이것들을 해결하기보다는 조금 더 여유롭게, 마음을 비우고 속박하거나 괴로워하지 말고 웃으면서 해소해야 할 것 같다.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 단순 암기식으로라도 외웠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땐 무작정 외웠었는데 한번 배웠던 내용이고, 이 책에 적절한 비유와 시대적 상황, 전체적 흐름을 통해 동양철학을 이해하게 되니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직 몇 번은 더 읽어봐야 이해가 되겠지만 어느 정도 그 틀은 알 것 같다. 동양철학이 과거의 것이라고 배워도 쓸모가 없거나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재와 다르기 때문에 비판적 태도로 현재를 바라 볼 수 있는 유교의 정신, 인정과 혈연, 지연, 학연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법가의 정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도가의 정신 이것 말고도 현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여러 내용들이 이 책속에 많이 담겨 있다. ‘왜 동양철학인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철학이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철학은 다 우리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삶에 좋은 활력소,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자학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내용이 무엇이고 어떤 것을 추구하는지 몰랐는데 책의 뒷부분에서 잘 정리해 놓았다. 생명, 인간 그리고 건강 등 당연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떠한 다른 것에 이입시키는 그런 생각들이 나를 더 생각하게 만들었다. 역시 철학이란 학문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학문이다. 어떤 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리 생각 되고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이 책과 동양철학이라는 것을 단순하게 생각하고 다양한 시선으로 내 주변과 우리 현대사회에 동양철학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서 동양철학이 주는 교훈을 조금씩 실천해 보고 싶다.

동양철학에 대한 오해

東洋哲學을 사주(四柱), 관상(觀相), 작명(作名)과 떼어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길거리에 붙어있는 간판 탓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동양철학 연구자들 탓도 있을 것이다. 유교 경전 가운데 주역(周易)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이런 혐의에 빠지기 쉬운 편이다. 요즈음은 '명상 술'이다. 기공'이다 '단'이다 하는 유행이 일어난 덕분에 동양철학이 더욱 신비한 것으로 눈길을 끈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이러한 유행에 관한 것이 아니며, 점이나 사주, 관상, 궁합 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공자나 노자는 신비주의나 미신을 말하지 않았고, 만일 그랬다면 철학사에서 다루지도 않았을 것이다. 동양철학에 대한 오해의 출발점은 동양과 서양의 철학적 특성을 양분하여 설명하는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오해 1,

동양철학은 옛 유물이다.
골동품이나 음력 같은 것이다.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오해 2,

동양철학은 점이다. 운명 학이다.
사주, 관상, 수상, 족상, 궁합, 작명 등이다. 심심풀이로 점을 친 적이 있는데, 아주 엉터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마 경험 과학이 가진 통계적 예측력이 있을 것이다.

오해 3,

동양철학은 심오하다. 그러나 논리적이지 않다.
무언가 이치가 있는 것 같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특별한 수행을 쌓은 사람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신비한 무엇이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독특한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과학이 더 발달하면 해명될지도 모른다.
결국 '동양은 정신적이고 서양은 물질적이다.
동양은 종합적이고 서양은 분석적이다.

동양은 실천적이고 서양은 이론적이다. 동양은 윤리적이고 서양은 주지적이다. 등등' 이러한 방법으로 열거하면 할수록 동양철학에 대한 오해는 깊어진다.

동양철학의 진실

철학은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현실을 이해하고 그 토대 위에서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문제 삼는 것은 동양철학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공부를 통하여 우리의 정신을 단련한다. 우리는 동양철학을 과거의 철학 또는 골동품으로 생각하지 말고, 동시에 과거의 철학에 이 시대의 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동양철학을 알지 못하고 감성적으로 거부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동시에 동양철학을 영원한 우주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비판해야 한다. 동양철학의 진실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공간, 이 세상을 좀더 살 만한 곳으로 바꿔보려는 사람들이 정신을 단련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하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유가 사상 대 도가 사상
儒家思想과 道家思想의 비교
유가(儒家) 사상(思想)
비교 도가(道家), 사상(思想), 공맹사상(孔孟思想)
인물 노장사상(老莊思想), 현실주의 사상
바탕 초현실주의 사상, 수기치인(修己治人)
중심 무위자연(無爲自然), 요순(堯舜)
전형 황제(黃帝), 봉황(鳳凰)
상징 붕조(鵬鳥)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비유, 마음을 비워라"
정치, 사회, 윤리 분야 영향
예술, 문학 분야
지배계급의 이념
중세이념, 피지배계급의 정서 대변
출세지향, 일류지향, 부정적 측면, 비 현실, 염세(厭世)

사상(思想)의 황금기라고 하는 춘추전국시대에 형성된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사상 중에서 동양 사상의 큰 줄기를 형성하면서 두 축의 역할을 해온 사상은 유가(儒家)와 도가(道家)를 꼽을 수 있다. 춘추(春秋)와 전국(戰國)이라는 당시의 상황은 극도의 혼란한 사회 정세가 지속되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자연스럽게 사상과 산업의 발전을 유도하게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공,맹(孔,孟)에게서 완성된 자기완성을 통한 후에 사회로 베풀어져 나가야 한다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유가(儒家)와 노장(老莊)에게서 이룩된 인간의 모든 인위적인 행위를 버리고 저절로 그러한 상태의 자연을 따르라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道家) 사상은 2000년 이상을 동양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으로 인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그 사상적 기조를 이해한다는 것은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특히 두 사상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마지막 항목인 각 사상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유가적 입장에서 사고한다면 그 폐단은 영장 중의 영장이 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생각하지 않는 일류 지향, 출세 지향의 모순점에 빠지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현대 사회까지 기성세대들이 말하는 '무조건 출세해서 큰 인물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바로 이러한 유가적 입장의 폐해가 아닌가 한다.

물론 도가 적 입장에서도 그 폐단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의 모든 인위적 표현을 허상으로 여긴다면 더 이상 현실에서 살아갈 가치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현실을 부정하게 되는 비현실 속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가사상과 도가사상은 그 사상적 조화를 적절하게 유지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적응하는 것이 진정한 동양 사상의 조화로운 발전이 아닌가 한다.

유가 사상의 계보

유가 사상은 동양의 역사에서 항상 전면에 등장하는 사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유가 사상이 중세 지배계급(支配階級)의 이념(理念)으로 동양의 역사를 이끌어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유가 사상만으로 동양의 사상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동양의 역사를 접할 때 유가 사상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동양의 전반적 역사 흐름을 조감(照鑑)해 볼 수 있기 때문에 금번 유가 사상의 계보(系譜)를 통해 동양의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보겠다.

유가사상(儒家思想)의 계보

시대, 계보[인물], 유가사상; 특징, 우리나라 삼황오제(三皇五帝), 요(堯), 원시유학(原始儒學), 고복격양(鼓腹擊壤), 선양(禪讓), 단군조선(檀君朝鮮) 순(舜), 하(夏), 우(禹), 걸주(桀紂)의 주지육림(酒池肉林) 탕(湯)의 혁명은(殷), 탕(湯), 주(周), 문왕(文王) 무왕(武王)의 혁명, 봉건제(封建制) 완성, 무왕(武王), 주공(周公), 춘추(春秋), 공자(孔子), 제자백가(諸子百家) 전국(戰國), 맹자(孟子), 진(秦) <단절> 분서갱유(焚書坑儒) 한(漢), 동중서(董仲舒), 훈언고학(訓言古學), 유학 이념화, 삼국시대(三國時代), 수(隋),당(唐), 한유(韓愈), 불교, 도교 성행

송(宋), 정자(程子), 성리학(性理學), 관념론적 철학, 고려(高麗), 주자(朱子), 원(元), 라마교, 명(明), 왕수인(王守仁), 양명학(陽明學), 지행합일(知行合一), 조선(朝鮮), 청(淸), 고염무(顧炎武), 고증학(考證學). 복고주의(復古主義), 실학(實學)

국치일(國恥日)
아직도 일제치하의 기간을 36년이라고 하는가?

유구한 반만년의 역사(歷史)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 그러나 찬란한 문화 전통의 역사가 무참하게 짓밟힌, 그로 인해 역사의 줄기가 단절되어 버린, 바로 일제(日帝)에 의해 질곡(桎梏)의 굴레를 지게 된 치욕(恥辱)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단절된 역사를 복원하고 일제(日帝)의 잔재를 청산하고 있다 하면서도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잘못된 용어나 잘못된 일제 압제(壓制) 치하의 기간(期間)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먼저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과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명칭에 대해 이의(異議)를 제기합니다. 무엇이 '보호'입니까? 일제(日帝)가 우리를 보호한 것입니까? 강압에 의한 치욕적인 조약. 그렇다면 우리가 조약 명칭에 '보호'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겠는가? 또한 '을사오조약(乙巳五條約)'이나 '을사조약(乙巳條約)'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 명칭 역시 우리의 치욕을 풀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면 어떤 명칭이 맞을까요. 바로 '을사륵약(乙巳勒約)'이라고 불러야 한다.

당시부터 우리의 민족적 지식인 들은 이렇게 불러왔다. 늑약(勒約)'은 억눌러서 이루어진 조약이라는 의미다. 곧 을사년(乙巳年-서기 연도를 잘 모르겠으면 본 사이트 간지이야기를 보세요)에 일어난 강압에 의한 치욕의 조약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한일합방(韓日合邦)'이라는 명칭도 '합방(合邦)'의 의미가 나라가 합쳐졌다는 일제(日帝)의 입장에서 불리던 명칭이다. 이 역시 경술년(庚戌年)의 나라의 치욕{국치(國恥)}이라는 '경술국치(庚戌國恥)'로 불려야 한다.

아울러 '경술국치(庚戌國恥)'의 국치일(國恥日)이 몇 월 며칠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일반인이 얼마나 될까!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을사오적(乙巳五賊)의 한 인물이었던 매국노 이완용(李完用)으로 하여금 고종(高宗)을 협박하여 강제로 합병문서에 조인하게 했던 치욕의 날, 8월 29일이다. 과거는 돌아갈 수는 없어도 잊혀지는 것은 아니다.

한때 일본(日本)의 소학교(小學校) 학생들의 교육용 한자(漢字)의 수가 1945자였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무의식의 소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45-10=36}이 맞습니까? 명칭의 문제 보다 더 큰 잘못이 있다. 바로 일제(日帝)가 우리를 강점(强占)했던 기간을 36년이라고 서슴없이 부르는 것이다.

올해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에도 신문, 방송 등 언론(言論)에서까지 아직도 일제(日帝)의 압제(壓制) 치하(治下)를 36년이라고 했다. 그럼 36년이 아니면 몇 년일까.

초등학교(初等學校) 1학년 학생들에게 우리 민족(民族)이 1910년에 강제로 나라를 빼앗겼다가 1945년에 광복(光復)을 맞았다고 하면 나라를 빼앗긴 기간을 몇 년간이라고 대답하겠는가? 당연하게 {1945 - 1910 = 35} 35년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조금 더 정확하게 보면 1910년 8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34년 11개월 14일이다. 곧 35년도 안 되는 기간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36년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한 심정이다.

이것은 우리의 의식이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의 수학 실력보다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 민족의 암울한 치욕(恥辱)의 시기, 반만년 역사를 단절(斷切)시킨 수치(羞恥)의 역사. 그러한 치욕(恥辱)과 질곡(桎梏)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일제(日帝)로 인해 만들어진 모든 것들 중에서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잘못 알고 잘못 쓰고 있는 것들에 대해 바로잡는 작업이 선결되어야 진정으로 일제(日帝)의 잔재(殘滓)가 사라질 것이고 민족의 정기(精氣)가 올바로 설 것이다.

동양 문화권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사유를 성찰하는 학문.

동양의 전통 속에는 동양이란 단어도 없었고, 철학이란 단어도 없었다. 동양은 서양이란 지역명칭에 상대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철학은 서양의 유서 깊은 학문분야인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번역어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서양문명에 대한 동양적 대응의 산물로서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함께 출현한 낯선 것들이다. 이 두 낯선 단어를 한데 합쳐서 만든 동양철학이란 명칭도 그 유래가 오래되지 않았다.

19세기말 일본인들은 동아시아 근대화의 선두주자답게 철학이란 번역어를 처음으로 고안한 다음 여기에 동양이란 말을 덧붙여 동양철학이란 합성어까지 고안했다. 원래 동양의 전통 속에는 동양철학이란 명칭이 없었음은 물론이고, 이 명칭에 어울리는 내용을 가진 학문분야도 없었다. 서양의 전통적인 철학자들이 생각하던 것과 꼭 같은 종류의 철학이 인류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서구 중심적 편견에 불과하다.

동양의 전통 속에는 그런 종류의 철학은 있은 적이 없다. 동양철학이란 명칭과 그 내용이 모두 서양철학에 대한 동양적 대응의 산물로서 출현한 것이다. 서양철학의 도입이 없었다면 동양철학은 생겨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동양철학의 역사는 동아시아의 근대화 혹은 서구화와 그 시작을 함께 한다.

이로 인해 동양철학은 처음부터 서양철학을 준거의 기준으로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세기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동양철학 연구는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 삼국의 오랜 문화적 유산 가운데 서양철학과 비슷한 내용을 가진 텍스트를 선별해 다시 읽고, 거기에 쓰여진 사상적 내용을 서양철학과 비슷하게 재정리하는 작업으로 일관해왔다.

존재물음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철학의 전통적인 문제의식을 수입하여 관념론과 실재론, 유심론과 유물론 따위의 대립구도를 통해 동양의 옛 사상을 재평가하기도 했고, 논리학·형이상학·인식론·윤리학·미학 등 서양철학의 분류방식에 따라 동양의 옛 사상을 재분류해서 분야별로 깊이 있게 연구하기도 했다.

또한 철학이 고대에서 중세로, 중세에서 근대로 직선적으로 발전한다고 보는 서양철학사의 서술방식을 도입하여 동양의 사상적 변화 양상을 방대한 규모의 철학사로 재구성하기도 했다. 국가별로 철학사를 재구성하여 중국철학사, 일본철학사, 한국철학사를 쓰기도 했고, 심지어는 시대별로 세분해서 쓰여진 철학사도 출현했다.

그리하여 동양철학은 주로 한문으로 쓰여진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을 다루면서도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새로움의 근거는 서양철학에서 유래한 다양한 시각과 방법에 있었다.

동양철학은 처음부터 비교철학으로 시작했다. 동양철학은 서세동점(西勢東漸)으로 인한 동서교섭의 산물이었던 만큼 이제는 설령 서양철학과는 다른 식으로 혹은 서양철학을 부정하는 식으로 동양철학을 한다 해도 이미 비교철학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되었다.

어떤 종류의 동양철학 연구성과이건 공통적인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체계적인 지식의 건립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서양의 학문적 전통에서는 체계적인 지식이야말로 학문이 학문일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요구된다.

이제 동양의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윤리학을 쓰건 철학사를 쓰건 객관적 근거에 따라 엄밀하게 논증되고 일관성 있게 정리된 지식의 형태로 그 결과가 산출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해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유교, 불교, 도교를 막론하고 경학(經學)이 중심이었던 동양의 학문적 전통에서는 체계적인 지식이 부정되진 않았다 하더라도 그렇게 강조되진 않았다. 예를 들면,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록인 ≪논어≫는 체계적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철학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을 위한 지침서였다.

거기에는 형이상학이나 윤리학에 해당할 만한 언급도 있고 중국철학사에 해당할 만한 언급도 있긴 하나 거의 모든 언급이 단편으로 그칠 뿐 일관된 체계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후대에 많은 학자들이 ≪논어≫에 대해 주석을 썼지만 주석도 체계적인 지식을 구성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동양철학은 유교의 경서와 같은 텍스트의 비체계적인 가르침을 체계적인 지식으로 전환하는 작업에 매달려 왔다. 경서의 권위를 믿고 경서의 가르침대로 살기를 요구하던 동양의 경학적 전통은 동양철학의 등장으로 인해 체계적인 지식을 구성하기 위한 객관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요컨대 20세기 이후 동양철학 연구는 경학의 철학화를 초래했다. 이 과정에서 잃은 것도 있고 얻은 것도 있다. 잃은 것을 꼽으면 다음과 같다.

첫째, 동양의 전통적 텍스트들이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지침서로서 읽혀지기보다는 철학적 이론 구성이나 철학사 구성을 위한 연구의 대상으로 읽혀지게 되었다.

이제 유교의 텍스트를 읽더라도 반드시 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고, 불교의 텍스트를 읽더라도 반드시 깨달은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서양철학의 기준에 따라 합리적으로 설명되기 어려운 텍스트의 내용들이 연구의 대상에서 소외되었다. 합리성 혹은 체계성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며 동양의 전통적 텍스트에도 그 나름의 함리성 혹은 체계성이 있다는 사실이 자주 망각되었다.

예를 들면, 음양오행론에 기반을 둔 한의학, 명리학(命理學), 풍수지리학, 천문학 등이 이른바 사이비과학으로 치부되어 적극적인 관심을 끌지 못했고, 심신의 수련 방법을 제시하는 공부론이라든가 복잡한 인간관계와 각종 의례적 행위를 세밀하게 규명하는 예학(禮學)도 체계적인 지식으로 재구성되기 어려운 탓에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처럼 동양의 전통적 텍스트들이 구체적 삶과의 실천적 연관성을 상실했을 뿐만 아니라 그 오묘한 내용의 상당 부분이 소외되었다는 것은 동양철학을 연구한다 해도 동양의 전통적 정신과 학문이 부활한다는 보장이 없음을 의미한다. 오히려 연구하면 할수록 동양의 전통으로부터 멀어져 갈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학의 철학화를 통해 얻은 것도 적지 않다. 얻은 것은 실은 잃은 것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

첫째, 동양철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등장과 더불어 경서라고 하는 텍스트의 권위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 이후 경서에 대한 엄밀한 문헌학적 비판과 아울러 그 의미에 대한 철학적 해석이 제한 없이 행해졌다.

이것은 경서의 권위가 지배하는 전통적인 경학이 종식되었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경서의 권위가 부재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경학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양문화사에서 서양철학의 도입으로 인한 동양철학의 성립은 아마도 인도불교의 도입 이래 최대의 문화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둘째, 경서를 위시한 전통적 텍스트들이 체계적인 지식으로 재구성되는 가운데 일부 오묘한 것들이 망각되는 한편 예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것들이 새로 각광을 받게 되는가 하면 모호한 것들이 분명하게 되고 내밀한 것들이 공개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로써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과 학문은 근대화되고 서구화된 오늘의 세계 속에서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과 학문이 동양의 과거라는 특수성에 머물지 않고 세계사적 보편성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서구적 합리성과 체계성의 기준을 도외시할 수 없다.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다 짊어진 채 미래로 나아갈 수는 없다. 동양철학은 19세기말 동양문화와 서양문화의 교차로에서 탄생하여 동양의 문화적 유산 가운데 상당 부분을 희생하면서 서양철학으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서양철학에 전혀 무지한 채 아주 고루하게 동양철학을 한다 하더라도 이미 서양철학의 새로움과 무관할 수는 없다. 이것은 동양의 전통적인 정신과 학문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불행일 수 있지만 동양문화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다행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동양철학 연구성과가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서양철학은 동양철학을 가능케 하고 있지만 동시에 동양철학의 가능성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동양철학이 21세기에도 인간의 삶에 유익한 학문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이 제한을 돌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양철학이 유일한 철학이 아님을 자각하면서 서양철학을 상대화시킬 줄 아는 폭넓은 안목의 획득이 필요하다. 그래야 서구적 기준에 따라 체계적인 지식을 생산하느라 잃어버린 동양문화의 실천적 연관성과 그 고유한 논리를 변화된 시대에 맞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동양의 문화적 유산으로부터 미래의 자원을 재개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폐증에 빠져 있는 서양문화를 다른 문화에로 개방시키는 계기도 마련해줄 것이다.

21세기의 동양철학은 동양문화와 서양문화 사이에 진정한 대화의 길을 열어주면서 동양문화의 한계와 서양문화의 한계를 넘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롭고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中國哲學史』上·下(풍우란, 박성규 역, 까치, 1999)

『중국의 과학과 문명』 전3권 (니담, 조셉, 김석호 등역, 을유문화사, 1986)

『원효에서 다산까지』(김형효, 청계, 2000)

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2)

동양철학의 스승들: 석가와 노장, 공맹

우리는 이 스승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대체로 철학공부는 두 방향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는 철학사의 지식을 습득해가는 철학사적 접근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문제들을 대상으로 삼아 그 원인과 배경, 해결책 등을 물어가는 철학함의 방법이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전자이고, 이 방법 또한 일정한 지식과 공부가 쌓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철학함의 방법으로 넘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다. 그러나 그 철학사적 지식에 대한 접근이 양적으로 방대할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접근하기에는 여러 벽들이 존재하고 있어 넘어서지 못한 채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지식인들에게 익숙한 이른바 ‘철학사적 지식에 대한 열등감’만 가지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동양철학의 경우는 한문을 넘어서기 어렵고, 서양철학의 경우에는 형식논리와 개념이라는 벽에 부딪쳐 넘어지곤 한다.

독일 근대철학자 헤겔이 고등학교 철학교사를 여러 해 한 후에 대학으로 옮기면서, ‘고등학생들에게 철학 함부로 가르치지 마라. 자칫 철학에 대한 혐오감만 심어줄 수 있다.’라고 경고했던 것도 학생들의 그런 벽들을 교사로서 체험한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철학함의 과정을 통해 철학사적 지식에도 접근하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철학함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살아가다가 어떤 난관에 직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난관이 실질적인 어려움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성취를 얻은 후에 찾아오는 실망감과 지루함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실존철학자들이 삶의 부조리라고 표현했던, 근원적인 한계 상황의 인식에서 오는 가벼운 절망감일 수도 있다.

그런 난관과 마주했을 때 우리는 잠시 멈칫하면서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하는 물음에 휩싸이게 될 수 있다. 그럴 때 이런저런 상념에 잠기는 순간이 바로 철학함의 순간이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철학함의 과정에 동참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대체로는 그것으로 끝이다. ‘다른 그렇게 사는 것이겠지’ 정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상으로 복귀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 과정을 조금 더 붙들고 심화시킬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삶의 심연을 확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철학함의 순간

오늘 우리의 만남도 그런 철학함의 심화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어쩌면 이 순간에 함께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철학함의 심화과정에 들어있는 것일지 모른다. 이 과정에서 동양철학의 스승들과 어떤 만남을 가져볼 수 있을까? 우선 인연의 소중함과 그 인연을 바탕으로 삶의 끝없는 흐름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토대를 석가모니로부터 도움을 받아 마련할 수 있다. 우리의 이 만남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일 수 있지만, 삶을 이루는 핵심 요소로서 타자와의 만남은 나의 의지와 알 수 없는 연기적 고리들이 어우러져 이루어진다. 알 수 없는 연기적 고리를 우리는 흔히 우연이라고 표현하지만, 그 우연은 곧 필연이기도 하다. 다만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순간의 만남에 몰입하고자 노력해야 하고, 가끔씩은 이해관계가 없는 만남을 위한 의지와 노력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우리 삶은 ‘의미 있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보다 넓은 범위의 만남을 통해 전개되기도 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삼아 전개되는 21세기 초반의 사회 속에서는 후자의 중요성이 더 큰 지도 모른다. 그랬을 때 그들과 어떤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하는지가 삶의 성공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가 된다. 나와 가까운 타자와 비교적 먼 거리에 있는 타자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날 수 있는 사상가는 공자와 맹자이다. 그들은 춘추전국시대라는 험난한 시대를 살아내면서도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인(仁)을 바탕으로 해서 맺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이상론자들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인(仁)은 여러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문자 자체로 보면 두 사람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우선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하면 의(義)와 예(禮)가 되고, 그런 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으로 지혜[智]가 요청된다. 어짊은 의로움과 함께 가야하고, 지혜를 바탕으로 일상 속에서 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절의 습관화이다. 마이클 푸엣이라는 미국 하버드대학 동양사학자는 그런 점에 주목하여 공자의 예를 ‘일상 속에서 잠시 다른 상황에 자신을 위치시켜보는 것’이라고 해석한다.(크리스틴 그로스 로·마이클 푸엣, 이창신 옮김, 《더 패스》, 김영사. 2016) 지루하고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며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해보는 것이 바로 예이고, 그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라진 자신을 경험하게 되면서 타자와의 관계를 다르게 경험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세상을 바라 볼 나름의 창을 가져야 한다"

세상에 태어나 사람들은 물론 자연과도 어울려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나름의 창(窓)을 가져야만 한다. 그 창을 통해 세상을 내다보면서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본다. 그것을 노자는 이름[名]이라고 칭한다. 그 이름은 나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기도 하고, 세상이 나를 바라보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름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일 뿐임에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세상과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창이 고정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순간은 세상의 진실과 멀어지게 되는 순간이 되고, 그 창에 대한 집착은 우리 생각은 물론 삶 자체를 고정시켜 꼼짝달싹 못하게 해버린다. 이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얻었다고 해도 실패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들을 노자는 진리까지도 진리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착오에 빠진다고 말하고, 장자는 나비가 꿈속에서 인간을 만나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말로 경고하고자 한다.

동양철학의 스승들이 남겨놓은 철학사적 지식들을 단순히 알아 기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 남들에게 아는 척하는 데 써먹을 수 있는 정도의 효용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철학함의 과정 속에서 그 지식들을 불러내면서 나아가 그 철학자를 대화의 상대자로 불러낼 수 있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앎으로 전환된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를 읊조리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일이지만,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진리가 사실은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데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전혀 다른 차원의 앎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금강경》에서 중시하는 상(相)도 마찬가지다. 한문으로 금강경의 구절들을 암송하면서 자랑스럽게 펼치는 일은 자칫 우스꽝스런 몸짓이 될 수 있지만, 그 상을 세상과 자신을 바라보는 세계관으로 해석하면서 그것의 형성과 한계를 인식하여 아상(我相)을 극복할 수 있게 된다면 진정한 공부 길로 접어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동양철학의 스승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한 가지 더 유념해야 할 일이 있다. 그 스승들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전해지는 과정에는 각각의 생각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각 사상의 내용과 초점을 다르게 만든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끊어진 공맹의 맥을 잇고자 했던 북송의 다섯 사상가와 그들의 제자인 주희의 생각 속에는 불교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선불교는 노장의 영향이 없었다면 등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노장 또한 불교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국 특유의 종교인 도교로 정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현재에 이른 동양사상 또는 철학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축적해온 우리 그리스도교와의 만남을 거쳤고, 서양철학의 절대적 우위를 전제로 하는 만남을 한 세기 이상 견디며 겨우 살아남았다. 지금 나의 삶과 사상 속에는 이런 만남들의 흔적이 각자의 방식으로 새겨져 있고, 그것을 어떻게 오늘의 상황에 맞게 불러내 재구성해 철학함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를 우리는 부여받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삼아 한국불교의 세 봉우리인 원효와 지눌, 휴정과의 현재적 만남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박병기 교수는

서울대학교 윤리교육과와 같은 대학원에서 윤리학과 도덕교육학을 전공했고, 불교원전전문학림 삼학원에서 불교철학과 계율을 공부했다. 전주교육대학교 교수, 한국교원대 대학원장,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생명윤리교육평가전문위원회 위원,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장으로 2015 초· 중·고 도덕과 교육과정 개정 연구를 총괄했다. 주요 저서로 《윤리학과 도덕교육 1·2》(공저)《우리 시대의 문화와 사회윤리》, 《직업과 윤리》. 《아동인격교육론》, 《도덕심리학의 전통과 새로운 동향》, 《동양 도덕교육론의 현대적 해석》(문광부우수학술도서),《의미의 시대와 불교윤리》《딸과 함께 철학자의 길을 걷다》, 《우리는 어떤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왜 지금 동양철학을 만나야 할까?》등이 있다. 역서로 《철학의 과업》(공역),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공역), 《보살의 뇌》(공역), 《윤리적 자연주의》(공역), 《도덕적 감정과 직관》(공역) 등이 있다. 현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이자 종합교육연수원장을 맡고 있으며,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정의평화불교연대 고문이다. ㅣ 출처 : 불교닷컴(http://www.bulkyo21.com)

왜 동양 철학인가 - 현대사회와 논어                                                                                                                2008314730 행정학과 이정훈

  철학은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거기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한다. 그 중 동양철학은 객관적,추상적 진리가 아니라 주관적,구체적 진실을 전해주고 있다. 저자 한형조는 처음, 이 세상의 고통과 번민을 넘어서기 위해 불교의 초탈을 꿈꾸다가, 삶의 기대와 욕망을 접고 세상을 평정하게 바라보는 노장을 선망했다. 그러다가 내가 문득 삶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인간의 신성을 일상에서 구현하겠다는 유학에 심취했다. 그리고 지금은 인간세가 그런 도덕성의 자발적 함양에만 기댈 수 없다는 비관적 인식이 깊어지면서 법가의 차가운 기획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동양철학은 지나간 옛 이야기 아닌가. 오늘과 같은 디지털의 정보시대에서 여전히 유효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인간의 조건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그에 관하여 나는 현대사회와 논어를 수강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유학에 관하여 더욱더 주목하여 책을 감상하였다.  ‘유학은 종교인가, 학문인가’의 발표를 맡았을때 이 책을 살펴보지 못했는데 여기에도 유학의 종교성에 대하여 기술되어있다.  초월적 존재에 대하여, 신의 형상을 닮은 인간, 성스러움을 향한 추구, 유학과 근대의 불화, 자기를 위한 학문이란 측면에서의 접근을 통해 유학의 종교성에 대하여 검증하였다.

  그리고 미래를 위한 유학으로서 자기를 위한 공부를 제시한다.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강조하시는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하기’가 문득 떠오른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현실’ 안에서 살고 있다. 유학이 아무래도 근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이들이 있지만 역설적으로는 우리사회에서 곳곳에서 나타나는 유학을 추구하는 움직임을 비추어 볼때 이들은 전근대적인 움직임으로의 추구로 까지 볼 수 있다. 생산과 기술의 근대적 산업을 일으킨 과학도 없었고, 자유와 평등의 민주주의적 이념과 제도를 정착시키지도 못했다. 더불어 유교가 연고주의와 정실주의를 조장했다고 비판하고, 민주주의자들은 개인의 주체적 판단보다 전체에 대한 복종과 헌신을 주창함으로서 전체주의적 독재를 조장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우리는 한강의 기적과 같은 단시일에 눈부신 산업을 일구었고, 민주화도 어느정도 진행됬다. 이 성공에서 전통의 저력과 유교의 역할을 다시한번 돌아보게끔 만든다. 유교적 교율열이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드높히고 규율에 대한 복종과 헌신이 기업문화에 있어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그리하여 유교는 제도와 절차까지도 접목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가능케한다. 저자는 공자를 위시한 유교적 사유의 토대를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표’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 “인간의 삶에 의미가 있는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부터 유학은 시작한다. 하지만 현대는 이 물음을 잊어버렸다. 유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내안에 내재된 하늘” 이미 우리 마음속에는 하늘의 이치가 내재되있다. 이로인해 우리는 인(仁)을 실천하며 타인과 운명을 원망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린다. 공자는 자신의 내면성에 대한 성찰과 그 결과인 지식을 통해 초월적 존재의 자각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자면 유교에서의 합일이란 ‘자신과의 대화’이고 저자는 유학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모순되지 않은 유일한 신비주의”라고 칭하며 유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마무리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철학의 힘!”

한국 철학계 최전선에 선 74인의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사유의 향연

◎ 도서 소개

국내 최초 철학의 대중화를 위한 철학 앤솔러지

깊이 있는 사유, 정통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 독자를 위한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1~4』 시리즈(21세기북스)가 출간되었다. 다양한 세부 전공을 가진 74인의 철학자가 공저한 이 시리즈는 총 4권으로 구성된 2,000쪽이 넘는 분량이다. 동서양 고대 종교 사상부터, 유교, 노장, 성리학, 불교 철학, 인도 철학, 서양 중세 철학, 서양 근대 철학, 분석 철학,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까지 세계 철학의 모든 주제를 망라했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백종현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의 기획 아래 전국각지의 철학자들이 참여했다. 교사와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집필진이 어우러졌고, 신진 교수부터 명예교수까지 참여함으로써 탄탄한 논의는 물론 번뜩이는 새로운 시선까지 놓치지 않았다. 철학에 정통한 독자라면 한국 철학계의 눈부신 발전에 감탄하게 될 것이며, 입문하는 독자에게는 동서고금 철학 전반의 얼개를 파악하는 지도가 될 것이다.

제3권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3 : 인간 교화의 길』은 ‘참사람’을 지향하는 동양 철학 전반을 다룬다. 노자, 장자, 공자, 맹자 등 고대 중국의 사상과 성리학은 물론, 오늘날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대중들이 접하기는 어려웠던 불교철학과 인도철학도 담겨 있다. 오늘날 기술 발전으로 인간의 영역이라고 굳게 믿은 것들의 경계가 무너지며 ‘인간다움’이 전 세계적인 키워드로 부상하며 동양철학은 전 세계 주요 대학에서 큰 관심을 얻고 있다. 서양 철학의 허점을 극복하는 실마리로 동양철학이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이때, 이 책을 통해 한국 동양철학 연구의 정수를 만나보자.

◎ 출판사 서평

오늘날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 동양철학

현대인이 상실한 인간다움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철학의 핵심 과제 중 하나는 인간이 인간답게 성장하는 길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는 진리와 의미를 밝히는 과제에 비해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제3권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3 : 인간 교화의 길』은 이러한 인간 성장에 대한 동양 철학 사상의 탐구를 다룬다. 유가 사상은 자기 교화를 통해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노장학은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나아가 하나가 되는 것을, 불교 사상은 번뇌와 고통을 벗고 해탈(解脫)에 이르는 길을 가르친다.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3 : 인간 교화의 길』은 장자의 이성관과 ‘情’과 ‘無情’, 왕충의 무위자연론, 주희의 유학적 세계관, 퇴계의 주리론과 율곡의 주기론 등을 주제로 삼아 노장와 유가의 진실을 좇는다. 그리고 깨달음, 자비, 허공, 유가행파 관념론, 군주관과 인간론, 화엄 사상의 지향, 초월과 현실, 상관적 사유, 원료의 일심론, 달라이 라마의 평화론 등 불가(佛家)의 진의(眞義)을 탐구한다. 이러한 동양철학을 일종의 잠언의 모음처럼 여기는 시선이 있지만,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학문이며, 그 방대하면서도 체계적인 사유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서양 철학에 치중된 기존 연구로부터 생긴 오해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의 사상과 철학, 종교는 종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취하고 있지만, 이들의 최종 지향은 ‘참사람’으로 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자연주의의 외형을 보이면서도 그 내면은 인간에 지고의 가치를 두는 휴머니즘을 안고 있다. AI, 기술 발전 등이 인간의 영역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영역을 위협하는 이때, ‘인간다움’이 전 세계적으로 다시 부상하며 해외 주요 대학에서 동양철학을 연구하고, 서양 철학의 허점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로 삼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동양철학에 다시 한번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시리즈 소개

1) 철학과 현실의 관계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지닌 철학자들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집필했지만,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시리즈의 글들은 일관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제목에서 보이듯 이 책들은 ‘철학과 현실’의 관계에 주목한다. 모든 철학은 당시 시대와 그 속에 사는 철학자 개인의 삶으로부터 비롯하기에 철학과 현실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끊임없이 일깨운다. 철학이 현실과 동떨어진 지적 유희에 불과하다는 세간의 인식은 철학이 단단히 닻을 내려야 할 현실로부터 자꾸만 멀어졌기 때문이다. 철학은 현실과 맞닿을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2) 동서양 철학의 태동부터 현대 철학까지 2천 쪽에 담은 철학 대계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시리즈는 엮은이인 백종현 교수가 해당 주제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중성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저자 74인을 일일이 섭외하여 완성한 시리즈다. 전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한국 철학계의 폭과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 겹치는 주제 없이 거의 모든 철학 분야를 담아 완성했다. 사회철학, 현대 프랑스 철학 등 특정 분야의 철학을 개괄하기 위해 다양한 공저자가 참여한 책은 종종 있었으나, 국내에서 이 시리즈처럼 철학사 전반을 모두 담는 기획은 없었다. 2,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각 저자의 글 하나하나가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담고 있어 발췌독을 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3) 각 권의 주요 내용

1권은 동양의 삼교(유교, 불교 도교)와 고대 그리스 철학을 통해 철학을 개척한 선각자들의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를 살피고, 2권은 감성과 이성이 대립하는 서양 근대 철학과 철학의 황금기라 불리는 칸트와 헤겔, 그리고 생의 의지를 강조한 니체,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탐구한다. 3권은 유불도 삼교와 성리학, 불교 철학, 인도 철학 등 오늘날 해외 주요 대학에서 가장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양 철학을 다루며, 4권은 하이데거, 하버마스, 루만 등의 현대 철학과 이명현 교수가 기틀을 놓은 한국 분석철학의 눈부신 연구 성과를 보여준다. 이처럼 동서고금을 모두 망라한 시리즈는 인간이 철학한 이래로 거의 모든 철학을 담았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4) 한국 철학계의 거목, 이명현 서울대 명예교수를 기리다

철학과 현실의 불가분한 관계, 이는 현우(玄愚) 이명현(李明賢, 1939~) 교수가 오래도록 천착해온 주제다. 『철학과 현실, 현실과 철학』 시리즈는 이명현 교수의 85세수(八十五歲壽)를 맞아 기획되었다. 그가 오늘날의 한국 철학계를 형성하고, 특히 한국 철학계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한 빛나는 공적을 후학들이 오래오래 기억하고, 학계를 더욱더 발전시키고자 다짐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다. 이명현 교수의 85세수를 기념하기 위해 74인의 철학자들이 선뜻 집필에 나선 것만으로도 그가 한국 철학계에 기여한 공덕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이명현 교수의 철학과 일대기가 궁금한 사람은 『철학은 시대의 내비게이션이다』, 『돌짝밭에서 진달래꽃이 피다』(21세기북스 펴냄)를 읽어보길 권한다.

☞ 함께 읽으면 좋은 21세기북스의 책

《철학은 시대의 내비게이션이다》(이명현 지음, 21세기북스)

《돌짝밭에서 진달래꽃이 피다》(이명현 지음, 21세기북스)

◎ 본문 중에서

모쪼록 기(氣)의 ‘혼돈(混沌)’을 되찾아라. 거기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자연의 축복이다. 그 운명의 신성한 긍정 속에서 비로소 관조와 웃음이 피어난다. 이때 삶은 더이상 노역이 아니라 놀이가 될 것이다. 이 아득한 교설 앞에서 다들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할 듯하다. 더이상 말(言)이 설 자리가 없고, 지식은 무의미해진다. 장자는 익숙한 집을 뒤흔들고 막막한 불안을 몰고 온다. 이 혼돈에 박수를 치는 사람이 있을까? 더이상 아무 이름도, 어떤 의미 있는 논의도, 어떤 가치도 발붙일 수 없는 막막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무하유(無何有)의 땅으로 들어서는 흥분과 두려움이 밀려올 것이다. 그 끝에, 삶도 죽음도 결국 나의 정신의 심층을 뒤흔들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얻는 것도 없고, 잃는 것도 없다. 삶과 죽음은 물화(物化), 그저 오고 가는 것일 뿐, 호들갑 떨지 말라.

【42쪽_1부 노장(老莊)과 유가(儒家)의 진실】

왕안석의 정치적 행태는 인정할 만한 것이지만 다만 그의 학문적 견해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 주희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이는 “왕형공이 신종을 만났던 일을 얘기해보면 천재일우라 할 수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의 학문이 옳지 않아서 나중에는 곧바로 그렇게 무너져 버렸다”라는 주희의 발언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것은 다름 아닌 왕안석에 대한 주희 비판의 핵심 기조이다. 왕안석의 최초 지향 및 군주와의 관계 설정은 바람직했으나, 결국 개혁에 실패하고 말았던 까닭은 이념 실현 추구의 급진성 탓이었고, 이런 급진성이 생겨난 까닭은 그가 삶 속에서 ‘격물치지’를 통해 이념을 길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희의 최종 결론이다.

【115쪽_1부 감노장(老莊)과 유가(儒家)의 진실】

이이는 이통기국을 두 가지 의미로 쓴다. 첫 번째는 리와 기 자체의 뜻을 재확인하는 것으로, “리는 두루 통하지만 그래서 보편적이지만, 기는 국한된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여기서는 ‘리’라는 규범, 곧 예의 객관성과 영원성, 그리고 ‘기’, 욕망의 주관적·가변적·제한적 성격을 대비하여 강조한다. 이이는 리와 기의 이런 성격을 두 개의 대립하는 세계의 존재로 발전시킨다. ‘기’라는 욕망의 세계, 마음의 현상으로서의 세계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 바깥에 하나의 기준으로 제시되는 ‘리’라는 규범의 세계가 있다. 즉, ‘리’와 ‘기’라는 이원적인 세계가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통기국은 ‘리인 본성과 기인 마음의 분리’라는 심성론의 주장과 상응하는 명제이다.

【202쪽_1부 노장(老莊)과 유가(儒家)의 진실】

혜원은 인간 마음의 이중적인 구조를 제시하여 정신의 초월적 본성을 상정하는 것의 이론적 난점들을 해결한다. 앞서 보았듯이 혜원은 원초적 탐애와 무명으로 인해 정신이 육화와 개인화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한다. 그 결과로 성립하는 것이 우리 현존재의 육체적 감정[情]과 개인적 의식[識]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하여 감정을 가지고 물질적 대상과 교섭하게 되고 또 그러한 교섭 활동의 패턴으로부터 밝다거나 어둡다거나, 예리하다거나 우둔하다거나, 선하다거나 포악하다거나 등과 같은 개인 의식의 속성들이 성립한다. 그런데 혜원은 이러한 육체적 감정과 개인적 의식은 정신의 표층적이며 우유적인 모습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의 물질적 존재가 끝나고[物化] 개인적 존재가 다해[數盡] 감정과 의식이 사라지더라도, 감정과 의식의 근저에는 여전히 순수한 정신이 있어 그것은 불멸하고 무궁하다는 것이다.

【487쪽_3부 다가선 미래 성찰】

◎ 목차

책을 펴내면서

1부 노장(老莊)과 유가(儒家)의 진실

장자의 꿈, 이성의 그늘 - 한형조

장자가 말한 성인의 ‘정 없음[無情]’의 의미에 관하여: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편의 정(情) 개념을 중심으로 - 김명석

선한 행위는 복을 받는가?: 왕충의 무위자연론과 숙명론 - 양일모

주희의 왕안석 비판과 그의 정치적 사유 - 이원석

심학적 도통론의 관점에서 본 퇴계의 출처관 - 정종모

이황의 양명학 비판 까닭과 그 영향 - 이해임

이이의 철학, 이이의 현실 - 정원재

2부 불가(佛家)의 진의(眞義)

깨달음과 자비 - 홍창성

원자와 허공: 인도 불교의 맥락에서 - 이규완

굽타 제국 황태자의 교사, 바수반두 - 이길산

꿈에 대한 설명을 통해 본 유가행파 관념론의 특징 - 최성호

여산 혜원(廬山慧遠)의 군주관과 인간론 - 이상엽

화엄 사상은 ‘하나 됨’을 지향하는가 - 고승학

초월과 현실은 언제나 짝을 이룬다: 고구려 승랑의 상관적 사유 - 조윤경

깨달음의 경계를 넘어서: 원효의 중도적 사상과 삶에 대한 일고(一考) - 이수미

원효의 일심으로 본 마음의 문제 - 조은수

달라이 라마: 자비와 관용으로 인류 평화를 심다 - 허우성

참고문헌

※ 저자 소개

이름: 백종현
약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한국포스트휴먼연구소 소장.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석사 과정 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인하대·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소장,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원장, 한국칸트학회 회장, 한국철학회 《철학》 편집인·철학용어정비위원장·회장 겸 이사장, 한국포스트휴먼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주요 논문으로는 “Universality and Relativity of Culture” (Humanitas Asiatica 1, Seoul 2000), “Kant’s Theory of Transcendental Truth as Ontology”(Kant-Studien 96, Berlin & New York 2005), “Reality and Knowledge”(Philosophy and Culture 3, Seoul 2008) 등이 있고, 주요 저서로는 Phanomenologische Untersuchung zum Gegenstandsbegriff in Kants “Kritik der reinen Vernunft”(Frankfurt/M. & New York 1985), 『존재와 진리 ― 칸트 <순수이성비판>의 근본 문제』(2000/2003/전정판 2008), 『철학의 개념과 주요 문제』(2007), 『시대와의 대화: 칸트와 헤겔의 철학』(2010/개정판 2017), 『이성의 역사』(2017), 『한국 칸트사전』(2019), 『인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2021), 『인간의 조건 ― 칸트의 인본주의』(2024)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실천이성비판』(칸트, 2002/개정2판 2019), 『윤리형이상학 정초』(칸트, 2005/개정2판 2018), 『순수이성비판』(칸트, 2006), 『판단력비판』(칸트, 2009), 『윤리 형이상학』(칸트, 2012), 『유작』(칸트, 2020·2022) 등이 있다.

이름: 한형조(Hyong-Jo Han,韓亨祚)
약력: 인문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고전한학 ․ 철학 교수

동해안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자랐다. 부산의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불교로 동양학에 입문하여, 일상에서 구원을 모색하는 유학을 공부했다. 다산 정약용의 고전해석학(經學)을 다룬 “주희에서 정약용으로의 철학적 전환”으로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동안 띠풀로 덮인 동아시아 고전의 옛길을 헤쳐왔다. 고전을 통해 삶의 길을 배우고, 문명의 비평적 전망을 탐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왜 동양철학인가』(2000), 『왜 조선유학인가(2008)』, 『조선유학의 거장들(2008)』, 『붓다의 치명적 농담(2011)』, 『허접한 꽃들의 축제』(2011) 등이 있다. 콘즈(Conze)의 『불교(Buddhism)』와, 카마타 시게오(鎌田茂雄)의 『화엄의 사상』을 번역했다.

이름: 김명석
약력: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 및 석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철학석사 및 박사학위(중국 철학)를 취득하였다. 한국동양철학회 총무이사를 역임하였고, 동양 철학 분야 국제 학술지 Dao: A Journal of Comparative Philosophy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인간의 바람직한 삶과 관련하여 감정이 지니는 의미와 역할을 탐구하고 있으며, 최근 논문으로 “Moral Extension and Emotional Cultivation in Mengzi”, Dao 21, no. 3 (September 2022); 「不動心 획득을 위한 孟子의 심리적 메커니즘에 관한 고찰: 『孟子』 「浩然之氣章」의 용기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동양철학》 제55집(한국동양철학회, 2021. 7) 등이 있다.

이름: 양일모
약력: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도쿄대학에서 박사(동아시아 사상문화학 전공)를 취득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특별위원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동양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서양 철학을 수용하는 동아시아의 사상적 토대, 유교의 현대적 해석, 동아시아 개념사 등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 저·역서로 『옌푸: 중국의 근대성과 서양사상』, 『천연론』(공역), 『일본 학문의 근대적 전환』(공저), 『성리와 윤리: 윤리 개념의 한국적 정초』(공저), 『동서철학사상의 만남: 개념의 접변과 지평의 확대』(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유교적 윤리 개념의 근대적 의미 전환」, 「중국철학사의 탄생」, “Translating Darwins’s Metaphors in East Asia” 등이 있다.

이름: 이원석
약력: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중국 철학 전공으로 철학석사 및 박사를 취득했다. 석사 논문에서는 이정(二程)의 제자 중 한 명인 사량좌(謝良佐)의 지각 개념을 분석하여 주자학 이해의 지렛대로 삼고자 했고, 박사 논문은 북송대(北宋代)에 펼쳐진 다양한 인성론과 관련 논쟁을 분석하여 도학(道學) 성립의 사상적 배경을 탐구했다. 도학의 밖에서 도학의 안을 들여다보는 작업에 매진하는 한편으로 호남 지역의 성리학자들을 연구하고 있다. 논문으로 「북송대의 입양 습속에 대한 구양수의 견해 ― 그의 복의(濮議)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이름: 정종모
약력: 부산대학교 철학과 조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쳤고, 대만의 국립중앙대학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서강대 글로컬한국정치사상연구소 전임연구원, 안동대학교 동양철학과 조교수를 거쳤다. 석사 논문에서는 주자(朱子)의 인설(仁說)을 다루었고, 박사 논문에서는 정명도(程明道)의 철학을 논의했다. 주로 송명 유학의 발전과 전개 및 현대 신유학의 지적 전통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논문으로 「현대유학에서 극기복례 해석 논쟁과 그 의미」, 「주자의 사상채 비판은 정당한가」 등이 있다.

이름: 이해임
약력: 전주 상산고 철학 교사.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였다. 조선조 성리학이 탄생하고 분화하고 심화 변화하는 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1세기 유교 연구를 위한) 백가쟁명』(공저), 『조선경학의 문화다원론적 이념과 실천』(공저), 『조선경학의 문화다원론적 심화와 대안』(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최명길의 사문록 역해와 심층 연구』(공역), 『명유학안 역주 2』(공역)가 있다.

이름: 정원재
약력: 서울대 철학과 교수.

서울대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선 유학자들이 남긴 방대한 언설이 무슨 뜻인지 해명하는 데에 힘을 쏟고 있다. 공저로 『마음과 철학(유학편)』이 있다.

이름: 홍창성
약력: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교(Minnesota State University Moorhead) 철학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미국 브라운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 형이상학과 심리철학 그리고 불교철학 분야의 논문을 영어 및 한글로 발표해오고 있다. 저서로는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 『연기와 공 그리고 무상과 무아』, 『통도사승가대학의 불교철학 강의』, 그리고 『무아, 그런 나는 없다』가 있고, 유선경 교수와 공저한 『생명과학과 불교는 어떻게 만나는가』와 영어로 공동 번역한 Enligtenment and History: Theory and Praxis in Contemporary Buddhism이 있다.

이름: 이규완(하운)

한양대에서 재료공학, 서울대에서 인도불교철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며, ‘3원적 사유구조의 철학적 고찰’과 ‘형이상학적 원자론 연구 ― 희랍, 인도, 불교철학에서 현재까지’라는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저술로는 『원자론의 가능성』 (2023) 역서, 『유식이십론술기 한글역』 (2022) 역저, 『세친의 극미론』 (2018) 등이 있으며, 논문은 “Zongmi’s Inquiry into the Origin of Humanity: Rhetorical Characteristics and Their Implications.”(2022), 「5위75법체계의 성립과 경량부 해석에 관하여」(2022), 「3원적 사유구조 ― 원효 『기신론』 주석과 이익의 『사칠신편』을 중심으로」(2019), 「자이니즘의 paramāṇu와 pradeśa에 관하여」(2018) 등이 있다.

이름: 이길산

경남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조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경남대 무크지 《아레테》 편집위원장, 한국불교학회 편집위원, 한국포스트휴먼학회 사무총장, 한국철학회 발전위원회 간사로도 활동 중이다. 유가행 유식학파의 철학을 중심으로 남아시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의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유식이십론』과 유식성 개념의 변화」, 「지눌에게 경절문이 성적등지문보다 우위인가」 등이 있다.

이름: 최성호

2006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사회학, 철학 전공) 학부를 졸업하고, 2009년 동 대학교 철학과 대학원(동양철학 전공)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22년 독일 루드비히-막시밀리안뮌헨대학교 불교학 박사과정(불교학 전공)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조교, 덕성여자대학교 철학과 시간강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연구보조원,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 인도학-중앙아시아학연구소 시간강사, 서울대학교 철학과 시간강사를 역임하였으며, 현재 경남대학교 교양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번역서 『고전티벳어문법』, 논문 “The Relationship between nāman, pada, and vyanjana in Sarvāstivāda and Yogācāra Literature”, “Two Contemplation Models of Nāmamātra in the Yogācāra Literature” 등을 출판하였다.

이름: 이상엽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불교철학을 전공으로 학부(2010)와 석사(2013)를 마치고 스탠퍼드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초기 중국 불교 사상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2021)를 받았다.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초문화학센터(HCTS)의 포스트닥터 연구원 경력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논문으로 “Jizang’s Anti-realist Theory of Truth: A Modal Logical Understanding of Universal Affirmation through Universal Negation”, Philosophy East and West 73.2 (2023), “Empty Reality, Luminous Mind: The Metaphysics of ‘One Reality’ and ‘One Mind’ in Shi Sengwei’s ‘Shizhu jing hanzhu xu’”, T’oung Pao 109 (2023), 「僧衛「十住経含注序」の「一心」概念について—『大乗起信論』の「一心」概念との関連を中心

に—」, 『印度学仏教学研究』 70.2(2022)가 있으며, 현재 중관학파에 대한 비교철학적 연구와 더불어 인도와 중국을 아우르는 불교문화권 사상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름: 고승학
약력: 금강대학교 로터스칼리지 교수.

서울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와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이통현의 화엄 사상에 관한 연구로 2011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 HK연구교수, 능인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통현을 중심으로 하는 화엄 사상 관련 연구 외에 한국의 지눌, 원효 등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주요 논문으로 「신라 불교사에 나타난 願力의 의미 ― 『삼국유사』를 중심으로」, 「『신화엄경론』에 나타난 이통현의 『화엄경』 해석의 특징 ― 중국 고유사상과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화엄교학에서의 연기(緣起) 개념」, “Chinul’s Hwaŏm Thought in the Hwaŏmnon chŏryo”, “The Huayan Philosophers Fazang and Li Tongxuan on the ‘Six Marks’ and the ‘Sphere of Edification’”, 「화엄사상에서 ‘부분’과 ‘전체’의 의미」, “Wŏnhyo’s View of This World”, 「『신화엄경론』에 보이는 이통현의 법계관에 대한 비판적 검토」, 「무한소급에 대한 화엄의 입장」 등이 있고, 역서로는 Ilseung beopgye-do Wontonggi: Master Gyunyeo’s Commentary on the Dharma Realm Diagram of the One Vehicle(공역), 『불교』, Buddhist Thought of Korea 등이 있다.

이름: 조윤경
약력: 국립안동대학교 동양철학과 부교수.

서강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문학석사를, 중국 베이징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를 취득했다. 오랫동안 길장의 저술로 여겨졌던 『대승현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여 길장 사상을 새롭게 읽어내고, 한국 철학의 원형을 구성하는 고구려 승랑과 백제 혜균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한국불교학연구』(공저, 2022), 『깨달음 논쟁』(공저, 2018), 「중층과 호환 ― 3중이제설과 4중이제설의 구조적 이해」(2023), 「고구려 승랑의 융합적 사유 ― 중가의(中假義)와 이교의(理敎義)」(2022), 「원효와 혜균의 만남과 대화 ― 원효의 화쟁·회통에 보이는 혜균의 변증법적 논리를 중심으로」(2019), 「『大乘玄論』 길장 찬술설에 대한 재고찰 ― 「二諦義」를 중심으로」(2014) 등이 있다.

이름: 이수미
약력: 덕성여자대학교 철학 전공 교수.

서울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에서 석사를 마친 후 미국 일리노이대학교(UIUC)와 캘리포니아대학교(UCLA)에서 불교학으로 각각 석사와 박사를 취득하였다. 한국 불교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불교 사상을 전공했으며, 유식(唯識) 및 여래장(如來藏) 사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Buddhist Hermeneutics and East Asian Buddhist Interpreters: Delivering Dharma of No Dharma(2022)가 있고, 「지눌 수증론의 해오(解悟)와 증오(證悟)의 의미 재조명」(2023), “On the Ālayavijnāna in the Awakening of Faith: Comparing and Contrasting Wŏnhyo and Fazang’s Views on Tathāgatagarbha and Ālayavijnāna”(2019)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이름: 조은수(趙恩秀)
약력: 서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약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전공을 바꾸어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한 후 박사과정 중 도미하여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인도 아비달마 불교와 중국 불교를 비교하는 박사논문을 썼다. 미국 미시간대학교 아시아언어문화학과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2004년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23년에 은퇴하였다. 현재 미국 예일대학교 초빙교수로 새로운 연구를 모색하고 있다. 재직 시절에 서울대학교 규장각 국제한국학센터 초대 소장,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지역 세계기록문화유산 출판소위원회 의장, 불교학연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2022년에 제19차 세계불교학대회를 학내에서 주최하였다. 저술로 Language and Meaning: Buddhist Interpretations of “the Buddha’s word” in Indian and Chinese Perspectives, 편저 Korean Buddhist Nuns and Laywomen, 『직지심경』(영문 공역), 『불교과문집』(공저), 『마음과철학』(공저),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5 ― 문화 사상』(공저), 『21세기의 동양철학』(공저) 등이 있다.

이름: 허우성

경희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및 비폭력연구소 소장이다. 서울대학교 철학과 및 동 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전공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미국 뉴욕주립 대학교 객원교수(한국연구재단 강의파견교수, 1998), 일본 교토대학교 종교학 세미나 연구원, 도쿄대학교 외국인 연구원, 미국 UC 버클리대학교 방문교수, 한국 일본사상사학회 회장,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일본 국제문화교류센터 해외 연구원을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근대 일본의 두 얼굴: 니시다 철학』, 『간디의 진리 실험 이야기』, 『西田哲学研究:近代日本の二つの顔』(岩波, 2022)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마하트마 간디의 도덕·정치사상』(3권), 『인도사상사』, 『초기 불교의 역동적 심리학』, 『달라이 라마의 정치철학』, 『인터비잉』(번역, 근간) 등이 있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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