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의 ‘권(權)’ 개념

 『논어』의 ‘권(權)’ 개념*

논어 자한 - 29. 권도(權道)의 경지

-「자한편」 ‘미가여권(未可與權)’ 장을 중심으로- 박 성규**37)

【주제 분류】
유가철학, 성리학
【주요 어】
권(權), 경(經), 반(反)절대주의, 공자, 논어, 주자
【요약문】

“경권”이론은 유교의 기초 도덕이론 중 하나다. 권의 의미를 둘러싼 상이한 주장들이 매우 많다. 다만 정자, 주자, 장식, 유종주, 왕부지, 전목 등 대부분의 학자들이 “권은 성인만 발휘할 수 있다”는 취지로 풀이한다. 이는 <물에 빠진 형수를 손으로 건지는 권을 발휘하지 못하면 사람이 아니다>는 맹자식의 권 이해와 모순된다. 권을 성인의 독점권으로 풀이하는 관행은 『논어』(9-30)에 나오는 ‘공학(共學)’ ‘적도(適道)’ ‘립(立)’ ‘권(權)’을 학문 성취의 네단계로 풀이하는 습관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 여기서 권은 최고 수준의학문경지에 이른 성인이라야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설정된다.

필자는 ‘공학’ ‘적도’ ‘립’ ‘권’은 어떤 학문경지가 아니라, 단순히 어떤 사태를설명하는 개념에 불과함을 설명해보았다. ‘함께 배우고’ ‘같은 도의 길을 걷고’‘어떤 지위에 서는’ 일과 마찬가지로, ‘권’ 역시 ‘경중을 헤아리는’ 행위 자체를 지칭할 뿐, 어떤 높은 수준의 경지가 아닌 것이다. “함께 공부했더라도 모두 선비의 도를 걷는 것은 아니며, 함께 선비의 길을 걷더라도 모두 다 벼슬자리에 서는 것은 아니며, 함께 벼슬자리에 섰더라도 똑같은 권(‘裁量權’)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경중을 헤아리는 일’, ‘재량권을 발휘하는 일’이 ‘권’의 본래의 의미라는 관점에서, ‘권’의 의미를 『논어』 구절들 속에서 음미해 보았다. ‘권’은 성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행하는 것이고, 일상적으로 행하는 일이다.

 이 논문은 2013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3S1A5B5A07047475).** 홍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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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머리말

통상 유학의 경권론(經權論)에서 경은 원리⋅원칙을, 권은 융통성을 의미한다.1) 경과 권은 선진 시대에는 대립적인 범주가 아니었다. 『논어』(9-30)에서 제기된 권의 맥락인 “융통성 발휘”의 문제가 『맹자』에 의해 공식화되었다.

제자 순우곤이 맹자께 물었다. “남녀는 신체접촉하지 않음(男女授受不親)이 예입니까?” “예다.”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는 손으로 건져야 합니까?”“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건지지 않으면 짐승이다. 남녀가 신체접촉하지 않음은 ‘예’이고,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손으로 건짐은 ‘권’이다.”(7-17)

이는 한대(漢代)에 명문화된 “경에는 반하나 도에는 부합하는 것이 권이다(反經合道爲權)”는 해설의 근거가 되었다. 경과 권을 병칭하는 일은 『춘추공양전』에서 처음 시작된다.2)

(정나라 재상 제중이 송나라의 위협에 굴복하여 임금인 홀을 내쫓고 돌을옹립하였다가, 나중에 2년 후 기회를 타 돌을 내쫓고 홀을 다시 임금으로 옹립했다. 만약 제중이 송나라의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임금(홀)도 죽이고 나라도 망하게 했을 것이다. 임금도 살리고 나라도 보존했으니 제중이야말로권을 아는 사람이다.) 권이 무엇인가? 권이란 경에는 위배되지만 나중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權者何? 權者反於經, 然後有善者也.)3)

“반경합도(反經合道)가 권”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후 권을 어떻게 해석할지를 둘러싸고 각양각색의 설이 전개되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반경합도가 권이다”는 주장과 “권은 곧 경이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1) “경(經)은 상규성(常規性), 원칙성, 일반성 등의 의미를, 권(權)은 변동성, 융통성(靈活性), 특수성 등의 의미를 지닌다.”(張立文, 第二十章 經權論, 『中國哲學範疇發展史(人道篇)』, 710-711쪽)/ “경과 권은 공자학의 핵심 문제다. 나는 ‘원칙성’과 ‘융통성’으로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이택후)

2) 葛榮晉, 『中國哲學範疇通論』, 621-622쪽.
3) 劉尙慈 譯注, 『春秋公羊傳譯注』, 中華書局, 2010, 81쪽.

“반경합도가 권이다”는 주장은 『맹자』에서 발단하여 양한 시대를 풍미한 권 해설의 중심이다.

도는 둘이다. 불변함이 경이고 변동함은 권이다. 상도(常道)를 생각하면서변권(變權)을 발휘할 수 있으면 현자가 될 수 있다. (『韓詩外傳』)4)

 『춘추』에는 경례(經禮)가 있고 변례(變禮)가 있다.···권이 비록 경에 반대되더라도 반드시 그럴만한 범위 내에 있어야 한다. 그런 범위를 벗어나면죽거나 멸망하더라도 끝내 행해서는 안 된다. (董仲舒, 『春秋繁露』)

5) 신하는 평소 임금께 무릎 꿇고 공손의 예를 다하지만 급박한 환란 때에는(생명을 구하려고) 임금의 몸을 발로 밀치더라도 세상에 아무도 비난할 수없을 것이다.···효자가 평소 부모께 낯빛을 온화하게 하는 등 공손의 예를다하지만 물을 빠졌을 때는 머리채를 움켜쥐고 건진다. 감히 능멸하려 함이아니라 죽음에서 구하려는 것이다.···형세상 부득불 그런 것이다. 이것이권의 발휘이다.(『회남자』)6)

이후 왕필(226-249), 한강백(332-380), 남북조시기 『유자(劉子)』 등도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북송 때 이구, 왕안석7)에 의해 옹호되었고, 청대에모기령, 초순, 대진에 의해 다시 옹호되었다.(갈영진, 623-633쪽)또 “권은 경일 뿐이다(權只是經)”는 주장은 송대 유자들이, (무뢰배가)윤리기강을 무너뜨린 짓을 저지른(“反經”) 다음 “도에 부합함”(合道)을 내세워 자기합리화 하는 일을 경계하면서 주장했다.8) 정이천(1033-1107)은“한대 유자들은 반경합도를 ‘권’이라 여기면서, 권변(權變)⋅권술(權術)을 주장했는데, 모두 그르다”라고 하면서, “권은 다만 경일 뿐이다.

4) 韓嬰, 『韓詩外傳』. 夫道二: 常之謂經, 變之謂權. 懷其常道, 而挾其變權, 乃得爲賢.
5) 董仲舒, 『春秋繁露』 「玉英」. 春秋有經禮⋅有變禮.···權雖反經, 亦必在可以然之域, 不在可以然之域, 故雖死亡, 終弗爲也.
6) 『淮南子』13-25. 非敢驕侮, 以救其死也.···勢不得不然也. 此權之所設也.

7) 왕안석은 말했다. “예법만 고수하고 권을 쓸줄 몰랐다면 어떻게 공자가 되었겠는가?”왕안석은 실제에 부합하기만 하면 설사 경에 어긋나더라도 도와 부합하는 것으로 여겼다. 변법을 권으로 보면 반경합도 역시 리에 맞는 것이다. (張立文, 725쪽)

8) 『공양전』에 소개된 제중의 처사는 한대의 권 해석의 중심이 되었지만, 한대의 권 이론이 송대에 배척당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아무리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자기 임금을 내쫓는 일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즉 이미 경에 어긋났으면 도에 부합할 수 없다고 반격당한다.

 한나라 이후에 ‘권’ 자를 안 사람이 없다”라고 하였다.9) 같은 입장에서 장식(1133-1180)은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권이란 천변만화하는 사태에서 그 경중을 헤아려 대처함에 정도를어긋나지 않는 것을 일컫는다.···누유(陋儒)들이 반경합도의 주장을 제기한 이후 그 해악이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다.···이 주장이 일단 유행하자, 권이라는 명분을 훔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심지어는 군신 부자간 대륜조차 팽개치고 돌아보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권을 썼을 뿐이다’고 변명하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10)

이들은 ‘반경합도’의 논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反經 상황이라면 어떻게 다시 合道할 수 있겠는가>의 입장에서 “권은 곧 경일 뿐이다”고 주장한다.11) 왕부지는 말하기를 “경 바깥에 권이 없다(經外亦無權也)” “경과 권은하나다(經權一也)”12) “(어떠한 경우라도) 반드시 경을 지켜야 한다.···어찌부득이하다고경에반하여행하는일이있을수있단말인가?”13)라고 하였다.

9) 『논어집주』. ※ 청인(淸人) 장견도는 정이천의 입장을 변호하여 이렇게 말했다. “<반경합도가 권이다> 함은 공양씨의 주장이다. 제중이 정나라 임금 홀을 폐하고 돌을 세운 사건을 권을 행사한 사례로 여긴다. 이런 황당한 말(齊東謬語)이 제멋대로 윤색되어, 마침내 ‘권’이 권변⋅권술의 글자처럼 취급당하게 되었다.”(張甄陶, 『四書翼注』.정수덕, 『논어집석』, 627쪽)

10) 『孟子說』권4. 所謂權者, 事有萬變, 稱其輕重, 而處之不失其正之謂也.···自陋儒反經合道之論起, 而其害有不可勝言.···此論一行而後世竊權之名以自利, 甚至於君臣父子之大倫蕩棄而不顧. 曰: 吾用權也, 不亦悲夫!

11) 이 문제에 있어서 주자(1130-1200)는 위의 두 주장을 절충하는 듯한 입장을 취한다.그는 “한대 유자들이 말한 ‘반경합도’의 주장은 그다지 병폐가 없다. 일이란 ‘경에 반하는’ 시기가 있기 때문이다”(『어류』37-50)고 하면서, 동시에 “권은 다만 경일 뿐이다”는 정이천의 주장도 “권을 빙자하여 자기변명(自飾, 자기합리화)을 할까 염려하여나온 것이다”라고 변호한다.(『어류』37-42) 그러면서 주자는 “경은 경이고, 권은 권이다”(『어류』37-53) “권과 경이 어찌 구별이 없을 수 있겠는가?”(『어류』37-42)라고 하였다. 그런데 청대의 왕부지(1619-1692)는 “권은 경일 뿐이다”는 정이천의 설을 옹호하면서, “경과 권은 구분이 있다(經權有辨)”는 주자의 설명조차 정면 비판하는 입장을취한다.

12) 각각 『讀四書大全說』권5, 권8.(『船山全書』6, 739쪽; 916쪽)
13) 遭變事而必守經耳.···焉有不得已而反經以行者乎? (『독사서대전설』권5, 『선산전서』6, 740;741쪽)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경과 권의 관계, 혹은 권의 의미에 대한 여러학자들의 해설이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러움을 알 수 있다. 한쪽은 <반경이라도 합도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한쪽은 <이미 반경일진대 어찌 합도할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경권설을 해설한 사람들은, 매우 기이하게도,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전제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권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든) “권은 성인(혹은 大賢)만이 행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권을 알았으니, 제중은 현자였다. (『춘추공양전』 저자의 입장)오직 성인만이 권을 알 수 있다.(唯聖人爲能知權) (『회남자』)14)

권은 이치로 헤아려야 하고 항상 사용할 수는 없으니, 본디 현철이 아니면권을 선택하면 안 된다.(『劉子』 「明權」)15)

성인이라야 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안자(안회) 같은 현인이라도 감히 권을 논할 수 없다.(주자, 『어류』37-35)

권의 쓰임은 위대하다. 성인이 아니고서 누가 그 경지에 참여할 수 있겠는가?(高拱, 『問辨錄』)16)

권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어진 성인뿐이다.···오직 무심히 도를 체현한 사람만이 가능하다.(劉敞, 『公是七經小傳』)17)

의리의 취사선택에 털끝만한 실수도 없는 경지가 권이다.(왕부지)18)

(2) 권 개념이 출현하는 『논어』 구절(9-30)을 해설함에, 공학(共學), 적도(適道), 립(立), 권(權)을 학문 단계의 네 순서로 이해하여, “권의 발휘”를최고 단계의 학문 경지로 풀이하고 있다.

14) 『회남자』 13-24. 唯聖人爲能知權.···權者, 聖人之所獨見. (※같은 글이 『文子』 「道德」에도 인용됨. 『文子校釋』, 210쪽.)
15) 『劉子』 「明權」. 權以理度而不可常用. 自非賢哲, 莫能處矣.
16) 高拱, 『問辨錄』, 152쪽. 權之用大矣哉! 非聖人其孰能與於此?
17) 劉敞(宋人), 『公是七經小傳』卷下. 此言權之難也.···能用權者, 其惟仁聖而已矣.···惟無心而體道者能之.
18) 왕부지, 『四書訓義』권13, 『전서』7,597쪽 참조. 而非由其所立而擇義之精, 取舍不差於毫髮,···至於義精仁熟之大用, 則不敢輕以許人.

이런 풀이가 “권은 성인만이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의 배경이 되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무엇보다 “권은 성인만 가능하다”는 주장은, “경중을헤아리는(저울질하는) 일이 권이다”19)는 ‘권’의 원래의 의미에 비추어 봐도모순이 있다. “경중을 헤아리는 일은 성인만 행할 수 있고”, 보통 사람은 어떤 경우든 “경중을 헤아리면 안 된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가령 “남녀는 몸소 신체접촉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당시의 예법(‘경’)이다. 그런데 맹자에 따르면,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짐승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권을 발휘하여 “손으로 형수를 건져내야 한다.” 권의 발휘란 바로이런 것일진대, 어찌하여 “성인만이 권을 발휘할 수 있다”는 매우 이상한해설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을까? 필자는 그런 꼬임이 『논어』 9-30 구절에 대한 기존의 해설들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공학” “적도” “립” “권”은 어떤 학문 경지를 나타내는 개념이아니라, 단순히 어떤 사태를 설명하고 있는 말임을, 즉 “함께 배우고(共學)”“같은 도를 걷고(같은 노선을 따르고)(適道)” “어떤 지위에 서는(立)” 일과마찬가지로 “권(權)” 역시 “경중을 헤아리는” 행위 자체를 지칭하는 말에불과함을 설명해보려고 한다.

요컨대 “경중을 헤아리는 일”이 “권”의 원래의 의미라는(權, 然後知輕重) 데서 출발에서 그 의미를 『논어』 구절들 속에서 찾아보고자 한다.20)

19) 『맹자』 1-7. 權, 然後知輕重; 度, 然後知長短.···

20) 역대 경권론의 구체적인 내용과 역사적 전개 양상 및 그에 내포된 문제점들을 공부할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연구업적 덕택이다. (1) 류칠로(1991)는 한대 유자의 “反經爲權”설과 송대 유자(정자)의 “權是經”설을 중심으로, 常經과 權道의 상호 보완성과 상호 조화의 문제를 다루었다. (2) 오종일(2001)은 常과 變, 본래성과 현실성의 범주로經權의 문제를 다루면서, 忠-恕 大本-達道의 개념을 경권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3) 박상철(2003)은 經權을 ‘정상적 규칙’과 ‘예외적 규칙’으로 구분하는 한편, ‘권’을 ‘표현된 도덕’으로서의 행위규칙으로 이해하면서 “우리 눈에 파악되는 일체의 도덕적 행동(權)은 그 시점까지의 마음의 함양된 정도를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4) 박재주(2007)는 “經(=원리나 규범)에 따라 시비를 판단하고, 權을 사용함(=시비판단을 상황에 적용시킴)으로써 융통성을 모색하여, 결국 善(=개인과 사회에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분석했다. (5) 이철승(2010)은 “『논어』에서 말하는 권도[權]는 변화하는 현실에서 서로다른 관점이 대립할 때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고르게 균형을 맞추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Ⅱ. 「자한편」 ‘未可與權’장 의미 재검토
1. 기존의 해설들

『논어』 ‘未可與權’장(9-30)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자가 말하였다.

같이 배울 수 있어도 같은 도를 함께 갈 수는 없다. 같은 도를 가더라도 같이설(立) 수는 없다. 같이 서더라도(立) 같이 권(權)을 발휘할 수는 없다.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可與適道, 未可與立; 可與立, 未可與權.”

역대 경권론들은 이 장에 대한 해설과 불가분의 연관을 맺고 있다. 대표적인 해설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이것은 학생들이 점차적으로 나아가야 할 단계와 등급의 차례를 말한 것이다.(張憑)21)

○ 자신을 연마할 줄(爲己) 알면, 함께 공부할 수 있다. 학문이 선을 밝히기에 충분한 뒤에 더불어 도를 걸을 수 있다. 도를 믿음이 돈독한 뒤에 함께설 수 있다. 때에 맞게 합당하게 조치할 줄 안 뒤에 ‘더불어 헤아릴’ 수 있다.(양시, 『논어집주』 인용)

○ 제자 3000명이 공자 문하에서 배움이 가여공학(可與共學)이다. 육예에통달한 72명의 선비들이 가여적도(可與適道)했다. 염구⋅민자건⋅자로⋅자하의 무리가 가여립(可與立)이다. 안자만이 가여권(可與權)할 수 있다.(유종주)22)

○ 속학과 이단을 멀리하고 선왕의 시서예악을 받들어 익힘이 ‘가여공학’이다. 배운 바를 몸소 실천하여 행실에 드러남이 ‘가여적도’이다. ··· 행실에 지조가 있어서 바뀔 수 없는 원칙에 서서 물욕에 의해 혼란되지 않는경지가 ‘립(立)’이다. ··· 의리의 선택이 정밀하고 취사선택에 털끝만한실수도 없고 의리가 정밀하고 인이 성숙한 대용(大用)의 경지가 ‘권’이다.(왕부지)23)

21) 張憑: 此言學者漸進階級之次耳. (皇侃, 『論語義疏』)
22) 『論語學案』. 三千之從遊, 可與共學乎. 七十子之彦, 可與適道矣. 冉閔由賜之徒, 可與立. 顔氏之子可與權.
23) 『四書訓義』 권13, 『전서』 7,596-7쪽 참조. 不屑俗學, 不尙異端, 順先王 『詩』 『書』 禮樂而服習焉, 此吾黨之士野, 可與共學矣. 乃引所學而以之服躬, 由其學而思見諸行, 斯可與適道. ··· 行有恒, 立乎不易之方而不爲物欲所亂, 以不保其所適之正, 未可知也, 而能遽許之立乎? ··· 而非由其所立而擇義之精, 取舍不差於毫髮, ···至於義精仁熟之大用, 則不敢輕以許人.

○ 이 장은 진학의 단계(순서) 과정을 가르친 것이다 ··· 의리가 치밀하고 인이 몸에 밴 사람이 아니고는 권을 발휘할 수 없다. 시세에 임기응변하는일을 ‘권을 잘 발휘한다’고 여기는 것은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무슨 짓이든 저지르고도 거리낌이 없는 소인배의 경우에 해당한다.(전목)24)

○ 이것은 학습의 경지를 강론한 것이다. 1단계는 도를 배움(學道) 즉 공학(共學)이고, 2단계는 도를 걸음(適道) 즉 도의 추구이고, 3단계는 수도(守道)즉 ‘립’이고, 4단계는 도의 응용(用道) 즉 ‘권’이다. 똑같은 학생인데많은 이들이 단지 앞의 몇 단계만 걷고 최후의 단계에는 도달하지 못한다.(李零)25)

과거나 현재의 학자를 막론하고 한결같이 “공학” “적도” “립” “권”을 학문의 단계적 경지로 풀이하고 있다. 앞 사람의 풀이를 말만 바꾸어 반복한셈이다. 이런 풀이의 근거가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아무튼 이와 같은 풀이들이 <권은 성인만이 발휘할수 있다>는 해설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제 그 구절의 의미를 다른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자 한다.

24) 錢穆, 『論語新解』(三聯書店, 2002), 245-6쪽. 本章告人以進學之階程. ···

25) 다음의 해설들도 비슷하다. ○ “‘가여공학’자(者)는 뜻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뜻만 있고 지혜와 견식이 어두운 자는 ‘가여적도’할 수 없다. ‘가여적도’자는 견식이 밝아 능히 선을 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노력이 박약하고 견고치 못하면 ‘가여립’할 수 없다.선을 택함이 확고부동하고 유추 능력이 통달하여 굳건히 서서 후퇴하지 않을 수 있어야 ‘가여립’의 경지이다. ‘가여립’ 경지에 이르면 ‘독신호학, 수사선도(篤信好學, 守死善道)’의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시의적절하게 행동하며 융통성을 발휘하여 형세의 이로움을 살핀다면 그는 권을 행함에 진실로 ‘반경’하나 ‘합도’하는 사람일 것이다.”(강유위) ○ “공자는 왜 ‘권’을 구도(求道)의 최고 경지로 삼았는가? 권이란 중용의 덕과마찬가지로 모두 천변만화하는 불확정성 속에서 도덕과 신념의 범위에 통달케 하려는것이기 때문이다.”(彭亞非, 『논어기해집록』 인용) ○ “공자는 한 개인의 학습과 수양을학, 적도, 립, 권의 네 단계로 나누었다.···공자가 ‘권’을 학습의 최고 경지로 간주했음을 알 수 있다.”(張松輝 등, 340쪽)

2. ‘未可與權’장의 재음미
1) 可與共學, 未可與適道26)

주자 등은 “적도”를 어떤 학문의 경지로 풀이한다.27) <함께 공부했더라도 모두가 선도(善道)28)를 따라가지는 않는다>고 풀이한다. 이런 풀이는“학문을 배운 적도 없는” 무지렁이 백성도 “부모에 효도하고, 친구간 우애를 지키는” 등 선도를 따른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을 지 모르겠다.

“도를 따라간다” “도를 걷는다”는 “적도”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두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보기로 한다.

① “함께 같은 도를 추구한다”(適道)

주자 등은 “適道”를 풀이하면서, 하나의 정해진 도의 존재를 상정하고있다. 도란 하나만 있다는 입장이다. 과연 그것이 『논어』의 입장일까?우선 “可與適道” 구절은 <함께 같은 길을 간다. 함께 같은 도를 따른다.

비슷한 노선을 따른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같은 도를 걷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각자가 따르는 도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도는 여러 가지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말했다.

“도가 다르면 (도가 다른 사람과는) 서로 어떤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없다.”15-40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공자는 <사람마다 도가 다를 수 있다> <다른 도가 있다>는 사실을 당연시 하고 있다. 마치 오늘날 <갑은 기독교의 도를 가고, 을은 불교의 도를 간다>는 것과 같다. 나아가 <갑은 사회주의 도(노선)를 따르고, 을은 자본주의 도를 따른다> <갑은 (자본주의의 도 중에서도) 성장 위주의 도를 따르고, 을은 분배 위주의 도를 따른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26) 未는 “(∼∼라고 해서) 반드시∼∼하는 것은 아니다” “꼭∼인 것은 아니다” “(현 상태에서) 아직∼∼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 할지는 아직 모른다”는 의미. ※황회신: “未, 言未必, 不一定.” 전목(『논어신해』), 양백준(『논어역주』) 등도 “未必”로 해석함.

27) “요새 사람들은 <可與共學>도 이해한 적 없으면서 곧장 <適道>하려고 한다”라는 주자의 말에서도 <共學>과 <適道>을 학문의 단계로 파악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어류』60-91 “···今人未曾理會 “可與共學”, 便要 “適道”.)

28) 黃懷信: “道”, 正道, 共同的理想⋅主張. (『논어기해집록』, 506쪽)

『논어』를 보면 공자는 “부모는 자식을 감싸며, 자식은 부모를 감싸는”道를 주장하지만, 섭공은 “아버지의 비리라도 자식은 고발해야 한다”는 道를 주장한다.(13-18) 섭공의 주장은 나중에 법가의 道로 연결된다.

또 은둔주의자들(장저, 걸익, 접여, 신문, 하조장인)은, “군신간 의리를위해 벼슬을 한다”는 공자의 道를 비웃는다. 그러면서 “권력에 기생하는 삶은 깨끗하지 못하니, 자신의 의식주는 스스로 노동하여 해결해야 한다”는자기들의 道를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나중에 도가의 道로 연결된다.

또 다음 내용을 보자.

일민(逸民)으로는 백이, 숙제, 우중, 이일, 주장, 유하혜, 소련이 있다. 공자가 말하였다. “뜻을 굽히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은 이는 백이⋅숙제로다! 유하혜⋅소련은 ‘뜻을 굽혀 몸은 욕되었으나, 말이 도리에 맞고 행실이사려 깊었다. 다만 그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중⋅이일은 ‘은거하면서말을 함부로 했으나, 처신이 깨끗했고, 세상을 저버림이 권에 맞았다(身中淸, 廢中權)’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들과 다르다. ‘그래야 된다’도 없고 ‘그래서는 안 된다’도 없다(我則異於是, 無可無不可).”(18-8)

즉 공자는 백이숙제 등의 도(길)와 자신의 도가 다름을 말하고 있다. 서로 다른 도가 있다는 말이다.

은자들은 공자의 도를 도라고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도만 도라고인정할 것이다. 반대로 공자 역시 은자들의 도를 도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또 부모에 대한 고발 행위를 둘러싼 섭공과 공자의 입장 차이도 마찬가지다.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도가 똑같은 비중과 의미를 지닌다는 말은 아니다.29) 섭공, 걸익 등에 비교할 때 오직 공자의 도만이 현재의 안목에서 보더라도 원칙과 상식에 가까운 도라고 할 수 있겠다.

29) 요즘 관점으로도 섭공이나 은자들의 도를 도라고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대한민국 형사소송법은 “직계존속에 대한 고소⋅고발을 금하고” 있다. 또 은자들의도는 유럽의 히피족이 잠시 추구했던 것이 거의 전부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여기서 “섭공, 걸익, 우중, 공자, 자로, 안연” 등이 나이가 비슷하여 같은 학교 같은 선생 밑에서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이들 모두가 같은 도의 길을 따라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런 정황이“가여공학, 미가여적도”의 의미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가여공학, 미가여적도”는 <함께 같이 어떤 스승 문하에서 배웠다고해서 그 이후 각자의 삶에 있어서 반드시 같은 도를 가는 것이 아니다>는의미가 된다.30) 위에서 가정한 6명의 동창생들 중에서 결국은 공자, 자로,안연만이 같은 길을 가게 된다.

② “도에 뜻을 둔 선비의 길을 간다”(適道)

또 『논어』의 다음 내용을 보자.

공자가 말했다. “선비로서 도에 뜻을 두었다(志於道) 했으면서, 자신의 악의악식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의 사상은 별 볼 일 없다.”(4-9)공자가 말했다. “선비로서 안락한 생활을 동경하면, 선비라고 할 수 없다.”(14-2)

증자가 말했다. “선비는 강의롭고 굳센 기상을 넓혀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는 무겁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의 실현을 자기 임무로 삼으니, 무겁지 않은가? 죽은 다음에야 그만두니, 멀지 않은가?(8-7)

“도(도의 실현)에 뜻을 둔”(志於道) 선비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다.악의악식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은 기본이다. 안연이 그런 길을 걸었다. 그런 안연을 공자는 이렇게 칭찬했다.

“현명하다, 안회는! 단사표음으로, 누추한 동네에 살고 있으니! 사람들은그런 고충을 감당하지 못하건만, 안회는 저 원래의 즐거움을 바꾸지 않는다! 현명하다, 안회는!”(6-11)

안연은, 도를 추구하는 삶이 고통스러워도 그런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걸어갔다. “적도”란 이처럼 “도에 뜻을 둔 선비의 길을 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30) 또한 서로 비슷한 도를 따르더라도 각자가 우선시하는 도의 내용 역시 또 다를 수 있다. 같은 기독교의 도를 걷더라도, 갑은 십계명의 도를 중시하고 을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도”)를 더 우선시할 수 있다. 이처럼 우선시하는 도가 서로 다른경우도 “도가 서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의 상황으로 비유해 보자. 가령 학생들이 석사과정에 입학해서 “서로 함께 공자, 율곡, 플라톤, 칸트의 사상을 공부하고 세미나 몇 번 참여했다”(“共學”)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정의로운 세상을 이룩하기 위한 탐구의힘든 길을 평생을 바쳐 걷게(“適道”) 될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굳이 비유컨대 함께 인문학자(“선비”)의 길을 평생 걸을 지는 알 수 없다. 대체로 중도 포기하고 보험설계사, 벤처사업가, 치킨집 사장 등 생계가 보장되는 길로돌아서게 된다. 공자의 3000명 제자들이 처한 상황도 대체로 이와 비슷했을것이다. 이런 정황이 “가여공학, 미가여적도”의 문맥이라고 생각한다.

‘공학’ 했더라도 ‘적도’하지 못함은 ‘적도’가 높은 경지여서가 아니라, 그길은 춥고 굶주림이 예고된 험난한 길이여서 그렇다는 말이다.

요컨대 ①② 어떤 의미로 이해하든 “적도”란 “어떤 노선의 도를 따른다”

혹은 “도를 추구하는 삶을 산다”는 의미로써, 어떤 삶의 길(“선비의 길”)을선택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적도”를 꼭 어떤 “학문 경지”로 풀이해야만 할 필연성은 발견할 수 없었다는 말이다.

2) 可與適道, 未可與立

이 구절도 대부분의 학자들이 학문경지의 연장선상에서 “립”의 의미를풀이한다.

주자: “립(立)은 정당한 도리를 분명하게 통찰함으로써 사물에 휘둘려 변심하거나 미혹되지 않음이다.”

왕부지: “행실에 지조가 있어서 바뀔 수 없는 원칙에 서서 물욕에 의해 혼란되지 않는 경지가 립(立)이다.”31)

“외물에 휘둘리지 않는 경지”나 “물욕에 혼란되지 않는 경지”가 “립(立)”이라는 것이다. 『중용』(10)에도 “군자중립이불의(君子中立而不倚)”라는 표현이 있듯이, 물론 ‘립’을 이렇게 풀이할 수 있다.

31) 『어류』 37-47. 問: “‘可與立’, 如何是立?” 曰: “立, 是見得那正當底道理分明了, 不爲事物所遷惑.” / 『四書訓義』 권13. “行有恒, 立乎不易之方而不爲物欲所亂, 以不保其所適之正, 未可知也, 而能遽許之立乎?” 참조.

그러나 『논어』에서 ‘립’은 무엇보다 <어떤 지위(位)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공자는 말했다.

지위(位)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라. 그 자리에 설(立) 능력을 근심하라.(4-14不患無位, 患所以立.)

장문중은 지위(位)를 훔친 자로다! 유하혜가 현명함을 알면서도, 조정에 천거하여 함께 서지(立) 않았다.(15-14···知柳下惠之賢而不與立也.)

(벼슬 등의) 지위를 얻어 (조정에) 서는 것이 “립”이다. <함께 같이 비슷한 노선(도)을 걷더라도 함께 더불어 (어떤 지위에) 같이 설 수는 없다(可與適道, 未可與立).> 너무나 당연한 말이 아닌가? 벼슬자리는 제한돼 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 자리에 설 수 있겠는가?

“도의 길을 걷는(適道)” 선비의 삶은, 정의로운 세상 구현을 위한 연구와교육의 길을 걷다가, 운이 좋으면 정부에 발탁이 되어 정책(“道”)을 입안하고, 마침내 그 내용을 실현할(“行”) 수 있는 지위(관직)에 오르는 것이 이상적인 삶의 과정일 것이다. 『논어』(14-36)에서 공자는, 간신의 참언 때문에,제자인 자로의 등용이 좌절되자 이렇게 말했다.

“도가 실현되는 것도 운명이고, 도가 실현되지 못하는 것도 운명이다. 공백료 따위가 어찌 운명에 간여할 수 있겠느냐!”(14-36)

공자가 “자로의 등용”을 “도가 실현되는(道之行)” 과정의 하나로 여겼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등용되는 것, 지위에 서는 일이 곧 “립”의 문맥이라고 생각한다.그런데 『논어』에는 “립”이 어떤 학문의 경지 혹은 깨달음의 경지로 풀이될만한 대목도 있다. 공자의 “삼십이립(三十而立)”(2-4)의 ‘립’이 그것이다. 주자 같은 경우는 이 ‘립’을 ‘불혹’, ‘지천명’, ‘이순’처럼 어떤 경지로 풀이한다.

학문에 뜻을 두고 십오 년 동안 계속 노력하여 절조를 지키는 공부를 닦아서 올라선 경지가, 아주 견고하여 그 어떤 것에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 ‘립立’이다.(『혹문』)

“삽십이립”이란 우뚝하게 서 있어서 다른 사물에 의해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불교의 진리를 설하든 공리주의를 설하든 전혀 동요하지 않고, 또한 부귀에도 현혹되지 않고 빈천에도 흔들리지 않으며위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경지이다.(『어류』23-99)

그러나 “삼십이립”도 “공자가 어떤 지위(벼슬자리 혹은 예법권위자 자리)에 섰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32) 즉 “립”을 어떤 학문 경지가 아니라 “립어조(立於朝)” “립어례(立於禮)”의 “립”의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33)

“가여적도, 미가여립”은 선비의 길을 걷더라도 (운이 좋아) 벼슬자리에 서는(立) 사람은 몇 안 된다는 말이다. 크릴에 따르면,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제자(“선비의 길을 걷는”) 22명 중 겨우 9명만이 벼슬자리에 섰다.(56쪽)

3) 可與立, 未可與權

『논어』에는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책을 의론하지 않는다”는 말이두 번이나 나온다.(8-14, 14-26) 그 지위에 서면 그 정책을 의론한다. “립어조(立於朝)”34)하면 “조정에 서서 정책을 의론한다.” 상황의 시비득실과 사태의 경중을 헤아려 결정을 내릴 텐데, 이런 행위가 ‘권의 발휘’ 아니겠는가?

가령 “조정에 선” 대사구(大司寇,법무장관)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어떤 범죄자를 처결하는 일은 우선 법무장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그 범죄를 중하다고 여기면(저울질하면, ‘權’) 중범죄가 되고, 경하다고 여기면 경범죄가 될 것이다. 그 범죄자의 죄상을 저울질 하는(“무죄인지, 10년형의 죄인지, 20년 형의 죄인지를 결정하는) 일은 그에게 달려 있다.

32) 『사기』 「공자세가」에 따르면, 공자가 17세 때, 대부 맹희자가 후계자 맹의자에게 유언으로 훈계했다. “공구(공자)는 나이는 어리나 예법에 통달한 사람이다. 내가 죽거든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모시거라.” 공자는 17세에 이미 예법 권위자의 지위에 섰던(立) 셈이다. 또 서른 살 이전에 계씨의 위리(委吏, 창고지기)와 직리(職吏, 축사지기) 벼슬을 했고 사공(司空, 공사 감독관) 벼슬자리에 섰다.(정범진 외 역, 『사기세가』하, 까치, 418-421쪽)

33)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삽십이립”을 “립어례”의 의미로 풀이한다.

34) “공서화는 관복을 입고 조정에 서서(立) 외교사절을 응대하게 할 만하다.”(5-8 “赤也,束帶立於朝, 可使與賓客言也”)

그의 소관 사항이다. 즉 그의 權(재량권)인 것이다. 이 일이 그의 權限이다. 이와 같이 그 범죄의 죄상의 경중을 저울질하면 곧 범죄자에 대한 처벌수위가 결정된다. 법무장관이 이런 식으로 ‘권’을 행하면 효력을 지니게 되니, 이것이 그의 勸力인 것이다.35)

요컨대 “조정의 어떤 벼슬 자리(位)에 선(立)” 관리가 직무상 행하는 처결⋅결재조치등의 대부분의 행위가 권(재량권)의 발휘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데 어떤 지위(자리)에 나란히(혹은 전임, 후임으로 시간대를 달리하여) 섰다 하더라도, 각자 처결⋅결재하는 내용은 똑같을 수 없다. 조정에서위의 범죄자 처결 문제를 대신들의 합의로 결정한다고 할 때에도 각자의 의견(“권”)은 분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즉 재량권(裁量權)을 발휘하는 내용은 서로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지위에 서더라도 각자 내리는 정책 결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가여립, 미가여권(可與立, 未可與權)”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제 ‘립어례(立於禮)’의 의미를 음미해 보자. 공자는 “예를 배워야 립(立)할 수 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말했다.

(아들에게 말했다.) “예를 배우지 않으면 립(立)할 수 없다.”36)“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모르면 립(立)할 수 없다.”37)

“립어례(立於禮)”도 “립어조(立於朝)”의 경우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립어조”가 조정의 일에 있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위에 선다는 의미이듯이, “립어례”는 예법에 관련된 일에 있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위에 선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35) 물론 일반인도 해당 범죄에 대해, 대사구와 다르게 권을 발휘하여 그 경중을 헤아릴 수있다. 다만 이런 권 행위는 효력이 없다. 권력이 없는 것이다.

36) 6-13 曰: ‘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37) 20-3 孔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여기서 “유(儒)의 기원”을 논한 호적과 풍우란의 설명을 살펴보자.

호적: “유는 남의 상례를 주관하여 예법 절차를 지도하는(‘治喪相禮’) 고문 역할을 해주고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다.···상주는 대체로 경황이 없어 예법절차를 챙길 줄 모르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과 안내(相導)가 있어야 했다.”38)

풍우란: “유(儒)는 지식과 학문을 갖춘 일종의 전문가로서 남을 교육하고예식을 보좌함(敎書相禮)으로써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다.”39)

상례(相禮)란 남의 대사에 초빙되어 예법 진행절차를 주관하거나 자문을해주는 역할을 의미한다. 각 사람들이 그때그때 처한 상황은 매우 다르다고할 수 있다. 세상의 온갖 상이한 사례마다 상이한 예법을 책에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다. 또 대사를 당하여 이렇게 행하는 것이 예법에 타당한지 저렇게 행하는 것이 더 타당한지 일반 사람들로서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법 책에서 찾아보려고 해도 그 특별사례는 기록에없을 수 있다. 이 때 예법 전문가가 나서서 결정을 내려주는 것이다. 전문가(권위자)의 결정이라 권위가 있다.40) 그러면 그 결정이 곧 예법으로서의 힘(효력)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예법전문가라는 지위를 얻어 민간의 예절 절차를 주관해주는 일이나, 벼슬 지위를 얻어 조정에 서서 정책을 결정하는 일을 감당하려면 “예법을 잘 알아야 한다.” “예법을 모르면 립(立)할 수 없다”는 공자의 말이 바로 이런 맥락이라고 여겨진다. “예법을 모르면” <구체적인 각 사안에 맞는예법을 결정지어줄 능력을 발휘하는 지위에 설(立) 수 없다>는 말이다.41)

38) 胡適, 「說儒」, 『호적학술문집-중국철학사』(中華書局,1991), 635-9쪽.
39) 풍우란, 박성규 역, 『중국철학사』상, 까치, 675-6쪽. (부록1 원유묵)

40) 옛날 예법은 죽간에 기록되었다. 죽간은 분량 자체가 엄청나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소장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설령 귀족이 죽간을 대량 보관하고 있다 하더라도 막상 일이닥쳤을 때 그 죽간의 도움을 얻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미리 공부를 하여 대강이라도외우고 있지 않는 이상 어떤 죽간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 일일이 뒤져보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걸(많은 걸) 외우고 있는 예법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었을 것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예법전문가의 사회적 위상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법 등이 기록된 거의 모든 죽간 내용을 암송한 최고의 예법전문가가 공자였던 것이다.

41) “8-8 興於 『詩』, 立於禮, 成於樂”의 ‘립어례’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겠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 어떻게 행해야 할 지 일일이 예법 책이 가르쳐줄 수는 없다. 「향당편」을 보면 공자는 스스로 판단하여, 대궐문을 들어갈 때는 대궐문이 넓어도 몸을 움츠렸으며, 임금 자리를 지날 때는 안 계서도 계신 것처럼 경외심을 품었다. 이처럼 각 경우 마다 어떻게 행함이 예법에 맞을 지를, 이미 터득한 예법 지식에 의거하여 판단을 내린다음 그와 같이 행할 수 있는 경지가 예법을 완전히 장악한 경지, 즉 “립어례”의 경지아니겠는가?

이제 『논어』 9-30 구절 전체를 한번 풀이해보자. “함께 공부를 했더라도같이 선비의 도를 걷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 선비의 길을 걷더라도 모두다 벼슬자리에 서는 것은 아니다. 함께 벼슬자리에 섰더라도 똑같은 내용의재량권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Ⅲ. 『논어』에서 ‘권(權)의 발휘’의 의미

공자가 반란자 밑에서 벼슬을 하려고 했고, 탕⋅무가 임금을 죽였고, 순임금이 부모의 명을 얻지 않고 결혼을 했다. 이런 일들만 권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42) 필부로서 물에 빠진 형수를 손으로 건지는 일도 권이기 때문이다.

중앙선을 침범하면 안 되지만, 역주행 차량을 피해야 하는 등 긴급 상황에서는 중앙선을 넘어야 한다. 사람을 살상하면 안 되지만, 자신의 생명이위협받는 상황이나 전쟁터에서는 사람을 살상해야 한다. 이런 등등의 일이권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생활 중에서 종종 부딪히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서 권을 논한 선진(先秦) 문헌을 살펴보자.

도를 아는 자는 반드시 이치에 통달하고, 이치에 통달한 자는 반드시 권에밝고(達於理者, 必明於權), 권에 밝은 자는 외물로 인해 자신을 해롭게 하지않는다.(『장자』)

중용을 견지함은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중용을 견지하면서 권을 발휘하지못하면(執中無權)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경우과 같다.(『맹자』)43)

“이치에 통달한 자는 권에 밝을 수밖에 없다”는 『장자』의 말은 이치에통달하면 (경중을 헤아리는) 사리판단에 밝다는 것이다. 맹자의 말은, 아무리 좋은 도리라도 현실에 적용할 때 사태의 경중을 헤아려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면 도리어 해가 된다는 것이다.

42) 삼강오상(“경”)의 모범을 보여야 할, 탕⋅무와 순임금 등 유교의 성인들이 삼강오상윤리를 배반하고 있다. 그래서 주자는 그런 일을 ‘성인의 권’으로 간주한다. 그는 삼강오상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해야 했으므로 “권은 성인만이 발휘할 수 있다”고 선을 긋고 “보통 사람은 경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설파했다.

43) 『장자』17-7 知道者必達於理, 達於理者必明於權, 明於權者不以物害己. / 『맹자』13-26執中爲近之. 執中無權, 猶執一也. 所惡執一者, 爲其賊道也, 擧一而廢百也.”

이처럼 권 개념은 인간의 모든 사리판단 행위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순임금⋅탕왕⋅무왕 등의 행위처럼 특이하고 유별나거나도덕적 물의를 야기할 수 있는 주제에 관련해서만 권 개념이 관련되는 것이아니라는 말이다.

최선의 판단은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남이 정해줄 수 없다. 맹자는 말한다.

예답지 않은 예, 의답지 않은 의는 대인은 따라 행하지 않는다.

8-6 孟子曰: “非禮之禮, 非義之義, 大人弗爲.”

남이 정해준 제도나 예법을 무조건 따르지는 말라는 말이다. 예라도 예답지 않거나, 의리라도 의리답지 않으면, 따르지 않고 행하지 않겠다는 말인데, 어떤 일이 예답다거나 예답지 않다고 판단하는 일은 본인이 헤아려야한다. 이것이 권을 발휘하는 일 아니겠는가?

『논어』 「향당편」 등을 보면 공자는 “예에 맞게 행했다.” 우리는 공자가어떤 규정을 묵수한 것이 아니라, 대체로 공자 스스로 항상 “무엇이 예에맞는지를 저울질하는 일을 계속했음”을 알 수 있다. 「향당편」의 일들은공자 이전의 책에 기록된 내용이 아니다.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논어』에서 특별히 공자의 일로 여겨 기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란, 많은 경우,책에 기록된 것을 우리가 따라 행하는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 찾아서 행해야 하는 것임을 「향당편」은 말해주고 있다. 또 공자가 말했다.

삼실 관을 쓰는 것이 예이지만, 요즘은 생실 관을 쓰는데, 이는 검소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대중의 관습에 따르겠다. 그런데 당 아래에서 절하는 것이예인데 요즘은 당 위에서 절을 하니 이는 교만한 일이다. 그래서 비록 대중의 관습과 어긋난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 아래에서 절을 하겠다.(9-3)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관습”이 ‘예’다. 관습은 시대마다 변한다. 그런데그 변화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긍정적으로(“검소”) 변한 경우이다. 그래서 공자는 이전의 예가 아닌 새로운 예를 따랐다. (대중이 어떤 방식으로행하면 그것이 곧 예로 정착될 것이다.) 또 하나는 부정적으로(“교만”) 변한 경우이다. 이 경우 공자는 새 관습은 예가 아니고 옛 관습이 예에 맞으니자기 혼자라도 옛 것을 고집하겠다고 하였다.

공자는 도리에 견주어 주체적으로 생각하여 어떤 것이 예에 맞는가를 판단하고 선택한 다음 행했다. 이와 같이 주체적인 취사선택의 판단 행위가‘권의 발휘’ 아니겠는가? 『논어』는 위 구절 바로 다음에 아래 내용이 이어진다.

공자는 네 가지를 근절했다. 선입견⋅편견(意), 기필함(必), 고루함(固), 아집(我)을 단절했다.9-4 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

가령 어떻게 행하는 것이 예에 맞는 일인지 등을 헤아려 판단⋅결정할때 그 어떤 선입견, 기필함, 고집, 아집 등을 버리라는 말일 것이다. 최대한열린 마음으로 권을 발휘하라는 뜻 아니겠는가? 공자는 또 말했다.

군자는 천하 만사에 대해서 ‘적(適)’도 없고, ‘막(莫)’도 없다. 항상 도리(義)에 비추어 판단할 따름이다.(4-10···義之與比.)

“적(適)”은 “반드시∼해야 한다”의 뜻이라면 “막(莫)”은 “반드시∼해서는 안 된다”의 뜻으로 볼 수 있다.44) “적”⋅“막”은 어떤 절대주의적인 접근태도를 형용하는 개념으로 보인다. 사태의 경중을 헤아려 판단함(“권을 발휘함”)에 열린 자세를 견지하라는 말이겠다.

공자도 “사람이 지켜야 할 원칙”을 강조한다. 다만 공자가 “사람이 무조건 맹목적으로 원칙(經)을 지켜야 한다”고 설교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원칙’에 어긋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부딪히기때문이다. 공자가 보기에 사람은 누구나 이런 중대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44) 『논어집주』: 適, 專主也.···莫, 不肯也.···謝氏曰: “適, 可也. 莫, 不可也.···※대체로 “無適, 無莫”을 “無可, 無不可”(18-8)로 풀이한다.

 동일한 상황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개개의 문제는어느 정도 특수성을 갖는다. 이런 특수성이야말로 그 개인에게는 정말로 중요한 일인데, 그 특수성은 성인 공자라도 학생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다. 각개인이 처하는 상황은 다 다르기 때문에 <계명(“經”) 지키기>만을 강요한다고 해서 모든 일이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45)

『사기』 「공자세가」에 나오는 공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포 땅 사람들이 공자 일행을 억류하고 협박하였다. 그들이 공자에게 “위나라로만 가지 않겠다고 (신 앞에) 맹세하면 풀어주겠다”고 하자, 공자는 그들과 그렇게 맹세하고 그 나라 성문을 벗어났다. 그리고 공자는 곧장 위나라로 들어갔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맹세를 저버려도 되는 것입니까?(盟可負邪)”
“강요된 맹세는 신(神)은 듣지 않으신다.(要盟也, 神不聽.)”

자공을 비롯한 보통 사람들은 “신 앞에 맹세한 내용은 지켜야 한다”는것을 사람의 도리(“경”)로 여길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포 땅 사람들과의약속은 안 지켰지만 신과의 맹세를 어긴 것은 아니다. 강요된 맹세는 맹세가 아니니, 신에게 실제로는 맹세한 적이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공자의 ‘권의 발휘’ 아니겠는가?

또 『논어』는 “예의 운용은 화합(조화)이 귀중하다”(1-12)고 말했다. 화합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예법을 적절히 운용하는 행위, 이것이 ‘권의 발휘’아니겠는가? 또 공자가 말했다.

“예란 사치스럽게 행할 바에야, 차라리 검소하게 행해야 한다. 상례란 능수능란하게 행할 바에야, 차라리 애달파해야 한다.”(3-4)

“바탕이 형식을 압도하면 거칠고, 형식이 바탕을 압도하면 겉만 번드르르하다. 형식과 바탕이 어울러야 군자다.”(6-18)

형식이 지나쳐도 안 되고 바탕(마음가짐)만 구비해도 안 된다. 예를 행함에 있어서 적절한 균형을 발휘하는 선택⋅결정이 곧 ‘권의 발휘’ 아니겠는가?

45) 크릴에 따르면, 공자는 절대적인 가치 기준으로서의 ‘진리’(“經”) 따위는 처음부터 제시하지도 않았고, “설사 진리를 안다고 할지라도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지는 진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크릴, 177쪽)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Ⅳ. 권과 시중

“권은 성인만이 가능하다”라고 풀이하는 학자들은 논리적으로 당연히“권은 곧 시중(時中)을 의미한다”고 풀이한다.

그런데 우리가 어떤 선택(판단)을 하는 행위 자체는 그 행위가 ‘시중’인지 여부와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46) 어떤 몇 가지 대립된 상황을놓고 그 경중을 헤아린 다음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행위 자체를 권이라고할 수 있고, 그것이 『논어』 9-30의 권의 상황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물론 『논어』에는 어떤 선택의 행위가 올바른 경우를 일컬어 권이라고 표현한 구절이 있다. “우중⋅이일은 처신이 깨끗했고, 세상을 저버림이 권에맞았다(身中淸, 廢中權)”(18-8)는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서의 ‘권’ 개념은자연스럽게 “시중(시의적절함)” 개념과 연결된다. 주자는 말한다.

“권은 시중時中이다. 시중이 아니면 권이 될 수 없다.”(『어류』37-43)
“권은 중도(中) 아닙니까?” “어느 한때의 중도(一時之中)이다. 중도가 아니면 권이 될 수 없다.”(『어류』37-45)

주자를 비롯하여 많은 학자들이 권을 시중으로 해설한다.47)

공자가 행한 취사선택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도리에 맞을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실제로 “공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권이다”라고 해설하는 학자들도 있다. 왕부지는 “「향당편」 전체 내용이 성인의 권이다”고 말한다.48)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권 개념이 곧 시중과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공자와 같은 성인이 발휘한 권은 항상 거의 “시중”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보통 사람이 발휘한 권은 그 사람의 한계를 드러내는 수준의 결정이 될 것이다. 정치를 행한다고 할 때, 공자처럼권을 잘 발휘하면 위대한 정치를 할 것이겠으나, 보통사람처럼 권을 적당히발휘하면 보통수준의 정치밖에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46) 재량권이나 권한의 발휘 자체가 권의 의미라면, 발휘한 재량권이 옳고 정당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는 다른 문제에 속한다.

47) 徐儒宗, 『中庸論』; 陳科華, 『儒家中庸之道硏究』 등 참조.
48) 王夫之, 『讀四書大全說』.···心從欲不踰矩, 而后卽心卽權, 爲 ‘可與權’也. 如 「鄕黨」一篇, 無不見聖人之權.

Ⅴ. 맺음말

사전은 재량권을 “자유재량으로 처분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행정행위는 원칙적으로 일정한 범위 안에서 <재량권>을 가진다. <법률>이 모든분야의 구체적인 경우를 모두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여기서의 법률이 “경”에 해당하고 재량권이 “권”에 해당한다고, 필자는 주장한 셈이다. “경”에 비추어(경을 기준삼아) “권”을 발휘한다. 공자 시대에는 예법, 관습, 선례, 도리(4-10의 義) 등이 “경”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요컨대 “경중을 헤아리는 일”이 ‘권’이라면, ‘권’은 성인만이 아니라, 누구나 행하는 것이고, 일상적으로 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쓰는단어인 ‘재량권’, ‘권력’, ‘권한’, ‘권위’의 ‘권’이, 위에서 설명했듯이, 『논어』9-30의 ‘권’이라는 글자와 똑같은 의미의 글자라는 사실이 우연의 일치로 보이지 않는다.49)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갑은 이렇게 하고, 을은 저렇게 한다. 똑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갑은 이렇게 생각하고, 을은 저렇게 생각한다. 비슷한 일을 겪고도 갑은 이렇게 대처하고 을은 저렇게 대처한다. 이처럼 어떤 일의 경중을 헤아려 결정을 내리는 일, 즉 권을 발휘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학문 역량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 개인의 결정(“권의 발휘”)이 국가 사회에 중대한 의미를 가질 때 그 사람(특히 “지도자”)의 학문 역량이 갖는 의미도 그만큼 막중하다. 어떤 일을 가장 조화롭고 효과적으로 처리하여(“권의 발휘”) 한 집단 내의 화합을영위할 수 있는 역량(“德”)은 학문을 통해 길러진다고 하겠다. 그래서 공자는 학문을 너무나 강조했다고 할 수 있다.(“好學”)

어떤 특정 개념들은 시대적인 정치적인 여러 환경 요인 때문에 본래의의미로부터 동떨어진 방향으로 편향되게 변모되어 해석되는 경우가 있을수 있다. 후대에 전개된 유학의 경권 이론이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따라서 어떤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모해왔다는 사실을 역으로 추적해 올라가면 진리에 접근하는 전혀 새로운 안목을 발견할지 모른다. 권의 의미를추적하면서 우리는 공자의 자유로운 사유의 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절대로 옳은 진리이니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식의 계명을 공자는 하나도 요구하지 않았다는 추론이 사실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50) 이와 반대로 송대 도학자들의 경권론에는 “진리 절대주의”를옹호하는 듯한 혐의가 있다. 가령 “과부는 굶어죽어도 개가하면 안 된다”는정이천의 계명 등이 그러하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공자의 권 사상에는 “의(意), 필(必), 고(固), 아(我)”나 “적(適), 막(莫)” 등 고정된 시각을 끊임없이 배제하고, 오직 주체적인 관점에서 “도리와 의리에 견주어(義之與比)” 스스로 사태의 경중을 헤아려,최선의 결론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로 충만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공자의<권> 사상은 인간에 대한 한없는 신뢰를 전제로 하고 있다. 선택의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면서 선택을 감행하는(“권의 발휘”)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51)

49) 공자의 시대나 지금의 시대나 똑같은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학자들만 어떤 특정한 자기주장에 골몰한 나머지 다른 세상 속에 머물렀는지 모른다.

 50) H.G. 크릴이 이렇게 추론한다. 그의 설명을 부연하자면, 가령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조차 공자는 주장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쟁터나 정당방위에서처럼 살인을 해야 할상황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51) 이는 “세상의 주인으로서 문제해결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이라야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를 꽃피울 수 있다”는 민주주의 기본이념을 지향하고 있다.(크릴)

투 고 일: 2016. 08. 04
심사완료일: 2016. 08. 17
게재확정일: 2016. 08. 17
 박성규(홍익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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