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이 된 자본주의·극우파 득세·기후위기, 인류의 선택은?
▲<재난의 시대 21세기>,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금, 이수현 옮김, 책갈피 펴냄 ⓒ책갈피글: 一字師
재난이 된 자본주의·극우파 득세·기후위기, 인류의 선택은?
"재난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고 있다." <재난의 시대 21세기>(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펴냄)은 불과 몇년전 한세기 만에 찾아온 ......
www.pressian.com
[프레시안 books] 캘리니코스 킹스칼리지 명예교수의 <재난의 시대 21세기>
전홍기혜 기자 | 기사입력 2024.02.10. 16:59:11 최종수정 2024.02.10. 17:00:53
"재난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정상이 되고 있다."
<재난의 시대 21세기>(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 옮김, 책갈피 펴냄)은 불과 몇년전 한세기 만에 찾아온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떠올릴 때 매우 와닿는 얘기다. 코로나19로 전세계에서 약 700만 명이 사망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 콜린 칼슨 교수에 따르면, 2000년 이후부터 올해(2024년) 말까지 기후변화로 인해 약 400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이 숫자도 과소평가된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한반도 긴장 고조 등은 모두 핵전쟁이라는 최악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 밀의 30%, 옥수수의 20%, 해바라기유의 절반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세계 식량 위기를 야기해 아프리카, 중동 등의 민란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아이작 도이처상 심사위원으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마르크스주의 석학인 캘리니코스 런던대 킹스칼리지 명예교수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는 재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며 인류가 '생존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말한다.
코로나19 사태 때 보여진 것처럼 수십년간 시행된 민영화와 긴축정책 때문에 국가의 역량이 줄어들어서 정부가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부자들은 감염 중심지를 피해 호화 요트에서 지내며 온라인으로 계속 사업을 하고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많은 노동자들은 날마다 목숨을 걸고 일하라는 가차 없는 압력을 받았다."
저자는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적대 관계와 자본가들끼리 무한 경쟁하는 적대 관계라는 두 가지 적대 관계를 중심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 원리 자체에 재난들의 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현 시점에서 특히 눈여겨봐야할 문제는 극우파가 득세하는 '정치적 위기'와 인류역사상 최대의 부정적 외부효과로 볼 수 있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적 위기'다.
올해 11월 있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조 바이든이 재대결할 가능성이 높아진 사실은 '정치적 재난'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소다. 저자는 미국을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약한 고리"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트럼프는 "파시스트가 아니라 투기꾼"이라면서 트럼프의 계급 기반은 "대자본"이 아닌 "룸펜 자본가들"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트럼프는 복음주의를 기반으로 한 기독교 극우세력과 부동산, 사모펀드, 카지노 등 다양한 서비스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탈(脫) 산업 분야 벼락부자들과의 연합에 세력 기반을 두고 있다.
2020년 미국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2021년 1월 6일 의회 폭동은 공화당에 둥지를 튼 "체제를 파괴할 꿈을 꾸는 자들"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보여줬다. 이는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하더라도 미국 정치에 상존하는 위험이 됐다.
극우들의 준동이 19세기 미국 남북전쟁과 같은 본격 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텍사스주와 같이 공화당이 장악한 일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게릴라전"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개인의 총기 소지를 허용하는 미국 내에서 이런 게릴라전은 필시 인명 피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 1.6 의회 폭동 당시에도 경찰을 포함해 5명이 죽었고, 10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현재로선 이런 위험이 미국 밖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그러나 "기후변화가 가져올 혼란"에 대해 명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사회·경제 구조의 분열은 극우파 집단들이 적어도 지역이나 지방 수준에서 권력을 장악해서 지금 인종차별적 포퓰리즘 정당들의 지도부가 주장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강령을 시행하려고 시도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일찍이 존 로크는 자본주의 시대 초기에 쓴 저작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했다. 태초에 모든 세계는 아메리카와 같았다. 자본주의 시대 말기에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재난과 반란은 동전의 양면임을 지적한다. 그는 "인류가 직면한 다차원적인 위기가 만들어 내는 균열들은 재난을 의미하는 동시에 반란의 가능성도 의미한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오래 머물러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 같은 자본주의가 이제 '상시적 재난'이 된" 21세기에 "'우파가 좌파의 점심을 먹어치웠다'고 웰든 벨로가 표현한 것처럼 극우파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병폐 때문에 생겨난 분노가 한편으로는 범세계주의적 엘리트층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민과 난민들로 향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난관을 뚫고 인류는 다시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저자는 아일랜드 마르크스주의자 제임스 코널리를 인용해 "유일하게 참된 예언자는 미래를 스스로 개척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기후위기와 극우의 득세, 둘이 아닌 하나의 문제다
조효제 교수의 ‘사회생태위기 3부작’
지구환경-인간사회 통합적 시각 필요
자본-권력복합체 맞선 ‘녹색 민주시민’ 강조
지난 9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일대에서 9·27 기후정의행진 본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흔히 쓰는 ‘기후위기’가 아닌 ‘사회생태위기’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 교수가 서문에서 쓴 이 표현은 사태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과 문제의식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의 위기를 단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생태계 전체의 안위가 걸린 더 큰 사안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생태 위기는 기후과학과 생물학 같은 자연과학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문화적 맥락이 결합된 복합 위기로 보아야 하고, 그 해결 역시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인문사회과학적 통찰과 방법론을 필요로 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불타는 지구에서…’는 조 교수가 생각하는 사회생태위기의 현실과 해법을 15개의 질문과 답으로 정리한 책이다. ‘‘인간 대 자연’이냐, ‘인간과 자연’이냐’, ‘왜 정치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가’, ‘인간사회와 생태환경은 어떻게 함께 무너지는가’, ‘유한한 행성에서 무한한 자유가 가능한가’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의 고민과 참여를 유도한다.
기온 상승과 생태계 위기 같은 지구환경의 위기와 불평등, 차별, 혐오 같은 인간 사회의 문제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것이 조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전작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서 보았듯 생태계 훼손에 따른 피해는 인종과 계급, 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에 사회·정치적 관점을 동원해야 정확하게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난민과 불평등, 극우의 득세 같은 사회적 문제의 배경에는 기후와 생태 위기가 자리 잡고 있기 십상이다. “인간 사회와 지구환경이 함께 작동하는 현상(‘동조화’)이 사회생태위기의 특징”이기 때문에 ‘사회-지구시스템’으로 양쪽을 함께 보아야 한다. 따라서 “생태전환은 사회생태전환이 되어야” 하고 “심지어 사회과학 전체가 사회생태학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류세’라는 용어가 국제지질과학연맹에 의해 공식 용어로 채택되지 못한 데에 대해 그는 사뭇 아쉬움을 표한다. ‘인류세’라는 말을 그는 ‘사회-자본세’라는 뜻으로 쓰는데, 무한 증식을 속성으로 삼는 자본의 작동이 오늘날 사회생태위기의 주범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과거의 포드나 피아트, 폭스바겐이 그랬듯 지금의 테슬라, 아마존,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권력복합체들이 사회-지구시스템을 ‘함께 그리고 동시에’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기후위기는 현재의 문명 자체의 문제”이며, 기온 상승폭 억제 같은 눈앞의 과제를 달성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면 ‘지금과 비슷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적응-유지형 서사”는 버려야 한다. 인류가 모두 미국식 생활 방식으로 살기 위해서는 지구가 5개 필요하고 한국처럼 살기 위해서는 3.85개가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인간과 비인간 생명체를 포함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두가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편을 감내해야 한다. 미국과 한국 같은 북반구 선진국은 생활 수준의 하락을 받아들이고, 반대로 남반구 후진국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지금보다 크게 끌어올리는 대타협이 필수적이다. 이런 식의 균형 잡기는 당연히 단일 국가 안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는 이처럼 자명한 문제와 해결책에 딴지를 걸며 지구의 종말을 부추기는 ‘사악한’ 세력들이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거대 기업들뿐만 아니라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단주의 정치권력도 포함된다. 자본과 권력이 연합한 이 ‘어둠의 자식들’에 맞서는 ‘빛의 자식들’로 조 교수가 꼽는 것이 ‘녹색 민주시민’이다. 사회생태위기와 관련한 의견을 에스엔에스에 용기 있게 올리고, ‘기후 악당’ 기업의 제품을 상대로 불매운동을 펼치며, 극우 파시즘 세력에 맞서 싸우는 등의 구체적 실천이 녹색 민주시민의 몫이다.
지난 9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일대에서 9·27 기후정의행진 본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9월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 일대에서 9·27 기후정의행진 본집회가 열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경어체로 쓰인 이 책의 기조는 이상적 당위론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조 교수 자신은 ‘의지적 사고’에 기반을 둔 “능동적 희망”이라고 달리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폭압과 학살에 맞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견지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 ‘수무드’인데, “역경에 굴하지 않고 의지를 굳게 지킨다”는 뜻을 지닌 이 말이 오늘날 녹색 민주시민이 갖춰야 할 덕목이라는 것이다. ㅣ 최재봉 선임기자
자본주의가 낳은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대중운동 -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위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가? 기성 정치인들과 자본이 제시하는 대안은 과연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의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목전에 닥친 기후위기를 멈추기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멈추어야 하고, 개인의 일상을 넘어선 대중운동으로 정치와 경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다.
서평:‘기후위기’라는 말은 일상이 됐다. 2018년 인천에서 채택된 UN IPCC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2050년 탄소중립을 언급하고, 국회에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기업들은 ESG 경영을 외치며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혁신에서 기업의 역할을 자임한다. 마트에서는 각종 친환경 제품들이 소비자 윤리의 이름 아래에서 선택을 기다린다. 기후위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있는가? 기성 정치인들과 자본이 제시하는 대안은 과연 얼마나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나오미 클라인의 책 『미래가 불타고 있다』는 목전에 닥친 기후위기를 멈추기 위해 자본주의 시스템이 멈추어야 하고, 개인의 일상을 넘어선 대중운동으로 정치와 경제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다.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위기, 트럼프주의,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대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저널리스트이자, 현장에서의 실천을 주도하는 활동가다.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This changes everything』, 『’노’로는 충분하지 않다 NO is not enough』 등 이전 저작들도 국내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클라인이 기후위기에 관련하여 쓴 칼럼과 연설들을 모은 것으로, 다소 긴 프롤로그와 열여섯 편의 글들이 400페이지에 걸쳐 실려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첫 글에서 마지막 글까지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다. 기후위기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것, 해결책은 정치를 움직이는 대중운동일 뿐 다른 우회로는 없다는 것, 그리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경제체제를 바꾸는 그린뉴딜이라는 것이다. 이 메시지는 알아듣기 쉬운 언어들로 적혀 있어 읽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다. 이 서평에서는 저자의 메시지를 세 줄기로 요약하여 소개하고 우리에게 더 필요한 고민을 제시한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문제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명확하고 단호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은 바로 ‘기후위기는 자본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기후위기의 문제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지 않으려는 ‘인간 본성’때문도,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려는 좌파가 지어낸 정치적 수사도 아니다. 오히려 기후위기의 원인이 탄소배출을 절제하지 않으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 그리고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에 있음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14장 「푸에르토리코 재앙의 원인은 자연이 아니다」에서는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가 덮쳤을 때 푸에르토리코의 전력ㆍ수도ㆍ의료ㆍ통신과 함께 모든 운수가 마비된 이유는 허리케인이 아닌, 선출되지 않은 금융 관료들에 의해 망가진 푸에르토리코의 사회체제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1장 「구멍이 뚫린 세계」에서는 멕시코만에서 이루어진 최악의 기름유출 사건인 딥워터 호라이즌 사건이 제시된다. 사건 당시 석유기업 BP와 석유채굴에서 이익을 얻는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은 해결할 수 있다는 수사만을 반복했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들이 불가역적인 환경파괴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후위기는 물에 잠긴 어느 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위기는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피상적으로 암시하는) 경제적 성과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구이동과 환경변화는 새로운 정치적 균열과 전쟁, 피해자들을 만들어 낸다. 11장 「연무의 계절」에서는 북미와 호주 등 최근 세계 각지에서 대형 산불의 규모와 수가 증가하고 있는 원인은 더 따뜻해지고 더 건조해진 날씨라는 것이 제시된다. 산불로 인한 연기와 대기 오염으로 피해받는 30만명 중 대부분의 사람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 산다.
8장 「온난화 세계에서 자행되는 타자화의 폭력」에서는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의 연평균 강수량 2000밀리미터 이하 건조 경계선에 드론 폭격 지점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높은 기온과 물 부족이 해당 지역의 정치적 갈등까지 이어진다는 점이 제시된다. 2019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모스크에서 51명을 죽인 총격 테러가 난민을 반대하는 자칭 ‘민족주의 환경 파시스트’에 의해 일어났다는 점, 2011년 노르웨이 총기난사 테러를 일으킨 브레이빅이 ‘환경의 탈을 쓴 공산주의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 과연 21세기에 들어 빈발하고 있는 테러와 국지전이라는 정치외교 문제가 과연 기후위기와 무관한 것이라고 단언지을수 있을지 질문하게 된다.
21세기에 등장한 정치적 격동은 테러와 국지전만이 아니다. 2010년대는 브렉시트와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우 포퓰리즘이 발흥한 10년이기도 했다. 서방 극우 포퓰리즘의 등장 배경 중 하나로 지적되는 난민의 유입은 바로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갈등들이 불러온 것이라는 분석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를 넘어 클라인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서방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공통된 수사에 주목한다. 바로 기후위기라는 담론 자체가 좌파가 자유시장의 통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파괴하려는 음모라는 공격들이다. 그는 이 공격들이 역설적으로 우파들이 기후위기에 대해 더욱 진정으로 통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한다. 기후위기의 극복은 자본주의의 변형과 통제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위기의 극복은 정부가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에 개입하고, 탄소배출과 금융투기에 세금을 부과하고, 석유기업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인을 퇴출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기업과 우파 정치인들은 이를 잘 알고 있기에 기후위기 자체를 부정하고, 해묵은 색깔론마저 다시 들먹이면서 기후위기 대응을 공격한다. 클라인은 이러한 시도에 맞서 대중들의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이야말로 더 이상 우파가 두려워하는 망령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시민들이 운동을 통해 직접 현실로 만들어 내어야 할 목표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 해결에 있어 우회로는 없다
두 번째 메시지는 결코 첫번째 메시지와 떨어져 있지 않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대중운동 이외에 우회로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6장 「혼자 힘으로 세계를 구하겠다는 생각은 버려라」에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p.181)라고 명확히 밝힌다. 개인이 윤리적인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 개인이 소비와 선택을 통해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실천을 한다고 믿는 모습은 한국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비건인증을 받았다고 광고하는 제품들이 매대에 늘어나고, ESG 경영(환경 Environment·사회 Social·거버넌스Governance의 약자)을 표방하는 기업들이 주식시장에서 유망주로 떠오른다. 하지만 클라인은 이러한 방식의 전술은 개개인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믿게 함으로써 일종의 자아실현을 돕는 효과는 있을지언정, 집단적인 운동으로서 경제와 정치의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활동가들은 개인의 소비 행위를 정치적 영역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서술을 캐나다의 소비주의적 문화와 대비시키는 장면은 한국을 포함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유행하는 환경운동의 풍조를 비추어 볼 거울을 제공해 준다.
소비주의 운동보다 더욱 위험한 시도는 아마도 ‘지구 해킹(Earth Hacking)’일 것이다. 3장 「지구공학 시험대에 오른 바다」에는 기후위기에 대해 지구공학적인 해법을 제시하는 이들이 묘사된다. 탄소를 흡수할 플랑크톤 번식을 촉진한다는 이유로 캐나다 인근 태평양에 철분 120톤을 쏟아부은 미국인 사업가 러스 조지, 빌 게이츠가 투자했다는 ‘성층권 방패’ 프로젝트, 대기에 황산염 에어로졸을 분사한 인공화산재 방법과 같이 SF영화에서만 보던 기술들이 과학의 이름을 빌어 기후위기의 해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마치 과학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인류는 살아오던 그대로 성장하고 소비하면 된다는 듯한 메시지를 던지는 지구 해킹이야말로 문제적이다. 왜냐하면 지구공학은 기후와 환경에 끼칠 후과가 검증되거나 예측될 수 없는 기술적 시도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몇 선진국이나 심지어 단 한 명의 자본가의 선택으로 전 지구환경에 걸쳐 예측불가능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점은 전 지구의 인류가 함께 단합해서 기후위기에 대응한다는 원칙에서 가장 멀어져 있는 대응방법이다.
개인이 아무것도 희생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움직이지 않고서 기후위기를 불러온 자본주의의 문제를 우회할 수 있다는 주장은 헛된 기대의 투영일 뿐이다. 소비가 아닌 기후위기에 대한 토론과 운동을 통해 공동체과 개인의 정체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오직 탄소를 배출하는 소비와 생산 자체를 줄임으로서, 그러한 풍조를 부추기는 문화와 정치경제체제를 바꾸어 나갈 때에만 가능하다. 이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대규모의 조직적 대중운동으로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는 것이 클라인의 입장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클라인이 제시하는 목표점은 바로 ‘그린 뉴딜’이다.
미국의 그린뉴딜 운동에 비추어
자본주의가 낳은 기후위기의 해결책은 대중운동 - 『미래가 불타고 있다』
대중운동의 목표에 있어서 저자는 두루뭉술한 언어를 던지지 않는다. ‘그린 뉴딜’이라는 대중운동이 따를 수 있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지침을 제시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그린 뉴딜의 원칙은 일자리의 창출, 탄소를 배출하는 기업들의 활동 규제, 기후위기로 인해 혹은 산업전환에서 피해를 감수해야 할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사회보장정책 등 여러 ‘정의로운 전환’ 담론과 떨어져 있지 않다. 다만 끊임없이 강조되는 것은 이 운동이 노동ㆍ여성ㆍ빈곤ㆍ주거 등 기존의 사회운동과 함께하는 대중운동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다.
21세기 한국에서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은 루즈벨트와 케인즈의 이름만으로 어렴풋이 받아들여질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미국에서 뉴딜은 미국민들이 함께 단결해 1930년대의 대공황을 이겨낸 국가적인 기억과 경험으로 남아있다.[1] 클라인이 제시하는 ‘그린뉴딜’의 제안은 그러한 미국의 역사적 맥락에 기초해 있다.
15장 「그린 뉴딜의 성패는 운동의 힘에 달렸다」에서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뉴딜을 채택했던 때는 역사적 규모의 노동 운동 물결이 휩쓸던 때였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1934년에는 팀스터 봉기와 미니애폴리스 총파업이, 같은 해에 83일에 걸친 웨스트코스트 항만 노동자들의 항만 봉쇄가, 1936년과 1937년에는 플린트에서 자동차 노동자들의 연좌 농성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대중 운동은 대공황이 몰고 온 고통에 대응해 사회 보장 제도와 실업보험 등 전면적인 사회 복지 제도를 요구했고, 사회주의자들은 버려진 공장의 소유와 경영을 노동자들에게 넘겨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p.366)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그린 뉴딜이란, 대규모의 대중운동이 정치에 압박을 가하여 경제 체제 자체를 바꾸는 것에 핵심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클라인은 미국의 선라이즈 무브먼트,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과 같은 사회운동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사회운동의 과제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주장이 북미의 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유효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유념하면서 읽으면 더욱 도움이 될 것이다.
덧붙여 : 우리 사회운동의 미래도 불타고 있다 한국 정부도 그린뉴딜을 수입해 K-뉴딜로 만들어내어 선전하는 데 열심이다.[2] 하지만 K-뉴딜은 디지털뉴딜이 더욱 우선순위에 있고, 그린뉴딜 부분도 해외 그린에너지산업 수주, 그린모빌리티 산업 육성 등 정부가 기업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이 우선목표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의 개념 또한 ‘공정한 전환’이라는 이름 하에 수입되어 사용되고 있다. 고용안전망과 인재양성 또한 K-뉴딜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 그 예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새로운 일자리 창출일 뿐 기존 탄소배출 산업 일자리를 전환하거나 보상하는 계획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의로운 전환’에 미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거기다 한국 정부는 2030년까지의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조차 구체적인 숫자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후위기를 수사로 사용할 뿐이라는 점이 보여지고 있다.[3]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마저 기후위기와 환경운동을 알리바이로 취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텀블러 나눠주기, 환경운동 전문가 특강은 사실 기후위기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변명을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제 기후위기는 어떤 부문운동에게 떠맡겨놓을 일이 아닌, 모든 사회운동이 각자의 과제를 발굴해서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때가 늦어 노동자들에게 모든 피해가 전가되기 전에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단체협약과 기후파업을 통해 탄소배출 기업에 대한 규제와 일자리가 보장되는 산업전환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하루는 겨울날씨 하루는 여름날씨가 반복되다가 일주일 내내 비가 오는 5월에 가장 고통을 겪을 이들은 마땅한 시설이 갖춰지지 못한 주거시설에 사는 도시빈민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그린뉴딜과 정의로운 전환의 단일한 내용은 아직 없다. 정부와 기업은 끊임없는 그린워싱을 통해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비와 탄소배출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하다는 환상을 퍼뜨리고 있다. 이제 사회운동은 비판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책임을 다할 수 없다. 다만 끊임없고 광범위한 대중운동을 통해서만 기후위기의 대응을 급진화시키고, 정치인과 기업을 압박할 수 있을 뿐이다. 이제 ‘환경운동’만이 아닌 모든 사회운동이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인식하고 즉각적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 절실하다.🌍
임현창 | 플랫폼c 활동가
[1] 클라인이 미국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의원과 함께 만든 유투브 영상에서 그러한 메시지를 강하게 확인할 수 있다. https://youtu.be/d9uTH0iprVQ
[2] 한국판 뉴딜에 대해서는 다음 정부 홈페이지 참조. 한국판 뉴딜 | 정책위키-한눈에 보는 정책 | 기획&특집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korea.kr)
[3] 한정애 “NDC 상향치 구체적으로 말하기 일러…탄소중립 시나리오 나와 봐야” – 경향신문 (khan.co.kr)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지만이 지구를 구할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지구를 죽이고 있다. 따라서 지구를 구하려면 자본주의를 죽여야 한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경쟁이나 이윤·탐욕보다 우선시하는 체제가 필요하다.
“기후변화 말고 체제 변화”라는 요구가 혁명가들에게 핵심적인 이유다. 사회주의에서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지, 필요한 것을 어떻게 생산할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자원을 어떻게 조직할지 결정할 수 있다. 혁명적 봉기의 시기에 노동자 조직들은 사회를 운영하는 새로운 방식들을 찾아낸다.
"체제 전환"은 체제의 개혁이어야 할까, 체제 제거여야 할까?ⓒ이미진
그런 새로운 사회 운영 방식에 따라 민주적 계획 경제가 대규모로 이뤄지면 낭비와 경쟁이 사라질 것이다.(현재 체제하에서는 그런 낭비와 경쟁이 모든 수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현재 체제를 분쇄하고 더 나은 것으로 대신하는 일은 쉬운 과정이 아니다. 체제를 바꾸려면 아래로부터 대중적 봉기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혁명이 필요하다. 카를 마르크스가 썼듯이, 오직 혁명을 통해서만 노동계급은 “지난 시대의 오물”을 자신에게서 씻어낼 수 있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적합한” 세력이 될 수 있다.
그레타 툰베리 등 많은 이들은 자본주의 자체를 뿌리 뽑지 않고서도 지구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이들은 기술적 해결책으로 환경 재난을 피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녹색” 기술 해결책들의 주된 구실은 이 체제가 빚어내는 혼돈의 책임이 대기업이나 빌 게이츠 같은 억만장자에게 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해결책들이 주류가 되지 못하도록 밀어내는 것이다. 수십 년 후에나 결과를 낼 신기술로는 당장의 시급하고 절박한 기후 위기 대응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
예컨대 탄소 포집은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문제도 있다. 풍력 발전, 태양 발전, 조력 발전은 이미 현존하는 기술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생산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기업주들에게 이윤을 많이 남겨 줄지 불투명하다는 이유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
우리 지배자들의 주된 관심사는 언제나 이윤이고 이는 변치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체제를 그저 개혁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지금 진행 중인 대책들이 지구를 살리지 못한다는 점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 대책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우선순위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의장국이었던 아랍에미리트는 기후회담을 이용해 석유 장사를 했다. 또한 기후 대책에 국가 재정을 크게 쓰겠다는 일부 주류 정치인들의 약속은 규모도 알량하지만 그조차 체제의 우선순위에 따라 너무도 쉽게 공수표로 끝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배계급도 지구에 살고 있는 만큼, 그들의 이해관계 역시 지구가 불타는 것을 막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혼돈이 가득하고 모순적인 체제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무계획적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 개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서로 힘을 합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와 기업들은 모두 다른 이들과 경쟁 관계에 있다.
핵무기가 인류의 존재를 위협하는 현실을 보라. 또한 어떤 국가도 이런 살상 무기들을 해체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지 않는 현실을 보라.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전망만이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이유다.
《공산당 선언》에서 마르크스가 썼듯이 혁명이 벌어지면 “농업과 제조업이 결합한다. 또한 인구가 나라 전체에 더 골고루 분포해서 도시와 시골의 모든 간극을 점차 폐지한다.” 이 말은, 자본주의하에서 심하게 망가진 인간-환경의 관계를 치유할 유일한 해법이 체제 변화라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것만으로 바로 다음 날부터 지속가능한 사회가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혁명을 성공시킨 후 등장할 새로운 사회는 구 체제의 많은 것들을 물려받을 것이고, 반(反)혁명 위험에도 대처해야 한다. 또한 새로운 사회주의 세계를 향한 청사진 같은 것은 없고, 그런 세계의 구체적 형태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갖은 노력을 동원해 더 녹색이 되도록 도시와 교통망, 산업, 식량의 생산·배분을 재설계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 잠재력은 전혀 다른 세계를 쟁취하는 것에 있고, 그런 세계를 요구하는 투쟁이 필요하다. 그런 세계를 쟁취하는 것은 가능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가 계속해서 우리를 혼돈으로 빠뜨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하다.
이 글은 본지의 기본 입장을 해설하는 기획 연재의 여섯 번째 글이다. 다음 연재에서는 왜 노동자 국가가 필요한지 그 이유에 관해 다룰 것이다.
윤효원의 노동과 정치 |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동시에 흔들리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삐걱거리고 있다. 중국의 공장, 미국의 금융과 소비가 결합했던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해체되고 있고 유럽도 ‘군사적 유럽’으로 후퇴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더 억압적인 체재로 대체되고 있는 시대다. 사이코 코헤이는 무한 성장을 말하는 자본주의를 멈추고 ‘탈성장 공산주의’를 말한다. 나리타 유스케는 선거 중심 민주주의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니 무의식적 데이터를 활용한 ‘무의식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윤효원 아시아 노사관계 컨설턴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감사 |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지난 기사
근로시간 문제, ‘평균의 함정’을 넘어서야
노동은 인격, 일을 규제해야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삐걱거리고 있다. 이는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대륙을 가리지 않고, 정도와 양상만 다를 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때 민주주의는 폭주하는 자본주의를 제어하며 체제를 유지시키는 안전 장치였지만, 그 기능은 이미 약해졌다. 민주주의가 퇴락하자 자본주의 자체의 균열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계사적 변곡점 — 글로벌 공급사슬의 해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글로벌 공급사슬 해체 전략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종언을 맞이했음을 보여 준다. 1990년대 이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한 중국과 미국의 금융·소비 구조가 결합하면서 역사상 유례없는 규모의 국제 분업 체제가 형성됐지만, 이제 그 결합은 해체되고 있다.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사의 한 장이 끝나가는 세계사적 변곡점이다. 유럽연합도 마찬가지다. 출범 당시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을 내세웠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군사적 유럽(Military Europe)’으로 변질되고 있다. 복지와 사회권 확대를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완화하던 전략이 안보와 무기 생산이라는 명분 아래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는 신호다.
자유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 위기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미약하다. 다당제와 정기적 선거를 축으로 한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빛을 잃었다. 보름달이 기울어 그믐달이 되었듯, 자유민주주의도 한때의 전성기를 지나 쇠락기에 들어섰다. 자연의 달은 다시 차오르지만, 역사 속 제도적 민주주의는 반드시 복원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성숙되지 못한 상태에서 붕괴된 민주주의는, 더 억압적이고 배제적인 체제로 대체됨을 20세기 초중반의 역사는 이미 보여 줬다.
일본 학자들의 진단 — ‘탈성장’과 ‘무의식’
이 시대의 위기를 두고 흥미로운 진단을 내린 일본의 젊은 학자들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사이토 코헤이(斉藤 幸平)와 경제학자·데이터 과학자인 나리타 유스케(成田 悠輔)가 그들이다. 사이토는 『인류세의 자본론(人新世の「資本論」)』에서 ‘탈성장 공산주의’를 주장한다. 이는 경기 침체나 제로 성장과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자본의 무한 증식이 인간의 행복과 지구 환경을 동시에 파괴한다는 전제 위에서, 자본주의 성장 메커니즘에 과감히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나리타는 『22세기의 민주주의』에서 선거 참여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민주주의를 선거와 동일시하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인터넷과 감시 기술, 빅데이터를 활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한 뒤, 알고리즘으로 정책을 결정하는 ‘무의식 민주주의’를 제안한다. 인간의 직접 토론과 대표자를 거치지 않고, 데이터와 기계가 민의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자본주의·민주주의의 ‘기능부전’
두 사람의 주장은 결국 같은 문제의식으로 모인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제 기능을 잃었다는 진단이다. 경제 성장은 환경 파괴와 불평등 심화를 대가로 이루어지고, 정치 제도는 이를 완화하기는커녕 불평등을 제도화한다. GDP 성장률과 주가 상승은 일부만의 몫이 되고, 다수는 배제된다.
민주주의는 이런 배제를 완화하는 장치였지만, 현실에서 선거는 당이나 후보를 고르는 것이지 구체적인 정책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당선 이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도 유권자가 직접 정책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으니, 정치적 효능감은 줄어들고 냉소만 커진다. 그 결과, 빈곤층이 오히려 부유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서민 공약’을 내세운 정당이 집권 후 이를 배신하는 일이 반복된다.
1930년대의 교훈과 오늘의 선택
세계 경제의 흐름은 미국과 중국의 동조화가 해체되는 디커플링 시대로 접어들었다. 경제 권력과 정치 권력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움직이며 양 체제의 지속가능성이 동시에 훼손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노동자와 시민 다수를 대변하지 못하면, 불평등 심화와 정치적 무력감 속에서 극우 포퓰리즘이나 권위주의가 득세할 위험이 커진다.
정확히 90년 전인 1935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치명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기는 세계대전이라는 참극 속에서 ‘강제로’ 봉합됐다. 전후의 복지국가와 민주주의는 강력한 노동조합, 공공부문 확장, 국제적 규범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 그러한 토대는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 민주주의의 확대 없이 이중 위기를 평화롭게 돌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세계는 군비 경쟁과 지정학적 대립, 신기술을 활용한 감시·통제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25년의 인류는 90년 전보다 더 많은 경험과 더 앞선 기술을 갖췄다. 그러나 그 경험과 기술을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해결에 쓸 의지와 제도는 여전히 빈약하다. 선택을 미루는 순간, 우리는 제1·2차 대전의 전철을 밟듯 ‘몽유병 환자’처럼 제3차 세계대전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다.
‘무엇을 위해 성장할 것인가’와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경제와 정치, 두 영역을 겨냥한 이들의 문제의식은 한 지점에서 만난다. 지금의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기능을 잃었다는 냉정한 현실 인식이다. “무엇을 위해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누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이중 위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지금을 사는 우리와 다음 세대일 것이다. 여전한 불황 속에서 부채 위기, 불균형, 불평등이 커지다
세계경제는 지난해 크게 위축된 상황으로부터 제한적인 반등을 하고 있다. 국내외 경제 기구들의 전망치를 보면 여전히 과거의 성장 추세를 회복하지는 못할 것임을 보여 준다(그림 1). 이미 2008년 이후 장기 불황을 겪어 온 데다 2017~2019년의 성장률도 전혀 높은 수준이 아니었고, 향후 성장률은 더 낮아지는 것이다. 지난해 말 미국 연준(중앙은행)도 미국의 장기 성장률 전망치가 1.8퍼센트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10년 평균이 2.3퍼센트였던 것에서 더 낮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이는 미국 지배자들의 경계심을 키우고 미중 갈등을 격화시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중국도 과거 성장 속도를 회복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지난해 2.3퍼센트 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낙관적으로 보면 8~9퍼센트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그렇다면 2020년과 2021년의 연평균 성장률이 5퍼센트가량인 셈인데, 이는 과거보다 낮아진 것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상당하다. 백신 접종이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점이나 변이 바이러스가 미칠 불확실성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윤 중심의 백신 생산과 제국주의 국가들의 패권주의 때문에 신흥국들은 2~3년 후에나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다. 그만큼 세계적인 집단 면역이 형성되는 시기는 늦어질 것이고, 이는 경기 회복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채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주요국 각국의 중앙은행과 정부는 기업 파산을 막기 위해 막대한 돈을 시중에 풀고 재정 지원을 했다. 그 결과 주식과 부동산 등의 자산 거품이 크게 늘어났고, 부채가 급증했다.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차세계대전 직후 수준으로 높아졌다(그림 2). 빚으로 연명하는 부실 기업들도 증가해 기업 부채도 크게 늘었고, 가계 부채도 증가했다.
부채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사례 하나는 최근의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시장 불안정이다. 가령 미국의 1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1.4퍼센트로, 지난해보다 높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인데도 (백신 접종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감과 투기 수요 등으로)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오르고, (기후 위기로 인해) 농산물의 가격도 오르는 등 물가가 상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 이 때문에 미국의 국채 가격이 떨어져 국채 수익률이 올랐고, 향후 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우려도 커졌다. 이 때문에 2월 마지막 주에 시중의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신흥국들에서는 돈이 빠져나가며 주식이 떨어지고 환율이 오르는 등의 일이 벌어졌다. 한국의 원화도 2월 26일 15원 올라 지난해 2월 이후 하루 최대폭으로 올랐다. 이는 부채 증가로 인해 금리가 오르며 경제가 불안정해질 수 있음을 힐끗 보여 주는 사례이다. 경제가 회복된다 해도 오히려 부채 위기로 인한 금융 불안정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물가가 가파르게 인상될 것 같지는 않다. 물가는 근본적으로 실물경제 회복과 연관돼 있는데, 특히 미국의 고용지표는 여전히 회복되고 있지 못하다. 미국의 1월 실질 실업률은 여전히 10퍼센트에 육박하고, 장기 실업자는 더욱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일시적인 경기회복에 따라 물가가 조금 오르더라도 부채 위기로 인한 불안감이 실물경제를 위축시켜 물가 상승을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의 모순들을 볼 때 우리는 향후 수년간 매우 불안정한 경제 불황기를 살아가야 할 것이다. 1930년대 대불황도 한 번의 침체와 회복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10년간 심각한 경기 후퇴와 일시적인 회복이 반복되며 결국 제2차세계대전을 거치며 회복됐다. 낮은 이윤율과 부실기업 문제(충분한 자본 파괴가 이뤄지지 않음)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낮은 이윤율과 부실기업 문제에 더해 1930년대보다 더 심각한 부채 위기도 존재한다. 따라서 지금도 경제가 회복된다 할지라도 그 회복이 불충분하고, 부채 위험과 미중 갈등 등 제국주의 갈등 심화 속에 일시적이 되어 다시금 심각한 침체를 겪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한국 경제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 무선통신기기 등을 중심으로 성장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서비스업이 위축되며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의 불균형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반도체, 가전 기업 등은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큰 수익을 거뒀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36조 원으로, 2019년보다 30퍼센트 증가했다. 또, 택배, 콜센터, 비대면 온라인 사업 등 일부 업종들은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 그러나 대면 서비스업과 관광·항공업 등에서는 심각한 고용 위기가 벌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1997년 말 IMF를 불러들인 공황 이후 최악의 상황을 보인 올해 1월 고용 통계에서도 드러난다. 1월에 취업자는 98만 2000명 감소해, 1998년 12월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등 조건이 불리한 서비스업에서 고용 감소가 특히 심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소기업 노동자가 110만 명 줄었고, 임시 일용직 노동자들도 80만 명 줄어 심각한 고용 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다.
실업은 모든 연령대에서 늘었지만, 청년실업은 특히 심각하다. 청년 확장실업률은 27.2퍼센트로,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도 기업들은 신규 채용을 축소할 계획이므로 청년들의 고통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크다. 실업난 속에 여성들이 더 고통받기도 했다. 여성의 고용 감소 폭은 5.2퍼센트로 남성(2.5퍼센트 감소)의 두 배였다. 이렇게 실물 경제의 침체가 심각한데도 지난해 풀린 자금이 자산(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흘러들어 집값과 주가가 치솟았다. 심각한 불황기에 주택난까지 더해지며, 자산 불평등과 함께 평범한 노동자·서민층의 울분은 더욱 커졌다. 이는 정부 지지율 하락의 주요 요인이기도 했다. 또, 가계부채가 증가하며 금융 불안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과 고용 위기 대처 문제에서도 친시장적이고 친기업적 행보를 보이며 개혁 염원 대중의 반감을 키워 왔다. 부동산 대책은 2·4 대책에서 나타났듯이 친시장적 재개발 확대 방안을 내놓아, 건설 기업주들과 개발 이익을 노리는 토지소유주들과 투기꾼들에게 이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고용 위기 대처 방안도 기업들에게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며 기업주들이 자발적으로 고용을 늘리게 하려 하거나, 저질 단기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한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심각한 고용 위기와 임금 감소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정부는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단 한 차례만 지급했다. 새로 준비되고 있는 것도 소상공인들에게 미흡한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고, 노동자 대다수는 배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재난 지원을 두고도 정부 내에서 이견과 갈등이 드러나 왔다. 정부는 지난해 다른 나라 정부에 비해 소극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확장적인 재정정책을 펴 왔다. 하지만 정부 부채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어디에 얼마만큼 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정부 내에서도 갈등이 커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전 경제 전망 기사(‘심각한 불황 속에 커져가는 부채 위기’, 강동훈·정선영, 〈노동자 연대〉 345호)는 부채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책을 둘러싼 정책입안자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일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는데, 재난 지원을 둘러싸고 기재부 관료들과 다른 정부 인사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 위기가 발전할 단초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심각한 불황에 대처한다며 정부가 낮은 금리로 경기를 부양하는 과정에서 부실 기업의 문제는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을 운영해서 이자도 갚지 못하는 부실 기업이 지난해 상반기 37.3퍼센트로 늘었다. 특히, 중소기업은 절반이 이런 한계기업이다. 이 때문에 산업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정부는 올해 산업발전법 전면 개정에 착수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추진한 데 이어, 쌍용차 법정관리도 진행되고 있다. 향후 항공·관광 산업뿐 아니라 조선·기계·석유화학·자동차 등에서도 구조조정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의 반발을 키울 뿐 아니라) 지배계급 내 쟁투를 격화시킬 수 있고, 이는 정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2016년 한진해운 부도를 결정하면서 부산·경남지역 지배자들 다수가 이반했고, 이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한층 심화시키는 요인이 됐듯이 말이다. 이처럼 기업주와 정부 관료 등 체제의 수혜자들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심각한 불황 속에 노동계급을 향한 공격은 커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산업 간 불균형이 큰 상황(앞에서 언급했음)에서 산업별로 노동자들의 처지와 투쟁의 양상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코로나19 불황 속에 위기에 처한 산업과 기업들에서는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이 진행될 수 있다. 반면 택배, 콜센터 등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일거리가 늘어난 산업의 노동자들은 기업의 지급능력이 높아진 상황에서 더 자신 있게 투쟁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불균등의 시기에 투쟁이 연결되려면 노동계급을 분열시키려는 지배자들의 이간질에 맞서 운동을 결속시키는 정치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팬데믹 하의 세계 정치 ⬆️
팬데믹은 지난 한 해를 규정한 쟁점이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공산이 크다. 예상을 깨고 백신이 신속하게 개발됐지만 빠르게 보급되고 있지 않다. 막대한 공적자금으로 개발된 것인데도 제약회사들이 지적재산권을 쥐고 막대한 이윤을 내려 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선진국들이 앞다퉈 백신을 사재기하는 동안 후진국은 물론 중진국들은 백신을 구경도 못 하게 생겼다. 그러는 사이 감염력과 병독성이 더 높은 변종이 확산돼 백신이 무용지물이 될 위험마저 있다. 자본주의가 낳은 팬데믹이 역시 자본주의의 논리 때문에 쉽게 끝나지 않을 듯하다.
상시적 재난의 근원: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말한 인류와 자연의 “신진대사 균열”이 신자유주의와 결합돼 이제 거대한 재난이 잇달아 발생하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자본이 야생 깊숙한 곳까지 침투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자본주의적 농축산업은 더 위험한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배양 접시 구실을 하고, 이런 바이러스가 일단 인간에게 감염되기 시작하면 자본주의의 국제적 통합을 따라 순식간에 확산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텍사스주 정전 사태도 신진대사 균열과 신자유주의의 파괴적인 상호작용을 보여 준다. 이 사태는 이례적 한파를 낳은 기후 혼돈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능력을 약화시킨 신자유주의에서 비롯했다. 미국에서 전력산업 규제 완화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텍사스주 전력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추위에 대비하는 장치를 설치하지 않았고, 예비 전력을 비축할 방안도 마련하지 않았다.(자본주의가 ‘만일의 사태’에 취약해진 것은 이번 팬데믹 하의 병상과 방역 물자 부족으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오랫동안 과학자와 활동가들이 경고해 온 재난들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1~2년을 돌아보면 팬데믹 외에도, 반년 이상 이어진 호주 산불, 세기말적 장면을 연출한 캘리포니아 산불, 아프리카의 대홍수, 레바논의 폭발 사고 등 거대한 재난들이 잇달아 일어났다.
재난의 효과를 완화시키기 위한 저항
이런 재난들은 정치 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레바논에서는 폭발 사고가 촉발한 항의 시위로 총리가 물러났다. 팬데믹 대처 실패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대선에서 패배하고, 일본에서 총리 아베가 물러나는 데에도 중요한 요인이 됐다.
물론 팬데믹이 정치에 미친 영향은 균등하지 않았고 모순된 효과를 내기도 했다. 모든 정부가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데에서 어느 정도로 노골적인지는 저마다 달랐다. 팬데믹의 피해는 인구 밀도, 인구 구성, 대응의 신속성, 거리두기 수위에 따라 나라마다 달랐다. 방역에 나선 정부들은 지지율이 일시적으로 오르기도 했다. 방역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여기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 방역은 경쟁적 자본 축적과 모순됨을 드러냈다. 많은 선진국들은 록다운을 뒤늦게 도입하고 성급하게 풀었다가 심각한 감염 확산에 직면했다. 방역 실패는 다시 정부 지지율을 갉아먹는 효과를 냈다.
팬데믹은 기존 불평등을 더 극명하게 만들고 심화시켰다. 일부 기업은 팬데믹 특수로 막대한 이윤을 누렸다. 반면 이 사회의 압도다수인 노동자·서민층은 수입이 감소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2019년 말 시작된 세계적 저항 물결은 팬데믹 초기에 잠깐 주춤했지만 이내 다시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미국에서 경찰의 흑인 살해를 계기로 미국 역사상 최대 거리 시위와 항의가 벌어졌다. 여기에 연대하는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져 해당 나라의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로 발전하기도 했다. 프랑스에서는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맞서 지난 10년 이래 최장 기간 파업이 벌어지다가 팬데믹이 왔을 즈음에는 수그러들었지만, 그후 보건 노동자들이 전투적인 시위와 파업을 벌였고, 연말에는 경찰력을 강화하는 보안법에 맞서 5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2020년 미국을 뒤흔든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 양당 체제의 늪에서 벗어나려면 계급 투쟁이 더 고양돼야 한다ⓒ출처 Robert Bulmahn(플리커)
태국과 벨라루스에서는 민주주의 투쟁이 벌어지고, 나이지리아에서도 강도소탕특수부대(SARS) 폐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물론 팬데믹과 그로 인한 고통이 이들 시위의 중요한 배경일 때가 많았다.
팬데믹은 노동자들의 작업장 행동을 주춤하게 만드는 효과를 냈지만, 보건이나 운송 같은 ‘필수 부문’의 노동자들은 싸울 자신감이 생기는 효과도 냈다. 한국의 콜센터 노동자들이나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과 투쟁에 나선 것도 이런 세계적 추세의 일부다.
중도가 귀환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계속되는 재난과 경제 침체, 심화하는 제국주의적 갈등 속에서 지배자들은 경제 침체와 재난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려고 노동자들을 더욱 공격할 것이다. 그런 만큼 노동자들의 고통이 늘어나고 분노가 더 커지고 사회와 정치의 양극화도 더 심해질 것이다. 정치의 양극화는 좌우 갈등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런 양극화를 누가 주도하느냐이다.
지난해 미국만큼 그런 양극화를 극적으로 보여 준 곳도 없을 것이다. 대규모 거리 시위와 항의가 분출해, “경찰 폐지”나 “교도소 폐지” 등의 급진적 구호들이 대중을 결집시키는 구호가 됐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트럼프의 비호와 고무 속에서 극우와 파시스트가 크게 성장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펼쳐진 드라마는 결국 주류 세력인 바이든과 민주당의 집권으로 귀결됐다. 이 점은 양극화가 착실하게 죽 발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한다. 지난해에는 팬데믹을 계기로 포퓰리즘이 시험대에서 떨어지고 중도가 다시 귀환해 자본주의가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가 제기되기도 했다. 유명한 우파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코로나19 감염병은 어쩌면 포퓰리즘이라는 종기를 도려내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중도계 주류 언론들이 이런 주장을 널리 퍼뜨렸다.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식 때도 그들은 이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일제히 내비쳤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들이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인도·브라질의 강경 우파 정부들은 노골적으로 방역을 거부했다가 급격한 코로나19 확산세에 직면했다. 이탈리아에서는 우파적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이 주도하는 연립정부가 붕괴한 뒤, 유럽은행중앙은행 총재였던 마리오 드라기가 초당적 합의 속에서 총리로 취임했다. 영국에서는 당내 좌파이자 당대표였던 코빈이 2019년 총선에서 패배하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노동당이 다시 우경화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자신이 예전에 특권적 ‘카스트’의 일부로 지목하고 비난한 중도좌파 사회당이 주도하는 연립정부의 하위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중도의 귀환’은 여전히 취약하다. 예컨대, 트럼프는 비록 대선에서 패배했어도 상당한 득표를 했다. 120년 이래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역사상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낙선 후보였다. 바이든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불평등과 일자리, 빈곤에 관해 침묵하는 사이에 트럼프는 일자리·경제 후보를 자처할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일부 노동자들의 표까지 가져올 수 있었다. 한편, 1월 6일 파시스트들이 포함된 극우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국회의사당을 점거한 사건은 극우의 성장과 위협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미국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 시위대 바이든의 ‘정상화’는 극우·파시스트의 성장을 막지 못한다ⓒ출처 Tyler Merbler(플리커)
좌든 우든 중도 세력들은 지금껏 대중의 고통과 불만을 자아낸 신자유주의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1970년대부터 시작된 장기 불황의 해결책으로 지배자들 사이에서 채택된 신자유주의는 이제 불황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난 지 오래이지만, 여전히 정책 결정 과정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중도 정부들의 이런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분노가 그동안 진행된 사회·정치 양극화의 배경에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수혜자는 우익과 극우가 될 때가 많았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보여 줬듯이 이들도 어떤 일관된 경제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중도파가 수행하던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고스란히 이어가려 했다.
기능장애를 겪는 개혁주의
물론 ‘중도의 귀환’은 현실의 한 측면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중도의 귀환’은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대선에서 바이든을 찍어야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예비경선 시기에 버니 샌더스는 2016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엄청난 기대와 지지를 얻었지만, 그의 대선 도전은 민주당 기득권 세력의 집요한 노력으로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그리고 샌더스는 결국 바이든 지지를 선언해 많은 실망감을 자아냈다.
민주당 기득권 세력은 샌더스의 공약을 지지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바이든이 더 ‘현실적인’ 후보임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다. 미국의 가장 큰 좌파인 미국 민주사회당(DSA)도 이런 ‘현실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것은 그들의 다수가 민주당을 통해서 ‘진보’ 의원들을 공직에 진출시키는 전략을 지지하기 때문이다.(물론 이런 전략의 배경에는 미국 양당제의 거대한 압력이 있다.)
2016년에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킨 이후 DSA에는 급진좌파가 대거 합류해서 이른바 ‘클린 브레이크’(깨끗이 손떼기)론이 세를 더 얻었다. 클린 브레이크론은 샌더스가 또다시 민주당 경선에서 패배하면 좌파가 민주당과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샌더스가 다시 밀려나자 이런 주장은 ‘현실론’의 무게를 이겨 내지 못했다.
샌더스와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민주당에 남아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는 길을 택했다. 그러나 그러려면 민주당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은 내려놓아야 했다. 예컨대, 상당한 대중적 인기를 끌었던 전국민 단일건강보험(‘메디케어 포 올’) 요구를 내려놓아야 했다.
바이든은 취임 한 달 만에 시리아를 폭격하고 이주 아동 구금시설을 만들었다ⓒ출처 미 국방부
스페인의 포데모스는 사회당 주도 연립정부에 하위 파트너로 참여했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의 광장 점거 운동이 대중의 거대한 분노를 보여 줬지만 실제로 성취한 것은 적다는 문제의식에서 세운 정당이었다. 광장 점거 운동의 ‘반(反)정치’를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포데모스가 구현한 정치는 계급적 이해관계가 아닌 담론을 둘러싼 투쟁과 선거를 중시하는 민중주의(좌파적 포퓰리즘) 정치였다. 광장 점거 운동이 가라앉자 선거가 그 운동의 유일한 변화 수단이 됐다. 포데모스 지도부는 우파 정당인 국민당을 막아야 한다며 사회당 지지층에 호소하려 했다. 그러면서 운동과 투쟁의 요구들을 삭감하고 공약을 사회당 수준으로 낮췄다. 연정은 그 논리적 귀결이었다. 이 연립정부는 팬데믹에 대처하는 과정에 기업들의 이윤을 우선시하는 다른 유럽 정부들과 별다른 차별성을 보이지 못했다.
영국에서 ‘중도의 귀환’은 코빈주의(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의 좌절로 나타났다. 코빈의 부상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좌파 정치 지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줬고, 전 세계 좌파들을 크게 고무했다. 그러나 2019년 총선에서 코빈이 이끈 노동당은 참패했고, 이제 새 당대표 키어 스타머가 작정하고 코빈과 그 지지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코빈이 집권해 신자유주의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한 기성 정치세력들, 자본가 계급, 노동당 우파가 똘똘 뭉쳐 코빈을 공격하고, 코빈 자신과 노동당 좌파가 이런 공격이나 브렉시트 등의 문제를 놓고 동요하고 후퇴한 것이 코빈주의의 좌절에 일조했다. 물론 더 근저에는 영국의 계급 투쟁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코빈 열풍에는 모순이 있었다. 코빈이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선거로 이목이 쏠리면서, 코빈이 총리가 되길 기다리는 수동적 분위기가 생겼다. 코빈은 운동을 대변하는 인물이었고, 코빈의 부상은 운동의 부상을 반영한 것이지만, 이는 운동을 한 단계 더 고양시키지 못했다. 이처럼 선거를 통한 국가 권력의 획득을 우선시하는 좌파적 개혁주의의 프로젝트들이 현재 세계 곳곳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중도의 귀환’은 이처럼 좌파적 대안이 부상하고 있지 못하는 것을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전통적 기득권 세력이 불안정하게 되돌아온 광경은 이미 재작년 그리스에서도 볼 수 있었다. 대중의 변화 염원을 배신한 시리자가 결국 전통적 기득권 정당인 신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 노동계급의 결정적 패배를 뜻하지는 않았다. 신민주당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리스의 반파시즘 운동은 정부를 압박해 파시스트 정당인 황금새벽당을 불법화하는 승리를 일궈 냈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가 부상하는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계급 투쟁과 좌파들이 그리스에서 강력하다는 유리한 조건 덕분만은 아니었다. 혁명적 좌파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이 시리자 같은 개혁주의 세력들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사안에 따라 함께 행동을 하는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좌파 개혁주의 프로젝트가 곳곳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지만, 팬데믹이 내는 모순된 효과 속에서 대중의 급진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다. 물론 나라마다 그 수준은 불균등하고 각 나라의 저항들도 나름의 약점과 한계들이 있다.
좌파
사회주의자들에게는 현 시기의 시험대를 통과하고 부상할 수 있는 좌파를 건설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이에 관한 논쟁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만성적인 위기에 시달려 온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NPA)는 3월 보르도시(市) 지방선거에서 멜랑숑이 이끄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운동 ‘불복종 프랑스’와 선거 동맹을 맺어 10퍼센트 이상을 득표하고 시의원 3명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다. 다른 한편, NPA 내의 일부 세력들은 노란 조끼 운동, 2018년 철도 파업, 2019년 연금 개악 반대 파업 등 고양 중인 프랑스의 계급 투쟁과 관계를 맺으면서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었다. 그래서 NPA 내에서는 NPA를 더 공공연하게 혁명적인 당으로 만들기를 원하는 이들과, 선거를 겨냥해 멜랑숑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올리비에 브장스노 등 NPA 지도부 사이에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노동당 새 대표 키어 스타머가 코빈과 당내 좌파를 대대적으로 공격하면서, 많은 당원들이 여기에 항의해 당을 빠져나갔다(2020년 4월부터 11월 사이에 약 5만 7000명이 빠져나갔다. 당원 수가 10퍼센트가량 감소한 것이다). 이에 대응해 영국의 정설파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영국 사회당(SP)은 노동당 왼쪽의 선거적 대안을 건설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코빈 지지자들에게 지금은 노동당을 나올 때라고 호소하며, 왼쪽의 대안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어떠한 것이든 의회 밖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혁명적 좌파는 시리자, 포데모스, 코빈 등(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이 좌절한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런 좌절들을 지도자의 일탈이나 좌파적 압력의 부족으로 설명하며 면밀하게 진단하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선거를 통한 정권 장악이라는 “현실” 정치를 우선시하는 노선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아무리 함께 강조한다고 하더라도 일정 시점에 이르면 그런 투쟁을 전진시키는 것과 충돌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런 노선 자체가 요구 수준을 낮추고 지지자들을 자제시키는 압력을 체계적으로 낳는다.
이런 논의들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상황도 세계적 위기와 양극화라는 전체 그림의 일부로서 봐야 한다. 현재 한국은 대중 자신의 행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개혁주의적인 좌경화는 물밑에서 조용히 진행돼 왔다. 노동자들은 현 집권 세력에 대한 불만이 상당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민주당 정부가 패배하면 우파가 득세할 것을 우려하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확실하게 결별하고 노동계급의 단결과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고무하는 정치가 필요한 이유다.
모든 선거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지만, 선거적 노력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는 것에 종속돼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이루지 못한 것을 소위 말하는 ‘정치’로 대체하려고 하기보다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건설하면서 그 운동이 자신의 힘으로 정치적 목표들을 달성하게 하는 방향을 추구해야 한다.
대중 투쟁이 비교적 활발하게 벌어진 나라들에서도 혁명적 좌파는 어느 정도 비슷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 예컨대, 미국노동청의 집계에 의하면 2018년, 2019년에 극적으로 늘어나던 파업 건수는 2020년에 50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이 통계는 1000명 이상이 참가한 파업만 집계한다는 허점이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여러 비공인 파업이 벌어진 바 있으며, 안전 소홀에 항의하는 작은 파업들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나 그 규모와 영향력을 과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것만 보고 미국이 계급 투쟁의 퇴조기에 들어섰다고 진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의 열기가 노동자들의 작업장 행동으로 곧바로 전이된 것은 아님을 보여 준다. 게다가 미국의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은 훌륭했지만 정치적으로는 대체로 민주당에 포섭된 상황이다. 양당 체제의 압력을 극복할 좌파적 대안이 부상하려면 근본적으로 더 강력한 계급 투쟁이 필요할 것이다. 얼마 전 노동자연대가 연 온라인 토론회에서 ‘마르크스21’의 야니스 델라톨라스가 그런 대안은 “단지 몇몇 좌파들이 선언만 한다고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하면서, 극우와 인종차별에 맞선 투쟁을 건설하고 계급 투쟁을 더 고양시키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투쟁이 비교적 활발했던 프랑스에서도 노동자 투쟁은 불균등했다. 2019년 말 마크롱의 연금 개악에 맞서 벌어진 대규모 투쟁의 주축은 파리교통공단(RATP) 노동자들이었다. 이 투쟁은 파리교통공단 바깥으로도 무기한 파업이 충분히 확산되지 못하면서 더 전진하지 못했다. 여기에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혁주의가 분명 작용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른 부문 노동자들이 이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를 뛰어넘어 파업에 나설 정도로 자신감이 높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었다. RATP에서는 지난 몇 년 동안 작업장 내에서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맞서 기층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져 왔었다. 무기한 전면파업의 주도력도 바로 이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런 동력이 다른 부문으로는 충분히 “수출”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민간부문 노동자들은 파업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연금 개악에 찬성해서라기보다는 그 부문의 주관적 문제를 반영한 것이었다. 특히, 민간부문 노동조합들은 같은 작업장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들과의 연대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었다.(저질 일자리 노동자들이 노란 조끼 운동에서 두각을 보인 집단이었는데도 말이다.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운동처럼 노란 조끼 운동도 저절로 일터에서의 저항의 물결로 이어지지는 않은 것이다.)
우리는 이런 국제적 경험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현재의 낮은 노동자 활동 수준이나 온건한 세계관 속에 둘러싸여 혁명적 확신을 잃고 사기저하돼서는 안 된다. 인내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데올로기 투쟁(선전)이 중요하다. 하지만 팬데믹이 가하는 제약이 만만치 않음에도 기회를 보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동자들의 단결과 투쟁을 강화시키는 정치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혁명가들의 단단한 중핵을 건설해야 한다.
증대하는 지정학적 불안정 ⬆️
장기 불황과 팬데믹은 지정학적 질서에도 영향을 준다. 이런 위기들이 체제에 내재된 긴장과 적대를 더 날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제국주의 갈등으로 지정학적 불안정이 증대해 왔다.
2008년 위기에서 회복되지 못한 채 지난해 세계경제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직면했다. 주요 선진국들에서 백신 접종이 시작됐으나 팬데믹 종식까지는 갈 길이 여전히 멀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경제 회복은 느리고 불안하다.
현재 이런 불황들은 각국 정부들 간의 협력적인 대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세계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자본들 간의 경쟁이 더 치열해진 점도 국가들 간의 긴장을 더 첨예하게 만든다.
세계정치의 지정학적 문제 중에 단연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갈등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트럼프 정부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른 경제 애국주의를 표방하며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는데, 지난해에는 팬데믹의 책임을 중국에 돌리면서 갈등을 더 키웠다.
트럼프가 물러나고 바이든이 새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의 대외정책에 변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바이든과 그의 외교·안보라인 인사들은 트럼프 정부의 대중국 강경 노선이 기본적으로 옳았다는 입장이다. 지난 1월 국무장관 앤터니 블링컨은 인사 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영역에서 걸쳐 트럼프 행정부가 취한 방식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중국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은 올바른 방향이었다.”
바이든 자신도 2월 4일 국무부 연설에서 외교 정책의 기본 방향을 밝히며 중국을 가리켜 “우리의 번영, 안보, 민주적 가치 면에서 가장 커다란 경쟁자”라고 했다.
최근 바이든은 반도체·배터리·희토류·의약품 등에서 미국의 공급망을 재검토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우리의 이익이나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 나라에 [공급망을] 의존해서는 안 된다”면서 말이다. 반도체, 5G 네트워크 등의 분야에서 미국 내 생산을 늘리고, 주요 동맹국들과의 연계로 공급망을 재조정해 중국에 대한 우위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계속될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국방부는 전담팀을 구성해 아시아에서의 미군 전략과 태세, 대중국 국방 정책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확장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인 미군 배치와 운용이 이번 핵심 검토 사항이 될 것이다. 그리고 커트 캠벨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아시아 정책을 총괄하는 자리를 맡았는데, 그는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 《포린 어페어스》 기고문에서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인 쿼드를 확대해 중국에 대한 군사적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중국은 만만찮은 상대다. 지난해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해외 직접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나라가 됐다. 팬데믹 와중에도 중국은 플러스 성장으로 미국과의 경제 격차를 줄였다. 시진핑 정부는 무역전쟁에 대응해 내수 진작과 국내 경제를 보호하는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또한 시진핑 정부는 미국의 견제에 대응하고, 자국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유지·강화하려고 중국 인근 지역에서 단호하게 행동해 왔다. 예컨대, 지난해 중국과 인도 사이에 국경 분쟁이 불거져 양측 군대의 유혈 충돌이 일어난 것도 이 점과 관련 있다.
중국-인도 국경 분쟁뿐 아니라, 인도-태평양 곳곳에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 해경은 모두 센카쿠(댜오위다오) 일대에서 총기 사용 등의 무력 사용을 더 쉽게 하도록 자체 규정을 바꿨다.
대만은 미국과 중국이 충돌할 위험이 잠재적으로 큰 곳의 하나다. 바이든은 자신의 취임식에 주미 대만 대표를 초청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무시하고, 대만 고위급 외교관을 취임식에 앉힌 것이다. 대만은 중국을 배제한 반도체 공급망 조정 문제에서 미국의 주요 파트너로 대우받고 있다. 바이든 취임식 나흘 후 마침 미군 항공모함이 대만 남부 해역을 지나자, 중국 폭격기들이 그리로 출격해 미군 항모를 미사일로 타격하는 모의훈련을 벌이고 돌아갔다. 이 훈련은 시진핑이 대만 문제를 놓고 바이든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이처럼 바이든 정부 하에서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적 갈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불안정이 계속 증대될 것이고, 한반도도 그 영향 아래에 있을 것이다.
미·중 갈등이라는 균열과 함께, 다른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간에 다른 문제들도 불거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과 유럽연합 간 통상 분쟁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 간의 무역 갈등이 악화돼 왔다. 그리고 러시아 문제도 있다. 바이든 정부는 러시아의 대유럽 영향력을 견제하려고 독일과 러시아 간의 가스관 공사에 제재 위협을 가했다.
자국의 이해관계를 지키려고 지역 강국들이 갈등을 키우고 충돌을 벌인 일들이 있다. 지난해 지중해 북동부에서 천연가스 쟁탈전이 벌어져 그리스와 터키가 상대방을 향해 전쟁 위협을 했다. 이 갈등에는 프랑스, 독일, 이스라엘 등까지 얽히는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국경 분쟁으로 전쟁까지 벌였다. 여기에는 터키와 러시아가 관여해 각각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를 지원했다. 이런 일들은 경제 침체와 팬데믹 속에 군사적 충돌이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중동은 여전히 각국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며 갈등을 빚는 화약고다. 중동에서의 다툼은 매우 복잡하고 어지럽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패배한 데 이어 2011년 아랍 혁명이 패배하면서 중동의 혼란은 매우 깊어졌다. 그런 가운데 터키, 사우디, 이란, 이스라엘 등 지역 강국들이 나름의 야심을 갖고 움직이고 있고, 이것이 미국, 러시아, 프랑스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 왔다. 이런 상황 속에 시리아, 예멘 등지에서 끔찍한 내전과 대리전이 지속됐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 견제 등을 위해 자국의 역량을 중동에 덜 쏟으려는 시도, 즉 오바마와 트럼프 정부가 상이한 방식으로 추진한 그 방향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래서 이란과의 핵협정에 복귀할 의사를 밝혔고, 이란과 사우디 간의 대리전 양상을 띠고 있는 예멘 내전을 중재하려고 예멘 특사도 임명했다.
바이든은 중동 질서가 안정되길 바랄 것이다. 그러나 이 ‘안정’은 진정한 평화와는 무관하다. 중동의 패권을 내려놓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든의 중동 정책에는 모순이 내포돼 있다. 이란과 사우디 등 걸프 연안의 수니파 국가들을 중재하는 한편으로, 역내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은 필요하면 얼마든지 군사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상대방을 협박할 태세도 갖췄다. 바이든 정부가 사우디 홍해 쪽에 새 미군 기지를 건설하고, 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를 공습한 일은 이런 측면을 잘 보여 준다. 바이든 정부도 중동의 혼란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며, 외려 그 혼란을 더 부추길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주변 정세도 악화될 가능성을 우리는 계속 경계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가 2017년의 트럼프 정부만큼 “화염과 분노”로 북한을 몰아세우지는 않더라도,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관철하려고 북한 위협을 과장하고 대북 무력 시위와 제재를 강화할 공산은 꽤 크다. 그리고 대중국 견제를 위해 한반도에 군사력을 전진 배치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노력도 문제다. 요즘에 미군의 오산공군기지 등에서 미군 정찰기가 출동해 남중국해 등지로 날아가는 게 일상이 됐다. 그만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증대해 온 것이고, 바이든 정부는 이를 더 강화할 생각을 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 압박, 한·미·일 동맹 강화 등이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맞물려, 한반도에서 뜻밖의 긴장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 ⬆️
올해에도 한국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못한 채 진보·좌파 정치세력들도 한국 정치의 주변부에 머무를 것 같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공식정치 위주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공식정치 동향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먼저 한국 자본주의를 둘러싼 현 상황을 간단히 살펴보자.
길어지는 경제 침체와 팬데믹 위기 대응이 단연 핵심 쟁점이다.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치며 위기를 증폭시키고 있다. 경제와 팬데믹의 복합 위기 때문에 정부 지출을 늘려야 하지만 재정 지출을 마냥 늘릴 수는 없다는 부담과 경제 전반의 부채 증가 문제도 지배자들은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다. 고용보험 확대를 말하는 것도 구조조정과 대량해고가 필요한 상황에서 사회안전망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사회 불안 요인을 최소화하려고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정부 지출을 늘려도 그 목적은 기업 투자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민간 기업의 투자가 늘고 투자 대비 수익이 높아지는 것이 정부와 기업주가 추구하는 경제 회복 목표다. 기업 투자가 늘어야 취업자도 늘어 사회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도 볼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면 자본 축적이 원활하게 돌아가야 하고, 자본 축적이 중단 위기를 겪지 않고 원활히 확대재생산 순환을 반복하려면 사회 안정과 국가의 확고한 보호가 필수적이다.
장기 침체와 저성장 시대에 각국의 정부가 기업 투자 유도와 유치에 여러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열을 올리는 이유다. 그중 핵심은 투자에 관한 규제 완화와 임금 절감이다.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지도자들에게 개혁을 약속하면서도 각종 기업(투자) 규제를 완화하는 것에는 일관된 이유다. 직무급제 확산 시도도 그 일환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가 약속과 달리 더딘 것은 약속 자체가 기만적이기도 했지만, 임금과 고용 등 정규직 노동조건도 낮춰야 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정규직화하기를 꺼리기 때문이다.
국제질서 불안정도 지배계급의 걱정거리다. 미·중 갈등은 미국이 주도해 중국까지 포함시켰던 자유무역 제국주의의 세계화 질서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위기는 이 균열에 더 큰 금이 가는 배경이 됐다. 이 자체만으로도 대외의존도가 큰 수출형 경제에는 리스크 요인이 된다.
그러나 위기는 더 복합적이다. 현재의 불안정은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위협받는 현실을 반영한다.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서 큰 이득을 취하며 성장한 한국 자본주의에게는 그 자체로 위기 요인인 것이다. 중국과의 무역 비중이 더 높다고 해도 간단히 줄타기나 친중 노선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지난 20년간 진척돼 온 중국과의 경제 통합을 되돌리기도 쉽지 않다. 한국 경제는 미일 중심의 시장에 통합되면서 성장해 왔으나, 2000년대 이후 중국과의 경제 통합은 증대돼 왔다. 특히, 2008년 공황 이후 중국 시장의 도움을 받았다. 중국은 한국의 투자처이(자 판매처이고 중국도 한국에 대해 마찬가지)다. 우파 정부인 이명박 정부에서는 “안보는 미국과, 경제는 중국과” 같은 말이 유행했다.
그런데 이후 갈등은 점차 고조됐고, 지금은 미·중 갈등이 상수가 됐다. 바이든 정부의 갈등 양상은 트럼프 때의 무역 전쟁보다 더 할 것이다. 지금 반도체의 공급망 재편까지 들고 나온다. 이는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일 것이다.
이런 국제질서 불안정 속에서 한국 스스로 동아시아 군비 경쟁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이런 배경 요인들은 한국 자본주의에 불확실성과 불안정을 높여서 한국 정치에 양극화 압력을 창출하는 요인들이다. 기업주들은 문재인이 포퓰리즘 전략으로 노동자 투쟁을 억제해 온 것 때문에 정부에 여전히 일정 정도의 지지를 제공하고 있지만, 그 대가로 노동개악과 규제완화의 속도가 더뎌서 불만도 커지고 있다. 노동개악을 받아들이게 하는 데 비용이 너무 크다면 기업주들은 태도를 달리할 수도 있다.양극화 압착 속에서 중도파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전략은 갈수록 모순에 직면하고 있다.
문재인의 포퓰리즘 전략
문재인 정부가 2019년 조국 국면에서 초래된 위기에서 급추락하지 않았던 것은 지난해 초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반사이익 효과가 있었다. 특히, 우파가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에 사실상 반대한 덕분에 여권이 총선에서 득을 봤다.
결정적인 도움은 진보계 지도자들의 비판적 지지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는 길게 보면, 민주당 정부가 개혁을 배신해 대중이 등을 돌릴 것이기에 결과적으로는 우파의 재기를 돕는 꼴이 된다.
문재인은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온건좌파) 지도부의 협력을 얻기 위해 그들을 배척하고 공격하기보다는 포섭하는 포퓰리즘 전략을 추구해 왔다. 그 목적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회운동 지도자들이 노동자 대중을 (경제 침체의 대가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게 하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국민적 통합의 이름으로 말이다. 이런 전략이 통한 것은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 정의당 지도부, 진보당 지도부, NGO 지도자들 등이 모두 문재인과 (비판적으로) 협력해 개혁을 성취하겠다는 노선을 취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이 개혁을 제공해 줄 거라는 바람은 헛된 것이(었)다.
둘째, 포퓰리즘 전략을 통해 문재인은 왼쪽을 이용해 오른쪽에서 오는 위협도 견제하려고 했다. 부패한 한줌의 세력, 전통적 집권세력이자 강성 우파에 맞서는 국민적 연합을 호소하고 이에 대한 호응을 정권의 강화에 이용해 왔다. 조국 임면 국면에서 검찰 개혁 드라이브나 갑을 담론 활용이 대표적이다.
최근 사례는 중대재해법 사례가 있다. 중대재해법 제정은 문재인 정부가 노동운동과 진보계(온건좌파) 지도자들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개혁 염원(요구)에 진지하게 부응하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윤석열 제거 실패로 커진 위기(우파의 공세를 포함해)에서 탈출하는 데 그 지도자들의 협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업주들은 중대재해법을 규제 강화로 받아들였다. 결국 문재인의 중대재해법은 국회 본회의 통과 막판에 법안 이름과 내용에서 대폭 후퇴해 실속이 없는 법이 돼 버렸다. 중대재해법 제정 국면에서 문재인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양쪽의 압력에 직면해 실체가 새삼 폭로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문재인을 결정적인 위기에서 구출해 줌으로써 결국은 기업주와 우파 좋은 일만 시킨 셈이다. 이런 맥락에 비춰 볼 때, 중대재해법 통과 후 진보진영 일부가 법이 제정된 것 자체에 의의를 두고 변호하는 평가를 한 것이 잘못인 이유다.
셋째, 결국 위기의 시대에 포퓰리즘을 이용해 저항을 억제해, 이윤 회복에 필요한 정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집권 배경을 보면 더 잘 이해된다. 2008년 세계 대공황 직후 선진국들이 모두 어마어마한 구제금융들을 투입했다. 그리고는 그 부담을 해소하려고 급한 불은 끈 2010년대에는 강경한 신자유주의 긴축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런 배경 속에서 대중의 불만이 자라고,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적 중도 노선이 지배하던 공식정치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이 배경 속에서 2013년부터 유럽에서 좌파적 개혁주의와 우익 포퓰리즘이 급속히 성장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는 박근혜가 경제 회복에 실패하고 부패 때문에 탄핵되자 민주당 문재인이 선택됐다. 지배계급은 민주당과 문재인을 통해서 이윤 회복에 필요한 정치적 안정을 이루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선 지도부를 포섭해 노동자 투쟁을 억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박근혜의 실패 때문에 지배계급이 질서 안정(현상 유지)을 위해 문재인의 포퓰리즘 전략을 용인한 것이다.
반우파 민주연합을 향한 전략은 우파의 재기를 돕는다
문재인은 4년 동안 개혁을 줬다 뺐거나, 준다고 해 애만 타게 해놓고 안 주거나, 엉뚱한 걸 주는 식으로 해 왔다. 간판은 노동존중을 걸어 놓고, 노사 양쪽 모두에게 개별 법제화를 약속하고는 최종 결과는 기업주들에게 유리하게 했다. 최저임금, 노동시간, 중대재해법, ILO 협약 비준이 이 모두 그런 식이었다. 즉, 최저임금을 첫해 올리고 산입범위 개악하기, 노동시간 52시간 제한 강화하고는 탄력근로제 도입하기, 박근혜의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대신 성과직무급제 추진하기, 핵발전소 하나 폐기하고 나머지는 계속 건설하기, ILO 협약 비준한다면서 노조법 개악도 함께 끼워넣기, 부동산 세금 조금 늘리고 공급 확대를 발표하기 등등.
지키기 힘든 건 아예 처음부터 ‘뻥치기’로 일관했다. 탄소 줄이기, 페미니스트 대통령, 세월호 진상 규명 등.
위기 때 진보계를 우군으로 동원하려고 ‘토착왜구’ 식의 프레임으로 일본에 맞서는 국민적 연합을 호소하고, 검찰을 앞세운 부패한 구 집권세력에 맞선 민주연합 슬로건도 활용했다. 코로나 위기 극복 국민적 통합을 위한 코드네임은 K방역이었다.
이런 사기극이 통한 것은 진보진영 지도자들이 우파의 귀환을 두려워해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비판하면서도 결정적으로는) 눈감아준 덕분이었다. 지금 진보계 지도자들의 행동을 보며 과거를 돌아보니, 문재인 정부가 취임할 때 “촛불(혁명) 정부”를 참칭한 것을 그들 대부분이 보아넘겼는데, 이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말이 아니라 실천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우파보다는 덜 나쁘다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약간의 개혁이라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정의당은 촛불 개혁 연합을 주장했다. 박근혜 탄핵 공조의 연장선으로 정의당, 민주당, 새누리당 탄핵파 등의 개혁 입법 공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당시 20대 국회에서 다수파 개혁 연합을 꾸려야 적폐 청산 개혁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 노선은 지난 4년 동안 완전히 파산했다. 새누리당 탈당파는 국민의힘으로 되돌아갔고, 문재인의 개혁 배신은 대중의 심판 위기에 직면해 있다. “촛불 개혁 연합”의 실패가 정의당이 직면한 리더십 위기의 본질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우파는 사기가 회복돼 재기를 꿈꾸고 있다. 우파의 사기 회복은 선거 여론조사만으로 진단할 수 없다. 국민의힘은 수십 년간 정권을 잡고 유지해 온 노련한 정당이다. 지금은 전통적 지지층이 분열해 있고 지리멸렬해서 우파 통합 리더십을 세우지 못해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래서 기만적인 “중도로의 확장성” 논쟁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우파에 적절한 후보가 없다고 해서 민주당의 전망이 밝은 것도 아니다.
특히, 정치 양극화 추세와 진보계 지도자들의 헛발질 덕분에 우파의 사기가 조금씩 회복되는 추세임을 봐야 한다. 게다가 지금도 막상 우파가 정부를 줄기차게 때리면 그것이 반영된다. 부동산 공급 문제나 재난지원금 문제도 그렇다. 특히, 우파 비판이 대중에게 먹혀들 분위기이면 진보진영이 문재인 비판에 침묵을 해 버리니 우파는 더 신이 난다.
그렇다고 해서 우파의 사기 회복이 대중의 사기 저하나 우경화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체 행동이 줄면서, 주저하는 지도부를 압박해 대중 투쟁 건설로 밀고 나갈 만큼은 아니고, 진보적 대안 없이 문재인이 약화되는 것 때문에 혼란스럽긴 해도, 계급의식이 후퇴하거나 자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직 노동계급의 주력 부대는 본격적인 공세를 아직 당하지 않고 있다. 가령 민주노총 김명환 집행부는 협력 노선을 추진하다가 대의원대회에서 두 번이나 실패해 결국 불명예 사퇴했다.(그런데 좌파는 사회적 대화 문제에서나 중대재해법 같은 입법 캠페인에서도 노조관료에게서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이는 결과적으로 좌파가 문재인과의 깨끗한 결별을 촉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혼탁스러울 올해 공식 정치
올해는 (판이 커진) 재보선부터 정권에 불리한 요인이다. 문재인 레임덕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문제는 여전히 폭탄이고, 가덕도 공항을 둘러싼 국토부의 반발 등 레임덕 조짐은 분명하다. 대선 국면으로 이동하면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다. 문재인의 여권 내 통제력도 약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년 대선 결과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우파가 선거에서도 충분히 반사이익을 얻을지 아직 불투명하다. 왼쪽 대안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민주당에게 “미워도 다시 한 번” 투표도 다시 제기될 것이다. 그러나 지난 4년보다는 양극화 추세가 강해지는 속에서 대선이 치러질 것이다. 객관적 위기가 심각해 노동자도 기업주도 모두 불만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재인의 정치적 위기의 실체다.
각 정치세력 간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이다. 진보·좌파의 정치세력들도 분발해야 한다. 이때 혁명적 좌파의 분석과 주장이 매우 중요하다. 현안과 정부 비판, 자본주의 문제를 잘 결합시킬 줄 알아야 한다. 우파 비판과 민주당 비판을 결합시켜야 한다. 개혁주의의 전략을 비판적으로 다루고 대안을 내놓는 주장과 논쟁이 강화돼야 한다. 객관적 위기만으로 개혁주의에 조종이 울리고 있다거나 단순한 폭로 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정의당은 선거에서 수백만 표를 얻고 2016년 이후 선거 영역에서는 진보(계)를 대표하는 정당의 위상을 갖게 됐다. 그러나 최근 정의당은 존재감이 매우 약화돼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정권 심판 선거가 될 것으로 보이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도 내지 못했다.
최근 1~2년간은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배신과 분명하게 선을 긋지 않으면서 지지층에게도 매력적인 진보적 대안의 느낌을 주지 못하고 있다. 2019년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의 권력형 부패 혐의가 드러났는데, 정의당이 이를 감싸고 편드는 바람에 우파는 손쉽게 진보·좌파를 싸잡아 위선과 내로남불의 집단으로 비난할 수 있었다.
국회 전체 의석에서 지역구 대비 비례대표 비중을 늘리는 선거법 개정에서 민주당의 지지를 얻어 내려고 정의당은 방어해서는 안 될 것까지 방어한 것이다. 선거법 개정에 당시 자유한국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정의당이 그렇게까지 했지만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각각 비례 득표를 위한 위성 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선거 성적은 현상 유지에 머물러야 했다.
결국 책임을 지고 심상정 대표가 사퇴하고 김종철 새 지도부가 등장했으나 석 달 만에 대표가 성 관련 추문으로 사퇴하고 결국 3월에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 초기 박근혜 탄핵 공조를 촛불 연합의 이름으로 이어가자고 제안한 바 있다. 정의당 지도부는 이명박, 특히 박근혜 정부에게 정치 체제 차원에서도 반민주적 반동의 성격이 있다고 규정했다. 그래서 박근혜 퇴진 운동 초기에 탄핵을 주장하며 당이 거리로 나왔던 것이다. 국회에서 정의당, 민주당, 당시 새누리당 탈당파 등 3자가 연합해 박근혜를 탄핵함으로써 촛불 염원을 반영했으니 새 정부 하에서도 그 연합을 이어 가야 한다는 매우 소박한(그리고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렇게 “촛불 개혁을 위한 연합 정치”가 돼야 개혁(적폐 청산)을 위한 의회 다수파 형성이 가능해지고, 그에 바탕해야 개혁이 순조로울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런 노선은 정의당이 주류 사회민주주의(더 구체적으로는 좌파적 포퓰리즘 경향의 개혁주의 정당이라는) 성격에서 비롯했다. 개혁을 위한 반우파 국민연합 전략을 추구해 왔는데, 강령과 실천에서는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과 안보를 지지하며 체제 내 개혁을 추구한다. 정의당은 노조 상근간부층 일부도 기반의 일부로 삼고 있지만, 창당 때부터 계급 정치를 껄끄러워해, 매우 온건하고 계급 타협적인 사회연대전략 노선을 고수해 왔다. 정의당의 포퓰리즘 정치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범국민적 단결에 협력하고자 했을 때도 드러났다.
정의당은 의회에서 여당과 사실상 공조를 해 왔다. 정부를 비판하면서도 그와 협력도 해서 개혁을 성취하자는 노선이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의 개혁 배신이 환멸과 이반을 낳으면서 우파의 사기가 한껏 오르고 있고, 새누리당 탈당파는 진작에 자유한국당-국민의힘으로 차례차례 복당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우파적 반대파로 복무하고 있다.
결국 정의당 지도부가 문재인 정부 하에서 추구해 온 전략적 실천은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이것이 정의당이 겪는 리더십 위기의 본질이다. 정의당의 위기는 지지층이 탈정치화되거나 우경화해서가 아니라 전략과 노선 자체가 실패하면서 온 위기다.
정의당의 위기는 장기화된 경제 침체, 팬데믹 위기, 제국주의적 갈등의 고조에 따른 국제 질서의 불안정 격화라는 배경 속에 있다. 물론 객관적 위기 때문에 개혁주의 정치 운동이 약화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정의당의 전략과 노선은 객관적 위기에 걸맞은 급진적 대안을 내놓고 과단성 있게 행동하지 않고 점점 소심해진 데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