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시풍속사전 - 입춘(立春)

 한국세시풍속사전 - 입춘(立春)

입춘(立春)

红色新春大吉海报

[절기, 계절: 봄(음력 1월)] [날짜: 양력 2월 4일경] [시절음식: 오신반(五辛盤), 세생채(細生菜), 명태순대(明太-)] [관련정일: 재봉춘(再逢春)] [관련속담: 이월에 물독 터진다, 가게 기둥에 입춘이라, 입춘 거꾸로 붙였나, 입춘에 장독"오줌독" 깨진다, 입춘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 [관련풍속: 입춘축(立春祝), 연상시(延祥詩), 입춘하례(立春賀禮), 입춘굿(立春-), 토우를내는일, 목우(木牛), 보리뿌리점, 입춘치(立春-), 입춘첩(立春帖)]

정의

24절기 중 첫째 절기로 대한(大寒)과 우수(雨水) 사이에 있는 절기. 보통 양력 2월 4일경에 해당한다. 태양의 황경(黃經)이 315도일 때로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드는 때가 있다. 이럴 경우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내용

입춘은 새해의 첫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다. 입춘이 되면 도시 시골 할 것 없이 각 가정에서는 기복적인 행사로 입춘축(立春祝)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인다. 입춘축을 달리 춘축(春祝)·입춘서(立春書)·입춘방(立春榜)·춘방(春榜)이라고도 한다. 입춘축은 글씨를 쓸 줄 아는 사람은 자기가 붙이고, 글씨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남에게 부탁하여 써서 붙인다. 입춘이 드는 시각에 맞추어 붙이면 좋다고 하여 밤중에 붙이기도 하지만 상중(喪中)에 있는 집에서는 써 붙이지 않는다. 입춘축을 쓰는 종이는 글자 수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가로 15센티미터 내외, 세로 70센티미터 내외의 한지를 두 장 마련하여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외에 한지를 마름모꼴로 세워 ‘용(龍)’자와 ‘호(虎)’자를 크게 써서 대문에 붙이기도 한다.

입춘축은 대개 정해져 있으며 두루 쓰는 것은 다음과 같이 대구(對句)·대련(對聯)·단첩(單帖, 단구로 된 첩자)으로 되어 있다. 입춘날 붙이는 대구를 보면 ‘국태민안 가급인족(國泰民安 家給人足)’, ‘기주오복 화봉삼축(箕疇五福 華封三祝)’, ‘문신호령 가금불상(門神戶靈 呵噤不祥)’, ‘우순풍조 시화년풍(雨順風調 時和年豊)’ 등이며, 대련을 보면 ‘거천재 내백복(去千災 來百福)’, ‘수여산 부여해(壽如山 富如海)’, ‘요지일월 순지건곤(堯之日月 舜之乾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개문만복래 소지황금출(開門萬福來 掃地黃金出)’, ‘계명신세덕 견폐구년재(鷄鳴新歲德 犬吠舊年災)’ 등이다. 단첩으로는 ‘상유호조상화명(上有好鳥相和鳴)’, ‘일진고명만제도(一振高名滿帝都)’, ‘일춘화기만문미(一春和氣滿門楣)’, ‘춘광선도길인가(春光先到吉人家)’, ‘춘도문전증부귀(春到門前增富貴)’ 등을 붙인다. 입춘축은 붙이는 곳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큰방 문 위의 벽, 마루의 양쪽 기둥, 부엌의 두 문짝, 곳간의 두 문짝, 외양간의 문짝에 붙이는 입춘축은 각기 다르다.

옛날 대궐에서는 입춘이 되면 내전 기둥과 난관에 문신이 지은 연상시(延祥詩) 중에 좋은 것을 뽑아 연잎과 연꽃 무늬를 그린 종이에 써서 붙였는데, 이를 춘첩자(春帖子)라 하였다. 『경도잡지(京都雜志)』에 의하면, 입춘이 되기 열흘 전에 “승정원에서는 초계문신(抄啓文臣, 당하문관 중에서 문학에 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뽑아서 다달이 강독·제술의 시험을 보게 하던 사람)과 시종신(侍從臣)에게 궁전의 춘첩자를 지어 올리게 하는데, 패(牌)로써 제학(提學)을 불러 운(韻)자를 내고 채점하도록 한다.” 하였다. 춘련을 써서 붙이게 된 유래는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입춘날에는 의춘(宜春) 두 자를 써서 문에다 붙인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춘련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입춘날 관상감(觀象監)에서는 주사(朱砂)로 벽사문(辟邪文)을 써서 대궐 안으로 올리면 대궐 안에서는 그것을 문설주에 붙이는데, 이를 입춘부(立春符)라 한다. 입춘부의 글 내용은 후한(後漢) 때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에 진자(侲子, 아이 초라니)가 화답하던 말이니, 곧 “갑작은 흉한 것을 잡아먹고 필위는 호랑이를 잡아먹고 웅백은 귀신을 잡아먹고 등간은 상서롭지 못한 것을 잡아먹고 남제는 재앙[咎]을 잡아먹고 백기는 꿈을 잡아먹고 강양과 조명은 함께 책사와 기생을 잡아먹고 위수는 관을 잡아먹고 착단은 큰 것을 잡아먹고 궁기와 등근은 함께 뱃속 벌레를 잡아먹는다. 대저 열두 신을 부려 흉악한 악귀들을 내쫓고 너의 몸을 으르고 너의 간과 뼈를 빼앗고 너의 살을 도려내고 너의 폐장을 꺼내게 할 것이니, 네가 빨리 달아나지 않으면 열두 신들의 밥이 되리라. 빨리 빨리 법대로 하렸다(甲作食凶 胇胃食虎 雄伯食魅 騰簡食不祥 覽諸食咎 伯奇食夢 强梁祖明共食磔死寄生 委隨食觀 錯斷食巨 窮奇騰根共食蠱 凡使十二神 追惡鬼凶 赫汝軀 拉汝肝節 解汝肌肉 抽汝肺腸 汝不急去 後者爲粮 急急如律令).”이다.

의례

입춘은 새해에 드는 첫 절후이므로 궁중과 지방에서 여러 의례를 베풀었다.

① 입춘하례(立春賀禮): 『고려사(高麗史)』 「예지(禮志)」 입춘하의조(立春賀儀條)에 의하면, “인일(人日)의 축하 예식과 동일하나 다만 입춘에는 춘번자(春幡子)를 받는다.”고 하였다. 입춘날에 백관이 대전에 가서 입춘절을 축하하면 임금이 그들에게 춘번자를 주고, 이날 하루 관리에게는 휴가를 주었다.

② 토우를 내는 일(出土牛事): 『예기(禮記)』에 의하면 계동(季冬)에 궁중의 역귀를 쫓는 행사인 대나의(大儺儀) 때 “토우를 만들어 문 밖에 내놓아 겨울의 추운 기운을 보낸다(出土牛以送寒氣).”고 하였는데, 고려 때는 입춘에 토우를 내는 일이 시행되었다.

③ 목우(木牛): 함경도에서는 입춘날 나무로 만든 소를 관청으로부터 민가의 마을까지 끌고 나와 돌아다니는 의례를 갖는데, 이는 흙으로 소를 만들어 겨울의 추운 기운을 내보내는 중국의 옛 제도를 모방하고 풍년을 기원하는 뜻에서 행한다고 하였다.

④ 입춘굿: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굿놀이를 행하는데, 이 놀이는 농경의례에 속한다. 해마다 입춘 전날에 무당들이 주사(州司)에 모여 나무로 만든 소에게 제사를 지내고, 입춘날 아침에는머리에 월계수 꽃을 꽂고 흑단령 의복을 차려 입은 호장(戶長)이 나무소에 농기구를 갖추어 나와 무격들로 하여금 화려한 비단 옷을 입고 앞장서서 호위하여 대오를 인도하게 하며 큰 징과 북을 치며 행진하여 관덕정 앞마당에 이르면 호장은 무격들을 나누어 여염집에 들어가서 쌓아둔 보릿단을 뽑아오게 하여 뽑아온 보릿단으로 실(實)·부실(不實)을 판단하여 새해의 풍흉을 점친다. 또 돌아서 객사에 이르면 문 밖에 있던 호장은 쟁기를 잡고 밭을 간다. 또한 아주 크고 붉은 가면에 긴 수염을 달아 농부로 차린 한 사람이 등장하여 오곡의 씨를 뿌린다. 이어서 초라니 광대처럼 채색한 새 탈을 쓴 다른 한 사람이 등장하여 곡식을 주워 쪼아 먹는 시늉을 한다. 또 두 사람이 여자 배우의 가면을 쓰고 등장한다. 처첩이 투기하여 서로 다투는 장면을 남편인 듯한 탈을 쓴 광대가 등장하여 거짓으로 서로 말리는 양하면 관중은 모두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 이러한 장면은 꼭두각시놀음과 비슷하다. 이어 무격들이 한 떼를 이루어 어지럽게 춤을 추며 신을 놀리는 등 태평을 즐긴다. 동헌에 돌아와서도 그와 같이 한다. 이는 대개 탐라왕이 몸소 백성들 앞에서 밭을 갈아 풍년을 기원하던 유습이 전해 내려온 것이라 한다.

점복(占卜)

입춘날 입춘시에 입춘축을 붙이면 “굿 한 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여 입춘축이 벽사로 붙여짐을 알 수 있다. 전북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춘련(春聯)붙인다.” 하고, 이를 붙이면 “봉사들이 독경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또 써 붙이지 않고 그냥 글귀를 외워도 좋다고 한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축 붙이는 것을 ‘방악(防惡)한다.’ 또는 ‘잡귀야 달아나라.’고 써 붙인다고 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 보리뿌리점[麥根占]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입춘날 보리뿌리를 캐어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데, 보리뿌리가 세 가닥 이상이면 풍년이고, 두 가닥이면 평년이고, 한 가닥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입춘날 보리뿌리를 보아 뿌리가 많이 돋아나 있으면 풍년이 들고 적게 돋아나 있으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경기도 시흥·여주, 인천에서는 입춘 때 보리뿌리를 캐어 보리의 중간뿌리[中根]가 다섯 뿌리 이상 내렸으면 풍년이 들고, 다섯 뿌리에 차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 마산리에서는 입춘 때 보리뿌리를 뽑아 살강 뒤에 놓아두면 보리뿌리가 자라는데, 보리뿌리가 많이 나면 길하고 적게 나면 그해 보리가 안 된다고 한다. 충남에서는 입춘날 오곡의 씨앗을 솥에 넣고 볶아, 맨 먼저 솥 밖으로 튀어나오는 곡식이 그해 풍작이 된다고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집안과 마룻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뒤 체를 엎어두었다가 몇 시간 뒤에 들어보면 어떤 곡식이 한 알 나오는데, 거기에서 나온 곡식이 그해에 풍년들 곡식이라 한다. 입춘날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으면, 그해 풍년이 들고 병이 없으며 생활이 안정되나, 눈이나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입춘날에 눈보라가 치는 등 날씨가 나쁘면 ‘입춘치’라 한다. ‘치’는 접미사로 보름·그믐·조금 또는 일진의 진사(辰巳)·술해(戌亥) 같은 것에 붙여 그 날 무렵에 날씨의 나빠짐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는 첫날인 입춘에 이러한 입춘치가 있는 것을 농사에는 나쁘다고 생각하였다. 전남 무안에서는 “입춘날 눈이 오면 그해 며루가 쓰인다.”고 하여, 그해 여름 벼농사에 며루(자방충)가 많이 생겨 해농(害農)한다 하고,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바람이 불면 그해 내내 바람이 많고 밭농사도 나쁘다고 한다. 또 입춘날 입춘축을 써서 사방에 붙이면 그해 만사가 대길하나, 이날 망치질을 하면 불운이 닥친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는 입춘날 여인이 남의 집에 가면 그 집의 논밭에 잡초가 무성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어 특히 조심한다. 또 이날 집안 물건을 누구에게도 내주는 일이 없는데, 만일 집 밖으로 내보내면 그해 내내 재물이 밖으로 나가게만 된다고 한다. 전남 구례에서는 입춘날 절에 가서 삼재(三災)풀이를 하는데, 삼재를 당한 사람의 속옷에 ‘삼재팔난(三災八難)’이라 쓰고 부처님 앞에 빌고 난 후 속옷을 가져다가 불에 태운다.

경남 창녕군 영산에서는 이날 새알심을 넣지 않은 팥죽을 끓여 먹고 집안 곳곳에 뿌려 벽사(辟邪)를 한다. 충청도에서는 이날 보리뿌리가 내리기 때문에 보리밥을 먹어야 좋다고 하여 보리밥을 해 먹으며, 전남 무안에서는 입춘이 일년에 두 번 들면 소금 시세가 좋다고 한다. 함남 북청에서는 이날 무를 먹으면 늙지 않는다고 하여 무를 먹고, 잡곡밥은 먹지 않고 흰쌀밥을 먹으며, 이날은 나이 먹는 날이라 해서 명태순대를 해 먹는다. 함남 홍원에서는 이날 남자들이 명태를 통째로 쪄서 먹으면 등심이 난다고 해 먹는다.

절식

입춘날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으며, 함경도에서는 민간에서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경도잡지』와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경기도 산골지방(畿峽)의 육읍[양근(楊根), 지평(砥平), 포천(抱川), 가평(加平), 삭녕(朔寧), 연천(漣川)]에서는 총아(葱芽, 움파)·산개(山芥, 멧갓)·신감채(辛甘菜, 승검초) 등 햇나물을 눈 밑에서 캐내어 임금께 진상한다. 궁중에서는 이것으로 오신반(다섯 가지의 자극성이 있는 나물로 만든 음식)을 장만하여 수라상에 올렸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엄동(嚴冬)을 지내는 동안 결핍되었던 신선한 채소의 맛을 보게 한 것이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으며, 춘일 춘반(春盤)의 세생채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

구비전승

대한을 지나 입춘 무렵에 큰 추위가 있으면, “입춘에 오줌독(장독·김칫독) 깨진다.” 또는 “입춘 추위에 김칫독 얼어 터진다.”라 하고, 입춘이 지난 뒤에 날씨가 몹시 추워졌을 때에는 “입춘을 거꾸로 붙였나.”라고 말한다. 입춘 무렵에 추위가 반드시 있다는 뜻으로 “입춘 추위는 꿔다 해도 한다.”는 말이 생겼고, 격(格)에 맞지 않는 일을 엉뚱하게 하면 “가게 기둥에 입춘이랴(假家柱立春).”고 한다.

의의

입춘은 24절기 가운데 첫 절기로, 이날부터 새해의 봄이 시작된다. 따라서 이날을 기리고, 닥쳐오는 일년 동안 대길(大吉)·다경(多慶)하기를 기원하는 갖가지 의례를 베푸는 풍속이 옛날에는 있었으나, 근래에는 더러 입춘축만 붙이는 가정이 있을 뿐, 그 절일(節日)로서는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1969년 ~ 1981년
전경욱. 함경도의 민속.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년
任東權. 韓國歲時風俗硏究. 集文堂, 1985년
韓國의 歲時風俗Ⅱ, 1998년
韓國의 歲時風俗Ⅰ, 1997년
京都雜志, 高麗史, 東國歲時記, 歲時風謠, 呂氏春秋, 洌陽歲時記, 禮記
문무병. 탐라국입춘굿놀이, 2000년
황경숙. 한국의 벽사의례와 연희문화. 月印, 2000년
[네이버 지식백과] 입춘 [立春] (한국세시풍속사전)

세시풍속 (歲時風俗)

민속·인류 개념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 세시 · 세사 · 월령 · 시령 · 세시의례.

세시(歲時), 세사(歲事), 월령(月令), 시령(時令), 세시의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이다. 농경사회에서 시계성·주기성·순환성을 가지고 진행된 농경 과정에서 탄생한 풍속이다. 세시·세사·월령·시령·세시의례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중심에 두고 양력을 가미한 태양태음력을 기준으로 했다. 고대의 제천의례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에 세시풍속의 골격이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이, 조선시대에는 설날·한식·단오·추석 등 4대 명절이 있었다. 명절 외에 다양한 계절별·지역별 세시풍속이 존재했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퇴색했지만 설날과 추석의 차례와 성묘는 전승되고 있다.

절후(節侯) 세시명절 세시의례(歲時儀禮) 역법(曆法) 음력 민속신앙 민속놀이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 세시 · 세사 · 월령 · 시령 · 세시의례.

개설

세시풍속은 대체로 농경문화를 반영하고 있어 농경의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명절, 24절후(節侯)주1 등이 포함되어 있고 이에 따른 의례와 놀이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농경을 주 생업으로 하던 전통사회에서는 놀이도 오락성이 주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풍농을 예축하거나 기원하는 의례였다. 그래서 세시풍속을 세시의례(歲時儀禮)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에는 세속화되고 탈제의화(脫祭儀化)하여 의례로 행해지는 것이 구별되기도 한다.

세시풍속의 기준이 되는 역법(曆法)은 음력이지만 양력이 전혀 배제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말하는 음력은 태음태양력(Lunisolar Calender)의 약자로서 음력이 중심을 이루되 양력도 가미된 것이다. 24절후는 양력 날짜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는 태양력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력으로는 해마다 날짜가 달라진다. 가령 24절후이자 세시명절이기도 한 동지의 경우 양력 12월 22일에 들지만 음력으로는 동짓달 초순, 중순, 하순 등 해마다 달리 든다.

세시풍속은 대체로 1년을 주기로 반복되는데 예외도 있다. 가령 윤년(閏年)주2이 드는 해에 행하는 세시풍속이 있고, 3년, 5년, 또는 10년 단위로 행해지는 별신제도 세시풍속의 범주에 속한다. 세시풍속을 세시(歲時) · 세사(歲事) · 월령(月令) · 시령(時令)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모두 시계성(時季性)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세시풍속은 시계성과 함께 주기성(週期性) · 순환성(循環性)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시계성과 순환성은 기본적으로 ‘주기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세시풍속은 주기성을 중심축으로 같은 행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세시풍속은 명절 또는 그에 버금가는 날 행해진다. 전통사회에서 명절은 신성한 날, 곧 의례를 행하는 날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에서는 세시풍속을 연중행사(年中行事)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이런 표현을 하는데 이 용어는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의 경우 연중행사라 하면 연중에 행해지는 모든 행사를 망라한다. 세시풍속이 춘하추동(春夏秋冬) 계절에 적절하게 행해지고 있으므로 계절제(季節祭)라고도 한다. 따라서 연중행사와는 구별해야 한다.

전통사회에서 명절이라면 세시명절을 일컬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명절의 개념이 확대되어 세시풍속과 관련된 날은 세시명절이라는 용어로 구별할 필요마저 생겼다. 『고려사』에는 속절(俗節)로 나타나는데 이는 명절과 같은 의미이다.

세시풍속의 연원과 역사적 변천

세시풍속은 농경과 깊게 관련되어 있어서 농경의 기원에서 그 역사성을 추정한다. 고고학적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시대이다. 신석기 이전에는 수렵과 어로 등의 채집경제가 기본이었으므로 농경의 확실한 증거는 신석기 중기부터 나타난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 농경, 어로, 가축 사육 등의 방법이 동원되고, 농경지역이 크게 확대된다. 농작물 역시 벼 · 보리 · 조 · 피 · 수수 · 콩 등으로 다양하다. 특히 도작문화주3는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여 세시풍속 역시 다양하게 형성되었으리라 추정한다.

고고학적 자료 이외에 문헌상 오랜 것으로 3세기에 중국의 사가(史家)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의 기록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고대 제천의례, 곧 농경시필기(農耕始畢期)에 행해졌던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의 무천(舞天) 등은 국가제사로서 주기성을 띤 의례였다. 이는 곧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세시풍속의 원류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 역법이 도입되면서 삼국은 나름의 특성과 공통점을 갖게 된다. 이 시대의 세시풍속 자료는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또한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서 『수서(隋書)』 · 『당서(唐書)』 · 『북사(北史)』 등에도 우리의 세시풍속이 나타난다. 우선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나타나는 신라의 오묘제(五廟祭) · 사직제(社稷祭) · 농제(農祭) · 풍백제(風伯祭) 등을 비롯하여 고구려의 귀신제 · 사직제 · 영성제(零星祭), 백제의 천신제(天神祭) · 시조제(始祖祭) · 천지제 등은 주기적인 국가 제사로서 국가 차원의 세시풍속이었다.

이밖에 구체적으로 명절이 드러나기도 한다. 신라 원일(元日, 설날)과 추석에 대해서는 『수서』 동이전 신라조와 『당서』 동이전 신라조에 기록되어 있다. 즉 “신라인들은 정월 초하루에 사람들끼리 치하하고 일월신에게 절한다”고 했으며 “8월 보름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을 모아 활쏘기를 한다”고 했다. 또 『북사』 신라조에는 “8월 보름에 음악을 울리고 관리들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여 상으로 말과 포목을 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설이 오늘날과 같이 역사적인 명절이 된 연원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아니더라도 추정할만한 기록은 보인다. 『삼국유사』권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조에는 정월 대보름과 관련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신라 21대 비처왕[소지왕이라고도 한다] 때 궁중에서 궁주(宮主)와 중의 간통사건이 있어 이들을 쏘아 죽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후 해마다 상해일(上亥日) · 상자일(上子日) · 상오일(上午日)에는 만사를 꺼려 근신하였다 하여 신일(愼日) 또는 달도(怛忉)주4라 한데서 설이 유래했다고 했다. 찰밥(오곡밥)을 비롯하여 12지일 가운데 상자일(上子日) · 상해일(上亥日) · 상오일(上午日) 등은 정초 십이지일(十二支日)에 해당되는 날로 이때의 금기를 비롯한 풍속은 오늘날까지 그 잔재가 남아 있다.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조에는 가배(한가위)에 대한 기록이 있다. 7월 16일부터 8월 보름까지 신라 6부의 여성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길쌈을 하는데 승부에서 진 편은 이긴 편에게 크게 대접하고 한바탕 흐드러지게 논다는 내용이다. 이를 통해 신라 가배에 행해지는 대동놀이, 이를테면 축제로서 특히 여성축제의 모습과 아울러 길쌈문화를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연날리기 · 활쏘기 · 투호 · 격구 · 축국 · 저포 · 씨름 등 다양한 놀이가 있었음이 문헌이나 고분벽화에 나타난다. 신라에서는 우리 고유의 유두도 중요한 명절이었다.

1976년 말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에서 발굴된 5세기 초 덕흥리 무덤의 벽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벽화에 칠석이라는 날이 표현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실로 오랜 역사를 지닌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고구려의 수석전(水石戰)에 대해서는 『수서』와 『북사』와 같은 중국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수석전은 석전(石戰)의 원류로서 애초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였다. 그러나 고려시대에 오면서 의례로서의 성격은 사라지고 투쟁적인 놀이가 되었다. 또는 석투군(石投軍)이 등장하는 등 전쟁 때에 이용되기도 했다. 이처럼 삼국시대에는 이미 세시풍속의 기본 골격이 형성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오늘날 논의되는 세시풍속이 거의 모두 존재했다. 『고려사』에는 고려 9대 속절(俗節, 명절)로 원단(元旦, 정월 초하루) · 상원(上元, 정월 대보름) · 상사(上巳, 후에 삼짇날이 됨) · 한식 · 단오 · 추석 · 팔관 · 동지 · 중구주5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이때에만 세시풍속이 행해진 것은 아니다. 이는 대표적으로 꼽히는 명절이며 그밖에도 다달이 크고 작은 세시풍속이 행해졌다. 고려 속요(俗謠), 「 동동(動動)」을 비롯하여 개인 문집에도 세시명절과 풍속에 대한 다양한 기록들이 있다.

조선시대는 한식이 설날 · 단오 · 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였으며 동지를 더하여 5대 명절로 여기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다른 명절이 약화된 것은 아니다. 민간에서는 오히려 전 시대보다 세시풍속이 다양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통해서 그 다양함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여기 수록된 세시풍속이 모두 당시에 전승된 것은 아니지만 단절된 것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무척 다양한 세시풍속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것은 물론 각 지역에서 행해진 세시풍속도 소개되었으며 때로는 저자가 현지에서 직접 보고 조사한 것들도 눈에 띤다.

봄의 세시풍속

우리의 사계절은 음력을 기준으로 정월부터 3개월 단위로 나눈다. 따라서 봄은 음력 정월부터 3월까지이다. 봄철의 세시풍속은 정월의 설날부터 대보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정월은 농한기여서 농사를 예축하는 세시풍속이 다양하게 행해진다.

의례: 봄철의 대표적인 의례는 설날의 차례와 성묘, 정초의 안택고사주6, 대보름의 액막이를 위한 고사 또는 용궁맞이주7를 들 수 있다. 성묘는 설날을 전후하여 하는데 근래에는 미리 하는 경우가 많다. 차례가 돌아가신 조상에게 새해 인사를 올리는 의례인 반면 세배는 생존해 계신 어른에게 드리는 새해 인사이다. 그런데 세배는 어른들 뿐 아니라 형제지간에도 나누며 예를 갖춘다. 세배 때 덕담을 하는데 원래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올해는 과거에 급제한다지”와 같이 선언적으로 하면 그에 적절한 덕담을 올리는 것이다. 해안지역에서는 정초에 해상안전과 풍어를 위해 동제로 풍어굿을 한다. 대보름을 전후하여 영남과 호남에서는 동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가정에서 대보름에도 차례를 지냈지만 단절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설날 차례만이 전승되고 있다.

액막이 의례 중 특히 삼재(三災)가 든 사람은 홍수매기와 같은 액풀이 의례로 예방한다. 이때는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 삼재는 나이에 따라 들어오게 되는데 9년마다 들며 3년간 머문다. 삼재법은 출생년의 띠와 관련시켜 뱀 · 닭 · 소해에 출생한 사람은 돼지 · 쥐 · 소해에 삼재가 들고 잔나비[원숭이] · 쥐 · 용해에 출생한 사람은 호랑이 · 토끼 · 용해에 삼재가 든다. 그리고 돼지 · 토끼 · 양해에 태어난 사람은 뱀 · 말 · 양해에 삼재가 들며, 범 · 말 · 개해에 태어난 사람은 잔나비 · 닭 · 개해에 삼재가 든다.

정월 대보름에 풍농을 위한 가농작의례로 볏가리주8를 세웠다가 2월 초하루에 거둔다. 2월 초하루를 머슴날 또는 영등날주9이라 한다. 농사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하므로 중요한 일꾼인 머슴을 위한 날이면서 바람신인 영등할머니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영등할머니는 2월 초하루에 지상에 내려왔다가 20일 무렵에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이 기간에는 각별히 조심하여 영등신주10을 모셔야 한다.

영등은 바람신이어서 비와 직접 관련되고 농사와 어업을 관장한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영등신이 지상에 머물러 있는 동안 우순풍조(雨順豊調)가 이루어지도록 초하룻날 고사를 지내고 매일 아침 정화수를 소반에 받쳐 장독대에 올려놓고 빈다. 영등신이 바람신으로 농경과도 관련되어 농경신, 곡신(穀神)으로 보기도 한다. 어촌에서는 바다 채취물을 비롯한 어업의 풍요를 위해 바람이 잔잔하기를 빈다. 제주도에서는 영등신을 맞아 마을의 공동적인 당굿을 크게 벌인다.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에는 무덤에 떼를 입히고 성묘를 한다. 공자(孔子)에게 제사를 지내는 석전(釋奠)은 석전제 · 석채(釋菜) · 상정(上丁) · 정제(丁祭)라고도 한다. 해마다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주11에 봄과 가을 2회로 문묘(文廟)에서 공자에게 제사를 지낸다. 석전의식과 문묘제례악을 보존하기 위하여 1986년 11월 1일에 성균관의 석전대제(釋奠大祭)가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현, 국가무형유산)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속신: 설은 섣달 그믐부터 시작된다고 할 만큼 그믐날 밤과 초하루는 직결되어 있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는 속신이 있다. 액막이는 의례로 행하는 것이지만 그 방법에 따라서는 속신의 범주로 볼 수 있는 것도 많다.

정초에는 제액(除厄)을 위한 여러 가지 세시풍속이 있다. 제액에는, 예방을 위한 방액(防厄), 태우는 소액(燒厄), 멀리 보내는 송액(送厄) 등이 있는데 정월의 세시는 대체로 이들이 중복된다. 부적의 의미를 지니기도 하는 세화(歲畵)가 방액이라면 설날 머리카락 태우기는 소액, 정월 대보름날 이제까지 띄웠던 연을 널리 날려 보내는 것은 송액이라 할 수 있다. 민가에서는 호랑이를 뜻하는 호(虎)자와 용을 뜻하는 용(龍)자를 써서 대문 앞에 붙여 액을 막기도 한다.

설날 아침에는 세찬인 떡국을 먹어야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한다. 또한 설날이나 상묘일(上卯日, 첫 토끼날)에는 여자들이 아침 일찍 남의 집에 출입하면 그 집에 재수가 없다는 속신이 있다. 복조리는 복을 끌어 들인다고 한다. 설날 새벽에 밖에 나가 까치 소리를 들으면 길조이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하다고 한다. 이 날 밤에 야광귀(夜光鬼)주12라는 귀신이 와서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가는데 신발을 잃은 사람은 그 해에 재수가 없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정월 열엿새 귀신날 신발을 엎어놓으며 방액한다. 정초에 토정비결을 보아 운수를 점치기도 한다.

입춘날에는 보리뿌리를 캐보아 보리농사의 풍흉을 알아보는 농점(農占)을 친다. 정초 십이지일을 유모일(有毛日)과 무모일(無毛日)로 나눈다. 정월 초하루가 유모일, 곧 털 있는 12지 동물의 날이면 그 해에는 풍년이 들고 무모일이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이는 주술적인 사고에 따른 것으로 여기 털을 곡식의 성장에 비유했다. 그밖에도 정초 십이지일 동안에는 각종 금기가 따르는데 이는 모두 속신과 관련된다.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잘 사는 집의 부엌의 흙을 훔쳐다가 자기 집 부뚜막에 바르면 부자가 된다고 한다. 대보름날 아침에 부럼을 깨면 부스럼이 나지 않고 귀밝이술을 마시면 일년 내 좋은 소식을 들으며 더위를 팔면 그 해 여름에 더위를 피할 수 있다는 속신도 있다. 대보름에 묵은나물을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한다. 오곡밥과 묵은나물은 세 집 이상의 타성(他姓)바지 집의 밥을 먹어야 좋다고 한다. 그래서 백가반(百家飯)이라는 말도 있다. 대보름 전후의 달불이와 닭울음점, 소밥주기주13 등은 모두 그해 풍농을 이룰 것인가를 점치는 농점이다.

대보름 무렵에 하는 동제를 전후해서 각종 금기가 따르는데 이를 어기면 부정을 탄다. 제의가 끝난 후 제물 진설을 위해 깔았던 백지를 가지고 가서 사용하면 공부를 잘한다고 하고 아들이 없는 가정에서 불종지를 가지고 가면 아들을 본다는 믿음이 있다. 줄다리기를 위한 줄을 꼬을 때 여성들이 줄을 건너가면 그 쪽 편 줄이 시합 중 끊어진다는 속신이 있고 상대방 줄을 넘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한다. 또 이긴 편 줄의 짚을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관운이 트고 일이 잘 된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새벽에 샘에서 푼 물을 용알이라고 하는데 이 물로 밥을 지으면 집안에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또 이 날 아침에 과일나무 시집보내기라 하여 열매가 많이 열리는 과일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놓고 그 해 열매의 풍년을 빈다. 이는 모의 성행위로서 다산을 위한 것이다. 대보름날 개에게 밥을 먹이면 여름에 모기가 많이 꾀고 마르기 때문에 밥을 먹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못 먹고 굶는 것을 “개 보름 쇠듯한다”는 속담이 있다.

제주도의 영등신은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2월 초하루에 제주도를 찾아와서 농업과 어업에 풍요를 주고 2월 15일에 돌아간다고 한다. 이 기간에는 배타는 것을 금하고 빨래를 삼가며 잠녀(潛女)주14의 잠수 작업은 물론 농사일도 삼간다. 2월 초하룻날 온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종이에 ‘향랑각시 속거천리(香嫏閣氏束去千里)주15'라는 글씨를 써서 서까래에 붙인다. 향랑각씨는 노래기를 미화(美化)하여 일컫는 것으로 이는 노래기를 쫓기 위한 부적이다. 예전에는 우리네 가옥이 목조건물이 주를 이루어서 노래기의 피해가 많았기 때문에 예방하는 것이다.

2월 초엿샛날 저녁에는 좀생이를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좀생이란 28성수(星宿) 중 묘성(昴星)의 속명으로 작고 오밀조밀한 많은 별무리의 이름이다. 좀생이와 달의 거리를 보고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데, 『동국세시기』에는 좀생이가 달 앞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풍년이 들 징조라고 기록되어 있다. 삼짇날 무렵 처음으로 본 나비의 색깔을 보고 점을 친다. 노랑나비나 호랑나비와 같이 색깔이 있는 나비를 먼저 보면 길조이고 흰나비를 먼저 보면 부모 상(喪)을 당한다 하여 꺼린다.

24절후의 하나인 곡우 무렵이 되면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마련하여 실질적으로 농사를 시작하게 된다. 농가에서는 못자리를 하기 위하여 볍씨를 담가두었던 가마니를 솔가지로 덮어준다. 밖에 나가서 혹 상가(喪家)에 들렀거나 부정(不淨)한 일을 본 사람은 집 앞에 와서 불을 놓아 악귀를 몰아낸 다음 집안에 들어온다. 또 당장 볍씨를 보게 되면 싹이 트지 않아 벼농사를 망치게 된다고 한다.

놀이: 정초에 즐기는 세시놀이로는 윷놀이 · 널뛰기 · 연날리기 · 승경도(陞卿圖)주16 · 돈치기, 그리고 마을 공동으로 하는 지신밟기를 들 수 있다. 특히 지신밟기는 1년간의 제액초복(除厄招福)을 위해 대지(垈地)의 지신에게 올리는 의례였지만 점차 놀이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대보름에는 더욱 많은 놀이들이 행해진다. 농경국가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므로 이 무렵에 하는 놀이는 대체로 풍농을 예축하고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대보름 놀이로는 지신밟기를 비롯하여 줄다리기 · 다리밟기 · 고싸움주17 · 나무쇠싸움주18 · 동채싸움주19 · 석전 · 망우리[망월=望月]돌리기 · 횃불싸움 · 놋다리밟기주20 · 기와밟기 · 탈놀이 · 석전(石戰, 돌팔매사움) · 기세배 등 다양한 놀이들이 있다.

특히 대보름에는 불과 관련된 쥐불놀이와 횃불싸움이 절정을 이룬다. 보름달 아래에서 즐기는 불놀이는 보름달과 불을 관련시키고 이를 성장, 풍요와도 관련시킨다. 가농작 행사인 볏가릿대 세우기는 애초 의례였으나 오늘날에는 놀이화되었다. 역시 대보름의 가농작 행사인 보리타작주21도 근래까지 농촌 어린이들이 즐겼다.

세시놀이가 정월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2월부터는 농사에 전념해야 하므로 놀이가 그다지 성하지는 않다. 하지만 세시풍속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조절하듯이 바쁜 철이라도 계절에는 민감하다. 봄꽃이 피기 시작하면 놀이가 시작되니 대표적인 것이 화전놀이이다.

춘삼월 호시절(春三月 好時節)이라는 말이 있듯이, 3월 중 좋은 날을 잡아서 농부는 농부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유생은 유생끼리 산과 들로 꽃놀이를 간다. 이를 화류놀이라고도 하고 꽃달임이라고도 한다. 영남지역의 부녀자들은 내방가사주22를 지어 읊으며 즐긴다. 진달래꽃이 한창이어서 꽃을 꺾어 머리에 꽂아 멋을 부리고 여러 개 묶어 꽃방망이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물이 잘 오른 버드나무 가지로 호드기(유적=柳笛)를 만드니 이것이 버들피리이다. 소녀들은 각시풀이나 무릇, 또는 진풀을 가지고 풀각시를 만들며 논다.

복식과 절식: 설날에 입는 옷을 설빔이라 한다. 『경도잡지』에는 남녀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장(歲粧), 『열양세시기』에는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廕)이라 기록되어 있다. 우리에게 명절빔주23은 설날의 설빔, 단오의 단오빔, 추석의 추석빔이 있다. 설빔이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복식이라면 단오빔은 여름옷을 입는 분기점, 추석빔은 가을옷, 나아가서는 겨울옷을 장만하는 분기점이 된다.

설의 대표적인 설음식은 설날의 떡국이다. 북부지역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는다. 떡국은 으레 차례상에 오르고 새해 들어 나이를 먹게 되는 척도가 되어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은 것으로 여긴다. 차례상에 놓이는 세주(歲酒)는 찬술로서, 새로운 봄을 맞는다는 뜻이 있다. 세찬은 보통 일상적으로 먹는 일상식과 특별식으로 이루어진다. 설날을 기억하게 하는 떡류와 한과 · 식혜 · 주류 등은 특별식에 해당된다. 세찬은 차례에 올리는 음식이기 때문에 의례음식이라는 특별식이다.

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묵은나물이 대표적인 명절식이다. 오곡밥의 원래 이름은 찰밥인데 대체로 정월 열 나흗날 저녁에 지어 보름날, 또는 그 이후까지 먹는다. 보름날 아침에는 부럼을 깬다. 또 복쌈이라 하여 오곡밥을 참취나물 · 배춧잎 · 김으로 밥을 싸서 먹는다. 설날에 세주를 마시는 것처럼 대보름 아침에는 귀밝이술로 청주 한잔을 마신다. 약밥도 대보름의 명절식으로 즐긴다.

2월 초하루를 머슴의 날이라 하여 머슴들을 위해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마을 잔치를 벌인다. 2월이 되면 이제 농사일을 해야 하므로 주인집에서는 머슴을 위로하는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는 2월 초하루가 노비일(奴婢日)로서 노비들에게 떡을 나이 수대로 준다고 했다. 이 날의 떡은 송편이다.

3월 초사흘, 삼짇날 진달래꽃을 따다가 찹쌀가루에 반죽을 하여 둥글게 빚어 기름에 지짐질하여 꽃전을 부쳐 먹는다. 진달래 화전은 봄놀이 때 음식으로 장만했기 때문에 ‘화전놀이’라는 여자들의 놀이가 있고 ‘ 화전가(花煎歌)’라는 내방가사(內房歌辭)가 전해오고 있다. 여자들은 산과 들에서 직접 진달래 화전을 해먹으며 내방가사를 지어 노래하는 등 그야말로 ‘화전놀이’를 했다.

구비전승: 영등할머니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2월 초하룻날 영등할머니가 지상에 내려올 때 딸을 동행하면 바람이 잔잔하지만 며느리와 동행하면 비바람이 친다고 한다. 딸을 데려올 때는 곱게 차려입은 딸의 다홍치마가 나부껴서 예쁘게 보이도록 바람이 잔잔하게 부는 것이며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에는 옷이 비에 젖어 밉게 보이도록 비바람이 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며느리와 동행해야 풍년이 든다고 여긴다. 이를 고부간의 갈등과 관련시키기도 하지만 며느리와 동행해야 풍년이 든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통적인 가족관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딸은 ‘출가 외인’, 며느리는 비록 남의 집에서 왔지만 ‘우리 가족’이라는 의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영등할머니의 영험력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영등할머니가 지상에 내려와 있는 기간에 참새가 마당에 있는 곡식을 쪼아 먹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한식날에는 더운밥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는다고 하는데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된 ‘개자추(介子推) 설화’가 있다.

“옛날 중국의 춘추시대에 진(晉)나라의 조정에 가정풍파가 있어 임금의 아들이 망명할 때 개자추라는 충신이 뒤를 따라서 19년 동안 각 나라로 돌아다녔다. 그 후 난이 평정되어 임금의 아들 문공(文公)이 임금이 되었으나 개자추의 공을 잊어버리고 은공을 갚지 않았다. 개자추는 원망하는 일이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산으로 들어가서 숨고 말았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임금이 개자추를 찾았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산에 불을 지르면 그가 나오리라 생각하고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그만 불에 타서 숨졌다. 그 날이 한식이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 불에 타 숨진 개자추를 위로하여 이 날 화기(火氣)를 멀리하고 찬밥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

‘개자추 설화’는 한식(寒食), 곧 ‘차게 먹는 음식’이라는 명칭에 따라 부연된 설화로 보인다. 육당 최남선은 『조선상식』 '한식'조에서 한식의 풍속을 종교적 의미로, 매년 봄에 새로운 불을 만들어 전에 쓰던 불을 금지하던 예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름의 세시풍속

여름은 음력 4월부터 6월에 해당된다.

의례: 4월 초파일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신일로 불가의 명절이었으나 불교가 정착되면서 민간의 명절로 자리를 잡았다. 절에서 재를 올리고 등불을 밝혀 부처님 오신 것을 기념하고 탑돌이를 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연등과 관등은 이 날을 대표하는 세시풍속이다. 『불설시등공덕경(佛說施燈功德經)』에 따르면, “등을 바치는 것은 연등이라 하고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관등이라 한다”고 했다.

원래 연등은 기농행사(祈農行事)로서 고조선에 이어 신라시대에도 동짓날이나 대보름에 행해져왔다. 그러나 불교국인 고려시대에 와서 2월 보름 연등을 하다가 후에 4월 초파일 행사로 굳어졌다. 특히 고려시대 연등회는 팔관회와 더불어 거국적인 세시풍속이었다. 이들 행사는 외적으로 불교법회였지만 그 내용은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축제적인 행사를 담고 있다. 민속신앙과 불교가 융합(syncretism)된 모습의 전형이 연등회와 팔관회였다.

부처님 오신 날과 팔월 한가윗날에는 곳곳에서 탑돌이가 성했다. 절에서는 재를 올린 뒤 승려와 신도가 함께 불탑을 돌면서 부처님의 공덕을 빌고 저마다의 소원을 기원한다. 『삼국유사』권5, 감통편, 김현감호(金現感虎) 조에 신라의 탑돌이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해마다 2월이 되면 8일부터 15일까지 서울의 남녀가 다투어 흥륜사(興輪寺)에서 전탑을 도는 복회(福會)주24를 행하였다고 한다. 연등행사는 정월 대보름, 2월 보름, 그리고 4월 초파일 등으로 날짜의 변화가 있었는데 탑돌이는 그러한 변화에 따라 그 시기에 행해졌다. 김현감호는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 785∼798) 때의 이야기로 당시는 탑돌이가 2월의 세시풍속으로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불자들은 불공을 드리지만 마을에서도 공동 제의를 지낸다. 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는 남부지역의 경우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지내고 중부지역에서는 주로 10월에, 서해안지역에서는 정초에 지낸다. 그러나 이는 보편적인 현상이고 지역에 따라서는 삼짇날이나 단오, 또는 중구에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부처님 오신 날을 전후하여 동제를 지내거나 가정에서 가신제(家神祭)주25를 지내기도 한다.

단오(端午)에는 농작물이 한창 성장할 때여서 이 날 쑥떡 · 밀전병과 같은 명절식을 마련하여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삼국시대에는 단오날에 시조신(始祖神)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가락국기(駕洛國記)』의 기록에 따르면, 가야(伽倻)에서는 시조 수로(首露)를 위하여 그 자손이 해마다 다섯 번씩 큰 제사를 지냈는데 그 가운데 단오날이 들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는 한 해에 여섯 번씩 다섯묘에 제사를 지냈는데 그 가운데 한번은 단오날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단오날의 제사는 삼국시대에 이미 국가차원의 시조신 제사가 있었거니와 후대에 이르러서도 지역 공동체 단위의 단오제가 베풀어졌다. 국가무형유산 제13호이며 2005년 유네스코의 인류구전 및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강릉단오제는 그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다. 중요무형유산 제44호로 지정된 경북 자인(慈仁) 단오제 역시 전승력을 발휘하고 있다.

6월 15일 유두(流頭)는 보름명절로도 의미가 있다. 유두는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의 약자로,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목욕하면 부정을 가신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동류수(東流水)에 머리를 감는 까닭은 동방(東方)이 청(靑)으로 양기(陽氣)가 왕성한 방향이기 때문이다. 물로 몸과 마음을 통해 액을 막고 정화하는 날이 유두이다. 또한 밭작물을 거두어 집안에서 고사를 지내 잡곡 천신(薦新)을 하거나, 밭에서 용제(龍祭) 또는 밭제를 지낸다. 천신이란 계절에 따라 새로 나는 각종 음식물을 먼저 신위(神位)주26에게 올리는 제사를 말한다. 복날에도 고사를 지내는데 이를 복제사(伏祭祀)라 일컫는다. 유두고사와 마찬가지로 떡을 해서 논이나 밭에서 고사를 지낸다.

속신: 단오날 창포 삶은 물에 머리를 감으면 윤기가 나고 머리가 빠지지 않는다고 한다. 또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를 만들어 가운데에 수(壽)자나 복(福)자를 새기고 끝에 붉게 연지를 칠해 머리에 꽂는다. 그러면 악귀를 쫓을 수 있다고 믿는다. 붉은 색의 주술성 때문이다. 단오날 정오에는 쑥과 익모초를 뜯어다 말린다. 연중 양(陽)이 가장 센날 양이 가장 센 시간에 뜯은 쑥과 익모초는 약초가 될 뿐 아니라 벽사의 기능이 있다고 믿는다. 이날 여자들은 궁궁이풀을 머리에 꽂는데 이 역시 벽사의 의미가 있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하여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는데 이렇게 하면 대추풍년을 이룬다고 믿는다. 유두날과 복날에는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놀이: 부처님 오신 날에는 탑돌이를 한다. 원래 탑돌이는 초파일이나 큰 재가 있을 때 사찰에서 승려가 염주를 들고 탑을 돌면서 부처의 큰 뜻과 공덕을 노래하면, 신도들이 그 뒤를 따라 등을 밝혀 들고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의식이었다. 그러나 불교가 대중화하면서 민속놀이화 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불교음악으로 법악기인 범종 · 운판 · 목어 · 법고를 치면서 범패와 염불만 하였으나 뒤에 와서 삼현육각이 연주되고 ‘포념(布念)’ · ‘백팔정진가(百八精進歌)’ 등 민요풍의 노래도 부르게 되었다. 이밖에도 초파일에는 그림자놀이, 만석중놀이, 그리고 물장구놀이인 수부희(水缶戱)주27라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연등이 장관을 이루는 부처님 오신 날에 줄불놀이주28로 밤을 한층 밝게 하기도 했다.

여름 놀이로 널리 알려진 것은 단오 무렵의 그네뛰기와 씨름이다. 씨름은 7월 백중 무렵에도 한다. 유두는 신라 때부터의 명절이었지만 후대에 와서는 복날의 복놀이가 더 성했다. 조선조 헌종 때의 학자 정학유(丁學游)가 지은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에도 삼복은 속절(俗節: 명절)이요 유두는 가일(佳日: 좋은 날)이라고 한 것을 보면 이미 예전부터 복날은 명절이었던 것 같다.

유두와 복날에는 약수터를 찾거나 폭포 아래에 가서 물맞이를 한다. 특히 복더위를 이기기 위해 곳곳에서 음식을 차려놓고 복놀이를 즐긴다. 이를 복대림, 또는 복다림이라고 한다. 시원한 물가나 산에 가서 냇물에 발을 담그며 몸을 식히는 것을 ‘탁족(濯足)놀이’라고 한다. 탁족은 ‘발을 씻는다’는 뜻이지만 세속을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탁족회(濯足會)라 하여 여름철에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발을 씻고 놀던 모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냥 노는 것이 아니라 시를 지어 낭송하는 등 운치 있는 선비들의 모임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와서는 물놀이로의 성격이 강해졌다.

복식과 절식: 부처님 오신 날 화려한 연등과는 대조될 만큼 이 날의 음식은 간소하다. 그래서 이 음식을 ‘부처 생신날 소밥(소반: 蔬飯)’이라고 말한다. 이 날 아이들은 등대 밑에 석남(石楠: 활엽수의 일종)의 잎을 붙인 증편과 검정 콩 볶은 것, 미나리 나물 등을 차려 놓는다. 이것은 석가 탄신일에 간소한 음식으로 손님을 모셔다가 즐긴다는 뜻이라고 한다. 초파일 무렵이면 민가에서도 쑥버무리를 해서 이웃과 나누어 먹는다.

단오날은 큰 명절이어서 설날과 마찬가지로 단오빔으로 단장한다. 단오빔은 계절에 적절하게 갑사(甲紗)와 같은 얇은 비단옷감을 쓰는데 이는 명절 옷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때를 기점으로 봄옷에서 여름옷으로 갈아입는다는 계절의 분기점을 나타내는 의미도 있다. 여자 아이들은 홍색과 녹색의 새 옷을 입고 창포뿌리로 만든 장신구로 치장했는데 이를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였다.

명절이면 으레 그 계절에 적절한 명절음식을 마련한다. 그래서 우리의 명절식은 곧 시절식(時節食)이며 건강식이었다. 단오의 명절식으로 쑥떡과 수리취떡, 그리고 앵두화채를 들 수 있다. 쑥떡은 쑥을 짓찧어서 떡반죽에 넣고 푸른 물이 들게 익힌 것이다. 수리취떡은 색깔이나 모양이 쑥떡과 같은 것인데 쑥 대신 수리취를 넣어 만든 것이 다를 따름이다. 앵두화채는 앵두를 꿀물에 넣어 만든 청량음료이다.

유두날에는 수단과 건단 · 연병 · 상화떡 등의 음식을 시식한다. 이들 음식은 제사에도 쓰이고 액막이용이 되기도 했다. 복날에는 물가를 찾아 천렵을 하고, 잡은 물고기로 국을 끓여 먹으며 더위를 식힌다. 민어탕과 육개장은 복날의 음식이며 보신탕으로 일컬어지는 개장국은 복날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이 밖에도 보양식으로 삼계탕을 먹고 참외 · 수박을 깊은 우물에 넣어 차갑게 한 후 먹기도 하였다.

구비전승: 5월 10일은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이 돌아가신 날이다. 이 날 비가 내리면 풍년이 들 징조로 여긴다. 이 비는 예사 비가 아닌 바로 태종우(太宗雨)이기 때문이다. 태종우에 얽힌 설화가 있다.

“조선조 제3대 국왕 태종은 신(神)을 공경하고 백성을 지극히 염려하는 성왕이었다. 그런데 재위 22년 태종은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다. 그러자 조선에 때 아닌 한발이 밀어 닥쳐 백성의 시름은 늘어만 갔다. 태종이 세상을 떠날 때 세종에게 ‘내 상제(上帝)에게 청하여 비를 오게 하여 백성을 구제하리라’ 하였다.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소나기가 쏟아져 그 해에 대 풍년이 들었다. 백성들은 바로 태종의 은혜라고 입을 모았고 이후 5월 10일에 오는 비를 태종우라 했다.”

실제로 이 무렵이면 모내기 철로 이 때 비가 내리지 않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일쑤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우제에 관련된 기록은 대부분 4월부터 7월까지 집중되어 있다.

가을의 세시풍속

가을은 음력 7월부터 9월까지이다.

의례: 7월 초이레 칠석은 양수인 홀수 7이 겹치는 날로 길일에 해당된다. 칠석날에는 칠석차례라 하여 햇벼가 익으면 사당에 천신(薦新)하고 마을에서는 우물을 깨끗이 청소하고 우물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별자리를 각별히 생각하는 날이어서 수명신(壽命神)으로 알려진 북두칠성에게 수명장수를 기원한다. 이 날 각 가정에서는 고사를 지내거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놓고 가족의 무병장수와 가내의 평안을 빈다. 가정에 따라서는 무당을 찾아가 칠성맞이 굿을 한다.

칠석날 처녀들은 별을 보며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기를 빌고 서당의 학동들은 별을 보며 시를 짓거나 글공부를 잘할 것을 빌었다. 바느질 잘 할 것을 비는 것을 걸교(乞巧)라고 한다. 칠석날 밤이면 궁중이나 민가에서 부인들이 바느질감과 과일을 마당에 차려놓고 바느질 솜씨가 있게 해달라는 이른바 걸교제(乞巧祭)를 지내는 것은 중국 한(漢)대에 이미 행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공민왕(恭愍王)이 이날 왕후와 더불어 궁중에서 견우와 직녀성에게 제사를 지냈고 백관들에게 녹(祿)을 주었다고 한다.

7월 15일 백중은 보름 명절로서 백종(百種) · 백중(百衆) · 중원(中元) · 망혼일(亡魂日)이라고도 한다. 백중은 불가(佛家)의 명절이면서 농촌의 큰 명절이었다. 우란분회(盂蘭盆會)라 하여 고혼을 위로하는 재를 올리고 민가에서도 망혼일로서 조상차례를 지냈다. 7월 중순 무렵이면 세벌 논매기가 끝나서 농사일도 한층 여유가 생겨 마을 잔치를 벌인다. 이를 지역에 따라서는 호미씻이 · 풋구 · 길꼬냉이 등으로 부른다. 이때에는 마을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고 한바탕 논다.

한가위 · 가위 · 가윗날 · 가배일(嘉俳日) · 중추절 등으로도 불리는 8월 보름 추석은 연중 최대의 명절이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차려놓고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추석 전에 산소를 찾아 미리 벌초를 해 두기도 하고 요즘에는 성묘도 미리하고 추석 당일에는 집에서 차례만 지내는 가정도 많다. 8월 첫 정일(丁日)에 추계 석전을 지낸다. 석전이란 문묘(文廟) 제향(祭享)을 말하며 문묘는 곧 공자의 사당이다. 매년 2월 성균관과 지방 향교의 문묘에서 공자를 제사지낸다. 호남지역에서는 올베심리라 하여 일찍 수확한 올벼 천신을 한다. 올벼로 밥을 지어 조상신에게 올린다. 경상북도에는 이와 비슷한 것으로 풋바심이 있다.

9월 초아흐레 중구를 중양절이라고도 한다. 숫자에서 홀수를 양수(陽數), 짝수를 음수(陰數)로 치는데 중양(重陽)이란 홀수인 양이 겹쳤다는 뜻이다. 3월 3일, 5월 5일, 7월 7일이 모두 중일명절(重日名節)로 길일이다. 고려시대에는 중구가 9대 속절이었으나 점차 명절로서의 성격이 희박해졌는데 그래도 지역에 따라서는 이 날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영남 북부의 경우 추석에 햅쌀이 나지 않으므로 중구 무렵에 햅쌀을 거두어 차례를 지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상북도 하회마을(중요민속자료 제122호)의 경우 아직도 중구 차례를 중시한다.

중구일에 여단제(厲壇祭)를 지냈다. 여제라고도 하며 그 제사 지내는 곳을 여제단이라고도 한다. 여제란 무주고혼(無主孤魂)을 위령하는 제사다.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군현(郡縣)에는 일묘삼단(一廟三壇)을 두고 무주고혼주29을 위해 여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일묘삼단은 문묘(文廟) · 사직단(社稷壇) · 성황단(城隍壇) · 여단을 일컫는다. 오늘날 이들 가운데 문묘만이 그대로 남아 춘추로 석전제(釋奠祭)를 지내고 있을 정도다. 속설에는 여단에 있는 무주고혼들은 칠월 보름 백중에 나와서 얻어먹다가 구월 중구에 다시 들어가게 되어 이 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동해안 마을에서는 중구에 풍어제를 지내기도 한다. 풍어제는 3년 · 5년 · 10년마다 한 번씩 지내는데 그 날짜는 마을마다 다르다. 보통 9월 중구 무렵이나 10월에 무당에게 적당한 날을 받아 굿을 한다. 해마다 하는 동제는 유교식으로 간략하게 하는 반면 몇 년마다 한 번씩 지내는 풍어제는 무당을 불러 크게 굿을 한다. 그래서 특별히 올리는 굿이라 하여 별신굿이라 일컫기도 한다. 3박 4일을 밤낮으로 굿을 하는데, 마을의 축제일 뿐 아니라 인근 마을에서도 굿을 보기 위해 몰려들어 면 단위의 축제가 되기도 한다.

속신: 근래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칠석날 바느질 솜씨를 점치는 풍속이 행해졌다. 장독대 위에다 정화수(井華水)를 떠 놓고, 그 위에 고운 재를 평평하게 담은 쟁반을 올려놓고 처녀들이 바느질 솜씨를 좋게 해 달라고 축원한다. 그 이튿날 나가봐서 재 위에 무엇이 지나간 흔적이 있으면 영험이 나타났다고 한다.

정월 대보름의 농사점과 마찬가지로 추석 때에도 그 날의 날씨와 사정을 보아 점을 친다. 추석에 비가 내리면 이듬해 흉년이 든다고 한다. 특히 다음 해 보리농사가 흉작이 된다. 또 구름이 너무 많거나 없어도 보리농사가 흉년이다. 구름이 적당히 떠서 벌어져 있어야 풍년이라고 한다. 추석 무렵 경상북도 의성에서 서당 학동들이 즐기던 가마싸움에서는 이긴 편의 서당에서 과거급제를 한다는 말이 있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가을에 별신굿을 행하기도 하는데 “살아서 별신굿을 세 번 이상 보면 극락간다”는 말이 전해온다.

놀이: 백중명절에는 백중장이 서고 크게 씨름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머슴이 있는 집에서는 이 날 하루를 쉬게 해주었으며, 농사를 잘 지은 집의 머슴은 소에 태우거나 가마에 태운 후 하루를 흥겹게 보낸다. 풋구와 호미씻이는 의례로서의 성격과 놀이의 성격을 지닌다.

가을철 놀이는 추석에 크게 벌어진다. 추석은 정월 대보름, 6월 보름 유두, 7월 보름 백중과 함께 보름명절이다.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 대보름과 추석은 그 중 큰 명절이다. 대보름은 신년에 처음 맞는 명절이어서 중시되는 반면 추석은 수확기의 보름명절이어서 의미가 깊다. 추석에는 강강술래 · 줄다리기 · 지신밟기 · 가마싸움 · 동채싸움 · 탈놀이 등을 한다.

특히 추석과 같은 보름명절에는 강강술래와 같이 원무(圓舞)가 중심을 이루는 놀이가 행해지는데, 이들 추석놀이는 특히 풍요를 예축하고 기원하는 신앙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강강술래와 같이 원무가 중심을 이루는 놀이는 보름달의 형상을 상징한다. 물론 강강술래에는 원무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놀이방식이 있다. 이것을 다 하는 것은 아니고 몇 개씩 어울려서 한 놀이를 이룬다. 하지만 놀이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은 역시 원무다.

강강술래가 전라도에서 즐기는 놀이인 반면, 경상도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의 놀이로 월월이청청, 놋다리밟기가 있다. 강강술래는 간혹 남자들도 하지만, 남자들이 원무를 중심으로 노는 놀이로 쾌지나칭칭이 있다. 가마싸움과 동채싸움은 유사한 놀이이다.

소놀이와 거북놀이는 중부지역에서 추석 때 즐기는 놀이이다. 소놀이는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아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거북놀이는 소 대신 거북으로 가장하여 노는 것이다. 소는 농경의 주체로서 생구(生口)라 할 정도로 가족의 일원이었으며 거북은 십장생에도 등장하는 영물로서 수신(水神), 나아가서는 농경신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들 놀이는 곧 풍년기원의 농경의례적 성격을 지닌다. 이밖에 소싸움과 닭싸움도 추석 무렵 한 판 즐기는 놀이이다.

중구 무렵 단풍놀이는 봄의 꽃놀이만큼 계절을 느끼게 한다. 이 맘 때면 산과 들에 소풍가기 좋은 때이니 우리 조상들은 수확준비로 바쁜 일손을 잠시 놓고 계절을 운치 있게 즐겼던 것이다.

복식과 절식: 『삼국사기』 신라 유리왕(儒理王)조에는 가배, 곧 추석 이야기가 있으며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길쌈을 하고 여기 승부를 가려 한턱을 내면서 흐드러지게 논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여기 길쌈 풍속은 추석이 옷을 갈아입는 분기점임을 시사한다. 즉 단오날이 여름옷으로 갈아입는 기준이었던 것이 훗날 단오빔으로 변했던 것처럼 추석은 겨울옷으로 갈아입던 기준이었으나 훗날 추석빔으로 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7세기에 나온 중국의 역사책 『수서』 동이전 신라전에는 팔월 보름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서』에도 이와 유사한 기록이 있다. 여기서도 옷과 관련된 ‘포목’에 대한 내용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추석이 겨울옷을 준비하는 분기점이 되었을 가능성은 짙다.

추석을 대표하는 명절식은 송편이다.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내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송편의 맛은 솔냄새로부터 시작된다. 그 모양은 반달에 가깝다. 중국에서는 중추월병(中秋月餠)이라 하여 달을 본뜬 음식을 만든다. 그 표면에 금두꺼비와 옥토끼 무늬를 넣는데 맛이 달고 기름지다. 월병은 보름달처럼 둥글지만 달의 이미지가 연상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송편이 달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

9월은 국추(菊秋)라 할 만큼 국화가 만발한 계절이다. 중구 무렵에는 국화전을 시절식으로 먹으며 국화주를 담그거나 그 전에 담근 국화주를 마신다. 또는 중구 당일에 국화꽃을 띄운 국화주를 마시기도 한다. 꿀물에 국화꽃을 띄운 국화화채도 가을을 느끼게 한다.

구비전승: 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까막까치들이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한 해에 한 번씩 만난다는 유래담이있는 날이다. 이는 중국 고대의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짜임새 있게 자세히 전하는 책은 『제해기(齊諧記)』이다. 이 책은 남북조시대 송나라(420∼479) 때 동양무의(東陽無疑)가 찬(撰)한 책으로, 기이한 이야기가 많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7월 초이레 칠석날은 하늘에 있는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번 만나는 날이다. 이들은 원래 부지런히 일하는 젊은이들이었으나 혼인 후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 옥황상제가 떼어놓고 1년에 한 번씩 칠석날에만 만나도록 하였다. 그러기에 이 날 내리는 비는 견우와 직녀가 만난 기쁨의 눈물이다. 칠석날에는 까마귀와 까치가 전혀 보이지 않는데 이는 견우와 직녀가 만날 수 있도록 이들이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이다.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다리이기에 오작교라고 한다. 칠석이 지난 뒤 까마귀와 까치를 보면 머리털이 모두 빠져 있다. 이것은 오작교를 만드느라 모두 벗겨졌기 때문이다.”

칠석설화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이본(異本)이 전해온다. 견우와 직녀 대신 칠석할아버지와 칠석할머니, 짚신할아버지와 짚신할머니 등 다른 이름이 나타나기도 한다.

칠월 보름에 불전(佛前)에 참배하고 재를 올리게 된 우란분회의 유래를 말해주는 이야기는 불경을 통해 전해온다. 우란분회는 불교의 울람반(Ullamban)의 역(譯)으로 7월 보름에 행하던 불사(佛事)인데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준다는 뜻이다. 이는 옛날 인도에서 목련존자(目蓮尊者)의 어머니가 죄를 짓고 아귀도에 떨어져 있을 때, 모든 중들을 달래어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게 하여 영혼을 위안해 준 일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이날 여러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조상의 영전에 바치어 아귀에게 시주하고, 조상의 명복을 빌며 그 고통을 구제하는 제사를 올린다.

겨울의 세시풍속

겨울은 음력 10월부터 12월에 해당된다.

의례: 시월은 상달[上月], 곧 으뜸의 달이다. 이 달에 특별한 명절은 없지만 시월 자체가 중요한 달로서 각종 제례가 집중되어 있다. 고대 제천의례(祭天儀禮)였던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이 모두 10월 제사였는데 그 전통이 이어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0월 3일은 단군이 우리나라를 건국한 날로 대종교(大倧敎)에서는 이 날에 대제(大祭)를 지낸다. 원래 개천절은 음력 10월 3일로서 일제 강점기에도 이 날을 꼭 기념하였으며, 특히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종교와 합동으로 국경일로서 경축행사를 하였다. 정부 수립 후에는 개국 기념일로서 개천절을 음력으로 해 오다가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 · 공포하여 양력 10월 3일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하였다.

상달에 각 가정에서는 길일(吉日)을 잡아 고사를 지낸다. 호남지방에서는 이를 도신(禱神)이라 한다. 집안고사는 으레 성주를 비롯한 가신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주고사라고도 한다. 집안에 따라서는 무당을 불러 재수굿, 또는 성주굿을 한다. 성주굿은 집안 굿이어서 이때에는 성주만 섬기는 것이 아니라 조왕주30 · 터주 · 삼신 · 우물신 · 대문신 등 모든 가신(家神)을 섬기지만 굳이 성주굿이라 하는 까닭은 성주신이 집안의 으뜸신이기 때문이다. 성주제는 주부에 의해 간단히 고사를 지내거나 무당이 크게 굿을 한다. 성주단지를 비롯한 가신단지의 쌀을 바꿔놓고 천신제를 지내기도 한다. 상달의 고사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닌 천신제(薦新祭)이기도 하다.

10월의 첫 오일(午日)을 말날이라 하여 팥시루떡을 쪄 외양간에 놓고 고사를 지내 말의 무병과 집안의 평안을 빈다. 그러나 병오일(丙午日)에는 지내지 않는다. 병(丙)자와 병(病)자가 발음이 같기 때문에 꺼리는 것이다. 말날 가운데서도 무오일(戊午日)을 으뜸의 말날로 여겼는데 이는 무(戊)자를 무성하다는 뜻의 무(茂)자와 같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주술적인 사고의 표출이다.

10월이면 각 문중에서 시제를 지낸다. 4대조까지는 집에서 차례와 기제사주31로 받들지만 5대조부터는 산소로 옮겨 1년에 한번 문중이 함께 모시는 것이 시제이다. 시제를 시향(時享), 또는 시사(時祀)라고도 하는데 조상숭배를 근간으로 하고 있으면서 아울러 한 해 농사의 풍작을 기리고 이듬해의 풍농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시제는 상달의 천신제의 성격을 함께 내포하고 있었다.

마을에서는 이 달에 동제를 지내기도 한다. 영남이나 호남에서는 동제를 주로 정월 대보름에 지내지만 경기도 이북에서는 10월에 동제를 지내는 경우가 흔하다. 요즘도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무당이 참여하여 도당굿이 행해지기도 한다. 제주도에서는 10월에 만곡대제(萬穀大祭)라 하여 추수 뒤에 햇곡으로 술과 떡을 장만하고 그밖에 고기 · 과일 등을 제물로 갖추어 본향당(本鄕堂)으로 가서 당신(堂神)에게 바치는 제사를 지낸다.

동지는 24절후의 하나로서 이미 고려시대에도 9대 속절의 하나로 각별한 날이었다. 중국의 주(周)나라와 진(秦)나라는 자월(子月)인 동짓달을 세수(歲首)로 삼았으니 동짓달이 한해의 시작인 정월이었던 것이다. 하(夏)시대에는 인월(寅月)을 세수(歲首)로 삼았다. 오늘날의 역법으로는 음력 정월로서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과 같으며 곧 설날이 들어있는 달이다. 동지를 아세(亞歲)라고도 한다. 이는 ‘작은 설’이란 뜻이며 설날에 비교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 같다. 설날에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처럼 동짓날 팥죽 한 그릇을 먹으면 나이 한 살 먹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동지를 설날로 여겼다는 흔적이 보인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안고사를 지낸다. 팥죽을 쑤면 집안의 주요 가신에게 올리고 액살이 출입한다는 대문에 팥죽을 뿌려 액을 막는다. 예전에는 동지 차례를 올렸으나 오늘날에는 사라졌으며 팥죽고사 역시 퇴색되었다. 동지팥죽은 반드시 붉은 팥을 넣어 쑨다. 붉은 색은 벽사(辟邪)의 기능을 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래서 동지팥죽은 나쁜 액을 물린다는 의미가 있다. 요즘은 절에서 팥죽을 쑤므로 불자들은 거기서 불공을 올리고 동지팥죽을 시식한다.

동지로부터 세 번째 미일(未日)을 납일(臘日)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는 이 날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다. 섣달 그믐날 저녁을 제석(除夕)이라 한다. 이 날 사당이 있는 집에서는 가묘(家廟)에 세말(歲末)을 고하는 사당제(祠堂祭)를 지내고 어른들에게 절을 올린다. 이를 구세배(舊歲拜), 또는 묵은 세배라 하는데, 한 해를 무사하게 보낸다는 의미로 송년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조선시대 섣달 그믐에 궁중에서는 나례(儺禮)라는 축귀의례를 행했다. 나례는 중국의 구나의(驅儺儀)가 전해온 것으로 고려시대에 전래되어 조선시대에 성행했다. 이는 섣달 그믐날 궁중에서 악귀역신을 구축(驅逐)하는 의례인데 점차 예능화 경향이 두드러졌다. 궁중의 나례는 국왕에 따라 달라지기 시작하여 조선후기에 와서는 섣달 제야의 축귀행사인 동시에 가무백희에 의한 제액초복의 전통적 민족제전으로 계승되었다.

조선시대 대궐 안에서는 연종포(年終砲)라 하여 제석 전날에 대포를 쏘았다. 화전(火箭)을 쏘고 징과 북을 올리는데 이는 대나(大儺: 나례)에서 역질 귀신을 쫓는 행사의 남은 제도다. 그런데 제석에 축귀하는 풍속은 민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었다. 민간에서는 섣달 그믐 저녁 때 집안의 검불주32을 모아 태운다. 또한 자정 무렵이면 마당에 불을 피운 뒤 청죽(靑竹)을 태운다. 이를 대불놓기라 하며 청죽마디가 탈 때마다 큰 소리를 내며 요란스럽게 타므로 폭죽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면 묵은 해에 집안에 있던 잡귀들이 놀라서 달아나고 신성한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역시 축귀의례로서 그 양상은 다르나 궁중의 축귀의례인 나례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섣달 그믐날 온 집안에 불을 밝히고 새해 맞을 준비를 한다. 이를 수세(守歲)라 하는데 이는 섣달 중의 경신일에는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도교에서 나온 경신수세(庚申守歲)의 유속(遺俗)이다. 어업을 하는 가정에서는 섣달 그믐날 저녁에 배에 제물을 가지고 가서 뱃고사를 지낸다.

속신: 10월 초하룻날 날씨를 보고 점친다. 이 날 추우면 겨울이 춥고 따뜻하면 겨울이 따뜻하다고 한다. 10월 20일에는 해마다 큰 바람이 불고 추운데 이 바람을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이때에는 출어를 삼간다. 동지팥죽을 한 그릇 먹으면 나이 한 살을 먹는다는 말이 있다.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라고 한다. 중동지와 노동지에는 팥죽을 쑤지만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는다.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에 내의원에서는 납일(臘日)에 각종 환약을 만들어 궁중에 올렸다. 이를 납약(臘藥)이라 한다. 그러면 임금은 그것을 근시(近侍) 지밀나인[至密內人] 등에게 나누어준다. 민간에서는 납일에 눈이 내리면 곱게 받아두었다가 녹은 뒤 약용으로 썼다. 이 물로 눈을 씻으면 안질을 막을 수 있다. 한약을 달일 때에도 쓴다. 또한 이 물을 김장독에 넣으면 맛이 변하지 않고 의류와 책에 바르면 좀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눈이 녹은 물에 물건을 적셔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납일에 참새를 잡아 어린이에게 먹이면 마마를 깨끗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주부들은 세찬과 설빔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때이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 하여 설을 지내기 위해 모인 온 가족과 친척이 윷놀이를 하며 밤을 샌다.

놀이: 섣달 그믐이면 온 가족과 친척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윷점을 치기도 한다. 연날리기는 섣달 그믐 무렵부터 시작하여 대보름까지 한다.

복식과 절식: 설빔은 섣달 그믐 무렵부터 장만한다. 예전에는 주부들이 직접 옷을 지었기 때문에 섣달부터 준비를 했다. 겨울을 위한 저장음식으로 대표적인 것이 김장이다. 김장은 입동(立冬: 양력 11월 7,8일)을 전후하여 담근다. 물론 날씨에 따라 김장철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무와 배추가 얼기 전에 김장을 끝내야 하므로 입동이 김장철로 제격이었다. 김장은 겨울철의 반양식(半糧食), 또는 반농사라고 할 만큼 중요한 것이다.

10월, 초겨울의 절식으로 신선로 · 만두 · 쑥국 · 쑥단자 · 밀단고 · 강정 등 열량이 높은 음식을 먹는다. 만두와 강정은 설음식이기도 하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쑤어 먹는다. 팥죽 속에는 찹쌀로 빚은 경단을 넣기도 하는데 이를 새알심, 또는 옹심이 · 수제비라고도 한다. 납일에 민간에서는 참새를 잡아먹었다. 이 무렵에는 참새고기가 맛이 올라 있어 “참새가 소 등에 올라가, 네 고기 열점과 내 고기 한 점을 바꾸지 않는다”고 한다는 말이 전해온다. 납일에 참새고기를 먹으면 무병하다는 말이 있다. 혹 참새를 먹지 못하면 털 있는 짐승이라도 먹는다.

구비전승: 10월 20일, 해마다 큰바람이 불고 추운데 이를 손돌바람이라고 한다. 김포에서 강화로 가는 바다에 물이 소용돌이 쳐서 뱃길로는 매우 위험한 곳이 있다. 손돌목에 얽힌 전설이 있다.

“고려시대 왕이 바닷길로 강화도에 갈 때 뱃사공 손돌[孫石]이 배를 저어 갔다. 가던 중 어떤 험한 구석으로 가자 왕이 그의 행위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며 몹시 노했다. 그래서 명령을 내려 그의 목을 베어 죽였는데, 잠시 후에 위험에서 벗어난 일이 있었다. 지금도 그곳을 손돌목[송석항: 孫石項]이라고 한다. 손돌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날이 바로 이 날이므로 그의 원한이 남아 강풍이 불고 추위를 준다.”

손돌전설은 『열양세시기』나 『동국세시기』에 간단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현지에서는 보다, 자세하고 다양하게 구전되고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고려시대라고 전하는데 현지에서는 그저 ‘옛적’으로 오래된 이야기임을 알린다. 사실 이 무렵이면 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다. 사람들은 별안간 추워지는 이 날을 손돌날이라 하면서 이 때를 기해 겨울옷을 준비하고 월동준비를 하였다. 손돌이 죽은 바다 길목은 지금도 손돌목으로 불리며, 이 날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은 손돌풍이라 부른다. 강화도 사람들은 손돌풍이 부는 날에는 배를 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강화도에 들어가는 이 물목에는 훌륭한 다리가 놓였고 이 바람이 뱃길에도 별로 의식되지 않는다. 전설로서 전승되고 있을 따름이다.

동짓날 팥죽을 쑤는 유래담도 있다.

“옛날 공공씨(중국 요순시대 형벌을 맡았던 관명에서 변한 성씨의 사람으로 신화적인 존재임)라는 사람이 재주 없는 아들을 하나 두었었는데 그 아들이 동짓날 숨져 역귀(疫鬼)가 되었다.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두려워했으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 물리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6세기경에 나온 중국의 세시기인 종름(宗懍)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기록된 것으로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서 인용됨으로써 우리에게도 설화로 전해지고 있다.

윤달의 세시풍속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력은 태양력(양력)이지만 세시명절의 기준이 되는 역(曆)은 조선시대에 썼던 음력이다. 양력을 사용하기 전, 우리나라에서는 음력(정확하게는 태음태양력: Lunisolar Calender)인 시헌력(時憲曆)을 써왔다. 이는 조선조 효종 4년(1653년)에 채택되었는데 약 250년간 사용하다가 1895년(을미년: 乙未年) 음력 9월 9일, 관보(官報)에 조칙령(詔勅令)을 실어 태양력을 쓸 것을 공포함으로써 1896년 1월 1일(태양력. 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부터 태양력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태음력을 현재까지 쓰고 있다. 특히 세시명절의 날짜는 태음력이 중심인데다 바다의 간만이나 조수 관계는 달(月)의 인력에 따른 순리이기 때문에 어업을 주업으로 하는 어촌도 태음력을 중시한다.

태양력에서 윤달과, 세시풍속에서 기준으로 하는 태음력에서 윤달의 개념은 다르다. 태양력에서는 4년에 한 번 2월이 29일로 하루 길어지는 반면 음력에서는 3년에 한 번, 또는 5년에 두 번 드는데 윤달이 드는 달도 그 때마다 달라진다. 음력 윤달은 같은 달이 반복되어 그 해에는 1년이 13개월이 된다. 윤달은 1년, 12개월에서 벗어난 달이라 하여 군달 · 공달[空月] · 덤달 · 여벌달 등으로도 불린다. 윤달이 들어 있는 해를 윤년(閏年)이라고 한다.

1년은 12개월이 정상이지만 음력으로 윤달이 드는 해에는 1개월이 더 있어서 1년이 13개월이 된다. 평상시와는 다른 월력이 생겨나 이 달에 대한 인식도 평시와다르다. 윤달은 일상적인 열두 달에서 벗어난 달이어서 신성하게 여긴다. 이는 일상적인 것을 세속적이라 하고 일상이 아닌 비일상적인 것은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 종교학적 해석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신성한 달인 윤달에는 신(神)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어 평소 꺼리는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달로 여긴다. 그래서 “윤달에는 송장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말이 있다. 반면 악귀나 잡귀에 해당되는 귀신들이 들끓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양면성을 지닌 달이 윤달이기도 하다.

의례와 속신: 윤달에는 불공을 드리고 성돌이를 하며 극락세계로 가기를 기원했다. 불신자의 경우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齊)를 올리기도 한다. 생전예수재란 부처님께 올리는 재의 하나이다. 살아생전에 저지른 죄를 해탈해 주기를 기원하고, 죽은 다음에는 극락세계에 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원한다. 보통 죽은 후에 베풀게 되는 불공을 여유 있는 사람들이 미리 올리는 것이다.

윤달에 세상을 떠난 사람의 제사는 원달과 윤달, 두 차례에 걸쳐 지낸다. 또 윤달에는 평소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면례(緬禮: 무덤을 옮겨 장사를 다시 지내는 것)를 한다. 윤달에는 부정이나 액이 없다고 믿어 집수리 · 이사 등 평소 조심해야 하는 집안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윤달에 평소 꺼리는 일을 마음 놓고 한다는 것은, 자칫 부정이나 액을 타기 쉬운 일은 이 달에 한다는 뜻이다. 반면 윤달에는 잡귀가 범람하여 장승제를 지내는 마을도 있다. 윤달이 드는 해에는 질병이 떠돌고 재앙이 심하여 그 예방으로 장승을 세운다는 것이다.

복식: 노인이 있는 집안에서는 윤달에 수의를 지어두는 것이 보편적인 일이다. 수의는 보통 바느질과 달리 한다. 이밖에도 윤유월(閏六月)에 수의를 지어두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수의를 지을 때에도 실을 바느질 도중 잇거나 그 끝은 옭매지 않는데 이는 죽은 사람이 저승길을 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넘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 한다.

윤달의 의미: 윤달은 평소 꺼리던 일을 마음대로 할 수 있거나 또는 질병과 재앙이 떠돌아 액막이를 해야 한다는 양면성이 있다. 이는 윤달이 일상에서 벗어난 신성한 달, 곧 신과 수월하게 접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속신앙에서 신관(神觀)은 유일신관(唯一神觀)이 아니라 다신관(多神觀)이다. 따라서 윤달에는 선신(善神)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악신(惡神)의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그러기에 윤달은 평소 조심스러운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반면 액을 피하는 예방도 해야 하는 달이다. 최근, 윤달에 혼례를 하지 않아서 예식장이 울상이라고 언론매체의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이는 윤달의 양면성 중 액을 조심해야 하는 달로 받아들인 결과이다.

현대의 세시풍속

오늘날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설날과 추석의 차례, 그리고 성묘는 전승력을 발휘한다. 차례와 성묘를 위해 혹은 설이나 추석 연휴동안 여행을 하기 위해 교통이 복잡해진다. 그래서 ‘민족대이동’이라는 용어가 생겨나 새로운 세시풍속으로 정착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즈음에는 교통난 등의 이유로 자녀들이 고향을 찾지 않고 지방에 거주하는 부모가 자녀들을 찾는 역류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다. 설에 주고받는 덕담은 이제 정통적인 방법은 사라지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로 통일되어 있다. 요즘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촌 등지에서는 설이나 추석 연휴 동안 놀이마당을 마련하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또 양력 1월 1일에는 해돋이를 구경하러 가는 새로운 풍속이 생겨나기도 했다.

입춘날의 입춘축주33은 이제 가정에서 쓰지 않고 절에서 부적형태로 만들어 불자들에게 전한다. 조선시대 연초에는 나라에서 상치세전(尙齒歲典)이라 하여 경로행사를 베풀었다. 서울과 지방의 조정 관리들과 명부(命婦)에게는 새해 쌀 · 물고기 · 소금 등을 주어 장수를 축하해 주고 80세 된 관리나 일반 백성을 한 등급을 올려주고 100살이 되면 한 품계를 승진시켜 주었다. 오늘날에 지역사회에서 날을 정해서 하는 경로잔치는 그러한 유속으로 볼 수 있다.

삼짇날 무렵의 화전놀이는 학생들의 봄소풍, 근래 많이 하는 관광여행과 진해의 벚꽃놀이 등으로 변용되었다. 가을에도 소풍과 관광여행을 즐긴다.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이제는 불자들의 절일(節日)로 축소된 면은 있지만 연등행사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모은다. 연등축제에는 외국인들도 참가하여 연등 만들기 등을 하며 함께 즐긴다. 특히 불교국에서 참여하여 자국의 불교행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강릉단오제는 고을에서 행하던 제의였으나 오늘날에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지역축제가 되었다. 단오날 가정에서 명절로 각별하게 보내지는 않지만 절식으로 쑥떡을 즐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있다. 유두명절은 사라졌지만 물맞이대신 바캉스라는 여름휴가가 번성해졌다. 복날 보양식을 즐기는 풍속은 아직도 성행하여 식당은 분주하고 가정에서는 수박과 같은 과일을 먹으며 더위를 식힌다. 여름 휴가철에는 유두 때와 마찬가지로 여름휴가가 전성기를 이룬다. 7월 중순의 풋구는 날짜를 바꾸어 양력 8월 15일, 휴일에 행하기도 한다.

추석은 설과 함께 국가차원의 공휴일로 오늘날까지도 명절로 전승되고 있다. 설과 함께 오늘날 2대 명절로 꼽히는데 차례와 성묘, 민족대이동 등 설과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반면 추석에 행해졌던 강강술래, 동채싸움, 줄다리기 등은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선택적으로 전승되고 있다. 현대화하여 변용된 놀이로는 경상북도 청도에서 3월에 행하는 소싸움 축제를 들 수 있다.

10월이면 중부 이북에서는 동제를 지내는데, 대부분이 유가식이 아닌 무당이 참여하여 당굿을 한다. 오늘날에는 이 당굿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이제는 전통을 기반으로 한 현대축제의 기능도 한다. 시제는 대체로 10월에 했으나 근래에는 바쁜 현대생활에 문중이 모이기 어려운데다 제사도 여러 차례 할 수 없어서 추석 성묘에 통합하여 하는 경향도 있다. 동지 명절에 팥죽을 쑤는 가정도 있지만 이제는 주로 절에서 행하는 명절행사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관상감에서 임금에게 역서(曆書)를 올렸다. 그러면 임금은 모든 관원들에게 황장력(黃粧曆)주34과 백장력(白粧曆)주35을 나누어 주었는데 거기에는 ‘동문지보(同文之寶)’라는 옥새가 찍혀 있었다. 서울의 옛 풍속에 단오의 부채는 관원이 아전에게 나누어 주고 동짓날의 달력은 아전이 관원에게 바친다고 하여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했다. 달력을 받은 관원은 그것을 자기 고향의 친지 · 묘지기 · 농토 관리인에게 나누어 주었다. 양력 12월이면, 음력 동짓달이다. 이 무렵 달력을 주고받거나 사기도 하는데 이는 조선시대 풍속의 변용, 그리고 연장이라 할 수 있다. 윤달의 세시풍속은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수의를 만들고 묘 이장을 많이 한다. 문헌기록에는 윤달에 혼례를 한다고 했는데 현재는 그와 달리 꺼리는 편이다.

세시풍속의 특징과 의의

전통사회에서 세시풍속은 생기를 북돋우고, 활력을 주는 생활의 마디가 되어 왔다. 그래서 공동으로 행해지는 세시풍속은 신명을 푸는 축제와 같은 행사이기도 했다. 명절에는 이제까지 일하는 동안의 긴장을 풀고 여유로운 시간을 갖는다. 이 휴식은 다음 일을 더욱 힘차게 할 수 있는 충전의 효과가 있다. 세시명절은 대체로 매달 있어 1개월 간격으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함으로써 주기적으로 삶의 활력과 탄력을 제공한다. 해마다 같은 세시풍속을 반복하는 까닭은 이처럼 삶의 활기와 힘을 재생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시풍속은 우리의 주생업이었던 농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본래 세시풍속은 한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의례였으며, 인간의 삶과 직접 관련되어 복(福)을 비는 의례였다. 오늘날은 농사가 중심이 아니라 정보산업사회로서 생업도 다양하다. 하지만 민속은 우리의 생활문화로서 시대나 환경에 따라서 변하면서 적응하기 마련이다. 전통적인 세시풍속 역시 시대변화에 적응하여 전해오기도 한다.

오늘날 세시풍속이 행해지는 세시명절은 설날과 추석이라는 2대 명절로 축소되어 있다. 2대 명절이라고 하지만, 가정에서는 차례와 성묘를 하는 세시풍속이 일반적이다. 명절을 실감나게 하는 곳은 민속박물관이나 민속촌과 같은 공공기관이다. 근래 이곳에는 설과 추석 연휴에 인파가 몰려들어 우리의 놀이를 즐긴다. 원래 설날의 명절놀이로 알려진 윷놀이는 요즘 세시놀이로서보다는 평소에도 즐기는 열린 놀이가 되었다.

세시놀이는 세시명절에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응용되기도 하는데 다른 세시풍속보다 그 활동무대가 광범위하다. 애초 세시놀이였던 씨름대회라든가 연날리기 · 윷놀이 등이 최근에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 없이 다양하게 행해지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다. 민속신앙 의례이면서 세시풍속이기도 한 동제가 ‘지역축제’로 활성화되는 것도 변화 · 전승되고 있는 한 모습이다. 운동회는 우리나라에서 신식 교육제도인 학교가 생기면서 시작된 행사인데, 여기에는 또 다른 양상으로 우리의 세시풍속이 수용되었다. 설이나 단오 · 백중 때의 주요한 놀이였던 줄다리기 · 씨름 · 동채싸움 등이 행해지며, 학생들만 참가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도 자기 마을의 명예를 걸고 힘을 쓰는 것은 곧 전통사회에서 명절이면 승부를 가리는 세시놀이로 정열을 쏟았던 것과 같다.

이밖에도 각 지역에서 세시풍속을 기반으로 근래에는 전통문화 체험, 문화콘텐츠의 대상으로 세시풍속이 강하게 부상되기도 한다. 최근에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밸런타인 데이’를 비롯하여 ‘화이트 데이’, ‘블랙 데이’ 등 데이 시리즈가 관심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런 것들이 과연 세시풍속의 범주에서 논의될 수 있는가 역시 생각해 볼 일이다. 양력을 기준으로 한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인의 세시명절이라 할 수 있고, 비록 상술(商術) 때문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는 밸런타인 데이 역시 족보가 있는 날이다. 그러나 여타 데이 시리즈의 세시풍속으로서의 위상은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고려사(高麗史)』
『경도잡지(京都雜志)』(유득공)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김매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홍석모)
『중국 대세시기 Ⅰ』(국립민속박물관, 2006)

조선 시대 생활 모습을 담은 세시 풍속

문화재청
“와! 내일은 제가 좋아하는 떡국을 먹는 날이에요. 엄마, 많이 주세요.”
“그래, 떡국 먹기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 먼저 드려야지.”

일 년 중 떡국을 먹고 세배하는 날은 설날이에요. 조선 시대에는 설 이외에도 다양한 세시 풍속이 있었어요. 조선 시대 세시 풍속은 무엇이 있을까요?

세시 풍속이 뭔가요?

세시 풍속이란 1년 중 특별하다고 생각되는 날에 사람들이 지켜왔던 생활 습관이에요. 그런데 이 특별한 날은 1년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매년 반복된다는 특징이 있어요. 예를 들면 해마다 음력 1월 1일은 설날, 음력 5월 5일은 단오인 것처럼 말이죠.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오래된 세시 풍속은 부여, 고구려, 동예, 삼한의 제천행사라고 할 수 있어요. 이 국가들은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만주와 한반도에 세워졌어요.

각 나라의 고유한 풍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부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행사를 열었어요. 제천행사는 대체로 10월에 열렸는데, 곡식 수확에 감사하며 다음 해에도 풍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삼국 시대가 되면 이전의 제천 행사가 그대로 이어지면서도 나라를 세운 시조나 산천에 대한 제사를 해마다 지냈어요. 특히 신라에서는 정월 대보름, 단오, 추석 등의 세시 풍속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고려 시대 사람들은 해마다 1월에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제사를 지냈어요. 또 불교의 영향으로 2월에 연등회를, 10월 또는 11월에 팔관회를 열었어요.

조선 시대 사람들도 다양한 세시 풍속을 지키며 살았어요. 조선 시대 세시 풍속은 설과 추석같이 오늘날 우리가 지내는 명절도 있고, 입춘과 입추, 동지처럼 농사와 관련된 24절기도 있지요.

흔히 옛날에는 달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하는 음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24절기도 당연히 달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종종 있어요. 하지만 24절기는 달이 아니라 태양의 위치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에요. 그리고 봄에서 겨울까지 계절마다 각각 6개씩 있어요. 24절기는 다음과 같아요.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면 24절기 중 봄의 첫 절기는 ‘입춘’이에요. 봄이 시작되는 이때부터 농부들은 농사지을 준비를 했어요. 3번째 절기인 ‘경칩’은 겨울잠을 자던 동물이 깨어나는 시기로 콩, 들깨 등을 심고 밭에 거름을 주었어요.

여름이 시작되는 ‘입하’에는 논에 모내기를 시작해서 9번째 절기인 ‘망종’이 될 무렵에는 논에 모를 옮겨 심었다고 해요. 가을의 ‘처서’에는 아침 저녁으로 선선해지면서 참깨를 수확하기 시작하지요. 그리고 겨울의 ‘소한’은 아주 추워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했지요.

조선 시대 양반들도 24절기와 관련 있는 세시 풍속을 지켰어요. 예를 들면 ‘입춘’이 되면 ‘입춘대길’과 같이 복을 비는 글을 종이에 적어 대문이나 집의 벽에 붙이기도 했어요. 양반들에게는 24절기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세시 풍속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조상에게 제사 지내는 것이에요. 보통 제사는 조상이 돌아가신 날에만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선 시대 양반들은 속절(俗節)이라 하여 설, 한식, 단오, 추석의 4대 명절과 정월 대보름, 동지 등의 날에도 제사를 지냈어요.

이렇듯 조선 시대 사람들이 지키던 세시 풍속은 신분에 따라 조금씩 달랐어요. 또 농촌과 어촌처럼 지역에 따라 다르기도 했어요.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설, 한식, 단오, 추석 등의 4대 명절은 누구나 비슷하게 지키는 세시 풍속이었죠. 지금부터 조선 시대 사람들이 4대 명절을 어떻게 지냈는지 살펴볼까요?

떡국을 먹고 세배하던 설날

설은 한 해의 첫날로 음력 1월 1일이에요. 설날 아침에는 새 옷(설빔)을 단정히 입고 먼저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요. 차례는 설과 같은 명절에 드리는 제사를 말해요.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께 세배를 드려요. 그리고 설의 대표적 음식인 떡국을 먹어요. 음식을 먹은 후에는 성묘를 가지요. 성묘는 조상의 묘를 찾아가 살펴보는 일이에요.

설날에는 다양한 민속놀이도 즐겼어요. 그중 대표적인 것이 윷놀이예요. 윷놀이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즐길 수 있었던 놀이에요. 윷놀이에는 말판과 말, 윷이 필요해요. 윷은 보통 박달나무나 밤나무를 잘라 만들기도 하고 어떤 지방은 자주색 콩을 잘라 만든 윷을 사용하기도 했어요.

설날에는 연날리기도 했지요. 조용히 연을 날리면서 놀거나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을 했어요. 또 연에 ‘액’이라는 글자를 쓰고 연줄을 끊은 후 날려 보내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면 나에게 오는 나쁜 기운을 연이 모두 가지고 떠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불을 때지 않고 찬 음식을 먹던 한식

한식은 24절기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가 지난 후 105일째 되는 날이에요. 음력 3월이나 2월에 오는 명절이지요. 조선 시대 사람들은 한식이 되면 불을 사용하지 않고 전날에 만들어 놓은 찬 음식을 먹었어요.

한식에 불을 때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요. 중국 춘추 시대 개자추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는 진나라 문공이 왕이 되기 전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문공의 곁을 지켰어요. 그런데 문공이 왕이 된 후 개자추를 멀리하자 그는 산에 들어가 살았어요.

왕이 뒤늦게 개자추의 소중함을 알고 산에서 나오라고 했지만 개자추는 뜻을 따르지 않았어요. 왕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어요. 개자추가 불을 피해 산에서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하지만 왕의 예상과 달리 개자추는 끝까지 버티다 결국 죽음을 맞이했어요. 그 후 왕은 개자추의 죽음을 슬퍼하며 해마다 그가 죽은 날이 되면 불을 때지 못하게 했다고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언제부터 한식을 명절로 지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1431년(세종 13)에 한식과 그 후 3일 동안 불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 사람들은 한식을 중요한 명절로 여겼던 것 같아요. 한식 때는 양반들이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어요. 바로 조상의 산소에 성묘 가는 것이에요. 떡이나 술, 국수 등의 음식을 만들어 가서 조상님께 차례를 지냈어요.

씨름하고 그네 뛰던 단오
“애호와 부채를 골고루 나누어 주도록 하시오.”

해마다 단오가 되면 조선의 왕은 신하들에게 애호와 부채를 나누어 주었어요. 애호는 짚으로 호랑이 모양을 만들고 쑥과 비단을 연결해 만든 것이에요. 조선 시대 여자들은 단오가 되면 애호를 머리에 이어 나쁜 기운을 물리쳤다고 해요.

또 부채를 나누어준 것은 단오가 음력 5월 5일로 여름을 맞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지요. 신하들은 이 부채에 금강산의 1만 2천 봉을 그려 넣어 시원한 바람이 불기를 바라기도 했어요.

한편 농민들에게 단오는 모내기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기에요. 그래서 남자들은 모여서 씨름을 했어요. 조선 시대 씨름은 다른 명절에도 즐겼지만 일 년 중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단오날에는 빠질 수 없는 민속놀이었어요. 여자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타거나 널뛰기를 즐겼어요.

단오에는 특별한 음식으로 수리취떡과 화전을 먹었어요. 수리취떡은 수리취나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수리떡이라고도 하는데, 떡의 모양이 수레바퀴처럼 생겨 수레바퀴떡으로 불리다가 수리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화전은 꽃잎을 따서 만든 거예요.

이때 사용된 꽃잎은 보통 분홍색의 진달래 꽃잎이었어요. 또 단오에 먹는 과일로 앵두가 빠질 수 없지요. 사람들은 빨갛게 익은 앵두로 화채를 만들어 먹었구요. 정성스럽게 딴 앵두를 단오 차례상에 올렸어요.

햇곡식과 과일로 차례를 지내던 추석
우리 속담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어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와 같으면 좋겠다.

한가위는 추석의 다른 이름이에요.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가배, 중추절 등으로도 불렸어요. 설날과 함께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지요. 『삼국사기』에는 신라 유리왕 때 가배와 관계된 기록이 있어요.

유리왕은 도읍의 부녀자들을 두 편으로 나누어 8월 15일이 되기 약 한 달 전부터 옷감을 짜는 길쌈을 하도록 했어요. 마지막 날이 되면 승부를 겨루었는데, 이때 진 편에서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며 놀았다고 해요.

조선 시대 사람들은 추석 때 송편을 빚어서 먹었어요. 농사지은 햇곡식과 과일로는 조상님께 차례를 지냈어요. 한식 때처럼 조상의 묘를 찾아가 성묘도 했어요.

서당에 다니는 아이들은 원놀이를 하거나 편을 나누어 가마 싸움을 했어요. 원놀이는 아이들 중 한 명이 마을의 원님(사또)이 되고 나머지는 백성이 되어 모의재판을 하는 거예요. 가마 싸움은 각 마을마다 나무 가마를 만들어 서로 부딪히면서 싸우는 것인데요. 이때 가마가 부서지면 지는 거예요. 이외에 부녀자들은 강강술래를 했어요.

역사 속 작은 이야기: 4대 명절 외에 현재까지 이어지는 세시 풍속은?


조선 시대에는 설, 한식, 단오, 추석 등 4대 명절 외에도 다양한 세시 풍속이 있었어요. 그중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세시 풍속은 정월 대보름, 사월 초파일, 동지 등이 있어요.

먼저 정월 대보름은 설이 지난 후 15일째 되는 날이에요. 정월 대보름 아침에 땅콩, 호두, 밤 등을 깨물며 종기나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비는 풍속이 있었어요. 또 정월 대보름 전후로 사람들이 모여 마을 공동의 제사인 동제를 지내고 줄다리기, 지신밟기 등을 했어요.

사월 초파일은 부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불교 행사가 일반 백성들의 세시 풍속이 된 것이에요. 사월 초파일 저녁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등을 매달았어요.

동지는 24절기 중 하나로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에요. 동지 다음날부터는 다시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새해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지요. 동지가 되면 궁궐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어요.

동지는 매해 음력 11월에 돌아와요. 11월 중에서도 초에 있으면 ‘애동지’, 중순에 있으면 ‘중동지’, 11월 말쯤이면 ‘노동지’라고 구별하여 부르기도 했어요, 동지에는 보통 팥죽을 먹는데, ‘애동지’에는 팥떡을 먹기도 해요. 이날 팥죽을 먹으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거든요.

지금까지 조선 시대 4대 명절을 비롯한 여러 세시 풍속에 대해 살펴보았어요. 조선 시대는 농업 중심 사회였기 때문에 그들이 지켰던 세시 풍속은 농업과 관계있는 것이 많아요. 그리고 그중에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도 있지만 사라진 것도 있어요. 인터넷 자료를 검색해서 사라진 조선 시대 세시 풍속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집필자] 김현숙

식물로 보는 24절기
식물의 계절

우리는 날씨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한다. 소나기 예고에 우산을 챙기고, 한파가 온다는 소식에 옷장에서 두툼한 외투를 꺼내 입기도 한다. 야외에서 식물을 돌보는 가드너는 일기예보를 확인하기 전에 피부에 와 닿는 바깥 공기로 누구보다도 먼저 계절의 변화를 느끼곤 한다. 마치 가드너가 된 것처럼 절기의 순환을 알려주는 식물을 통해 24절기의 흐름을 경험해 보자.

절기별 식물 혹은, 심상

24절기 중 한 해의 첫 절기인 입춘은 2월이다. 말은 입춘인데, 공기가 뼛속까지 차다. 땅이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도 이 무렵에 씨앗을 파종하면 3월에 새순이 돋는다. 절기는 한 걸음 앞서 준비해야 때가 맞아지는 지혜다. 3월의 경칩이 오면 어느새 문 밖 공기가 닿는 순간 봄이 느껴지곤 한다. 겨울 동안 잠시 잊고 있던 식물의 성장을 보며 계절의 무르익음과 시간의 변화를 인지하게 되는 때가 바로 이 즈음이다.

입춘부터 곡우까지(2월~4월)

        1.입춘(2월 4일) - 유채꽃

입춘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노란색이 아닐까요? 언 땅을 뚫고 올라와 봄소식을 전하는 샛노란 유채꽃이 생각나네요.      

        우수(2월 19일) - 물방울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우수 즈음엔, 초록 잎끝에서 매달렸다가 또르르 떨어지는 물방울의 이미지가 생각나요.

        경칩(3월 5일) - 수선화

겨우내 움츠렸던 봄 식물들이 싹을 틔우는 시기죠. 3월에 만발하는 수선화를 추천해봅니다.

       춘분(3월 21일) - 매화

3월의 마지막 무렵인 춘분은 남쪽에서 매화가 만발하는 시기입니다. 매화는 꽃도 예쁘지만, 초록색의 싱그러운 가지가 참 아름다워요.

        청명(4월 5일) - 진달래

동네 뒷산에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이죠. 흐드러져 만발하기보다는 무심하고 듬성듬성하게 피어나는데, 그 여백이 참 예뻐요.

        곡우(4월 20일) - 비

이맘때쯤에는 곧 비가 올 듯한 묵직한 공기를 느낄 수 있어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물가에서 빗방울이 수면에 닿는 순간을 가만히 바라보고 싶어져요.     

       입하부터 처서까지(5월~8월)

절기는 우리가 인지하는 계절의 감각보다 보름에서 한 달 정도는 앞서 있다. 이렇게 앞섰던 이유는 농사하기 전 준비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창 추울 때 파종을 하고 약 3개월이 지나고 나면 5월 입하가 된다. 입하가 지나면 밖이 더워지고 하우스 안의 온도가 훨씬 더 높아지기 때문에 파종한 식물을 옮겨 담거나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없애느라 분주하다. 대략 8월 초에 접어드는 입추 무렵에도 여전히 무더위가 이어지지만 새벽 공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하늘이 높아지면서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체감한다.

       입하(5월 5일) - 귀룽나무

5월의 시작과 함께 만날 수 있는 귀룽나무요 귀룽나무의 꽃이 눈처럼 쏟아지는 장면을 보면 봄과 여름 사이 어느 시간의 중간에서 있는 듯한 신비로움을 느껴요.

          소만(5월 21일) - 벼

5월 끝자락은 모내기철이에요. 소만이 지나고 나면 진짜 여름의 시작인 거죠. 이윽고 푸르른 물결을 만들 초록빛 여린 벼가 소만과 가장 어울리는 식물이 아닐까요.

         망종(6월 6일), 하지(6월 21일) - 매실나무

6월은 매실이 열리는 시기에요. 매실은 꽃도 예쁘지만, 그 토실한 열매가 맛있어서 6월에는 매실청을 종종 담그곤 해요.

        소서(7월 7일) - 보리

보리는 10월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이듬해 7월 소서 즈음에 수확해요. 싹이 난 채로 추운 겨울을 보내고, 아직 아무것도 자라지 않은 이른 봄에도 초록을 보여주죠.

          대서(7월 23일), 입추(8월 7일) - 수박

절기상으로 가장 더운 때와 가을로 접어드는 때가 맞붙어 있어요. 무더위가 극성을 부릴 때라 수박이 생각나네요! 튼실한 수박 한 통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줄기에 단 하나의 꽃만 남겨야 해요.

          처서(8월 23일) - 능소화

능소화가 만발할 무렵이죠. 어릴 적 가족여행으로 마이산에 갔었는데, 절벽에 피어난 능소화를 보고 한눈에 반했어요. 그 꽃이 능소화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지만       

           백로부터 대한까지(9월~1월)

입추가 지나면 시간이 훌쩍 지나 금세 11월이 된다. 손끝에 스며드는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질 때, 입동의 시작이 느껴진다. 김장의 계절이 되며 겨울 준비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겨울이 정점에 달하고 추위가 최고조에 이를 때에도 식물은 저마다 자기 할 일을 분주히 이루어 낸다. 푸르기가 변함없어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며 쉼을 전하기도 하고, 자기의 때에 맞춰 꽃을 피우기도 한다.

        백로(9월 8일), 추분(9월 23일) - 밤

        가을의 정점 9월이라면, 역시 속이 꽉찬 알밤 아니겠어요?
        한로(10월8일) - 국화
        말할 것도 없이, 화려하고 탐스러운 국화의 절기죠.
        상강(10월 23일) - 서리

이맘때쯤엔 서리가 내려요. 반짝이는 서리가 어스름한 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새벽 풍경은 보석이 내린 듯 아름답죠.

         입동(11월 7일) - 배추

입동과 함께 김장이 시작되죠. 잘 여문 배추와 알 굵은 무가 생각나네요.

        소설(11월 22일), 대설(12월 7일), 동지(12월 22일) - 전나무

겨울이 정점에 달하는 세절기예요. 꽃들이 화려한 색을 거두고 겨우내 숨을 고르는 동안에도, 사시사철 푸른 전나무는 변함없이 푸르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소한(1월 5일), 대한(1월 20일) 동백

저는 추위가 최고조에 달할 때, 잠시 육지를 벗어나 따뜻한 제주도에 가 있는 걸 좋아해요. 이맘때 제주도에 가서 듬뿍 피어난 붉은 동백을 보며 새로운 한 해를 보낼 에너지를 가득 충전하고 온답니다.       

절기의 의미

과거 절기는 파종과 같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알람이었다. 현대에서 절기는 계절보다 반걸음 앞서 다음을 준비하는 마음을 미리 알려주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절기는 농사를 짓지 않는 현대인들의 시간 개념과는 차이가 있지만, 24절기 안에는 변함없는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질서가 존재한다.

자료출처:

<어쩌면 이미 알다시미, 세시풍속 vol.1 원형들> 中
‘식물의 조금 더 예민한 시간 관념’ ⓒ 2022,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절기節氣

[정의]
울산광역시 지역에서 한 해를 24등분한 절기에 행해지는 풍습.
[개설]

절기는 1년을 태양의 황경(黃經)에 따라 15일 간격으로 24등분한 24절기와 관련된 세시풍속이다. 울산 지역에서 24절기와 관련한 세시 풍속은 도시 보다는 농촌에 많이 남아 있다. 24절기의 순서는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등의 순이다. 이 가운데 울산 지역에서 지금까지 세시풍속이 그런대로 남아 있는 절기는 입춘, 청명, 동지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기들은 기억 속에 존재하다가 가끔 날씨와 관련해서 회자되는 정도이다.

[24절기와 관련된 세시풍속 현황]

1. 입춘

입춘이 다가오면 울산의 일부 가정에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혹은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는 시구를 써서 현관문 앞에 붙여 둔다. 직접 글씨를 쓰는 경우는 드물고 인근 사찰에서 동짓날 나누어 주는 인쇄물을 받아다가 출입문에 부착한다.

2. 청명

농가에서 논밭 둑을 손질하는 가래질을 시작했던 풍습은 기계화에 의해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청명날 조상의 묘를 찾아 차례를 지내거나 잔디를 다시 입히는 사토는 여전히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장례 문화의 변화로 인해 납골당에 조상을 모시는 경향으로 바뀌면서 청명 한식날의 풍습도 사라져 가고 있다.

3. 동지

예로부터 울산에서는 동지 팥죽의 새알 단자를 나이만큼 헤아려 먹었다. 살얼음이 살짝 얼은 동치미 한 사발과 따끈한 팥죽은 한겨울의 별미였지만 최근에는 각 가정에서 팥죽을 쑤어 먹는 경우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신 팥죽 공양을 하는 인근 사찰에 가서 팥죽을 먹고 가족을 위해 한 그릇 얻어 오는 것이 새로운 풍속도이다. 한 예를 들면, 울산광역시 남구 옥동 803-5번지[문수로 217번길]에 있는 정토사에서는 동짓날 팥 280㎏, 찹쌀 140㎏, 죽쌀 180㎏ 등으로 42솥의 팥죽을 쑤어 사찰을 찾은 시민 및 인근 노인 요양 시설 등에 나누어 주고 있다.

[24절기]

1. 입춘: 1월의 절기로, 보통 양력 2월 4일 무렵에 해당한다. 이날부터 봄이 시작된다. 입춘에는 새해의 첫째 절기이기 때문에 농경의례와 관련된 행사가 많다.

2. 우수: 입춘 15일 후인 양력 2월 19일 또는 20일이 되는 시기로,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뜻이다. 우수와 경칩이 지나면 춥던 날씨도 누그러져 봄기운이 돌고 풀과 나무에 싹이 튼다.

3. 경칩: 양력 3월 5일 무렵으로, 일어난다는 경(驚) 자와 겨울잠 자는 벌레라는 뜻의 칩(蟄) 자가 어울린 말로 겨울잠 자는 벌레나 동물이 깨어나 꿈틀거린다는 뜻이다.

4. 춘분: 양력 3월 21일 전후, 음력 2월 무렵이다.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시기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이다.

5. 청명: 음력 3월에 해당되며, 양력으로는 4월 5~6일 무렵에 드는 시기이다. 청명과 한식은 흔히 같은 날이 되기 때문에 오늘날 뚜렷한 구분 없이 전해지고 있다.

6. 곡우: 양력으로 4월 20일 무렵부터 보름간이다. 이름 그대로 곡식을 깨우는 비로, 봄비가 자주 내리고 곡식이 풍성해지는 절기이다.

7. 입하: 5월의 시작이다. 여름 기운이 일어서 서리도 사라지는 시기로 보통 어린이날 무렵으로 볼 수 있다. 여름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때이다.

8. 소만: 양력으로는 5월 21일 무렵이고, 음력으로는 4월에 해당하는 소만은 작물이 자라서 약간의 곡식이 여무는 때란 뜻이다. 소만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에 바빠진다.

9. 망종: 양력으로 6월 6일 무렵부터이며, 음력으로 4월 또는 5월에 든다. 망종이란 벼·보리 등 수염이 있는 까끄라기 곡식의 종자를 뿌려야 할 적당한 시기라는 뜻이다.

10. 하지: 양력 6월 21일 무렵이 시작되는 날로 음력으로는 5월 중이다.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 시간이 가장 길다.

11. 소서: 음력 6월, 양력 7월 7일이나 8일쯤 된다. 이 시기에는 장마 전선이 우리나라에 오래 자리 잡고 있을 때라 습도가 높아지고 장마철에 해당될 때가 많다.

12. 대서: 음력으로는 6월에 있으며, 양력으로는 7월 23일 무렵이다. 한 해 가운데 가장 더운 때이다.

13. 입추: 음력 7월 초순, 양력 8월 8~9일 무렵이다. 가을 절기가 시작되는 날로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칠월 칠석을 전후하므로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14. 처서: 양력 8월 23일 무렵, 음력으로 7월에 즈음하는 시기로, 처서라는 한자를 풀이하면 “더위를 처분한다.”라는 뜻이 된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때이다.

15. 백로: 양력 9월 8일 무렵부터 추분 전까지, 음력으로는 8월이다. 가을에 접어드는 시기로 일조량이 많아서 곡식이 여무는데 좋다. 밤 기온이 내려가고, 풀잎에 이슬이 맺혀 가을 기운이 뚜렷해진다.

16. 추분: 양력 9월 23일 무렵부터 한로(寒露) 전까지의 15일간을 말하며, 음력으로는 8월 중이다. 춘분으로부터 꼭 반년 째 되는 날로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낮보다 밤이 길어진다.

17. 한로: 양력 10월 8~9일 무렵에 해당하며, 음력으로는 9월의 절기이다. 공기가 차츰 선선해지면서 이슬이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해 가는 계절이다.

18. 상강: 음력 9월, 양력으로 10월 23일 또는 24일이며, 쾌청한 날씨는 계속되나 추워져서 서리가 내린다. 이 무렵 농촌에서는 가을걷이로 몹시 분주해진다.

19. 입동: 음력 10월, 양력 11월 7~8일 무렵으로, 이날부터 겨울이 시작된다. 입동 무렵이면 밭에서 무와 배추를 뽑아 김장하기 시작한다.

20. 소설: 양력 11월 22일~23일 무렵, 음력으로는 10월이다. 햇볕이 내리쬐어 소춘(小春)이라고도 불린다.

21. 대설: 음력 10월 중이고, 양력으로는 12월 7일 무렵이다. 농촌에서는 이때 콩으로 메주를 쑨다. 잘 띄운 메주로 된장, 고추장, 간장을 만든다.

22. 동지: 동지는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동짓날은 양력으로는 대개 12월 22일 무렵이다. 동지를 아세(亞歲)라 하고, 작은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23. 소한: 양력 1월 5일에서 20일 무렵이며, 음력으로는 12월이다. 새해맞이 준비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소한은 양력으로 해가 바뀌고 처음 오는 절기이다.

24. 대한: 양력 1월 20일 무렵부터 시작되며, 음력으로는 12월 중기(中氣)이다. 가중 추운 때를 의미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년 중 가장 추운 시기가 1월 15일 무렵이므로 사정이 다소 다르다.

24절기 대한(大寒)
음력 섣달을 매듭짓는 24절기의 마지막 절기 

선교총림선림원 절기학교에서 24절기 중 스물네번째 절기 “대한(大寒)”에 대해 공부합니다. 대한(大寒) 절기는 24절기 중 스물네번째 절기로 일년(一年) 절기력(節氣曆)의 마지막 절기입니다. 대한(大寒)은 큰 대(大) 차가울 한(寒)으로 큰 추위를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작은 추위를 뜻하는 소한(小寒) 때보다 추위가 조금 누그러집니다.

대한(大寒)은 소한(小寒)와 입춘(立春) 사이에 있으며 양력으로는 1월 20일경 음력으로는 12월 중에 듭니다. 대한(大寒)은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大寒)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입춘 전날 밤을 “절분” 또는 “해넘이”라 하며,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立春)”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됩니다.

선교(仙敎)에서는 24절기 중 스물네번째 절기 대한(大寒) 절기에 맞는 선도수행법을 전수합니다. 대한(大寒) 절기에 선교(仙敎)에서는 음력 설날에 올리는 선교의례 “대향재(大嚮齋)”에 앞서 정화기도로서 심신을 재계하고 선교 취정원사님의 신년교유를 새기며 수행의지를 세웁니다. 환인하느님께 올리는 정화수도성과 대한 절기법회, 대한의 유래와 세시풍속 공개강의, 생활속의 선도수행 대한 절기체조, 대한 절기음식 공양과 선가선(仙家禪) 수행, 대한 절기의 유래와 뜻, 대한의 풍습, 대한 절기속담과 겨울철 섭생법에 대해 알아봅니다. 

_ 선교총본산 선교총림선림원 

대한(大寒)
취정원사님, 24절기 선도수행 교화법문
「24절기 생활속의 선도수행 _ 겨울 · 대한」

#절기수행 #선도수행 #선교수행 #한국의선교 #취정원사 #생활선도 #겨울철 #생활선도 #선도 
선교 교단 취정원사님 “24절기 생활속의 선도수행” 교화법문을 다음과 같이 실어 겨울철 선교수행에 대해 공부합니다.

「 겨울 절기는 입동 · 소설 · 대설 · 동지 · 소한 · 대한이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이르기를 ‘冬三月 此謂閉藏 水冰地坼 無擾乎陽 早臥晩起 必待日光 使志若伏若匿 若有私意 若已有得 去寒就溫 無泄皮膚 使氣亟奪 此冬氣之應 養藏之道也 逆之則傷腎 春爲痿厥 奉生者少’ 이라 하였습니다.

겨울 석달을 “폐장(閉藏)”이라 하는데, 닫을 폐(閉) 감출 장(藏) 폐장이라하여, 엄동설한이 되어 만물이 생기를 잃게되므로 자연의 순환에 순응(順應)해야 합니다. 양기(陽氣)를 지키고 마음에 품은 뜻 의지(意志)를 차분히 하여하늘의 도(道)에 순(順)하고 사람의 예(禮)에 응(應)하는 자세, 양기(陽氣)를 지키고 마음에 품은 뜻 의지(意志)를 차분히 해야합니다.

겨울이 되면 “수빙지탁(水冰地坼)”, 물이 얼고 땅이 터져 갈라진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기온이 내려가 만물이 얼어붙는 겨울에는 양기(陽氣)를 어지럽히지 말아야 하고 심신의 기운을 가지런하게 정단(整端)하여 다스려야 합니다. 이렇게 우주 자연의 상생조화(相生調和)에 순응(順應)하는 것을 선교(仙敎)에서는 “천도순리(天道順理)”에 따른다고 합니다. 

겨울이 되면 양기는 위축되고 음기는 강해집니다. 음기가 양기를 압박하는 형국이기에 양기(陽氣)는 심장(心臟)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모여있게 되므로 겨울에는 심장을 잘 보호해야 합니다. 바람을 피해 거처하고 따뜻한 옷을 입고 따뜻한 음식으로 양기를 보하며, 대지가 햇볕을 충분히 받았을 때 활동하되 많은 땀을 흘려 양기가 누설되지 않도록 합니다. 

해가 지면 일찍 잠자리에 들고 햇빛이 비칠 때를 기다려서 일어나며, 뜻을 품되 엎드린 듯 숨은 듯하게 개인적인 생각이나 의지를 품고도 밖으로 드러내지않고 이미 이룬 듯이 평온하게 행동하며, 추운 곳을 피하고 따뜻한 것을 취하며, 지나치게 자주 씻는 일을 삼가하여 양기(陽氣)를 빼앗기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겨울철에 응(應)하여 장기(藏氣)를 기르는 올바른 자연섭생법입니다. 이를 거스르면 신장(腎)이 상(傷)하게되어 봄에 몸이 저리고 심하면 마비되는 위(痿)의 증세가 오고 몸에 생기(生氣)를 기르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절기에 따라 올바르게 양생하는 법은 태양의 운행과 같은 주기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겨울은 오행(五行) 중 수(水)에 해당하고, 수(水)는 오장 중 신장(腎臟)을 관장하고 수생목(水生木)의 이치에 따라 목(木)를 생(生)하므로, “24절기 선도수행”으로 겨울철 수(水) 기운이 관장하는 신장을 단련함으로써 새봄 목(木)의 기운을 생기(生氣)하는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산천초목이 얼어붙는 겨울에는 급작스런 기온의 변화와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을 피하여 폐와 대장을 편안하게 하는 동시에 신장의 기운을 기르는 “생활속의 선도수행”을 행하며 봄을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겨울의 수기(水氣)에 응(應)하여 고요히 기다리는 것이 겨울철 올바른 생활속의 선도수행입니다. 겨울철의 수기(水氣)와 감응하여 몸 속에 감추어진 양기를 기르며 고요히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를 거역하면 양기가 쇠하여 뼈가 약해지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며 이가 흔들리고 탈모가 되거나 백발이 되기도 합니다. 겨울의 수기(水氣)를 조화롭게 하는 것, 이것이 겨울철 올바른 생활속의 선도수행 입니다. 

선교 수행대중은 선교삼법계(仙敎三法戒) 수행중 평정운(平正韻)으로써 겨울철 선도수행에 임하여, 선교수행법 “선도공법(仙道功法)”을 생활화하도록 합니다. 선도공법의 생활화는 24절기에 맞는 절기별 선도수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선교 수행자는 불필요한 활동을 자제하고 급작스런 기온와 환경의 변화를 피하여, 욕망과 사치 향락을 근절하고 정숙한 장소에서 고요히 평정운하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청정수행(淸淨修行)에 임하도록 합니다. 24절기에 맞게 선교수행 선도(仙道)를 닦는 것이 생활속에서 천지인합일하여 정회(正回)하는 길이 됩니다. 선교인 모두의 수행정진을 독려하며 솔거진수(率居震需) 일심정회(一心正回) 합니다. 」

_ 선교 교단 취정원사 「24절기 선도수행」 교화법문
《 대한(大寒)의 유래 》

#대한유래  대한(大寒)은 소한(小寒)와 입춘(立春)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는 12월, 양력으로는 1월 20일 경으로 태양이 황경 300°의 위치에 있을 때이다. 큰 추위가 오는 시기로 일년 24절 기 중 마지막 절기에 해당합니다. 대한이 큰 추위를 뜻하기는 하지만 실상 소한 절기보다 추위가 누그러지게 됩니다.

#대한삼후 대한 입기일부터 입춘 전날까지의 15일을 5일씩 나누어 대한 삼후(大寒三候) 라고 하는데, 초후에는 닭이 알을 낳고, 중후에는 나는 새가 높고 빠르며, 말후에는 못물이 단단하게 언다고 전합니다. 대한(大寒)은 일년 24절기의 마지막 절기(節氣)로 음력 섣달을 매듭을 짓는 절후입니다.

《 대한(大寒) 절기의 풍습 》

#해넘이 #절분 #節分 #신구간 #新舊間 #집수리 #나무베기 #보리밭거름덮기  대한(大寒)에는 이사나 집수리 등 집안손질에 붙는 동토부정(動土不淨) 없이 집을 수리하고 이사를 가는 일들을 행합니다. 이러한 음력 섣달 대한(大寒) 절기무렵을 “신구간(新舊間)” 이라고 합니다. 신구간은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통 1주일 정도가 됩니다. 이때는 땅에 내려와 있던 신들이 하늘에 올라가 새로운 일을 받아오는 기간이기 때문에 땅에는 신들이 없기에 평소에 금기처럼 여기던 일들을 해도 아무 탈이 생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대한 절기 초후가 지나고 입춘 삼일전까지는 이사 · 부엌 · 문 · 변소 · 외양간고치기 · 집 뜯어 고치기 · 울타리 안에서의 흙 파는 일 · 울타리 돌담고치기 · 나무 베기 · 묘소 고쳐 쌓기 등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신구간 또는 신구세간이라하여 잘지켜지는 풍습으로 전래되고 있습니다.

대한(大寒)은 겨울을 매듭짓는 절후로 보아, “대한의 마지막 날”을 “절분(節分)”이라 하여 “계절적 섣달그믐”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입춘 전날밤을 “해넘이”라 하여, 콩을 방이나 마루에 뿌려 악귀를 쫓고 새해를 맞는 풍습이 있습니다. 절분 다음날은 정월절(正月節)인 “입춘(立春)"”의 시작일로, 이 날은 “절월력(節月曆)의 새해 첫날”이 됩니다. 

대한이 소한보다 덜 춥긴 하지만 그래도 맹추위는 계속되는 계절입니다. 이 무렵 날씨는 시베리아 한랭기단(寒冷氣團)의 영향권 내에 속해 있어 북서계절풍이 강해 한파가 지속되는데, 산맥의 북서쪽에 해당되는 곳에는 눈이 많이 내리고, 남쪽에 해당되는 곳에는 건조한 날씨가 지속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호남 서해안은 눈이 잦은 반면, 영남 남동해안 지방은 건조하면서도 추운 날씨가 지속됩니다. 이러한 건조한 날씨는 불이 일어나기 쉽고, 가뭄이 들 때가 많아 보리 등 겨울 농작물에 피해를 끼치기도 하는데, 그래서 이맘때면 불조심과  “보리밭에 월동 거름 덮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대한(大寒) 절기의 속담 》

#대한속담 “춥지않은소한없고포근하지않은대한없다”, “대한이소한집에가서얼어죽었다”, “소한얼음대한에녹는다” 대한 절기에는 소한의 맹추위와 비교하여 조금은 누그러진 추위에 대한 속담이 전합니다.

《 대한(大寒) 절기의 음식 》


#죽 #고로쇠수액 채취 시작 #봄동배추 #떡국 #꿩고기  대한 무렵은 여전히 농한기의 연속이고, 춘궁기 보릿고개 식량걱정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옛날에는 식량을 아끼기 위해 점심 한 끼는 반드시 죽을 먹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대한이 말후에 이르면, 잠들어 있던 생명이 서서히 움트기 시작하는데, 그 중 가정 먼저 "고로쇠나무"가 물기를 머금기 시작하므로 이 때 고로쇠수액 채취를 시작합니다. 고로쇠나무는 해발 500이상 고지대에서 자생하는 단풍나무과의 활엽수로 지리산, 백운산 등지에 자생합니다. 천연건강음료로 즐겨 마시는 고로쇠수액에는 칼슘과 칼륨, 철분등의 영양소와 허약, 피로, 탈수현상을 예방하는 미네랄을 다양함유하고 있어 겨울철 침잠되어있던 생체리듬에 생기를 부여합니다. 또한 늦가을 결구되지 않은 배추를 월동하여 둔 "봄동 배추"를 시절식으로 먹는데, 봄동 쌈 · 봄동나물 · 봄동겉절이 · 봄동된장국 등 달고 고소한 맛이 일품입니다. 또한 음력 설이 대한 절기 즈음로 일찍 드는 해에는 떡국과 꿩고기를 시절식으로 먹기도 하였습니다.  [한민족고유문화진흥원]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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