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博文)과 박문(博聞)의 의미

 박문(博文)과 박문(博聞)의 의미

갈대가 있는 호수의 화조도
글: 만능소녀

◑글자풀이: 넓을 박(博) 글월 문(文) 넓을 박(博) 들을 문(聞). ◑뜻풀이: 박문(博文)은 학문(學問)에 널리 통(通)하여 밝다는 어근(語根)이고, 박문(博聞)은 사물(事物)을 널리 들어 많이 앎(知)이란 뜻. ◑출처: 네이버사전.

넓을 박(博)의 구성(構成)은 열 십(十)과 펼 부(尃)로 짜여있다. 십(十)에 대해 “설문(說文)”에서는 “十은 완전(完全)히 갖춘 수이다. 一은 동과 서쪽이고 丨은 남과 북쪽이니 사방(四方)과 중앙(中央)을 갖추었다.”라고 하였다. 한자(漢字)에서 숫자 십(十)은 완성수(完成數)로 여기기 때문에 신(神)이 아닌 인간(人間)에게는 부여(附與)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둑(棋)이나 무술(武術)에 있어서 그 경지(境地)가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최고 9단일뿐 10단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많다’ ‘넓다’는 뜻으로 쓰였다. 부(尃)는 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構成)되었다. 보(甫)는 갑골문(甲骨文)을 참조(參照)할 때 초목(草木)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模樣)인데, 소전(小篆)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模樣)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活用)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尃)는 밭(田)에 뿌린 곡식(穀食)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박(博)의 전체적(全體的)인 의미는 모판에 심은 농작물(農作物)의 모종(某種)을 보다 넓은(十) 땅에 옮겨 심는다(尃)는 데서 ‘넓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글월 문(文)은 가슴에 새긴 문신(文身)을 한 사람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다. 문(文)에 대해 허신(許愼)은 "설문(說文)"에서 “문(文)은 교차(交叉)하여 그린다는 뜻이다. 교차(交叉)하는 무늬를 본떴다.”고 하였다.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도 보이는데, 가슴에 다양(多樣)한 형태(形態)의 문신(文身)이 새겨진 사람의 모양(模樣)을 본뜬 것이다. 고대(古代) 장례 풍속(葬禮風俗)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신(屍身)에 문양(文樣)을 새김으로써 경건(敬虔)함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신(神)에게 알리는 소통(疏通)의 의미(意味)를 지녔다고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는 의복(衣服)이 발달(發達)되지 않은 고대시대(古代時代)에는 동물(動物)의 보호색(保護色)처럼 몸에 다양(多樣)한 형태(形態)의 문신(文身)을 새겨 넣는 풍속(風俗)이 오늘날 까지도 일부 소수민족(少數民族)에게 전해 오고 있음을 보아도 이를 유추(類推)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문(文)은 본래 어떠한 ‘무늬’를 뜻하였으나, 초기(初期)의 글자가 곧 사물(事物)의 문양(文樣)이나 모양(模樣)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이기 때문에 ‘글자’라는 뜻으로 확장(擴張)되었다. 글자의 제작원리(製作原理)인 육서(六書) 중 사물(事物)의 모양(事物模樣)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象形)과 어떠한 추상적(抽象的)인 개념(槪念)을 가리켜 만든 지사(指事)가 文(문)에 해당(該當)한다고 볼 수 있다.

넓을 박(博)의 구성(構成)은 열 십(十)과 펼 부(尃)로 짜여있다. 십(十)에 대해 “설문(說文)”에서는 “十은 완전(完全)히 갖춘 수이다. 一은 동과 서쪽이고 丨은 남과 북쪽이니 사방(四方)과 중앙(中央)을 갖추었다.”라고 하였다. 한자(漢字)에서 숫자 십(十)은 완성수(完成數)로 여기기 때문에 신(神)이 아닌 인간(人間)에게는 부여(附與)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둑(棋)이나 무술(武術)에 있어서 그 경지(境地)가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최고 9단일뿐 10단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많다’ ‘넓다’는 뜻으로 쓰였다. 부(尃)는 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構成)되었다. 보(甫)는 갑골문(甲骨文)을 참조(參照)할 때 초목(草木)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模樣)을 상형(象形)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模樣)인데, 소전(小篆)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模樣)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活用)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부(尃)는 밭(田)에 뿌린 곡식(穀食)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박(博)의 전체적(全體的)인 의미는 모판에 심은 농작물(農作物)의 모종(某種)을 보다 넓은(十) 땅에 옮겨 심는다(尃)는 데서 ‘넓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들을 문(聞)의 구성(構成)은 문 문(門)과 귀 이(耳)로 이루어진다. 문(門)은 갑골문(甲骨文)의 자형(字形) 중에서 출입문(出入門)의 상부(上部)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省略)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比較的) 온전(穩全)하게 유지(維持)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象形字)이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大門)’의 상형(象形)이다. 이(耳)는 사람의 귀 모양(模樣)을 본뜬 상형글자(象形字)다. 따라서 문(聞)의 전체적(全體的)인 의미(意味)는 외부(外部)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귀(耳)는 곧 우리 몸체(身體)의 문(門)이라는 데서 ‘듣다’라는 뜻을 지닌다. 즉 듣을 문(聞)은 '신문(新聞), 소문(所聞), 견문(見聞), 수소문(搜所聞)' 등에 사용(使用)되는 글자다. 그래서 문(門)과 귀(耳)가 결합(結合)하여 '듣다 문(聞)'을 만들어 낸 것인데 그 뜻은 소리를 듣는 문(門) 구실을 하는 귀(耳)로 ‘듣다‘. 또는 문(門) 너머의 소리, 소식을 ‘듣다‘는 뜻이다. 귀(耳)는 소식(消息), 소리(音)가 들어오는 '문'이라고 표현(表現)한 멋진 글자다. 또한 문(門) 너머의 소리(音)에 귀(耳)를 기울이고 듣는 것을 나타낸 글자다. 소리(音)를 듣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리를 들을 때 사람들의 행동(行動)을 잘 관찰(觀察)하고 누구나 인정(認定)할 수 있는 공통적(共通的)으로 발견(發見)되는 행동(行動)이나 자세(姿勢)를 보고 표현(表現)한 것이다. 문 너머에서 무슨 소리를 하나 문에 바짝 귀를 대고 집중(集中)하여 소리를 들어본 경험(經驗)들은 대부분(大部分)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소리를 집중(集中)해서 들을 때에 '듣다 문(聞)'을 연상(聯想)하시거나 귀를 만지시면서 좋은 소식(消息)이 들어오는 문이구나 하시면서 '듣다 문(聞)'을 연상(聯想)하면 쉽게 파지(破知) 될 것이다.

◑요약: 공자(孔子)께서 말했다. "군자(君子)는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단속(團束)해야 비로소 도(道)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지식(知識)은 넓을수록 좋지만 그것이 단지 지식으로만 그치고 행위와는 무관하게 되지 않기를 경계(警戒)한 말이다.

논어 `자한(子罕)`에도 공자를 칭송(稱頌)한 안자(顔子 : 이름은 回)의 말에, "공부자께서는 사람을 친근(親近)하게도 잘 이끄시어 문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셨고 예로써 나의 행동(行動)을 요약하게 해주셨다"고 한 말이 있으며, 주석(註釋)에 학문을 먼저 가르치고 예로써 요약(要約)하게 하여 주는 것은 공자의 교육 순서(順序)라고 하였다.

박학어문(博學於文)의 박문(博文)은 주희(朱熹)에 의하면 만물의 이치를 모두 알고자 하는 것을 뜻하며(道問學), 약지이례(約之以禮)의 약례(約禮)는 마음의 이치를 존양하며 성찰하는 것으로 존덕성(尊德性)이라 하였다. 이처럼 주희는 이러한 내용으로 시서(詩書)와 육례(六禮)의 이해뿐만 아니라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여 행위의 당부(當否)를 분별하는 것들도 포함하고 있다.

◑박문(博文): 또한 박문(博文)은 사물의 이치를 알아가는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요, 약례(約禮)는 바른 마음의 성(誠), 바름(正)이요, 중요함(宗)으로 그 삶의 실천 도리였다. 공자가 박문약례(博文約禮)를 교육의 지침으로 삼은 이유는 박문(博文)과 약례(約禮)를 일관(一貫)하여야만 도(道)에 도달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박문의 방법으로는 중용에 학문의 도(道)를 언급하고 있다. 널리 배우고(博學之), 자세히 묻고(審問之), 신중하게 생각하며(愼思之), 명백하게 밝히고(明辨之), 독실하게 행하라(篤行之)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지면(紙面)의 활자뿐만 아니라 문(文)과 문(文) 사이에 숨어 있는 예(禮)를 인지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우리가 따라야 할 예(禮)에 대한 실천의지로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禮)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禮)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禮)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했다.

◑해석: 사자성어 박학어문(博學於文)의 박문(博文)은 주희(朱熹)에 의하면 만물(萬物)의 이치(理致)를 모두 알고자 하는 것을 뜻하며, 박문강기(博聞强記)는 널리 사물(事物)을 보고 들어 잘 기억(記憶)하고 있음을 의미(意味)하는 말이다. ㅣ 참고: 위키백과.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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