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正變說 試論
李埰文 : 광주여자대학교 조교수
◁ 목 차 ▷
Ⅰ. 緖論
Ⅱ. 諸說의 檢討 및 批評
Ⅲ. 正變說 試論
Ⅳ. 結論
Ⅰ. 緖論
詩란 무엇이냐는 의문에 대하여 가장 정통적인 儒家들은 그것은 근본적으로 道德敎訓의 일종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리고 道德的 영향에 의한 政府가 儒家의 政治的 理想인 한은, 詩의 機能이란 또한 社會的 政治的 事件의 評論을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漢代 이후 많은 ≪詩經≫ 학자들은 ≪詩經≫에 正詩와 變詩가 있다는 확신 하에 ≪詩經≫을 연구하여 왔다. 그들은 비록 유사한 내용의 詩일지라도 그것이 正詩냐 變詩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하여 왔다. 그러므로 學者들 간에는 正詩와 變詩를 구분하는 기준의 차이에 따라 詩의 해석 또한 相異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先秦의 儒家經典은 인간에 대한 기록일 뿐 그것에서 神秘性 같은 것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漢代의 儒家에 이르러 宗敎的인 색채를 띠게 되었고 經書는 宗敎의 經典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이유는 武帝 이후 漢朝의 統治者들이 儒術을 宗敎化시켜 政治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儒術은 宗敎로 구체화되었고 經典해석 또한 그런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이렇게 詩經이 정치적으로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純文學的인 입장에서 詩經을 보려하는 경향과 相衝하여 수많은 說들이 난무하다. 특히 正變說은 더욱 그러하다. 심지어 어떤 學者는 황당무계한 說이라는 주장까지도 하고 있다.
그런데 이 正變說을 다시 들고 나온 이유는 그간의 說을 재조명해보고, 筆者 나름대로 새로운 假說을 하나 세워보려 하기 때문이다.
Ⅱ. 諸說의 檢討 및 批評
正詩와 變詩의 구분은 ≪毛詩序≫에서 비롯되었다. 毛詩序의 著者가 毛詩序를 저술한 가장 큰 목적이 바로 ≪詩經≫ 三百五篇을 正詩와 變詩로 나누어 讀者에게 자기의 사상에 따라 詩를 이해시키고자 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과연 正變說은 著者의 의도에 못지않게 後世 詩經學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批評도 나왔다.
歷代 詩經學者들의 正變에 대한 定義는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① 政敎의 盛衰에 따른 世次說.
② 頌美詩와 譏刺詩로 구분된다는 說.
③ 음악적인 분류로 樂詩냐 또는 徒詩냐로 구분된다는 說.
④ 詩體에 의하여 구분된다는 說 등이다.
이러한 諸說에 대하여 從來의 많은 詩經學者들은 자신들의 說이나, 또는 추종하는 說만 고집하여 매우 主觀的이고 斷片的이었다.
≪詩經≫의 正變說은 원래 ≪毛詩序≫에서 비롯되었고, 鄭玄․孔穎達 등이 이를 敷衍하였고, 반박론자들은 鄭樵를 비롯하여 崔述․馬瑞辰․顧頡剛․鄭振鐸 등이다.
이처럼 鄭玄과 顧炎武의 주장을 토대로 하여 正詩와 變詩를 구분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1) 世次別 區分
正詩: 文王, 武王, 成王, 康王時代
變詩: 懿王, 夷王, 幽王 以後
(2) 內容別 區分
風: 正風 - 周南, 召南(25篇)
變風 - 邶風 以下(135篇)
小雅: 正小雅 - <鹿鳴>篇부터 <菁菁者莪>篇까지(16篇 +6篇)
變小雅 - <六月>篇부터 <何草不黃>篇까지(58篇)
大雅: 正大雅 - <文王>篇부터 <卷阿>篇까지(18篇)
變大雅 - <民勞>篇부터 <召旻>篇까지(13篇)
方玉潤은 頌에도 正變이 있다하여,
頌: 正頌 - 周頌(31篇)
變頌 - 魯頌, 商頌(9篇)
으로 구분하였다. 위에서 例示한 正變詩의 구분을 토대로 諸說을 檢討․批評하고자 한다.
1. 政敎盛衰에 의한 世次說
≪毛詩序≫에서는 “王道가 衰한 시대, 禮義가 황폐한 시대, 政敎가 다스려지지 않은 시대, 각국이 정치를 달리하는 시대, 各家의 풍속이 달라진 시대에 이르러, 變風과 變雅를 지었다. 이는 國師가 政治 得失의 자취를 밝히고 인륜이 행하여지지 않음을 슬퍼하며 형벌이 가혹함을 애통히 여겨 성정을 읊어 군왕을 풍자하여 세상일이 變하였음을 통달하게 하고 옛 풍속을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뒤집어 말하면 王道가 盛한 시대, 禮義가 興한 시대, 政敎가 바른 시대, 각국의 정치가 같았던 시대, 各家의 風俗이 같았던 시대에 지어진 詩는 正風이고 正雅라는 상대적인 기술이 된다.
이를 추종하는 사람으로는 鄭玄, 孔穎達, 歐陽修 등이다. 鄭玄은 “文王․武王․周公과 成王의 태평성대에 지어진 것을 詩의 正經이라 하고, 懿王․夷王 때의 詩와 陳靈公의 음란한 일을 기록한 것이 變風과 變雅”라고 하였다.
그러나 鄭樵는 “風에 正과 變이 있다는 것은 공자가 말한 적도 없으며 다른 經書에도 기재되어 있지 않고, 다만 詩序에만 기록되어 있다.” 고 하여 正變說을 반박하고 있다. 雅의 正變에 대하여는 “詩의 순서가 모두 世次順으로 편찬되어 있어 순서가 바뀔 수 없는 것이지 詩의 正變說과는 관계없는 것” 이라고 하였다.
崔述도 “毛詩學者들이 二南은 正風이고 十三國風은 變風이라고 하였지만, 豳風의 <七月>篇․<東山>篇은 變風이라고 할 수 없다고 하였다. 즉 처음부터 正變의 구분은 없었고, 다만 二南중의 <關雎>篇․<鵲巢>篇․<麟之趾>篇․<騶虞>篇이 燕射에 불리던 詩歌이기 때문에 散佚되지 않은 것뿐인데, 이 몇 편만으로 二南을 모두 正風이라 단정하고, 十三國風은 變風이라 단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顧頡剛도 “政治의 盛衰, 道德의 優劣, 시대의 早晩, 詩篇의 先後라는 네 가지 일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들이 주장하는 正變說은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正變說을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詩經≫의 正變이 政敎의 盛衰와 禮義의 優劣에 의한 世次와 관계가 있다는 說은 ≪毛詩序≫ 著者의 오류에서 기인한 불합리한 說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2. 美詩 刺詩說
≪毛詩≫의 小序는 ≪詩經≫ 每篇의 첫머리에 美刺로써 詩意를 요약하고 있다. 이러한 詩의 美刺를 詩의 正變과 연관시킨 것은 孔穎達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지금의 정치와 교화, 선과 악은 그것이 正과 變에 통하여, 美와 刺를 겸하고 있다.”고 하여 詩의 美刺에 의해 正變의 구분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劉瑾과 汪琬이 이 설을 추종하고 있으며, 惠周惕도 美라는 것은 勸諭하는 것이므로 正이고, 刺라는 것은 懲戒하는 것이므로 變이라는 주장이다.
錢穆도 ≪詩經≫은 文學性과 經學的인 政治性의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 兩面性을 종합하여 詩를 연구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世次說과 美刺說 모두를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鄭樵는 “美를 正으로 하고 刺를 變으로 한다면, 邶鄘衛의 詩는 變風이라고 하여도 좋다. 그런데 鄭風의 <緇衣>篇은 武公을 기린 것이고, 陳風의 <駟驖>篇과 <小戎>篇은 襄公을 기린 것인데도 變風이라고 하겠는가?”라고 하여 美刺에 의한 正變의 구분이 옳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崔述도 정치가 잘 다스려질 때도 刺詩가 있을 수 있고, 쇠퇴할 시기에도 美詩는 있을 수 있는 것임을 내세워 毛詩序의 美刺 基準이 不合理함을 말하고 있으며, 鄭振鐸도 “가령 詩序가 말한 美刺의 뜻이 틀림없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美刺의 뜻으로 詩를 읽어 가면, 그 결과는 더욱 불행해지고 도리어 많은 회의를 가지게 되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詩序가 기리고 나무라는데 일정한 표준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편의 같은 뜻, 심지어 詞句도 서로 비슷한 詩가 있는데, 周南에서는 기리는 것이 되고 鄭風에서는 오히려 나무라는 것으로 변하였다.
혹은 두 편이 함께 衛風이나 혹은 小雅에 있는 같은 詩인데, 武王이나 宣王에게 귀착시키면 기리는 것이 되고, 幽王이나 厲王이 되면 나무라는 것이 되고 있다.” 라고 하여, 美刺說의 가장 큰 모순은 同一한 내용의 詩인데, 國別과 世次別, 時代의 早晩에 따라 美刺의 판정이 달라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여 반박하고 있다.
3. 樂詩․徒詩說
≪詩經≫ 三百五篇이 樂詩냐 徒詩냐하는 說은 宋代까지는 별로 문제점으로 부각되지 않았는데, 程大昌에 이르러 “詩에 음악이 들어간 것을 고찰하여 보면, 邶부터 豳까지는 한 편의 詩에도 헤아려지는 것이 없다.
燕享에는 <鹿鳴>이 쓰이고, 鄕飮酒에는 <由庚>과 <鵲巢>가 笙으로 불렸으며, 燕射에는 <騶虞>와 <菜蘋>을 연주하는 등, 이와 같은 類들이고 南과 雅의 外에는 나오는 것이 없다. 그런 것으로 보아 南․雅와 頌은 樂詩이고 諸國의 詩는 徒詩인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즉 程大昌은 ≪詩經≫중에서 儀禮에 쓰인 詩歌로는 南․雅외에는 없는 것으로 보아 南․雅․頌만이 樂詩이고 나머지 國風은 徒詩라고 주장하였다.
또 顧炎武도 “<鐘鼓>詩에 말하기를: 二雅二南이라 하고, 孔子가 말하기를: 雅頌이 각기 제자리를 얻었다고 하였다. 二南과 豳의 七月과, 小雅의 正十六篇, 大雅의 正十八篇 그리고 頌은 시에 음악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邶이하 十二國은 二南 뒤에 붙여져 變風이라 하고, <鴟鴞>이하 六篇은 豳에 붙여져 또한 變風이라고 하며, <六月>이하 五十八篇은 小雅에 붙여져 있고 <民勞>이하 十三篇은 大雅에 붙여져서 變雅라고 하며 詩에 음악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들이다.” 라고 하여 程大昌의 說을 강력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詩三百五篇중에 樂詩와 徒詩가 있다는 說에 대하여는 많은 학자들이 반론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馬瑞辰은 “詩三百篇에는 음악이 들어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墨子 公孟篇에 말하기를: ‘詩三百을 읊고, 詩三百을 연주하며, 詩三百을 노래하고, 詩三百을 춤추었다.’ 하였고, 鄭風 <靑衿>篇의 毛傳에 말하기를: ‘옛날에는 詩를 음악으로 가르치니 읊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을 추었다 한다.
그 說은 墨子에 근거를 두고 있다.’ 라고 하였다. 三百篇은 모두 읊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출 수 있었다. 만약에 詩에 모두 음악이 들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六詩를 모두 六律로 音을 맞추었겠는가? 어떻게 三百篇을 다 같이 읊을 수 있고 연주할 수 있으며, 노래할 수 있고 춤출 수 있었겠는가? ≪左傳≫에 ‘吳의 季札이 周의 음악을 보기를 請하므로 樂工을 시켜 周南․召南 및 十二國을 노래하게 했다.’ 고 했다.
만약에 音樂이 들어 있지 않다면 十四國의 詩가 모두 周樂일 수 없다. 史記에 말하기를 ‘詩三百五篇은 孔子가 모두 연주하고 노래하여 韶武와 雅頌에 맞추었다.’ 고 했다.
만약에 음악이 들어 있지 않다면 三百五篇은 모두 韶武와 雅頌에 맞출 수 없다. 程大昌이 ‘南雅頌은 樂詩이고 邶부터 豳까지는 모두 음악이 들어가지 않은 徒詩이다.’ 라고 하였는데 그 說은 잘못이다.”라고 하여, ≪墨子≫․≪毛傳≫․≪左傳≫․≪史記≫ 등의 典籍에 기재된 證據를 들어 程大昌의 說을 일축하고 있다. 顧頡剛도 이러한 說은 樂歌는 모두가 正歌라는 오해 때문에 생겨난 잘못된 주장이며, ≪詩經≫은 모두 樂歌라고 하였다.
4. 詩體說
≪詩經≫의 正變이 詩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 학자는 方玉潤이다.
그는 “이른바 變이라는 것이 모두가 꼭 衰微한 시대에 나온 음악이거나 혹은 음란하고 사악한 생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體裁에는 이상격의 音律이 있어 變換하기 때문에 變이라고 하는 것뿐이다.”라고 하였다.
方玉潤의 이 말은 變詩라는 것이 반드시 衰世之音에서 나오거나 淫邪之思가 있는 것만이 아니라, 다만 體裁와 格律이 다른 것이 있는데, 그 變換한 것이 바로 變詩라는 것이다. 詩의 正變이 詩體와 有關하다는 그의 說은 美刺說과 正變頌說을 합하여 설명한 것인 듯하다.
결국 ≪詩經≫의 正變說에서 政敎의 盛衰에 의한 世次說은 ≪詩經≫이 정치의 성쇠에 의한 世次로 편찬된 것이 아니므로 성립될 수 없는 說이고, 美詩와 刺詩說은 毛詩의 小序를 추종한 說이나 ≪毛詩序≫의 美刺의 판정 기준이 애매하여 유사한 詩意의 詩일지라도 자기 나름대로의 世次와 地域에 따라 정반대의 판정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에 성립될 수 없는 說이다. 樂詩와 徒詩說은 ≪詩經≫全篇이 樂詩라는 것이 고증되어 있어 성립될 수 없고, 詩體說은 美刺說과 正變頌說을 혼합한 주장이다.
다만 風과 雅를 正變으로 구분하는 것은 노래한 내용 여하에 따른 것이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특히 儒家의 政治觀에 의해 그렇게 규정된 것이라고 하겠다. ≪詩經≫의 編次로 볼 때 十五國風․小雅․大雅에 걸쳐 正變의 차례로 편성된 것만은 사실이므로 ≪詩經》을 編次할 때에 正變에 준한 관념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래서 筆者는 하나의 새로운 假說을 도출해 보려 하는 것이다.
Ⅲ. 正變說 試論
오늘날 우리는 ≪詩經≫을 문학의 영역으로 끌어와서 감상하고 연구한다. 그러나 古代의 詩는 문학이기 이전에 종합적인 문화의 일부였다. 즉 古代의 문화가 韻文의 형식으로 응축되어 표현된 것이 詩이다. 古代의 詩가 독립적인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詩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詩가 포함되어 있는 전체적인 틀을 파악하고 그 틀 속에서 詩의 위상과 가치를 이해해야 한다.
≪詩經≫은 周代의 樂歌였다. 春秋이전에는 禮와 樂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儀禮를 행함에는 반드시 樂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禮樂으로 통칭되어 왔다.
禮樂制度 가운데 樂은 단순히 音樂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詩樂舞가 三位一體가 되어 있었으니 樂은 실제로 당시 문학예술의 중요한 節目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여러 가지 문학예술을 總稱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당시 문학예술의 중요한 節目에 속한 樂이 어떻게 변화하였고 運用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正變說의 의미도 새롭게 설정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 ‘變’의 의미
古來로 ‘變’의 의미는 ‘변화하다’, ‘바뀌다’, ‘대체되다’, ‘고치다’, ‘정상(天常)적이지 않은 것’, ‘역행(逆行)하는 것’, ‘어지럽다(亂)’, ‘俗된 것’, ‘새로운 것’, ‘변화된 것’의 뜻으로 풀이되어 왔다.
그런데 正變說에서의 ‘正’은 ‘옳고’, ‘바르고’, ‘우아한’ 것이라면, ‘變’은 ‘변화되고’, ‘새롭고’, ‘속된’ 것의 의미로 定義될 수 있겠다.
2. 새로운 음악(新聲)의 발생
周代의 文藝(詩와 樂)는 그 지위와 작용이 의심할 바 없이 당시 통치자들이 이를 이용하여 정치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대변혁의 시기로 진입함에 따라서 모든 낡은 사물과 낡은 제도는 새로운 가치기준에 의해 재평가될 수밖에 없었고, 詩․書․禮․樂 역시 예외가 있을 수 없었다.
春秋戰國시대의 격렬한 사회 변혁과 개혁 운동 과정에서 각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들은 관점과 태도를 달리해 음악 사상의 영역에서도 날카로운 투쟁이 벌어졌다. 西周 초기에 규정한 禮樂 제도는 왕권이 쇠퇴하면서 효력을 잃었다. 즉 禮樂의 숭고한 지위는 땅 아래로 추락하고 끝내 회복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통치계급은 주로 백성을 통치하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하여 여전히 祭祀와 관련된 音樂을 중시하여, 頌과 雅, 고대 樂舞를 중시하고, 민간 음악은 경시하고 억압하였으며, 음악을 이용하는데 등급제도와 기타 규칙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당시 통치 계급과 音樂 文化의 관계를 보면 모순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그것은 곧 새로운 음악의 출현이었다.
韓非子에는 “衛나라 靈公이 晉나라로 가다, 濮水에 이르러 수레를 풀고 잠잘 곳을 설치했는데, 야밤에 新聲을 연주하는 것을 듣고는 즐거워하였다. 그리고는 악사인 師涓으로 하여금 그것을 익히게 하였고, 晉나라에 이르러 平公을 위하여 그것을 연주하였다. 그러자 악사인 師曠이 손으로 제지하며 말하길 ‘멈추시오. 이것은 亡國之音이오.’”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당시에 새로운 음악(新聲)이 출현하였음을 나타내는 증거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詩敎와 樂敎가 불분명하던 시대에 古樂이 쇠퇴하고 新樂이 성행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고, 아울러 正聲은 衰微하고 新聲이 興起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國語≫에는 平公이 新聲을 매우 좋아하자, 師曠이 그것을 제지하는데, 이것은 平公 때에 이미 新聲, 즉 새로운 형태의 음악이 유행하였음을 나타내는 것이며, ≪禮記․樂記≫ 魏文侯篇에서도 “내가 면류관을 쓰고 古樂을 들으면 잠이 오고, 鄭나라와 衛나라의 음악을 들으면 피곤한 줄 모릅니다. 감히 묻건대 古樂은 왜 그러하며, 新樂은 왜 그렇소?”라고 子夏에게 묻는 내용이 나온다.
이것은 魏文侯도 新樂을 듣고 즐거워한 것으로 보아, 일반 백성들은 당연히 새로운 음악에 도취되어 빠른 속도로 유행하였음이 확실하다. 이런 까닭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위정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溺音(음란하고 방종한 음)이라고 폄하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子夏는 아울러 溺音을 설명하면서 變風에 해당되는 詩들을 “鄭나라 音은 방종에 흘러 뜻을 음란하게 하며, 宋나라 音은 여색에 유혹되어 뜻을 미혹되게 하며, 衛나라 音은 너무 빨라 뜻을 번거롭게 하고, 齊나라 音은 오만하고 편벽되어 뜻을 교만하게 합니다. 이 네 가지는 모두 色에 淫亂하고 德에 해롭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당시 새로 출현한 각국의 음악 특징을 설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鄭나라의 음악은 음률이 자유스러웠고, 宋나라의 음악은 내용이 외설스러워 색정적이었으며, 衛나라의 음악은 리듬이 빠르면서도 순박하였으며, 齊나라의 음악은 도도하고 자신감이 넘쳐흘렀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음악이 발생하여 널리 유행하게 되자, 그 폐해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漢書 樂志≫에는 “桑間․濮上․鄭․衛․宋․趙의 소리가 함께 크게 일어나, 안으로는 병들고 목숨을 손상시키는데 이르렀고, 밖으로는 정치를 어지럽히고 백성을 상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새로운 음악이 정치 교화에 미치는 영향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3. 音樂 運用의 실제
周代 통치계급은 어떤 방법으로 음악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영향을 끼쳤는가? 그것은 등급제도 종교의례와 밀접히 관련된 음악적 집단 활동을 통해서였다.
통치계급은 樂舞를 특별히 중시하고 강조하였으며, 고급 樂官들을 시켜 자신들의 의도대로 樂舞로써 선전하고 교육하였다. 즉 이런 음악은 당시의 현실 투쟁과는 직접적 관계가 거의 없어 통치 계급이 왜곡 이용하기에 가장 편리하였기 때문이다.
當時의 통치계급은 音樂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等級制度․宗敎․儀禮와 밀접히 관련된 음악적 집단 활동을 통해서 農民과 奴隸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周나라 때에는 1) 祭祀 2) 祈雨 驅疫 3) 燕禮 4) 射儀 5) 王師大獻 등에 음악을 이용하였는데, 一例로 燕禮에 쓰인 음악 목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① 工歌: <鹿鳴>․<四牡>․<皇皇者華>를 전문 악공이 세 곡을 연주하고 노래한다.
② 笙奏: <南陔>․<白華>․<禾黍>를 笙으로 세 곡 연주한다.
③ 間歌: <魚麗>를 노래하고, <由庚>을 笙으로 연주한다.
<南有嘉魚>를 노래하고 <崇丘>를 笙으로 연주한다.
<南山有臺>를 노래하고 <由儀>를 笙으로 연주한다. 가창과 기악을 번갈아 여섯 곡을 3회 순환한다.
④ 鄕樂: 周南의 <關雎>․<葛覃>․<卷耳>
召南의 <鵲巢>․<采蘩>․<采蘋>을 군중이 여섯 곡을 합창한다.
여기에 열거된 모든 시들은 다 正詩에 해당되는 것들이다. 즉 다시 말하면 正詩만이 燕禮나 鄕飮酒禮에 사용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程大昌도 “燕享에는 <鹿鳴>이 쓰이고 鄕飮酒에는 <由庚>과 <鵲巢>가 笙으로 불렸으며, 燕射에는 <騶虞>와 <菜蘋>을 연주하는 등, 이와 같은 類들이고 南과 雅의 外에는 나오는 것이 없다.”고 하였으며, 崔述도 “二南중의 <關雎>篇․<鵲巢>篇․<麟之趾>篇․<騶虞>篇이 燕射時에 불리던 詩歌이기 때문에 散佚되지 않았다.” 고 하였다.
또 ≪樂記≫ 魏文侯篇에는 “鄭․宋․衛․齊 이 네 가지는 모두 色에 음란하여 德에 해롭습니다. 이런 까닭에 제사에 사용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고, 朱熹도 “二南은 正風이고 규방의 음악이며 시골의 음악이다. 二雅의 正雅는 朝廷의 음악이다. 商周의 頌은 宗廟의 음악이다. 變雅는 周가 쇠퇴한 때 卿士가 지은 것으로 시대의 득실을 말한 것이고, 邶와 鄘이하는 太師가 백성들의 풍속을 보고 진술한 것이어서 宗廟나 燕享에 쓰인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二南․二雅․商周의 詩는 音樂의 差異에서 오는 구분이며, 變雅와 邶이하의 詩는 宗廟와 燕饗에 쓰일 수 없는 音樂 用途上의 差異에서 오는 구별이다. 즉 다시 말해 ‘正’의 의미는 朝廷이나 宗廟의 행사에 쓰일 수 있는 음악이고, ‘變’은 음악상의 차이로 말미암아 朝廷의 燕饗이나 宗廟의 祭禮에 쓰일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상의 事例들로 볼 때 正詩와 變詩의 구분은 音樂의 用途 差異에 따른 區分이라고 확정지을 수 있다.
Ⅳ. 結論
詩經의 正變說은 毛詩序에서 비롯되었는데, 漢代의 ≪詩經≫ 해설을 보면 음악적 의미와 언어적 의미가 섞여있는 경우가 많다. ≪詩大序≫에서 詩의 발생원리, 정치와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나 詩가 政治․敎化에 유용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禮記․樂記≫와 흡사하다.
漢代의 이러한 詩 해설은 오늘날 漢代 儒學者는 詩를 곡해했다고 비판받는 빌미가 되었다. 하지만 詩의 창작과 채집에서부터 실제 詩를 운용하는 용도와 활용에서 그 과정이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기 때문에 詩를 이해하는 방법에서 괴리가 생길 수 있다.
그 괴리의 대표적인 것이 音樂的 의미와 言語的 의미 사이에서 비롯되는 괴리일 것이다. 詩의 향유 계층과 운용 상황에 따라 詩를 언어적 의미로 감상하여 활용할 수도 있고, 音樂에 운용될 수 도 있다. 言語的 의미로 활용되고 이해한다면 본래 詩의 이지와 정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音樂에 사용되고 그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詩 자체가 가지는 이지와 정감과는 괴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音樂은 禮에서 분화되어 나왔지만, 분화된 후에도 여전히 禮治主義의 敎化原理를 따랐고, 예치주의의 교화원리는 많은 경우 詩 자체가 지니는 含意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漢代 유학자의 詩 해설은 詩의 音樂的 의미와 言語的 의미 사이에서 오는 괴리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그 괴리가 바로 詩가 音樂에서 분화된 것이기 때문에 詩 자체만을 문학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려 하는 지금 ≪詩經≫ 正變說을 터무니없는 說로 느낄 수밖에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詩經≫이 당시 音樂的 의미로 더 중시되었음을 파악할 때, 우리는 正變說의 실체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筆者는 ‘變’의 의미를 ‘변화된 것’, ‘새로운 것’, ‘속된 것’으로 보고, 變詩라 함은 ‘雅樂’에 대별되는 ‘俗樂’의 의미로도 定義내릴 수 있다.
≪詩經≫ 正變說이 漢代 經學 환경과 정치적 目的에 의해서 발생된 측면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황당무계한 說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詩經≫의 詩들이 지어지고 채집되어 형성될 당시에, 새로운 음악이 각국에서 발생하여 이와 결합하였다. 그런 관계로 周나라가 부흥할 당시 正樂에 맞추어 노래 불리어졌던 詩들과, 이 후 새로운 음악에 맞추어 지어진 詩들과는 서로 다른 차별이 있었던 것으로 筆者는 이해하였다.
當時의 音樂環境 下에서 보더라도 이러한 證據는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正詩와 變詩의 區分基準은 當時 音樂의 用途 差異에서 오는 區別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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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提要】
風雅正變說是詩經學的重要課題, 其正變之說影響우尤大。風雅正變說見於于詩序, 此後鄭玄在詩譜序將這一點明確揭示出來。
風雅正變說是毛詩對中國詩學理論所作出的重大貢獻, 它不僅發展了左傳荀子樂論禮記樂記關於于音律以知政的思想, 更重的是從理論上解決了在封建專制制度之下詩歌批評現實政治的問題, 從而完善了中國傳統詩論中的美刺學說。
本文在有些問題上諸說, 通過諸說的平議, 提出自己的見解。
【主題語】
詩經, 正變說, 禮樂, 儀禮, 正樂, 俗樂, 新聲, 用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