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맛 ㅣ 백석의 거미詩 '수라'를 읽는 감동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어느젠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 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 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삭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 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 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이 보드라운 종이에 받아
또 문 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와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슬퍼한다
* 수라 : 아수라(阿修羅)를 말한다. 서로 싸우고 물고뜯는 곳으로 혼돈과 번뇌로 가득찬 세계. 수라(修羅)는 싸움 잘하는 사나운 귀신의 이름을 가리킨다.
* 삭기도 : 가라앉기도, 누그러지기도
* 가제 : 갓, 막
식민지 이산의 고통?
[빈섬의 읽기] 제목이 수라(修羅)인 것은, 거미라는 벌레가 인간에게 인식되어온 이미지와 형상을 담은 것으로 느껴진다. 흉칙하고 잔인하고 사납고 음흉하며 호전적인 벌레. 그런데 거미가족의 아우성이 '아수라장'에 값한다.
백석이 일제 식민지의 참상과 이산(移散)의 고통을 은유하고 있다고 읽는, 해설들을 읽는다. 그럴 개연성이야 있다. 하지만, 시의 구절들은 방안에 들어온 거미들을 거듭 내쫓는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식민지 이산가족에 대한 연민을 다루려고 했다면, 가책을 느끼면서도 행하는 이런 행동은 어쩐지 무책임한 연민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당시 현실적 상황을 접목하여, 이 시를 해설하는 일을 그르다 하기는 어렵지만, 굳이 그가 시대상의 심경을 거미에 빗대어 담지 않았다고 해도 이 시는 감동과 여운을 충분히 담고 있다.
방에 들어온 거미를 잇달아 내다버린 백석
백석은, 방바닥에 거미 한 마리가 들어온 것을 무심코 밖으로 쓸어내버렸다. 우리가 이 벌레에 대해서 지닌, 거의 본능적인 거부감이 작동한 것이다. 거미는 방바닥에서 내보내야할 존재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게 체구가 좀 작은, 새끼 거미다. 그 '어린 것'을 버리려다 보니, 문득 뭔가 켕긴다. 밖이 너무 차디찬 계절이기 때문이다. 저 녀석도 그것을 피해서 들어왔을 것인데, 다시 내쫓으니 미안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하며 새끼 거미를 버린 뒤에, 그는 다시 방에 들어온 큰 거미를 발견한다. 그걸 다시 쓸어버리려니 이번엔 전에 버린 새끼 생각이 떠오른다. 자식을 찾아온 어미거미쯤 되나보다. 시인은, 너의 새끼는 여기 없고 내가 밖에 내쫓았으니 거기서 찾아서 보살펴 보렴. 이런 생각을 하며, 큰 거미를 쓸어 내보낸다. 어쨌든 모자 거미를 다 버린 셈이 되었으니, 서럽고 아린 마음이 없지 않았다.
또 한 마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사실 여기까지는, 백석의 상상이 개입된 스토리였다. 그 새끼와 그 어미가 모자일 것이라고 여긴 것도, 어미가 새끼를 찾아 다시 이방에 들어왔다는 것도, 다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짐작이었을 뿐이다. 아마도 백석이 이 시를 쓰게 된 것도 다음 상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좁쌀만한 알에서 갓 깨어 나온 듯한 새끼거미 한 마리. 이 거미가 큰 거미를 내보낸 딱 그 자리쯤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것이다.
백석은 이 세 마리의 거미가 지닌 '연결성'을, 그것들이 발견된 장소에서 찾아낸다. 첫 새끼거미 쓸어낸 곳에, 큰 거미가 왔고, 그 큰 거미 없앤 곳에 더 어린 거미가 온 것이다. 이게 어떻게 우연이겠는가. 시인의 감관으로 그걸 포착한다.
세 마리 거미의 연결이 돋운, 처연한 감정이입
이 대목에서 '가슴이 메이는 듯'한 까닭은, 자식과 어미와 또다른 자식과의 연결성이 돋운, 처연한 감정이입 때문이다. 내 어머니와 나와 내 아우처럼, 제 몸 얹을 자리 하나 마련하지 못한 채 내몰리고 내쫓기는 그 설움이 복받친다.
여기서, 영화로 치자면 관객들이 모두 눈시울을 적시고 있을 장면이 나온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어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백석이 보인, '갓난이 거미'에 대한 태도
백석은 죄다 쓸어내버린 이 거미 가족 앞에서, 이제 갓 태어나자마자 다시 같은 운명을 겪을 어린 것과 무엇이라도 잠시 서로 마음이라도 나눌까 하여, 전에 없던 태도를 취한다. 그 흉칙한 거미를 손에 올라오라고 내민다.
그런데, 지금 혼자 무서워서 울고불고 하고 있을 이 새끼는 그 손가락이 무섭다면서 슬금슬금 달아난다. 사실 당연한 반응인데, 내가 괜히 서럽다.
그 뒤에 백석이 한 행동이 더 기막히다. 그는 어김없이 다만 조심스럽게 이 놈을 종이에 받아올려 문밖으로 내버린 것이다.
종이에 받아올려, 버리는 태도
이 이중적 행동은, 거미라는 존재에 대한 기본적 태도와, 거미 또한 한번뿐인 생명을 지닌 가족의 일부라는 '해석된 태도'가 순각적으로 교차하는 데서 나왔을 것이다. 해석된 태도는, 종이에 받아올려 고이 버려준 일이다.
인간과 거미의 관계에서, 그 '버림'의 법칙은 결코 변함이 없지만, 백석은 그 거미가족에 대한 공감과 동정을 쉬 버릴 수 없었기에 그 슬픔과 바램을 여기 시 속에 얽어놓았을 것이다. 엄마와 누나나 형이 어린 거미 걱정을 하며 기다리다가 내가 버린 그 자리로 돌아온 아기를 반기기를 바라면서.
더뷰스 시의맛 리뷰어 빈섬 이상국 isomis@naver.com
출처 : 더뷰스(http://www.thevi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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