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는 왜 교회와 기적을 비판했을까

 톨스토이는 왜 교회와 기적을 비판했을까

톨스토이는, 교회가 정통과 이단을 나누면서 생겨난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이단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은, 스스로의 교회가 무오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소독 장치 같은 것이다. 이단을 배척하는 일은, 오류를 극복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리스도의 원래 뜻을 이탈해버린 것에 대한 오래된 자의식이, 자기 수정보다는 이단의 제압 형태로 나타나는 셈이다.

핫리뷰 : 기독교도 다석 류영모, 사상적 스승인 톨스토이에 충격

다석 류영모(1890-1981)를 좇아가다 보니 톨스토이라는 놀라운 종교혁명가를 만난다. 주류로 군림해온 정통기독교에 대해 맹렬한 반기를 드는 이 혁명가는, 류영모에게도 충격의 울림을 주었다.

톨스토이가 묘사한 예수
톨스토이는 기독교의 탄생을 이렇게 묘사한다.
"지금으로부터 1,800년전의 일이다. 이교도들이 사는 고대 로마세계 한가운데 이상하고도 새로운 가르침이 나타났다. 그 어떤 옛날 종교와도 같지 않았던 이 가르침은 예수라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 가르침은 형태와 내용 면에서 그것이 유래된 유대인의 율법에 비해 완벽하게 새로웠다. 그것이 설교되고 전파된 로마세계에서는 더욱더 그러했다."
새로운 가르침은 어떤 것이었을까. 옛종교들이 강조하던 모든 규칙은 없고 오직 내면적 완성과 진리, 그리스도의 화신인 사랑을 내세운다.

사랑, 그 내면적 완성이 신의 나라
이 가르침은 또한 사람들이 마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내면적 완성의 결과를 '신의 나라'라고 했다. 그간 예언자들이 예언해온 외형적인 형상이, 바로 저 내면에 있는 것이었다.
과거의 종교는 명령을 불이행할 경우 규정된 처벌로 위협하고 잘 이행할 경우 보상을 약속했지만, 이 가르침은 그러지 않았다. 오직 그것 자체가 진리였으며 사람들을 그 안으로 이끌었다.

행복함의 차이는, 속도의 차이일 뿐
이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의 행복의 양이 많거나 적은 까닭은 내적 완성의 정도가 심판한 것이 아니라, 내적 완성으로 나아가는 속도의 차이일 뿐이었다. 행복은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대중이 보기에도 아주 쉽고 분명한 메시지였다.
그런데 이 종교의 탄생을 잘못 가르치는 사람이 생겨났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초자연적인 '기적'의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가르침의 진리가 마음의 필요나 사람의 본질과 일치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기적의 전파에 의해 증명되는 것이라는 믿음을 불어넣었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톨스토이
"기독교 대중화를 위해, '기적'을 동원"
톨스토이는, 기독교 초창기 진리가 정확하게 대중에게 전해지지 못했기에, 진리에 대한 외부적인 증거를 만들어 강조하기 위해 '기적'이 동원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또 '그리스도는 신이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뭔가 강력한 증빙자료가 필요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가 모호해지면 모호해질수록 교회는 더 많은 기적을 삽입했다. 기적을 삽입하면 할수록 교리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났고 더욱 부자연스러워졌고 모호해졌다.
이 이탈과 부자연스러움과 모호함을 방어하기 위해, 교회는 더 강력하게 '무오류'를 주장하는 역설에 빠졌다.질문을 금지한 것이다.

부자연스러움을 방어하기 위해, 질문을 금지
'기적'의 남발과 무오류 주장 사이에서 대중은 이 종교의 교리를 더욱 더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성령(신)이 사도들을 통해 말했다>는 '기적(신이 인간에게 직접 말했다?)'을 증명하기 위해, '오순절 불의 혀' 이벤트가 나오고, 죽은 자를 생명체로 부활시키고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을 재연해보이면서 교리를 조건없이 믿도록 강요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처음에 말했던 '사랑'의 실천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것이 내면의 사랑을 완성하여 신의 나라인 외연으로 나아가는데 무슨 힘이 되는가.

성서의 '교회'라는 말은, 가르침의 모임일 뿐
또 톨스토이는 <그리스도는 교회를 세우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복음서에는 두 차례 '교회'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그 뜻은 이후의 교회시스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가르침의 모임'이란 뜻에 불과했다.
그외에 교회라는 기관에 대한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교리문답은 교회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교리문답의 '교회' 정의
"교회는 신자들의 단체로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설립됐다."(가톨릭 교리문답)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땅 위에 세워진 단체다."(그리스 정교회 교리문답)
"교회는 성스러운 기독교 또는 그들의 우두머리인 그리스도 아래 있는 모든 신자들의 모임이다."(루터교회 교리문답)
그나마 루터교회가 그리스도가 생각했던 교회에 가까울지 모른다. 세상의 교회가 하나임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가 하나 밖에 없다면, 스스로를 교회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교회가 '우리'를 묶는 파벌의 구실로
신자들이 서로 반대되는 파벌로 나뉘어져 서로를 부정하고 부인할 때에야 '우리'를 묶는 교회가 생겨난다. 파벌은 자신의 교회만을 무오류라고 주장한다. 상대는 이단이라고 부른다.
교회는 정통과 이단을 나누면서 생겨난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단에 대한 적개심과 경멸은, 스스로의 교회가 무오류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소독 장치 같은 것이다. 이단을 배척하는 일은, 오류를 극복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리스도의 원래 뜻을 이탈해버린 것에 대한 오래된 자의식이, 자기 수정보다는 이단의 제압 형태로 나타나는 셈이다.
"그리스도는 '이단'을 비판하라고 하지 않았다"
톨스토이는 이단을 비판하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 가르침의 정신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며 실행한다고 주장할 수가 없다. 이런 주장 자체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교회는, 기독교(그리스도의 가르침)를 배격하는 단체라는 것이다.

"교회와 기독교엔 공통점이 없다"
톨스토이는 "이름을 제외하고는 교회와 기독교 사이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지적한다. 양쪽이 적대적인 까닭은, 교회는 교만, 폭력, 자기주장, 정체, 죽음을 대표하고, 기독교는 온유, 회개, 겸양, 진보, 생명을 대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와 교회가 적대적이라는 톨스토이의 주장에 대해 이런 반문이 등장한다. "교회가 기독교로부터 벗어났을 수도 있고, 그들이 잘못했을 수도 있지만, 교회가 기독교에 적대적일 수 없지 않나요?"
그는 대답한다 "그 행위의 결과가 기독교를 왜곡한 것이라면, 그 교회 사람들이 아무리 선하더라도 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교회의 일은 기독교적이지 않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자들의 선함과 장점은 그들의 선함과 장점일 뿐이지 그들이 섬기는 교회의 선함과 장점일 수 없습니다."

오산학교에 교회기독교를 전파한 다석의 쇼크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교회기독교를 비판한 톨스토이를 접한 류영모는, 얼굴이 화끈거렸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교회를 기웃거리며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오산학교에 전파까지 했던 그였다. 이 성자도 문득 책을 덮고 세계의 한 지축이 무너지는 듯한 현기증에 사로잡혀 있었을지 모른다.

더뷰스 핫리뷰 빈섬 이상국 isomis@naver.com
출처 : 더뷰스(http://www.theviews.co.kr)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댓글 쓰기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