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俠客) 황비홍의 수제자 임세영(林世榮)

 협객(俠客) 황비홍의 수제자 임세영(林世榮)

임세영(林世榮. 1861~1943)


중국 광동성 남해 평주진(平州鎭) 평북서하항촌(平北西河村) 촐생.

어려서 할아버지에게 집안대대로 내려오던 무술을 익히고 청소년기에 돼지정육점(도살업을 겸함)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에 임복성(林福成)과 오전미(吳全美), 황비홍(黃飛鴻) 등 당대의 무술고수 20여명으로부터 무술을 배웠다.  후일 청나라의 복건군(福建軍)의 총교련(무술사범)을 지냈다. 광주부(廣州府)에서는 광주 동교장(東較場) 에서 무술대회를 개최한다. 임세영을 비룻한 많은 무술인들이 참여하였는데 임세영은 10몀이 넘는 상대자들을 격파하고 1등을 차지하면서 그 이름이 광주에 널리 퍼지게 된다. 이후로 임세영은 광주에 3곳의 무술관을 개업하게 된다. 1921년 광주고아원 건립을 위한 자선모금회에 참석하여 6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직접 무술시범을 보이자 마침 참석해 있던 손중산(孫中山)으로부터 칭찮을 받고 대총통(大總統. 손중산을 의미) 명의의 상품과 상금을 받는다.

그러나 임세영에게도 뜻밖의 사건이 찾아오니 이것이 그 인생행로에 큰 변화가 된다. 광주의 낙선극원(樂善劇院. 경극을 하는 극장)의 경비인 이세계(李世桂)는 임세영의 명성에 늘 질투를 하고 있었다. 어느날 임세영이 제자들을 대동하고 낙선극원에서 관람을 구하고 있는데 갑자기 이세계가 한무리를 이끌고 임세영을 습격한다. 임세영은 황급히 돌로 극장의 대형실내등을 깨뜨려 어두워진 틈을 타 현장을 빠져나온다. 극장은 현상금을 걸고 임세영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으나 임세영은 얼마후 홍콩으로 피신해 버린다.

홍콩이주후 임세영은 곧장 도장을 열어 제자들을 받아들이니 주우제(朱愚齋), 황문계(黃文啓), 이세휘(李世輝)가 그들이다. 이들이 스승의 무술권보(武術拳譜)를 만드는 작업을 시작해 공자복호권(工字伏虎拳), 호학쌍형권(虎鶴雙形拳), 철선권鐵線拳)을 간행하였는데 대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당시만해도 무술의 고수들이 자신의 절기를 전하는 것도 꺼려하였는데 하물며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상상도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임세영의 결단으로 그의 무술기예가 책으로 만들어져 보급되자 일반인들의 관심은 더욱 고조되었고 이런 영향는 동남아를 위시해 멀리 미주까지 퍼지게 된다. 그 일생동안 약 1만여명의 제자들을 배출하였고 무엇보다도 황비홍의 적통 제자로서 그 무술을 전수하였다는 점에 세인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1943년 고향인 평주(平州)에서 8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 사후 제자인 주우제(朱愚齋)가 임세영정전(林世榮正傳), 황문계(黃文啓)가 선사임공세영전(先師林公世榮傳)을 지어 그의 일대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다. 아래는 그중에서 주요한 에피소드를 몇 개 꼽아보았다.

 

<▲ 영화 임세영에서 임세영 역을 맡은 홍금보(우측)> 


'돼지고기 세영(猪肉榮)' 이라는 별명

임세영의 조부(林伯善)는 원래 무술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손자 세영이 태어나니 특히 조부 임백선이 세영을 아끼고 귀여워해 어려서부터 손자에게 자신이 익힌 무술 행월도(行月刀), 유금당(流金鐺), 호접권(蝴蝶拳)을 가르쳤고 이를 다익히자 자신의 친구이자 홍권(洪拳)의 고수인 호금성(胡金星)을 사부로 받아들여 육점반곤(六点半棍. 영춘권에서도 사용하고 있음), 전장산반권(箭掌算盤拳) 등을 배우게 하였다. 

임세영은 본래가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 근동에 장사로 이름이 알려질 정도였다. 게다가 무술도 뛰어나니 그 기세란 가공할만 하였으리라. 그러나 정작 그가 힘을 써서 일할 곳을 마땅히 찾지못하던 중 우연히 광주의 원기도축장(源記屠畜場)을 지나가다 그의 체구에 놀란 도축장 주인의 권유로 일을 하기 시작해 1년이 못되서 도축장을 관리하는 직분으로 올라가게 된다. 후일 그의 이런 경력이 그를 "돼지고기 세영" 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임세영이 저자거리에서 돼지고기를 파는 장사꾼으로 나오는데 실지 그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하겠다.

 

해동사(海棟寺)에서 철두타(鐵頭陀)와 대결하다

광주(廣州) 해동사(지금의 廣州市 金華路에 위치)에 괴승이 하나 찾아오는데 그 인물이 승려라기 보다는 깡패에 가까웠다. 절에 머물며 갖은 악행을 저지르다가 이윽고 주지가 관리하는 절의 재산을 갈취하려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하였다. 철두타(鐵頭陀)라는 이름의 이 땡중은 자신의 무술(쇠머리라는 이름 그대로 박치기가 주특기 였음)과 완력으로 주지를 겁박하니 견디다못한 주지가 황비홍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황비홍이 임세영과 같이 해동사를 찾아가 문제의 땡중 철두타를 만났다. 철두타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자신의 절기로 황비홍과 임세영을 제압하려 한다. 먼저 굵은 모래를 절구에 넣고 물구나무를 서듯 거꾸로 자세를 취하면서 머리를 절구에 박아 모래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 다음은 작은 자갈돌을 넣고 다시 마지막으로 쇠덩이를 넣고 머리로 절구질을 하니 그 머리만큼은 강도가 대단하였던 것이다.

보고있던 임세영이 참지못하고 크게 웃으니 그 웃음소리를 듣고 격노한 철두타가 과연 임세영의 가슴을 향해 머리를 들이밀고 돌진하는 것이었다. 임세영은 거침없이 달려드는 철두타를 호학쌍권(虎鶴雙拳)의 '월영각(月影脚)' 한번으로 차버리니 그 발길질 한번에 철두타는 삼척(三尺)거리의 돌계단에 머리를 쳐박고 만다. 그후로 그는 다시는 해동사에 언씬하지 못했다고 한다.


황비홍의 수제자 임세영은 홍콩에 홍가권을 전파하며 황비홍의 무술을 널리 알린 인물이며,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려진 황비홍의 스토리를 대중에게 전달한 중요한 제자입니다. 
임세영(林世榮)에 대하여
  • 황비홍의 제자이자 무술 전승자
    임세영은 황비홍의 제자로서 홍가권 무술을 전수받고, 특히 홍콩에 홍가권을 널리 전파하여 황비홍의 명성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 황비홍의 영웅화
    황비홍이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영웅으로 묘사되는 과정에서, 그의 제자인 임세영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 역사적 인물
    황비홍과 함께 광둥성 역대 향토 인물 중 무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황비홍 사후 그의 부인 막가란을 돕는 등 역사적 인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영화 속 등장
    1978년 영화 '사형조수', '취권'과 1979년 영화 '임세영'(국내 개봉명 '인자무적') 등 다양한 영화에서도 주인공 또는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하며 그의 존재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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