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俠客) 대성국과 이문무(李文茂)

 협객(俠客) 대성국과 이문무(李文茂)

이문무(李文茂. ? ~ 1858)

광동성 학산(鶴山) 산록동(山綠洞) 왕전촌(旺田村) 출신이다. 젊어서는 월극(粤劇)의 유명배우였으나 후일 무예로 이름을 날렸다. 충의(忠義)지사형의 인물로 이를 위해 재물을 아끼지않아서 당지 사람들이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

홍수전(洪秀全)이 태평천국의난을 일으키자 광동 삼강(三江)지역의 반청단체들이 호응하였는데 세인들은 이를 광동홍병봉기(廣東洪兵起義)라 부르고 있다. 세개의 조직이 주도를 하였는데 그 중심은 홍문(洪門)이었으며 이들은 후에 삼합회를 조직한다.

홍수전의 봉기에 홍선월극(紅船粤劇)의 영수인 이문무와 불산(佛山) 삼합회의 우두머리인 진개(陳開)가 불산의 대모산(大帽山)에서 합심하여 진개를 원수로 이문무를 부원수로 삼고 호응하여 일어한다.  이문무는 평소 자신이 거느리던 월극의 배우들 중 건장하고 무예를 아는 자들로 문호(文虎), 맹호(孟虎), 비호(飛虎)라는 삼군을 편성하였다. 이문무는 월극에서 사용하던 갑주를 입고 이들을 통솔하였는데 그 군호(軍號)로는 장룡(掌龍), 착호(捉虎), 배불(拜佛), 상서천(上西天) 등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석룡(石龍), 호문(虎門), 불산(佛山), 광서(廣西), 광주(廣州) 등지를 공격하였다. 광주를 공략할 때 양광(兩廣. 광서와 광동)총독인 섭명침(葉名琛)은 암암리에 영국의 도움을 요청하여 그 덕분에 반년이상을 버틸수 있었고 그 틈에 청나라 정부의 원군이 속속 지원되었다. 반란군의 원수인 진개는 주강(珠江)의 북쪽으로터 이동하여 서강(西江)에서 양베우(梁培友)의 수군과 연합한후 양배우의 건의데로 1천척의 선단을 거느리고 우선 광서의 심주(潯州. 현재의 桂平)를 점령한다. 진개와 이문무 등이 1855년 8월 심주성에 입성하여 대성국(大成國) 이라는 나라를 만들고 홍덕(洪德)이라는 연호를 제정하며 그 수도로 심주를 삼는데 이름은 수경(秀京)이라 고친다. 아울러 만주복의 변발과 복식을 혁파하고 관직을 제정하고 화폐를 발행하고 진개는 자칭 평심왕(平潯王)이라 하고 부하들은 그 공적에 따라 열후에 봉하였다.

1856년 11월 평정왕(平靖王) 이문무가 북상하여 유주(柳州)를 공격하니 3천명의 청군이 버티나 5개월 만인 1857년 3월 성은 함락된다. 이문무는 유주를 용성부(龍城府)로 변경하고 이곳에 평정왕부(平靖王府)를 세워 자신의 근거지로 삼는다. 아울러 문무관직제도를 설치하고 평정승보(平靖勝寶)라는 화폐도 발행한다. 비록 제대로 준비가 덜된 반란군이었지만 이문무는 정사에 힘쓰고 백성을 아끼며 전투에서 늘 앞장서 싸우는 등 백성들의 신망을 크게 얻고 있었다. 1858년 계림(桂林)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중상을 당해 경원(慶遠)지역의 깊은 산속에서 숨지고 만다. 대성국 역시 1861년 청나라 정부군의 반격으로 함락되고 만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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