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객(俠客) 청말10대무술고수(2) 곽원갑(霍元甲)
곽원갑(霍元甲. 1869—1910)자(字)는 준경(俊卿)으로 중국 광동성 출신의 청말 애국무술가이다. 조상 대대로 전대되어온 곽씨연수권(霍氏練手拳)으로 청말 중국 무술계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다.
명나라 천호 원년(1621)에 조상이 정해현(靜海縣) 소남하촌(小南河村)으로 이주한 이후 곽원갑은 그 7대 손이 된다. 일찌기 생활이 궁핍하여 천진(天津)에서 짐꾼이나 약국 등에서 일하며 생계를 꾸려갔다. 회경약국에서 일할 때 천근단(千斤担: 힘을 측정하기 위해 드는 무거운 돌)을 들어올려 장사로 불리기도 하였다.
1901년 천진에서 벌어진 무술대회에서 러시아 출신의 유명한 선수를 이겨 일약 전국적인 스타가 된다. 1909년 영국인 오핀이 상해에 무술시합장을 만들어 중국인을 교묘히 농락하려 하였다. 이를 접한 곽원갑이 상해로 달려가니 오핀은 그만 도망을 치고 말았다. 이후 그는 상해 갑북(閘北)의 왕가택(王家宅)에 중국 최초의 민간체육조직인 상해정무림조학회(上海精武林操學會. 후일 上海精武會로 개칭)을 만들었다. 1910년 일본유도회에서 10여 명의 고수를 상해에 파견 정무회와 무술시합을 벌였다. 곽원갑과 그 제자 유진성(劉振聲)이 5명을 연파하자 일본주장이 분기탱천하여 직접 곽원갑에게 도전한다. 그는 승리를 위해 암수를 쓰려다 곽원갑에게 간파되 결국 일본팀은 참패를 당한다.
이일이 있은지 얼마 후 복수를 노리던 일본인들은 곽원갑이 지병(몸에 신열이 나는 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사람을 매수하여 독이든 약을 매일 마시게 하여 그러기를 한 달이 채못될 즈음 결국 곽원갑은 세상을 떠나게 된다.
북경의 대협(大俠) 대도왕오(大刀王五)가 의화단의 난으로 청나라 정부군에 잡혀 참수를 당하고 그 머리를 전문(前門)에 효수당하나 가족들조차 그 시신을 수습하지못하고 있는 상황을 듣고 천진에서 한달음에 달려가 야음을 틈타 왕오의 시신을 수습해 매장해 준 일화는 시대의 협객(俠客)으로서 그만이 할수 있는 일로 매우 유명하다.
2006년 이연걸은 영화 곽원갑을 직접 제작하여 주연을 맡아 열연 한다. 황비홍과 일맥상통하는 애국주의 사상이 기저에 깔린 영화 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