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 - 글: 岳岩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 - 글: 岳岩


水隨行而日自昇, 물을 따르면, 해는 스스로 오른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길이 막힌 듯한 시간이 찾아온다.

아무리 애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날, 마음은 먼저 지쳐 미래가 닫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이 말을 떠올린다.“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

이 문장은 노자의 사상에서 연유한 말로 전해진다. 노자는 억지로 이루려 하지 말고,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라 했다. 물은 서두르지 않지만 멈추지 않고, 돌에 부딪히면 돌아가되 길을 잃지 않는다.

삶도 그러하다. 무언가를 붙잡고 애쓰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던 길이 마음을 풀어놓는 순간 문득 열리기도 한다. 해돋이를 보겠다고 밤길을 재촉하는 것보다, 그저 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동쪽 하늘이 밝아오는 법이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앞서 나서지 않으며 결국 가장 넓은 바다에 이른다. 사람 또한 순리를 거스르지 않을 때 비로소 제 삶의 바다에 닿는다.

해돋이는 목표가 아니라 선물이다. 도착하려 애쓸수록 멀어지고, 흐름에 머물수록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말은“포기하라”는 권유가 아니라“지나치게 애쓰지 말라”는 다정한 충고에 가깝다.

오늘도 마음이 어두운가. 앞이 보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잠시 속도를 늦추고 물의 방향을 살펴보라.

지금 걷는 이 길이 바로 해가 떠오르는 쪽일지도 모른다.

水隨行 則見日出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

글 · hakgeun choe

原文 (고전 한문)

人生行路에 每有滯礙하니

心先困而望自閉也라.


然有一言이 流傳於道家之旨하니

曰 水隨行 則見日出이라.


水者는 不爭而行하고

不疾而至하며

遇石則迂하고 遇谷則深하되

未嘗失其向也라.


人亦如是하여

不强其成하고 不逆其理하면

日月忽然開於目前이라.


日出者는 非可逐也요

但可遇也니

隨流而行하면

光自東生하느니라.


풀이 산문 (현대어)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는
막힘과 정체가 늘 함께한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앞날이 닫힌 듯 느껴지는 때도 있다.


그럴 때 떠올릴 만한 말이 있다.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
이 문장은 노자의 사상, 곧 도가의 정신에서 유래한 말로 전해진다.


물은 다투지 않고 흐른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고,
돌을 만나면 돌아가며
깊은 골을 만나면 더 깊어진다.
그러나 한 번도 제 방향을 잃은 적은 없다.


사람 또한 그러하다.
이루려 애써 움켜쥘수록 길은 흐려지고,
억지를 내려놓을수록
도리어 앞이 트인다.


해돋이는 쫓아가서 얻는 것이 아니다.
다만 흐름 속에 머물다
문득 마주치는 것이다.
물길을 따르고 있을 뿐인데
동쪽 하늘이 스스로 밝아온다.


結語 (맺는 말)
지금 길이 보이지 않는가.
마음이 자꾸 앞서 가려 하는가.


그렇다면 잠시 속도를 늦추고
물의 방향을 살펴보라.


지금 걷는 이 길 위에서
해는 이미 떠오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서평

글의 주제와 진정성은 아주 좋습니다. 다만 현재 원고는 격언 해석 → 여행 가이드 → 안전 수칙으로 갈래가 넓어지면서, 처음 제시한 명상적 문장력이 다소 분산됩니다. 또한 한 가지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를 노자의 직접 어록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노자의 사상(무위·자연·순리)과 정신적으로는 맞닿아 있으나, 현존 『도덕경』의 문장으로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 “노자의 사상에서 유래한 말로 전해진다” 정도로 정리하는 편이 학술·출판용으로 안전합니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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