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으면 왜 우매해지는가?
글: 장굉걸(張宏傑)
독자들이 나에게 책에 서명을 해달라고 할 때, 이런 문구를 적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를 읽으면 똑똑해진다." 나는 그러면 왕왕 뒤에 한 마디를 덧붙인다: "또한 더욱 깊은 우매로 빠져들게 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나는 역사를 많이 읽을수록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예를 들어 나의 외삼촌같은 분이다. 외삼촌은 은퇴후에 역사를 좋아하게 되었고, 몇년동안 계속하여 역사책을 읽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한 가지 유형만을 읽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방위사론(西方僞史論)"이다. 방증까지 널리 인용된 책이 그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서방의 역사가 그리스, 로마와 이집트를 포함하여 모두 위조된 것이라는 것이다. 소위 그리스의 신전,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모두 18세기 이후 서방인들이 인조콘크리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외삼촌은 너무 깊이 빠져들어서 자주 식사까지 거를 정도이고, 내가 방문할 때마다 나를 붙잡고 그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외삼촌도 이런 결론을 100% 믿지 않았다. 금년 연초에 나는 이집트에 가게 되었는데, 외삼촌은 정중하게 나에게 그를 대신하여 잘 관찰해달라고 요구했다. 피라미드가 돌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콘크리트로 만든 것인지를.
역사를 읽는 것이 사람을 우매하게 만들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읽는 역사서의 품질이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번은 표숙(表叔)에게 말하기를, 내가 최근 들어 글을 하나 썼는데, 제목이 "라틴아메리카는 왜 발달하지 못했는가?"라고. 그러자 표숙이 말하기를 그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냐고 말했다: "미국과 너무 가까우면, 천국과 너무 멀어지는 것"이라고. 미국과 그렇게 가까운데, 미국이 발달하도록 놔두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표숙에게 물었다. 그럼 캐나다는왜 발달하게 되었냐고. 그러자 표숙은 이렇게 말했다. 그건 간단하다. 캐나다는 미국에 무릎을 꿇었지 않느냐. 그렇지만 라틴아메리카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고.
표숙은 고금중외의 모든 문제를 거의 모두 신속하고 간단명료하게 답을 내놓곤 했다. 다만 이런 답안은 보통 정확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머리 속에 있는 역사지식은 대부분 이미 시대가 지난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라틴아메리카함정에 대한 해석은 기실 1970년대에 나온 "의부론(依附論)"이다.
소위 "의부론"은 라틴아메리카의 빈곤은 미국등 제국주의국가가 만든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 제국주의국가는 세계시장을 "조종"하고, 라틴아메리카등 국가에서 생산하는 농업과 목축업제품의 가격을 극력 끌어내리고, 선진국가의 공업제품의 가격은 극력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라틴아메리카국가는 부득이 염가의 기초제품을 수출할 수밖에 없었고, 갈수록 가난해진다는 것이다.
"의부론"은 1970, 80년대에 매우 유행했고, 미국의 대학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농담하기도 했다. "의부론"은 라틴아메리카의 가장 성공한 수출상품이라고. 그러나, 현재 그것은 이미 절대다수의 학자들, 라틴아메리카의 학자들까지도 포기했다.
역사학은 계속 발전하는 학과이고, 많은 분야의 지식은 계속 갱신된다.
만일 머리 혹에 낡은 역사지식만 가득 넣어두고 있다면, 당금의 세계문제를 관찰하고 사고하는데 확실히 편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유행하는 열악한 역사서를 읽는 것뿐만 아니라, 시기가 지난 역사서를 읽는 것도 사람을 절대로 똑똑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역사를 읽어야 똑똑해질 수 있을까?
첫째, 청소년시기에는 경전적인 책을 읽어서 양호한 지식기초를 닦아야 한다.
어떤 정보원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관념을 선택하느냐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는 어떤 인생을 선택하느냐이다. 역사를 읽는 것이 그럴 뿐아니라, 다른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이 청소년기에 경전적인 책을 많이 읽어두면 그에게 감별력이 생기게 되고, 견실한 지식의 기초를 닦게 해준다. 그리하여 합리적인 지식구조를 갖추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
당연히 경전은 왕왕 읽기 어렵다. 왜냐함녀 경전은 비교적 '어렵고' 비교적 '낯설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멍(王蒙)이 얘기한 것처럼 재미있는 책 말고 우리는 반드시 엄숙한 책도 읽어야 한다. "폭로하는 책, 기적에 관한 책, 분풀이하는 책말고도 더욱 과학적인 책, 논리적인 책, 분석적인 책, 혁신적이고 예술적인 용기가 있는 책을 읽어야 한다. 쉽게 읽히는 책만이 아니라, 까다로운 책, 생각을 많이 해야하는 책도 읽어야 한다."
둘째, 성년이후에 책을 읽을 때는 영양균형을 주의해야 한다.
청소년시절에 품질이 열악한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마치 독있는 음식을 먹는 것처럼 두뇌세포에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후의 인생에서 마땅히 스스로 독을 해독해야 한다. 그래야 최대한도로 열악한 서적에서 받은 영향을 피할 수 있다. 그럼 어떻게 해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책을 읽을 때, 균형있는 정보를 섭취하는 것이고, 의식적으로 자신의 지식의 자물쇠를 열어제끼고, 이질적인 정보를 받아들여서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 있던 정보의 편향성을 시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나의 외삼촌처럼 "위사론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먼저 많이 읽어야 한다. 어떤 분야이든 비교적 깊이있고 정확하게 파악하려면 최소한의 독서량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집트문명사가 위조된 것인지 여부를 알려면, 최소한 위사론의 책 외에 최소 십여권의 진지한 이집트학저작도 읽어보아야 한다.
나는 일찌기 외삼촌에게 7,8권의 이집트사, 이집트학 저작을 사드린 적이 있다. 그러나 몇달이 지나 다시 외삼촌의 집에 갔더니, 그는 아예 읽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최근 들어 나는 외삼촌에게 많은 좋은 책을 추천해주었지만, 그는 첫부분만 보고서는 핑계를 대고 내려놓곤 했다. 그래서 나는 외삼촌을 이미 포기했고 더 이상 그와 논쟁하지 않는다. 그저 만나면 날씨얘기만 한다.
셋째, 중국사를 읽으려면 고전경전만 읽지 말고, <자치통감>, 이십사사만 읽지 말아야 한다. 당대학자의 연구성과를 많이 읽고, 당대의 눈길로 시대를 통과하여 과거의 역사를 읽어야 한다.
주변 대부분의 민족과 비교하면 중화문명은 역사상의 경험과 교훈을 종합하는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독특하고 발달된 문명의 성과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중국전통사학의 성취는 일정한 한계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방대한 사료를 가지고 있지만, 위대한 역사학은 나타나지 못했다. 진나라부터 청나라까지 중국역사의 두드러진 특징은 "순환성"이다. 하나의 왕조가 건립된지 1,2백년이 지나면 '관핍민반(官逼民反)'이 발생하고, 농민반란이 일어나며, 얼마 후에 신흥왕조로 대체된다. 이렇게 순환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모든 왕조가 동일한 궤도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 왕조의 건립초기에는 정치가 청명하고 심지어 태평성세가 나타난다. 새로운 핸드폰을 가지게 되면 처음 반년간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그러나 몇대가 지나고 나면 부패하고 혼란에 빠지며 각종 문제가 나타난다. 그러면 부득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왕조가 건립된다. 그리고 새로운 왕조도 다시 똑같은 길을 걷는다. 이 규율이 2천년간 지속되었고, 남겨진 역사서는 "이십사사"가 된다. 그리고 조대가(朝代歌)를 하나 남겼다: "삼황오제하상주(三皇五帝夏商周), 진한삼국양진우(秦漢三國兩晋憂), 남북수당오대진(南北隋唐五代盡), 송원명청제통휴(宋元明淸帝統休)" 그래서 당대의 눈으로 역사를 읽으면, 우리가 역사에 대해 더욱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넷째, 중국사에 국한되지 말고, 세계사를 많이 읽어야 비로소 더욱 잘 중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손쉽게 역사책을 읽을 때 편향성을 갖게 되는 이유는 본국사만 읽고, 세계사를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알고 있는 많은 역사책을 읽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단지 중국사만을 읽는다. 그리고 중국사 중에서도 그가 잘 아는 강한성당(强漢盛唐)의 역사만 읽는다. 외국사를 읽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그렇게 많은 인명, 지명을 알기 어렵고, 기억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우리가 오늘날 이미 글로벌화시대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손쉽게 전인류의 문화성과를 흡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협소한 정보권내에 봉쇄시킬 필요는 없다.
민국시대에 한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세계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낙후를 알지 못한다." 당연히 이 말은 오늘날에는 이미 적합하지 않다. 왜냐하면 중국은 이미 굴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 고쳐보고자 한다: "중국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세계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의 특질을 알지 못한다." 세계사를 읽지 않으면, 중국문명의 세계문명사에서의 정확한 위치를 깨달을 수 없고, 자신의 독특한 점도 깨달을 수 없다.
다섯째, 중국사를 읽을 때 중원왕조의 역사만 읽을 것이 아니라, 변방사, 소수민족사도 많이 읽어야 한다.
하왕조이후, 중국역사상 거의 모든 신흥정권은 변방지구에서 왔다. 하왕조사람에 있어서, 상왕조사람은 변방민족, 동이(東夷)이다. 상왕조사람들에 있어서 주왕조사람도 변방민족이다. 서이(西夷)이다. 일부 역사학연구에 따르면, 주나라사람의 선조는 아마도 북방의 적인(狄人)일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원의 제후국이 볼 때, 진(秦)나라사람도 서쪽의 오랑캐나라이다. 초원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은 나라이다.
이런 변방과 중앙의 관계는 한나라이후 고정된 틀이 나타난다. 그것은 바로 거의 모든 동북에서 일어난 소수민족이 강산의 절반을 차지하거나 천하를 통일한다는 것이다. 절반의 강산을 차지한 경우는 선비의 북위, 거란의 요나라, 여진의 금나라가 있고, 천하를 통일한 경우는 몽골이 건립한 원나라와 만주족이 건립한 청나라가 있다. 그들은 모두 장기간 동북지방에서 생활했다. 많은 유사성도 있다. 예를 들어, 선비, 거란, 여진과 만주족은 모두 이마와 정수리의 머리카락을 깍는다. 선비에는 "팔주국(八柱國)"이 있고, 거란에는 "팔부(八部)"가 있고, 만주족에게는 "팔기(八旗)"가 있다.
그러므로, 변방민족이 중원의 주인이 된 것은 한 세대 한 시기의 특별한 경우만은 아니다. 중국역사의 규칙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규칙적 현상의 배후에는 깊은 원인이 있다.
역사는 아주 중요하다. 역사를 읽는 방식은 더욱 중요하다.
이런 재미있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하고 있다: "인류가 유일하게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인류가 한번도 역사에서 교훈을 흡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역사를 읽는데는 문턱이 있다. 일정한 방법을 알아야하고,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야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재미로 읽고 살펴보다가 더욱 깊고 어두운 심연에 빠지게 될 것이다.
“역사가도 사람이다” 역사가 재밌는 이유
김성호 기자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이영석 지음/푸른역사/476쪽/2만 8000원
‘내가 다루려는 주제는 쾌락으로서의 역사다. 힘들고 바쁜 세상을 살면서 우리에게 허용되는 여가 시간을 기분 좋고 유익하게 소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의 역사 말이다.’(버트런드 러셀) 역사학자의 논문이나 저술은 딱딱하고 어려운 영역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버트런드 러셀이 갈파했듯이 역사 읽기는 난해한 기피의 장르만은 아니다. 역사가 역시 개인적 단상과 주관을 충분히 견지한 채 살고 있는 자연인이기 때문이다.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은 사회사·경제사에 일가를 이룬 역사가 12명을 통해 문명과 세계사의 이면을 들춘 책이다. 한국서양사학회장을 지낸 이영석 광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12명의 궤적과 대표작을 훑어 역사 이면의 역사를 소개했다. 윌리엄 호스킨스, 로런스 스톤, 로이 포터, 에드워드 톰슨, 에릭 홉스봄, 니얼 퍼거슨, 데이비드 캐너다인, 사이먼 샤마, 시어도어 젤딘, 아널드 토인비, 한국 학자 이순탁·노명식 교수가 주인공들이다.
영국사 학자답게 책 속 주인공들은 영국학자에 편중된 느낌이다. 그러나 단선적 영국사에 머물지 않고 문명과 세계사를 연관지어 풀어낸 울림이 작지 않다. 로런스 스톤은 대표적인 학자로 다가온다. 스톤은 영국혁명의 원인을 튜더-스튜어드 왕조시대 귀족사회의 위기로 지목, 학계로부터 비판받아 미국으로 이주한 학자다. 스톤은 귀족층의 낭비가 심해 파탄 상태에 이르렀으며 이런 현상이 중세후기에 형성된 중산적 토지소유층인 ‘젠트리’(향신)의 대두를 촉발했다고 주장했다. 스톤은 미국으로 옮긴 뒤 학계의 비판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영국혁명의 요인을 재차 강조했다. 군주정에의 존경·복종심이 약화됐고, 국교회 또한 다른 종파에 대한 포용력을 잃었으며 귀족층도 사회경제적 위기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절대권력의 교회가 공식 교회 결혼식을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사생활에 대한 요구가 늘면서 교회 아닌 다른 곳에서 치르는 비밀결혼이 성행했고 결국 법과 교회법정을 무너뜨렸음을 제시한다.
역사 서술이 문자언어에서 영상언어로 전환되는 경향의 추적도 흥미롭다. 역사가들은 영상물이 여흥이나 오락 성격이 강하고, 역사학의 정체성과 영상언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영상물로서의 역사 접근을 폄훼하고 기피한다. 그러나 컬럼비아대 예술사 교수인 사이먼 샤마는 전혀 다른 입장을 갖고 영상물 역사서술을 시도했다. 샤마 교수는 BBC ‘브리튼의 역사’에 참여해 영국사의 그늘을 들춰냈다. 서민 삶에 관심을 둔 낭만주의 지식인들의 혁명분위기 주도며 산업화에 따른 노동계급의 전면 부상, 나폴레옹전쟁, 차티즘운동…. 이런 부분들을 카메라 앞에서 일일이 서술한 샤마를 놓고 저자는 ‘영화 탄생 이후 처음으로 역사가가 영상역사물이란 새 형식의 저자가 됐다’고 말한다
아널드 토인비의 동아시아에 대한 인식도 눈길을 끈다. 토인비는 1929년 안식년을 맞아 중국, 일본, 조선, 만주 등 동아시아 일대를 답사해 ‘중국으로의 여행’을 펴냈다. 토인비의 동아시아 여행은 그의 문명사 서술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중국으로의 여행’과 이에 바탕한 ‘역사의 연구’에 드러난 동아시아 인식은 중국에 쏠려 있다. ‘중국에서는 아래로부터 위로 서구화를 향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 과정은 점진적이면서 자주 제동이 걸렸지만 실제 중간계급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본은 어떤가. 오직 권위와 명령으로만 신민의 서구화 작업에 착수한 지배자들은 국민에게 토착적이고 내실 있는 중간계급을 낳도록 하는 비강제적 사회진화 과정을 기다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토인비는 특히 한국여행 중 들판의 농민들을 보고는 ‘그 작은 사람들’이라고 표현해 일본제국주의의 침탈 관련성을 보지 못한 인상이 짙다. 저자는 유럽중심주의에 쏠린 토인비가 동아시아 문명의 전개 과정에서 중국의 헤게모니를 상정했다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만약 토인비가 살아 있다면 지금 중국의 재부상을 새로운 문명의 탄생과 발전의 징후로 여길까?” ㅣ 김성호 선임기자
역사란 무엇인가 독후감
저자 에드워드 카
역사란 무엇인가를 두 번째 읽었다. 일 년 팔 개월 전 이 책 읽을 때 머리 쪼개지는 줄 알았다. 나름 노트하면서 읽었는데 그것은 지금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른다. 이해도 안 됐으면서 노트했기 때문이다. 책 산 돈이 아까웠을 정도로 첫 번째 독서는 완전히 실패했다. E. H. 카 선생의 대학생 대상으로 한 강의 집이었던 만큼 나도 분명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경기도 오산이었다. 눈으로 글자를 읽는 독서를 끝낸 후 허탈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뭔가 끌리는 것이 있었다. 다시 이 책을 들게 된 것이 너무 다행이다. 꽤 멋진 책이라는 걸 이제 알았다.
이제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싶었다. 왜 이 책이 어려운지 곰곰이 따져 보았다. 첫 번째, 역사가 이름을 모른다. 이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네이미어, 기번, 아이작 도처, 웨지우드, 액턴, 콜링우드, 부르크하르트. (누구야? 왜 학교생활하면서 한 번도 못 들어본 이름들이지?) 물론 그들의 저작물도 제목조차 들어 본 기억 없다. 내가 읽은 역사서는 대부분 3,4차 가공된 것들이니까.
역사란 무엇인가가 어려운 이유 둘째, E. H. 카가 영국인인데 그가 전달하는 수많은 영국과 유럽 역사들이 생소하기 때문이다. 왕 이름 중 엘리자베스하고 빅토리아 여왕처럼 자주 들어본 이름 말고 다른 왕은 모두 생소하다. 유럽 국가들의 과거 이름도 너무 헷갈린다.
이렇게 부족한 부분을 알고 나니 책 이해가 쉬워졌다. 몰라서 이해 못하는 부분은 넘어가고 저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지 집중해서 읽으니 그의 통찰력이 보였다. 그의 주장을 이 독후감에 요약할 생각은 없다. 이 책은 요약보다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따지고 보면 내용도 간단하다. 여기는 이 책을 읽고 내가 새로 알고 느낀 점을 적어보려 한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서적이 아니다. 역사가들 혹은 역사책 쓰려는 사람들 읽으라고 쓴 책이다. 제목을 보면 마치 자신의 역사관을 설명했나 싶지만 더 비중 있게 다룬 것는 것은 '역사가의 자질'에 대한 저자의 강력한 주장이다. 나는 역사라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취합한 것인 줄 알았다. 다만 워낙 내용이 방대하니 역사가마다 지면이 허락하는 대로 분량을 줄여서 쓴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마천이나 플루타크, 요세푸스 같은 사람들은 그 시대 역사를 기록한 유일한 역사가이거나 혹은 아주 긴 기간의 역사를 써서 유명한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역사가들이 내가 생각한 이유에서 유명해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서술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역사가가 제대로 역사를 썼는지는 별개로 평가할 일이다. E H 카는 역사는 사실의 선택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사실과 문서를 숭배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객관적'이라는 단어의 함정에 빠졌던 것 같다. 역사라는 것 절대 사실의 객관성일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평등, 자유, 정의, 자연법 개념과 역사서에 적힌 그것의 의미는 다르다고 봐야 한다. 역사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재, 미래까지 맞물려 있는 것이다. 책에도 어떤 역사가의 말을 인용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역사라면 역사 책을 기록하는 것은 견해를 가진 각각의 인간이다. 그래서 누가 그 역사를 기록했는지 이름뿐 아니라 그 역사가가 살아간 시대 배경도 알아야 그 사람의 역사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역사를 그 개인이 쓴 거라고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역사가의 지식은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다.
역사서에서 그나마 믿을만한 것은 사건의 순서다. 무엇이 먼저 일어났고 그다음에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역사가들이 기본적으로 정확하게 쓰려고 한다. 하지만 그 외의 것은 그것의 실재와 다르다는 것, 역사가의 해석이 들어갔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난 E. H. 카가 다윈에 대해 평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종의 기원 저자 다윈은 역사를 과학으로 끌어들인 사람이라고 한다. 과거의 일 중에 일반적인 것을 찾고 거기에서 인과관계를 찾는 그가 진화론에서 삼은 논증을 역사의 해석에도 끌고 왔다. 나 역시 과거에 이런 일 때문에 생긴 이런 결과가 있었으니 지금도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해석을 믿었었다. 그건 일반화의 오류를 낳는 위험이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과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같은 전쟁의 범주에 들 수 없는데 '전쟁' 이라는 언어로 기록되는 것처럼 역사에서 일반화 시킬만한 것만 찾으려는 형태를 띠게 된다.
E. H 카가 어떤 사람을 '위대한 인물'이라고 뽑았는지 그 기준이 흥미롭다. 그는 '인간의 깨달음을 촉진시켜주는 사람'을 위대한 인물로 정의했다. 86페이지에 있는 나폴레옹, 비스마르크와 크롬웰, 레닌의 비교를 보면 무슨 말인지 명확하게 이해된다. (그는 크롬웰, 레닌을 뽑았다.) 기존 세력에 업혀 유명해졌는가 (요즘 대통령 만들기처럼), 자기주장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그 세력이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는가가 기준이다. 이제 언론에서 누구를 띄우려고 할 때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정치인들은 후자보다 전자로 이름을 알리려고 하는데 그게 쉬우니까 그렇겠지.
이런 감상만으로 이 책의 깊이를 누구에게 알려주는 게 버겁다. 분명한 것은 내가 이 책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난 지금까지 역사를 단순히 이야깃거리로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시간 순서, 그 이상 보지 못했다. 역사는 '인간이 썼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되겠다. 역사서는 내가 살지 않은 지역과 시대를 가본 것 처럼 설명해 주지만 완벽한 시간을 재현할 수 없다는 걸 꼭 명심해야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역사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문구를 적어본다.
사람들이 시간의 경과를 자연적 과정 (계절의 순환이라든가 사람의 일생 같은)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의식적으로 연루되고 의식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정한 사건들의 연속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역사는 시작된다. -역사란 무엇인가 중에서-
책 읽기 시작한 날 2016년 9월 11일
다 읽은 날 2016년 9월 25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