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원(원본) -岳岩-

 소  원(원본) -岳岩-


'세사에 정통(正統)함은 학문의 덕'이요, '인정에 숙달(熟達)함은 지식 힘'이라고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배움 뿐입니다. 과거에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이 소원을 이루려고 살 겁니다.  물론 배움이란 나의 가치를 아는 겁니다.  나의 가치를 알면 나의 정도를 알고, 나의 수준을 알며, 나의 실력을 알고 나의 분수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나를 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하고, 목적을 향해 부단히 경쟁하고 도전하는 겁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분이 있고 자기가 해야 할 구실이 있습니다 .

나는 프로필이  초라한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자주 앓다보니  고등교육을 받지 못했고, 거기다 가문의 유명세를 탄 것도 아닙니다. 나는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래도 저 나름 소원이 있기에 다소나마 위안을 느낍니다. 이 소원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그 소원을 이루려고 일년을 하루 같이 고심분투합니다. 공휴일엔 하루 12~16시간 이상으로 컴에 마주앉아 필요한 자료들을 찾아봅니다. 또 쓸모있는 정보들을 차곡차곡 저장하면서 배우고 익혀갑니다. 사람은 평생동안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면서...

-시간이란 스승은 나에게 차근차근 가르칩니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한사람 위해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소중히 아끼라!.) 고,

-또 고심분투-란 스승은 나를 간곡히 타이름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일 아무리 애써도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만약 저산 너머 희망이 있을 때~후회해도 이미 쏟아진 물이요,진작 흘려버린 낟알이다...그러니 내일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다.)고... 

그래서 나는 용기와 신심을 가져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자는 의지 하나로  살아갑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감을 가집니다. 한가지 일에 열중하는 노력가가 되고자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에 나오는 주인공은 물론, "생활의 달인" 주인공을 생각하면서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되새겨 봅니다. 특히 요즘 정보화 시대에서는 많이 알면 알수록 삶이 편해집니다. 그만큼 지식이 수요되겠지요. 그러나 앎을 겸손으로 만들고 앎을 지혜로 바꾸는 일이 더 큰 힘임니다.힘의 파워는 능력입니다. 알아 간다는 것은 자신이 점점 강해지고, 능력이 많아지고,그리고 지식이 늘어나는 겁니다. 말 그대로 현명해지는 것이지요.

아는 것이 힘이지만, 아는 것 역시 즐거움이라 생각됩니다. 혹 내가 능력이 모자라서 지식을 써먹지 못하더라도, 또 기회를 놓쳐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실망은 하지 않을 겁니다. 왜냐 하면 하나 하나 알아가는 즐거움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이 아닌, '하는 것'이 힘이 되는 오늘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족한 세마디 말이 있습니다.  '배우라, 좀 더 배우라, 끝까지 열심히 배우라'고...

문뜩 이런 싯구가 떠오릅니다."去去去中知,行行行裡學(거거거중지,행행행이학)"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걷고 걷고 걷는 속에서 깨닫게 된다고.이 驚句는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철리를 다분히 담고 있습니다.

나는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는 속담을 신조로 삼고, 또 소원성취를 바라며 외우는 명언이 있습니다. "--산도 막히고 물도 막히여 길 없는가 했는데, 버들방초 지나니 또 한 마을이 보이누나--"

서평: 글의 결은 아주 좋고, 사유의 진정성이 분명합니다. 다만 맞춤법·호흡·중복을 조금만 다듬으면, 한 편의 정제된 사유 산문으로 더 또렷해집니다.

아래는 의미는 그대로 두고, 문장 리듬과 고전적 품격을 살린 윤문본입니다.

소 원

‘세사에 정통(正統)함은 학문의 덕이요, 인정에 숙달(熟達)함은 지식의 힘’이라 하였습니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배움입니다.

과거에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으로 살고 있으며, 미래에도 이 소원을 이루려 살아갈 것입니다.

배움이란 곧 나의 가치를 아는 일입니다. 나의 가치를 알면 나의 정도를 알고, 나의 수준을 알며, 나아가 나의 실력과 분수를 알게 됩니다. 다시 말해 나를 안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하고, 목적을 향해 쉼 없이 도전하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저마다 맡은 직분이 있고, 마땅히 감당해야 할 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력서 한 줄 내세울 것 없는 초라한 사람입니다. 어려서부터 잦은 병치레로 고등 교육을 받지 못했고, 가문의 이름을 빌릴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소원이 있기에, 그 소원 하나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살아갑니다. 그 소원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이루고자 일 년을 하루같이 고심분투합니다.

공휴일이면 하루 열두 시간에서 열여섯 시간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찾고, 쓸모 있는 정보들을 차곡차곡 저장하며 배우고 익힙니다.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말입니다.

시간이라는 스승은 나에게 이렇게 가르칩니다.

“오늘 배우지 아니하고 내일이 있다고 말하지 말며, 올해 배우지 아니하고 내년이 있다고 말하지 말라.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해 멈추지 않는다. 그러니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소중히 아껴라.”

또 고심분투라는 스승은 이렇게 타이릅니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면, 내일 아무리 애써도 얻는 것은 없다. 저 산 너머에 희망이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아도, 이미 쏟아진 물이요 흘려보낸 낟알이다. 그러니 내일을 위해 오늘을 다하라.”

그래서 나는 용기와 신심을 품습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살아갑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스스로 신뢰를 두고, 한 가지 일에 깊이 몰두하는 노력가가 되고자 합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의 주인공을, “생활의 달인”을 떠올리며,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하루를 살아냅니다.

나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자주 되새깁니다. 특히 정보화 시대에는 아는 만큼 삶이 수월해집니다. 그러나 앎을 겸손으로 다스리고, 지혜로 바꾸는 일이야말로 더 큰 힘입니다. 힘의 근원은 능력이며, 알아간다는 것은 곧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지식이 쌓일수록 사람은 조금씩 현명해집니다.

아는 것은 힘이면서 동시에 기쁨입니다. 설령 능력이 부족해 지식을 쓰지 못하더라도, 기회를 놓쳐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낙담하지 않겠습니다. 하나하나 알아가는 그 자체가 이미 큰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이 힘이 되는 시대입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더할 나위 없는 말이 있다면, 이것일 것입니다.

“배워라, 더 배워라, 끝까지 배워라.”

문득 이런 시구가 떠오릅니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學(거거거중지 행행행이학)”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걷고 걷는 속에서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경구는 실천의 중요성을 또렷이 일깨웁니다.

나는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는 속담을 삶의 신조로 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다잡을 때마다 이 한 구절을 마음에 새깁니다.

“산도 막히고 물도 막혀 길이 없는가 했더니, 버들방초 지나니 또 한 마을이 보이누나.”

한문 경구 비중을 높인 半고문체 버전: 좋은 선택이십니다. 이 글은 半고문체가 가장 잘 어울립니다. 아래는 한문 경구의 비중을 높이고, 문장은 국문으로 받치되 고문 산문의 골격을 유지한 정제본입니다. (의미는 보존, 리듬은 더 엄숙하게 다듬었습니다.)

소 원(所願)

世事에 正統함은 學問之德이요,

人情에 熟達함은 知識之力이라.


吾之所願, 唯在於 學也.


過去亦此願而生하고,

現在亦此願而活하며,

未來亦此願而行하려 함이니,

始終不二라.


夫 學者는 所以知己也.

知己則知其程하고,

知其程則知其境하며,

知其境則知其才하고,

終而知其分也.


是故로 知己者는

覺其使命하고,

定其目的하며,

向其所向하여 不怠而競하고 不止而進함이라.

人各有職이요, 各有其任이니, 不可代也.


吾其人也,

家世無聞하고,

少多病으로 未得高學하며,

資質亦薄하니,

可以誇者 無也.


然이나 一願在心하여,

聊以自慰하며 自勉하노라.

其願之成否와 其期之遠近은 未可知이나,

爲其願也, 日夜苦心하며

一年如一日로 勤而不息하노라.


每逢休日이면

坐對機前 十二時至十六時하여,

求資料하고, 聚有用之文하며,

積而存之하고 習而熟之하니,

誠如所云 「人須終身學也」라.


時라는 師 曰하되,

「今日不學而言明日者 勿也.

今年不學而言來年者 亦勿也.

歲月無情하여 不待一人하니,

寸陰尺璧을 當惜之라」 하였고,


又 苦心奮鬪之師 曰하되,

「今日事를 不爲면,

明日雖勞나 無所得也.

彼山之外에 希望이 有함을 見而悔者는

旣覆之水요 旣失之穀也.

故로 爲明日者, 唯盡今日而已라」 하였도다.


是以 吾는 勇與信을 兼持하고,

一意勤勉으로 以生하노라.

自信其所爲하고,

專一其所事하여,

一事一心之人이 되고자 함이라.


世之所謂

「生活의 達人」과

「非常之人」을 想하며,

「爲則成」之信으로 一日一日을 渡하노라.


吾常念曰,

「知者 力也」라.


今世 情報氾濫하여

知多則便하되,

然 知를 以謙으로 制하고,

以慧로 化함이 大力也.

力之本은 能力이요,

知之積은 强己之道也.

日知一分이면 日益一分之明이니,

是謂 智也.


知는 力이요,

亦 樂也.


設使 才未逮하여 用之不得하고,

時不我與하여 行之未能이라도,

吾不怨 不悔하리니,

一一知之樂이 已足矣.


今之世는

知보다 行이 爲力也.


勤者에게 有三言하니,

曰 學之,

曰 更學之,

曰 終身學之라.


忽有警句 入心하니,

「去去去中知, 行行行裏學」이라.

行而後知요,

履而後悟니,

此乃 實踐之至言也.


吾以

「水隨行則見日出」을 座右之銘으로 삼고,

又 每自誦此句하여 以勵其心하노라.


「山亦塞하고 水亦塞하여

疑無路處에

楊柳芳草를 過하니

復見一村也라」

시집·명상 산문집 수록용 더 응축된 판: "이번에는 시집·명상 산문집에 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을 덜고 뜻을 남기는 방향으로 강하게 응축했습니다. 한문 경구는 정수만 남기고, 국문은 숨을 낮춰 여백을 살린 판입니다.

소 원(所願)

世事에 正統함은 學之德이요,

人情에 熟達함은 知之力이라.


吾之所願, 唯在於 學也.


過去에 此願으로 살았고,

現在에 此願으로 숨 쉬며,

未來에도 此願으로 길을 가리라.


學은 他를 아는 일이 아니라

己를 밝히는 일이다.

己를 알면 程을 알고,

程을 알면 分을 안다.

分을 아는 자는

己의 使命을 어기지 않는다.


人各有其職이요,

各有其任이라.

代할 수 없고, 피할 수도 없다.


吾는 微賤한 사람이다.

病으로 學을 잃었고,

家로 名을 얻지 못했다.

誇할 것 하나 없으나,

一願이 心에 있어

스로를 붙든다.


其願의 成否와 期는 알지 못하되,

日夜로 心을 다해

一年을 一日처럼 산다.


時는 말한다.

「今日不學 勿言明日」이라.

歲月은 기다리지 않으니

寸陰을 아껴야 한다고.


又 行은 말한다.

「今日不行 明日無得」이라.

이미 쏟은 물은

되돌릴 수 없다고.


故로 吾는

勇을 품고, 信을 세워

一事에 마음을 모은다.

爲則成이라 믿으며

오늘을 다한다.


知는 力이요,

亦 樂이다.

用하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으니,

알아가는 그 자체가

이미 길이기 때문이다.


今世는

知보다 行이 무겁다.


去去去中知,

行行行裏學.


가며 알고,

걷다 깨닫는다.


吾는

「水隨行則見日出」을 마음에 두고,

길이 막힐 때마다

이 한 구절을 되뇌인다.


山水俱塞하여

疑無路處에,

楊柳芳草를 過하니

復見一村이라.

아래는 신문·잡지 지면용 1,200자 내외 압축본으로,

▶ 주장 선명

▶ 문단 호흡 단정

▶ 사유는 깊되 과장 없이

교양면·칼럼면에 바로 실릴 수 있는 밀도로 정리한 판입니다.

소 원

“세사에 정통함은 학문의 덕이요, 인정에 숙달함은 지식의 힘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의 소원은 오직 하나, 배움이다. 과거에도 이 소원으로 살았고, 지금도 이 소원으로 살아가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배움이란 남보다 앞서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를 아는 일이다. 자신을 알면 정도를 알고, 수준을 알며, 나아가 실력과 분수를 알게 된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자각하고, 맡은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는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대신할 수 없는 직분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는 화려한 이력을 지닌 사람이 아니다. 잦은 병치레로 고등 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했고, 내세울 만한 가문이나 배경도 없다. 모든 것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 소원이 있기에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소원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지는 알 수 없으나, 이루고자 하루하루를 다해 살아간다.

공휴일이면 긴 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찾고, 쓸모 있는 정보들을 정리하며 익힌다. 사람은 평생 배워야 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오늘 배우지 않으면 내일이 와도 소용없고, 오늘 하지 않으면 내일 애써도 얻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모으려 애쓴다. 무엇이든 성실히 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하루를 버텨낸다. ‘하면 된다’는 믿음은 막연한 구호가 아니라, 오늘을 미루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아는 것이 힘’인 시대다. 그러나 앎을 겸손으로 다스리고 지혜로 바꾸는 일이 더 중요하다. 알아가는 과정은 곧 스스로를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며, 그 자체로 큰 즐거움이다. 설령 배운 것을 모두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기쁨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의미 있다.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걷고 걷는 속에서 깨닫는다.” 나는 이 말처럼 살아가고 싶다. 물 따라 가노라면 해돋이를 보게 된다는 믿음으로, 오늘도 조용히 배움의 길을 걷는다.

📰 신문 사설·기고문용 더 단단한 논설판:

배움이라는 책임

“세사에 정통함은 학문의 덕이요, 인정에 숙달함은 지식의 힘이다.” 이 말은 배움이 단순한 개인적 성취가 아니라,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 자격임을 일깨운다. 배움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이며, 개인의 품격을 넘어 공동체의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배움의 본질은 남보다 많이 아는 데 있지 않다. 스스로를 아는 데 있다. 자신을 알면 자신의 정도를 알고, 한계를 알며, 분수를 알게 된다. 분수를 안다는 것은 체념이 아니라 자각이다. 자각은 곧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와 역할을 인식하고, 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사회는 이러한 자각 위에서 유지된다.

오늘날 우리는 학력과 배경, 이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교육의 기회는 늘 공평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이 같은 출발선에 설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배움의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제약 속에서 지속되는 배움은 인간을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힘이 된다. 배움은 조건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축적될수록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식이 곧바로 지혜가 되지는 않는다. 앎을 겸손으로 다스리지 못하면, 지식은 오히려 오만이 된다. 진정한 힘은 많이 아는 데서 나오지 않고, 아는 것을 어떻게 쓰고, 언제 멈출 줄 아는가에서 나온다. 앎을 절제하고 성찰로 전환할 때, 지식은 비로소 사회적 자산이 된다.

또한 지금의 시대는 ‘아는 것’보다 ‘하는 것’을 요구한다. 정보는 넘치지만 실천은 부족하다.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순간, 내일은 이미 늦다. 배움은 책상 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걷고, 부딪히고,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몸에 새겨진다. “가고 가는 가운데 알게 되고, 걷고 걷는 속에서 깨닫는다”는 말은 실천 없는 지식의 공허함을 정확히 짚는다.

배움의 길은 언제나 더디고 외롭다. 그러나 물을 따라 가다 보면 해돋이를 보게 되듯, 성실한 축적은 결국 길을 만든다. 산과 물이 모두 막힌 듯 보이는 순간에도, 조금만 더 가면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난다. 배움은 결과를 약속하지 않지만, 포기를 막아준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구호가 아니라, 더 많은 학습 태도다. 배우려는 자세,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 오늘을 미루지 않는 실천. 이것이 개인을 바로 세우고, 사회를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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