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설근(曹雪芹)과 홍루몽(紅樓夢)

 조설근(曹雪芹)과 홍루몽(紅樓夢)

홍루몽(紅樓夢). 바이두

조설근(중국어: 曹雪芹, 병음: Cáo Xuěqín 차오쉐친[*], 1724년? ~ 1763년?)은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중국어 소설 중 하나인 홍루몽의 지은이다. 내무부(內務府) 정백기(正白旗) 기고좌령(旗鼓佐領)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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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조부는 강희제 때 강남의 벼슬아치로 청조를 위해 정보수집 활동을 했던 조인이라는 인물이다. 강희제의 총애를 받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조설근의 부친도 그 일자리를 이었지만, 옹정제 때 그 총애를 잃어버리고, 재산은 몰수되었다. 조설근의 가족은 후에 북경(베이징)의 서쪽 교외으로 이전하였으며, 조설근이 홍루몽을 썼던 18세기 전반에는 죽을 먹을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조설근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많다. 말년에는 그림을 팔며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그의 작품중에 절벽과 기암을 그린 것들이 인기가 많았다. 그가 죽었을 때 홍루몽은 거의 완성된 상태였으며 그의 작품들은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세상에 알려졌다.

조설근과 "홍루몽"

청나라 소설가 조설근은 어릴적 대관료 지주가정에서 생활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강희황제와 짝이 되어 함께 공부하는 "시독(侍讀)"이었고 증조할머니는 강희황제의 유모였으므로 조설근 가족과 황실의 관계는 매우 밀접했으며 소년시대까지 조설근은 재벌 후계자의 사치한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 옹정 5년(1727년)때, 조설근의 아버지는 옹정제의 황위계승문제에 얽혀 연좌를 당했고 온 가족의 권세와 재산은 하루새에 사라져 조설근은 친척과 친구들에 의지하며 모욕받는 생활을 시작했다. 금의옥식으로부터 빈곤한 백성의 생활을 경과한 조설근은 봉건통치계급의 몰락성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으며 사회의 암흑과 죄악에 대해 전면적인 깊은 인식을 갖게 되었다.

건륭 15년, 조설근은 베이징 서쪽의 한 농촌에서 생활했다. 그는 비참하고 처량한 노후를 거쳤으며 병에 시달려도 의사를 찾지 못하는 어려운 생활 속에 허덕였다. 결국 그는 장편소설 "홍루몽"을 끝까지 완성하지 못한채 별세하여 후세인들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조설근은 어릴적부터 문학과 예술의 훈도를 받았으며 당시 저명한 서법가이며 장서가였던 할아버지의 영향하에 여러 방면의 재능을 갖추게 되었다. 노후의 조설근은 베이징 서쪽 교외에서 생활하면서 10년간 심혈을 기울여 불후의 명작- "홍루몽"을 창작했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홍루몽"은 총 120회로 되어 있으며 그중 후 40회는 고악이 완성한 것이다.

"홍루몽"은 귀족 봉건가정생활을 소재로 가보옥과 임대옥의 사랑비극 및 가보옥과 설보채의 혼인비극을 주선으로 이러한 비극을 조성한 사회적 근원을 종적으로 분석했다. 동시에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면서 가씨, 사씨, 왕씨, 설씨의 정통사상 옹호자와 배신자 사이의 모순충돌을 통해 수많은 인물로 구성된 광활한 사회생활환경을 횡적으로 보여주었다. "홍루몽"은 봉건사회의 각종 죄악과 내적 모순을 폭로했고 당시 중국의 사회현실을 심각하게 반영함으로서 봉건제도의 붕괴와 멸망은 필연적인 역사적 추세임을 제시하고 있다.

"홍루몽"은 중국 고대문학사상 사상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최고의 작품으로서 세계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

홍루몽紅樓夢

 개요

청나라 건륭제 시기의 작가인 조설근이 쓴 고전소설이다. 등장인물만 721명에 달하고 등장인물들의 세밀한 묘사로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소설로 칭송받고 있으며 100여 차례 간행되었고 30여 종의 후속편들이[3] 나왔을 만큼 중국에서 크게 인기를 끈 국민적인 고전이 되었다.

비록 한국에서는 《삼국지연의》와 《서유기》, 《수호전》에 비해 인지도가 낮은 작품이지만, 반대로 중화권 현지에서는 《홍루몽》이 다른 작품을 뛰어넘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으며 많은 중국 학자들이 이 작품을 연구하기도 해서 '홍학(红学,홍루몽학)'이란 연구분야까지 생겨났을 정도로 문학적 가치,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국 고전소설의 정점으로 평가되고 있다.[4] 중국에서는《수호전》의 2차창작 격인《금병매》를 제외하고 대신 《홍루몽》을 '사대명저'의 하나로 친다.[5]

2. 제목과 역사[편집]

소설의 제목인 '홍루몽(紅樓夢)'의 뜻을 직역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다. 紅樓는 홍등가를 의미하는 게 아니고,[6] 중국의 전통 문화에서 여성이 거주하는 구역을 일컫는 말이며 작중에서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여성의 비율이 높다. 소설의 내용과 주제를 잘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작품의 전체적인 구성과 주제를 생각하면 단순히 여성들의 공간에서 벌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홍진 세상의 물거품같은 꿈이라는 중의적인 뜻도 된다.

제목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설근이 소설의 도입부에서 언급하였는데, 가장 먼저 언급된 제목인 <석두기>는 주인공인 가보옥이 여와가 쓰다가 남은 돌의 화신인 것에서 유래되었으며 <정승록>은 속세의 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그 다음으로 언급된 <풍월보감>과 <금릉십이차(금릉십이채)>는 각각 작중에서 언급 및 등장한 보물 및 등장인물들을 의미하며, 최종적으로 확정된 제목이 <홍루몽>이라고 서술되어 있다. 또한 청대에 일시적으로 홍루몽이 금서로 지목되었을 때는 <금옥연>이라는 제목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홍루몽의 판본은 80회본과 120회본의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 1791년 정위원이 기존의 80회본에 고악이 쓴 40회본을 결합해서 120회본으로 간행한 것이 "정갑본"이고, 이듬해에 이 120회본을 개정한 것을 "정을본"이라 한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 이전에는 필사본의 형태로 유포되었는데, 문제는 작가인 조설근이 원고가 출간되기 전에 사망해 버려서 시간이 지나면서 조설근이 최초로 작성한 원고 중 유실된 부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를 보다못한 정위원은 지인인 고악(1763~1815)에게 흩어진 필사본의 내용을 수집, 보완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되었고 1791년과 1792년에 거쳐 '홍루몽'이라는 제목이 붙은 120회본 소설로 출간되었다.

고악은 자신이 쓴 후반부가 조설근의 원고를 참고하여 '복원'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록 고악이 진시를 통과하고 한림원에 들어가기도 할 정도의 정통 한학자이지만 그래도 진실은 알 수 없다. 조설근이 쓴 80회본까지만 읽었을 때 소설의 주제의식이 더욱 명확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조설근이 쓴 부분까지만 읽으면 이야기가 덜 끝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당시에도 수많은 자칭 후속편 동인지들이 나돌았는데, 정위원이 그 가운데 가장 작품성 있는 고악의 버전을 공식 후속편으로 '지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활자본으로 출간되기까지의 기간 동안 유실된 내용이 많았던 탓에, 2006년에는 중국에서 고악이 후반부 40회의 내용을 변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기사 링크 원래 조설근은 귀족의 몰락을 그리는 전체 108회로 홍루몽을 이미 완성했으며 청왕조가 이 불온한 서적을 검열판으로 만들기 위해, 80회 이후 28회분을 삭제하고 고악을 대리작가로 투입시켜 결말부를 바꿨다는 것이다. 이는 2019년 중국 작가 류신우가 중국중앙텔레비전 교양프로그램 '백가강단'에서 재기한 설인데,[7] 그에 따르면 고악은 28회분을 재구성해 바꿨을 뿐만 아니라 12회분을 창작해 덧붙이면서 조설근의 홍루몽이 지녔던 원래의 반봉건성을 훼손하고 청왕조 심기에 크게 거스르지 않는 내용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류신우가 주장한 결말은 "남자 주인공 가보옥의 집안은 비참하게 몰락하고, 그와 사랑을 나눴던 여자 주인공 임대옥은 호수에 뛰어들어 자살한다. 가보옥은 임대옥이 죽은 뒤, 또다른 여자 주인공인 설보채와 결혼하나, 설보채 역시 곧 병에 걸려 죽는다. 임대옥은 이어 또다른 여자 주인공 사상운과 만나 거지처럼 처참하게 살아가다 사상운이 굶어 죽자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출가해 승려가 된다."이다. 당연히 홍학의 역사 전체를 뒤집는 주장인 만큼 이에 대한 반발도 많았으며, 류신우는 자신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홍루몽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반박하기도 했었다.[8] 그러다가 최근에는 고악과 정위원 이전에 이미 120회본 홍루몽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데다가 조설근의 판본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여러 종류가 드러남으로써 어느 쪽이 '원본'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조설근이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3. 줄거리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홍루몽의 줄거리는 오늘날의 난징인 금릉을 기원으로 한 부유한 가(賈)씨 가문에서 벌어진 여러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이야기는 영국공(榮國公) 가사의 동생인 가정의 차남 가보옥(남자 주인공)과 똑똑하지만 몸이 약한 가보옥의 고종사촌 임대옥(여자주인공 1), 그리고 건강하고 가정적인 이종사촌 설보채(여자주인공 2)[9]의 세명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10]

가씨 가문은 녕국공(寧國公)[11]과 영국공(榮國公)이라는 두 개의 공작위를 받은 개국공신 형제[12]의 후예이며 다른 유력가문인 사(史)씨, 설(薛)씨, 왕(王)씨와 인척관계를 맺으며 번성하였다. 하지만 본편 시점에 이르러서는 황제의 귀비가 된 가보옥의 누나 가원춘[13]의 친정 나들이를 위해 엄청난 규모의 원림인 대관원을 신축한데다 4대 가문에 속한 가문원들의 지나친 사치, 주색잡기를 포함한 각종 폭정들[14]로 인해 가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녕국공 가경은 불로장생법에 매달려 경조사를 제외하면 도관에서 생활하다가 수은중독으로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인 가진 및 가진의 손자인 가용, 영국공 가사, 가사의 아들 가련은 모두 주색잡기와 사치에 몰두하는 쓸모없는 이들이었다. 가사의 동생인 가정은 그나마 관직 생활을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정상적인 편이었으나, 관직 생활로 인해 지방과 중앙을 전전하느라 집안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조카인 가련에게 집안일을 위임했고 결과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남성 가문원들이 대부분 무능력하였던 탓에 영국공 가사의 어머니인 사태군(가모)과 손자며느리인 왕희봉, 가사의 동생 가정의 정실인 왕부인(가보옥의 어머니) 등이 4대 가문의 세력을 어떻게든 유지하고 있었으나 결국 쇠퇴를 막지 못했다.

가보옥은 본래 신화 시대에 여와가 축융, 공공의 싸움으로 인해 구멍이 뚫린 하늘을 복구하기 위해 쓰다가 남은 돌[15]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선계에서 인간의 생활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지나가던 신선에게 부탁을 하여 입에 구슬을 물고 태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유학과 입신양명에는 전혀 뜻을 두지 않고,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기만을 즐긴 탓에 부모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가보옥의 조모인 사태군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가보옥을 총애하였다.

임대옥은 돌이 가보옥으로 태어나기 전에 신영시자라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여 선계를 돌아다니던 중 물을 주었던 풀인 강주초의 화신으로, 물을 머금은 끝에 인간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으나 신영시자는 이미 인간계에서 다시 태어났기 때문에, 풀이었던 자신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위해 인간계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녀는 무남독녀였고 어머니인 가민이 사망하자 관직 생활을 하던 아버지에 의해 외가인 가씨 가문에 의탁하였으며, 시 짓기와 음악에 대한 재능을 갖춘 미소녀였으나 병약한 탓에 신경질이 잦고 앓아눕는 날이 많았다.

설보차(설보채)는 가보옥과는 이종사촌지간[16]으로 어릴 때 지나가던 스님으로부터 받은 문장이 적힌 금목걸이를 항상 착용하였는데, 가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태어났던 구슬에 새겨진 문장과 서로 대구를 이루고 있었고 두 명이 서로 인연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임대옥을 불안하게 하였다. 또한 차분하고 단정한 외모와 성격을 갖추고 있어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

황제의 후궁이 되어 귀비의 봉호를 받은 가원춘은 특별허가를 얻어 친정을 방문하였는데, 대관원의 모습을 보고 빈 공간으로 두기 아깝다고 여겨 가보옥 등에게 대관원에 거주할 것을 명하였고 가보옥은 임대옥, 설보차와 또래 소녀들과 함께 대관원 안에 각각 거처를 두게 되어 시와 노래를 짓거나 책을 읽으며 단란한 시절을 누렸다.

나이를 먹게 되자, 가보옥은 설보채에게도 일정한 호감이 있긴 했지만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했다. 그러나 병약한 임대옥을 탐탁지 않게 여긴 가보옥의 할머니 사태군은 임대옥보다는 설보차가 신부감으로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여기에 왕희봉과 왕부인이 동조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갖고 다니던 구슬 통령보옥이 돌연히 사라지는 사건이 일어나 가보옥은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어 버렸고, 귀비 가원춘도 같은 시기에 병사하였다. 이에, 사태군 등은 불길한 기운을 액땜한다는 명분으로 가보옥과 설보차의 혼인을 강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가보옥의 측근 시녀였던 화습인을 통해 임대옥에 대한 감정이 보통 것이 아님을 알게 되자, 왕희봉은 가보옥에게는 신부가 임대옥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설보채와 결혼시킨다.[17] 가보옥이 설보채와 결혼한 날, 임대옥은 결국 쓸쓸히 죽음을 맞이하고 나중에서야 모든것을 알게된 가보옥은 엄청난 충격으로 인한 허탈상태에 빠져 방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문원들의 폐단이 겹친 결과 가씨 가문은 공작위들과 재산을 몰수당하면서 몰락해 버렸고[18], 가보옥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조카와 함께 과거에 응시, 급제하였으나 응시장을 떠난 후 실종되어 버렸다. 이후 가보옥은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재회하지만 가보옥은 한마디 말도 없이 목례만을 한채 승려와 도사의 무리들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마지막에 진비는 낙향하는 가화와 함께 이야기를 몇 마디 나누고 아이를 낳자마자 죽은 딸 영련의 영혼을 천계로 보낸 뒤 망망대사와 묘묘진인과 함께 이야기를 끝마친다. 후일담에 보차는 보옥의 아들을 홀로 키우며 수절하고 있다고 한다.

3.1. 회별 구성[편집]

바이두 홍루몽 문서: 원어 회별 제목 포함

4. 등장인물[편집]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홍루몽/등장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특징[편집]

『홍루몽』은 조설근이 호사스러운 생활과 궁핍을 거치면서 인간과 세상을 통찰한 후에 경험을 바탕으로 재능과 역량을 기울여 완성해낸 걸작이다. 이 작품은 부귀영화를 누리던 귀족 가문이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려냈는데 다양한 성격, 외모, 운명을 지닌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하였다. 조설근은 시사(詩詞) 와 금석(金石), 서화, 의학, 건축, 요리, 직조, 염색 등 다 방면에 정통하였으므로 귀족 가문의 음식, 주거 문화와 건축 원예, 생활 용품, 의복과 인테리어 그리고 교통 수단과 연회장의 풍경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했다. 무려 700명이 넘는 등장인물로 구성된 방대한 스케일의 구도 속에 역사적 흥망성쇠를 겪는 거대한 귀족가문을 설정하고, 다시 그곳을 무대로 하여 신화세계와 현실세계를 오가는 신비로운 사랑의 삼각관계를 깊이 그려내어 마침내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지한 고뇌와 성찰을 제시한다. 더 나아가 우주적 이법과 실재에 대한 사유에만 몰두했던 고전철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성'의 가치를 발견하고, 표상과 필멸의 욕망의 세계와 영원한 진리의 세계의 대립이 아닌, 서로 이어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한 사상적으로도 큰 가치를 가진 작품이다. 또한 진정한 의미에서 이후에 꽃피게 되는 현대 중국문학의 초석을 쌓았으며,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중국의 무협작가들인 이수민, 왕도려, 양우생, 김용, 고룡 등은 모두 홍루몽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홍루몽은 인물 창조에 있어서 전형적 인물들을 대거 창조해냈다. 홍루몽의 인물은 더 이상 완전하게 좋은 사람이거나 나쁜 사람이 아니며 도덕관념의 화신도 아니고 다측면, 다각도, 다변화의 입체감을 지닌 인물들로 그들 모두의 내면에는 풍부한 현실성이 담겨 있다. 홍루몽에 묘사되고 있는 인물들은 진실될 뿐만 아니라 독특하고도 선명하게 부각되기도 하였다. 소설사적으로 보아서 홍루몽의 인물창조가 갖는 또 하나의 의의는 각계각층의 인물, 특히 하층인물들의 각성과 분노를 큰 비중으로 다르고 있으며, 하녀들도 자각적이며 독특한 개성의 긍정적 인물로 그리고 있다는 데에서 참으로 특기할 만한 전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홍루몽의 인물들은 모두 뛰어난 전형성과 진실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발전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긍정적 인물들을 대거 창조하여 작가의 희망과 이상을 기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소설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홍루몽은 금병매가 비록 인정세태를 다각적으로 묘사했다고는 하나, 묘사한 현상의 본질적 의의를 드러낼 수 없었던 한계를 극복하여, 삶의 모든 현상을 취사선택하고 가공하여 세세한 장면마다 자신의 이상과 감정을 불어넣었고, 자신의 이상과 비판을 나타냈다. 다시 말해서 홍루몽의 섬세한 묘사는 핍진하고 진실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으로 삶 자체에 대한 재현에다 삶의 본질에 대한 해부와 비판을 결합시킴으로써 객관적 묘사 가운데 본질적 의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섬세한 묘사는 진실하고 심각한데서 그치지 않고 전체 작품의 구조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뛰어나며, 작품의 주제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어 주제의 심각성을 한층 드러내는 작용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에 있어서 금병매보다 훨씬 풍부하고 생동적이다. 이러한 섬세한 묘사의 풍부성, 정련성, 진실성 등으로 말미암아 홍루몽은 중국고전소설 가운데 가장 풍부하나 예술적 매력을 지닐 수 있게 되었으며 작품의 주제 또한 한층 더 부각될 수 있었다. 홍루몽은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고 심도있게 묘사하였다. 보옥이 사상운과 습인을 보고 “대옥은 종래로 자기에게 벼슬을 하라는 얼빠진 소리를 하지 않는다”고 칭찬하는 것을 엿들은 대옥의 당시의 심정이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언어운용의 측면에서 보면, 홍루몽의 언어는 자연스럽고 유창할 뿐만 아니라 당시 북경지대의 구두어에 기초하여 순수하고 세련된 문학 언어를 사용하여 간결하고 정확하고 소박하면서도 생동적이다. 따라서 다양하고도 풍부한 표현력을 지닌다. 특히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평범한 언어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형상을 적절하고도 생동적으로 묘사해 냄으로써 강렬한 예술적 효과를 거두고 있다. 시사의 삽입 면에서 보면, 홍루몽에 삽입된 시사(時詞), 그리고 곡부(曲賦) 등은 예술적 효과는 물론이요 주제의 전개와 인물 및 환경묘사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홍루몽중의 시사 자체가 비록 당시와 송시보다 뛰어나지는 않지만, 많은 독자들이 이를 더 아름답게 보는 이유는 독자들이 홍루몽중의 시사를 읽으면서 인물과 스토리를 함께 결합시켜 보충하고 상상하는 까닭이다.

可歎停機德, 堪憐咏絮才 베틀 거둔 부덕(婦德)이여, 눈꽃 읊던 재주여
玉帶林中掛, 金簪雪裏埋 옥띠는 숲속에 걸리고, 금비녀는 눈 속에 묻혔구나

홍루몽의 표현기법상의 또 다른 특징은 명말 청초의 인정소설에 보편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은폐수법(隱蔽手法)[19]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종종 작품 서두에 일단의 주장을 늘어놓아 그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미리 말리거나, 혹은 회말 등에 유불관념이 지배하는 주제를 개괄해 놓기도 하며, 줄거리의 전개 도중에 의론성 문장을 끼워 넣음으로써 인물과 사건에 대해 자신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한다. 인정소설은 창작의도를 드러내지 않고 교묘히 감춤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세심하게 살펴 숨은 뜻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인데 홍루몽에도 이러한 수법이 사용되었다. 조설근은 은폐수법의 운용으로 인해 예술성이 저하된 인정소설의 보편적 결함을 극복하고 이를 고도의 창조적 역량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효과를 거두었다.

홍루몽은 중국인의 문화와 중화미의 비극전통인 심리방식, 심미관까지도 그려내고 있으며 당시의 사회상을 현실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는 중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문학 작품이다. 역사상 가치 있는 것이 소멸됨을 보여주는 것이 비극이라는 노신의 정의에 입각해 볼 때, 홍루몽을 이루는 중심적 비극 구조는 애정혼인 비극구조이다. 이러한 애정 혼인비극은 봉건제가 흔들리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변모하는 사회의 많은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보옥과 금릉십이채로 대표되는 작가의 이상을 기탁한 인물들이 대부분 불행한 결국은 홍루몽 비극성 자체를 한층 더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홍루몽은 기존의 중국 고전 비극미학의 전통인 희비교집을 계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단원주의의 타파와 그로 인한 비극성의 제고라는 새로운 미학적 면모를 보여주는 훌륭한 비극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홍루몽의 뛰어난 성취는 주로 금병매와 재자가인소설에 나타나는 부족함을 창조적으로 극복한 것으로 파악될 수 있었는데, 그러한 보완과 혁신이 너무도 괄목할 만한 것이어서 홍루몽이 출현한 이래 전통적 사상과 작법이 타파되었다고 하는 최고의 평가까지 받은 듯하다.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도 현실인식이 뚜렷했고 암울한 상황에서도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상을 품고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예술적 구상이 뛰어났던 치열한 작가정신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 중엽의 홍루몽은 명대의 금병매와 청초의 재자가인소설의 전통을 계승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전에 없는 참신하고도 대담한 중국 인정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홍루몽은 주제, 제재, 구성, 인물묘사, 언어의 운용 등 모든 면에서 기존의 소설뿐만 아니라 홍루몽 이후의 인정소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경지를 이룩한 중국소설의 최고봉으로 자리 매김을 한다. 이러한 성취는 작가 조설근의 진보적 세계관과 탁월한 작가적 역량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는 청초 인정소설의 부정적 측면에 대한 혁신이자 쇠퇴에 대한 반동의 결과라는 의미도 함께 지닌다.

홍루몽은 청 중엽 인정소설을 고조기로 끌어올리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청 중엽의 소설은 삼엄한 사상통제로 인해 풍정과 일사에만 주력했기 때문에 사실상 청초보다 퇴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 중엽을 인정소설의 고조기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고도의 사상성과 예술성을 지닌 홍루몽의 문학성 때문이다.

사대명저중 <홍루몽>이 가장 늦게 쓰였다. 그러나 후래거상(後來居上)이라고, 그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공인받고 있다. 중국고전문학의 최고봉이다. 다만, <홍루몽>이 이런 지위를 획득한 것은 확실히 기니간 과정을 겪었다. 구파홍학가중에서 최초의 홍학가인 지연재(脂硯齋) 그리고 청나라때의 왕희렴(王希廉), 장신지(張新之) 및 요섭(姚燮)등은 모두 "평점파(評點派)"라고 할 수 있다. <홍루몽색은>을 저술한 왕몽완(王夢阮), 심병암(沈甁庵) 등은 "색은파(索隱派)"의 대표이다. 건륭시대에 <홍루몽제사(紅樓夢題詞)>를 쓴 섭숭륜(葉崇侖)등등은 개략 "제영파(題詠派)"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홍학(紅學)"이라는 용어가 가장 먼저 나타난 것은 광서초기 <홍루몽>을 즐겨읽던 경사의 사대부들 입에서이다. 반은 농담식으로 붙인 말이다. 민국초기에 이르러, 소설을 읽기 좋아하던 주창정(朱昌鼎)이라는 사람이 <홍루몽>에 깊이 빠져 있었는데, 친구가 어느 날 방문했을 때 그가 머리를 쳐박고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웃으면서 물었다: "선생은 무슨 경전을 공부하시는지요?" 주창정이 답한다: "딴 것이 아니고, 내가 전공하는 것은 '홍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가 널리 알려진 후, "홍학"이라는 단어는 점차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의 전용명칭이 된다. 중국에 많은 소설들이 있지만 이처럼 그 소설만을 연구한 학문이 생길정도의 소설은 전무후무하다. 이는 홍루몽이 중국 소설사상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진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6. 평가와 영향력

홍루몽은 18세기에 조설근이 쓴 소설로, 일반적으로 모든 중국 소설 중 가장 위대한 소설이자 세계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소설 중 하나로 여겨진다.

홍루몽은 중국의 대표 고전이다. 중국 문화의 백과사전, 중국인의 자존심,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라고 평가받는다.

중국의 4대 소설 중 하나인 홍루몽의 인기는 중국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최근에는 베이징시 대학교 입학 필수 시험과목으로 지정됐다.# 홍루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문분야, ‘홍학(紅學)’도 형성되어 학술 전문가부터 일반인 동호회를 아우르며 다양한 접근과 이해가 이뤄지고 있다. 홍루몽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을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의 사랑과 비교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아니다. 홍루몽의 인기는 중국 역사공동체의 마지막 왕조인 청나라에 대한 중국인의 관심과 사랑을 반영한다. 동시에 멀지않은 과거로부터 오늘날 중국인 자신들의 의식구조와 생활습속을 이해해 보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첩경이 홍루몽 속에 담겨있다.

홍루몽은 사실주의 문학의 높은 성과로써 그 후의 문학에 풍부한 예술적 경험을 제공했으며 큰 영향을 남겨 홍루몽을 제재로 쓴 시, 사, 희곡, 소설, 영화는 이루다 헤아릴 수 없다. 홍루몽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는 '홍학(紅學)'이라는 전문적인 학문으로 형성되었는데 '구홍학'의 대표는 '색은파'이며, 5.4시기에 실험주의와 주관적 관념론의 고증방법으로 '색은파'를 비평하는 '신홍학파'가 나왔으나 이들도 극단으로 나갔다. 해방 후에 와서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의한 홍루몽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었다. 봉건문인들은 《후홍루》, 《홍루보》, 《홍루복몽》, 《홍루원몽》등 홍루몽의 뒷부분이라고 하는 작품들을 대량적으로 써냈으나 이런 작품 등은 모두 재자가인들의 대단원 이야기를 쓴 것으로써 홍루몽의 주제 사상을 엄중히 왜곡하였으며 소설 발전중의 한 갈래 역류가 되었다. 중국민중에게 홍루몽은 아직도 고문서보다 생기 있는 대중소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은 홍루몽의 무대나 인명등을 즐겨 상호로 사용하기도 한다. 게다가 홍루몽은 지금도 발표 당시의 문장 그대로 읽히고 있다. 그뿐아니라 18세기 말엽 북경주변에서는 홍루몽의 내용을 그린 카드, 가구 등이 날개돋힌 듯 팔렸고, 심지어는 연인들 사이에 대옥처럼 폐결핵에 걸려죽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 풍조까지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식자들은 홍미( 紅迷, 홍루몽에 미쳤다는 뜻) 라 하여 개탄해 마지 않았다.

근대 시기 이후 중국에서는 다들 『홍루몽』에 열광을 했다. 민중에서 시작된 홍학의 열기가 급기야 지식인 계층으로 옮아갔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홍루몽』을 언급하지 않는 이가 드물게 되었다. 황중헌(黃遵憲)은 청 말 주일대사관의 참사로서 조선통사로 파견된 김홍집에게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에 조언하는 『조선책략(朝鮮策略)』을 써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일본 문인들과 필담을 통한 대화에서 중일 양국 간의 문학을 비교하다가 중국 최고의 작품으로 『홍루몽』을 내세우기도 했다. 일본인은 당연히 자기네 최고(最古)의 장편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를 강조하였다. 황준헌은 개의치 않고 『홍루몽』의 장점을 내세우며 “천지개벽 이래 고금을 통해 가장 훌륭한 작품”이라고 칭찬하였다. 외국인과의 문화 대결이라는 점에서 자국의 작품을 내세우는 과장된 점도 있었겠지만 시문을 위주로 쓰고 있던 정통 문인의 입에서 당시에 소설을 이만큼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도 드문 일이었다.

중국 현대소설의 아버지 루쉰은 “《홍루몽》이 나타난 이후로 전통소설의 모든 사상과 작법이 타파되었다.”고 말했다. 홍루몽은 기존 중국 고전 소설의 주류를 이루던 남존여비, 입신양명 등의 가치를 타파하고 영웅호걸과는 거리가 먼 가보옥을 남자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그는 남성중심 혹은 유교중심의 봉건사회에 반항하는 이단아이며 섬세하고 여성적인 가치를 인생의 진리로 여긴다. 홍루몽 속 여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녀들은 남성에게 종속적인 모습, 혹은 작품 속 부수적 역할에서 탈피하여 주체적인 인물로 생동한다.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라고 불리는 여주인공들은 학식과 교양을 갖추었으며 시를 나누며 우애를 쌓는다. 또 작품 속 변화하는 그녀들의 감성의 농담을 관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홍루몽은 그야말로 세상의 약자인 여성이 중심이 되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간 유토피아 그 자체인 것이다. 홍루몽에는 시대 배경이 언급이 안된다. 작가가 일부러 말을 안 한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귀족이라고 하나 그 정도 귀족들은 많았다. 시녀와 하인들 같은 보통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 거다. 홍루몽은 삼국지나 수호전처럼 역사적 사건에 기반을 두는 기존의 작법을 깨뜨렸다. 이는 ‘술이부작(述而不作·서술하되 창작하지 않는다)’이란 공자(孔子)의 말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기도 했다. 홍루몽이 나오기 전만 해도 ‘술이부작’이란 말은 중국에서 소설 창작에 있어 일종의 족쇄였다. 대신 홍루몽의 작가는 소설의 초점을 개개인에 맞췄다. 그에 따르면 중국 소설은 크게 시대별로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홍루몽 순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삼국지가 역사와 국가에 초점을 맞췄다면 수호전은 사회 체제 변혁, 서유기는 권위에 대한 반항, 금병매는 기혼 남녀 간의 사랑에 주목했다. 홍루몽은 금병매에서 한발 더 나아가 미혼 남녀의 사랑과 감정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작품이다.

‘홍루몽’은 청(淸)조의 전성기이자 봉건전제통치가 삼엄했던 건륭(乾隆)년간에 창작된 장편 백화소설이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친숙한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등과는 달리, 가부(賈府)라는 귀족 대가정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상층 귀족사회의 삶과 갈등을 깊이 있고 생동감 넘치게 그린다. 그러는 가운데 18세기 중엽 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등 제 방면에 걸친 당시의 사회상을 광범위하고도 여실히 반영함으로써 ‘중국 봉건사회의 백과전서’라고 일컬어진다. 그러한 우수성과 함께 더욱 강조하고 싶은 점은 ‘홍루몽’은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집중시킨 뛰어난 휴머니즘 작품이다. 휴머니즘이란 인간성에 대한 왜곡과 억압에 저항하는 흐름으로, 시간과 공간의 차이를 떠나서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이 위협받는 순간에 항상 모습을 드러내왔다. 특히 작가들은 예술적 상상력과 표현력을 동원하여 휴머니즘 정신을 풍부하고도 다양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강한 호소력을 지닐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은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홍루몽’의 작자 조설근은 바로 그러한 작가였다.

‘홍루몽’의 시대는 암울했다. 조설근이 살았던 때는 청조의 봉건 전제통치가 극에 달할 정도로 강력했으므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봉건사상과 제도의 억압하에 짓눌려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홍루몽’에서 각성(覺醒)된 주인공의 눈을 통해 봉건체제에 물들지 않고 천부(天賦)의 인성(人性)을 지닌 참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들 중심의 스토리를 통해 개성, 해방을 추구하고 인욕(人欲)을 긍정하였으며 평등사상을 발현시킴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추구는 당시로서는 실현될 수 없는 ‘꿈’이었으므로 결국 ‘홍루몽’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러한 바람과 추구는 더없이 값진 것일 뿐만 아니라 미래지향의 원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최근 중국의 류짜이푸[21](劉再復) 교수는 ‘쌍전(雙典)’이라는 책에서 ‘삼국지’와 ‘수호전’을 비판하면서, “홍루몽이야말로 중국 고전소설에서 영적인 횃불을 진정으로 높이 쳐든 위대한 소설”이라고 극찬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쌍전-삼국지와 수호전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는가’(글항아리)라는 제목으로 번역·소개됐다. 류 교수는 “당신의 아이들이 ‘수호전’의 영웅들을 모방하지 않도록 해야 하고, ‘삼국지’ 영웅들이 사용하는 무소부재(無所不在)의 권모술수를 모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수호전이나 삼국지는 읽더라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고, 대신 ‘홍루몽(紅樓夢)’을 가까이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류 교수는 이 책에서 ‘삼국지’와 ‘수호전’은 모두 상당한 매력을 지닌 소설이지만, 권모술수와 폭력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500여년간 중국 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크게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해악을 끼쳤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말 두려운 것은 이들 작품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여전히 영향을 미쳐 사람들의 마음을 파괴하며 잠재의식을 변화시키는 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류 교수는 ‘홍루몽’에 대해 “사실 ‘홍루몽’은 중국 대지 위에 생산된, 인간과 관련된 위대한 깃발이었다. 녜간누(聶紺弩)는 ‘홍루몽은 인간의 책이다. 인간을 발견한 책이고, 사람들이 인간 속에서 인간을 발견하는 책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매우 깊이 있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쌍전’ 62쪽)라고 했다.

왕궈웨이는 “《홍루몽》은 ‘욕망의 비극’이자 ‘인생의 비극’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감성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로서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이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인생의 진리가 보이고 인간관계의 이치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달을 것이다. 잔잔한 선율과도 같은 홍루몽은 거창한 명분이나 이론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궁극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애잔한 느낌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실에서의 패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한 권이 480쪽에 달하는 책이 무려 여섯 권, 《홍루몽》을 한 마디로 전체를 개괄하기는 어렵지만 작품의 핵심 줄거리를 크게 두 축으로 말하자면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라 할 수 있다. 당대 최고 귀족집안의 귀공자 가보옥과 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차, 가씨 집안의 실권을 쥔 할머니가 선택한 보옥의 사촌 누이 임대옥. 이 세 사람의 엇갈린 사랑을 둘러싼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를 구성한다. 홍루몽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다. 붉은 누각에서 꾸는 짧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꿈, 봄날의 꿈은, 봄꽃이 지듯 소리없이 사라진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비극적 죽음, 가문의 몰락 등 인생의 모든 꿈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늘 애통해하고, 이를 통해 인생과 우주의 지극한 이치를 깨닫는다.

나는 『홍루몽』을 적어도 다섯 번을 보았다. …… 나는 이 책을 역사로 본다. 보기 시작할 때는 이야기책(소설)으로 보다가 뒤에는 실제 역사로 알고 읽게 된다. 『홍루몽』 제4회에 대해서는 대부분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지만 나는 그 부분을 이 책의 강령이라고 본다. 또 냉자흥이 영국부를 소개하는 대목이나 도사의 ‘호료가’ 및 진사은의 ‘호료가주’도 주목해야 한다. 제4회 호로묘의 중이 판결하는 사건에서 호관부가 나오는데 네 귀족 가문을 말하고 있다. …… 『홍루몽』의 사대 가문의 계급투쟁은 격렬하여 수십 명의 인명이 목숨을 잃었다. 부르주아의 지배자는 20여 명인데 (혹자는 33명이라고도 하지만) 나머지 노비들은 300여 명이나 된다. 역사를 말하면서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말이 통하지 않는다. 

― 마오쩌둥, 1964년 8월 18일, 북대하(北戴河)에서 철학 연구자들과의 대화[22]

중국에서는 단연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고전소설이다. 홍루몽은 중화권에서는 줄곧 열광적 반응을 얻었다. 중국의 어떤 서점에 가면 한쪽 벽면 전체가 홍루몽에 관한 서적며 코흘리개 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코너에 서 있을 정도다. 실제 홍루몽은 중국에서 여성과 청소년에게 인기가 더 많다고 한다. 홍루몽은 여성 세계의 종합세트다. 작품 속에는 강인한 여성과 우둔한 여성, 슬기로운 여성과 간교한 여성, 심약하고 감성적인 여성과 둔감한 여성이 모두 등장한다. 최용철 고려대 교수는 “인생살이의 세밀하고 정교한 일면을 모두 다루고 있다”며 “남녀 주인공도 인생의 풍파를 헤쳐나가야 하는 오늘날 젊은이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열기는 대륙과 대만, 홍콩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베이징대 총장을 지낸 차이위안페이·후스와 같은 중국 근대의 대학자들은 물론 마오쩌둥[23] 역시 홍루몽 팬이었다. 최용철 교수에 의하면 “홍루몽이 뜬 것은 공교롭게도 문화대혁명 때입니다. 마오쩌둥과 그의 부인 장칭(江靑)은 홍루몽의 팬이었어요. 문화대혁명 때 허용한 책이 딱 두 권인데 빨간색 ‘마오쩌둥 어록’과 ‘홍루몽’이에요. ‘마오쩌둥 어록’은 읽어봤자 재미가 없는데 그걸 읽었겠어요. 그러다 보니 문화대혁명 때 하방(下放)당한 젊은이들도 시골에서 홍루몽을 읽었던 것이죠.” 최용철 교수에 따르면 마오쩌둥은 홍루몽의 반(反)봉건적 측면에 주목했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시녀에 불과한 여성들이 가보옥 등 주인공 가씨 집안에 거침없이 대드는 데 상당한 매력을 느꼈다는 것. 이에 마오쩌둥은 “귀족 집안 출신의 작가가 어찌 이 같은 반봉건적 작품을 쓸 수 있었냐”면서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24]

중국은 최근 세계의 양대 최강국으로 자리잡으면서 자국의 문화를 세계에 전파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자아카데미를 세계 각지의 대학에 만들어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적극 홍보하는 것은 물론 『홍루몽』을 중국 문화의 아이콘으로 삼아 세계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전 총리 원자바오는 영국 국빈 방문 중 셰익스피어 한 권을 받았을 때, 신임 중국대사 푸잉은 여왕에게 홍루몽의 호크스 번역을 주었다. 2010년 원자바오가 한국 방문 때 주한중국 문화원에서 한국의 중국어 학습자 및 『홍루몽』 애호가들과 만남을 가졌다. 그의 방문 활동에 ‘홍루몽과 중국 문화’를 제목으로 한중 간의 민간 토론을 주도한 것은 역시 『홍루몽』을 중국 문화의 대표 작품으로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시진핑은 중국공산당의 당서기와 국가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중국몽(中國夢)을 국가발전의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대대적인 국민 계몽 운동을 펼쳐나갔다. 당과 국가의 창립을 기념하는 두 개의 백 년을 향후 발전의 목표 지점으로 정하고 부국강병의 꿈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1986년 하북(河北)성 석가장(石家莊)시 정정(正定)현의 당서기로 있으면서 『홍루몽』의 무대인 영국부(榮國府)를 청나라 당시의 고전 건축으로 재현하여 CCTV의 「홍루몽」 연속극 촬영세트로 활용한 뒤에 일반에 공개하여 이 작은 지방 도시를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시진핑은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홍루몽』을 언급하였고 또 『홍루몽』과의 인연을 이어 나갔다. 2014년 프랑스를 방문할 때는 『홍루몽』의 프랑스어 번역자인 당시 이미 99세에 이른 이치화(李治華)를 직접 만나 치하하였고, 2015년 미국을 방문할 때는 『홍루몽』을 가져가 링컨고등학교에 직접 기증하며 중국 문화의 전파에 신경을 쓰기도 하였다.

다만 이러한 고평가에 비해 대중적인 인기는 미비한 편이다. 중국 대륙, 심지어 천계와 저승세계라는 넓은 무대에서 먼치킨들이 활약하는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와는 달리 홍루몽의 이야기 여러 가문의 일상적인 집안일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에 자극적인 컨텐츠가 부족하고 질려버리기 쉽다. 특히 홍루몽은 사건 자체보다 인간들이 살아가는 일상 정취의 묘사에 중점을 둔 회화적 구성을 띄고 있다. 그래서 전쟁을 비롯한 각종 큼직한 외부 사건들을 주로 다루는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소설이다. 그렇다고 유림외사처럼 세태 풍자에만 방점을 찍은 소설도 아니고, 금병매처럼 적나라한 성적유희를 다룬 것도 아니다. 홍루몽의 진수는 동양 고전문학에서 보조적인 장치 내지 서사의 복선 정도로 쓰인 속세와 구도의 세계를 하나의 공간으로 응축시켜 놓음으로써 인물 하나 하나, 장면 하나 하나에 담기는 다양하고 깊은 은유와 상징에 있다고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몇몇 인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엄청나게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서사를 펼쳐가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과 몰입도가 다른 소설에 비해 굉장히 약한 편이다. 따라서 홍루몽은 처음 접하는 이들 입장에서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은 소설로 다가오기 쉬우며, 영상화를 비롯한 미디어믹스도 매우 어려운 편이다. 영상화를 한다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원작보다 인물과 서사구조를 단순화시키고, 일부 사건들을 훨씬 더 과장하는 등의 각색을 한다.

7. 작품에 관한 말들[편집]

홍루몽은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다[25]#

비극 중의 비극. 중국 예술계에서 하나의 위대한 걸작으로 여겨질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홍루몽을 세계 걸작 중 하나로 여긴다. 캐릭터 그리기, 깊고 풍부한 인간성, 완벽한 스타일 마무리, 그리고 스토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의 등장인물들은 살아있고, 살아 있는 친구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우리에게 더 친숙하며, 각각의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알아볼 수 있는 억양을 말한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우리가 위대한 이야기라고 부르는 것을 가지고 있다.

홍루몽은 좋은 책이며 추천되어야 한다……. 역사소설이고, 저자의 언어는 모든 고전소설 중에서 최고다…… <홍루몽>을 다섯 번이나 읽었지만, 역사라고 여겨 영향을 받지 않았다. 처음에는 이야기로, 나중에는 역사로 읽었다. "홍루몽"을 읽으면서, 사실, 책 전체의 개요인 4장에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부잣집 네 식구들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과 함께 말이다. '홍루몽'은 200여 년 전에 씌어졌지만, 이를 연구한 사람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해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지 알 수 있다.

'홍루몽'은 다섯 번 읽어야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 다섯 번 읽어야 한다……. 중국 고전소설 중 '홍루몽'이 최고다.

중국 소설이 도달한 가장 높은 발전점을 건드린 작품. 400명 이상의 중요성이 있는 인물들이 먼저 소개되고 마지막으로 이야기 속에 소개되는데, 그 줄거리는 필딩에 걸맞은 완성도로 완성되는 반면, 수많은 인물들의 인물 묘사는 서양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들의 최선의 노력을 환기시킨다. 거의 모든 상상할 수 있는 특징들이 차례로 독자에게 제출되는 중국 사회 생활의 파노라마로서, 홍루몽은 경쟁자가 전혀 없다. 가장 단순한 용어로 줄인 이 책은 원작적이고 효과적인 사랑 이야기로, 거의 구어체적인 문체, 일상 생활의 유머러스하고 애처로운 에피소드들로 가득 차 있으며, 높은 문학적 마무리의 짧은 시들로 뒤섞여 대부분의 부분을 위해 쓰여졌다. 영혼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연결하는 초자연적인 장에 속한다. 그 후 이야기는 항상 영적인 영향의 근저에 가려져 지상의 선을 따라 부드럽게 흐른다.

《홍루몽》은 중국 문학 문명의 삼천년의 기간을 요약한 것을 한 권으로 제공한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호메로스, 베르길리우스, 무라사키 시키부, 단테 알리기에리, 존 밀턴, 미겔 데 세르반테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리고 더 최근에는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의 주요 작품들이 그들 속에서 하는 것처럼, 그 자체로 당당한 위상의 작품을 판단하는 모델로서의 전체 전통의 백과사전적 컴포디엄으로서 그 작품 자체의 문화적 환경에 서 있다.

조설근의 천재성은 셰익스피어의 보편성을 증명한다. 지적인 범위와 즉흥적인 휴먼 드라마의 결합은 서구 소설에서는 그 상대가 없다. 중국 문화에서 그 위치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비평적 특징과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대중적 호소력이 있는 작품을 상상해야 하며, 두 작품을 합친 것보다 두 배나 긴 시간을 상상해야 한다.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이며, 아마도 중국 소설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일 것이다. 그것은 유머와 무협심이 풍부하며, 중국인들의 사회생활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홍루몽은 그 정교함과 규모에서 19세기 서양의 걸작들을 능가하는 경이적인 작품.

홍루몽은 모든 면에서 독특한 책이다. 어떤 중국 소설도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언어의 우아함과 세련됨, 또는 줄거리의 미묘한 특징과 예술적 진실성..

홍루몽, 매혹적인 18세기 중국 소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러시아 문학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프랑스 문학에 매우 중요하다. 18세기의 이 중국 작가는 같은 테크닉과 같은 음성으로 19세기 위대한 러시아인들이 말하고자 했던 것, 즉 우리 삶의 모든 기초가 부패한 것이며, 영혼의 광대한 각성에 의해 삶이 밑바닥에서 위로 변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그의 소설을 흥미롭고, 시간과 문화의 예기치 못한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문학으로서의 그것의 질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그것이 발명의 풍부함, 사고와 성격 둘 다이며, 때로는 그들의 이국적인 함정에서 인식하기 어렵지만, 그것의 심리적 통찰과 통찰의 진실성이다. 그 내용의 이런 측면들 때문에,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모든 문학의 위대한 소설 중 하나이다.

이것은 대단한 소설이다. 「삼국지연의」와 함께, 옛 중문학의 소설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홍루몽"을 읽으려는 노력은 매우 가치가 있다.

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산문소설.

사회적 리얼리즘과 심리적 통찰력을 위해 '홍루몽'은 서양 전통의 가장 위대한 소설과 나란히 놓일 작품이다.

'홍루몽'은 중국 소설 중 가장 위대한 것이다.

아무리 현대 소설의 훌륭한 작품이라도 깊이와 범위에서는 홍루몽과는 비교가 안 된다... 현대 중국 문학에 대한 경멸을 보여주기 위해 전통 문학에 정통한 학자는 "지난 50년 동안 홍루몽에 필적할 만한 것이 무엇이 만들어졌느냐"고 자주 묻곤 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에게 불리한 대답을 기대하면서 "홍루몽 이전의 어떤 일이 그것과 같을 수 있을까?"라고 반문할 수 있다. 중국 문학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험을 구현한 홍루몽은 심리학적 현실주의의 최고 업적이다.

걸작. 문학적 천재

― 프레데릭 웨이크만 주니어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역사학 교수)[41]

세계 문학의 심리학적으로 가장 깊이 파고드는 소설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 신시아 l. 셔놀트 (플로리다 대학교 교수)[42]

'홍루몽'은 '천년의 책'으로 불려온 걸작이다.

― 가디언지[43]

그 이야기는 주제가 단순하지만 함축성, 성격 연구, 그리고 인간의 감정 묘사에 있어서 복잡하다..

― 펄 벅[44]

"중국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면 홍루몽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던 한 중국 학자가 기억난다.

― 로버트 페인 (영국 작가)[45]

《홍루몽》은 중국 소설 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처음으로 과거와 완전히 결별한 작품이다.

― 왕치첸 (중국 태생의 미국 문학학자, 컬럼비아 대학교 문학 교수)[46]

중국 문학이나 심지어 중국 문화에서 가장 귀중한 보물은 홍루몽에 있다.

― 류짜이푸 (시카고 대학교 문학 교수)[47]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지금까지 쓰여진 중국 소설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진다. 나에게 그것은 중국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성경과도 같다. 이런 책들은 진정한 중국 문화가 무엇인지,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를 중국인에게 일깨워주는데, 그래서 나는 이를 '중국 문화의 바이블'이라고 부른다.

― 쉐신란 (영국 기자)[48]

홍루몽은 중국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버금가는 독특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중국 독자들은 문학적 장점과는 별개로 중국 심리, 문화, 사회에 대한 이해를 위한 최적의 출발점으로 추천한다.

― 존 민퍼드 (영국 중국학자)[49]

8. 국내 출판본

국내의 홍루몽 번역은 1884년 역관 이종태를 위시한 문사들이 120회본을 처음 완역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에서 최초로 홍루몽이 완역된 사례이다. 그 이후에도 국내에 여러 차례 번역되었으나 대개 불완전한 번역[50] 내지는 일어 번역본의 중역인 경우가 많았는데, 1990년대에 연변대학의 조선족 학자들에 의해 제대로 된 현대어 완역본이 예하출판사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조선족 출신 번역자들이 번역한 청계출판사 판과 최용철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와 고민희 한림대학교 중국학과 교수가 함께 번역[51]한 나남출판사 판이 2000년대에 들어 출간되었다. 2013년에는 솔출판사에서 홍상훈 인제대학교 중국학부 교수가 번역하여 7권으로 구성된 완역본이 출간되었다.

번역의 정확성은 1990년 나온 예하출판사 판이 좋은 평을 듣고 있으나, 2014년 12월 기준으로 절판된 상태라 그 희소성 때문에 인터넷 헌책방에서 책팔이들에 의해서 100만 원도 넘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다만 나남출판사 판본과 비교할 때 둘 중 하나가 떨어진다기보다는 각 판본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정도라 굳이 일부러 저 가격을 지불하고 볼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에 올재에서 연변대학 번역본이 교보문고에서 한정으로 풀렸고, 같은 번역집단의 수호전이 2015년에 한정으로 팔다 2016년에 상시 판매로 풀린걸 보면 홍루몽도 상시판매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

9. 홍학(紅學)의 역사[편집]

홍루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면서 당대 중국의 독자들은 임대옥vs설보차 중에서 누구를 더 좋아하는가와 같은 vs놀이에서부터 조설근 및 홍루몽에 최초로 평론을 단 지연재[52]의 실존인물 여부, 판본 연구[53],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 및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 사회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논쟁을 벌였고 홍루몽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홍학(홍루몽학)이라는 학문이 생겨나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겨난 홍학계의 분파는 평점파와 색은파였는데, 평점파는 홍루몽의 내용에 대한 감상, 평론을 통해 문학적 가치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색은파는 책의 내용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서 해석하는 것에 주력하였다. 그 과정에서 반청복명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거나 강희제~옹정제 교체기간의 권력다툼에 대한 은유, 심지어 순치제와 후궁 동악비의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 등의 갖가지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후스(胡適, 1891~1962)는 기존 홍학, 특히 색은파의 해석에 대해 비판을 제기하였고 홍루몽은 조설근의 자전소설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이후 후스의 견해를 지지한 이들에 의해 고증파라는 분파가 생겼는데, 고증파는 연구를 통해 조설근의 실존여부를 밝히는 한편 홍루몽의 판본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하였다. 같은 시기에 루쉰 등은 기존의 해석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관점에서 홍루몽을 평가하려 했고 이들은 비평파로 불리게 된다.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하고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에도 홍학의 명맥은 계속 이어졌으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어서 홍학의 여러 분파들 중에서 특히 고증파가 집중포화를 맞고 말았고 4인방은 홍루몽을 반봉건적 내용이 담긴 소설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해석을 강요하였다. 이후 4인방이 실각하고 문화대혁명이 끝나자 홍학 연구는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홍루몽은 20세기 이후로 중화권에서 크게 번성한 무협소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수호전이 협의라는 주제를 통해 호한들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정초했다면, 홍루몽은 남녀간의 '애정'을 비롯한 인정의 세계를 서사의 중심으로 놓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즉, 전통적인 무협소설은 멸망한 나라를 되찾거나, 가문과 육친의 원한을 갚기 위한 유혈도 마다치 않는 일종의 복수가 가장 주요한 소재였으나, 홍루몽은 이런 폭력을 동반한 유혈사태가 아니라 매순간마다 사건을 겪고, 사람들을 만나며 계속해서 번민하고 갈등하는 인간의 내면묘사야말로 서사를 끌고가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부상시킨 것이다. 즉, 현대의 이름난 중화권의 무협소설가들이 보여준 하나의 목적의식으로만 움직이지 않고 계속해서 인성이 변화해가는 인물상은 홍루몽이 보여준 심도있는 입체적 인물묘사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홍루몽(紅樓夢)

1. 개요

《홍루몽(紅樓夢)》은 청대의 문인 조설근(曹雪芹)이 창작하고 고악(高鶚)이 속작(續作)한 장회체(章回體) 백화소설이다. 남성 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은 임대옥(林黛玉) 등 다수 여인들과 인연을 맺는다. 작품은 인물 간 발생하는 사랑과 갈등, 애환 속에서 한 귀족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펼쳐내는데 이를 통해 삶의 진상과 무상(無常)한 운명, 나아가 봉건왕조인 청조의 몰락을 암시하였다. 내용과 형식 방면에서 백화소설의 예술적 기교가 최고봉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2. 저자

(1)성명:조점(曹霑)(1715~1763)
(2)자(字)·별호(別號):자는 몽완(夢阮), 별호는 설근(雪芹)
(3)출생지역:조적(祖籍)은 요양(遼陽), 출생지는 강녕(江寧)(현 중국 남경(南京))
(4)주요 활동과 생애

조설근은 만주 정백기(正白旗)에 속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강희제(康熙帝) 때 그의 증조부가 강녕직조(江寧織造)에 임명된 이후 3대를 세습하면서 그의 집안은 강남의 명문가가 되었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강희제가 죽고 옹정제(雍正帝)가 즉위하면서 그의 나이 13세 되던 해 집안은 정치적 타격을 받아 몰락한다. 그 후 집안은 북경으로 이주하였고 그는 빈곤 속에서 《홍루몽》을 쓰는 일에 전념하였다. 아울러 작은 벼슬을 한 적도 있으며 황족 명사인 돈성(敦誠), 돈민(敦敏) 형제 등과 교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어린 아들이 요절하자 그는 극도로 상심하였고, 마침내 이듬해 제석(除夕)(1763년 2월12일)에 숨을 거두었다. 그때 남긴 것이 80회분 《홍루몽》 유고였다.

(5)주요 저작:80회분 《홍루몽》. 유고는 《석두기(石頭記)》라는 제목이었음.

3. 서지사항

《홍루몽》의 판본은 크게 지본(脂本)과 정본(程本)의 두 가지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지본은 곧 지비본(脂批本)인데 조설근의 원본 80회본 《석두기(石頭記)》에 지인 지연재(脂硯齋)가 평어(評語)를 가한 것이다. 여기에는 갑술본(甲戌本)(1754), 기묘본(己卯本)(1759), 경진본(庚辰本)(1760) 등 12종이 있는데 이중 경진본이 비교적 완정(完整)하다. 정본은 120회본으로, 미완으로 끝난 80회본을 후대의 고악(高鶚)이 40회를 속작(續作)하여 완결시킨 것을 정위원(程偉元)이 간행한 것이다. 정본에도 정갑본(程甲本), 정을본(程乙本) 등 여러 종이 있는데 이를 정위원과 고악의 합작이라는 의미에서 정고본(程高本)이라고도 부른다.

4. 내용

금릉의 귀족 집안 가부(賈府)는 누대로 대관을 배출하였고 딸이 입궁하여 후궁이 되는 등 권력과 재력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이 집에는 가까운 친인척들도 의탁해 살았다. 가부의 귀공자 가보옥(賈寶玉)은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로 저택에 함께 거주하는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 등의 여인들과 교제한다. 그러나 가부는 대관원(大觀園)의 건축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점차 쇠락해가고 있었다. 가보옥은 임대옥을 사랑하나 집안의 큰 어른인 사태군(史太君)은 그녀가 병약하다는 이유로 가보옥을 설보차와 결혼시킨다. 이에 임대옥은 절망하여 죽고 가보옥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 가출하여 중이 된다. 동시에 가부 역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5. 가치와 영향

《홍루몽》의 가치는 사상과 예술성의 측면에서 고찰해볼 수 있다. 먼저 사상적인 측면에서 《홍루몽》은 반봉건과 어두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잘 드러냈다. 가부(賈府)의 사치와 향락,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권력과 재력을 통해 당시 귀족계층의 부패한 생활을 폭로하였다. 가보옥과 임대옥 두 청춘 남녀의 자유 혼인에 대한 열망을 통해서는 봉건도덕과 가치관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양상은 가부의 모순임과 동시에 당시 무너져가는 청 왕조의 모순이기도 하였다.

다음으로 예술성의 측면에서 《홍루몽》은 송, 원 이래 소설, 희곡 등 민간문학을 통해 발전해온 백화의 기교가 최고봉에 달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홍루몽》은 조설근의 자전적 경향이 농후한 소설로 그의 비극적 삶을 문학적으로 체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홍루몽》은 과거의 오락적 읽을거리와는 구분되는 작가주의 예술의 진정한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것이다.

끝으로 《홍루몽》에는 당시 귀족 생활의 규모와 수준을 보여주는 음식, 의복, 주거, 취미, 오락, 민속, 박물학, 문예 등에 관한 상당한 지식이 담겨있어 청대 문화는 물론 중국 전통문화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홍루몽》이 나온 이후에도 《홍루몽보(紅樓夢補)》, 《속홍루몽(續紅樓夢)》, 《후홍루몽(後紅樓夢)》, 《홍루부몽(紅樓復夢)》 등의 속서(續書)가 뒤를 이은 것을 보면 이 책이 얼마나 당시 중국 독서층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나아가 《홍루몽》은 동아시아 각국으로 전파되었는데 조선에는 19세기 중반 이전에 유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처음 《홍루몽》에 대한 언급이 있고 고종(高宗) 연간에 이종태(李鍾泰)에 의해 세계 최초로 《홍루몽》을 완역한 쾌거를 이룩한 바 있다. 근대 이후에는 《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을 ‘홍학(紅學)’이라 할 정도로 이 책에 대한 연구가 하나의 학문 분야를 이루었다. 《홍루몽》은 중국만의 소설이 아니라 세계문학사상 불후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이다.

6. 참고사항

(1)명언

⋅“책 속의 모든 얘기 허튼 소리 같지만, 온통 피눈물로 써낸 것이거늘. 세상 모두 지은이를 미쳤다지만, 그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오?[滿紙荒唐言 一把辛酸淚 都云作者癡 誰解其中味]” 〈제사(題詞)〉

(2)색인어:조설근(曹雪芹), 고악(高鶚), 홍루몽(紅樓夢), 가보옥(賈寶玉),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 가부(賈府), 대관원(大觀園),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

(3)참고문헌

• 庚辰本 石頭記(曹雪芹 著, 脂硯齋 重評, 人民文學出版社)
• 紅樓夢(人民出版社)
• 홍루몽(연변대학 번역팀 역, 예하출판사)
• 홍루몽(최용철⋅고민희 역, 나남)
• 홍루몽의 전파와 번역(최용철, 신서원)

홍루몽

장르 심리소설,세속적 소설
주제 사랑, 가족, 인생의 무상함, 여성의 삶, 그리고 문학의 중요성

《홍루몽》(중국어 간체자: 红楼梦, 정체자: 紅樓夢, 병음: Hóng lóu mèng 훙러우멍[*], 광둥어: hung4 lau4 mung6 훙라우뭉)은 18세기 중반 청나라 중기 건륭제 때 쓰인, 구어체 중국 장편소설의 최고 걸작이다. 작가는 조설근(曹雪芹)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다른 사람이 쓴 소설이라는 설도 있다. 《삼국연의》(삼국지), 《수호전》, 《서유기》와 동시에 중국 4대 명저 중 하나로 꼽힌다. 청나라 말기 홍루몽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문을 홍학이라고 하고, 이 말은 현대에도 사용된다. 마오쩌둥도 홍루몽을 애독하였고, 1950년대의 중국에서 홍루몽 논쟁도 있었다. 참고로, 원작자 조설근이 쓴 홍루몽의 원래 명칭은 《석두기》다.

청나라 광서제 판본 홍루몽 삽화

작가

《홍루몽》의 저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조설근(曹雪芹)이10년 동안 읽고 5번 수정 및 삭제하며 목차를 나누었다고 언급되어 있다. 홍학자들은 조설근이 실제 저자인지 편집자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홍학자들은 다른 사람도 홍루몽의 저자일 수도 있다고 믿고 있으며 60명의 후보가 존재한다.

줄거리

조상의 공적에 의해 대대로 고관을 지내고, 황실의 인척이기도 한 상류 계급 가씨 가문의 귀공자 가보옥이 주인공이며, 같이 지내는 임대옥이 여주인공이 된다. 등장 인물만 500명이 등장하며, 주인공인 귀공자 가보옥은 학문은 등한시하고, 풍류는 즐겨하는 한량이다. 가보옥은 병약한 임대옥을 사랑하지만,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결국은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되며, 연애의 삼각 관계를 축으로 한다.

특징

《홍루몽》에서는 여성의 아름다운 재주와 뛰어난 재주를 보여주려고 하였다. 여성은 거칠고 험악한 남성 사회에서 핍박받는 희생자라는 것을 표현하고 연민과 동정의 눈길로 아름답고 재주있는 여성을 노래하고 있다.[1] 봉건 시대의 상류층의 위선, 부패 및 착취를 폭로하고 있다. 이 소설의 비극적인 결말은 감동을 주며 중국 고전 소설에서는 자주 볼 수 없다. 소설 내용에 시,가사,노래,농담,수수께끼 등을 사용하여 생생하고 상세하며 예술적 개념을 만드는 데 능숙하고 어휘가 풍부하고 언어가 응축되어 있다.

구성

《홍루몽》은 전후 대칭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회와 제120회는 처음과 끝부분의 포장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진사은(甄士隱)과 가우촌(賈雨村)을 등장시켜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인생사의 진면목을 보여 준다. 소설 속에서 이들은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제2회에서 가보옥을 중심으로 하는 영국부의 상세한 소개, 제3회에서 임대옥의 상경, 제4회에서 설보채의 상경, 제5회에서 가보옥의 태허환경 유람 등으로 방대한 이 소설의 전반적 기반을 조성하고 있다. 제116회에서 다시 가보옥이 태허환경을 찾아가 깨달음의 기회로 삼는 일이나 제119회에 보옥이 과거 시험을 치르고 스스로 실종되어 출가하는 대목이 전반적으로 명확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치밀한 구성으로 재미를 더한다. 이 책은 젊은 주인공들의 사랑과 이별을 중심으로 4회의 이야기를 정선하고 상세한 해설을 곁들였다. 전체의 구성을 살피기에는 부족하지만, 중국 대표 소설 《홍루몽》의 진면목을 맛볼 수 있으며 작품을 이해하는 데 기초로 삼을 수 있다.[2]

평가

당시 사람들이 “《홍루몽》이 나오자마자 《삼국지》의 인기를 뛰어넘어 집집마다 이 책을 사들여 놓고 읽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을 만큼 뜨거운 인기를 누렸던 《홍루몽》은 이를 반영하듯 《석두기(石頭記)》, 《금옥연(金玉緣)》,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 《정승록(情僧錄)》, 《풍월보감(風月寶鑑)》 등 다양한 제목으로 불렸다. 남주인공 가보옥을 중심으로 임대옥과 설보채라는 세 젊은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사랑과 슬픈 이별의 이야기, 그리고 젊은 아씨마님 왕희봉의 전횡을 중심으로 하는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 과정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80회본과 120회본이 전할 만큼 분량이 방대하다.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홍루몽》은 저자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후스(胡適)에 의해 조설근의 창작으로 정리되었다. 조씨 가문이 청나라 황실의 비호를 받기도 했으며, 가문의 흥망성쇠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의 내용이 작자의 자전적 내용이라는 평가다. 500명이 넘는 등장인물과 그들의 복잡다단한 삶 속에서 드러나는 인생의 깨달음은 《홍루몽》의 매력이다. 120회본이 복간된 이래 30종 이상의 속작이 나왔을 정도로 두루 읽혔던 이 소설은 작품에 대한 평론도 속출하여 ‘홍학(紅學)’이라는 말까지 생겼다.[2]

판본

홍루몽의 복사본은 당초 약 110회가 존재했다고 추정되지만, 초고가 유출되고 80회 이후는 어떤 원인으로 흩어지고 보충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작자인 조설근이 사망했고, 그 후 30년 후에 약 40회가 첨삭되어 활자 인쇄판의 120회본이 세상에 나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등장인물

《홍루몽》에는 각각의 개성이 뚜렷한 수십 명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소설 전체에 등장하는 인물 수는 768명이며, 이 중에서는 하녀가 수백 명에 이른다.

가보옥(賈寶玉): 남자 주인공

임대옥(林黛玉): 여자 주인공, 가보옥의 사촌으로 어릴 적 소꿉친구이다. 병약하고, 섬세하며 염세적이고 신경질적이다.

설보채(薛寶釵): 여자 주인공, 가보옥과 사촌관계로 가보옥과 결혼을 하게 되는 제2의 여자 주인공. 건강하면서, 머리가 좋고, 인격이 원만하며, 우등생 타입의 소녀이다.

매우 우아하고 굉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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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루몽》은 돌 하나에서 시작되는데 여와(女媧)가 하늘을 메꾸면서 남겨둔 돌이 모습을 바꾸어 세상에 내려와 가씨 집안에서 옥을 입에 물고 태어난 가보옥(賈寶玉)이 된다는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옥이란 돌 중에 아름다운 것으로」 귀족의 신분이나 군자의 품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삼대에 걸쳐 강녕직조(江寧織造)를 세습한 조씨 가문의 조설근(曹雪芹)는 「하늘을 메꾸면서 남겨졌다」는 것으로 남자 주인공이 백 년 동안 영위해 온 귀족 가문이 몰락하는 어려움 속에 「나라와 가족에 대해 희망이 없어진 것」을 은유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마음속에 기억하는 화려했던 과거에 상상과 허구를 섞어서 소설 속에 교묘하게 녹아들게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귀족적인 탐미 정신과 취향을 선명하게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자기 위안을 삼고 있는 것입니다.

예의와 학문을 숭상했던 집안이라 함은 예법과 도덕을 추구하고 대대로 시를 읽고 예법을 공부한 귀족 집안을 말하는 것으로 조설근(曹雪芹)은 이러한 귀족 세가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습니다. 할아버지 조인(曹寅)은 시를 짓는데 능하고 서적의 판본을 비교하여 수정하는데 뛰어나 어명을 받들어 《어정전당시(御定全唐詩)》를 펴냈습니다. 증조부인 조새(曹璽)부터 조씨 집안은 삼대에 걸쳐 강녕직조에 네 번이나 임명되었는데 이는 황제의 측근들이 차지하는 중요한 자리로 천을 짜는 일인 직조를 책임지고 황실에서 필요로 하는 견직물과 각종 물품을 구입하였습니다. 이러한 물품을 예로 들면 《용장경(龍藏經)》의 경의(經衣)와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인생 경험은 조설근에게 영향을 미쳐 《홍루몽》에 나오는 아름다운 시가와 정교한 물품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조인은 소주직조(蘇州織造)와 강녕직조를 역임했으며 아울러 양회염정(兩淮鹽政)을 순시하기도 하는 등 강희 황제가 아끼고 중용하였던 신하였습니다. 물건을 구입하고 궁중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드는 것 외에 남쪽지방에서 강희황제의 눈과 귀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만약 일이 생기면 비밀스러운 상소문을 올려 알리기도 했습니다. 「조심하십시오!조심하십시오!」 라고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설근(曹雪芹)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이 있습니다. 조씨 집안은 재산을 몰수 당하고 몰락하였는데 조설근은 슬픔에 빠져 베이징으로 돌아가 건륭27년(1762)「임오년 섣달 그믐날 책을 다 완성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죽었습니다.」그의 「오십이 채 안 되어 죽은」 짧았던 일생에 대하여 그리고 그가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홍루몽》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단편화되고 불완전한 경우가 많아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수수께끼와 같습니다. 《홍루몽》은 비록 미완성 작품이지만 그 매력은 여전합니다. 아마도 미완성이기 때문에 여러가지 판본이 생겨났고 논평이나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것까지 생겨났습니다.

《홍루몽》이 나온 이후, 책 속 인물의 이미지와 구체적인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작품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그림과 시가 어울려, 그림 하나에 시 하나가 곁들여 져서 그림이 단순한 삽화가 되는 역할을 뒤집었습니다. 화가 개기(改琦)가 그린 버전은 가장 오래된 《홍루몽》의 그림책입니다. 획은 가늘고 그림은 생동감 있고 시적인 미학적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원비(元妃), 본명은 가원춘(賈元春)으로 가보옥의 큰누나입니다. 13, 14세에 입궁하여 훗날 귀비(貴妃)로 책봉되었고 이렇게 가씨 집안의 영광은 가장 정점에 달합니다. 성친(省親)이란 궁 안의 후궁이 친정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부모와 가족들을 만나 효도를 다하는 것입니다. 가씨 집안은 원비가 돌아오는 것을 맞이하기 위하여 특별히 부모를 만나는 장소로 대관원을 건축하였습니다. 대관원은 나이가 든 원비가 가족들과 짧은 만남을 가질 수 있는 낙원이자 가보옥과 여인들이 그 권력의 비호 아래 세상일을 잊고 떨어져 있던 젊음의 낙원이었으며 조설근(曹雪芹)이 그리워했던 과거로, 화려했지만 이제는 사라져 버린 실낙원입니다.

모자 장식은 신분에 따라서 층수와 동주(東珠, 중국 동북지방에서 생산되는 진주), 진주 및 보석의 수량에 대해 모두 관련된 규범이 있었습니다.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봉황이 두 개의 층으로 되어있고 모두 동그란 동주가 이어져 점점이 장식되어 있는데 총 11개가 있습니다. 봉황의 머리와 배, 꼬리의 깃털에는 작은 진주가 불규칙적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갈색의 묘안석이 하나 박혀 있습니다. 아마도 후궁의 모자 꼭대기 장식이었을 것입니다.

《홍루몽》에는 언제나 그윽한 향기가 있습니다. 중요한 의식을 행할 때 향을 피우고 일상생활 속에서도 향을 사릅니다. 원비(元妃)가 가족을 찾아왔을 때도 대관원(大觀園)안에서 정(鼎)에 백합의 향기를 살랐습니다. 가씨 집안의 잔치때도 작은 탁자 위에 향로와 향병, 향합을 놓고 백합궁향(百合宮香)을 피웠습니다. 향로의 세 가지 물품이란 향로와 향합 그리고 향병으로 구성됩니다. 향로는 향을 사르고 향합은 향을 저장하며 향병은 재를 처리하는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을 수 있습니다. 향로를 가운데 놓고 향합과 향병을 양 옆에 놓는데 향로가 바로 주인공임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에는 나오는 향로-문왕정(文王鼎)은 주공(周公)이 주문왕(周文王)의 제사를 드렸던 제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명청 시대에 모방이 많이 되었습니다. 옛 것을 본뜬 우아한 기물로 서재에서 감상용으로 적합한 것 이었습니다.

소설 속의 문왕정은 가보옥(賈寶玉)의 어머니인 왕부인(王夫人)이-영국부(榮國府)의 권력을 장악한 여성-생활하고 쉬는 본채에 옆에 딸린 방의 작은 탁자 위에 있었는데 문왕정 옆에는 수저와 젓가락 향합이 있습니다. 이 향로의 세가지 물품 중에 향로는 문왕정을 모방한 것이고 향합은 이(彞)를 모방한 것으로 네모난 병과 세트를 이룹니다. 문왕정에는 돌기가 있고 장식은 뢰문(雷紋)을 바탕으로 위에 부조로 수면문(獸面紋)과 기문(夔紋) 등을 장식하였습니다. 문왕정은 향을 사르는데 적합한 기물로 명말기 골동품 감정하고 완상하는 것에 관련된 서적인《존생팔전(遵生八牋)》에서 고대 청동기로 향을 사르는 도구로 선택할 때 「나르는 용의 다리를 가진 문왕정」을 「상상(上賞)」이라고 평가하였으며 이것은 당시와 후대의 향로 제작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각종 재질의 옛것을 모방한 향로가 생겨나서 심지어는 「노공(魯公)이 만든 문왕(文王) 존이(尊彞)」라는 명문이 있는 것도 있습니다.

《홍루몽》의 일상생활 속 자기에 대한 묘사에서 여요나 정요와 같은 송대 유명한 자기를 언급하고 있으며 선덕(宣德)연간과 성화(成化)연간의 자기와 같은 명대 관요(官窯)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들은 가씨 저택을 치장하고 있으며 또한 대관원(大觀園)의 일상이었습니다. 조설근(曹雪芹)은 이러한 일상을 정교하고 고급스러운 옛 도자기들과 청나라때 옛것을 모방하여 만든 동시대 자기들 안에 포장하여 넣었습니다. 여요 자기는 「새벽별 같이 귀한」것이지만 책 속에 수차례 등장하는데 접시와 미인고(美人觚), 화낭(花囊)이 있습니다. 정요 자기는「색채가 천하 제일의 흰 색」으로 보옥의 생일날 밤 연회에서는 40개의 정요 접시에 술안주와 과일, 채소를 담았습니다. 소박한 듯한 사치스러움은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홍루몽》에서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은 디테일한 부분들로 탐춘(探春) 방의 자단 선반위에 놓인 「대관요(大觀窯)의 큰 접시」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소설에서 딱 한 번 「대관요」로 「여요」를 대신 지칭한 것입니다. 탐춘이 집안의 권력을 장악한 후에 법도를 분명히 하고 예절을 지키며 폐해를 제거하였는데 유일하게 「대관정신(大觀精神)」이 있는 여인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대관요의 큰 접시」에는 「아리따운 노란 색의 정교하고 예쁜 큰 불수(佛手)」가 담겨 있습니다. 불수는 청나라 궁정에서 좋아했던 장식품으로 맑은 향기가 있는 과일이며 책 속에서 자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노부인인 유씨 할머니의 손자 판아(板兒)와 가장 어린 홍루몽 속 여인인 가교저(賈巧姐)가 탐춘의 방에서 놀 때 불수를 전해주는 것은 할머니가 집안의 재산이 몰수당하여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교저를 구하게 될 것을 암시합니다.

조설근(曺雪芹) : 홍루몽(紅樓夢)의 작가인가?

[홍루몽이 조설근의 작이라는 통설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을 보인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조설근은 중국의 4대명저중의 하나로 불리우는 <<홍루몽>>의 위대한 작가이다. 이는 어린아이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에 속한다. 그런데, 홍학 고증파의 시조격인 후스(호적, 胡適)의 이 결론에 대하여 학술계에는 이견이 계속하여 존재하여왔다. 고증파인 홍학가들이 계속하여 이러한 전제하에 고증을 계속하는 외에, 많은 독자와 학자들은 홍루몽의 작가가 조설근인지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유평백(兪平伯) 선생은 홍루몽의 작가가 조설근이라는 설의 지지자에서 회의자로 변한 사람중의 하나이다.

<<홍루몽>>의 책에 쓰여있는 이야기와 조설근이라는 이름 및 고증파들이 고증하여 얻은 조설근의 집안내력과 비교를 해보면, 조설근은 그 이름에서도 그렇고, 홍학자들이 고증을 통하여 얻은 조설근의 가족사와도 많은 모순이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만일 <<홍루몽>>에 반청조명(反淸弔明)의 관점이 선명하다고 보거나, 여기에 청나라시기의 옹정, 건륭제때 여러번에 걸쳐 잔혹한 문자옥(文字獄)이 발생한 것을 볼 때 그는 절대 자기의 진짜 이름을 책속에 써넣음으로써 살신지화를 부를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이로 인하여 <<홍루몽>>의 작가는 조설근이라는 설은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이다. 후스 선생이 주장하고 많은 홍학가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홍루몽>>은 조설근의 집안이야기를 그린 자전소설이라는 주장도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홍루몽>>을 읽어본 독자라면 모두 알겠지만, 조설근은 도홍헌(悼紅軒)에서 공공도인(空空道人)이 배껴온 석두기(石頭記)를 열번 피열(披閱)하고, 다섯번 첨삭한 홍루몽중의 인물이다. 그리고 이 조설근은 단지 책의 앞뒤에서 각각 한번씩 출현한다. 가장 먼저 조설근과 동시에 책에서 나오는 인물은 공공도인을 제외하고는 공매계(孔梅溪)가 있고, 다음이 조설근이다. 글자의 뜻으로 볼 때, 공공도인(空空道人)도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고, 공매계도 '恐沒戱' (아마도 없을 것이다)와 같은 발음이되고, 책에 나오는 견사은(甄士隱)은 '眞事隱'(진짜로 있었던 일은 숨기고), 가우촌(賈雨村)은 '假語存'(거짓말은 남는)으로 영련(英蓮)은 '應憐'(불쌍한)등등 모두 그 음을 따서 지은 것이다. <<홍루몽>>에는 "가작진시진역가, 무위유처유환무(假作眞時眞亦假, 無爲有處有還無, 가짜가 진짜가 될 때, 진짜도 가짜로 되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되는 곳에는 있는 것이 다시 없는 것이 된다)라는 유명한 문구를 남기고 있다. 이로써 볼 때 책에서 나오는 모든 이름이 만들어낸 이름인데, 작가가 자신의 이름만 진실한 이름으로 써넣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초창기에 "홍루몽 소설의 본명은 석두기인데, 작가가 누구인지는 여러 설이 있고, 도대체 누가 지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책안에 설근 조선생이 수정작업을 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홍루몽의 책에서 나타나는 도홍헌중에서 조설근 선생은 진실한 이름이 아니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조설근선생"은 공공도인, 견사은, 가어촌등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원래 존재하지 않는 단지 책속의 인물인 것이다. 만일 <<홍루몽>>중의 많은 인물들의 이름짓는 특색에 맞추어 보면 조설근(차오쉐친)은 차오세친, 초사근(抄寫勤) 즉 "열심히 배껴 쓴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홍루몽(紅樓夢)

글: 허현

《홍루몽(紅樓夢)》은 옛 중국 청나라의 문인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이 창작하고 고악(高鶚)이 속작(續作)한 백화소설(白話小說.중국의 구어체 소설)이다. 남성 주인공 가보옥(賈寶玉)은 임대옥(林黛玉) 등 다수 여인들과 인연을 맺는다. 작품은 인물들 간에 발생하는 사랑과 갈등, 애환 속에서 한 귀족 가문이 몰락하는 과정을 펼쳐내는데 이를 통해 삶의 진상과 무상(無常)한 운명, 나아가 봉건왕조인 청조의 몰락을 암시하였다. 내용과 형식 방면에서 백화소설의 예술적 기교가 최고봉에 이른 작품으로 평가된다.

《홍루몽(紅樓夢)》의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반봉건과 어두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잘 드러냈다. 가부(賈府)의 사치와 향락,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권력과 재력을 통해 당시 귀족계층의 부패한 생활을 폭로하였다. 가보옥과 임대옥 두 청춘 남녀의 자유 혼인에 대한 열망을 통해서는 봉건도덕과 가치관에 대한 비판을 표현하였다. 아울러 이러한 양상은 가부의 모순임과 동시에 당시 무너져가는 청 왕조의 모순이기도 하였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금릉의 귀족 집안 가부(賈府)는 누대(累代)로 대관(大官)을 배출하였고 딸이 입궁하여 후궁이 되는 등 권력과 재력이 하늘을 찌를 듯하였다. 이 집에는 가까운 친인척들도 의탁해 살았다. 가부의 귀공자 가보옥(賈寶玉)은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로 저택에 함께 거주하는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 등의 여인들과 교제한다. 그러나 가부는 대관원(大觀園)의 건축과 사치스러운 생활로 점차 쇠락해가고 있었다. 가보옥은 임대옥을 사랑하나 집안의 큰 어른인 사태군(史太君)은 그녀가 병약하다는 이유로 가보옥을 설보차와 결혼시킨다. 이에 임대옥은 절망하여 죽고 가보옥은 인생의 허무함을 느껴 중이 된다. 가부 역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홍장호의 사자성어와 만인보] 월만즉휴(月滿則虧)와 조설근(曹雪芹)

중앙일보

조설근(曹雪芹). 바이두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이 창조한 등장인물을 통해 관심을 끄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다. 짧은 분량의 시(詩)와 달리 소설은 필사를 통한 보급에 애를 먹곤 했다. 한 편에 꽤 많은 문자가 동원되기 때문이다. 과거, 인쇄술이 발전하기 이전에 소설이 유행하기 어려웠다.

조설근(曹雪芹. 1715~1763)의 대하소설 '홍루몽(紅樓夢)'은 요즘에도 꾸준히 읽히고 있다. 이 작품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소위 '홍학(紅學)'도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비교되곤 한다.

이번 사자성어는 월만즉휴(月滿則虧. 달 월, 찰 만, 곧 즉, 이지러질 휴)다. 앞 두 글자 '월만'은 '달 모양이 둥글게 되다'란 뜻이다. '즉'은 '~하면 곧'이고, '휴'는 '이지러지다, 여기서는 '둥근 보름달이 다시 초승달 모양으로 변해간다'란 뜻이다. 따라서 '월만즉휴'는 '달이 차면 기운다, 즉 무슨 일이든 성하면 반드시 쇠한다'란 의미다.

화가 겸 소설가 조설근은 난징(南京)의 넉넉한 한족(漢族) 가정에서 태어났다. 증조모가 강희제(康熙帝)의 유모를 지냈다. 이 인연으로 조부는 강희제 통치기에 황제에게 납품하는 견직물을 관장하는 강녕직조(江寧織造)를 지냈다. 옹정제(雍正帝)가 즉위하고, 조설근이 사춘기에 들어섰을 무렵 가문이 갑자기 몰락했다. 이후 조설근은 수도 베이징 교외로 이사해 성장했다.

이후 그는 평생 가난하게 생활하며 훗날 '홍루몽'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는 80회 분량의 '석두기(石頭記)'를 창작한다. 그는 살아생전에 '석두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 한 출판업자의 기획을 거쳐 작품이 다듬어지고 후반부도 완성됐다. 여기에 '홍루몽'이란 새로운 제목이 붙여졌다.

안타깝게도 조설근은 인기 작가 지위와 영광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그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가 48세로 일찍 세상을 떴다.

120회에 달하는 대작 '홍루몽'은 중국 각지에서 크게 유행했다. 지식인 집안에는 대부분 한 질씩 꽂혀있을 정도였고, 많은 젊은이들이 삽화가 포함된 이 신선한 느낌의 소설을 애독했다.

'홍루몽'은 청춘 남녀의 사랑과 혼인이 큰 줄기다. 도표를 만들어 따로 정리해야 할 정도로 등장인물이 많다. '홍루몽'의 각 인물마다 실제 모델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설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허점이 별로 발견되지 않는 이유다.

황제의 총애를 받는 귀족 가문이 세속의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결국 몰락하는 것도 '홍루몽' 서사(敍事)의 한 축이다. 청나라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가 빼곡히 묘사되어 있다. 세부 묘사가 사회학 자료에 가깝다.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 등과 달리 세밀한 심리 묘사가 특히 돋보인다.

시야를 확장하면, 중국 근대화의 필연성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읽히기도 한다. 자극적인 사건보다 세상사의 자연스러운 이치와 흐름에 의지하는 스토리 전개가 개연성 있게 다가온다.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이었던 조설근의 탁월한 작가적 역량 덕분에, 시공을 초월해 청나라 귀족 가정에 초대받은 느낌까지 든다.

이 작품을 읽으면, '월만즉휴' 이 네 글자가 떠오른다. '홍루몽' 한 등장인물의 대사에도 나온다. '월만즉휴'는 '물이 가득 차면 넘친다'는 '수만즉일(水滿則溢)'과 한 쌍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주역(周易) '풍(豊)' 괘의 '일중즉측(日中則昃), 월영즉식(月盈則食)'도 비슷한 쓰임이다.

TV, 영화, 인터넷 등으로 인해 '소설 읽기'가 쉽지 않은 시대가 도래했다.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뭘까?

리포트 제출, 작가의 문체를 음미하는 재미, 등장 인물의 심리 간접 체험 등 여러 동기가 혼재한다. 방황하는 청년기엔 심오한 지혜와 철학에 다가가는 한 경로로 여겨질 수도 있다.

'지혜란 우리가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구도 대신 가줄 수 없는 여정을 거쳐,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노력을 통해 스스로 발견해야만 한다.' 내면 세계 탐험에 대해 한 작가는 이런 진솔한 문장을 남겼다. [출처:중앙일보]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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