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움트는 나무잎에서 파릇파릇

 봄은 움트는 나무잎에서 파릇파릇 



따뜻한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소란(騷亂)을 피운다. 어느덧 구름은 걷히고 다시 아늑한 봄의 분위기 속에 노래가 시작된다.
대체로 밝고 긍정적인 느낌의 계절이다. 겨울이 가고 봄날이 왔다는 것은 고생이 끝나고 행복한 날을 시작한다는 비유. 그 덕분인지 이름으로 종종 쓰는 고유명사(固有名詞)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박봄이라든가 일본 사람의 이름에서 흔히 보이는 '하루'가 대부분 봄 춘(春)자를 쓰며, 동유럽권도 봄을 뜻하는 Весна́(Vesná, 베스나)를 이름으로 쓴다.
젊음도 뜻하니 청춘의 춘은 곧 봄이다. 고난 끝에 찾아온 좋은 시절을 비유하는 데 써먹기도 하며 사학(史學)에선 프라하의 봄, 서울의 봄, 아랍의 봄 등 민주화 운동(民主化運動)을 봄에 빗대 표현하기도 한다. 가을과 달리 멀리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밖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많다.

겨울의 긴 숨이 서서히 걷히면, 나무는 가장 먼저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 앙상하던 가지 끝에서 작고 연한 잎이 얼굴을 내밀 때, 우리는 비로소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 연둣빛은 아직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을 담고 있어 바라보는 이의 마음까지 환히 밝힌다.

봄은 언제나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바람이 달라지고, 공기가 조금 더 부드러워지고, 가지 끝에 움튼 잎사귀가 파릇파릇 흔들릴 때 우리는 깨닫는다. 새로움은 늘 이렇게 작은 징후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그 잎사귀를 보고 있으면, 나 또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혹독한 계절을 견뎌낸 나무처럼, 우리도 삶의 겨울을 지나 다시 푸르게 자랄 수 있음을 봄은 말해준다. 그러므로 봄은 단순히 계절의 이름이 아니라, 내 안에서 새롭게 움트는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일 것이다.


겨울이 길고 깊을수록, 봄은 더 간절해진다. 눈이 녹고 바람이 따뜻해졌다고 해서 바로 봄이 오는 것은 아니다. 봄은 먼저 나무의 가지 끝에서 시작된다. 앙상했던 나무가 어느 날 조심스럽게 새잎을 밀어 올릴 때, 우리는 비로소 계절의 전환을 눈으로 확인한다.

작고 연한 잎은 세상의 모든 시작처럼 서툴고 여리다. 하지만 그 속에는 계절을 바꿀 만큼의 힘이 숨어 있다. 바람에 흔들려도, 아직 완전히 자라지 않아도, 그 파릇한 빛만으로도 세상을 환히 밝혀준다. 봄은 화려한 꽃의 이름으로 먼저 오지 않는다. 늘 나무잎의 작은 떨림 속에서 가장 먼저 다가온다.

그 파릇한 빛을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문득 내 삶의 작은 시작들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움직였던 순간, 망설임 끝에 내디뎠던 첫걸음, 지쳐 있다가도 다시 고개를 들게 해준 희미한 희망들. 그것들은 언제나 크고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다. 나무의 잎처럼 작고 사소했지만, 결국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래서 나는 봄이 오면 늘 가지 끝을 먼저 살핀다. 새로 움튼 잎은 계절의 신호일 뿐 아니라, 나 또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알려주는 조용한 메시지다. 혹독한 계절을 견뎌낸 나무가 결국 푸른 잎으로 가득 차듯, 우리도 삶의 겨울을 지나 결국 다시 살아날 수 있음을, 봄은 말없이 보여준다.

결국, 봄은 계절의 이름이 아니라 희망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나무잎이 파릇파릇 돋아나는 순간, 우리 마음 또한 다시 자라난다. 그 잎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알 수 없는 안도와 설렘을 느낀다. 그건 아마도 봄이 내 안에서도 함께 움트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瓢蟲

不朽의 古典에서 찾은 智慧와 心灵, 역사적 敎訓과 省察에서 옛글의 향기에 취해 사랑에 빠지게 되었음을 밝히는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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